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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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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七年春 衛北宮括帥師侵鄭注+括 成公하다
[經]夏 公會尹子單子晉侯齊侯宋公衛侯曹伯邾人伐鄭注+晉未能服鄭 故假天子威 周使二卿會之 晉爲兵主 而猶先尹單 尊王命也 單伯稱子 蓋降爵하다
[經]六月乙酉 同盟于柯陵注+柯陵 鄭西地 [附注] 林曰 言同盟 尹單與盟之辭也 하다
[經]秋 公至自會注+無傳 하다
[經]齊高無咎出奔莒하다
[經]九月辛丑 用郊注+無傳 九月郊祭 非禮明矣 書用郊 從史文하다
[經]晉侯使荀罃來乞師注+無傳 將伐鄭 하다
[經]冬 公會單子晉侯宋公衛侯曹伯齊人邾人伐鄭注+鄭猶未服故 하다
[經]十有一月 公至自伐鄭注+無傳하다
[經]壬申 公孫嬰齊卒于貍脤注+十一月無壬申 日誤也 貍脤 闕 하다
[經]十有二月丁巳朔 日有食之注+無傳 하다
[經]邾子貜且卒注+無傳 同盟
[經]晉殺其大夫郤錡郤犫郤至하다
[經]楚人滅舒庸
[傳]十七年春王正月 鄭子駟侵晉虛滑注+虛滑 晉二邑 滑 故滑國 爲秦所滅 時屬晉 後屬周하니 衛北宮括救晉侵鄭하야 至于高氏注+不書救 以侵告 高氏 在陽翟縣西南 하다
[傳]夏五月 鄭大子髡頑侯獳爲質於楚注+侯獳 鄭大夫 [附注] 林曰 鄭懼晉 故使二子爲質於楚 하니 楚公子成公子寅戍鄭하다
[傳]公會尹武公單襄公及諸侯伐鄭하야 自戲童至于曲洧注+今新汲縣治曲洧 城臨洧水 하다
[傳]晉范文子反自鄢陵注+前年鄢陵戰還 하야 使其祝宗祈死注+祝宗 主祭祀祈禱者 [附注] 林曰 祝 大祝 宗 宗人 曰 君驕侈而克敵하니 是天益其疾也
難將作矣注+[附注] 林曰 是天益晉侯驕侈之疾也 리니 愛我者惟하야 使我速死하야 無及於難이면 范氏之福也
六月戊辰 士燮卒注+傳言厲公無道 故賢臣憂懼 因禱自裁 [附注] 朱曰 劉炫曰 何休曰 未聞死可祈也 此二說有理 하다
[傳]乙酉 同盟于柯陵하니 尋戚之盟也注+戚盟在十五年
[傳]楚子重救鄭하야 師于首止하니 諸侯還注+畏楚强하다
[傳]齊慶克通于聲孟子하고 與婦人蒙衣乘輦而入于閎注+慶克 慶封父 蒙衣 亦爲婦人服 與婦人相冒 閎 巷門 하니 鮑牽見之하고 以告國武子注+鮑牽 鮑叔牙曾孫 하다
武子召慶克而謂之하니 慶克久不出注+慙臥於家 夫人所以怪之 하고 而告夫人曰 國子謫我注+謫 譴責也 라하니 夫人怒하다
國子相靈公以會注+會伐鄭 하고 高鮑處守注+高無咎鮑牽 러니
還將至 閉門而索客注+蒐索備奸人 한대 孟子訴之曰 高鮑將不納君하고 而立公子角하니 國子知之注+角 頃公子
秋七月壬寅 刖鮑牽而逐高無咎하다
無咎奔莒하니 高弱以盧叛注+弱 無咎子 盧 高氏邑 하다
齊人來召鮑國而立之注+國 牽之弟文子 하다
鮑國去鮑氏而來注+[附注] 林曰 先時鮑國去齊鮑氏而來魯 하야 爲施孝叔臣하다
施氏卜宰하니 匡句須吉注+卜立家宰 [附注] 林曰 匡句須 亦施氏家臣 하다
施氏之宰 有百室之邑注+[附注] 林曰 施氏有百室之邑 以爲其家宰祿邑 이라 與匡句須邑하야 使爲宰하니 以讓鮑國而致邑焉하다
施孝叔曰 子實吉이라 對曰 能與忠良이면 吉孰大焉이릿가
鮑國相施氏忠이라
故齊人取以爲鮑氏後하다
仲尼曰 之知不如葵로다
猶能衛其足注+葵傾葉向日 以蔽其根 言鮑牽居亂 不能危行言孫 이라하다
[傳]冬 諸侯伐鄭注+前夏未得志故하다
十月庚午 圍鄭하니 楚公子申救鄭하야 師于汝上注+[附注] 林曰 楚屯師于汝水之上 하다
十一月 諸侯還注+不書圍 畏楚救 하다
[傳]初 聲伯夢涉洹注+洹水出汲郡林慮縣 東北至魏郡長樂縣入淸水 或與己瓊瑰어늘 食之注+瓊 玉 瑰 珠也 食珠玉 含象 하고 泣而爲瓊瑰하야 盈其懷注+淚下化爲珠玉 滿其懷 하다
曰 濟洹之水 贈我以瓊瑰로다
歸乎歸乎ᄂ저
瓊瑰盈吾懷乎注+從 就也 夢中爲此歌 [附注] 林曰 再言歸乎 必死之兆ᄂ저
懼不敢占也注+[附注] 林曰 聲伯夢覺而恐懼 不敢占此夢 러니
還自鄭 壬申 至于貍脤而占之曰 余恐死 故不敢占也러니
言之之莫而卒注+繁 猶多也 傳戒數占夢 [附注] 朱曰 今衆人繁多 又從我已三年 我之凶夢 散在衆人 不在己 故今占之 無害也 하다
[傳]齊侯使崔杼爲大夫하고 使慶克佐之하야 帥師圍盧注+討高弱하다
國佐從諸侯圍鄭이러니 注+請於諸侯하야 遂如盧師하야 殺慶克하고 以穀叛注+疾克淫亂 故殺之 이어늘
齊侯與之盟于徐關而復之注+[附注] 林曰 復其位 하다
十二月 盧降하니 使國勝告難于晉하고 待命于淸注+勝 國佐子 使以高氏難告晉 齊欲討國佐 故留其子於外 淸 陽平樂縣是 爲明年殺國佐傳하다
[傳]晉厲公侈하야 多外嬖注+外嬖 愛幸大夫하다
