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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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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年春王正月 齊人遷陽注+無傳 陽 國名 蓋齊人偪徙之하다
[經]夏五月乙酉 于莊公注+三年喪畢 致新死者之主於廟 廟之遠主當遷入 因是大祭 以審 謂之禘 莊公喪制未闋 時別立廟 廟成而吉祭 又不於大廟 故詳書以示譏하다
[經]秋 八月辛丑 公薨注+實弑 書薨 又不地者 皆史策諱之하다
[經]九月 夫人姜氏孫于邾注+哀姜外淫 故孫稱姜氏하다
[經]公子慶父出奔莒注+弑閔公故하다
[經]冬 齊高子來盟注+無傳 蓋高傒也 齊侯使來平魯亂 僖公新立 因遂結盟 故 魯人貴之 故不書名 子 男子之美稱하다
[經]十有二月 狄入衛注+書入 不能有其地 하다
[經]鄭棄其師注+高克見惡 久不得還 師潰而克奔陳 故克狀其事以告魯也하다
[傳]二年春 虢公敗犬戎于渭汭注+犬戎 西戎別在中國者 渭水 出隴西 東河 水隈曲曰 汭하다 舟之僑曰 無德而祿 殃也 殃將至矣리라하고 遂奔晉注+舟之僑 虢大夫 [附注] 林曰 虢公無君人之德而享天祿 蓋敗戎斥地 必有所獲 故總言祿하다
[傳]初 公傅奪卜齮田호대 公不禁注+卜齮 魯大夫也 公卽位 年八歲 知愛其傅而遂成其意 以奪齮田 齮忿其傅 幷及公 故慶父因之하다
秋八月辛丑 共仲使卜齮賊公于武闈注+宮中小門 謂之闈 [附注] 林曰 賊 殺也하다
[傳]成季以僖公適邾注+僖公 閔公庶兄 成風之子라가 共仲奔莒 乃入하야 立之注+[附注] 林曰 季友乃以僖公入魯 立之爲君하고 以賂求共仲于莒하니 莒人歸之하다
及密하야 使公子魚請注+密 魯地 琅邪費縣北 有密如亭 公子魚 奚斯也 [附注] 林曰 慶父使奚斯請免其死이어늘 不許한대 哭而往하니 共仲曰 奚斯之聲也라하고 乃縊注+慶父之罪雖重 季子推親親之恩 欲同之叔牙 存孟氏之族 故略其罪 하다
閔公 哀姜之娣叔姜之子也 故齊人立之하다
共仲通於哀姜하니 哀姜欲立之하다
閔公之死也 哀姜與知之
故孫于邾하다
齊人取而殺之于夷하고 以其尸歸注+爲僖元年齊人殺哀姜傳 夷 魯地하니 僖公請而葬之注+哀姜之罪已重 而僖公請其喪還者 外欲固齊以居厚 內存母子不絶之義 爲國家之大計하다
[傳]成季之將生也 桓公使卜楚丘之父卜之注+卜楚丘 魯掌卜大夫한대 曰男也니이다
其名曰友 在公之右注+在右 言用事하고 間于兩社하야 爲公室輔注+兩社 兩社之間 朝廷執政所在리니 季氏亡이면 則魯不昌이리이다
又筮之한대 遇大有☲☰注+乾下離上 大有之乾☰☰注+乾下乾上 乾 大有六五變而爲乾이라
曰同復于父하야 敬如君所注+筮者之辭也 乾爲君父 離變爲乾 故曰同復於父 見敬與君同 [附注] 朱曰 乾爲父 離爲中女 大有上离而下乾 今變爲純乾 是與下卦同復于父也 乾爲君 言人之敬季友如敬君也리이다
及生 有文在其手曰友 遂以命之注+遂以爲名하다
[傳]冬十二月 狄人伐衛하다
衛懿公好鶴하야 鶴有乘軒者注+軒 大夫車하다
將戰 國人受甲者皆曰 使鶴하라
鶴實有祿位어니와 余焉能戰이리오
公與石祁子하고 與寗莊子矢하야 使守注+莊子 寗速也 玦 玉玦曰 以此贊國하야 擇利而爲之注+贊 助也 玦 示以當決斷 矢 示以禦難하라 與夫人繡衣曰 聽於二子注+하라
渠孔御戎하고 子伯爲右하고 黃夷前驅하고 孔嬰齊殿注+傳言衛侯失民有素 雖臨事而戒 猶無所及하야 及狄人戰于熒澤타가 衛師敗績하니 遂滅衛注+此熒澤 當在河北 君死國散 經不書滅者 狄不能赴 衛之君臣皆盡 無復文告 齊桓爲之告諸侯 言狄已去 言衛之存 故但以入爲文하다
衛侯不去其旗 是以甚敗注+[附注] 林曰 師之耳目在旗 衛懿公旣敗 而不去其旗 是以甚敗 至君臣皆盡也하다
狄人囚史華龍滑與禮孔하고 以逐衛人注+[附注] 林曰 華龍滑禮孔 衛大史也하니 二人曰 我大史也 實掌其祭하니 不先이면 國不可得也注+夷狄畏鬼 故恐言當先白神리라하니 乃先之하다
至則告守曰 不可待也注+守 石寗二大夫 [附注] 林曰 乃使二人先歸白神 二人至衛 則告二大夫之守國者 言狄師盛强 不可坐而待滅也라하니 夜與國人出하다
狄入衛하야 遂從之하야 又敗諸河注+衛將東走渡河 狄復逐而敗之하다
惠公之卽位也少注+蓋年十五六하니 齊人使昭伯烝於宣姜한대
不可어늘 强之注+昭伯 惠公庶兄 宣公子頑也 昭伯不可 [附注] 林曰 宣姜 齊女 故齊人使蒸之하야 生齊子戴公文公宋桓夫人許穆夫人하다
文公爲衛之多患也하야 先適齊하다
及敗 宋桓公逆諸河注+迎衛敗衆하야 宵濟注+夜渡 畏狄하다
衛之遺民男女七百有三十人이오 益之以共縢之民爲五千人注+共及滕 衛別邑이라
立戴公하야 以廬于曹注+廬 舍也 曹 衛下邑 戴公 名申 立其年卒 而立文公하니 許穆夫人賦載馳注+ 詩 衛風也 許穆夫人痛衛之亡 思歸唁之 不可 故作詩以言志하다
齊侯使公子無虧帥車三百乘 甲士三千人以戍曹注+無虧 齊桓公子武孟也 故傳別見之하고
歸公乘馬 祭服五稱 牛羊豕鷄狗皆三百與門材注+歸 遣也 四馬曰乘 衣單複具曰稱 門材 使先立門戶 [附注] 林曰 材木也하고 歸夫人魚軒注+魚軒 夫人車 以魚皮爲飾 重錦三十兩注+重錦 錦之熟細者 以二丈雙行 故曰兩 三十兩 三十匹也하다
[傳]鄭人惡高克하야 使帥師次于河上하고 久而弗召하니 師潰而歸어늘
