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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6)

춘추좌씨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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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六年春 齊侯伐徐注+[附注] 林曰 齊景有志於代興也하다
[經]楚子誘戎蠻子殺之하다
[經]夏 公至自晉하다
[經]秋八月己亥 晉侯夷卒注+하다
[經]九月 大雩하다
[經]季孫意如如晉하다
[經]冬十月 葬晉昭公注+三月而葬 速 하다
[傳]十六年春王正月 公在晉하니 晉人止公이라
不書 諱之也注+猶以取郠故也 公爲晉人所執止 故諱不書
[傳]齊侯伐徐하다
[傳]楚子聞蠻氏之亂也與蠻子之無質也注+質 信也 [附注] 林曰 又聞戎蠻子素失信於人하고 使然丹誘戎蠻子嘉殺之하고 遂取蠻氏하다
旣而復立其子焉하니 禮也注+詐之 非也 立其子 禮也 河南新城縣東南有蠻城
[傳]二月丙申 齊師至于蒲隧注+蒲隧 徐地 下邳取慮縣東有蒲如陂하니 徐人行成하다
徐子及郯人莒人會齊侯하야 盟于蒲隧注+[附注] 林曰 郯莒畏齊討己 故從徐子從齊受盟 하고 賂以甲父之鼎注+甲父 古國名 高平昌邑縣東南有甲父亭 徐人得甲父鼎以賂齊하다
叔孫昭子曰 諸侯之無伯이면 害哉注+爲小國害ᄂ저
齊君之無道也하야 興師而伐遠方하야 會之하고 有成而還注+[附注] 林曰 郯莒聞風來會 有成功而歸이로되 莫之亢也注+無亢禦하니 無伯也夫ᄂ저
詩曰 宗周旣滅하야 靡所止戾하며 正大夫離居하야 莫知我肄注+詩小雅 戾 定也 肄 勞也 言周舊爲天下宗 今乃衰滅 亂無息定 執政大夫 離居異心 無有念民勞者라하니 其是之謂乎注+傳言晉之衰ᄂ저
[傳]三月 晉韓起聘于鄭하니 鄭伯享之하다
子産戒曰 苟有位於朝 無有不共恪注+[附注] 林曰 子産戒飭百官 言苟有位列于朝廷 無敢有不共敬而恪謹者하라
孔張後至하야 立於客間注+孔張 子孔之孫이어늘 執政禦之注+執政 掌位列者 禦 止也하다
適客後어늘 又禦之注+[附注] 林曰 張又移立於客之西 執政又禦止之 한대
適縣間注+縣 樂肆하니 客從而笑之하다
事畢 富子諫注+富子 鄭大夫 諫子産也曰 夫大國之人 不可不愼也注+[附注] 林曰 不可不謹愼以待之어늘 幾爲之笑하니 而不陵我注+言數見笑 則心陵侮我
我皆有禮라도 夫猶鄙我注+鄙 賤也 [附注] 林曰 夫 謂大國 猶且鄙賤於我어늘 國而無禮하니 何以求榮이리오
孔張失位 吾子之恥也
子産怒曰 發命之不衷注+衷 當也하고 出令之不信하며 刑之頗類注+하고 獄之放紛注+也 紛 亂也 [附注] 朱曰 其治獄也 縱民之爲惡 以致紛亂하며
會朝之不敬注+謂國無禮敬之心하고 使命之不聽注+下不從上命하야 取陵於大國하야 罷民而無功注+[附注] 朱曰 自取大國之所陵侮 勞民以戰而無成功하고 罪及而弗知 僑之恥也
孔張 君之昆孫이오 子孔之後注+昆 兄也 子孔 鄭襄公兄 孔張之祖父 執政之嗣也注+子孔嘗執鄭國之政 爲嗣大夫하야 承命以使하야 周於諸侯하니 國人所尊이오 諸侯所知
立於朝而祀於家注+卿得自立廟於家하며 有祿於國注+受祿邑하고 有賦於軍注+軍出 卿賦百乘하며 喪祭有職注+有所主하고 受脤歸脤注+受脤 謂君祭以肉賜大夫 歸脤 謂大夫祭歸肉於公 皆社之戎祭也하며 其祭在廟 已有著位
在位數世하야 世守其業이어늘 而忘其所 僑焉得恥之注+其祭在廟 謂助君祭 [附注] 林曰 忘其所當立之位리오
辟邪之人 而皆及執政하니 是先王無刑罰也注+言爲過謬者自應用刑罰
子寧以他規我注+規 正也하라
宣子有環이러니 其一在鄭商注+玉環 同工共朴 自共爲雙 [附注] 朱曰 韓起有玉環一 鄭之商人亦有一環 蓋同工共朴 自成一雙 故宣子欲得而雙之이라
宣子謁諸鄭伯注+謁 請也한대 子産弗與曰 非官府之守器也 寡君不知니라
