禮樂
은 不可斯須去身
이니 致樂以治心
이면 則
之心
이 油然生矣
요 易直子諒之心
이 生則樂
하고 樂則安
하고 安則久
하고 久則天
이요 天則神
이니 天則不言而信
하고 神則不怒而威
하나니 致樂以治心者也
니라
致禮以治躬則莊敬
하고 莊敬則嚴威
하나니 이 斯須不和不樂而鄙詐之心入之矣
요 外貌斯須不莊不敬而易慢之心入之矣
라
故樂也者
는 動於內者也
요 禮也者
는 動於外者也
니 樂極和
하고 禮極順
하야 內和而外順
이면 則民瞻其
而弗與爭也
요 望其
而民不生易慢焉
이라
故
하야 而民莫不承聽
하고 理發諸外
하야 而民莫不承順
이라
原注
樂由中出이라 故治心이요 禮自外作이라 故治躬이니라
原注
故
라하며 言忠信
하고 行篤敬
이면 雖蠻貊之邦
이라도 行矣
어니와 言不忠信
하고 行不篤敬
이면 雖州里
나 行乎哉
아
는 하면 하야 與天地同體
요 는 惟
持養
이니 及其至則一也
니라
原注
此是洛中語니 一處에 說作鞭約하니 大抵是要鞭督向裏去라
今人은 皆不是鞭督向裏하고 心都向外하니 恰似一隻船이 覆在水中이라
須是去翻將轉來라야 便得使니 吾輩는 須勇猛著力이니라
原注
○
이 問每日常遇事
엔 卽能知操存之意
어니와 無事時
엔 如何存養得熟
이닛고 曰
古之人이 耳之於樂과 目之於禮와 左右起居盤盂几杖에 有銘有戒하야 動息에 皆有所養이러니 今皆廢此하고 獨有理義之養心耳라
敬以直內는 是涵養意니 言不莊不敬이면 則鄙詐之心生矣요 貌不莊不敬이면 則怠慢之心生矣니라
原注
古者에 玉不去身하며 無故어든 不徹琴瑟하고 自成童入學하야 四十而出仕하니 所以敎養之者備矣라
故其才高者는 爲聖賢하고 下者亦爲吉士하니 由養之至也니라
原注
○ 伊川先生
이 甚愛表記
의 君子莊敬日强, 安肆日
之語
하더시니 은 纔放肆則日就曠蕩
하고 自檢束則日就規矩
니라
志
도 也强
이요 氣力
도 也强
이니 今人放肆
면 則
하나니 那得强
이리오
伊川云 人莊敬則日就規矩라하시니 莊敬이면 自是耐得辛苦하야 自不覺其日就規矩也리라
原注
孟子云 言非禮義를 謂之自暴라하시니 言非禮義는 是專道禮義是不好라
世上
에 有這般人
이 人做好事
하야 只道
이라하나니 這是他自恁地麤暴了
하야 更不通與他說
이라
하야는 也自道義理是好
라하고 也聽人說
호되 只是我做不得
이라
故伊川說 自暴者는 拒之以不信하고 自棄者는 絶之以不爲라하시니 自暴는 是剛惡이요 自棄는 是柔惡이니라
○ 問向所說自暴를 作自麤暴하야 與今集註暴害也로 不同이로소이다 曰
言非禮義를 謂之自暴는 如今人이 要罵道學一般이니 只說道這許多做好事之人이 自做許多模樣이라하나니
不知這道理是人人合有底하야 他自恁地非議하니 是他自害了這道理니라
今人
이 不肯做工夫
하니 有是覺得難後
에 遂不肯做
하며 有自知不可爲
하고 公然遜與他人
하야 하고 自己不願要
니라
原注
聖賢之敎 無一言一句不是入德門戶어니와 如所謂禮樂不可斯須去身者는 尤爲深切하니 眞當佩服存省하야 以終其身也니라
原注
心要平易하야 無艱深險阻니 所以說不和不樂則鄙詐之心入之矣요 不莊不敬則易慢之心入之矣니라
原注
問所謂敬之說
을 當用力
이니 誠不可怠惰
어니와 而
에 亦當隨時
라하야늘
某以爲嚮晦入宴息이 乃敬也니 知嚮晦宴息之爲非怠惰라야 乃可論敬之理矣라호라
原注
敬之一字 固難形容이니 古人所謂心莊則體舒, 心肅則容敬 此兩語를 當深體也니라
原注
莊은 謂嚴而重이요 肅은 謂靜而恭이니 氣象이 固不同也라
心嚴重則體安舒하고 心輕肆則體躁擾하니 以身驗之하면 斯可見矣리라
原注
①
이 初從
學
하더니 自言初見先生
하고 退
에 頭容少偏
이러니 安定
이 忽厲聲云 頭容直
이라하야시늘
某因自思호니 不獨頭容直이라 心亦要直也라하야 自此로 不敢有邪心호라
原注
② 元城劉氏 嘗擧司馬公讀三國志
하야 以語客
한대 客曰 非溫公識見
이면 不及此
니라
老先生
이 讀書
에 必具衣冠
