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心經附註

심경부주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心經附註 第2卷
14. 大學
大學所謂 毋自欺也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 此之謂自이니
故君子니라
小人閒居 爲不善호되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 厭然揜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이니 則何益矣리오
此謂誠於中이면 形於外
故君子 必愼其獨也
이라 心廣體胖하나니
故君子 必誠其意니라
讀爲慊이니라
原注
[原註]
○ 朱子曰
獨者 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
言欲自修者 知爲善以去其惡이어든 則當實用其力하야 而禁止其自欺하야 使其惡惡則如惡惡臭하고 好善則如好好色하야 皆務決去而求必得之하야 以自快足於己 不可徒苟且以徇外而爲人也
然其實與不實 蓋有他人所不及知而己獨知之者
故必謹之於此하야 이니라
原注
○ 鄭氏曰
讀爲黶이니 閉藏貌也
原注
○ 朱子曰
厭然 銷沮閉藏之貌
言小人 陰爲不善而陽欲揜之하니 則是非不知善之當爲與惡之當去也로되 但不能實用其力하야 以至此爾
然欲揜其惡而卒不可揜하고 欲詐爲善而卒不可詐하니 則亦何益之有哉리오
此君子所以重以爲戒하야 而必謹其獨也니라
原注
○ 又曰
心無愧怍이면 則廣大寬平하야 而體常舒泰니라
原注
[附註]
○ 程子曰
有天德이라야 便可語王道 其要 只在謹獨이니라
原注
朱子曰
有天德이면 便是天理 便做得王道 無天德이면 便是私意 是計較 人多無天德이라 所以做王道不成이니라
天德 卽正心修身之謂 王道 卽齊家治國平天下之謂 謹獨 卽誠意之謂 此章 乃大學一篇緊要之處니라
原注
○ 又曰
有人 胸中 常若有兩人焉하야 欲爲善 如有惡以爲之間하고 欲爲不善 又若有羞惡之心者하니 本無二人이라 此正交戰之驗也
持其志하야 使氣不能亂이니 이라
컨댄 이시니라
原注
或問 方持志之時 二者猶交戰于胸中이면 則奈何잇가 南軒張氏曰
持志者 主一之謂 若持志之時 二者猶交戰于胸中이면 不能主一也 志不立也일새니라
原注
○ 又曰
欲知得與不得인댄 於心氣上 驗之 思慮有得 中心悅豫하야 沛然有裕者 實得也 思慮有得 心氣勞耗者 實未得也 强揣
嘗有人 言 比因學道思慮하야 心虛라한대
하니 疾病之來 聖賢 所不免이어니와
然未聞自古聖賢 因學而致心疾者로라
原注
[按] 所摭二條 皆誠意章事
然皆以心病爲言하니 蓋恐學者持之太過而又不可失其所有事
必如孟子所謂勿忘勿助하야 而馴致于心廣體胖이라야 乃有得耳니라
原注
見溫公하고 問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한대 公曰 其誠乎인저
劉初甚易之러니 及退而自日之所行 與凡所言하니 自相者多矣
力行七年而後成하니 自此 言行一致하고 表裏相應하야 遇事坦然하야 常有餘裕러라
原注
朱子曰
誠之爲言 實也
然經傳用之 各有所指하니 不可一槩論이라
如周子謂誠者聖人之本 蓋指實理而言이니 卽中庸所謂天下至誠者 指人之實有此理者而言也
溫公所謂誠 卽大學所謂誠其意者 指人之實其心而不自欺者也니라
○ 西山眞氏曰
溫公之所謂誠 主於不欺詐, 無矯僞하니 正學者立心之初 所當從事者 非指誠之至者而言也니라
原注
人心 至難測也
孰不欲謂己君子리오마는 而多不免爲常人하고 或陷于大惡者 患在心違其貌而安於自欺也
夫人 하고 하고 하고 하니 其心一動 雖甚微也 而形於外者 已不可揜 如此어늘
彼小人 乃欲揜其不善於君子之前하니 當其念已不善而思揜之 則不善之念 已誠乎中이라
旣誠乎中이면 則必有自匿 不慊之微情 呈露于言意態度之間하리니 自以爲人莫我知也 而不知人已得其所謂不可揜者 如見其肺肝이니