子大叔子羽謂子産曰 韓子亦無幾求注+言所求少하니 晉國亦未可以貳注+[附注] 林曰 晉國猶强 未可有所攜貳니라
晉國韓子不可偸也注+偸 薄也 [附注] 林曰 晉國主盟 韓子執政 皆不有偸而薄之 若屬有讒人交鬪其間하고 鬼神而助之하야 以興其凶怒 悔之何及注+[附注] 朱曰 鬼神又從而輔助之 以起晉人凶暴忿怒之心 後雖悔之 亦無及也 이리오
吾子何愛於一環하야 其以取憎於大國也 盍求而與之 子産曰 吾非偸晉而有二心이라 將終事之니라
是以弗與 忠信故也
僑聞君子非無賄之難이오 立而無令名之患注+[附注] 林曰 立於職位 而無美名 乃其大患 此言韓子이라하고 僑聞爲國非不能事大字小之難이오 無禮以定其位之患注+[附注] 朱曰 無禮以定其位 是爲國之大患 此二句 言鄭國也이라하니
夫大國之人令於小國하야 而皆獲其求 將何以給之리오
一共一否 爲罪滋大注+滋 益也 [附注] 朱曰 今有所求而與之 後有所求而不能給 則得罪於大國爲益大也리라
大國之求 無禮以斥之 何饜之有리오
吾且爲鄙邑이면 則失位矣注+不復成國 [附注] 朱曰 如此則鄭乃爲晉國邊鄙之邑 不復成國 是失其國君之位矣 此一節覆解無禮以定其位之意
若韓子奉命以使하야 而求玉焉이면 貪淫甚矣 獨非罪乎注+[附注] 朱曰 此一節覆解立而無令名之意
出一玉以起二罪하야 吾又失位하고 韓子成貪이면 將焉用之리오
且吾以玉賈罪 不亦銳乎注+銳 細小也 [附注] 林曰 言以細事徼大罪
韓子買諸賈人하야 旣成賈矣注+[附注] 林曰 議價已成러니 商人曰 必告君大夫하라
韓子請諸子産曰 日起請夫環 執政弗義일새 弗敢復也注+復 重求也 [附注] 朱曰 執政 稱子産也 弗義 不以我所求爲義也로라
今買諸商人하니 商人曰 必以聞이라할새 敢以爲請하노라
子産對曰 昔我先君桓公與商人皆出自周注+鄭本在周畿內 桓公東遷 幷與商人俱 [附注] 林曰 桓公 鄭始封君하야 注+庸 用也 用次更相從耦耕以艾殺此地注+[附注] 林曰 以除治此地之荒穢하야 斬之蓬蒿藜藋하고 而共處之하야 世有盟誓以相信也
曰 爾無我叛하라
我無强賈注+無强市其物하며 毋或匄奪하리라 爾有利市寶賄라도 我勿與知注+[附注] 林曰 汝有逐利於市珍寶貨賄之物 我鄭不敢與聞其事하리라
恃此質誓 故能相保以至于今이어늘 今吾子以好來辱하야 而謂敝邑强奪商人하니
是敎敝邑背盟誓也 毋乃不可乎
吾子得玉而失諸侯 必不爲也리라
若大國令하야 而共無藝注+藝 法也 鄭鄙邑也 亦弗爲也注+不欲爲鄙邑之事
僑若獻玉이면 注+[附注] 林曰 若僑欲獻其玉環 不知其所成就 朱曰 若必使我獻其玉環 則鄭與晉不復成和好矣일새 敢私布之注+布 陳也하노라
韓子辭玉曰 起不敏이나 敢求玉以徼二罪注+[附注] 朱曰 豈敢求玉以取失諸侯鄙鄭國之二罪
敢辭之注+傳言子産知禮 宣子能改過하노라
[傳]夏四月 鄭六卿餞宣子于郊注+餞 送行飮酒할새 宣子曰 二三君子請皆賦하노라
起亦以知鄭志注+詩言志也로라
子齹賦野有蔓草注+子齹 子皮之子嬰齊也 野有蔓草 詩鄭風 取其邂逅相遇 適我願兮한대 宣子曰 善哉
吾有望矣注+君子相願 己所望也로다
子産賦鄭之羔裘注+言鄭 別於唐羔裘也 取其彼己之子 舍命不渝 邦之彦兮 以美韓子한대 宣子曰 起不堪也注+不堪國之司直
子大叔賦褰裳注+褰裳詩曰 子惠思我 褰裳涉溱 子不我思 豈無他人 言宣子思己 將有褰裳之志 如不我思 亦豈無他人한대 宣子曰 起在此하니 敢勤子至於他人乎注+言己今崇好在此 不復令子適他人
子大叔拜注+謝宣子之有鄭하니 宣子曰 善哉子之言是注+是 褰裳 [附注] 林曰 子賦褰裳 其言是也
不有是事 其能終乎注+韓起不欲令鄭求他人 子大叔拜以答之 所以晉鄭終善 [附注] 林曰 不有此相警戒之語 其能終於爲好乎
子游賦風雨注+子游 駟帶之子駟偃也 風雨詩 取其旣見君子 云胡不夷하고 子旗賦有女同車注+子旗 公孫段之子豐施也 有女同車 取其詢美且都 愛樂宣子之志하고 子柳賦蘀兮注+子柳 印段之子印癸也 蘀兮詩 取其倡予和汝 言宣子倡 己將和從之한대 宣子喜曰 鄭其庶乎注+庶幾於興盛ᄂ저
二三君子以君命貺起注+[附注] 林曰 以鄭君之命 餞送於我호대注+六詩皆鄭風 故曰不出鄭志하니 皆昵燕好也注+昵 親也 賦不出其國 以示親好