高克奔陳注+高克 鄭大夫也 好利而不顧其君 文公惡之而不能遠 故使帥師而不召하다
鄭人爲之賦淸人注+淸人 詩鄭風也 刺文公退臣不以道 危國亡師之本하다
[傳]晋侯使大子申生伐東山皐落氏注+赤狄別種也 皐落 其氏族한대 里克諫曰 大子奉冢祀社稷之粢盛注+里克 晉大夫 冢 大也하고 以朝夕視君膳者也注+膳 廚膳니이다
故曰冢子니이다
君行則守하고 有守則從하니 從曰撫軍이오 守曰監國 古之制也注+[附注] 林曰 君有朝會征伐行役之事 則代君守國 君使大臣守國 則大子從君而行 大子從君 號曰撫軍 言助君鎭撫士卒 大子守國 號曰監國 言代君監臨國家니이다
夫帥師하야 專行謀注+帥師者 必專謀軍事하고 誓軍旅注+宣號令也 君與國政之所圖也 非大子之事也注+國政 正卿니이다
師在而已注+命 將軍所制 禀命則不威하고 專命則不孝니이다
故君之嗣適 不可以帥師니이다
君失其官하고 帥師不威 將焉用之注+大子統師 是失其官也 專命則不孝 是爲帥必不威也릿가
且臣聞皐落氏將戰이라하니 君其舍之注+[附注] 朱曰 恐太子戰而被殺傷 君何不捨申生勿使往也하소서 公曰寡人有子로되 未知其誰立焉注+[附注] 朱曰 不知我死後 誰得立爲君者 蓋微示其將廢大子之意也이노라
不對而退하다
見大子한대 大子曰吾其廢乎注+[附注] 林曰 大子亦揣知獻公將廢己 故以此爲問
對曰告之以臨民注+謂居曲沃하고 敎之以軍旅注+謂將下軍하니 不共是懼언정 何故廢乎注+[附注] 林曰 言大子當以任大責重 不共其職爲懼 何故以廢立爲懼乎
且子懼不孝 無懼弗得立하소서
修己而不責人이면 則免於難하리이다
大子帥師 公衣之偏衣注+偏衣 左右異色 其半似公服하고 佩之金玦注+以金爲玦하다
狐突御戎하고 先友爲右注+狐突 伯行 重耳外祖父也 爲申生御 申生以大子將上軍하고 梁餘子養御罕夷하고 先丹木爲右注+罕夷 晉下軍卿也 梁餘子養爲罕夷御하고 羊舌大夫爲尉注+羊舌大夫 叔向祖父也 尉 軍尉하다
先友曰 衣身之偏注+偏 半也하고 握兵之要注+謂珮金玦 將上軍하니
在此行也니이다 子其勉之하소서
偏躬無慝注+分身衣之半 非惡意也 [附注] 朱曰 分君身之半以衣之 非惡意也이오 兵要遠災注+威權在己 可以遠害니이다
親以無災하니 又何患焉注+[附注] 朱曰 分半衣以親之 又遠災害 無所憂患也이닛가
狐突嘆曰 時 事之徵也注+歎以先友爲不知君心 身之章也注+章貴賤 衷之旗也注+旗 表也 所以表明其中心
故敬其事 則命以始注+ [附注] 林曰 謂君若敬大子之事 則賞以春夏 當命以四時之始하고 服其身이면 則衣之純注+必以純色爲服하고 用其衷이면 則佩之度注+衷 中也 佩玉者 君子常度 [附注] 林曰 謂君若用大子之心 則當佩之玉 以得士君子之常度하나니
今命以時卒하니 閟其事也注+冬十二月 閟盡之時 [附注] 朱曰 今不命以始而命之於冬十二月 乃時之終也 衣之尨服하니 遠其躬也注+尨 雜色 [附注] 林曰 衣大子尨雜色之衣服 离遠其躬也 非所謂服 佩以金玦하니 棄其衷也
服以遠之하고 時以閟之하며이오이오하고하니 胡可恃也注+寒 凉 殺 離 言無溫潤 玦如環而缺不連 [附注] 朱曰 服用尨雜 則有凉薄之意 時用窮冬 則有肅殺之意 金屬秋方其性剛而寒 玦者 訣也 有离別之意이리오
雖欲勉之 狄可盡乎
梁餘子養曰 帥師者 受命於廟하고 受脤於社注+脤 宜社之肉 盛以 有常服矣어늘 不獲而尨하니 命可知也注+ 軍之常也 尨 偏衣 [附注] 朱曰 君命如此 其意可知
死而不孝 不如逃之注+[附注] 林曰 雖死而使父有殺子之名 猶爲不孝니라
罕夷曰 尨奇無常注+雜色奇怪 非常之服하고 金玦不復하니 雖復何爲리오
君有心矣注+有害大子之心로다
先丹木曰 是服也 狂夫阻之注+阻 疑也 言雖狂夫 猶知有疑 曰盡敵而反注+曰 公辭이라하니 敵可盡乎
雖盡敵이라도 猶有內讒이리니 不如違之注+違 去也이니이다
注+行 亦去也한대 羊舌大夫曰 不可하다
違命不孝 棄事不忠이니 雖知其寒이나 惡不可取이니 子其死之注+寒 薄也 [附注] 朱曰 雖知君心寒薄 然而去之 則是取不孝不忠之惡名하소서
大子將戰할새 狐突諫曰 不可니이다
昔辛伯諗周桓公注+諗 告也 事在桓十八年云 內寵並后하고 外寵二政하고 嬖子配適하고 大都耦國 亂之本也라한대 周公弗從이라 故及於難이니이다
今亂本成矣注+驪姬爲內寵 二五爲外寵 奚齊爲嬖子 曲沃爲大都 故曰亂本成 立可必乎
孝而安民 子其圖之注+奉身爲孝 不戰爲安民하소서 與其危身以速罪也注+有功益見害 故言孰與危身以召罪리까
[傳]成風聞成季之繇하고 乃事之注+成風 莊公之妾 僖公之母也 繇 卦兆之占辭하야 而屬僖公焉하다
故成季立之하다
[傳]僖之元年 齊桓公遷邢于夷儀하고 二年 封衛于楚丘하니 邢遷如歸하고 衛國忘亡注+忘其滅亡之困이러라
[傳]衛文公 大布之衣 大帛之冠注+大布 麤布 大帛 厚繒 蓋用諸侯諒闇之服으로 務材訓農注+[附注] 朱曰 畜積木材 敎訓農事하고 通商惠工注+加惠於百工 賞其利器用하고 敬敎勸學注+[附注] 朱曰 敬重五敎 勸勉爲學하고 授方任能注+方 百事之宜也하니 元年 革車三十乘 季年 乃三百乘注+衛文公以此年冬立 齊桓公始平魯亂 故傳因言齊之所以覇 衛之所由興 革車 兵車 季年 在僖二十五年 蓋招懷迸散 故能致十倍之衆이러라


2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제인齊人주민住民이주移住시키고서 그 땅을 점유占有하였다.注+이 없다. 국명國名이다. 제인齊人이 위협해 강제로 이주시킨 것이다.
