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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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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하고 義以方外하여
敬義立而德不孤하나니 直方大不習無不利 니라
原注
[原註]
○ 伊川先生曰
敬立而內直하고 義形而外方하나니 義形於外 非在外也니라
原注
○ 又曰
이니 直內 乃是主一之義
至於不敢欺, 不敢慢, 尙不愧于屋漏 皆是敬之事也 但存此涵養하야 久之 自然天理明이니라
原注
○ 又曰
心敬則內自直이니라
原注
○ 龜山楊氏曰
若施之於事 則厚薄隆 一定而不可易 爲有方矣
所主者敬이요 而義則自此出焉이라
故有內外之辨이니라
原注
[附註]
○ 程子曰
學者不必遠求 近取諸身하야 하야 敬而已矣 便是約處
易之乾卦 言聖人之學하고 坤卦 言賢人之學호되 惟言敬以直內하고 義以方外하여 敬義立而德不孤라하니
至于聖人하여도 亦止如是 更無別途
自非
故有道有理 天人 一也 更不分別이니 乃吾氣也
養而不害 則塞乎天地하고 一爲私心所蔽하여
思無邪, 無不敬 只此二句 循而行之 安得有差리오
有差者 皆由不敬不正也니라
原注
問必有事焉而勿正 孟子本爲養氣說이어늘 程門 乃轉作養心法하니 如何 潛室陳氏曰
孟子一書 持敬工夫少하니 最細密이나 然亦只施於養氣하니 所謂事者 指義直而言이라
하니 所謂孟子有 謂此
程門 愛此二句하여 借轉作養心法하니 養心以養氣
故其所事者 持敬工夫 其說 爲細 然其下工夫處 亦不過如孟子之니라
原注
○ 又曰
敬義夾持하면 自此니라
原注
問夾持之意한대 朱子曰
最下得此兩字好하니 敬主乎中하고 義防於外하여 二者相夾持하여 이요 只得直上去
故便達天德이니라
○ 又曰
表裏夾持하여 更無東西走作去處하면 上面 只有箇天德이니라
○ 又曰
敬義 內外交相養하여 夾定在這裏하여 莫敎一箇有些走失이니 如此 則下不染於物欲하고 只得上達天德也니라
原注
○ 問 敬勝怠者吉하고 怠勝敬者滅하며 義勝欲者從하고 欲勝義者凶한대 朱子曰
敬便竪立이요 怠便放倒 以理從事是義 不以理從事是欲이라
這敬義是體用이니 하니라
原注
西山眞氏曰
訪丹書於太公하니 可謂急於聞道者矣어늘 而太公所告 不出敬與義之一言하니 蓋敬則萬善俱立하고 怠則萬善俱廢하며 義則理爲之主하고 欲則物爲之主
吉凶存亡之所由分이니 上古聖人 已致謹於此矣
武王聞之하시고 惕若戒懼而銘之器物하여 以自警焉하시니 蓋恐斯須不存하여 而怠與欲 得乘其隙也
其後 하실새 於坤之六二 曰 敬以直內하고 義以方外라하여시늘 先儒釋之曰 敬立而內直하고 義形而外方이라하니
蓋敬則此心 無私邪之累 內之所以直也 義則事事物物 各當其分이니 外之所以方也
自黃帝而武王하고 自武王而孔子 其實 一道也시니라
原注
○ 問敬以直內, 義以方外한대
이어니와 須自去下工夫라야 方見得是如此니라
敬以直內 是無纖毫私意하여 胸中洞然하여 徹上徹下하여 表裏如一이요
義以方外 是見得是處 決定恁地하고 不是處 決定不恁地하여 이니 須是自將去做工夫니라
聖門學者問一句 聖人 答他一句어든 便하여 實是要行이러니 說得 只是不曾將身己做하나니
若實把做工夫하면 只是敬以直內, 義以方外八箇字 一生用之不窮이니라
原注
○ 朱子堂旁兩 暇日默坐하여 讀書其間이러시니 名其左曰敬齋라하고 右曰義齋라하여 記之曰
嘗讀易而得其兩言하니 曰敬以直內, 義以方外
以爲爲學之要 無以易此로되 而未知所以用力之方也러니 하여而必以戒愼恐懼爲始然後 得所以持敬之本하고 又讀大學하여 見所論明德之序而必以格物致知爲先然後 得所以明義之端호라
旣而觀夫二者之功 一動一靜 交相爲用하여 又有하니
然後 知天下之理 幽明鉅細 遠近淺深 無不貫乎一者
樂而玩之 足以終吾身而不厭이니 又何暇夫리오
原注
○ 程子曰
切要之道 無如敬以直內니라
原注
○ 又曰
이라하니 須把敬來이니 此道最是簡, 最是易工夫
爲此語雖近似常人이나 然持之久 必別이니라
原注
有言未感時 잇가
操則存하고 舍則亡하여 出入無時하여 莫知其이니 更怎生尋所寓리오
只是操而已 操之之道 敬以直內也니라
原注
嘗言
先生敎人 只是專令敬以直內하시니
若用此理 則百事 不敢妄作하여 不愧屋漏矣리니 習之旣久 自然有所得也니라
原注
[按] 易言敬以直內, 義以方外 誠學者希聖之
然敬以直內 其本也 若以上四條 皆程子平日單言之하여 以敎學者 而其發明敬字之義尤詳일새 今摭如左하노라
原注
○ 程子曰
主一之謂敬이요 無適之謂一이니라
原注
或曰 敬何以用功이닛고 程子曰 莫如主一이니라
曰 昞 常患思慮不定하여 或思一事未了 他事如麻又生이로소이다
不可하니
不拘思慮與應事하고 皆要求一이니라
○ 問主一無適한대 朱子曰
只是莫走作이니 如今人 一事未了 又要做一事하여 心下千頭萬緖니라
○ 又曰
學問 只要專一이니하고 하니 只是專一이라
然他底이어니와 道理 本來是有 只要人去理會 甚順且易니라
又如莊子用志不分이라야 亦是如此敎人이어니와 但他 只是箇空寂이요 儒者之學 則有許多道理하니 若看透徹이면 可以貫事物이요 可以洞古今이니라
○ 又曰
古人 自少小時 便做了這工夫하니 如學射時 心若不在 何以能中이며 學御時 心若不在 何以使得馬리오
書數亦然하니라
어니와 須著從今做去
若不做這工夫하고 却要讀書看義理하면 恰似立屋無基址하여 且無屋柱處 得此心有箇存主然後 爲學 便有歸著이니라
若此心 雜然昏亂이면 自無이니 却學從那處去 又何處是收功處리오
故程先生 須令於敬上做工夫하시니 正爲此也니라
原注
○ 程子曰
則心自一이니 一則無非僻之干矣니라
又曰
非敬之道어니와 但致敬 須從此入이니라
原注
朱子曰
伊川 整齊嚴肅 是切至工夫 說與人이시니라
○ 又曰
因朋友講論하여 深究學者之病하니 只是 欠却持敬工夫 所以이니
라하여 至於容貌詞氣하여는 往往全不加功하니 設使이라도 亦與釋老何異리오
又況心慮荒忽하여 未必眞能如此存得邪
程子言敬 必以整齊嚴肅, 爲先하시고 又言라하시니 如此라야 乃是至論이라
而先聖說 尋常講說 於禮字 每不快意하여字然後已러니 非常情所能及耳로라
原注
是常惺惺法이니라
原注
朱子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이라
今人 說敬 以整齊嚴肅言之하니 固是 然心若昏昧하여 燭理不明이면인들 豈得爲敬이리오
○ 又曰
古人誦詩之類 是規戒警誨之意 無時不然이라
自住不得이니 大抵學問 須是警省이니라
又因言
常自問主人翁 惺惺否아하고 自答曰惺惺이라하니 今時學者 却不能如此니라
又引釋氏說心云 不得跳擧하며 不得昏沈이라하니
是他見得此心 只有兩項이니
跳擧 是走作時 昏沈 惟敬則都無此病이니라
或問謝氏之說 佛氏亦有此語로소이다
此心則同이나 而其爲道則異하니 吾儒 喚醒此心하여 欲他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하여 無所作爲니라
原注
○ 和靖尹氏曰
敬者 其心收斂하여 不容一物之謂니라
原注
和靖 自言 初見伊川先生時 敎某看敬字어시늘 某請益한대 先生曰 主一則是敬이라하시니
當時 雖領此語 不若近時看得更親切이로라
問 如何是主一이닛고
形影이리오
只收斂身心 便是主一이니라
且如人 到神祠中하여 致敬時 其心收斂하여 更着不得毫髮事하니 非主一而何
原注
○ 朱子曰
敬者 聖學之所以成始成終者也
觀程子謝氏尹氏數說하면 足以知其用力之方矣니라
或問한대
譬如此室 四方皆入得이니 若從一方하여 入至此하면 則三方入處 皆在其中矣니라
原注
西山眞氏曰