二三君子 數世之主也 可以無懼矣注+[附注] 林曰 皆可以澤及數世而無咎 鄭國可以無怨리라 宣子皆獻馬焉注+[附注] 林曰 宣子皆獻馬於六卿 하고 而賦我將注+我將詩頌 取其日靖四方 我其夙夜 畏天之威 言志在靖亂 畏懼天威하다
子産拜하고 使五卿皆拜曰 吾子靖亂하니 敢不拜德
宣子私覲於子産以玉與馬曰 子命起舍夫玉 是賜我玉而免吾死也
敢不以拜注+以玉馬藉手 拜謝子産
[傳]公至自晉注+晉人聽公得歸하다
子服昭伯語季平子注+昭伯 惠伯之子子服回也 隨公從晉還 曰 晉之公室其將遂卑矣리라
君幼弱하고 六卿彊而奢傲하니 將因是以習이리라
習實爲常이니 能無卑乎注+[附注] 朱曰 將因君幼弱而習爲奢傲之事 習貫如此 必以爲常 而輕其君矣 臣輕其君 公室其不卑乎 平子曰 爾幼하니 惡識國注+昭伯尙少 平子不信其言이리오
[傳]秋八月 晉昭公卒注+爲下平子如晉葬起하다
[傳]九月 大雩하니 旱也
鄭大旱하야 使屠擊祝款竪柎有事於桑山注+三子 鄭大夫 有事 祭也한대 斬其木하니 不雨注+[附注] 林曰 斬桑山之木 禱雨不應 하다
子産曰 有事於山 蓻山林也注+蓺 養護令繁殖어늘 而斬其木하니 其罪大矣라하고 奪之官邑하다
[傳]冬十月 季平子如晉하야 葬昭公하다
平子曰 子服回之言猶信注+自往見之 乃信回言하니 子服氏有子哉注+有賢子也ᄂ저


16년 봄에 제후齊侯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부주]林: 제경공齊景公나라를 대신해 맹주가 되려는 뜻을 가졌다.
초자楚子융만자戎蠻子유인誘引해 죽였다.
여름에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왔다.
가을 8월 기해일己亥日진후晉侯하였다.注+동맹하지 않았다.
9월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계손의여季孫意如나라에 갔다.
겨울 10월에 진소공晉昭公을 장사 지냈다.注+석 달 만에 장사葬事 지냈으니 너무 빨랐다.
16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소공昭公나라에 있었으니, 이는 진인晉人소공昭公억류抑留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숨긴 것이다.注+경읍郠邑한 일을 여전히 문제問題로 삼은 것이다. 소공昭公진인晉人에게 잡혀 억류抑留되었기 때문에 숨기고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제후齊侯나라를 쳤다.
초자楚子만씨국蠻氏國내란內亂이 났고 만자蠻子신의信義가 없다는 말을 듣고서注+이다. [부주]林: 또 융만자戎蠻子가 평소 사람들에게 신의信義를 잃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연단然丹을 시켜 융만자戎蠻子유인誘引해 죽이고서 드디어 만씨국蠻氏國하였다.
얼마 후에 그 아들을 다시 임금으로 세웠으니, 예에 맞는 일이었다.注+속여서 유인誘引한 것은 잘못이고, 그 아들을 다시 임금으로 세운 것은 이다. 하남河南신성현新城縣 동남쪽에 만성蠻城이 있다.
2월 병신일丙申日제군齊軍포수蒲隧당도當到하니注+포수蒲隧나라의 땅이다. 하비下邳취려현取慮縣 동쪽에 포여피蒲如陂가 있다. 서인徐人화친和親요구要求하였다.
서자徐子담인郯人거인莒人제후齊侯와 만나 포수蒲隧에서 결맹結盟하고서注+[부주]林: 나라와 나라는 나라가 자기들 나라를 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서자徐子를 따라가서 나라에 복종服從하라는 맹약盟約을 받아들인 것이다. 제후齊侯에게 갑부甲父을 주었다.注+갑부甲父는 옛날 나라의 이름이다. 고평高平창읍현昌邑縣 동남쪽에 갑부정甲父亭이 있다. 서인徐人갑부甲父을 얻어 나라에 뇌물賂物로 준 것이다.