反自鄢陵하야 欲盡去群大夫而立其左右注+ [附注] 林曰 立其嬖幸左右之人 하다
胥童以胥克之廢也 怨郤氏注+童 胥克之子 宣八年郤缺廢胥克 러니 而嬖於厲公하고
郤錡奪夷陽五田注+[附注] 林曰 郤錡以事奪夷陽五之田 이러니 五亦嬖於厲公하고 郤犫與長魚矯爭田하야 執而梏之注+梏 械也 [附注] 林曰 足械曰梏 郤犫執長魚矯而梏其足 하야 與其父母妻子同一轅注+繫之車轅 이러니 矯亦嬖於厲公注+[附注] 林曰 旣 卒事也 하다
欒書怨郤至하야 以其不從己而敗楚師也 欲廢之注+鄢陵戰 欒書欲固壘 郤至言楚有六間以取勝也 하야 使楚公子茷告公曰 此戰也 郤至實召寡君注+鄢陵戰 晉囚公子茷以歸 [附注] 林曰 郤至嘗使楚 故言郤至實召楚君 이니이다
以東師之未至也注+齊魯衛之師 與軍帥之不具也 曰 此必敗注+荀罃佐下軍居守 郤犫將新軍乞師 故言不具 [附注] 林曰 郤至且曰 此役晉必敗 吾因奉孫周以事君注+孫周 晉襄公曾孫悼公 君 楚王也 이라하니이다
公告欒書한대 書曰 其有焉注+[附注] 林曰 其有此事 이니이다
不然이면 豈其死之不恤而受敵使乎注+謂鄢陵戰時 楚子問郤至以弓 잇가
君盍嘗使諸周而察之注+嘗 試也 [附注] 林曰 니잇가
郤至聘于周하니 欒書使孫周見之하다
公使覘之하고注+覘 伺也 [附注] 林曰 果見有郤至孫周交通之跡 하야 遂怨郤至하다
厲公田할새 與婦人先殺而飮酒하고 後使大夫殺注+傳言厲公無道 先婦人而後卿佐 [附注] 林曰 田獵之禮 尊者先殺하다
郤至奉豕注+進之於公 寺人孟張奪之注+寺人 奄士 어늘 郤至射而殺之하니 公曰 季子欺余注+季子 郤至 公反以爲郤至奪孟張豕 로다
厲公將作難 胥童曰 必先三郤注+[附注] 林曰 厲公將作禍難 去諸大夫하소서
族大多怨하니 去大族이면 注+不偪公室 하고 敵多怨이면 有庸注+討多怨者 易有功 이리다 公曰 然하다
郤氏聞之하고 郤錡欲攻公曰 雖死 君必危注+[附注] 林曰 言雖無功而死 厲公必亦危亡 리라 郤至曰 人所以立 信知勇也注+[附注] 朱曰 言人之所以自立者 以有三者之德
信不叛君하고 知不害民하며 勇不作亂이니 失玆三者 其誰與我리오
死而多怨이면 將安用之注+言俱死 無用多其怨咎 리오
君實有臣而殺之라하야 其謂君何注+[附注] 朱曰 其何以責君乎
我之有罪ᄂ댄 吾死後矣注+[附注] 林曰 吾之死已晩矣 若殺不辜 將失其民이리니 欲安得乎注+言不得安君位
待命而已
受君之祿하야 是以聚黨注+[附注] 朱曰 爲人臣者 受其君之俸祿 故有餘財以養其私黨 이어늘 有黨而爭命注+爭死命 이면 罪孰大焉注+傳言郤至無叛心 이리오
壬午 胥童夷羊五帥甲八百하고 將攻郤氏注+八百人 한대 長魚矯請無用衆하니 公使淸沸魋助之注+沸魋 亦嬖人 하다
注+衽 裳際 하야 而僞訟者注+僞與淸沸魋訟 [附注] 林曰 僞若二人相訟曲直於郤氏者 하다
注+榭 講武堂 러니 矯以戈殺駒伯苦成叔於其位注+位 所坐處也 駒伯 郤錡 苦成叔 郤犫 하다
溫季曰 라하고 遂趨注+郤至本意欲稟君命而死 今矯等不以君命而來 故欲逃凶賊爲害 故曰威 言可畏也 或曰威當爲藏 어늘 矯及諸其車하야 以戈殺之하야 皆尸諸朝注+陳其尸於朝 하다
矯曰 不殺二子 憂必及君注+[附注] 林曰 言二子必爲公害 이리다 公曰 一朝而尸三卿하니 余不忍益也注+[附注] 林曰 對曰 人將忍君注+人謂書與偃 이리이다
臣聞亂在外爲姦注+[附注] 林曰 이오 在內爲軌注+[附注] 林曰 御姦以德注+德 綏遠 하고 御軌以刑注+刑 治近 이라
不施而殺하니 不可謂德注+[附注] 林曰 不施德於三郤而遽殺之 이고 이니이다
德刑不立하니 姦軌竝至리이다
臣請行하노이다하고 遂出하야 奔狄注+行 去也 하다
公使辭於二子注+辭謝書與偃 曰 寡人有討於郤氏하야 郤氏旣伏其辜矣
大夫無辱하라
其復職位注+胥童劫而執之 故云辱 하리라 皆再拜稽首曰 君討有罪하되 而免臣於死하니 君之惠也니이다
二臣雖死 敢忘君德이릿가 乃皆歸注+[附注] 林曰 하다
公使胥童爲卿하다
公遊于匠麗氏注+匠麗 嬖大夫家 하니 欒書中行偃遂執公焉하야 召士匄한대 士匄辭注+辭不往 하다
召韓厥하니 韓厥辭 曰 昔吾畜於趙氏로되 孟姬之讒 吾能違兵注+畜 養也 違 去也 韓厥少爲趙盾所待養 及孟姬之亂 晉將討趙氏 而厥去其兵 示不與黨 言此者 明己無所偏助 孟姬亂在八年 이라
古人有言曰 殺老牛 莫之敢尸라하니 而況君乎
[傳]舒庸人以楚師之敗也注+敗於鄢陵 舒庸 東夷國 道吳人圍巢하야 伐駕하고 圍釐虺注+巢駕釐虺 楚四邑 하고 遂恃吳而不設備어늘 楚公子槖師襲舒庸하야 滅之하다
[傳]閏月乙卯晦 欒書中行偃殺胥童注+以其劫己故 하다
民不與郤氏하고 胥童道君爲亂이라
故皆書曰晉殺其大夫注+厲公以私欲殺三郤 而三郤死不以無罪書 書偃以家怨害胥童 而胥童受國討文 明郤氏失民 胥童道亂 宜其爲國戮 라하다


17년 봄에 나라 북궁괄北宮括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위성공衛成公증손曾孫이다.
