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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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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一年春 晉殺其大夫丕鄭父하다注+以私怨謀亂國 書名 罪之 書春 從告
[經]夏 公及夫人姜氏會齊侯于陽穀하다注+無傳 婦人送迎不出門 見兄弟不踰閾 與公俱會齊侯 非禮
[經]秋八月 大雩하다注+無傳 過時故書
[經]冬 楚人伐黃하다
[傳]十一年春 晉侯使以丕鄭之亂來告하다注+書在今年
[傳]天王使召武公內史過賜晉侯命注+天王 周襄王 召武公 周卿士 內史過 周大夫 諸侯卽位 하다
어늘 過歸하야 告王曰
晉侯其無後乎注+[附注] 林曰 言惠公必無後於晉ㄴ저
王賜之命이어늘하니 先自棄也已
其何繼之有릿가
國之幹也 禮之輿也注+[附注] 林曰 國恃禮而立 猶木恃幹而立 敬載禮而行 猶車載人而行
不敬이면 則禮不行하고 禮不行이면 則上下昏이니 何以長世리잇가注+爲惠公不終張本
[傳]夏 揚拒泉臯伊雒之戎同伐京師하야 入王城하야 焚東門注+揚拒泉臯 皆戎邑 及諸雜戎居伊水雒水之間者 今伊闕北有泉亭하니 王子帶召之也注+王子帶 甘昭公也 召戎 欲因以簒位
秦晉伐戎以救周하다
晉侯平戎于王하다注+爲二十四年天王出居鄭傳 [附注] 林曰 言平戎于王 尊卑之辭也
[傳]黃人不歸楚貢하니 楚人伐黃하다注+黃人恃齊故


11년 봄에 나라가 그 대부大夫비정보丕鄭父를 죽였다.注+사사로운 원한으로 나라를 어지럽히기를 꾀하였다. 이름을 기록한 것은 를 그에게 돌린 것이다. 봄이라고 기록한 것은 나라의 통고通告를 따른 것이다.
여름에 희공僖公부인夫人강씨姜氏와 함께 양곡陽穀에서 제후齊侯회견會見하였다.注+이 없다. 부인婦人전송餞送하거나 영접迎接할 때 문을 나가지 않고, 형제兄弟가 만나 볼 때에도 문지방을 넘지 않는 것인데, 과 함께 제후齊侯회견會見하였으니 가 아니다.
가을 8월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때가 지났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겨울에 초인楚人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11년 봄에 진후晉侯사신使臣을 보내어 와서 비정丕鄭의 난리를 통고通告하였다. 注+에 이 일을 금년에 기록한 까닭을 해석한 것이다.
천왕天王소무공召武公내사內史를 보내어 진후晉侯에게 작명爵命를 내렸다.注+천왕天王주양왕周襄王이다. 소무공召武公나라 경사卿士이고, 내사內史나라 대부大夫이다. 제후諸侯즉위卽位하면 천자天子명규命圭를 내려 서신瑞信으로 삼게 한다.
혜공惠公을 받을 때 태만怠慢하니 내사內史가 돌아와서 양왕襄王에게 하였다.
진후晉侯는 아마도 후손後孫이 없을 것입니다.注+[부주]林: 나라에는 반드시 혜공惠公후손後孫이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께서 작명爵命을 내리시는데 를 받을 때 태만하였으니, 이는 먼저 스스로 체통體統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찌 후사後嗣가 있겠습니까.
는 나라의 근간根幹이고 를 싣는 수레입니다.注+[부주]林: 국가國家에 의지해 존립存立하는 것이 나무가 줄기에 의지해 존립存立하는 것과 같고, 공경이 를 싣고 가는 것이 수레가 사람을 싣고 가는 것과 같다.
공경하지 않으면 가 행해지지 않고, 예가 행해지지 않으면 상하上下혼란昏亂하니, 어찌 오랜 세대世代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注+이것이 혜공惠公이 잘 마치지 못한 장본張本이다.
여름에 융인戎人이 함께 경사京師공격攻擊하여 왕성王城으로 들어가서 동문東門을 불태웠으니,注+는 모두 이다. 이들과 이수伊水낙수雒水 사이에 사는 잡융雜戎들이다. 지금 이궐伊闕 북쪽에 천정泉亭이 있다. 이는 왕자王子가 불러들인 것이다.注+왕자王子감소공甘昭公이다. 융인戎人을 불러들인 것은 그들을 이용해 왕위王位찬탈簒奪하고자 한 것이다.
나라와 나라가 토벌討伐하여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가을에 진후晉侯융인戎人천왕天王화평和平시켰다.注+희공僖公 24년에 천왕天王나라로 나가 거주居住의 배경이다. [부주]林: 화평和平시켰다고 한 것은 존비尊卑 사이에 쓰는 문사文辭이다.
황인黃人나라에 공물貢物을 바치지 않으니, 겨울에 초인楚人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注+황인黃人진공進貢하지 않은 것은 나라를 믿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經釋[釋經] : 저본에는 ‘經釋’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釋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 저본에는 ‘大’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天’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天子賜之命圭爲瑞 : 杜注에 命을 命圭로 해석한 것은 옳지 않다. 命圭는 諸侯가 처음 封해질 때 天子에게 받아서 대대로 傳하는 것이니, 새로 卽位한 임금에게 다시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이곳의 命은 爵命 또는 策命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으므로 爵命으로 飜譯하였다. 命圭는 天子가 諸侯에게 주어 朝覲할 때에 信標로 가지고 오게 하는 물건이다.
역주4 : 命圭가 아니라 策命할 때 또 다른 信標로 내린 것이다.
역주5 惰於受瑞 : 瑞는 玉의 通稱이다. 怠慢은 〈晉語〉에 의하면 晉侯가 옥을 낮게 들고 절하고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은 것이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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