嗚呼
自欺孰甚焉
此予之所以爲懼而思戒하야 必以愼獨名座右也로라
原注
[按] 范氏 莫知其師承이나하시니 其學 誠有得于孟子
故於論心處 多警切하야 與濂洛之語 相出入하니 蓋不獨心箴也니라
原注
하시되 看大學自欺之說 如何 曰 不知義理하고 却道我知義理 是自欺니이다
朱子曰
自欺 是箇半知半不知底人 知道善我所當爲로되 却又不十分去爲善하고 知道惡不可作이로되 却又是自家所愛 舍他不得이니 這便是自欺
只喚做不知不識이요 니라
原注
自欺 恰如 不可不謂之金이로되 只是欠了分數
如爲善 有八分欲爲하고 有兩分不爲 此便是自欺 是自欠了分數
荀子曰 心臥則夢하고 則自行하고 使之則謀라하니
某自十六七讀時 便曉得此意호니 蓋偸心 是不知不覺 自走去하야 不由自家使底
佛家 亦有所謂하니 他最怕這箇하나니
潙山禪師云 某參禪幾年이로되 至今斷得流注想이라하니 此卽荀子所謂偸則自行之心也니라
原注
○ 問自欺한대
謂心之所發 不知不覺地 陷於自欺 非是陰有心於爲惡而詐於爲善하야 以自欺也
如公之言인댄 須是鑄私錢, 라야 方爲自欺 無狀小人이라
豈自欺之謂邪리오
此處工夫 極細在하니 未便說到
原注
誠於中이면 形於外
那箇形色氣貌之見於外者 決不能欺人이니 自欺而已
這樣底 永無緣做得好人이니 爲其無爲善之地也니라
原注
○ 又曰
學者須是爲己 譬如喫飯
寧可하고 報人道호되 我家有許多飯 爲是乎
近來學者 多是以自家合做底事 報與人하고 只是將義理하야 略從하야 却翻出許多說話하나니 如此者 이니 니라
原注
○ 又曰
誠意이니 過此一關이라야 方會進이니라
原注
此章 分別君子小人 甚嚴하니
蓋誠意爲善惡關이니 過得此關이라야 方是君子 過不得此關이면 猶是小人이니
傳末章 長國家而務財用之小人 卽此閒居爲不善之小人也
意有不誠이면 已害自家心術이니 他日用之 爲天下國家害也 必矣니라
原注
問於朱子曰
周子云 誠無爲 幾善惡이라하시니 明人心未發之體而指已發之端이라
蓋欲學者 致察於萌動之微하야 知所決擇而去取之하야 以不失乎本心之體而已어늘
或疑之하야 以謂有類於同體異用之云者일새 遂妄以意 揣量爲圖如后하노이다
善惡 雖相對 當分賓主 天理人欲 雖分泒 必省宗孽이니
自誠之動而之善이면 則如木之自本而榦, 自榦而末하야 上下相達者 則道心之發見 天理之流行이니 此心之本主而誠之正宗也
其或旁榮側秀하야 이나이요 私欲之流行이니 所謂惡也
非心之固有 蓋客寓也 非誠之正宗이요 蓋庶孽也
苟辨之不早하고 擇之不精이면 則客或乘主하고 孽或代宗矣리라
學者能於萌動幾微之間 察其所發向背하야 凡直出者爲天理 旁出者爲人欲이며 直出者爲善이요 旁出者爲惡하야 而於直出者하고 旁出者 遏絶之하야 功力旣至 則此心之發 自然出於一途而保有天命矣리라
於此 可見未發之前 有善無惡이니 而程子所謂不是性中 元有此兩端 相對而生者 蓋謂此也
若以善惡으로 爲東西相對하고 彼此角立이면 則是天理人欲 同出一原하야 未發之前 已具兩端이니 所謂天命之性 亦甚汙雜矣리라
此胡氏同體異用之說也라한대
原注
[按] 然其所謂幾善惡 與朱子所謂謹獨而審其幾 一也
此圖極有益于誠意之學者일새 謹附著之하노라


심경부주心經附註 제2권
14. 대학大學 성의장誠意章
대학大學》의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마는 것이니, 을 미워하기를 악취惡臭를 싫어하듯이 하고 을 좋아하기를 호색好色을 좋아하듯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자겸自慊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
소인小人은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한 짓을 하되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불선不善함을 가리고 함을 드러낸다.