여름에 성공成公윤자尹子단자單子진후晉侯제후齊侯송공宋公위후衛侯조백曹伯주인邾人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나라가 나라를 복종服從시킬 수 없기 때문에 천자天子위엄威嚴을 빌리고자 하였으므로 주왕周王이 두 을 보내어 회합會合하게 한 것이다. 나라가 제후군諸侯軍주장主將[兵主]이었는데도 윤자尹子단자單子를 먼저 기록한 것은 왕명王命존중尊重한 것이다. 선백單伯을 ‘’로 한 것은 작위爵位강등降等했기 때문인 듯하다.
6월 을유일乙酉日가릉柯陵에서 동맹同盟하였다.注+가릉柯陵나라 서부西部의 땅이다. [부주]林: 동맹同盟했다고 한 것은 윤자尹子단자單子맹약盟約참여參與했다는 말이다.
가을에 성공成公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나라 고무구高無咎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9월 신축일辛丑日교제郊祭거행擧行하였다.注+이 없다. 9월에 교제郊祭를 지낸 것은 비례非禮분명分明한데도 ‘용교用郊’를 기록한 것은 사관史官의 글을 따른 것이다.
진후晉侯순앵荀罃나라에 보내 와서 원병援兵요청要請하였다.注+이 없다. 나라를 토벌討伐하고자 한 것이다.
겨울에 성공成公단자單子진후晉侯송공宋公위후衛侯조백曹伯제인齊人주인邾人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나라가 여전히 복종服從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월에 성공成公나라 토벌討伐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임신일壬申日공손公孫영제嬰齊이신貍脤에서 하였다.注+11월에 임신일壬申日이 없으니, 날짜가 틀렸다. 이신貍脤분명分明히 알 수 없으므로 소재지所在地를 기록하지 않았다.
12월 초하루 정사일丁巳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주자邾子확차貜且하였다.注+이 없다. 나라와 다섯 번 동맹同盟하였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극기郤錡, 극주郤犫, 극지郤至를 죽였다.
초인楚人서용舒庸격멸擊滅하였다.
17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나라 자사子駟나라의 허읍虛邑활읍滑邑침공侵攻하니,注+나라의 두 이다. 은 옛날의 활국滑國으로 나라에게 멸망滅亡되었다. 이때는 나라에 하였으나, 뒤에 나라에 하였다. 나라 북궁괄北宮括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나라를 침공侵攻하여 고씨高氏까지 쳐들어갔다.注+에 ‘’로 기록記錄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 ‘’으로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이다. 고씨高氏양적현陽翟縣 서남쪽에 있다.
여름 5월에 나라가 태자太子곤완髡頑대부大夫후누侯獳나라에 인질人質로 보내니,注+후누侯獳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나라가 나라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나라에 인질人質로 보낸 것이다.나라 공자公子공자公子이 와서 나라를 수위戍衛하였다.
성공成公윤무공尹武公, 선양공單襄公제후諸侯회합會合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희동戲童에서 곡유曲洧까지 쳐들어갔다.注+곡유曲洧는 지금의 신급현新汲縣현청縣廳이 있는 곡유曲洧인데, 유수洧水 가에 있다.
나라 범문자范文子언릉鄢陵에서 돌아와,注+전년前年언릉鄢陵전쟁戰爭에서 돌아왔을 때이다.종축宗祝에게 자신이 죽도록 기도祈禱하게 하며注+종축宗祝제사祭祀에서 기도祈禱주관主管하는 자이다. [부주]林: 대축大祝이고, 종인宗人이다. 말하기를, “우리 임금은 교만해 스스로 잘난 체[驕侈]하는데 적국敵國승리勝利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임금의 질병疾病(罪過를 이름)을 가중加重시킨 것이다.
장차 화난禍難이 일어날 것이니,注+[부주]林: 이는 하늘이 진후晉侯교치驕侈증가增加시킨 것이라는 말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빨리 죽도록 저주詛呪[祝]해 에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범씨范氏이다.”고 하였다.
6월 무신일戊辰日사섭士燮하였다.注+전문傳文진려공晉厲公무도無道하기 때문에 현신賢臣우구憂懼하여 기도祈禱로 인해 자살自殺한 것을 말한 것이다. [부주]朱: 유현劉炫은 “사섭士燮의 죽음이 마침 이때에 발생發生한 것뿐이다.”고 하였고, 하휴何休는 “죽음이 기도祈禱로 될 수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니, 이 두 사람의 말이 사리事理에 맞는다.
을유일乙酉日가릉柯陵에서 동맹同盟하였으니, 이는 에서 맺은 맹약盟約중수重修하기 위함이었다.注+결맹結盟성공成公 15년에 있었다.