持敬之道 當合三先生之言而用力焉이니 然後內外交相養之功 始備니라
○ 勉齋黃氏曰
敬者主一無適之謂 程子語也
然師說 又以敬字惟畏爲近之라하시니 蓋敬者 此心肅然하여 有所畏之名이라
畏則心主於一이니 如入宗廟見君父之時 自無雜念이요 閑居放肆之際 則念慮紛擾而不主於一矣
二說 蓋相表裏하니 學者體之 則可見矣리라
敬字之義甚大하니 先師朱子 裒集程門論敬要語 詳且密矣어시늘 黃氏又述先師敬字之義惟畏爲近之 尤精切하니
蓋人之一心 虛靈知覺 常肅然而不亂하고 炯然而不昏이면 則寂而理之體 無不存이요 感而理之用 無不行이라
惟夫虛靈知覺 旣不能不囿於氣하고 又不能不動於欲이면 則此心之體用 亦將隨之而昏且亂矣리니 此所以不可不敬也
苟能惕然悚然하여 常若鬼神父師之臨其上하고 深淵薄冰之處其下하면 則虛靈知覺者 自不容於昏且亂矣리라
此敬字之義 所以惟畏爲近之 其說 不可易矣
嘗卽其本原而深思之호니 敬該動靜하고 主一亦該動靜하니
無事時 此心湛然常存 此靜而主一也 有事時 心應此事하고 更不雜以他事 此動而主一也
靜而主一 卽中者天下之大本이요 動而主一 卽和者天下之達道
學者誠能盡取而融會하여 精思其實體하면 則庶乎得之矣리라
原注
○ 問人有專務敬以直內하고 不務方外하니 何如닛고 程子曰
有諸中者 必形諸外하나니
惟恐不直內 內直則外必方이니라
原注
[按] 敬義之說 先儒多對擧而互言之 考程子此言及胡氏朱子之說하면 又有賓主輕重之辨하니 學者詳之니라
原注
○ 五峯胡氏曰
原注
朱子曰
近世爲精義之說 莫詳於正蒙이요 而五峯此言 尤精切簡當하니 深可玩味니라
原注
○ 朱子曰
敬以直內 最是緊切工夫니라
又曰
敬以直內 便能義以方外 非是別有箇義
譬如鏡이요 便是能照底니라
原注
○ 又曰
敬以直內 便義以方外 義便有敬이요 敬便有義
如居仁便由義 由義便居仁이니라
或問敬 莫只是涵養이요 便分別是非닛고
不須恁地說이니 不敬時 便是不義니라


5.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
주역周易》의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육이효六二爻에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군자君子하여 안을 곧게 하고 로워 밖을 방정하게 한다.
그리하여 가 확립되면 이 외롭지 않으니, ‘곧고 방정하고 커서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행하는 바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原注
[原註]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이 서면 안이 곧아지고 가 드러나면 밖이 방정해지니, 는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주일主一(한 가지를 주장함)을 이라 이르니,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은 바로 주일主一의 뜻이다.
감히 속이지 않고 감히 태만히 하지 않으며 혹시라도 방 귀퉁이에 부끄럽지 않게 한다는 것은 모두 의 일이니, 다만 이것을 보존하여 함양涵養해서 오래되면 저절로 천리天理가 밝아진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마음이 공경하면 안이 저절로 곧아진다.”
原注
구산양씨龜山楊氏(楊時)가 말하였다.
성심誠心을 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 이른바 이고, 만약 이것을 일에 시행하면 후박厚薄융쇄隆殺(높이고 낮춤)가 일정하여 바꿀 수 없으니, 이것이 방정함이 있는 것이 된다.
주장하는 것은 이고 는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의 구분이 있는 것이다.”
原注
[附註]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굳이 먼 데서 구할 필요가 없고, 가까이 자기 몸에서 취하여 다만 사람의 도리道理를 밝혀 할 뿐이니, 이것이 곧 간략한 곳이다.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에는 성인聖人의 학문을 말하였고 곤괘坤卦에는 현인賢人의 학문을 말하였는데, 오직 ‘하여 안을 곧게 하고 로워 밖을 방정하게 하여 가 확립되면 이 외롭지 않다’고만 말하였으니,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을 뿐이요 다시 딴 길이 없다.
천착穿鑿하고 얽매임은 자연 도리道理가 아니다.
그러므로 가 있고 이치가 있으면 하늘과 인간이 하나여서 다시 분별되지 않으니,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바로 나의 기운이다.
이것을 기르고 해치지 않으면 천지天地에 충만하고, 조금이라도 사심私心에 가려지면 감연欿然히 줄어들어서 작아짐을 안다.
사무사思無邪무불경無不敬 다만 이 두 를 따라서 행하면 어찌 어긋남이 있겠는가.
어긋남이 있는 것은 모두 공경하지 않고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原注
“반드시 일삼음이 있으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라는 것을 맹자孟子가 본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위하여 말씀하였는데, 정문程門에서는 마침내 바꾸어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삼았으니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잠실진씨潛室陳氏(陳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맹자孟子》 한 책은 을 잡아 지키는 공부가 적으니, 이 한 와 같은 것은 가장 세밀하나 또한 다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데에만 시행하였으니, 이른바 ‘일삼는다[事]’는 것은 와 곧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대체로 공부하는 것이 비교적 조금 거칠으니, 〈정자程子가〉 이른바 ‘맹자孟子영기英氣가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정문程門에서 이 두 를 좋아하여 빌어다가 마음을 수양하는 법으로 삼았으니, 마음을 길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다.
그러므로 그 일삼는 것이 을 잡아 지키는 공부이니, 그 말은 세밀하나 공부를 하는 방법은 또한 맹자孟子절도節度와 같음에 불과할 뿐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를 서로 잡아 지키면[夾持] 곧바로 올라가 천덕天德을 통달함이 이로부터 시작된다.”