남들이 자기를 보기를 그의 폐부肺腑를 보듯이 할 것이니, 그렇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중심中心에 진실(가득)하면 외면外面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말씀하기를 “열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무섭구나!” 하였다.
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이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으로 읽는다
原注
[原註]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은 남은 알지 못하고 자기만 홀로 아는 곳이다.
스스로 닦고자 하는 자가 〈격물치지格物致知하여〉 을 하고 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으면 마땅히 실제로 그 힘을 써서 자기自欺함을 금지하여, 가령 을 미워함에는 악취惡臭를 싫어하듯이 하고 을 좋아함에는 호색好色을 좋아하듯이 하여, 모두 힘써 결단하여 버리고 구함에 반드시 얻어서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하게 해야 할 것이요, 한갓 구차하게 외면外面을 따라 남을 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실하고 성실하지 못함은 남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홀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을 삼가서 그 기미幾微를 살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原注
정씨鄭氏(鄭玄)가 말하였다.
(암)으로 읽으니, 은 은폐하고 감추는 모양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염연厭然소저銷沮(의기소침)하여 은폐하고 감추는 모양이다.
이는 소인小人이 속으로 불선不善한 짓을 하고는 겉으로 이것을 감추고자 함을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이것은 을 해야 함과 을 제거해야 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다만 실제로 힘을 쓰지 못하여 이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을 가리려고 해도 끝내 가릴 수가 없고 거짓으로 을 하려고 해도 끝내 속일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또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이 군자君子가 거듭 경계하여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까닭인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광대廣大하고 관평寬平하여 몸이 항상 펴지고 편안하다.”
原注
[附註]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천덕天德이 있어야 곧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으니, 그 요점은 다만 신독愼獨에 있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천덕天德이 있으면 곧 천리天理이니 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고, 천덕天德이 없으면 곧 사사로운 마음이어서 〈이해利害를〉 계교計較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대부분 천덕天德이 없기 때문에 왕도王道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쌍봉요씨雙峯饒氏(饒魯)가 말하였다.
천덕天德은 곧 정심正心수신修身을 이르고 왕도王道는 곧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이르며 근독謹獨은 곧 성의誠意를 이르니, 이 은 바로 《대학大學》 한 편의 요긴한 부분이다.”
原注
정자程子가 또 말씀하였다.
“어떤 사람이 가슴속에 항상 두 사람이 있는 듯하여, 을 하려고 하면 이 가로막는 듯하고 불선不善을 하려고 하면 또 수오羞惡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니, 본래 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바로 이 서로 싸우는 징험이다.
뜻을 잡아 지켜서 로 하여금 혼란하지 않게 하여야 하니, 이것을 여기에서 크게 징험할 수 있다.
요컨대 성현聖賢은 반드시 마음의 병에 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
原注
혹자가 “막 뜻을 잡아 지키고 있을 때에 두 가지가 오히려 가슴속에서 서로 싸우면 어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남헌장씨南軒張氏가 말하였다.
“뜻을 잡아 지킨다는 것은 한 가지를 주장함을 이르니, 만약 뜻을 잡아 지키고 있을 때에 두 가지가 오히려 가슴속에서 서로 싸운다면 이는 한 가지를 주장하지 못한 것이니, 뜻이 서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原注
정자程子가 또 말씀하였다.