나라 자중子重나라를 구원救援하러 와서 수지首止주둔駐屯하니, 제후군諸侯軍환군還軍하였다.注+초군楚軍함을 두려워한 것이다.
나라 경극慶克성맹자聲孟子하고서, 하루는 여장女裝을 하고 어떤 부인婦人과 함께 수레를 타고 항문巷門으로 들어가니,注+경극慶克경봉慶封의 아비이다. 몽의蒙衣는 그 또한 부인婦人복장服裝을 하고 부인婦人과 함께 옷으로 머리를 덮은 것이다. 항문巷門이다. 포견鮑牽이 이를 보고 국무자國武子에게 하였다.注+포견鮑牽포숙아鮑叔牙증손曾孫이다.
국무자國武子경극慶克을 타이르니, 경극慶克은 오랫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서注+부끄러워 집안에만 누워 있었기 때문에 부인夫人괴이怪異하게 여긴 것이다. 사람을 보내 부인夫人에게 하기를, “국자國子가 나를 꾸짖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注+견책譴責이다. 고 하니, 부인夫人하였다.
국자國子제영공齊靈公이 되어 회합會合에 가고,注+나라 토벌討伐회합會合한 것이다. 고무구高無咎포견鮑牽은 남아서 나라를 지켰다.注+고포高鮑고무구高無咎포견鮑牽이다.
제영공齊靈公환국還國하여 거의 도성都城에 이르려 할 때 고무구高無咎포견鮑牽불의不意사태事態예비豫備하기 위해 성문城門을 닫고 여객旅客검색檢索하자,注+수색蒐索간인奸人방비防備한 것이다. 성맹자聲孟子가 사람을 보내어 영공靈公에게 참소讒訴하기를, “고무구高無咎포견鮑牽국군國君 안으로 들이지 않고 공자公子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는데, 국자國子도 그 음모陰謀를 알고 있다.”注+제경공齊頃公의 아들이다. 고 하였다.
가을 7월 임인일壬寅日영공靈公포견鮑牽에게 월형刖刑을 내리고 고무구高無咎축출逐出하였다.
무구無咎나라로 달아나니, 그 아들 고약高弱노읍盧邑의 백성을 거느리고 반란叛亂을 일으켰다.注+무구無咎의 아들이고, 고씨高氏이다.
제인齊人나라에 와서 포국鮑國을 불러가서 포씨鮑氏후계자後繼者로 세웠다.注+포국鮑國포견鮑牽의 아우 문자文子이다.
당초當初포국鮑國포씨鮑氏를 떠나 나라로 와서注+[부주]林: 이보다 앞서 포국鮑國나라의 포씨鮑氏를 떠나 나라로 왔다.시효숙施孝叔가신家臣이 되었다.
시씨施氏가재家宰(卿大夫家의 가사家事총관리總管理하는 가신家臣)로 누가 좋은지를 치니 광구수匡句須하였다.注+가재家宰로 세울 것을 친 것이다. [부주]林: 광구수匡句須시씨施氏가신家臣이다.
시씨施氏가재家宰백호百戶채읍采邑소유所有하도록 되어 있으므로注+[부주]林: 시씨施氏백호百戶소유所有하였는데, 그것을 가재家宰녹읍祿邑으로 삼은 것이다.채읍采邑광구수匡句須에게 주어 가재家宰가 되게 하니, 광구수匡句須가재家宰의 자리를 포국鮑國에게 사양하고 채읍采邑까지 포국鮑國에게 주었다.
그러자 시효숙施孝叔이 말하기를, “에 그대가 하였다.”고 하니, 광구수匡句須가 대답하기를, “충량忠良한 사람에게 양여讓與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포국鮑國시씨施氏보좌補佐함에 충심忠心을 다하였다.
그러므로 제인齊人이 데려다가 포씨鮑氏후계자後繼者로 삼은 것이다.
중니仲尼가 말하기를, “포장자鮑莊子지혜知慧규채葵菜만도 못하다.
규채葵菜는 오히려 그 뿌리[足]를 보호保護한다.”注+는 해를 향해 잎새를 기울여 그 뿌리에 햇볕이 들지 않게 가린다. 이는 포견鮑牽난세亂世에 살면서 행동行動준엄峻嚴하게 하고 말은 겸손謙遜하게 하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겨울에 제후諸侯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전년前年 여름에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월 경오일庚午日나라를 포위包圍하니, 나라 공자公子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출병出兵하여 여수汝水 가에 주둔駐屯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여수汝水 가에 군대를 주둔駐屯한 것이다.
11월에 제후諸侯환군還軍하였다.注+포위包圍했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의 구원군救援軍이 두려워 포위包圍하지 못하고 환군還軍하였기 때문이다.
당초當初성백聲伯이 잠을 자다가 원수洹水를 건너는데,注+원수洹水급군汲郡임려현林慮縣에서 발원發源하여 동북으로 흘러 위군魏郡장악현長樂縣에 이르러 청수淸水로 들어간다. 어떤 사람이 성백聲伯에게 주옥珠玉[瓊瑰]을 먹이거늘注+이고, 이다. 주옥珠玉을 먹인 것은 반함飯含상징象徵이다. 성백聲伯이 눈물을 흘리니 그 눈물이 주옥珠玉이 되어 품안에 가득히 쌓였다.注+눈물을 흘리니 그 눈물이 주옥珠玉이 되어 그 품안에 가득 쌓인 것이다.
성백聲伯은 따라가며 “원수洹水를 건너는데 어떤 이가 나에게 주옥珠玉을 주었네.
돌아갈 것이다. 돌아갈 것이다.
주옥珠玉이 내 품에 가득하니.”注+(즉시)이다. 꿈속에서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부주]林: ‘귀호歸乎’를 두 번 말한 것은 반드시 죽을 조짐이다.라고 노래하는 꿈을 꾸었다.