하고 正坐莊色
하야 不敢懈怠
하야 惟以誠意讀之
하시니 誠之至者
는 可以開金石
이어든 況此
之事
는 一看
에 卽
也
니라
原注
明道先生
이 終日端坐
하야 如
人
이러시니 及至接人
하야는 則渾是
和氣
시니 이니라
原注
하니 非是欲字好
라 只此是學
이며 只此求放心
이니라
原注
橫渠先生
이 終日危坐一室
하사 左右簡編
을 俯而讀
하고 仰而思
하야 有得則
之
호되 或中夜起坐
하야 取燭以書
하시니 其志道精思 未始須臾息
이요 亦未嘗須臾忘也
시니라
原注
送伊川
할새 道宿僧舍
러니 坐處背
像
이어늘 先生
이 令轉椅勿背
하신대
霖曰
其徒敬之故
로 亦當敬邪
잇가 先生曰 但具人形貌
면 便不當嫚
이라하시니라
蓋象人而用之면 其流必至於用人이니 君子無所不用其敬이라
見似人者하고 不忽이면 於人을 可知矣니 若於似人而萌輕忽之心이면 其流必至於輕忽人이니라
原注
呂與叔
이 六月中
에 來
어늘 間居中
에 某
窺之
러니 必見其儼然危坐
하니 可謂敦篤矣
라
原注
學者常用提省此心
하야 使如日之升
이면 則羣邪自息
이니 光明廣大
라
自家只著些子力去하야 提省照管他便了요 不要苦著力이니 苦著力이면 反不是니라
原注
이 在洛
에 有書室
호되 兩旁
에 各一牖
요 牖各三十六槅
이러니
一은 書天道之要하고 一은 書仁義之道하고 中以一榜으로 書毋不敬, 思無邪하고 中處之하니 此意亦好니라
原注
晩歲片紙에 手書聖賢所示治氣養心之要하야 粘之屋壁하야 以自警戒하니
熹竊念前賢은 進修不倦하야 死而後已하니 其心炯炯을 猶若可識이니라
原注
이 問程先生
이 如此謹嚴
이어시늘 何故
로 諸門人
이 皆不謹嚴
이닛고하야늘
某答云 是程先生自謹嚴하시고 諸門人自不謹嚴이니 干程先生何事오하니
某所以發此者
는 正欲才卿
이 深思而得
하야 反之於己
하야 如針之箚身
하야 恐
하고 無地自存
하야 思其所以然之故
니라
原注
[按] 程門高弟에 如上文所記楊呂朱尹愼獨之事 可謂謹嚴矣어늘 陳氏乃有此問하니 當時必有所指로되 今不可考矣니라
原注
⑪ 先生病中
에 接應不倦
이어시늘 左右
한대 先生
이 厲聲曰 儞懶惰
하니 敎我也懶惰
로다
原注
今人所以懶는 未必眞箇怯弱이라 自是先有畏事之心하야 纔見一事에 便料其難而不爲하니 所以習成怯弱而不能有所爲也니라
原注
玉藻
處
를 子細體認
하야 待有意思
어든 却好讀書
니라
에 謂事之不近人情者
는 鮮不爲大姦慝
이라하니 每常嫌此句過當
이러니 今見得亦有此樣人
호라
某向年過江西
할새 與
對語
러니 而
하야 라가 被某罵云
原注
⑬ 陳才卿
이 一日侍食
이러니 先生曰 只易中
三字
를 人不曾行得
이니라
原注
⑭
이 請問
에 語聲
이 末後低
어늘 先生
이 不聞
하시고 因云
公
의 人
은 何故聲氣都恁地
하야 說得箇起頭
하고 後面懶將去
오
孔子曰
라하시니 公只管恁地
하면 下稍
에 見道理不分明
하야 將漸入於幽暗
하야 하야 不能到得正大光明之地
리니
說話는 須是一字是一字요 一句是一句하야 便要見得是非니라
原注
⑮ 有學者每相揖畢에 輒縮左手袖中이어늘 先生曰 公常常縮著一隻手하니 是如何오
原注
曰 僧家言 常常提起此志
하야 令堅强
이면 則坐得自直
하고 亦不昏困
이요 纔一縱肆
면 則
頹放矣
라하더이다 曰固是
니라
原注
⑰ 先生이 看糊窓云 有些子不齊整이면 便不是他道理라하야시늘
原注
[按]
이 於師友尋常日用之間
에 一毫不敢自肆如此
하니
類聚而觀에 有不惕然自警于心者면 眞所謂自暴自棄之人이니 不可與有爲矣니라
原注
樂之音이 和平中正이라 故致此以治心이면 則易直子諒이 油然而生하야 自不能已니
生則樂은 善端之萌에 自然悅豫也요 樂則安은 樂之然後에 安也요
安則久는 安之然後에 能久也요 久則天은 渾然天成하야 無所作爲也요
이리오마는 人自信之
는 以其不忒也
요 神雖不怒
나 人自畏之
는 以其不測也
라
故致此以治身이면 則自然莊敬이요 敬則自然嚴威니라