여름 5월 을유일에 장공莊公에게 길체吉禘를 지냈다.注+삼년상三年喪을 마치고서 새로 죽은 이의 신주神主을 종묘로 모시고, 종묘宗廟에 있던 원조遠祖신주神主조묘祧墓로 옮기고서 대제大祭를 지내어 소목昭穆을 살피는 것을 라 한다. 이때 장공莊公상제喪制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따로 건립建立하고 완성完成되자 길제吉祭를 지낸 것이다. 또 태묘太廟에서 체제禘祭를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하여 비난의 뜻을 보인 것이다.
가을 8월 신축일에 민공閔公하였다.注+사실은 시해弑害되었는데 ‘’이라 기록하고 또 시해弑害장소場所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두 사관이 숨기고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9월에 부인夫人강씨姜氏주국邾國으로 도망갔다.注+애강哀姜외성인外姓人간통姦通하였기 때문에 그가 도망간 것을 기록하면서 강씨姜氏라고 칭한 것이다.
공자公子경보慶父나라로 도망갔다.注+민공閔公시해弑害했기 때문이다.
겨울에 나라 고자高子가 와서 결맹結盟하였다.注+이 없다. 고자高子고혜高傒인 듯하다. 제후齊侯가 그를 보내어 나라의 환란患亂을 평정시키게 한 것이다. 희공僖公이 새로 즉위하였으므로 인해 드디어 결맹結盟한 것이다. 그러므로 ‘使’라고 칭하지 않은 것이다. 노인魯人이 그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남자男子미칭美稱이다.
12월에 적인狄人나라에 침입侵入하였다.注+’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 땅을 점유占有하지 않은 것이다. 양공襄公 13년에 보인다.
나라가 그 군대를 버렸다.注+고극高克정문공鄭文公의 미움을 받아 오래도록 귀환歸還을 받지 못하여 돌아가지 못하자, 군대가 모두 흩어져 도망하고 고극高克나라로 망명亡命하였다. 그러므로 고극高克이 그 일을 기록하여 나라에 통고通告한 것이다.
2년 봄에 괵공虢公위수渭水 굽이에서 견융犬戎패배敗北시키자,注+견융犬戎서융西戎별종別種으로 중국中國에 거주하는 자들이다. 위수渭水농서隴西에서 발원發源하여 동으로 흘러 황하黃河로 들어간다. 물굽이의 들어간 곳을 ‘’라 한다. 주지교舟之僑가 말하기를 “도 없으면서 을 받는 것은 재앙災殃이니, 재앙災殃이 장차 닥칠 것이다.”고 하고서 드디어 나라로 도망갔다.注+주지교舟之僑나라의 대부이다.[부주]林: 괵공虢公이 임금의 도 없으면서 천록天祿을 누린다는 것은, 괵공虢公을 패배시키고서 땅을 개척開拓하여 필시 소득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祿이라고 한 듯하다.
여름에 장공莊公에게 길체吉禘를 지냈으니, 시기時期가 너무 빨랐다.
당초에 민공閔公의 스승이 복의卜齮전지田地를 빼앗는 데도 민공閔公하지 않았다.注+복의卜齮나라 대부이다. 민공閔公즉위卽位할 때에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그 스승을 사랑할 줄만 알았으므로 스승의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복의卜齮전지田地를 탈취하도록 버려 둔 것이다. 복의卜齮는 그 스승에게 분노忿怒한 나머지 민공閔公까지 미워하였기 때문에 경보慶父가 그를 이용한 것이다.
가을 8월 신축일에 공중共仲(慶父)이 복의卜齮를 시켜 무위武闈에서 민공閔公시해弑害하였다.注+궁중宮中의 작은 문을 ‘’라 한다.[부주]林: 살해殺害하는 것이다.
성계成季(季友)가 희공僖公을 모시고 나라로 갔다가注+희공僖公민공閔公서형庶兄으로 성풍成風의 아들이다. 공중共仲나라로 도망간 뒤에야 나라로 들어와서 희공僖公을 임금으로 세우고서注+[부주]林: 계우季友희공僖公을 모시고 나라로 들어와서 그를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나라에 뇌물을 주며 공중共仲을 넘겨주기를 요구하니, 거인莒人이 그를 나라로 돌려보냈다.