原注
협지夾持의 뜻을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 두 글자를 놓은 것이 가장 좋으니, 은 마음속을 주장하고 는 밖을 막아서 두 가지가 서로 잡아 지켜 잠시 놓아 두려 해도 될 수 없고 다만 곧바로 위로 올라간다.
그러므로 곧 천덕天德을 통달할 수 있는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표리表裏를 서로 잡아 지켜서 다시 西로 달려가는 곳이 없으면 상면上面에 다만 천덕天德이 있을 뿐이다.”
○ 또 말씀하였다.
로 서로 길러 잡아 정하여 이 가운데에 있게 해서 하나라도 달아나지 말게 하여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아래로 물욕物慾에 물들지 않고 다만 위로 천덕天德을 통달하게 될 것이다.”
原注
단서丹書에 ‘이 태만함을 이기는 자는 하고 태만함이 을 이기는 자는 하며 가 욕심을 이기는 자는 순하고 욕심이 를 이기는 자는 흉하다’는 내용을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공경하면 곧 꼿꼿이 서고 태만하면 곧 방탕하여 쓰러지며 도리로 종사하면 이고 도리로 종사하지 않으면 욕심이다.
는 바로 이니, 곤괘坤卦의 말과 같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무왕武王이 처음 즉위할 적에 태공太公에게 단서丹書를 물었으니 를 듣는데 급한 자라고 이를 만한데, 태공太公이 아뢴 내용이 의 한 마디 말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하면 온갖 이 모두 확립되고 태만하면 온갖 이 모두 폐해지며, 의로우면 이치가 주장이 되고 욕심을 부리면 물건이 주장이 된다.
길흉吉凶존망存亡이 이로 말미암아 나누어지니, 상고上古성인聖人이 이미 여기에 지극히 삼가셨다.
무왕武王이 이 말씀을 들으시고 척연惕然계구戒懼하여 기물器物에 새겨서 스스로 경계하였으니, 잠시라도 이것을 보존하지 아니하여 태만함과 욕심이 그 틈을 탈까 두려워한 것이다.
그 뒤에 공자孔子가 《주역周易》을 하실 적에 곤괘坤卦육이효六二爻에 이르기를 ‘하여 안을 곧게 하고 로워 밖을 바르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하시자, 선유先儒들이 해석하기를 ‘이 확립되면 안이 곧아지고 가 나타나면 밖이 방정해진다’하였다.
하면 이 마음이 사사롭거나 간사함의 얽매임이 없어지니 안이 이 때문에 곧아지는 것이요, 로우면 모든 사물이 각각 그 분수에 합당하니 밖이 이 때문에 방정해지는 것이다.
황제黃帝로부터 무왕武王에, 무왕武王으로부터 공자孔子에 이르기까지 그 실제는 동일同一이시다.”
原注
경이직내敬以直內’와 ‘의이방외義以方外’를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모름지기 스스로 가서 공부를 하여야 비로소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경이직내敬以直內’는 털끝 만한 사사로운 마음도 없어서 가슴속이 환하여 위를 통하고 아래를 통해서 표리表裏가 한결같은 것이요,
의이방외義以方外’는 옳은 곳에는 결단코 이렇게 해야 하고 옳지 않은 곳에는 결단코 이렇게 하지 않아야 함을 견득見得해서(알아서) 절연히 방정方正하게 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스스로 가서 공부를 하여야 한다.
성문聖門의 배우는 자들은 한 를 물어서 성인聖人이 한 를 답해 주시거든 곧 그것을 알아 가지고 가서 실제로 행하려고 하였는데, 지금에는 말은 진실로 많이 하나 다만 일찍이 자기 몸을 가지고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잡아 공부를 한다면 오직 ‘경이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 여덟 글자를 일생토록 사용하여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原注
주자朱子자양서당紫陽書堂 옆의 두 협실夾室에 한가로운 날 묵묵히 앉아 이 사이에서 책을 읽으셨는데, 그 왼쪽을 이름하여 경재敬齋라 하고 그 오른쪽을 의재義齋라 하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일찍이 《주역周易》을 읽다가 두 마디를 얻었으니, 바로 경이직내敬以直內의이방외義以方外이다.
생각하기를 ‘학문하는 요점은 이것을 바꿀 수 없다’고 여겼으나 공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는데, 《중용中庸》을 읽다가 수도지교修道之敎를 논하면서 반드시 계신戒愼공구恐懼를 시작으로 삼은 것을 본 뒤에야 지경持敬의 근본을 알았으며, 또 《대학大學》을 읽다가 명덕明德순서順序를 논하면서 반드시 격물格物치지致知를 우선으로 삼은 것을 본 뒤에야 를 밝히는 단서를 알게 되었다.
이윽고 살펴보니 두 가지의 공부가 일동일정一動一靜이 서로 쓰임이 되어서 또 주자周子태극론太極論에 부합함이 있었다.
그런 뒤에야 천하의 이치가 , 이 하나로 꿰지지 않음이 없음을 알았다.
즐거워하면서 이것을 완미하면 충분히 내몸을 마치도록 싫지 않을 것이니, 또 어느 겨를에 외물外物을 사모하겠는가.”
原注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간절하고 요긴한 방도는 경이직내敬以直內보다 더한 것이 없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 ‘하여 안을 곧게 한다’하였으니, 안에 주장함이 있으면 마음이 비워져서 자연 그르거나 나쁜 마음이 없게 되고,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하였으니, 모름지기 을 잡아 지켜서 한 가지 일을 하여야 하니, 이 방도方道가 가장 간략하고 가장 쉬우며 또 공부하기가 쉽다.
이 말은 비록 천근하여 상인常人에 해당되는 듯하나 오랫동안 잡아 지키면 그 효험이 반드시 각별해질 것이다.”
原注
“감동하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을 어디에 붙여 두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마음은〉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출입하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어 그 방향을 알 수 없으니, 다시 어떻게 붙여 둘 곳을 찾겠는가.
다만 잡을 뿐이니, 잡는 방도는 하여 안을 곧게 하는 것이다.”
原注
윤화정尹和靖(尹焞)이 일찍이 말하였다.
이천선생伊川先生이 사람을 가르치실 적에 다만 오로지 하여 안을 곧게 하도록 하였다.
만약 이 이치대로 한다면 모든 일을 감히 망령되게 하지 않아 옥루屋漏에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니, 오랫동안 이것을 익히면 자연 소득이 있을 것이다.”
原注
[按] 《주역周易》에서 말한 경이직내敬以直內의이방외義以方外는 진실로 배우는 자가 성인聖人을 바라는 중요한 관건關鍵이다.
그러나 경이직내敬以直內가 근본이니, 이상의 네 조목과 같은 것은 모두 정자程子가 평소 간략히 말씀하여 배우는 자들을 가르친 것이요, 경자敬字의 뜻을 발명함이 더욱 상세하므로 이제 아래와 같이 뽑는다.
原注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주일主一(하나를 주장함)을 이라 이르고 무적無適(딴 데로 가지 않음)을 이라 이른다.”
原注
혹자가 “을 어떻게 공부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하나를 주장하는 것만한 것이 없다.” 하였다.
소계명蘇季明(蘇昞)이 말하기를 “저는 항상 사려思慮가 안정되지 못하여 혹 한 가지 일을 생각하여 마치기도 전에 다른 일이 삼처럼 또 생겨나는 것이 걱정입니다.” 하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그래서는 안 되니, 이는 성실하지 못함의 근본이다.
모름지기 익혀야 하니, 익힘은 전일專一할 때에 좋게 된다.
사려思慮하거나 일에 대응함에 구애하지 말고 모두 전일專一하기를 구하여야 한다.”