夫禮樂은 一也로되 以禮治身은 至于嚴威而止하야 不若樂之治心이 能至于天且神은 何也오
故禮以順之於外하고 而樂以和之於中이니 此表裏交養之功而養於中者 實爲之主라
中心斯須而不和樂이면 則鄙詐入之하고 外貌斯須而不莊敬이면 則易嫚入之라하니 善惡之相爲消長이 如水火然하야 此盛則彼衰也라
鄙詐易嫚이 皆非本有로되 而謂之心者는 和樂不存이면 則鄙詐入而爲之主하고 莊敬不立이면 則易嫚入而爲之主니 夫旣爲主於內면 非心而何오
猶汙泥非水也로되 撓而濁之도 是亦水矣니 此禮樂所以不可斯須去身也니라
16. 예기禮記 예악불가사수거신장禮樂不可斯須去身章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예악禮樂은 사수斯須(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되니, 악樂을 지극히 하여 마음을 다스리면 이직易直(평화롭고 정직함)과 자량子諒(慈諒:자애롭고 신실함)의 마음이 유연油然히(크게, 아름답게) 생겨나고 이직易直과 자량子諒의 마음이 생겨나면 즐겁고 즐거우면 편안하고 편안하면 오래하고 오래하면 천연적이고 천연적이면 신묘해지니, 천연적이면 말하지 않아도 믿고 신묘해지면 노여워하지 않아도 두려워하니, 이것이 악樂을 지극히 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예禮를 지극히 하여 몸을 다스리면 장경莊敬하고 장경하면 위엄이 있으니, 중심中心이 사수斯須라도 화락和樂하지 않으면 비사鄙詐(비루하고 속임)한 마음이 들어오고 외모外貌가 사수斯須라도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이만易慢(함부로 함)한 마음이 들어온다.
그러므로 악樂은 안에서 동動하고 예禮는 밖에서 동動하니, 악樂이 화和함을 지극히 하고 예禮가 순順함을 지극히 하여 안이 화하고 밖이 순하면, 백성들이 그 안색을 바라보고 서로 다투지 않으며 그 용모를 바라보고 감히 이만易慢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德의 빛남이 안에서 동하여 백성들이 받들어 따르지 않는 이가 없고, 이치가 밖에서 발하여 백성들이 받들어 순종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악禮樂의 도道를 지극히 하면 들어서 천하天下에 둠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原注
“화이和易하고 정직正直하고 자애子愛(慈愛)롭고 성실誠實한 것이다.”
原注
“치致는 깊이 살핌과 같고 유연油然은 새로 생겨나 아름다운 모양이다.
선善한 마음이 생기면 이욕利慾이 적어지고 이욕利慾이 적어지면 즐거워진다.”
原注
“악樂은 심중心中으로부터 나오므로 마음을 다스리고 예禮는 밖으로부터 일어나므로 몸을 다스리는 것이다.”
原注
“비사鄙詐한 마음이 들어온다는 것은 이욕利慾이 생김을 이른다.”
原注
“학문은 다만 편벽鞭辟(채찍질)하여 안(裏面)을 가까이 해서 자신에게 붙게 하기를 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이 그 가운데에 있다’고 하였으며,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만맥蠻貊의 나라라도 행해질 수 있거니와, 말이 충신忠信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지 못하면 비록 자기가 사는 주리州里(고향마을)라도 행해지겠는가.