숙손소자叔孫昭子가 말하기를 “제후諸侯후백侯伯(盟主)이 없으면 소국小國를 입는다.注+소국小國를 입는다는 말이다.
제군齊君무도無道하여 군대를 일으켜 원방遠方의 나라를 공벌攻伐하여 회맹會盟하고서 성공成功하고 돌아왔으되注+[부주]林: 나라와 나라가 소문을 듣고 와서 회맹會盟하였으므로 나라가 성공成功하고서 돌아온 것이다. , 항거抗拒하는 자가 없었으니注+항거抗拒하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맹주盟主가 없기 때문이다.
시경詩經》에 ‘종국宗國나라가 이미 멸망滅亡하여 정착定着할 곳이 없고, 정대부正大夫이산離散하여 우리의 괴로움 알아 줄 이 없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우무정편雨無正篇〉의 시구詩句이다. 정착定着이고, 노고勞苦이다. 나라가 옛날에는 천하天下종주국宗主國이었는데, 지금은 쇠약衰弱하여 난리가 진정鎭靜될 날이 없고 집정대부執政大夫과 헤어져 살면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므로 백성들의 노고勞苦를 염려하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 는 오늘의 정황情況을 이른 듯하다.注+전문傳文나라의 쇠약衰弱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3월에 나라 한기韓起나라에 가니 정백鄭伯연회宴會를 열어 그를 접대接待하였다.
이때 자산子産백관百官경계警戒하기를 “이번 조정朝廷에 정해진 자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공경恭敬스럽지 못한 일이 없도록 하라.注+[부주]林: 자산子産백관百官을 경계해 타이르며 ‘조정朝廷에 자리가 배열排列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공경해 삼가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고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공장孔張이 뒤늦게 와서 빈객賓客의 중간에 서자注+공장孔張자공子孔의 손자이다. 집정執政(宴會에 의례儀禮를 맡은 사람)이 막았다.注+집정執政은 자리의 배열排列을 맡은 자이다. 는 막음이다.
빈객賓客의 뒤로 가서 서자 또 막았다.注+[부주]林: 공장孔張이 또 빈객賓客의 자리 서쪽으로 옮겨가서 서니, 집정執政이 또 막은 것이다.
공장孔張악기樂器배열排列해 놓은 사이로 가니注+악기樂器배열排列[肆]한 곳이다. 빈객賓客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연회宴會가 끝난 뒤에 부자富子자산子産에게 규간規諫(바른말로 경계해 함)하기를注+부자富子나라 대부大夫이다. 자산子産에게 한 것이다. 대국大國 사람을 접대接對함에는 근신謹愼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데注+[부주]林: 근신謹愼하여 대우待遇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몇 차례[幾] 저들의 비웃음을 샀으니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겠습니까?注+진인晉人수차數次 비웃음을 보였으니 마음속으로 우리를 업신여긴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 가 있다 해도 저들은 오히려 우리를 비루鄙陋하게 여길 것인데注+이다. [부주]林: 대국大國을 이른다. 대국大國은 오히려 우리를 비천鄙賤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 국가國家로서 가 없었으니 어찌 영예榮譽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공장孔張이 자리를 잃고 허둥댄 것은 당신의 치욕恥辱입니다.”고 하니,
자산子産하여 말하기를 “발표發表하는 것이 합당合當[衷]하지 않고注+이다.을 내리는 것이 성실誠實하지 못하며, 형벌刑罰편벽偏僻되어 공정公正하지 못하고注+사정事情유사類似함으로 인해 〈판결이〉 치우치게 된다는 말이다. 옥사獄事를 처리하는데 〈백성의 사악邪惡행위行爲를〉 방임放任하여 분란紛亂자초自招하며注+방임放任[縱]함이고, 은 어지러움이다. [부주]朱: 옥사獄事처리處理함에 있어 백성들의 사악邪惡행위行爲방임放任하여 분란紛亂자초自招한다는 말이다. ,
회동會同조현朝見공경恭敬하는 가 없고注+국가國家가 상대를 예우禮遇공경恭敬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 사명使命을 듣지 않아注+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국大國능멸陵蔑자초自招하여 백성을 지치게 하고도 공로功勞가 없고注+[부주]朱: 대국大國의 업신여김을 자초自招하여 백성을 괴롭혀가며 전쟁戰爭을 하고도 공로功勞가 없다는 말이다. 죄책罪責이 이르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이 나의 치욕恥辱이다.