○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을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단지 마음이 딴 데로 달아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지금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가지 일을 하려고 하여 마음속이 천 갈래 만 갈래이다.”
○ 또 말씀하였다.
“학문은 단지 전일專一하여야 하니, 예컨대 수양가修養家들이 를 생각하여 를 이루고 석씨釋氏를 생각하여 를 이루니, 이것은 단지 전일專一함이다.
그러나 저들의 공부는 하기가 어렵지만 자신에게 있는 도리는 본래 있는 것이어서 단지 사람이 가서 이해하기만 하면 되니, 매우 순하고 또 쉽다.
장자莊子의 ‘마음을 씀이 분산되지 않아야 신명神明에 응집할 수 있다’는 것도 이렇게 사람을 가르친 것인데, 다만 저들은 오직 공적空寂일 뿐이요 유자儒者의 학문은 수많은 도리가 있으니, 만약 이것을 투철하게 본다면 사물을 꿰뚫을 수 있고 고금古今을 통달할 수 있다.”
○ 또 말씀하였다.
고인古人들은 어렸을 때부터 곧 이 공부를 하였으니, 예컨대 활쏘기를 배울 때에 마음이 만약 여기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과녁을 맞출 수 있으며, 말 모는 것을 배울 때에 마음이 만약 여기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말을 부릴 수 있겠는가.
도 또한 그러하다.
이제 이미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전일專一하게 하는〉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지금에〉 어쩔 수가 없으나 모름지기 이제부터라도 착수해 나가야 한다.
만약 이 공부를 하지 않고 책을 읽어 의리를 알려고 한다면 흡사 집을 세울 적에 기지基址가 없어서 우선 집의 기둥을 놓을 곳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 마음이 존주存主함이 있게 한 뒤에야 학문함에 곧 귀착점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 마음이 잡되어 혼란하면 자연 두당頭當(定處)이 없을 것이니, 어느 곳에서 배워 가며 또 어느 곳에서 공효를 거둘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선생程先生이 모름지기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가운데에서 공부하게 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原注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정제하고 엄숙하면 마음이 절로 한결같아지니, 한결같아지면 그르거나 나쁜 생각이 범하지 못할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엄격하고 위엄스럽고 근엄하고 삼가는 것은 가 아니나 다만 을 지극히 함을 모름지기 이것(嚴威儼恪)으로부터 들어가야 한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천伊川의 ‘정제엄숙整齊嚴肅’ 한 단락은 바로 간절하고 지극한 공부를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근래에 붕우들의 강론을 통하여 배우는 자들의 병통을 깊이 연구해 보니, 다만 본래[合下]을 잡아 지키는 공부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일마다 멸렬한 것이다.
을 말하는 것도 단지 ‘이 마음을 보존하면 자연 도리에 맞는다’하여, 용모容貌사기詞氣에 이르러서는 왕왕 전혀 공부를 가하지 않으니, 설사 참으로 이와 같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또한 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하물며 마음과 생각이 거칠고 소홀하여 반드시 이와 같이 보존하지도 못함에랴.
정자程子을 말씀하시면서 ‘은 반드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의관衣冠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손히 하는 것을 먼저 하여야 한다’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두 다리를 뻗고 걸터앉아 있으면서 마음이 태만하지 않은 자는 있지 않다’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여야 비로소 지극한 의논이 된다.
나는 선성先聖이 말씀하신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평소 강설할 적에 예자禮字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언제나 마음이 석연치 않아서 반드시 이자理字로 해석한 뒤에야 그만두곤 하였는데, 이제야 나는 비로소 그 정미하고 치밀함이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는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노라.”
原注
상채사씨上蔡謝氏(謝良佐)가 말하였다.
은 항상 성성惺惺(마음이 깨어 있음)하는 법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성성惺惺은 바로 마음이 혼매昏昧하지 않음을 이르니, 다만 이것이 곧 이다.
지금 사람들은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고 말하니, 참으로 옳으나 마음이 만약 혼매昏昧하여 이치를 봄이 밝지 못하면 비록 억지로 마음을 잡은들 어찌 이라 할 수 있겠는가.”
○ 또 말씀하였다.
“옛사람이 고사瞽師(樂師)로 하여금 시를 외게 한 것 따위는 바로 규계規戒하고 경계하여 가르치는 뜻이 어느 때이고 이렇게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저들이 이처럼 시끄럽게 경계함을 당한 뒤에는 자연 안주할 수 없으니, 대저 학문은 모름지기 깨우치고 살펴야 한다.”
또 인하여 말씀하였다.
“승려인 서암瑞巖이 매양 일간日間(아침‧저녁)에 항상 ‘주인옹主人翁(마음을 가리킴)은 성성惺惺한가?’하고 자문自問하고는 ‘성성하다’하고 자답自答하곤 하였는데, 오늘날의 배우는 자들은 이렇게 하지 못한다.”
석씨釋氏가 마음을 해설하기를 ‘도거跳擧하지 말며 혼침昏沈하지 말라’고 한 것을 인용하여 말씀하였다.
“이는 저들이 이 마음이 단지 두 가지가 있음을 본 것이다.
도거跳擧는 마음이 딴 데로 달려가는 때이고 혼침昏沈방도放倒할 때이니, 오직 공경하면 이러한 병통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
혹자가 “사씨謝氏의 말은 불씨佛氏에도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하고 힐문하자, 말씀하였다.
“이 마음을 불러 깨우는 것은 같으나 그 방도는 다르니, 우리 유가儒家는 이 마음을 불러 깨워서 수많은 도리道理조관照管(비추어 보고 관리함)하려 하고, 불씨佛氏는 공연히 불러 깨워 여기에 있게 하여 작위作爲(일함)하는 바가 없다.”
原注
화정윤씨和靖尹氏(尹焞)가 말하였다.
이란 이 마음을 수렴하여 한(어떠한) 물건도 용납하지 않음을 이른다.”
原注
윤화정尹和靖(尹焞)이 스스로 말하기를 “처음 이천선생伊川先生을 뵈었을 적에 나에게 경자敬字를 살펴보게 하시므로 내가 더 말씀해 주실 것을 청하였더니, 선생은 ‘주일主一하는 것이 바로 이다’하셨다.
나는 당시에 비록 이 말씀을 이해하였으나 근래에 본 것이 더욱 친절한 것만은 못하였다.” 하였다.
기관祁寬이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일主一입니까?” 하고 묻자, 윤선생尹先生이 말하였다.
이 무슨 형체와 그림자가 있겠는가.
다만 몸과 마음을 수렴하는 것이 곧 주일主一이다.
우선 사람이 신사神祠 안에 들어가서 공경을 지극히 할 때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다시 털끝 만한 일도 붙일 수가 없으니, 이것이 주일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란 성학聖學의 시작을 이루고 끝을 이루는 것이다.
정자程子사씨謝氏(謝良佐), 윤씨尹氏(尹焞)의 몇 말씀을 살펴보면 공부할 방향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자가 세 선생이 을 말씀한 내용의 차이점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비유하건대 이 방을 사방 어느 쪽에서든 모두 들어올 수 있는데 만약 그중 한 방위를 따라 들어와 이 곳에 이르면 세 방위로 들어오는 곳이 모두 그 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을 잡아 지키는 방도는 마땅히 세 선생의 말씀을 합하여 공부하여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내외內外가 서로 길러지는 공부가 비로소 완비된다.”