성백聲伯은 꿈에서 깬 뒤에 겁이 나서 감히 을 치지 못하였더니.注+[부주]林: 성백聲伯이 꿈에서 깬 뒤에 겁이 나서 감히 이 꿈의 길흉吉凶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 나라 토벌討伐에서 돌아올 때 임신일壬申日이신貍脤에 이르러 을 치게 하며 말하기를, “나는 죽을 것이 두려워 감히 을 묻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무리가 나를 따른 지가 3년이나 되었으니, 가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한 날 저녁[莫]에 죽었다.注+와 같다. 전문傳文은 꿈을 자주 치는 것을 경계警戒한 것이다. [부주]朱: 지금 무리가 많고 또 나를 따른 지가 이미 3년이 되었으니, 내 흉몽凶夢흉조凶兆중인衆人에게 분산分散되어 가고 나에게 있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을 쳐도 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제후齊侯최저崔杼대부大夫로 삼고, 경극慶克에게 그를 도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노읍盧邑포위包圍하게 하였다.注+고약高弱토벌討伐한 것이다.
국좌國佐는 이때 제후諸侯를 따라 나라를 포위包圍하고 있었는데, 국내國內화난禍難발생發生한 것을 이유로 돌아가기를 귀국歸國하여,注+제후諸侯에게 한 것이다. 드디어 노읍盧邑포위包圍하고 있는 군중軍中으로 가서 경극慶克을 죽이고, 곡읍穀邑의 백성을 거느리고 반란叛亂을 일으켰다.注+경극慶克음란淫亂함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그러자 제후齊侯국좌國佐서관徐關에서 결맹結盟하고서 그를 원래의 관위官位회복回復시켰다.注+[부주]林: 원래 그의 관위官位회복回復시킨 것이다.
12월에 노읍盧邑항복降伏하니, 제후齊侯국승國勝나라로 보내어 화난禍難발생發生보고報告하고, 에서 명령命令을 기다리게 하였다.注+국좌國佐의 아들이다. 국승國勝에게 나라로 가서 고씨高氏가 일으킨 내난內難보고報告하게 한 것이다. 제후齊侯국좌國佐토벌討伐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 아들을 밖에 머물게 한 것이다. 은 지금의 양평陽平악현樂縣이다. 명년明年국좌國佐를 죽인 의 배경이다.
진려공晉厲公사치奢侈가 심하여 총애寵愛하는 대부大夫[外嬖]가 많았다.注+외폐外嬖는 사랑하는 대부大夫이다.
언릉鄢陵에서 돌아와서는 모든 대부大夫를 다 제거除去하고 자기의 좌우左右대부大夫로 세우고자 하였다.注+끝내 사섭士燮의 말과 같이 되었다. [부주]林: 자기가 사랑하는 좌우左右의 사람들을 대부大夫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서동胥童은 그 아비 서극胥克폐출廢黜된 일로 극씨郤氏에게 원한怨恨을 품었는데,注+서동胥童서극胥克의 아들이다. 선공宣公 8년에 극결郤缺서극胥克폐출廢黜하였다. 그 또한 여공厲公에게 총애寵愛를 받았다.
극기郤錡이양오夷陽五전지田地탈취奪取한 일이 있었는데,注+[부주]林: 극기郤錡가 어떤 일을 빌미로 이양오夷陽五전지田地를 빼앗은 것이다.이양오夷陽五 역시 여공厲公에게 총애寵愛를 받았고, 극주郤犫장어교長魚矯전지田地를 다투어 장어교長魚矯를 잡아다가 족쇄足鎖[梏]를 채워注+형구刑具[械]이다. [부주]林: 족쇄足鎖[足械]를 ‘’이라 한다. 극주郤犫장어교長魚矯를 잡아다가 그 발에 족쇄足鎖를 채운 것이다. 부모父母처자妻子와 함께 한 거원車轅(수레의 끌채)에 매단 일이 있었는데,注+거원車轅에 매단 것이다. 뒤에 장어교長魚矯 또한 여공厲公에게 총애寵愛를 받았다.注+[부주]林: 는 일이 끝난 뒤이다.
난서欒書극지郤至가 자기의 의견意見을 따르지 않아 초군楚軍패전敗戰한 것을 원망怨望하여 극지郤至폐출廢黜하고자 하여,注+언릉鄢陵전쟁戰爭난서欒書영루營壘견고堅固히 하고서 기다리고자 하였으나, 극지郤至초군楚軍에 여섯 가지 결점缺點이 있으므로 진군晉軍승리勝利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나라 공자公子를 시켜 진려공晉厲公에게 “이번 전쟁戰爭극지郤至가 실로 우리 초군楚君을 불러들인 것입니다.注+언릉鄢陵전쟁戰爭진군晉軍나라 공자公子생포生捕해 돌아갔다. [부주]林: 극지郤至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간 적이 있기 때문에 극지郤至가 실로 초군楚君을 불러들인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극지郤至동방東方제후諸侯의 군대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과,注+동사東師나라, 나라, 나라의 군대이다. 진군晉軍각부대各部隊장수將帥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인해, 우리 초군楚君께 ‘이번 전쟁戰爭진군晉軍이 반드시 패배敗北할 것이니,注+순앵荀罃하군下軍유수留守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 오지 않았고, 극주郤犫신군新軍으로 원군援軍하기 위해 외국外國에 갔기 때문에 장수將帥가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부주]林: 극지郤至가 또 ‘이번 전쟁戰爭진군晉軍이 반드시 패전敗戰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손주孫周를 받들어 임금으로 세우고서 군왕君王(楚王을 이름)을 섬기겠습니다.’注+손주孫周진양공晉襄公증손曾孫도공悼公이다. 초왕楚王이다.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하게 하였다.
여공厲公이 이 말을 난서欒書에게 하니, 난서欒書가 말하기를, “아마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注+[부주]林: 아마도 이런 일이 있었던 듯하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찌 죽음을 돌아보지 않고 사자使者접견接見하였겠습니까?注+언릉鄢陵전쟁戰爭초자楚子극지郤至에게 활[弓]을 주며 위문慰問한 일을 이른다.