공장孔張은 임금님 형님의 손자이고 자공子孔후손後孫이며注+이다. 자공子孔정양공鄭襄公으로 공장孔張조부祖父이다. 집정執政후사後嗣注+자공子孔은 일찍이 나라의 국정國政담당擔當했었다. 사대부嗣大夫가 되어 을 받고 출사出使하여 제후국諸侯國을 두루 돌아다녔으니 국인國人존경尊敬하는 바이고 제후諸侯들이 알아주는 바이다.
그는 조정朝廷직위職位가 있고 집안에 조묘祖廟가 있으며注+은 스스로 가묘家廟를 세울 수 있다. , 국가國家에서 녹읍祿邑을 받고注+녹읍祿邑을 받은 것이다. 군대에 군부軍賦를 내며注+군대軍隊출정出征할 때이면 백승百乘군부軍賦로 낸다. , 국가國家상사喪事제사祭祀에 일정한 직책職責이 있고注+주관主管하는 직책職責이 있다는 말이다. 제육祭肉을 받기도 하고 제육祭肉을 임금께 올리기도 하며注+수신受脤은 임금이 제사 지내고 나서 고기를 대부大夫에게 하사하는 것이고, 귀신歸脤대부大夫가 제사 지내고 나서 고기를 임금에게 올리는 것인데, 이 제사는 모두 출정出征하기에 앞서 사신社神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 임금을 도와 종묘宗廟에 제사 지낼 때는 이미 정해진 지위地位가 있었다.
지위地位를 이어온 지 이미 몇 가 되어 대대代代로 그 가업家業을 지켜왔는데, 오늘 그가 자기의 자리를 잊은 것을 가지고 내 어찌 수치羞恥로 여기겠는가?注+기제재묘其祭在廟는 임금의 제사를 돕는 것을 이른다. [부주]林: 자기가 서야 할 자리를 잊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사벽邪辟행위行爲를 모두 집정執政로 돌리니, 〈이런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이는 선왕先王이 정한 형벌刑罰을 무시하는 것이다.注+과오過誤가 있는 자에게는 응당 형벌刑罰을 시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대는 차라리 다른 일을 가지고 나를 규정規正하라.注+는 바로잡음이다. ”고 하였다.
선자宣子에게 옥환玉環이 있었는데, 그 한 짝은 나라 상인商人에게 있었다.注+옥환玉環이다. 하나의 박옥璞玉을 둘로 쪼개어 같은 모양으로 깎아 한 으로 만든 것이다. [부주]朱: 한기韓起가 가진 옥환玉環 한 짝과 나라 상인商人이 가진 옥환玉環 한 짝은 대개 한 박옥璞玉을 같은 모양으로 가공加工해 본래 한 쌍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선자宣子가 그 한 짝을 얻어서 짝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선자宣子정백鄭伯에게 그 한 짝을 구해 주기를 요청하자注+함이다. , 자산子産은 구해 주려 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이는 공가公家부고府庫수장收藏[守]된 기물器物이 아니니 과군寡君께서는 알지 못하십니다.”고 하였다.
자태숙子太叔자우子羽자산子産에게 말하기를 “한자韓子가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니注+요구하는 것이 작다는 말이다. 나라에 두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注+[부주]林: 나라는 여전히 하니 휴이攜貳(두마음을 품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라와 한자韓子박대薄待해서는 안 되니注+이다. [부주]林: 나라는 회맹會盟주재主宰하는 나라이고 한자韓子집정執政이니 모두 경시輕視하여 박대薄待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만약 마침 참소讒訴하는 자가 두 나라 사이를 이간離間하고 귀신鬼神이 그 참소讒訴하는 자를 도와 진인晉人분노憤怒를 일으키게 한다면 후회後悔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注+[부주]朱: 귀신鬼神도 따라서 참소讒訴하는 자를 도와, 진인晉人흉포凶暴하게 분노忿怒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면 비록 후회後悔해도 미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옥환玉環 하나를 아껴 대국大國의 미움을 사려 하십니까? 어찌 그 옥환玉環해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자,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나는 나라를 박대薄待하여 두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나라를 섬기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충성忠誠신의信義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듣건대 ‘군자君子는 재물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입조立朝하여 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없는 것을 걱정한다.注+[부주]林: 직위職位에 있으면서 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없는 것이 바로 큰 걱정이라는 말이니, 이것은 한자韓子를 말한 것이다. ’고 하고, 내 또 듣건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대국大國을 섬기고 소국小國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로써 자기의 지위地位안정安定시키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注+[부주]朱: 로써 그 지위地位안정安定시키지 못하는 것이 바로 국가國家의 큰 걱정이라는 말이니, 이 두 나라를 말한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대국大國 사람이 소국小國에 명령하여 그 요구하는 것을 다 얻고자 한다면 소국小國이 장차 무슨 수로 그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한 번은 주고 한 번은 주지 않는다면 를 얻는 것이 더욱 클 것입니다.注+(더욱)이다. [부주]朱: 지금은 요구하는 것을 주고, 뒤에는 요구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면 대국大國에 죄를 얻는 것이 더욱 클 것이라는 말이다.