에 당도하여 공중共仲공자公子나라 조정에 보내어 사면赦免해 주기를 요청하였는데,注+나라 땅이다. 낭야琅邪비현費縣 북쪽에 밀여정密如亭이 있다. 공자公子해사奚斯이다.[부주]林: 경보慶父해사奚斯를 보내어 사형死刑을 면제해 주기를 청한 것이다. 허락하지 않자 공자公子가 울면서 돌아가니 공중이 그 울음소리를 듣고서 “이는 해사奚斯의 소리이다.”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注+경보慶父의 죄가 비록 컸으나, 계자季子(季友)는 친친親親(親族을 친애親愛함)의 은혜를 미루어 숙아叔牙와 동일하게 처리하여 맹씨孟氏종족宗族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 생략省略하고 ‘’로 기록하지 않고, 또 ‘’로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민공閔公애강哀姜의 동생인 숙강叔姜의 아들이기 때문에 제인齊人민공閔公을 세운 것이다.
공중共仲애강哀姜간통姦通하니 애강哀姜공중共仲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민공閔公시해弑害되었을 때 애강哀姜도 그 음모陰謀에 참여하여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라로 도망간 것이다.
제인齊人애강哀姜을 잡아 에서 죽이고 그 시체를 가지고 나라로 돌아가니,注+희공僖公원년元年제인齊人애강哀姜을 살해한 의 배경이다. 나라 땅이다. 희공僖公나라에 시체屍體반환返還을 요청하여 장사 지냈다.注+애강哀姜의 죄가 더할 수 없이 큰데도 희공僖公이 그 시체屍體반환返還을 요청한 것은 밖으로는 나라와 관계를 굳게 맺어 돈독하게 지내고, 안으로는 모자母子의 관계를 단절할 수 없다는 의리를 보존하고자 한 것이니, 국가를 위한 대계大計였다.
성계成季출생出生하려 할 때 환공桓公복초구卜楚丘의 아비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였는데,注+복초구卜楚丘복서卜筮를 맡은 나라 대부이다. 그가 점을 치고서 말하기를 “사내아이입니다.
이름은 ‘’로 임금님의 오른쪽에 있고注+오른쪽에 있다는 것은 요로要路에 앉아 국사國事주도主導한다는 말이다. 양사兩社 사이에서 공실公室보좌輔佐할 것이니,注+양사兩社주사周社박사亳社이다. 양사兩社 사이는 조정朝廷집정관執政官집무실執務室이 있는 곳이다.계씨季氏하면 나라도 창성昌盛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니, 대유괘大有卦(☲☰)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대유大有이다.건괘乾卦(☰☰)注+상하괘上下卦가 모두 인 것이 건괘乾卦이다. 대유괘大有卦육오효六五爻가 변하여 건괘乾卦가 된 것이다.로 변한 를 만났다.
복초구卜楚丘의 아비가 그 점괘占卦를 풀이하기를 “이 아이의 존귀尊貴가 아버지와 같아서 임금처럼 존경尊敬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注+이는 점쟁이의 말이다. 군부君父인데 가 변하여 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의 존귀尊貴가 아버지와 같아서 임금처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부주]朱: 이고 중녀仲女인데, 위가 이고 아래가 대유괘大有卦가 이제 순건괘純乾卦로 변하였으니, 이는 위의 가 아래의 과 마찬가지로 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우季友를 임금처럼 존경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그가 출생出生함에 미쳐 손바닥에 ‘’字 꼴의 문양文樣이 있으므로 드디어 ‘’로 이름을 지었다.注+드디어 를 이름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겨울 12월에 적인狄人나라를 침벌侵伐하였다.
위의공衛懿公을 좋아하여 중에는 대부大夫의 지위에 올라 을 타는 까지 있었다.注+대부大夫의 수레이다.
적인狄人과 전쟁하려 할 때 갑옷을 받은 국인國人(都城 안의 백성)들이 모두 “학에게 싸우게 하라.
학은 실로 대부大夫祿지위地位가 있지만 우리는 아무 지위地位도 없으니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의공懿公석기자石祁子에게 을 주고 영장자甯莊子에게 (화살)를 주어 도성都城을 지키게 하며注+장자莊子영속甯速이다. 옥결玉玦이다.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라를 도와 이로운 쪽을 선택選擇해 일을 처리하라.注+은 돕는 것이다. 을 준 것은 결단決斷해야 된다는 뜻을 보인 것이고, 화살을 준 것은 환난患難을 막으라는 뜻을 보인 것이다.”하고, 부인夫人에게 수 놓은 옷을 주면서 “저 두 사람의 을 따르라.”고 하였다.注+문장文章(무늬)의 순서를 취한 것이다. 그런 뒤에
거공渠孔융거戎車로 삼고, 자백子伯거우車右로, 황이黃夷전구前驅(先鋒)로, 공영제孔嬰齊후군後軍으로 삼아注+전문傳文위후衛侯민심民心을 잃은 지 오래이므로 비록 출전出戰에 임하여 경계하였으나 미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적인狄人형택熒澤에서 전쟁하다가 위사衛師대패大敗하니 적인狄人이 드디어 나라를 멸망滅亡시켰다.注+형택熒澤하북河北에 있다. 임금이 죽고 국인國人이 흩어졌는데도 멸망滅亡되었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 통고하지 않았고, 나라는 신하들이 모두 죽어서 다시 사실을 기록해 통고通告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환공齊桓公제후諸侯에게 이 이미 떠났고 나라가 보존되었다고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에 다만 ‘’으로 글을 만들었을 뿐이다.
위후衛侯가 그 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게 한 것이다.注+[부주]林: 군사들의 이목耳目은 임금의 집중集中한다. 위의공衛懿公이 패배한 뒤에도 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게 패하여 군신君臣이 모두 죽는데 이른 것이다.
적인狄人화룡활華龍滑예공禮孔을 잡아 가두고서 위인衛人을 추격하자,注+[부주]林: 화룡활華龍滑예공禮孔나라 태사太史이다. 두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는 나라 태사太史로 실로 나라의 제사祭祀를 맡고 있으니, 우리가 먼저 돌아가서 에게 하지 않으면 그대들이 나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고 하니,注+이적夷狄귀신鬼神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먼저 가서 에게 해야 한다는 말로 겁을 준 것이다.적인狄人은 이 두 사람을 먼저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나라로 돌아가서 수신守臣석기자石祁子영장자寗莊子에게 “의 군대가 매우 강하여 .”고 하니,注+석기자石祁子영장자甯莊子 두 대부를 이른다.[부주]林: 적인狄人이 두 사람에게 먼저 돌아가서 에게 고하게 하니, 두 사람은 로 돌아가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두 대부大夫에게 “적사狄師강성强盛하니 앉아서 멸망을 기다릴 수 없다.”고 한 것이다.수신守臣이 밤에 국인國人과 함께 몰래 도성都城을 빠져나갔다.
