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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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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五年春王正月 邾子來朝하다
[經]鼷鼠食郊牛하야 牛死어늘 改卜牛注+無傳 不言所食處 擧死 重也 改卜 禮也하다
[經]二月辛丑 楚子滅胡하고 以胡子豹歸하다
[經]夏五月辛亥注+無傳 書過하다
[經]壬申 公薨于高寢注+高寢 宮名 不於路寢 失其所하다
[經]鄭罕達帥師伐宋하다
[經]齊侯衛侯次于渠蒢注+不果救 故書次하다
[經]邾子來注+無傳 諸侯奔喪 非禮 [附注] 林曰 諸侯來奔喪 於是始하다
[經]秋七月壬申 姒氏卒注+定公夫人하다
[經]八月庚辰朔 日有食之注+無傳하다
[經]九月 滕子來會葬注+無傳 諸侯會葬 非禮也하다
[經]丁巳 葬我君定公할새하야 不克葬하고 戊午日不昃 乃克葬하다
[經]辛巳葬定姒注+辛巳 十月三日 有日無月하다
[經]冬 城漆注+하다
[傳]十五年春 邾隱公來朝注+邾子益하니 子貢觀焉하다
邾子執玉高하야 其容仰하고 公受玉卑하야 其容俯注+玉 朝者之贄 [附注] 林曰 子貢 孔子弟子하다
子貢曰 以禮觀之컨대 二君者 皆有死亡焉이라
夫禮 死生存亡之體也 注+[附注] 林曰 於是取其死生存亡之度 하며 注+[附注] 林曰 朝會祭祀喪葬軍戎 於是觀其死生存亡之度어늘 今正月相朝호대 而皆不度注+不合法度하니 心已亡矣注+[附注] 林曰 心之精爽 已先亡矣
嘉事不體하니 何以能久注+嘉事 朝禮리오
高仰 驕也 卑俯 替也注+[附注] 林曰 驕 傲之發見也 替 惰之發見也
驕近亂하고 替近疾이라
君爲主하니 其先亡乎注+爲此年公薨 哀七年以邾子益歸傳ᄂ저
[傳]吳之入楚也注+在四年 胡子盡俘楚邑之近胡者注+俘 取也하고 楚旣定 胡子豹又不事楚曰 存亡有命하니 事楚何爲리오
多取費焉注+[附注] 林曰 徒以多取費用而已이라
二月 楚滅胡注+傳言小不事大 所以亡하다
[傳]夏五月壬申 公薨하다
仲尼曰 賜不幸言而中하니 是使賜多言者也注+以微知著 知之難者 子貢言語之士 今言而中 仲尼懼其易言 故抑之
[傳]鄭罕達敗宋師于老丘注+罕達 子齹之子 老丘 宋地 宋公子地奔鄭 鄭人爲之伐宋 欲取地以處之 事見哀十二年하다
[傳]齊侯衛侯次于蘧挐하니 謀救宋也注+[附注] 林曰 蘧挐 卽渠蒢 鄭敗宋師 故謀救宋
[傳]秋七月壬申 姒氏卒하다
不稱夫人 不赴하고 且不祔也注+赴同祔姑 夫人之禮 二者皆闕 故不曰夫人ᄅ새니라
[傳]葬定公하야 不克襄事하니 禮也注+襄 成也 雨而成事 若汲汲於欲葬
[傳]葬定姒하다
不稱小君 不成喪也注+公未葬而夫人薨 煩於喪禮 不赴不祔 故不稱小君 臣子怠慢也 反哭於寢 故書葬
[傳]冬 城漆하다
不時告也注+實以秋城 冬乃告廟 魯知其不時 故緩告 從而書之以示譏


15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주자邾子가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생쥐가 교제郊祭희생犧牲으로 바칠 소를 파먹어 소가 죽으니, 다시 점을 쳐서 다른 소를 교우郊牛로 정하였다.注+이 없다. 파먹은 곳을 말하지 않고 죽은 것을 거론擧論한 것은 파먹은 곳이 중대重大하기 때문이다. 개복改卜하는 것이 이다.