면재황씨勉齋黃氏(黃榦)가 말하였다.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고 한 것은 정자程子의 말씀이다.
그러나 스승(朱子)의 말씀에 또 ‘경자敬字는 오직 두려워함(조심함)이 가장 가깝다’하였으니, 이란 이 마음이 숙연肅然하여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것의 명칭이다.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마음이 한 가지(하나)를 주장하게 되니, 예컨대 종묘宗廟에 들어가고 군부君父를 뵐 때에는 자연 잡념雜念이 없어지고, 한가로이 거처하여 방사할 때에는 생각이 분분하고 요란하여 한 가지를 주장하지 못한다.
두 말씀이 서로 표리表裏가 되니, 배우는 자가 체행體行한다면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각헌채씨覺軒蔡氏(蔡模)가 말하였다.
경자敬字의 뜻이 매우 크니, 선사先師주자朱子정문程門에서 을 논한 중요한 말씀을 모은 것이 상세하고 또 치밀한데, 황씨黃氏가 또 ‘선사先師경자敬字의 뜻은 오직 두려워함이 가깝다’고 말하였으니, 더욱 정밀하고 간절하다.
사람의 한 마음에 허령虛靈지각知覺이 항상 숙연肅然하여 어지럽지 않고 밝아서 어둡지 않으면, 고요함에 이치의 가 보존되지 않음이 없고 감동함에 이치의 이 행해지지 않음이 없다.
다만 허령虛靈지각知覺은 이미 에 갇히지 않을 수 없고 또 욕심에 따라 동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렇게 되면 이 마음의 이 따라서 어두워지고 또 어지러워지니, 이것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만일 척연惕然하고 송연悚然하여 항상 귀신鬼神부사父師가 그 위에 강림한 듯이 여기고 깊은 못과 얇은 얼음이 그 아래에 있는 듯이 여긴다면 허령虛靈지각知覺한 것이 어둡고 어지러워짐을 저절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경자敬字의 뜻이 오직 두려워함이 가장 가깝다’는 이유이니, 그 말이 바뀔 수가 없다.
일찍이 그 본원本原에 나아가 깊이 생각해 보니, 을 포함하고 주일主一 또한 을 포함한다.
일이 없을 때에 마음이 담연湛然하여 항상 보존되는 것은 할 때의 주일主一이요, 일이 있을 때에 마음이 이 일에 응하고 다시 다른 일을 뒤섞이지 않게 하는 것은 할 때의 주일主一이다.
할 때에 주일主一함은 곧 ‘천하天下대본大本’이란 것이요, 할 때에 주일主一함은 곧 ‘천하天下달도達道’란 것이다.
만약 주자周子의 ‘이란 욕심이 없는 것이다’라는 정자程子의 ‘나의 을 함양한다’는 주자朱子의 ‘이란 그 마음이 담연湛然하여 다만 이 속에 있는 것이다’라는 을 살펴본다면 할 때의 주일主一태극太極의 경계임을 알게 될 것이다.
배우는 자가 진실로 이것을 모두 취하여 융회融會(융통하게 이해함)해서 그 실체實體를 정밀하게 생각한다면 거의 알게 될 것이다.”
原注
“어떤 사람은 오로지 경이직내敬以直內만 힘쓰고 방외方外를 힘쓰지 않으니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심중에 가지고 있는 것은 반드시 외면으로 나타난다.
오직 안을 곧게 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안이 곧으면 밖은 반드시 방정해진다.”
原注
[按]에 대한 내용을 선유先儒들이 상대相對하여 들어서 서로 말씀한 것이 많으나 정자程子의 이 말씀과 호씨胡氏주자朱子의 말씀을 살펴보면 또 의 구분이 있으니, 배우는 자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原注
오봉호씨五峯胡氏(胡宏)가 말하였다.
거경居敬(마음을 에 둠)은 를 정밀히 하는 것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근세에 를 정밀하게 하는 말은 〈장횡거張橫渠의〉 《정몽正蒙》 보다 상세한 것이 없고, 오봉五峯의 이 말씀은 더욱 정밀하고 간절하며 간략하고 합당하니, 깊이 완미할 만하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경이직내敬以直內가 가장 긴요하고 절실한 공부이다.”
또 말씀하였다.
하여 안을 곧게 하면 곧 로워 밖이 방정하게 되니, 별도로 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은 비유하면 거울과 같고 는 곧 비출 수 있는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잠시라도 하여 안을 곧게 하면 곧 로워 밖을 방정하게 할 수 있으니, 로우면 곧 이 있고 하면 곧 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마음을 에 두면 곧 를 행하게 되고, 를 행하면 곧 마음을 에 두게 되는 것과 같다.”
혹자가 “은 다만 함양涵養하는 것이요 는 곧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굳이 이렇게 말할 것이 없으니, 하지 않을 때에는 곧 롭지 못하다.”


역주
역주1 敬以直內章 : 《周易》 〈坤卦 文言傳〉에 보인다.
역주2 [釋疑]易坤之六二曰 : 曰字 앞에 마땅히 子字가 있어야 할 듯하다. [刊補] ‘六二’ 다음에 子字가 있어야 할 듯하다.
역주3 [講錄]敬以直內 : ‘敬하야 內를 直하며’이다. 혹 ‘敬으로써’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역주4 [釋疑]敬以直內 …… 則不疑其所行也 : 利는 利害의 利가 아니고 바로 순하여 막힘이 없는 것을 이른다. 敬하여 안을 곧게 하고 義로워 밖을 방정하게 해서 그 德이 외롭지 않음에 이르면 이에 큼이 되니, 이와 같이 하면 비록 때로 익히지 않더라도 자연히 이치에 순하여 통달해서 의심하고 막히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는 또한 힘쓰지 않고도 道에 맞는다는 뜻이다. [刊補] ‘直方大不習無不利’의 利는 順理대로 하여 막힘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요, 利欲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역주5 [刊補]主一之謂敬 : 退溪가 金而精(金就礪)에게 답하기를 “主一의 一은 곧 두 가지로 하지 않고 섞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一이니, 또한 專一의 一이다.” 하였다.
역주6 [刊補]盡其誠心而無僞焉 所謂直也 : 楊氏는 거짓이 없는 것을 直이라 하였으니, 朱子의 ‘털끝 만한 사사로운 마음도 없어서 가슴 속이 확 트인 것’이라는 말씀과는 같지 않다.
역주7 : 쇄
역주8 [刊補]只明人理 : 人理는 사람이 사람된 所以의 이치이니,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 이것을 밝게 알면 萬事萬物의 이치가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理의 吐는 ‘하야’이다. 明은 知에 속하고 敬은 行에 속한다. ○ 살펴보건대 여기의 吐를 曹氏(曹好益)는 ‘이니’로 달았으니, 이와 같다면 明字는 ‘明德을 밝힌다[明明德]’는 明과 같으니, 반드시 知에 속하는 것만은 아니다.
역주9 [釋疑]穿鑿繫累 : 《孟子》 〈離婁 下〉에 이르기를 “지혜를 미워하는 까닭은 천착하기 때문이다.[所惡於智者 爲其鑿也]” 하였는데, 本註에 “鑿은 穿鑿함이다.” 하였으니, 옆으로 뚫고 굽게 파서 평평하고 바르지 못한 뜻이다. 繫는 사물에게 속박당하는 것이고, 累는 사물에 얽매이는 것이니, 평평하고 바르지 못한 뜻을 말한 것이다.