적인狄人나라 수도首都진입進入하여 드디어 도망가는 나라 사람을 추격하여 또 황하黃河가에서 패배시켰다.注+위인衛人이 동쪽으로 달아나 황하黃河를 건너려 하는데, 적인狄人이 다시 추격追擊하여 그들을 패배敗北시킨 것이다.
당초 위혜공衛惠公이 즉위하였을 때 나이가 어리니,注+나이가 15~6세였던 듯하다. 제인齊人소백昭伯을 시켜 선강宣姜간통姦通하게 하였다.
소백昭伯이 반대하자, 강제强制간통姦通시켜注+소백昭伯혜공惠公서형庶兄으로 선공宣公의 아들 이다. 소백昭伯불가不可하다고 반대한 것이다.[부주]林: 선강宣姜나라의 딸이기 때문에 제인齊人간통姦通하도록 한 것이다.제자齊子대공戴公문공文公송환부인宋桓夫人허목부인許穆夫人을 낳았다.
문공文公나라에 환란患亂이 많음으로 인해 먼저 나라에 가 있었다.
나라가 에게 패망敗亡함에 미쳐 송환공宋桓公이 도망해 오는 위인衛人황하黃河 가에서 맞이하여注+나라의 패배한 군사들을 맞이한 것이다. 밤에 황하黃河를 건넜다.注+밤에 건넌 것은 적인狄人에게 발각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때 나라의 유민遺民은 남녀 도합都合 7백 30명이었고, 의 백성까지 보태어 모두 5천 명이었다.注+나라의 별읍別邑이다.
대공戴公을 임금으로 세우고서 조읍曹邑거주居住하니,注+는 머무름이다. 나라의 하읍下邑(小邑)이다. 대공戴公은 이름이 으로 즉위卽位한 그 해에 하고, 문공文公즉위卽位하였다. 허목부인許穆夫人이 ‘재치시載馳詩’를 지었다.注+재치載馳는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이다. 허목부인許穆夫人위국衛國패망敗亡이 가슴 아파 조읍曹邑으로 가서 위후衛侯를 위로하고자 하였으나, 나라 대부의 저지沮止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를 지어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제후齊侯공자公子무휴無虧에게 병거兵車 3백 갑사甲士 3천 인을 거느리고 가서 조읍曹邑을 지키게 하였다.注+무휴無虧제환공齊桓公의 아들 무맹武孟이다. 병거兵車 1 배정配定갑사甲士의 수가 정상의 제도制度와 다르기 때문에 에 특별히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대공戴公에게 말 4 제복祭服 다섯 벌과 소‧양‧돼지‧닭‧개 각각 3백 마리와 문재門材를 보내 주고,注+는 보내는 것이다. 네 의 말을 이라 하고, 홑옷과 겹옷이 갖추어진 것을 한 벌이라 한다. 문재門材를 보내어 먼저 문호門戶를 세우게 한 것이다.[부주]林: 재목材木이다.부인夫人에게는 어헌魚軒注+어헌魚軒부인夫人이 타는 수레로 어피魚皮로 장식한 것이다.중금重錦 30 注+중금重錦생사生絲가 아닌 숙사熟絲로 세밀하게 짠 비단이다. 20 이 겹으로 포개졌기 때문에 이라 한다. 30은 30이다. 보내 주었다.
정인鄭人고극高克을 미워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황하黃河가에 주둔하게 하고는 오래도록 부르지 않으니, 군대가 흩어져 돌아갔다.
그러므로 고극高克나라로 도망갔다.注+고극高克나라 대부이다. 이익만을 좋아하고 그 임금을 돌보지 않으니, 정문공鄭文公이 그를 미워하였으나 멀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군대를 거느리게 하고는 부르지 않은 것이다.
정인鄭人이 그를 위하여 ‘청인淸人를 지었다.注+청인淸人은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이다. 문공文公이 신하를 정당한 도리로 물리치지 않아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군대를 잃는 장본張本이 되었기 때문에 이 를 지어 풍자諷刺한 것이다.
진후晉侯태자太子신생申生을 보내어 동산東山고락씨皐落氏토벌討伐하게 하자,注+적적赤狄별종別種이다. 고락皐落은 그 씨족氏族이다. 이극里克하기를 “태자는 종묘宗廟사직社稷의 제사를 받들고注+이극里克나라 대부이다. 이다. 조석朝夕으로 임금의 음식을 살피는 자입니다.注+주선廚膳(飮食)이다.
그러므로 ‘총자冢子’라고 합니다.
임금이 외출外出하면 태자는 남아서 나라를 수호守護하고 달리 수호守護할 사람이 있으면 임금을 따라가는데, 따라가는 것을 ‘무군撫軍’이라 하고 수호하는 것을 ‘감국監國’이라 하는 것이 옛날의 제도입니다.注+[부주]林: 임금이 조회朝會정벌征伐출행出行하는 일이 있으면 태자太子는 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지키고, 임금이 대신大臣에게 나라를 지키게 하면 태자太子는 임금을 수행隨行한다. 태자太子가 임금을 수행할 경우 ‘무군撫軍’이라 호칭號稱하니, 임금을 도와 사졸士卒진무鎭撫(安撫)한다는 말이고, 태자太子가 나라를 지킬 경우 ‘감국監國’이라 호칭하니, 임금을 대신해서 국가國家감림監臨(감독)한다는 말이다.
군대를 거느리고 전장戰場에 임하여 계책計策전단專斷하고注+군대를 거느린 자는 반드시 군사軍事전단專斷해야 한다. 군대에게 호령을 내리는 것은注+호령號令선포宣布하는 것이다. 임금과 국정國政도모圖謀할 일이지 태자太子의 일이 아닙니다.注+국정國政정경正卿이다.