서 있으면 이것(言忠信과 행독경行篤敬)이 앞에 참여함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이것이 멍에에 의지할 때에 보여야 하니, 그런 뒤에야 행해진다’ 하셨으니, 다만 이것이 학문學問이다.
자질資質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를 다하면 찌꺼기가 곧 완전히 변화變化하여 천지天地와 체體가 같아지고, 그 다음 사람은 오직 장경莊敬하여 잡아 기를 뿐이니,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똑같다.”
原注
“편벽鞭辟은 어떠한 것입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낙양洛陽지방의 말이니, 어떤 곳에서는 편약鞭約이라고도 하는 바, 대체로 채찍질하여 안을 향해 가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채찍질하여 안을 향하지 않고 마음이 모두 밖을 향하니, 흡사 한 척의 배가 물 속에 엎어져 있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 가서 뒤집어 놓아야만 곧 부릴 수 있으니, 우리들은 모름지기 용맹하게 힘을 써야 한다.”
原注
이단백李端伯(李籲)이 “매일 항상 일을 만날 때에는 조존操存하여야 하는 뜻을 알겠으나 일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여야 존양存養함이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옛사람은 귀가 악樂(음악)에 있어서와 눈이 예禮에 있어서와 좌우左右와 기거起居하는 곳과 반우盤盂(세수 그릇과 밥사발)와 궤장几杖(안석과 지팡이)에 명銘이 있고 경계하는 글이 있어서 동하고 쉼에 모두 기르는 바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을 모두 폐하고 오직 의리義理로 마음을 기르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이 함양涵養하는 뜻을 보존하여야 하니, 오래되면 저절로 익숙해질 것이다.
경敬하여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이 바로 함양涵養의 뜻이니, 말이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비사鄙詐한 마음이 생기고 외모가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태만한 마음이 생김을 말한 것이다.”
原注
“옛날에는 옥玉을 몸에서 제거하지 않았으며 연고가 없으면 거문고와 비파를 치우지 않았고, 성동成童의 때로부터 학교에 들어가서 40세가 되어야 나와서 벼슬하였으니, 교양敎養한 것이 구비되었다.
의리義理로써 마음을 기르고 예악禮樂으로써 혈기血氣를 길렀다.
이 때문에 재주가 높은 자는 성현聖賢이 되고 낮은 자도 착한 선비가 되었으니, 이는 기르기를 지극히 한 때문이다.”
原注
이천선생伊川先生은 《예기禮記》 〈표기表記〉의 ‘군자君子가 장경莊敬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사安肆(편안하고 방사)하면 날로 게을러진다’는 말을 매우 좋아하였으니, 보통사람의 마음은 조금만 방사放肆하면 날로 광탕曠蕩(방탕)한 데로 나아가고, 스스로 검속檢束하면 날로 규구規矩(법도)로 나아간다.
“강强함은 뜻이 강한 것입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뜻도 강하고 기력氣力도 강한 것이니, 지금 사람들은 방사放肆하면 날마다 하루보다 더 게을러지니, 어찌 강할 수 있겠는가.
이천伊川이 말씀하기를 ‘사람이 장경莊敬하면 날로 규구規矩로 나아간다’고 하였으니, 장경莊敬하면 저절로 신고辛苦를 인내하여 날로 규구規矩로 나아감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原注
“배우는 자가 소득이 있는 것은 굳이 경전經傳을 말하고 도道를 논하는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일을 행하고 용모를 동하며 주선함이 예禮에 맞는 데에서 얻어야 한다.”
原注
“게으른 뜻이 한 번 생기면 곧 자포자기自暴自棄이다.”
原注
“맹자孟子가 ‘말함에 예의禮義를 그르다 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한다’ 하셨으니, 말함에 예의禮義를 그르다고 하는 것은 오로지 예의禮義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서 남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여 다만 ‘사람들이 허다한 겉모양만 한다’고 비난하여 말하니, 이는 그 스스로 이렇게 거칠고 포악한 것이어서 다시는 그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自棄에 이르러서는 또한 스스로 의리義理가 좋다고 말하고 또 남의 말을 들으나 다만 ‘나는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自棄이니, 끝내 그와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천伊川이 말씀하기를 ‘자포自暴하는 자는 거절하여 믿지 않고 자기自棄하는 자는 끊어서(체념하여) 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자포自暴는 강한 악惡이요 자기自棄는 유약한 악惡이다.”