대국大國의 요구를 로써 거절하지 않는다면 저들의 요구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장차 저들 변방邊方성읍城邑이 되어 국가國家지위地位를 잃게 될 것입니다.注+다시 나라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부주]朱: 이와 같이 되면 나라는 나라의 변방邊方이 되어 다시 나라가 될 수 없으니, 이는 나라 임금이 지위地位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이 한 대목은 ‘로써 그 지위地位안정安定시키지 못한다.’는 뜻을 다시 해설解說한 것이다.
한자韓子을 받들고 사신使臣으로 와서 옥환玉環을 요구한다면 탐욕貪慾사악邪惡이 심한 것이니 어찌 가 되지 않겠습니까?注+[부주]朱: 이 한 대목은 ‘입조立朝하여 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없다.’는 뜻을 다시 해설解說한 것이다.
하나의 옥환玉環을 내어줌으로 인해 두 가지 를 불러, 우리는 국가國家지위地位를 잃고 한자韓子탐욕貪慾스런 사람이 된다면 무엇 때문에 옥환玉環을 내어주는 일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가 옥환玉環으로 인해 를 산다면 작은 일로 〈큰 죄를 사는 것이〉 아닙니까?注+세소細小(些少)이다. [부주]林: 작은 일로 큰 를 부른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한자韓子상인商人에게 옥환玉環구매購買하기로 하여 이미 값을 흥정하였는데注+[부주]林: 값을 의론하는 일이 이미 끝난 것이다., 상인商人선자宣子에게 “반드시 우리 임금님과 대부大夫에게 하여 〈허가許可를 받으십시오.〉”라고 하였다.
한자韓子자산子産에게 청하기를 “전일에 내가 옥환玉環을 구해 주기를 청하였을 때 집정執政께서 도의道義에 맞지 않는다고 하시므로 감히 다시 청하지 않았습니다.注+는 거듭 요구要求함이다. [부주]朱: 집정執政자산子産을 이른다. 불의不義는 내가 요구하는 것을 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 상인商人에게 그 옥환玉環구매購買하기로 하였는데, 상인商人이 ‘반드시 보고하라.’고 하므로 감히 〈허가許可해 주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옛날에 우리 선군先君환공桓公께서 상인商人들과 다 함께 나라에서 이곳으로 나와서注+나라가 본래는 나라 기내畿內에 있었는데, 환공桓公이 동쪽으로 옮겨올 때 상인商人들과 함께 옮겨온 것이다. [부주]林: 환공桓公은 처음 봉지封地를 받은 나라의 첫 번째 임금이다. 交代해가며 서로 짝이 되어注+이니, 차례에 따라 번갈아 가며 서로 짝지어 밭을 간 것이다. 이 땅을 개척開拓[艾殺]하고注+[부주]林: 황폐荒弊초목草木이 우거진 이 땅에 초목草木을 베어내고 정리한 것이다. 쑥과 명아주 등을 베어내고 거주居住하면서 대대로 지키기로 맹서盟誓하고서 서로 믿어왔는데,
맹서盟誓에 ‘너희들은 나를 배반하지 말라.
나는 너희들의 물건을 강매强買하지 않을 것이며注+그 물건을 강매强買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너희들 물건을 구걸求乞하지도 강탈强奪하지도 않을 것이며, 너희들에게 팔아서 이익을 남길 보물寶物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간여하지 않을 것이다.注+[부주]林: 너희들에게 시장市場에서 이익을 추구追求할 수 있는 진귀珍貴보물寶物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나라 조정朝廷에서는 그 일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
맹서盟誓를 믿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지켜왔는데, 지금 그대는 우호友好의 일로 와서 우리에게 상인商人의 물건을 강탈强奪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맹서盟誓배반背叛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니 부당不當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옥환玉環을 얻고 제후諸侯를 잃는 짓은 반드시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약 대국大國하여 에 없는 물건을 바치게 한다면注+이다. 이는 우리 나라를 나라의 변방邊方으로 여기는 것이니,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注+변방邊方의 일은 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만약 옥환玉環을 바친다면 그 결과를 알 수 없으므로注+[부주]林: 만약 나에게 그 옥환玉環을 바치게 하고자 하면 두 나라가 성취成就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부주]朱: 만약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그 옥환玉環을 바치게 한다면 나라와 나라는 다시 우호友好를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감히 사사로이 말씀드리는 바입니다.注+진술陳述함이다. ”고 하였다.
한자韓子을 사양하며 말하기를 “내가 불민不敏하지만 감히 을 구하여 두 가지 를 부르겠습니까?注+[부주]朱: 어찌 감히 을 요구해 제후諸侯를 잃고, 나라를 변비邊鄙로 여기는 두 가지 자취自取하겠느냐는 말이다.