군대는 제명制命에 달렸을 뿐인데,注+명령命令은 장군이 제정制定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일을 임금께 여쭈어 행하면 위엄威嚴이 없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면 불효不孝가 됩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적자適子는 군대를 거느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관원官員임명任命하는 법도를 잃고, 태자太子는 군대를 거느려도 위엄威嚴이 없다면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注+태자太子가 군대를 통솔統率하면 관원官員을 임명하는 법도法度를 잃는 것이고, 태자太子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면 불효不孝가 되니, 태자太子가 장수가 되더라도 반드시 위엄威嚴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 신은 듣건대 고락씨皐落氏가 전쟁하려 한다 하니, 임금님께서는 태자太子를 보내지 마소서.”라고 하니,注+[부주]주왈朱曰태자太子출전出戰하면 죽거나 부상負傷할 염려가 있는데, 임금은 어찌하여 태자太子신생申生에게 내린 명령을 회수回收하여 출전出戰하지 말도록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진헌공晉獻公이 말하기를 “과인寡人에게는 자식이 많은데 누구를 후사後嗣로 세워야 할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 하였다.注+[부주]朱: 내가 죽은 뒤에 누구를 임금으로 세워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니, 이는 헌공獻公태자太子하려는 뜻을 약간 드러낸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극里克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물러 나왔다.
이극里克태자太子알현謁見하자, 태자太子가 “내가 폐출廢黜되겠던가?”라고 물었다.注+[부주]林: 태자太子헌공獻公이 자기를 폐출廢黜하려 한다는 것을 헤아려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물은 것이다.
이극里克이 대답하기를 “임금께서 태자太子께 백성 다스리는 일로 하셨고,注+곡옥曲沃거주居住하게 한 것을 이른다. 태자太子께 군대의 일로 하셨으니,注+하군下軍을 거느리게 한 일을 이른다. 태자太子께서는 직무職務를 완수하지 못할까만을 염려해야지 무엇 때문에 폐출廢黜될 것을 염려하십니까.注+[부주]林: 태자太子책임責任중대重大하니 그 직무職務완수完遂하지 못할까만을 두려워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폐립廢立의 일을 두려워하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태자太子께서는 아들이시니, 불효不孝만을 걱정하고 후사가 되지 못할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몸을 닦고 남을 책망하지 않는다면 화난禍難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出征하려 할 때에 헌공獻公태자太子에게 편의偏衣를 입히고注+편의偏衣좌우左右의 색깔이 다른 옷으로 그 반쪽의 색깔이 헌공獻公복색服色과 같은 것이다. 금결金玦을 채워 주었다.注+금결金玦은 쇠로 만든 이다.
호돌狐突융거戎車를 몰고 선우先友거우車右가 되고,注+호돌狐突백행伯行으로 중이重耳외조부外祖父인데, 신생申生가 된 것은 신생申生태자太子로서 상군上軍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양여자양梁餘子養한이罕夷의 수레를 몰고 선단목先丹木거우車右가 되고,注+한이罕夷나라의 하군下軍을 거느린 이다. 양여자양梁餘子養한이罕夷가 된 것이다. 양설대부羊舌大夫가 되었다.注+양설대부羊舌大夫숙향叔向조부祖父이다. 군위軍尉이다.
선우先友가 말하기를 “절반이 자신의 복색服色과 같은 옷을 입히고,注+이다. 병권兵權을 쥐어주셨습니다.注+금결金玦을 차고 상군上軍을 거느린 것을 이른다.
성패成敗가 이번 출전出戰에 달렸으니 태자太子께서는 노력하십시오.
절반이 공복公服의 색깔과 같은 옷을 입힌 것은 악의惡意가 없다는 것이고,注+자기 옷의 절반을 나누어 태자太子에게 입힌 것은 악의惡意가 아니다.[부주]朱: 임금의 옷의 절반을 나누어 태자太子에게 입힌 것은 악의惡意가 아니다. 병권兵權을 쥐어준 것은 를 멀리하게 한 것입니다.注+위세威勢권한權限이 나에게 있으면 를 멀리할 수 있다.
임금님께서 태자太子를 이처럼 친애親愛하여 를 멀리하게 하셨으니, 또 무엇을 걱정하십니까.注+[부주]朱: 임금이 자기 옷의 절반을 나누어 입혀 친애親愛하고, 또 재해災害를 멀리하게 하였으니, 근심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호돌狐突탄식歎息하기를 “시령時令은 일의 징조徵兆이고,注+선우先友가 임금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탄식한 것이다. 옷은 신분身分문장文章이고,注+귀천貴賤을 드러내는 것이다. 패식佩飾은 마음의 기치旗幟이다.注+이니, 그 중심中心표명表明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그 일을 중요하게 여기면 (四時의 전반前半춘하春夏)에 명령을 내리고,注+은 봄과 여름에 주어 권면勸勉한다.[부주]林: 임금이 만약 태자의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봄과 여름에 상을 주어 권면하는 뜻에 따라 사시四時초기初期(春夏)에 명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 몸에 옷을 입히면 순색純色의 옷을 입히고,注+반드시 순색純色으로 옷을 만든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충심衷心을 신용하면 법도法度에 맞는 패식佩飾을 채우는 것이다.注+이다. 을 차는 것은 사군자士君子상도常度이다.[부주]林: 임금이 만약 태자太子충심衷心신용信用하였다면 사군자士君子상도常度에 맞도록 옥결玉玦을 채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헌공獻公은 한 해가 끝나가는 때에 명령을 내렸으니 그 일을 막히게 한 것이고,注+겨울 12월은 한 해가 비진閟盡(끝남)하는 때이다.[부주]朱: 지금 한 해가 시작하는 때에 명하지 않고 겨울 12월에 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한 해가 끝나가는 때라는 말이다. 잡색雜色 옷을 입혔으니 태자太子를 멀리한 것이고,注+잡색雜色이다.[부주]林: 태자太子에게 잡색雜色 옷을 입혀 멀리하는 뜻을 보였으니, 옷이라 할 수 없다.금결金玦을 채웠으니 태자太子충심衷心을 버린 것이다.