(터득함)과 부득不得(터득하지 못함)을 알고자 한다면 심기心氣 에서 징험하여야 하니, 사려하여 터득함이 있을 적에 중심中心이 기뻐져서 패연沛然하게 여유가 있는 것은 실제로 터득한 것이고, 사려하여 터득함이 있을 적에 심기心氣가 피로한 것은 실제로 터득하지 못한 것이니, 억지로 헤아린 것일 뿐이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근래에 를 배우고 사려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허약해졌다.”고 말하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의 혈기血氣는 진실로 허약하고 충실한 차이가 있으니, 질병이 오는 것은 성인聖人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성현聖賢이 학문으로 인하여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原注
[按]위에 뽑은 두 조목은 모두 성의장誠意章의 일이다.
그러나 모두 마음의 병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이는 배우는 자가 마음을 잡아 지키기를 너무 지나치게 할까 두렵고, 또 일삼음이 있는 것을 잃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반드시 맹자孟子의 이른바 ‘잊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말라’는 것과 같이 하여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짐을 점점 이루어야 비로소 얻음이 있을 것이다.
原注
유충정공劉忠定公(劉安世)이 사마온공司馬溫公을 뵙고는 마음을 다하고 몸을 행하는 요점 중에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자, 은 “일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또다시 “이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하였다.
유충정공劉忠定公이 처음에 이것을 매우 쉽게 여겼는데, 물러 나와서 스스로 날마다 행하는 바와 말하는 바를 법도에 맞춰 보니, 서로 제지당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7년 동안 힘써 행한 뒤에야 완성되었으니, 이로부터 말과 행실이 일치되고 안과 밖이 서로 응해서 일을 만나면 평탄하여 항상 여유가 있었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란 말(글자)은 성실함이다.
그러나 경전經傳에서 이를 사용함에 각각 가리킨 바가 있으니, 일괄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예컨대 주자周子가 ‘성인聖人의 근본’이라고 한 것은 진실한 이치를 가리켜 말씀한 것인 바, 바로 《중용中庸》의 이른바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자’라는 것이니, 사람이 실제로 이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한 이라는 것은 바로 《대학大學》의 이른바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이니, 사람이 그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스스로 속이지 않음을 가리킨 것이다.”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이른바 이라는 것은 속이지 않고 거짓으로 꾸미지 않는 것을 주장하였으니, 바로 배우는 자가 마음을 세우는 초기에 마땅히 종사하여야 하는 것이요, 이 지극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다.”
原注
난계범씨蘭溪范氏(范浚)가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헤아리기 어렵다.
누군들 자기를 군자君子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대부분 보통사람이 됨을 면치 못하고 혹은 대악大惡에 빠지는 것은 마음이 용모와 어긋나 스스로 속이는 것을 편안히 여기는 데에 병통이 있다.
사람이 죽이려는 마음이 있으면 곧 소리(음악)에 나타나고 불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얼굴빛에 나타나며,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눈동자가 움직이고 말소리가 제멋대로 나오며 딴 마음이 있으면 먼 곳을 바라보고 발을 높이 드니, 마음이 한 번 동하는 것이 비록 매우 미미하나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은폐할 수 없음이 이와 같다.
그런데 저 소인小人들은 마침내 자신의 불선不善군자君子의 앞에서 은폐하려고 하니, 그 생각이 이미 불선不善한데 은폐할 것을 생각한다면 불선不善한 생각이 이미 마음속에 진실(가득)한 것이다.
이미 마음속에 진실하면 반드시 스스로 속여서 만족스럽지 못한 은미隱微실정實情이 말뜻과 태도에 드러남이 있을 것이니, 사람들이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이른바 ‘은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를 그 폐간肺肝을 들여다보듯이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
스스로 속임이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이 때문에 나는 두려워하여 경계할 것을 생각해서 반드시 신독愼獨좌우명座右銘으로 삼는 것이다.”
原注
[按]범씨范氏는 스승의 전승傳承을 알 수 없으나 주자朱子가 그의 〈심잠心箴〉을 취함이 있었으니, 그의 학문은 진실로 맹자孟子에게서 얻은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마음을 논한 부분에 경계하고 절실한 것이 많아 염락濂洛의 말과 서로 출입出入하니, 비단 〈심잠心箴〉 뿐만이 아니다.