2월 신축일辛丑日초자楚子호국胡國격멸擊滅하고서 호자胡子를 데리고 돌아갔다.
여름 5월 신해일辛亥日교제郊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이를 기록한 것은 시기를 넘겨 지냈기 때문이다.
임신일壬申日정공定公고침高寢에서 하였다.注+고침高寢궁명宮名이다. 노침路寢에서 하지 않았으니, 죽을 처소處所를 잃은 것이다.
나라 한달罕達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제후齊侯위후衛侯거제渠蒢에 군대를 주둔시켰다.注+구원救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라고 기록한 것이다.
주자邾子가 와서 분상奔喪하였다.注+이 없다. 제후諸侯분상奔喪하는 것은 가 아니다. [부주]林: 제후諸侯가 와서 분상奔喪하는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가을 7월 임신일壬申日사씨姒氏하였다.注+사씨姒氏정공定公부인夫人이다.
8월 초하루 경진일庚辰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9월에 등자滕子가 와서 회장會葬하였다.注+이 없다. 제후諸侯가 와서 회장會葬하는 것은 가 아니다.
정사일丁巳日에 우리 임금 정공定公을 장사 지낼 때 비가 내려 장례葬禮를 마치지 못하고, 무오일戊午日오후午後 늦게야[日不昃]장례葬禮를 마쳤다.
신사일辛巳日정공定公부인夫人사씨姒氏를 장사 지냈다.注+신사일辛巳日은 10월 3일이다. 만 기록하고 은 기록하지 않았다.
겨울에 에 성을 쌓았다.注+나라 서기庶其이다.
15년 봄에 주은공邾隱公이 와서 조현朝見하니注+주은공邾隱公주자邾子이다.자공子貢이 두 나라 임금이 를 행하는 것을 보았다.
주자邾子을 든 손이 너무 높이 올라가서 그 얼굴이 위로 향하고, 정공定公을 받는 자세가 너무 낮아서 그 얼굴이 아래로 향하였다.注+조현朝見하는 자가 올리는 예물禮物이다. [부주]林: 자공子貢공자孔子제자弟子이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를 행하는 모습을 보건대 두 임금은 모두 사망死亡할 것이다.
사생死生존망存亡주체主體이니, 좌우주선左右周旋진퇴부앙進退俯仰을 가지고서[將] 이에서 생존生存을 취하느냐 사망死亡을 취하느냐를 알 수 있고注+[부주]林: 이에서 자기의 사생死生존망存亡법도法度를 취한다는 말이다., 조회朝會, 제사祭祀, 상사喪事, 융사戎事를 가지고서 이에서 생존하느냐 사망하느냐를 볼 수 있는데注+[부주]林: 조회朝會, 제사祭祀, 상장喪葬, 군융軍戎에서 자기의 사생死生존망存亡의 법도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 지금 정월正月에 서로 조현朝見하면서 모두 법도에 맞지 않았으니注+법도法度에 맞지 않은 것이다. 마음을 이미 잃은 것이다.注+[부주]林: 마음의 정상精爽(精神)이 이미 먼저 죽은 것이다.
조회朝會[嘉事]가 [體]에 맞지 않았으니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注+가사嘉事조회朝會이다.
자세가 높아 얼굴이 위로 올라간 것은 교만이 드러난 것이고, 자세가 낮아 얼굴이 아래로 굽은 것은 태타怠惰[替]가 드러난 것이다.注+[부주]林: 오만傲慢발현發現이고, 태타怠惰발현發現이다.
교만은 화란禍亂에 가깝고 태타怠惰질병疾病에 가깝다.
우리 임금이 주인主人이시니 아마도 먼저 사망死亡하실 것이다.”고 하였다.注+이해에 정공定公하였다. 애공哀公 7년에 주자邾子을 잡아 데리고 온 의 배경이다.
나라가 나라로 쳐들어갔을 때注+정공定公 4년에 있었다.호자胡子호국胡國 가까이 있는 나라 성읍城邑의 백성들을 다 잡아갔고注+함이다. , 나라가 안정安定된 뒤에도 호자胡子나라를 섬기지 않으며 말하기를 “국가國家존망存亡천명天命에 달린 것이니, 나라를 섬겨 무엇하겠는가?