잡색雜色 옷을 입혀 멀리하는 뜻을 보이고, 한 해가 끝나가는 때에 을 내려 일을 막히게 하였으며, 잡색은 냉정冷情을, 겨울은 숙살肅殺을, 한랭寒冷을, 결별訣別를 뜻하니,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注+냉정冷情한랭寒冷숙살肅殺이별離別온화溫和하고 부드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은 고리 같으면서도 중간이 끊겨 이어지지 않는다.[부주]朱: 잡색을 사용해 지은 옷에는 박절迫切의 뜻이 있고, 한겨울에 내린 에는 숙살肅殺의 뜻이 있다. 서방西方한 물건으로 그 성질이 강하고 차다. 이니 이별離別의 뜻이 있다.
아무리 노력하고자한들 적인狄人전멸全滅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양여자양梁餘子養이 말하기를 “군대를 거느린 자는 종묘宗廟에서 명령을 받고 에서 제육祭肉을 받을 때에注+의사宜社에 올리는 고기를 신기脤器에 담은 것이다. 법도法度에 맞는 복장服裝이 있는 것인데, 법도에 맞는 복장을 받지 못하고 잡색雜色 옷을 받았으니 임금의 명을 알 만하다.注+위변복韋弁服이 군대의 상복常服이다. 편의偏衣이다.[부주]朱: 임금의 이 이와 같으니 그 뜻을 알 만하다는 말이다.
죽어서 불효不孝가 되느니 차라리 도망가는 것이 낫다.注+[부주]林 : 비록 죽어서 아비에게 자식을 죽였다는 오명惡名을 끼치는 것도 오히려 불효不孝가 된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한이罕夷가 말하기를 “잡색의 기괴奇怪한 옷은 상도常度에 맞지 않고,注+잡색雜色기괴奇怪하니 정상正常의 옷이 아니라는 말이다.금결金玦은 돌아오지 말라는 뜻이니, 비록 돌아온다 하더라도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임금은 이미 딴 마음을 가졌다.注+태자를 해칠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선단목先丹木이 말하기를 “注+는 의심함이니, 미친 사람도 오히려 의심한다는 말이다. ‘적을 다 죽이고 돌아오라.’고 하니,注+헌공獻公의 말이다. 적을 다 죽일 수 있겠는가.
비록 적을 다 죽인다 하더라도 내부內部참언讒言이 있을 것이니, 도망가는 것만 못하다.注+는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돌狐突이 태자를 모시고 도망가려 하자,注+도 떠나는 것이다.양설대부羊舌大夫가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부명父命을 어기는 것은 불효不孝이고 직무職務를 버리는 것은 불충不忠이니, 임금의 마음이 냉담冷淡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불효不孝불충不忠을 취해서는 안 되니 태자太子께서는 이번 전쟁에서 죽으십시오.注+박정薄情함이다.[부주]朱: 비록 임금의 마음이 차갑고 박정함을 알았다 하더라도 나라를 떠나는 것은 불효不孝불충不忠오명惡名을 취하는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태자太子전쟁戰爭하려 하자 호돌狐突하기를 “안 됩니다.
옛날 신백辛伯주환공周桓公에게 고하기를注+함이다. 이 일은 환공桓公 18년 에 보인다. 내총內寵권위權威왕후王后와 대등하고 외총外寵권세權勢정경正卿과 같고, 폐자嬖子의 위치가 적자嫡子와 비슷하고 대도大都국도國都과 같은 것은 화란禍亂의 근본이다.’고 하였으나, 주공周公이 이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화란禍亂에 미쳤습니다.
지금 나라에는 환란患亂근본根本형성形成되었으니注+여희驪姬내총內寵이고, 이오二五외총外寵이고, 해제奚齊폐자嬖子이고, 곡옥曲沃대도大都이다. 그러므로 화란禍亂의 근본이 형성形成되었다고 한 것이다.태자太子께서 임금이 되는 것을 어찌 기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태자太子께서는 몸을 위태롭게 하여 罪를 부르기보다 차라리 孝道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를 생각하소서.注+몸을 보존하는 것이 효도孝道이고, 전쟁하지 않는 것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注+전쟁戰爭에 나가 을 세우면 더욱 을 당할 것이므로 “몸을 위태롭게 하여 를 부르는 것이 ‘효이안민孝而安民’하는 것과 비교해 어느 편이 나으냐.”고 한 것이다.
성풍成風성계成季출생出生할 때 점친 점괘占卦의 풀이를 듣고는 성계成季교분交分을 맺고서注+성풍成風장공莊公으로 희공僖公의 어머니이다. (주)는 점괘占卦에 나타난 징조徵兆를 풀이한 말이다.희공僖公을 그에게 부탁하였다.
그러므로 성계成季희공僖公을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희공僖公원년元年제환공齊桓公형국邢國이의夷儀로 옮기고, 희공僖公 2년에 위국衛國초구楚丘에 봉하였는데, 형인邢人들은 자기들의 본국으로 돌아가듯이 기뻐하였고, 위인衛人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멸망된 것을 잊었다.注+나라가 멸망滅亡고통苦痛을 잊었다는 말이다.
위문공衛文公이 거친 베옷에 거친 명주로 지은 모자를 쓰고서注+대포大布는 거친 베이고, 대백大帛은 두꺼운 명주이니, 제후諸侯상중喪中에 입는 옷을 착용着用한 것인 듯하다. 힘써 목재木材축적蓄積하고 농사農事를 가르치며,注+[부주]朱: 목재木材축적蓄積하고 농사農事를 가르친 것이다. 물자를 유통流通시키고 공인工人우대優待하며,注+공인工人에게 더욱 혜택惠澤을 입혀 기용器用을 편리하게 만들도록 (勸獎)한 것이다. 교육敎育을 중시하고 학문學問을 권장하며,注+[부주]朱: 오교五敎(五倫)를 중시하고 백성들에게 학문學問을 하도록 권장한 것이다. 관리官吏도리道理를 가르쳐 능력 있는 자를 임용任用하니,注+은 모든 일에 알맞은 도리이다. 희공僖公 원년에 30이던 병거兵車계년季年에는 3백 이 되었다.注+위문공衛文公이 이해 겨울에 즉위하였고, 제환공齊桓公이 이해에 비로소 나라의 난리를 평정하였으므로 제환공齊桓公패자覇者가 된 까닭과 나라가 부흥復興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혁거革車병거兵車이다. 계년季年노희공魯僖公 25년이다. 위문공衛文公이산離散한 백성들을 불러 모아 회유懷柔하였기 때문에 백성을 10 배로 늘릴 수 있었다.