原注
주자朱子유련劉楝에게 “《대학大學》의 자기自欺라는 말을 어떻게 보는가?” 하고 물으니, “의리義理를 알지 못하면서 도리어 내가 의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자기自欺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자기自欺는 반은 알고 반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을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또 십분十分 가서 을 하지 않고, 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어서 이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기自欺이다.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할 뿐이요 자기自欺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자기自欺는 다만 스스로 분수分數가 부족한 것이니, 흡사 순도純度가 낮은 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다만 푼수가 부족한 것과 같다.
만약 을 할 적에 8을 하려 하고 2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이 곧 자기自欺이니, 이는 스스로 분수分數가 부족한 것이다.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마음은 누워 있으면 꿈을 꾸고, 몰래 도망가면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부리면 도모(생각)한다.’하였다.
나는 16, 17세에 이 글을 읽을 때부터 곧 이 뜻을 깨달았으니, 몰래 도망가는 마음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도망가서 자신의 부림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불가佛家에 또한 이른바 ‘유주상流注想’이란 것이 있으니, 저들은 이것을 가장 두려워(싫어)한다.
위산선사潙山禪師가 말하기를 ‘내가 몇 년동안 참선參禪하였으나 지금까지도 유주상을 끊지 못하였다’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순자荀子의 이른바 ‘몰래 도망가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는 마음이다.”
原注
자기自欺를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마음이 발하는 것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自欺에 빠지는 것을 이르니, 속으로 을 하는 데에 마음을 두고서 거짓으로 을 하여 스스로 속이는 것은 아니다.
의 말 대로라면 반드시 사전私錢주조鑄造하고 관회官會(관청에서 만드는 지폐)를 위조僞造하여야 비로소 자기自欺가 되는 것이니, 이는 불초不肖소인小人이다.
어찌 자기自欺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이 공부는 지극히 세미한 것이 있으니, 곧바로 거친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전후前後의 학자들이 잘못 말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은 아랫글의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한 짓을 한다’는 한 단락에 속아서 잘못 보기 때문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마음속에 진실하면 외면外面에 나타난다.
형색形色기모氣貌가 외면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남을 속일 수가 없으니, 다만 자신을 속일뿐이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을 행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여야 하니, 비유하면 밥을 먹을 적에 조금씩 먹어서 배부르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밥을 헤쳐 문밖에 늘어놓고 남에게 ‘우리 집에 밥이 많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근래에 배우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루어 주고는 다만 의리義理를 가져다가 간략히 가슴속을 통과하고 허다한 말을 이리저리 만들어낼 뿐이니, 이와 같은 자는 다만 자신을 위하지 않고 보기 좋은 것만을 도모하는 것이니, 예컨대 남월왕南越王황옥黃屋좌독左纛으로 애오라지 스스로 즐길 뿐인 것과 같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성의誠意는 바로 관문關門이니, 이 한 관문을 통과하여야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
原注
운봉호씨雲峯胡氏(胡炳文)가 말하였다.
“이 에서 군자君子소인小人을 분별함이 매우 엄격하다.
성의誠意선악善惡관문關門이 되니, 이 관문을 통과하여야 비로소 군자君子가 되고,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소인小人이다.
전문傳文의 마지막 에 ‘국가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재용財用을 힘쓰는 소인小人’이란 바로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한 짓을 하는 소인小人’이다.
뜻이 성실하지 못함이 있으면 이미 자신의 심술心術을 해치니, 후일에 그를 등용하면 천하天下국가國家의 폐해가 될 것이 틀림없다.”
原注
조치도趙致道주자朱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주자周子가 말씀하기를 ‘은 함이 없고 선악善惡이 있다’하셨으니, 이는 인심人心미발未發했을 때의 를 밝혀 이발已發했을 때의 단서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는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마음이 싹터 동하는 은미한 데에서 살피기를 지극히 하여, 결정하고 선택할 바를 알아서 버리고 취하여 본심本心를 잃지 않게 하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의심하여 호자胡子(胡宏)의 ‘는 같으나 은 다르다’는 말과 유사하다고 여기므로 마침내 망령되이 마음대로 헤아려서 다음과 같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이 비록 상대가 되나 를 나누어야 하고, 천리天理인욕人欲이 비록 를 나누나 (종자)과 (서자)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이 동함으로부터 으로 가면 나무가 뿌리에서 줄기에 이르고 줄기에서 끝에 이르러 상하上下가 서로 통함과 같으니, 이는 도심道心의 발현이요 천리天理의 유행이니, 이는 마음의 본주本主이고 정종正宗입니다.