역주10 [釋疑]道理 : 통합하여 말하면 道라 이르고, 道 가운데에 條理가 있는 부분을 가리켜 말하면 理라 이른다.
역주11 [刊補]浩然之氣 : 묻기를 “道와 理를 말하면서 뒤이어 氣를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理와 氣가 비록 다르나 실제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理가 氣에 충만하면 氣가 浩然하게 되는 것이다. 氣가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理도 붙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된다. 浩然之氣가 만일 天地 사이에 가득 차서 義와 道에 配合되면 비록 이것을 氣라고 하더라도 사실은 理가 充滿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道와 理를 논하면서 뒤이어 浩然之氣를 말하는 것이 어찌 불가하겠는가.” 하였다.
역주12 [釋疑]欿然而餒 : 欿然은 부족함이고, 餒는 氣가 몸에 충만하지 못한 것이다. [刊補]欿은 《韻會》에 “苦와 感의 反切音이니, 부족하다는 뜻이다.” 하였다. [補註]欿은 어떤 일을 행한 다음 良心에 부끄러움이 있어 快足하지 못하여 氣가 充滿하지 못함을 이른다. 《大學》의 〈誠意章〉에 自謙이란 말이 보이는데, 謙은 慊으로 快足의 뜻이어서 이와는 정반대라 할 것이다.
역주13 [釋疑]知其小也 : ‘知其’가 《語類》에는 ‘却甚’으로 되어 있다.
역주14 [譯註]如此二句 : 孟子는 浩然之氣를 기르는 방법을 말씀하면서 “반드시 浩然之氣를 기르는 데에 일삼음이 있으나 미리 효과를 기대하지 말아 마음에 잊지도 말고 억지로 助長하지도 말아야 한다.[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고 말씀하였는 바, ‘必有事焉 而勿正’을 두 句로 볼 수도 있으며, 아래의 ‘心勿忘 勿助長’을 두 句로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위의 必有事焉은 心勿忘에 해당하고, 勿正 역시 勿助長과 상관되기 때문이다. 助長한다는 것은 효과를 기대하다가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으면 人爲的으로 무리하게 助長함을 이른다.
역주15 [釋疑]必有事焉 …… 大槩工夫較麤些 : ‘必有事焉’ 한 句가 지극히 세밀한데, 孟子는 다만 集義와 養氣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持敬과 養心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교적 거칠다고 말한 것이다. ○ 較는 두 물건을 대하여 그 長短과 多少를 비교함을 이르고, 麤는 精하지 못한 것을 칭하며 些는 적음이다. [刊補] 두 물건을 가지고 長短(길이)과 大小(크기)의 차이를 따질 때에 ‘較’라고 한다. ‘必有事焉’ 한 句는 공부가 지극히 세밀한데, 孟子는 단지 養氣의 측면만 말씀하였으니, 程子의 養心法과 비교하면 조금 거칠다.
역주16 [釋疑]英氣 : 過當(너무 지나침)과 같은 類이다.
역주17 [釋疑]節度 : 법칙으로, 곧 이른바 ‘잊지도 말고 억지로 助長하지도 말라[勿忘勿助長]’는 법이다.
역주18 [釋疑]直上達天德 : ‘바로 올라가 天德에 도달하다’로 읽으니, ‘上’은 마땅히 上聲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一說에는 ‘다만 위로 天德에 도달한다’로 읽으니,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上’은 마땅히 去聲이 되어야 한다. 아래 小註를 근거해 보면 朱子 또한 두 가지 뜻으로 설명하였다. [補註]句讀 역시 直上을 위로 붙여 ‘敬義夾持直上이면’으로 읽기도 한다.
역주19 [釋疑]要放下霎然不得 : 要는 구함이고 霎은 音이 歃이니, 잠깐 동안 비가 내리는 모양으로 잠시의 뜻이다.
역주20 [譯註]丹書 : 周나라 武王이 卽位할 때에 姜太公이 올린 경계의 말씀으로 《大戴禮》에 보인다.
역주21 [譯註]與坤卦說同 : 《周易》 〈坤卦 文言傳〉 六二爻의 ‘敬以直內 義以方外’를 가리킨 것이다.
역주22 [刊補]武王之始踐阼也 : 阼는 동쪽 계단이니, 주인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武王이 새로 卽位하였기 때문에 ‘始踐阼’라 한 것이다.
역주23 [譯註]孔子贊易 : 贊은 부연설명하여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으로, 孔子가 《周易》을 부연하여 설명한 열 권의 책을 이른다. 즉 〈彖傳〉 上‧下, 〈象傳〉 上‧下, 〈繫辭傳〉 上‧下, 〈文言傳〉, 〈說卦傳〉, 〈序卦傳〉, 〈雜卦傳〉을 가리키는 바, 이것을 十翼이라 한다.
역주24 [刊補]說只恁地說 : 위의 說字는 말한 내용을 가리키고 아래의 說字는 말한다는 뜻이다. 恁地는 如此라는 말과 같다. 말은 비록 이렇게 하였지만 모름지기 스스로 공부를 해야 비로소 진실로 이와 같음을 안다는 뜻이다.
역주25 [刊補]截然 : 한 번 정해서 바꿀 수 없음이 마치 하나의 물건을 잘라 놓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역주26 [刊補]方方正正 : 方正을 말하면서 極言해서 말하느라 方方正正이라 하였으니, 마치 分曉를 極言하여 分分曉曉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역주27 [譯註]領略將去 : 《釋疑》에 ‘거느려 가져가다’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領略은 안다는 뜻이 있으므로 ‘알아 가지고 가다’로 해석하였다.
역주28 [釋疑]如今 : 今은 今日이니, 朱子가 스스로 當時를 말씀한 것이다.
역주29 [釋疑]儘 : 極字의 뜻이 많다.
역주30 [刊補]夾室 : 朱子가 14세 되던 해에 부친인 韋齋公이 별세하였는데, 韋齋는 遺命으로 妻子를 少傅 劉子羽에게 부탁하였다. 劉子羽는 屛山 아래에 집을 지어주어 朱子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하였다. 그 후에 이 집을 ‘紫陽書堂’이라 이름하였는데, 夾室은 바로 書堂 좌우의 夾室이다.
역주31 [釋疑]及讀中庸 : 《中庸》의 戒愼恐懼는 윗글의 修道之敎를 이어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인용하여 말한 것이다. ○ 《中庸》의 本註에는 오로지 聖人이 가르침을 베푼 일만을 말하였으므로 禮樂과 刑政에 중함을 돌렸고, 여기서는 오로지 배우는 자들이 가르침을 말미암는 일을 말하였으므로 敬과 義에 근본을 미루었으니, 말이 각각 해당하는 바가 있다.
역주32 [刊補]所論修道之敎 : 묻기를 “《中庸》 首章에서 특별히 이 한 구절을 뽑아서 말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中庸》에 戒愼恐懼와 愼獨을 학문이라고 한 것은 바로 修道之敎에 종사하여 공부하는 것이므로 주자가 이와 같이 말씀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33 [釋疑]合乎周子太極之論 : 마음은 사람의 太極이다. 靜할 때에는 敬이 확립되어 體가 되고 動할 때에는 義가 확립되어 用이 되니, 太極의 動靜이 서로 근원이 되는 것과 같으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34 [刊補]外慕 : 功名과 利祿을 가리킨다.
역주35 [釋疑]敬以直內 …… 必有事焉 : 《周易》의 ‘敬以直內’는 오로지 靜만 말하였고, 《孟子》의 ‘必有事焉’은 動과 靜을 겸하여 말하였다.