역주
역주1 吉禘 : 喪禮는 凶禮이지만 祭禮는 吉禮이므로 吉締라 한 것이다.
역주2 : 親盡한 祖上의 神主를 宗廟에서 옮겨다 모셔 두는 사당이다. 親盡은 祭祀를 받드는 代數가 끝난 것이다. 天子는 7대, 諸侯는 5대, 士庶는 4대까지만 제사를 받들고, 그 이상의 祖上은 王公의 경우는 祧廟로 옮기고, 士庶의 경우는 땅에 埋安한다.
역주3 昭穆 : 宗廟에 神主를 모시는 차례이다. 天子의 경우, 中央에 太祖의 神主를 모시고, 昭(왼쪽)에 2世‧4世‧6世의 神主를, 穆(오른쪽)에 3세‧5세‧7세의 神主를 모신다.
역주4 不稱使也 : 齊侯가 高子에게 魯나라의 患亂을 평정하라고 命할 때는 僖公이 즉위하기 전이었다. 그런데 高子가 魯나라에 와서 보니, 僖公이 새로 즉위하였으므로 드디어 魯나라와 結盟하고서 僖公의 즉위를 認准하였다. 그러나 결맹한 것이 齊侯의 命이 아니기 때문에 ‘使’라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역주5 例在襄公十三年 : 襄公 13년 傳에 “戰爭에 승리하고도 그 땅을 소유하지 않는 것을 ‘入’이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6 : 대본에는 ‘之’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入’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 대본에는 ‘入’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역주8 夏에……速也 : 25개월 만에 三年喪을 마치고 새로 죽은 임금의 神主를 宗廟로 옮겨 모시고서 吉禘를 지내는 것이 禮이다. 莊公이 32년 8월에 薨하였으니, 閔公 2년 8월에 吉禘를 지내야 하는데, 5월에 지냈기 때문에 빨랐다고 한 것이다.
역주9 不書殺 又不書卒 : 莊公 32년에 叔牙는 “慶父가 임금 재목이다.”고 말하여 慶父를 도우려는 마음은 있었으나, 죄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季友는 그의 죄를 숨기기 위해 그의 죽음을 ‘卒’이라고 기록하여 마치 自然死한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慶父는 두 임금을 弑害하여 그 죄가 이미 드러났으니, 誅殺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殺’이라고 기록해야 하는데, 季友는 親親의 은혜를 미루어 叔牙와 동일하게 처리하여 孟氏의 宗族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 죄를 생략하고 또 殺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慶父를 완전히 叔牙와 똑 같이 처리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卒’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正義》
역주10 周社亳社 : 周社는 魯社이고 亳社는 殷社이다. 옛날에 천자는 五方에 각각 五色土를 쌓아 社(后土를 제사하는 곳)를 세웠는데, 예를 들면 東은 靑色土, 서는 백색토, 남은 적색토, 북은 흑색토, 중앙은 황색토이다. 그리고 諸侯를 封할 경우에는 그 諸侯國이 위치한 方位에 따라 社에 있는 흙을 白茅에 싸서 주어 그 나라의 社를 세우게 하였다. 魯는 周나라의 제후이기 때문에 魯나라의 社를 ‘周社’라 한 것이다. 亳社는 宗廟 앞이 세운 이미 亡한 殷나라의 社이다. 殷나라가 亳에 都邑했었기 때문이 亳社라 한 것이다. 亡한 나라의 社는 하늘과 통하지 못하도록 지붕을 씌우는데, 이는 임금이 보고서 경계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다.
역주11 : 한 쪽이 트인 고리 모양의 佩玉이다.
역주12 取其文章順序 : 日本人竹添光鴻의 〈左氏會箋〉에 “刺繡는 무늬를 밖에서 넣는 것이니, 남의 말을 받아들이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13 防禦할 수 없다 : 杜氏는 ‘待’를 기다림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禦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待’에는 禦의 訓이 있다. 《國語》 〈魯語〉 五卷襄公如楚章에 “帥大讎以憚小國其誰云待之”의 ‘待’와, 《國語》 〈楚語〉 十八卷鬪且廷見子常章에 “子常爲政……其獨何力以待之”의 ‘待’를 韋昭의 註에 모두 ‘禦’와 같다고 하였다.
역주14 載馳 : 현재의 《詩經》에는 鄘風에 실려 있다.
역주15 車甲之賦異於常 : 賦는 兵役을 담당하는 것이다. 정상의 제도는 兵車 1乘에 甲士 3인씩을 배정해 병역을 담당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은 兵車 1乘에 甲士 10人씩을 배정하였기 때문에 정상의 제도와 다르다고 한 것이다.
역주16 制命 :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임의로 軍令을 내리고 生殺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역주17 賞以春夏 : 襄公 26년 傳에 “賞以春夏刑以秋冬”이란 말이 보인다.
역주18 : 대본에는 ‘中’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士’로 바로잡았다.
역주19 : 대본에는 ‘士’로 되어 있으나 《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中’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0 : 出兵할 때 社(土地神)에 지내는 제사를 ‘宜’라 하고, 제사를 마치고서 제사에 올렸던 고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受脤’이라 한다. ‘脤’이 《說文》에는 ‘祳’으로 되어 있는데, 社肉을 蜃(조개 껍질)에 담기 때문에 ‘祳’이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21 韋弁服 : 옅은 赤色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모자와 의복으로 天子와 諸侯‧卿大夫의 戰服이다.
역주22 : 《爾雅釋詁》에 ‘阻難也’라고 하였으니, ‘狂夫阻之’는 狂夫도 입기를 싫어한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3 狐突欲行 : 梁餘子養은 偏衣를 논하면서 “도망가는 것이 낫다.”고 하고, 罕夷는 偏衣와 金玦을 논하면서 “비록 돌아온다 하더라도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先丹木은 “內部의 讒言이 있을 것이니, 나라를 떠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므로 狐突이 太子를 모시고 떠나고자 한 것이다.
역주24 그러니……하였다. : 이 곳의 ‘與其危身以速罪’도 閔公元年의 士蔿의 말에 ‘與其及也’와 마찬가지로 倒置句라는 楊伯峻의 說에 따라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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