혹 옆에서 나와 꽃이 피고 곁에서 빼어나 기생寄生하는 겨우살이나 사마귀와 혹과 같은 것은 이것도 비록 이 동한 것이기는 하나 인심人心의 발현이요 사욕私慾의 유행이니, 이른바 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에 고유固有한 것이 아니고 나그네가 붙여있는 것이며, 정종正宗이 아니고 서얼庶孼입니다.
만일 일찍 분변하지 않고 하게 선별하지 않으면 객이 혹 주인을 타고 서얼이 혹 종자를 대신할 것입니다.
배우는 자가 마음이 싹터 동하는 기미幾微의 사이에 발한 바의 향배向背를 살펴서, 무릇 곧게 나온 것은 천리天理가 되고 곁에서 나온 것은 인욕人欲이 되며 곧게 나온 것은 이 되고 곁에서 나온 것은 이 됨을 알아서, 곧게 나온 것은 순히 인도하고 곁에서 나온 것은 끊어버려 공력功力이 이미 지극하면 이 마음의 발함이 자연 한 길에서 나와 천명天命보유保有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발未發의 전에는 만 있고 이 없음을 볼 수 있으니, 정자程子의 이른바 ‘ 가운데에 원래 두 가지가 상대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만약 西가 상대하고 가 버티고 서 있는 것처럼 여긴다면 이는 천리天理인욕人欲이 함께 한 근원에서 나와 미발未發의 전에 이미 두 가지 단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니, 이른바 ‘천명天命’이라는 것도 또한 매우 더럽고 잡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호씨胡氏의 ‘는 같으나 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주자朱子가 말씀하기를 “이 말이 맞는다.” 하였다.
原注
[按]주자周子가 말씀한 ‘’은 비록 《대학大學》의 과 뜻이 다르나, 이른바 ‘기선악幾善惡’이라는 것은 주자朱子의 이른바 ‘홀로를 삼가서 그 기미를 살핀다’는 것과 똑같다.
이 그림은 뜻을 성실히 하는 학문에 지극히 유익하므로 삼가 붙인다.


역주
역주1 誠意章 : 《大學章句》 傳6章에 보인다.
역주2 [釋疑]誠其意 : 性은 마음의 體이니, 펴져서 시행하고 發用하는 것은 情이고, 情이 발함으로 인하여 경영하고 헤아려서 주장하여 이와 같이 하려고 하는 것은 意이다. 그러나 情은 자연히 나오는 것이어서 힘쓸 곳이 없고, 意는 헤아리고 운용하는 것이어서 사람의 힘을 용납한다. 그러므로 誠情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誠意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3 : 慊
역주4 [刊補]愼其獨 : 묻기를 “첫 구절에 愼其獨을 말한 다음, 아래 문단에서 또 거듭 이것을 말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위의 獨字는 ‘마음의 獨’으로 해석하고 아래의 獨字는 ‘몸의 獨’으로 해석하는데, 張謹은 ‘이는 아마 옳지 않을 듯하다. 첫 구절 獨字의 訓詁 아래에 陳定宇(新安陳櫟)는 이르기를 「이 獨字는 마음이 홀로 아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몸이 홀로 거처하는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또 閒居에 대한 訓詁 아래에 「이는 몸이 홀로 거처하는 곳이니, 윗 문장의 己所獨知의 獨과는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이 대부분 이 말에 현혹되어 本意를 살피지 않고 억지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 이는 陳定宇의 두 說이 애당초 위아래 獨字의 뜻을 辨別한 것이 아니요, 단지 閒居의 뜻과 愼獨의 獨에 구별이 있음을 辨別한 것임을 전혀 몰라서이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陳定宇의 本意가 아닐 뿐만 아니라 朱子 章句의 뜻도 잃게 된다. 다음 구절에서 愼其獨 한 句를 訓詁하여 「君子는 그런 까닭에 거듭 경계하여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간다.[君子所以重以爲戒而必謹其獨也]」 하였으니, 지금 이 所以字와 重字, 必字를 자세히 살펴보면 윗구절에서는 愼其獨을 毋自欺의 工夫로 삼았고, 아랫문단에서는 小人이 自欺하는 폐단을 말해서 삼가지 않을 수 없음을 경계한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愼其獨으로 결론지은 것이니, 별도로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하였는데, 이 말이 믿을 만합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誠意章의 두 獨字에 대해서 지금 사람들은 陳定宇의 말을 잘못 보고 몸과 마음으로 분별하는데, 나 역시 과거에는 그 말을 따르다가 근래에야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張謹의 말이 옳다.” 하였다.