감히 사양하겠습니다.注+전문傳文자산子産를 알았고, 선자宣子는 능히 허물을 고쳤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여름 4월에 나라 육경六卿교외郊外에서 선자宣子전송餞送할 때注+은 떠나는 사람을 보내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선자宣子가 말하기를 “여러 군자君子께서는 모두 씩 읊기를 청합니다.
나 또한 를 듣고서 나라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注+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자차子齹가 〈야유만초野有蔓草〉를 읊자注+자차子齹자피子皮의 아들 영제嬰齊이다. 야유만초野有蔓草는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편명篇名이다. ‘우연히 서로 만나니 나의 소원에 맞았네.’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 선자宣子는 “유자孺子가 훌륭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바입니다.注+군자가 서로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자산子産정풍鄭風의 〈고구羔裘〉를 읊자注+정풍鄭風’이라고 말한 것은 〈당풍唐風〉의 〈고구羔裘〉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저 사람이여 목숨을 버릴지언정 절개를 변치 않으리. 〈국가國家사직司直(남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맡은 사람)일세.〉 국가國家언사彦士일세.’라는 시구詩句를 취하여 한자韓子를 찬미한 것이다. , 선자宣子는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注+국가國家사직司直이란 말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고 하였다.
자태숙子太叔이 〈건상褰裳〉을 읊자注+건상褰裳에 “그대 나를 사랑해 나를 생각하면 나는 치마를 걷고 진수溱水를 건너 그대에게 가겠지만 그대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찌 다른 사람(남자)이 없으리오.”라고 하였다. ‘선자宣子가 우리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장차 치마를 걷고 물을 건너 선자宣子에게 달려갈 뜻이 있지만,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어찌 다른 사람(依託할 다른 나라)이 없겠느냐?’를 말한 것이다. , 선자宣子는 “내가 지금 이곳에 와 있으니 어찌 감히 그대에게 다른 사람에게 가는 노고勞苦를 끼치겠습니까?注+내가 지금 우호友好중시重視[崇]하여 이곳(鄭나라)에 와 있으니 다시 그대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가게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자태숙子太叔배사拜謝하니注+선자宣子나라에 애정愛情을 두고 있는 것에 사례謝禮한 것이다. 선자宣子는 “훌륭합니다. 그대가 〈변심變心경계警戒한〉 이 를 말한 것이여!注+는 〈건상褰裳를 이른다. [부주]林: 그대가 〈건상褰裳를 읊었으니 그 말이 옳다는 말이다.
를 읊어 나를 깨우치지 않았다면 어찌 두 나라가 끝까지 우호友好할 수 있겠습니까?注+한기韓起나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않게 하고자 한다고 하자, 자태숙子太叔이 절하여 그 말에 하였으니, 이것이 나라와 나라가 끝까지 우호友好유지維持원인原因이다. [부주]林: 이렇게 서로 경계하는 말이 없다면 어찌 끝까지 우호友好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자유子游가 〈풍우風雨〉를 읊고注+자유子游사대駟帶의 아들 사언駟偃이다. 〈풍우風雨를 읊은 것은 ‘군자君子를 만나 보고 나니 어찌 마음 화평和平하지 않으리.’라고 한 시구詩句를 취한 것이다. , 자기子旗가 〈유녀동거有女同車〉를 읊고注+자기子旗공손단公孫段의 아들 풍시豐施이다. 〈유녀동거有女同車를 읊은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한아閒雅하네.’라는 시구詩句를 취하여 선자宣子의 뜻을 애호愛好한 것이다. , 자류子柳가 〈탁혜蘀兮〉를 읊으니注+자류子柳인단印段의 아들 인계印癸이다. 〈탁혜蘀兮를 읊은 것은 ‘나를 부르면 너에게 화답和答하리.’라는 시구詩句를 취하여, 선자宣子가 나를 부르면 장차 화답해 따르겠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선자宣子는 기뻐하며 “나라는 강성强盛해질 희망希望이 있습니다.注+흥성興盛을 바랄 수 있다는 말이다.
여러 군자君子께서 임금의 을 받고 나와 나를 전송餞送하면서注+[부주]林: 나라 임금의 으로 나를 전송餞送한다는 말이다. 읊은 나라의 에서 벗어나지 않았고注+이 여섯 는 모두 정풍鄭風이다. 그러므로 정지鄭志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모두 친애親愛우호友好를 표현한 였습니다.注+이니, 모두 그 나라의 를 읊어 친애親愛우호友好의 뜻을 보였다는 말이다.