○ “지난번에 말씀할 때에는 자포自暴를 스스로 거칠고 포악한 것이라 하여, 지금 《집주集註》에 ‘폭暴는 해치는 것’이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해친다는 것이 옳으니, 백성을 해롭게 함이 심하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함에 예의禮義를 그르다고 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한다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도학道學을 매도罵倒(매도)하는 것과 똑같으니, 다만 허다하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는 스스로 허다한 모양만 한다고 비난하여 말한다.
이 도리道理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이처럼 비난하는 것이니, 이는 스스로 이 도리道理를 해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공부의 어려움을 깨달은 뒤에 마침내 하지 않으려는 자도 있고,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알고는 공공연히 타인他人에게 양보해서 재산을 물려주듯 하여 기꺼이 비퇴批退하고 자신은 하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이 하는 자도 있다.”
原注
“도道에 마음을 잠겨 두고 있다가 갑자기 딴 생각에 이끌려 가는 것은 바로 기氣이다.
옛습관에 얽매여서 깨끗이 벗어나지 못하면 필경 유익함이 없고 다만 옛습관만을 좋아할 뿐이다.
옛사람이 붕우朋友와 금슬琴瑟과 간편簡編을 얻고자 한 것은 항상 마음을 이 속에 두고자 해서였다.”
原注
“성현聖賢의 가르침은 한 말씀과 한 글귀가 덕德에 들어가는 문호門戶 아님이 없지만 이른바 ‘예악禮樂은 사수斯須(잠시)라도 몸에서 떠날 수 없다’는 말씀은 더욱 깊고 간절하니, 진실로 가슴속에 새겨두고 살펴서 몸을 마쳐야 할 것이다.”
原注
악樂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예禮로써 몸을 다스리는 것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마음이 평이平易하여 어렵고 깊고 험조險阻함이 없어야 하니, 이러한 연유로 마음이 화락和樂하지 않으면 비사鄙詐한 마음이 들어오고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이만易慢한 마음이 들어온다고 말한 것이다.”
原注
“이계수李季修가 묻기를 ‘이른바 경敬의 말씀을 마땅히 힘을 써야 하니, 진실로 게을리 할 수 없지만 향회嚮晦(날이 저묾)하여 연식宴息(편안히 쉼)하는 것도 마땅히 때를 따라야 합니다’ 하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향회嚮晦하여 들어가 연식宴息함이 바로 공경이니, 향회嚮晦하여 연식宴息하는 것이 태만함이 아닌 것을 알아야 비로소 경敬의 이치를 논할 수 있다’ 하였다.”
原注
“경敬 한 글자는 진실로 형용하기 어려우니, 옛사람의 이른바 ‘마음이 장엄하면 몸이 펴지고 마음이 엄숙하면 용모가 공경해진다’는 이 두 말을 마땅히 깊이 체득하여야 할 것이다.”
原注
“장莊은 장엄하고 중후함을 이르고 숙肅은 정숙靜肅하고 공손함을 이르니, 기상氣象이 똑같지 않다.
마음이 엄중하면 몸이 편안하고 펴지며 마음이 가볍고 방사하면 몸이 조급하고 분요紛擾하니, 몸으로써 징험해 보면 이것을 알 것이다.”
原注
① 절효서공節孝徐公(徐積)이 처음 안정安定 호선생胡先生(胡瑗)을 따라 배웠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처음 선생을 뵙고 물러나올 적에 머리 모양이 조금 기울자, 안정安定이 갑자기 큰 소리로 ‘머리 모양은 곧아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내가 이로 인하여 스스로 생각해 보니, 단지 머리 모양만 곧을 것이 아니라 마음 또한 곧아야 한다고 여겨져서 이로부터 감히 간사한 마음을 두지 못하였다.” 하였다.
原注
[按]경經(《禮記》)에 ‘예악禮樂은 사수斯須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곧 공자孔子의 이른바 ‘군자는 밥 한 그릇을 다 먹는 사이도 인仁을 떠남이 없으니, 조차造次라도 이에 반드시 하고 전패顚沛라도 이에 반드시 한다’는 것이다.
성학聖學의 터전은 반드시 이것을 삼가니, 밖을 제재함은 속마음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이제 대략 이 일을 뽑아 붙여서 스스로 경계하려 하는 바, 모두 18조목을 얻었다.
原注
② 원성유씨元城劉氏(劉安世)가 일찍이 사마온공司馬溫公(司馬光)이 《삼국지三國志》에 조조曹操가 유명遺命한 일을 읽고 말씀한 것을 들어 객客에게 말하자, 객이 말하기를 “온공溫公의 식견識見이 아니면 이에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노선생老先生(司馬光)이 책을 읽을 적에 반드시 의관衣冠을 갖추고는 바르게 앉아 얼굴빛을 장엄하게 하여 감히 게을리 하지 않고 오직 성의誠意로써 책을 읽으셨으니, 정성이 지극한 자는 금석金石도 열 수 있는데, 하물며 이 허탕虛蕩한 일쯤은 한 번 보면 곧 풀 수 있는 것이다.”