께서는 어찌 시험 삼아 그를 나라에 사자使者로 보내어 그의 동정動靜을 살피지 않으십니까?”注+이다. [부주]林: 이때 손주孫周나라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극지郤至나라에 빙문사聘問使로 가니, 난서欒書손주孫周에게 통지通知하여 극지郤至를 만나게 하였다.
여공厲公은 사람을 보내어 극지郤至동정動靜을 엿보게 하였는데, 극지郤至손주孫周을 만났다는 보고報告를 받고는 공자公子의 말을 사실로 믿고서,注+은 엿보는 것이다. [부주]林: 과연 극지郤至손주孫周교통交通흔적痕迹이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드디어 극지郤至에게 원한怨恨을 품었다.
진려공晉厲公이 사냥할 때 부인婦人과 함께 먼저 짐승을 잡아 술을 마신 뒤에 대부大夫들에게 짐승을 잡게 하였다.注+전문傳文여공厲公무도無道하여 부인婦人에게 먼저 활을 쏘게 하고, 경좌卿佐에게는 뒤에 쏘게 한 것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사냥할 때의 존자尊者가 먼저 활을 쏘아 짐승을 잡는다.
극지郤至가 멧돼지를 잡아 여공厲公에게 바치는데,注+멧돼지를 여공厲公에게 바친 것이다. 시인寺人맹장孟張이 그 돼지를 빼앗자,注+시인寺人환관宦官이다. 극지郤至맹장孟張사살射殺하니, 여공厲公은 “계자季子가 나를 속인다.”注+계자季子극지郤至이다. 여공厲公극지郤至맹장孟張의 멧돼지를 빼앗았다고 반대로 생각한 것이다. 고 하였다.
여공厲公변란變亂을 일으키려 하자, 서동胥童이 말하기를, “반드시 세 극씨郤氏부터 먼저 제거除去하소서.注+[부주]林: 여공厲公화난禍難을 일으켜 모든 대부大夫제거除去하려 한 것이다.
저들은 종족宗族강대强大하고 원수怨讐가 많으니, 강대强大종족宗族제거除去하면 공실公室핍박逼迫을 받지 않고,注+공실公室핍박逼迫하지 않는 것이다. 원수怨讐가 많은 자를 대적對敵하면 성공成功하기가 쉽습니다.”注+원수怨讐가 많은 자를 토벌討伐하면 성공成功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고 하니, 여공厲公이 “그렇다.”고 하였다.
극씨郤氏가 이 말을 듣고 극기郤錡여공厲公공격攻擊하고자 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비록 죽더라도 임금도 반드시 위망危亡(事態가 위급危急하여 거의 멸망滅亡의 지경에 이름)에 빠질 것이다.”注+[부주]林: 우리가 비록 성공成功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여공厲公 역시 반드시 위망危亡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니, 극지郤至가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立身] 중요한 방법은 신의信義지혜知慧용기勇氣입니다.注+[부주]朱: 사람이 자립自立하는 것은 세 가지의 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신의信義는 임금을 배반背叛하지 않는 것이고, 지혜知慧는 백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고, 용기勇氣반란叛亂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 이 세 가지를 잃는다면 그 누가 우리를 돕겠습니까?
죽음을 당하고 남의 원한怨恨증가增加시키는 짓이니, 과연果然[將]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注+모두 죽게 될 것이니, 원구怨咎(怨恨으로 인해 오는 재앙災殃)를 증가增加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임금은 실로 신하臣下소유所有하는데, 그 소유所有한 신하를 죽인다 해서 그 누가 임금에게 무어라고 하겠습니까?注+[부주]朱: 무슨 이유로 임금을 꾸짖겠느냐는 말이다.
우리에게 가 있다면 우리의 죽음이 이미 늦었고,注+[부주]林: 우리의 죽음이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가 없는데 우리를 죽인다면 임금은 장차 민심民心을 잃을 것이니, 안정安定을 찾고자 한들 되겠습니까?注+임금의 지위地位안정安定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임금의 을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는 임금의 작록爵祿을 받아 가병家兵[黨]을 모을 수 있었는데,注+[부주]朱: 신하臣下된 자가 그 임금이 주는 봉록俸祿을 받았기 때문에 넉넉한 재산財産으로 그 사당私黨을 길렀다는 말이다. 가병家兵이 있다하여 군명君命항쟁抗爭한다면注+죽이고자 하는 군명君命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쟁抗爭하는 것이다. 이보다 큰 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注+전문傳文극지郤至배반背反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임오일壬午日서동胥童이양오夷羊五갑사甲士 8백을 거느리고 가서 극씨郤氏공격攻擊하려 하자,注+8백 인이다.장어교長魚矯가 군대를 사용使用하지 말기를 요청要請하니, 여공厲公청비퇴淸沸魋에게 장어교長魚矯를 돕게 하였다.注+비퇴沸魋폐인嬖人(卑賤한 신분身分으로 임금의 총애寵愛를 받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창날을 뽑아 옷자락에 묶어注+은 치마의 솔기이다. 쟁송爭訟하는 것처럼 위장僞裝하고서 극씨郤氏에게 갔다.注+장어교長魚矯청비퇴淸沸魋쟁송爭訟하는 것처럼 위장僞裝한 것이다. [부주]林: 두 사람이 극씨郤氏에게 곡직曲直을 가려달라고 서로 송사訟事하는 것처럼 위장僞裝한 것이다.
이때 세 극씨郤氏강무당講武堂[榭]에서 자구책自救策상의商議하려 하였는데,注+강무당講武堂(武藝를 익히는 집)이다. 장어교長魚矯가 갑자기 들어와 창으로 구백駒伯고성숙苦成叔을 그 자리에서 찔러 죽였다.注+는 앉은 자리이다. 구백駒伯극기郤錡이고, 고성숙苦成叔극주郤犫이다.