단지[多]허비虛費만을 취할 뿐이다.注+[부주]林: 한갓 비용費用만을 많이 취할 뿐이다. ”고 하였다.
2월에 나라가 호국胡國격멸擊滅하였다.注+전문傳文소국小國대국大國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滅亡한 것을 말한 것이다.
여름 5월 임신일壬申日정공定公하였다.
중니仲尼가 말하기를 “(子貢)는 불행不幸하게도 말이 맞았으니, 이것이 로 하여금 말이 많은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注+은미隱微한 것을 가지고서 현저顯著할 것을 아는 것은 알기 어려운 것이다. 자공子貢은 말을 잘하는 사람인데 지금 그의 말이 맞았으니, 중니仲尼는 그가 말을 쉽게 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그를 억제한 것이다. ”고 하였다.
나라 한달罕達노구老丘에서 송군宋軍을 패배시켰다.注+한달罕達자차子齹의 아들이다. 노구老丘나라 땅이다. 나라 공자公子나라로 출분出奔하니, 정인鄭人은 그를 위해 나라를 토벌하여 땅을 탈취하여 그를 그곳에 살게 하려 한 것이다. 이 일은 애공哀公 12년에 보인다.
제후齊侯위후衛侯거나蘧挐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니, 이는 나라를 구원하는 일을 모의謀議하기 위함이었다.注+[부주]林: 거나蘧挐는 바로 거제渠蒢이다. 나라가 송군宋軍을 패배시켰기 때문에 나라를 구원하기를 모의한 것이다.
가을 7월 임신일壬申日사씨姒氏하였다.
부인夫人’으로 칭하지 않은 것은 제후諸侯에게 부고赴告하지 않았고, 또 부묘祔廟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동맹국同盟國부고赴告하고 고묘姑廟부제祔祭하는 것이 부인夫人인데, 이 두 가지를 모두 (거행해야 할 일을 거행하지 않음)하였기 때문에 ‘부인夫人’이라 하지 않은 것이다.
정공定公을 장사 지낼 때 비가 내려 장사葬事를 중지하고 끝내지 않았으니, 에 맞았다.注+이다. 비가 오는데도 장사를 끝내는 것은 마치 장사 지내기를 서두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사定姒를 장사 지냈다.
소군小君’으로 칭하지 않은 것은 상례喪禮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정공定公장전葬前부인夫人하니, 상례喪禮가 번거로워 부고赴告도 하지 않고 부고祔姑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소군小君’으로 칭하지 않았으니, 이는 신자臣子태만怠慢해서이다. 정침正寢반곡反哭하였기 때문에 ‘’을 기록한 것이다.
겨울에 에 성을 쌓았다.
에 이를 기록한 것은 제때에 고묘告廟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사실은 가을에 을 쌓고서 겨울에야 고묘告廟한 것이다. 나라는 그것이 제때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마치 겨울에 쌓은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늦게 고묘告廟한 것이다. 〈그러므로 에〉 사실에 따라 기록하여 기폄譏貶의 뜻을 보인 것이다.


역주
역주1 奔喪 : 客地에서 喪事의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것인데, 여기서는 弔喪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昭公 3년 傳에 의하면 國君의 喪에는 大夫를 보내어 弔喪하고 卿을 보내어 會葬하는 것이 禮이다.
역주2 邾庶其邑 : 襄公 21년에 邾나라 庶其가 漆과 閭丘를 가지고 魯나라로 도망해 왔다.
역주3 將左右周旋……於是乎取之 : 禮를 행할 때 左나 右로 周旋(선회)하고, 나아갈 때 몸을 굽히고 물러날 때 몸을 펴는 것이 예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가지고서 이에서 그 사람이 生存을 취하느냐 死亡을 취하느냐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역주4 朝祀喪戎 於是乎觀之 : 朝禮, 祀禮, 喪禮, 戎禮를 행하는 것이 예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가지고서 이에서 그 사람이 生存할 것인지 死亡할 것인지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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