여러 군자君子께서는 자손子孫이 여러 세대世代 동안 대부大夫직위職位을 누릴 것이니 나라는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注+[부주]林: 여섯 대부大夫는 모두 은택恩澤이 몇 에 미쳐 화환禍患이 없을 것이고, 나라도 원한怨恨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고서 선자宣子는 여섯 사람에게 모두 말을 주고서注+[부주]林: 선자宣子가 여섯 에게 모두 말을 한 씩 준 것이다. 아장我將〉을 읊었다.注+아장我將는 〈주송周頌〉이다. ‘날로 사방四方안정安靜시키고, 밤낮으로 하늘의 위엄威嚴을 두려워한다.’는 시구詩句를 취하여 뜻이 난리亂離평정平靜하는 데 있어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자산子産이 절하고서 오경五卿에게 모두 절하게 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우리나라의 혼란昏亂안정安靜시키겠다고 하시니 어찌 그 은덕恩德배사拜謝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선자宣子과 말을 가지고 와서 사사로이 자산子産을 만나 보고 말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옥환玉環포기抛棄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나에게 금옥金玉 같은 말씀을 주시어 죽음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옥과 말을 손에 들고 와서 바쳐 배사拜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注+과 말을 손에 들고 와서 자산子産에게 배사拜謝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왔다.注+진인晉人소공昭公이 돌아가도록 허락한 것이다.
자복소백子服昭伯계평자季平子에게 말하기를注+소백昭伯혜백惠伯의 아들 자복회子服回이다. 소공昭公을 따라 나라에서 돌아온 것이다. 나라 공실公室은 아마도 장차 그 지위地位가 낮아질 것입니다.
임금은 나이가 어려 권위權威미약微弱하고, 육경六卿강성强盛하여 교만방자驕慢放恣하니, 장차 임금이 유약幼弱함으로 인해 임금을 경시輕視하는 것이 버릇이 될 것입니다.
버릇은 실로 상례常例(慣例)가 되는 것이니, 어찌 공실公室이 낮아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朱: 장차 임금이 유약幼弱함으로 인해 버릇이 되어 교만방자驕慢放恣한 짓을 할 것이다. 버릇이 이와 같이 들면 반드시 이것을 상례常例로 여겨 그 임금을 경시輕視할 것이다. 신하가 그 임금을 경시輕視한다면 공실公室이 어찌 낮아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평자平子가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어리니 어찌 국가의 일을 알겠는가?注+소백昭伯이 아직 젊기 때문에 평자平子가 그 말을 믿지 않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가을 8월에 진소공晉昭公하였다.注+하문下文평자平子나라에 가서 소공昭公장사葬事 지낸 배경을 미리 제기提起한 것이다.
9월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으니 가물었기 때문이다.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도격屠擊축관祝款수부竪柎를 보내어 상산桑山제사祭祀를 지내게 하였는데注+세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유사有事제사祭祀이다. , 그 의 나무를 베어내니 비가 오지 않았다.注+[부주]林: 상산桑山의 나무를 베어냈으므로 기도祈禱하여도 반응反應이 없었던 것이다.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산에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은 에 숲을 가꾸어 번성繁盛하게 하기 위함인데注+산림山林을 기르고 보호하여 번식繁殖하게 하는 것이다. 의 나무를 베어냈으니 그 가 크다.”고 하고서 그들의 관직官職녹읍祿邑을 빼앗았다.
겨울 10월에 계평자季平子나라에 가서 소공昭公장사葬事 지냈다.
평자平子가 말하기를 “자복회子服回의 말을 믿을 수 있으니注+자기가 가서 직접 보고서야 자복회子服回의 말을 믿은 것이다. , 자복씨子服氏는 훌륭한 아들을 두었도다.注+훌륭한 아들을 두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未同盟 : 晉나라가 諸侯의 盟主였는데, 어째서 同盟하지 않았다고 하였는가? 《左氏會箋》
역주2 緣事類以成偏頗 : 〈正義〉에 “일에는 서로 비슷한 것이 있어 眞僞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事情이 서로 비슷함으로 인해 치우친 〈判決을〉 부른다. 이것이 비록 故意는 아니라 하여도 이 또한 罪가 된다. 服虔은 ‘類는 纇로 읽어야 하니 纇는 公平하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譯者는 服虔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3 從[縱] : 저본에는 ‘從’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縱’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庸次比耦 : 庸‧次‧比 세 字는 같은 뜻이다. 《廣雅》 〈釋詁〉에 庸次比를 모두 ‘代’로 訓解하였으니, 交代해 서로 짝이 되어 이 땅을 艾殺(開拓)했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5 不知所成 : 成은 일이 끝나는 것이라고 한 《左氏會箋》의 說을 취하여 ‘결과’로 번역하였다. 위의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6 孺子 : 諸侯나 世卿의 承繼人을 稱하는 말이다.
역주7 不出鄭志 : 詩는 뜻[志]을 말한 것이므로 鄭詩를 ‘鄭志’라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8 藉手 : 獻上할 物品을 손에 들거나 끌고 가는 것이다. 〈楊注〉

춘추좌씨전(6)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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