역주36 [釋疑]做件事著 : 做는 삼다(하다)의 뜻이고 著은 助辭이니, 한 가지 일을 삼는다(한다)는 뜻이다.
역주37 : 생
역주38 [刊補](又曰) : ‘又曰’은 衍文인 듯하다.
역주39 [釋疑]知如何所寓 : 知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니, 바로 묻는 말이다. 漢語에는 不知를 知他라 한다. ○ 《近思錄》에는 如字가 없다.
역주40 : 向
역주41 [釋疑]尹和靖 : 이름은 火字 옆에 享字가 붙은 字이고 字는 彦明이며 一字는 德充이니, 程子의 高弟이다. 欽宗이 和靖處士라는 칭호를 하사하였다. [補註]焞은 음이 순, 돈인데, 肅宗의 이름이기 때문에 諱하여 火字 옆에 享字가 붙은 자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42 [釋疑]樞要 : 樞는 문의 지도리이니, 문의 닫히고 열림은 문의 지도리에 달려 있다. 要는 간절하고 요긴하다는 뜻이다.
역주43 [釋疑]蘇季明 : 이름은 昞이니, 程子와 張橫渠의 門人이다.
역주44 [刊補]此不誠之本也 : 誠은 곧 一(한결같음)이다.
역주45 [釋疑]須是習 習能專一時便好 : 習은 主一의 공부를 익히는 것이니, 처음 익힐 때에는 어긋남을 면치 못하다가 이미 익숙히 익혀 專一함에 이르면 자연 어긋나는 병통이 없으므로 便好라고 말한 것이다. [刊補]習은 主一하는 공부를 익힘을 이른다. 처음 익힐 때에는 思慮가 삼대처럼 자꾸 생겨나는 병통을 면치 못하니, 익히기를 익숙히 해서 專一함에 이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병통이 없어지므로 좋다고 한 것이다.
역주46 [釋疑]修養家想無成有 : 修養家는 神仙術을 배우는 자이다. 想은 생각함이다. 《參同契》를 살펴보면 사람의 형체는 처음에 水火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고 하여, 64卦의 坎인 水와 離인 火를 藥物로 삼고 乾과 坤을 솥으로 삼으며, 그 나머지 60卦를 30日에 나누어 정해서 날마다 각각 두 卦를 配定하고 또 두 卦의 12爻를 가지고 12支에 나누어 배정한다. 그리하여 해당한 卦와 만난 爻를 마음속에 항상 생각하고 잊지 않아서 조금도 어김이 없게 하며, 하늘의 기운을 자신의 기운에 합하게 하고 달의 차고 기우는 것을 보아 뽑아내고 더하되 달이 차면 뽑아내고 달이 기울면 더해서 더하고 뽑아내는 것을 굳센 하늘의 운행과 일치하게 한다. 그리하여 불로 물을 달여서 丹田에 응집되게 하기를 3년 동안 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換骨奪胎하여 대낮에 날아서 昇天하게 되니, 이것을 이름하여 煉內丹法이라 하는 바, 이것이 無를 상상하여 有를 이루는 法이다.
역주47 [釋疑]釋氏想有成無 : 佛敎에서는 君臣과 父子 등을 임시(잠시)로 합한 것이라 하여 寂滅의 가르침을 주장하니, 곧 이른바 ‘萬法이 모두 空’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역주48 [釋疑]自家 : 혹은 자신이 남을 가리켜 말하기도 하고 혹은 남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도 한다.
역주49 [釋疑]乃凝於神 : 凝은 맺힘이요, 定함이다. [刊補]神은 神明의 神이다.
역주50 [釋疑]今旣自小 …… 不奈何 : 어렸을 때에 이미 專一하게 하는 공부에 스스로 힘쓰지 않아서 이때에 이르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역주51 [釋疑]安頓 : 물건을 편안히 놓아두는 것이다.
역주52 [刊補]頭當 : 當頭라는 말과 같으니, 定處의 의미이다.
역주53 [釋疑]整齊嚴肅 : 整齊는 事物을 위주로 하여 말하였고, 嚴肅은 행동거지를 위주로 하여 말하였다. 그러나 서로 바꾸어 보아도 된다. ○ 살펴보건대 整齊와 嚴肅을 朱子는 모두 용모로 말씀하였다.
역주54 [釋疑]嚴威儼恪 : 嚴은 엄숙함이고 威는 위엄이고 儼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恪은 공경하는 모양이니, 모두 공경함을 지극히 하는 방도일 뿐, 공경은 아니다.
역주55 [釋疑]一段 : 一條, 一片과 같은 따위이다. 俗語에 벼 한 묶음을 한 단이라고 한다.
역주56 [刊補]比 : 近字와 같다.
역주57 [刊補]合下 : 本來라는 말과 같다.
역주58 [刊補]事事滅裂 : 滅裂은 《莊子》의 註에 ‘輕薄’이라 하였다.
역주59 [刊補]其言敬者 …… 自然中理 : 何叔京 등의 말이 이와 같았다.
역주60 [刊補]眞能如此存得 : 容貌와 辭氣에 공부를 加하지 않아도 마음을 보존할 수 있음을 말한다.
역주61 [刊補]正衣冠, 尊瞻視 : 程子는 말씀하기를 “儼然히 衣冠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경히 하면 그 마음이 저절로 敬하게 된다.” 하였다.
역주62 [刊補]未有箕踞而心不慢者 : 혹자가 묻기를 “사람이 한가로이 있을 때에 용모는 나태하면서 마음은 태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니, 伊川先生이 대답하기를 “箕踞하면서 어찌 마음이 태만하지 않은 경우가 있겠는가.” 하였다. 《禮記》 〈曲禮〉 註에 “箕는 두 다리를 쭉 뻗기를 마치 키처럼 하는 것이다.” 하였고, 《字彙》 에 “물건에 걸터앉는 것을 踞라 한다.” 하였다.
역주63 [刊補]克己復禮 : 묻기를 “顔子가 본래 仁을 물었는데 孔子께서 禮로 답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仁은 마음의 德이고 禮는 理의 節度이니,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理가 어떻게 절도에 맞으며, 理가 절도에 맞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보존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夫子(孔子)께서 이미 禮로 답하시고, 그 조목을 묻자 단지 視‧聽‧言‧動에 나아가 말씀하셨을 뿐이니,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밖에서 제재하여 그 안을 편안하게 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聖人의 말씀이 精微하고 치밀한 이유이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仁은 天理의 全體이면서 마음에 갖추어져 德이 되며, 禮는 天理의 節文이면서 일에 나타나 법칙이 된다. 마음에 갖추어진 것은 눈에 보이는 형상이 없지만 일에 나타난 것은 근거가 되는 地頭(지점)가 있으니, 밖에서 제재하는 것은 그 안을 기르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禮로써 답하였으니, 이것이 정미하고 치밀함이 되는 이유이다. 《心經講錄》에는 心과 理를 번갈아 말하였는데, 이는 存心과 中節이 그 功效를 차례로 이룬다는 뜻이 아니요, 心과 理가 본래 두 가지가 아니므로 밖을 제재하면 안이 저절로 길러진다는 뜻이다.