原注
“명도선생明道先生이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서 진흙으로 만든 소상塑像과 같으셨는데, 사람을 접견함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한 덩어리의 온화한 기운이셨으니, 이른바 ‘바라보면 엄숙하고 나아가면 온화하다’는 것이다.”
原注
선생先生이 배우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그대들은 내가 이와 같이 하는 것을 보라.
原注
“내가 글자를 쓰기를 매우 공경히 하니, 이는 글자를 아름답게 쓰려고 해서가 아니요, 다만 이것이 배움이며 다만 이것이 방심放心을 찾는 일이다.”
原注
“횡거선생橫渠先生이 종일토록 한 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좌우의 간편簡編을 머리를 숙여 읽고 우러러 생각하여 터득함이 있으면 기록하되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서 촛불을 밝히고 쓰셨으니, 도道에 뜻을 두고 생각을 정밀하게 함이 일찍이 잠시도 그친 적이 없었고 또한 일찍이 잠시도 잊은 적이 없으셨다.”
原注
“적림翟霖(적림)이 서쪽으로 귀양가는 이천伊川을 전송할 적에 도중에 승방僧房에서 유숙하였는데, 앉은 자리가 소상塑像(佛像)과 등지게 되어 있자, 선생은 의자를 돌려 등지지 않게 하였다.
적림翟霖이 말하기를 ‘그 무리(승려)들이 불상을 공경하기 때문에 또한 공경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자, 선생은 ‘다만 사람의 형모形貌를 갖추고 있으면 곧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였다.
나(龜山)는 인하여 이 말씀을 탄상歎賞하며 말하기를 ‘공자孔子께서 처음에 용俑을 만든 자는 후손後孫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 장례에 썼기 때문이다.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 장례에 사용하면 그 말류末流에는 반드시 산 사람을 사용함에 이를 것이니, 군자君子는 공경을 쓰지 않는 바가 없다.
사람과 비슷한 것을 보고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만약 사람과 유사한 것에 경홀히 하는 마음이 싹튼다면 그 말류末流에는 반드시 사람을 경홀히 하는 데에 이를 것이다’ 하였다.”
原注
“여여숙呂與叔(呂大臨)이 6월에 구지緱氏(구지)에 오셨는데 한가히 거처하는 중에 내 일찍이 엿보니, 반드시 엄숙히 무릎꿇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으니, 돈독하다고 이를 만하다.
다만 구박拘迫(억지로 구속하고 압박함)해서는 안되니, 구박하면 오래하기 어렵다.”
原注
“배우는 자가 항상 이 마음을 제성提省하여(일깨워) 떠오르는 태양太陽처럼 밝게 하면 여러 간사한 마음이 저절로 그칠 것이니, 이 마음은 본래 스스로 광명光明하고 광대廣大하다.
자신이 다만 조금만 힘을 붙여 나아가서 이것을 제성提省하고 조관照管하면 되는 것이요 굳이 괴롭게 힘을 쓸 것이 없으니, 괴롭게 힘을 쓰면 도리어 옳지 못하다.”
原注
“주공섬朱公掞(朱光庭)이 낙양洛陽에 있을 때에 서실書室을 장만하였는데, 양곁에 각각 창문이 하나씩 있고 창문에는 각각 36개의 창살이 있었다.
한 창문에는 천도天道의 요점을 쓰고 다른 창문에는 인의仁義의 도道를 쓰고 가운데에는 한 방榜에다가 ‘무불경毋不敬[공경하지 않음이 없음]’과 ‘사무사思無邪[생각함에 간사함이 없음]’를 쓰고는 이 가운데에 거처하였으니, 이 뜻이 또한 좋다.”
原注
“화정和靖 윤공尹公(尹焞)이 한 서실書室을 삼외재三畏齋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대인大人을 두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두려워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말년에 작은 종이에 성현聖賢이 보여주신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을 기르는 요점’을 손수 써서 집의 벽에 붙여 놓고 스스로 경계하였다.
내가 삼가 생각하건대 선현先賢들은 덕德을 진전시키고 업業을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여 죽은 뒤에야 그만두었으니, 그 마음의 밝고 밝음을 오히려 알 수 있을 듯하다.”