그러자 온계溫季는 “나는 없이 죽음을 당하느니 도망하겠다.”고 하고서 드디어 달아나자,注+극지郤至는 본래 임금께 가서 을 받고 죽으려고 생각하였으나, 지금 장어교長魚矯 등이 임금의 도 받지 않고 왔기 때문에 흉적凶賊살해殺害에서 도망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라 하였으니, 두렵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위자威字장자藏字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장어교長魚矯는 그의 수레에까지 따라가서 창으로 찔러 죽이고서, 세 사람의 시체屍體를 가져다가 조정朝廷에 벌여 놓았다.注+시체屍體조정朝廷에 벌여 놓은 것이다.
서동胥童갑사甲士를 거느리고 조정朝廷으로 가서 난서欒書중행언中行偃겁박劫迫하고 있었다.
장어교長魚矯가 말하기를, “이 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께 반드시 우환憂患이 미칠 것입니다.”注+[부주]林: 두 사람은 반드시 여공厲公에게 해악害惡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니, 여공厲公은 “하루아침에 세 을 죽였으니, 나는 차마 더 죽일 수 없다.”注+[부주]林: 나는 차마 또 , 을 더 죽일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자, 장어교長魚矯가 대답하기를, “저 사람들은 장차 께 차마 못할 짓을 할 것입니다.注+난서欒書중행언中行偃을 이른다.
이 듣건대 ‘외부外部에서 발생發生하는 이라 하고注+[부주]林: 외부外部에서 일으킨 을 ‘’이라 명칭名稱한다. 내부內部에서 발생發生하는 라 하는데,注+[부주]林: 내부內部에서 일으킨 을 ‘’라 명칭名稱한다. 덕행德行으로 막고注+은 먼 곳의 사람을 위무慰撫하여 안정安定시키는 것이다. 형벌刑罰로 막는다.’注+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외부外部에서 을 일으킨 자들에게 은혜恩惠를 베풀지 않고 죽였으니 덕행德行이라 할 수 없고,注+[부주]林: 삼극三郤에게 을 베풀지 않고 갑자기 죽인 것을 이른다. 신하臣下로서 임금을 핍박逼迫하는데도 토벌討伐하지 않으니 형벌刑罰이라 할 수 없습니다.
덕행德行형벌刑罰확립確立되지 않았으니, 간궤姦軌가 함께 이를 것입니다.
은 이 나라를 떠나기를 합니다.”고 하고서 드디어 적국狄國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여공厲公난서欒書중행언中行偃에게 사람을 보내어 사과謝過하기를,注+난서欒書중행언中行偃에게 사과謝過한 것이다. 과인寡人극씨郤氏토벌討伐하여 극씨郤氏는 이미 그 상응相應을 받고 죽었다.
대부大夫겁박劫迫당한 일을 치욕恥辱으로 여기지 말라.
나는 그대들을 원래原來직위職位회복恢復시키겠다.”注+서동胥童겁박劫迫해 잡았기 때문에 치욕恥辱이라 한 것이다. 고 하니, 두 사람 모두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께서 있는 자를 토벌討伐하면서도 등을 죽음에서 사면赦免하시니, 이는 은혜恩惠입니다.
저희 두 신하臣下는 비록 죽는다 한들 감히 은덕恩德을 잊겠습니까?”라고 하고서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注+[부주]林: 그들을 사가私家로 돌려보낸 것이다.
여공厲公서동胥童으로 삼았다.
여공厲公장려씨匠麗氏의 집으로 놀이를 나가자,注+장려匠麗총애寵愛하는 대부大夫의 집이다.난서欒書중행언中行偃이 드디어 여공厲公을 잡으려고 사개士匄를 부르니 사개士匄사절謝絶하였다.注+사절謝絶하고 가지 않은 것이다.
한궐韓厥을 부르니 한궐韓厥사절謝絶하며 말하기를, “과거에 나는 조씨趙氏양육養育을 받았으되, 맹희孟姬참소讒訴조씨趙氏공격攻擊을 받을 때도 나는 병기兵器를 들지 않았습니다.注+양육養育이고, 는 버림이다. 한궐韓厥이 어렸을 때 조돈趙盾대양待養(保護해 양육養育함)을 받았으되, 맹희孟姬참소讒訴나라가 조씨趙氏토벌討伐하려 할 때 한궐韓厥은 무기를 버리고서 조씨趙氏이 아님을 보였다. 한궐韓厥이 이 일을 말한 것은 자기는 어느 한쪽을 도운 바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맹희孟姬성공成公 8년에 보인다.
옛 사람의 말에 ‘늙은 소를 잡을 때 감히 그 일을 주관主管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임금이겠습니까?
두 분께서 임금을 잘 섬기지 못해서인데, 무엇 때문에 나를 이용利用하려 하십니까?”注+주관主管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서용인舒庸人초군楚軍패전敗戰기회期會이용利用注+초군楚軍언릉鄢陵에서 패전敗戰한 것이다. 서용舒庸동이국東夷國이다. 오인吳人인도引導소읍巢邑포위包圍하고, 가읍駕邑토벌討伐하고 이읍釐邑훼읍虺邑포위包圍하고는注+, , , 나라의 네 이다. 드디어 나라를 믿고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으니, 나라 공자公子탁사槖師서용舒庸습격襲擊멸망滅亡시켰다.
윤월閏月 그믐 을묘일乙卯日난서欒書중행언中行偃서동胥童을 죽였다.注+자기들을 겁박劫迫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극씨郤氏친애親愛하지 않았고, 서동胥童은 임금을 인도해 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에 모두 ‘진살기대부晉殺其大夫’로 기록한 것이다.注+여공厲公사욕私慾으로 삼극三郤을 죽였는데도 삼극三郤의 죽음을 무죄無罪로 기록하지 않은 것과 난서欒書중행언中行偃사원私怨으로 서동胥童살해殺害하였는데도 서동胥童국가國家토벌討伐한 것으로 기록한 것은, 극씨郤氏민심民心을 잃었고 서동胥童은 임금을 인도해 을 일으켰으니, 국가國家가 그들을 살육殺戮한 것으로 글을 만드는 것이 당연當然함을 밝힌 것이다.