역주64 [釋疑]訓作理 : 朱子는 人道는 지극히 큰데 禮字는 작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반드시 禮字를 理字로 해석하였으니, 이는 理字가 禮字보다 더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禮字가 더욱 간절하고 요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제야 비로소 先聖이 ‘克己復理’라고 말씀하지 않고 ‘克己復禮’라고 말씀한 것이 精微하고 치밀하여 보통사람의 마음으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았다. 整齊嚴肅과 嚴威儼恪이 모두 禮의 일이므로 말씀한 것이다. ○ 仁은 本心의 全體이고, 禮는 天理의 節文이고, 己는 한 몸의 私欲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心德을 가지고 있으나 仁하지 못한 까닭은 私欲이 그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니, 私欲을 제거하려고 하면 모름지기 몸과 마음을 정리해서 한결같이 禮를 따른 뒤에야 己를 이겨 仁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禮는 몸과 마음을 단속하는 물건이니, 視‧聽‧言‧動을 모두 하늘의 법칙을 따라, 動容하고 周旋함이 모두 節文에 맞는다면 心德이 온전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仁이다.
역주65 [刊補]於禮字 …… 今乃知其精微縝密 : 朱子가 ‘禮字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늘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하여 꼭 하나의 理字를 가지고 해설한 뒤에 그만두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禮의 本語가 정미하고 치밀함을 알았다. ……’하였는 바, 趙士敬은 “이 말씀이 타당한 듯하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朱子語類》에 “禮라 하고 理라고 말하지 않은 까닭은 이 禮는 실로 準則이 있고 著實處(실제로 힘을 쓸 수 있는 곳)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朱子는 “理만 말하면 공허해질 뿐이다. 이 禮는 天理의 節文이며 사람을 가르치는 표준이 된다.” 하였다.
역주66 [釋疑]上蔡謝氏 : 이름은 良佐이고 자는 顯道이며 上蔡사람이다. 明道와 伊川에게 수학하여 程門四先生의 하나가 되었다.
역주67 [刊補]强把捉 : 退溪가 禹景善(禹性傳)에게 답하기를 “初學者가 억지로 마음을 붙잡으려는 생각이 어찌 곧바로 없을 수 있겠는가. 다만 지나치게 執捉(붙잡아 둠)해서는 안 되며, 단지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집착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 중간에서 時習의 공부를 加해야 할 뿐이니, 오래하여 익숙하게 되면 차츰 動과 靜이 한결같아지는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절대로 하루아침에 빠른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또 말씀하기를 “집착한다는 것은 곧 操存(붙잡아 보존함)을 말하니 좋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만약 活法을 얻지 못하면 도리어 揠苗助長하는 병통이 될 뿐이다. 顔子의 ‘四勿’이나 曾子의 ‘三貴’는 視聽言動과 容貌辭氣 上에서 하는 공부이니, 이른바 ‘밖을 제재함은 안을 기르기 위함’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程子가 ‘整齊嚴肅’을 강조하였고, 朱子 또한 ‘衣冠을 바루고 생각을 전일하게 하라. ……’ 말씀하였으니, 이에 대해서 더욱 생각하고 힘쓰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補註]揠苗助長은 자신의 벼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을 염려하여 벼싹을 뽑아 키를 키우는 것으로 《孟子》의 〈公孫丑 上〉에 보이는 바,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함을 걱정하여 무리하게 마음을 억제함을 비유한다. 四勿은 바로 非禮勿視 등의 네 가지를 이르며, 三貴는 정치가가 소중히 여기는 세 가지 일이다. 曾子는 魯나라의 執政大臣인 孟敬子가 문병오자, “군자는 道에 있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세 가지이니, 용모를 움직일 때에 거칠고 나태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르게 할 적에 성실함에 가깝게 하며, 말소리를 낼 적에 비루하고 도리에 위배되는 말을 멀리한다.[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斯遠暴慢矣 正顔色斯近信矣 出辭氣斯遠鄙倍矣]”고 말씀하셨는 바, 《論語》〈太白〉에 보인다.
역주68 [譯註]瞽史 : 눈이 먼 樂師로 瞽師로도 쓰는 바, 옛날에는 이들을 시켜 아침저녁으로 詩를 외게 해서 경계하는 마음을 일깨웠다.
역주69 [釋疑]被他恁地聒後 : 他는 瞽史를 가리키고 聒은 떠들고 말하는 것이다. 後는 이와 같이 한 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역주70 [釋疑]瑞巖 : 地名이다. [刊補] 절 이름이다. 僧侶의 名은 師彦이요 法號는 空寂이다.
역주71 [釋疑]日間 : 朝夕間이란 말과 같다.
역주72 [譯註]放倒 : 마음을 놓아 정신이 혼몽함을 이른다. 위의 跳擧는 마음이 밖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이르며, 昏沈은 정신이 맑지 못하여 멍한 상태를 이른다.
역주73 [刊補]喚醒 : 불러서 정신을 깨운다는 뜻이다.
역주74 [釋疑]照管 : 照察하고 管攝하는 것이다.
역주75 [釋疑]祁寬 : 字는 居之이니, 和靖의 門人이다.
역주76 [釋疑]先生 : 和靖을 가리킨다.
역주77 : 삼
역주78 [刊補]三先生言敬之異 : 묻기를 “ ‘正衣冠’, ‘莊整’, ‘齊肅’, ‘不欺不慢’ 이 네 가지 가운데 무엇이 動에 속하고 무엇이 靜에 속합니까? 伊川先生의 ‘主一無適’, ‘整齊嚴肅’과 謝氏의 ‘惺惺’, 和靖의 ‘其心收斂 不容一物’, 朱子의 ‘近畏’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하고 어느 것을 뒤에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退溪가 답하기를 “여러 설을 가지고 질문하였는데, 각각 본래의 말씀에 의거하여 설명하겠다. ‘正衣冠’ 한 구절은 본래 朱子가 方耕道에게 답한 편지 가운데의 내용이다. 그 윗문장에 ‘원컨대 더욱 일상생활 속에 일어나는 모든 언행의 사이에 스스로 規程을 세워 깊이 涵養해서 모름지기 氣質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공부를 삼기 바란다.’는 말씀이 있다. 程夫子의 이른바 ‘敬’이라는 것도 ‘衣冠을 바루고 생각을 專一하게 하며, 莊整齊肅하고 속이지 말고 태만하지 말라.’고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補註]三先生은 程子(伊川)와 謝上蔡, 尹和靖을 가리킨다. 《刊補》에는 四先生言敬之異로 표시하고 여기에 朱子까지 포함하였으나 원래 이 내용은 朱子에게 물은 것이므로 三先生이 옳으며, 《刊補》에서 朱子를 추가한 것은 退溪門人의 自意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79 [釋疑]覺軒蔡氏 : 이름은 模이고 字는 仲覺이니, 西山 蔡元定先生의 손자이고 九峯 蔡沈의 아들이다. 朱子가 이름과 字를 지어 주었다.
역주80 [釋疑]嘗卽其本原而深思之 …… 其太極之境界與 : 蔡氏는 처음에 動靜으로 말했는데, 周子의 ‘一이란 욕심이 없는 것’이라는 부분에 이른 뒤에는 오로지 靜 한쪽에만 歸屬시켜 太極의 경계로 끝맺었으니, 이른바 本原은 太極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역주81 [刊補]居敬所以精義也 : 살펴보건대 여기의 ‘精義’ 두 글자는 곧 窮理의 의미이니, 밖을 바르게 하는 ‘義以方外’와는 같지 않은 듯하다. 또 이 단락은 중점이 精義에 있으니, 程篁墩이 이를 인용하여 敬이 義의 근본이 되는 뜻을 밝힌 것이다.
역주82 : 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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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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