原注
“진재경陳才卿(陳文蔚)이 ‘정선생程先生이 이처럼 근엄하셨는데 무슨 연고로 여러 문인門人들은 모두 근엄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자,
내가 대답하기를 ‘정선생程先生은 그분대로 근엄하셨고 여러 문인門人들은 그들대로 근엄하지 않은 것이니, 정선생程先生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바로 재경才卿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터득해서 자기 몸에 돌이켜 침針이 몸을 찌르는 듯이 황공하고 분발하며 스스로 몸둘 곳이 없어서 소이연所以然의 연고를 생각하게 하고자 해서였다.”
原注
[按]정문程門의 고제高弟 중에 윗글에 기록한 바 양씨楊氏(楊時), 여씨呂氏(呂大臨), 주씨朱氏(朱光庭), 윤씨尹氏(尹焞)의 신독愼獨한 일이 근엄하다고 이를 만한데, 진씨陳氏가 마침내 이러한 질문이 있었으니, 당시에 반드시 〈어떤 일을〉 가리켜 말한 바가 있었을 것이나 지금 상고할 수가 없다.
原注
⑪ 선생先生(朱子)이 병환 중에도 사람들을 응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자, 좌우左右 사람들이 조금 절제節制할 것을 청하니, 선생은 큰 소리로 말씀하기를 “너희들이 게으르니, 나까지도 게으르라고 가르치는구나.”하였다.
原注
그러므로 비록 병을 심하게 앓더라도 또한 한 마음으로 예전처럼 일을 하려 하노라.
지금 사람들이 게으른 까닭은 반드시 참으로 겁내고 나약해서가 아니요, 본래 먼저 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겨우 한 가지 일을 보면 곧 그 어려움을 생각하여 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겁내고 나약한 습관을 이루어서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原注
⑫ 요진경廖晉卿이 “무슨 책을 읽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공公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한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의 구용九容을 자세히 체인體認하여 의사意思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변간론辨姦論〉에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은 일은 큰 간악함이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하였으니, 나는 언제나 항상 이 구句가 과당過當(지나침)하다고 혐의하였는데, 이제 보니 또한 이러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지난 해 강서江西를 지날 적에 육자수陸子壽(陸九齡)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유순수劉淳叟(劉堯夫)가 홀로 뒷편의 구석으로 가서 도가道家의 타좌打坐(跏趺坐)하는 법法을 배우다가 나에게 꾸짖음을 당하였다.
그때 나는 꾸짖기를 ‘곧 나와 육장陸丈의 말이 들을 만하지 못하지만 또한 몇 살이 더 많으니, 무슨 연고로 이처럼 괴이한 짓을 하는가’ 하였노라.”
原注
⑬ 진재경陳才卿이 하루는 주선생朱先生을 모시고 음식을 먹었는데, 선생先生이 말씀하기를 “다만 《주역周易》의 ‘절음식節飮食[음식을 절제하라]’ 세 글자를 사람들이 일찍이 이행하지 못한다.” 하였다.
原注
⑭ 섭하손葉賀孫이 물을 적에 말소리가 끝부분이 낮아지자, 선생先生이 듣지 못하고 인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공公의 선향仙鄕사람들은 무슨 연고로 목소리가 모두 이와 같아서 기두起頭만 말하고 후면後面에는 게을러지는가?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군자君子는〉 말소리를 들어보면 분명하다’ 하셨으니, 공公이 다만 이렇게 어물어물하면 하초下稍(종말)에는 도리道理를 봄이 분명치 못하여 장차 점점 유암幽暗한 데로 들어가서 함함호호含含胡胡(흐리멍텅)하여 정대正大하고 광명光明한 곳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말은 모름지기 한 자字는 한 자字가 되고 한 구句는 한 구句가 되게 해서 곧 옳고 그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原注
⑮ 배우는 자가 매번 상읍례相揖禮(서로 읍揖하는 예)가 끝나면 곧 왼손을 소매 속에 움츠려 넣자, 선생이 말씀하기를 “공公은 항상 한 쪽 손을 움츠리고 있으니, 어째서인가?
또한 거지擧止하는 모양(올바른 행동거지)이 아닌 듯하다.” 하였다.
原注
⑯ 모시고 앉았다가 피곤하여 조는 자가 있으므로 선생先生이 꾸짖었다.
이에 심경자沈敬子가 말하기를 “승가僧家(佛家)에서 말하기를 ‘항상 이 마음을 제기提起하여(일깨워) 견고하고 강하게 하면 앉는 자세가 저절로 곧아지고 정신 또한 어둡거나 피곤하지 않으며, 잠시라도 한 번 방종하면 멍하니 쓰러진다’ 하였습니다.” 하자, 선생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하였다.