역주
역주1 魯[曾] : 저본에는 ‘魯’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曾’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王[五]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五’로 바로잡았다.
역주3 : 祝은 詛呪이다. 《詩經》 〈大雅蕩篇〉의 ‘侯作侯祝’의 作祝을 朱註에 詛呪라고 하였다.
역주4 士燮之卒 適與此會耳 : 劉炫은 士燮이 마침 죽기를 빌 때에 맞춰 죽은 것이고, 自殺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疏〉
역주5 乃[及] : 저본에는 ‘乃’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鮑莊子 : 鮑莊子는 鮑牽이다. 〈楊注〉
역주7 : 葵는 해바라기(向日葵)가 아닌데, 해바라기로 解釋한 杜注는 正確하지 않다. 古人이 항상 葵를 食物로 使用한 것을 《詩經》 〈豳風七月篇〉에 ‘규채와 콩을 삶는다.[享葵及菽]’는 말과 《周禮》와 《儀禮》에 모두 ‘규채로 담근 김치(葵菹)’란 말이 있는 것으로 證明할 수 있다. 해바라기는 食用할 수 없으니, 이 葵는 紫花葵이거나 혹은 秋葵인 듯하다. 古代에는 葵를 菜蔬로 사용하여, 쇠기 전에 그 잎만을 따고 뿌리를 해치지 않아, 다시 연한 잎이 피어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古詩에 “규를 뜯되 뿌리를 해치지 말라.[採葵不傷根] 뿌리를 해치면 규가 나지 않는다.[傷根葵不生]”고 하였다. ‘不傷根’이라고 하여야 비로소 ‘衛其足’의 뜻에 符合한다. 〈楊注〉
역주8 不成圍而還 : ‘不成圍而還’이라고 한 杜氏의 말은 武斷(자기 마음대로 판단함)인 듯하다. 經文의 ‘十二月丁巳朔’으로 미루어보면 庚午日은 10월 14일이나 15일이고, 還軍이 11월에 있었으니, 그 사이에 包圍하지 못한 줄을 어찌 알겠는가. 經에 이미 ‘伐’이라고 기록하였으니, ‘圍’를 기록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左氏會箋》
역주9 從而歌之 : 從은 따라가는 것이다. 꿈속에서 珠玉을 준 사람은 바로 저승사자이니, 그 使者를 따라가는 것으로 解釋하는 것이 옳을 듯하므로 이상과 같이 飜譯하였다.
역주10 余恐死……無傷也 : 聲伯이 처음에는 凶夢으로 여겼으나, 지금은 따르는 무리가 이미 많고, 또 따른 지가 3년이나 되었으니, 珠玉이 품속에 가득한 것이 이 많은 무리를 象徵하는 것으로 여겨 吉夢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害가 없다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11 以難請而歸 : 齊나라의 國難을 理由로 諸侯에게 要請하여 歸國한 것이다. 〈楊注〉
역주12 終如士燮言 : 士燮의 말은 上文에 士燮(范文子)이 鄢陵에서 돌아와서 ‘임금이 교만해 잘난 체하는데 敵에게 勝利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임금의 疾(죄가)을 增加시킨 것이다. 장차 禍難이 일어날 것이다.’고 한 말을 이른다.
역주13 時孫周在周 : 晉獻公이 驪姬의 讒訴를 받아들여 群公子를 기르지 않겠다고 盟誓하였기 때문에 孫周가 周나라로 가서 單襄公을 섬겼다. 《左氏會箋》
역주14 不偪 : 公室이 逼迫을 받지 않는 것이다. 〈楊注〉
역주15 抽戈結衽 : ‘抽戈結衽’한 것은 서로 싸우고서 訟事하는 것처럼 僞裝한 것이나, 사실은 찌르기 편리하도록 준비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6 三郤將謀於榭 : 郤氏는 厲公이 자기들을 除去하기로 計劃했다는 말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榭에 모여 自救策을 商議[謀]하려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7 逃威也 : 〈楊注〉에 “威는 畏로 읽어야 하니, 畏는 罪 없이 殺害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禮記》 〈檀弓〉의 ‘死而不弔者三畏厭溺’ 注에 “畏는 他人이 나의 罪가 아닌 것을 가지고 나를 攻擊하는데도 解明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18 胥童以甲劫欒書中行偃於朝 : 長魚矯와 淸沸魋는 郤氏의 講武堂으로 가서 三郤을 죽이고, 胥童과 夷羊五는 朝廷으로 가서 欒書와 中行偃을 劫迫한 것이다.
역주19 我不忍又益以欒范之二卿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胥童이 劫迫한 상대가 欒書와 荀偃(中行偃)이었으니, 范은 荀의 誤字인 듯하다.
역주20 作亂在外 其名曰奸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21 作亂在內 其名曰軌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22 臣聞亂在外爲姦……不可謂刑 : 以上 몇 句의 말로 보면 亂在外爲姦의 外가 國外를 이른 것이 아니라 朝廷 밖을 이른 것이다. 그 뜻은 백성이 일으킨 亂을 姦이라 이르고 朝廷의 臣下가 일으킨 亂을 軌라고 이르는데, 姦은 德으로 應對하고, 軌는 刑으로 應對한다. 백성에게 먼저 恩惠와 가르침을 베풀지 않고 죽이는 것을 德이라 할 수 없고, 朝廷臣下가 임금을 逼迫하는데도 討伐하지 않는 것을 刑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3 歸其私家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24 二三子不能事君 焉用厥也 : 欒書와 中行偃이 胥童에게 威脅을 당한 것은 평소에 임금을 잘 섬기지 않았기 때문인데, 무엇 때문에 임금을 弑害하는 일에 나를 利用하려 하느냐는 말이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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