原注
⑰ 선생先生이 창문을 바르는 것을 보고는 말씀하기를 “조금이라도 가지런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곧 도리道理가 아니다.” 하였다.
주계역朱季繹이 “보기 좋게 하려면 밖에서 발라 〈사람들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자, 황직경黃直卿이 말하기를 “이는 스스로 속이는 단서이다.” 하였다.
原注
[按]선정先正(先賢)들은 사우師友들이 심상한(대단치 않은) 일상생활의 사이에 있어 일호一毫라도 감히 스스로 방사放肆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이것을 유類로 모아 보면서도 척연惕然히 스스로 마음에 경계하지 않음이 있다면 참으로 이른바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사람이란 것이니,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原注
“옛날 군자君子는 예악禮樂으로써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근본을 삼았다.
그러므로 예악禮樂을 사수斯須(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지 않게 한 것이니, 치致는 지극함을 다함을 이른다.
음악 소리가 화평和平하고 중정中正하므로 이것을 지극히 하여 마음을 다스리면 이직易直과 자량子諒(慈諒)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생겨서 저절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생기면 즐겁다[生則樂]’는 것은 선善한 마음이 싹틈에 자연 기뻐지는 것이요, ‘즐거우면 편안하다[樂則安]’는 것은 즐거운 뒤에 편안한 것이요,
‘편안하면 오래다[安則久]’는 것은 편안한 뒤에 오래할 수 있는 것이요, ‘오래하면 천연天然[久則天]’이라는 것은 혼연渾然(완전)히 천연天然으로 이루어져서 작위作爲하는 바가 없는 것이요,
‘천연天然이면 신묘해진다[天則神]’는 것은 변화가 일정한 방체方體(方所와 형체形體)가 없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마는 사람들이 스스로 믿는 것은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요, 신神이 비록 노여워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은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生‧낙樂‧구久‧안安은 맹자孟子의 이른바 선善‧신信‧미美‧대大와 같으니 천연天然이 되고 또 신묘함에 이르면 대인大人이 되어서 화化하는 것이다.
예禮는 공검恭儉과 퇴손退遜(겸손)을 근본으로 삼고 절문節文과 도수度數의 상세함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지극히 하여 몸을 다스리면 자연 장경莊敬해지고, 장경莊敬하면 자연 위엄威嚴이 있는 것이다.
예禮와 악樂은 똑같은 것인데 예禮로써 몸을 다스림은 위엄威嚴에 이르고 그칠 뿐이어서 악樂의 마음을 다스림이 천연天然하고 신묘神妙함에 이름만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몸을 다스려 위엄威嚴에 이르면 또한 자연自然이니, 그 효험이 일찍이 다르지 않다.
다만 악樂은 사람에게 있어서 기질氣質을 변화하여 그 찌꺼기를 사라지게 하고 녹인다.
그러므로 예禮로써 외면을 순하게 하고 악樂으로써 마음을 화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겉과 속을 서로 기르는 공부인데 마음속에 기름이 실로 주主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聖門의 가르침이 서는 것은 예禮로써 하고 완성은 악樂으로써 하는 것이니, 예禮를 기록하는 자가 그 효험을 미루어 밝히기를 또한 이와 같이 지극히 하였을 뿐이다.
이에 또 말하기를 ‘몸과 마음이 주장이 없으면 사특함이 틈타기가 쉽다.
중심中心이 사수斯須라도 화락和樂하지 않으면 비사鄙詐한 마음이 들어오고 외모가 사수斯須라도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이만易慢한 마음이 들어온다’ 하였으니, 선善과 악惡이 서로 사라지고 자라남은 마치 물과 불과 같아서 이것이 성하면 저것이 쇠한다.
비사鄙詐와 이만易慢은 모두 마음속에 본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것을 마음이라 이른 것은 화락和樂한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비사鄙詐가 들어와서 주장이 되고, 장경莊敬한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이만易慢이 들어와서 주장이 되기 때문이니, 이미 안에 주장이 된다면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진흙은 물이 아니나 흔들어서 흐려진 것도 이 또한 물인 것과 같으니, 이것이 예악禮樂을 사수斯須라도 몸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1
1. 예악불가사수거신장(1)
1494
2
1. 예악불가사수거신장(2)
110
3
1. 예악불가사수거신장(3)
112
4
1. 예악불가사수거신장(4)
23
5
1. 예악불가사수거신장(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