역주5 [釋疑]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 己와 肺肝은 모두 小人을 가리킨다. [補註]사람들이 자기(小人)를 보기를 그(小人)의 肺肝을 보듯이 함을 이른다. 栗谷은 일찍이 其字를, 보는 사람으로 해석하여 ‘善한 사람들이 小人을 보기를 자신(善人)의 肺肝을 보듯이 한다.’로 해석하였다.
역주6 [釋疑]曾子曰 : 이것은 曾子가 일찍이 경계한 말씀이요, 經文을 해석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門人들이 특별히 ‘曾子曰’을 붙여 구별한 것이다.
역주7 [刊補]十目所視 十手所指 : 열 사람이 보고 열 사람이 가리킨다 함은 보고 듣는 사람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8 [釋疑]富潤屋 德潤身 : 富를 德과 상대하여 말하였으니, 지극히 거친 일을 들어서 지극히 진실한 이치를 발명한 것이다.
역주9 [釋疑]以審其幾焉 : 審은 살펴서 삼가는 뜻이 있고 幾는 動함의 은미함이니, 진실하고 진실하지 않음이 처음 나누어지는 곳이다.
역주10 [釋疑]雙峯饒氏 : 이름은 魯이고 자는 仲元이니, 勉齋 黃榦에게 수학하였다. [刊補]《一統志》에 “名이 魯이고 字가 仲元이며 號가 雙峰으로, 饒州 餘干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黃勉齋를 찾아가 배웠으며,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고 근엄하며 學術이 정밀하고 분명하였다. 여러 차례 추천을 받았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는데, 별세하자 門人들이 文元이라 私諡하였다.” 하였다.
역주11 [釋疑]此大可驗 : 此字는 서로 싸우는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다만 서로 싸우는 징험은 事理로써 말하였고, 持其志 이하는 공부로써 말하였으니, 뜻을 잡아 지켜서 氣가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서로 싸우는 곳에 나아가서 天理가 과연 人欲을 이기는가의 여부를 징험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12 [刊補]要之 : ‘결론적으로 말하면’이라는 뜻이다.
역주13 [釋疑]聖賢必不害心疾 : 害는 憂患의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刊補]생각하건대 이때 어떤 사람이 마음의 병에 대한 일을 먼저 말하였으므로 아울러 거론하여 답한 것인 듯하다. ‘不害心疾’이란, 마음의 병을 가지고 스스로 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 살펴보건대 心疾은 良心과 私心이 서로 싸우는 것을 가리키는 바, 聖人은 그러한 병폐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4 : 탁
역주15 [釋疑]人之血氣 固有虛實 : 血氣가 허하면 병들고 실하면 병들지 않는다.
역주16 [釋疑]劉忠定公 : 이름은 安世이고 자는 器之이며 忠定은 시호이니, 바로 이른바 元城이란 분이다.
역주17 [釋疑]其誠乎 …… 自不妄語始 : 사람이 허망함에 잘못되기 쉬운 것은 오직 言語가 심하다. 그러므로 聖人이 사람을 가르칠 적에 信(진실)을 言語의 법칙으로 삼았으니, 信과 誠이 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誠을 보존하는 방법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말과 행실이 서로 돌아본 뒤에야 가능하니, 이는 溫公이 잘 가르친 것이요, 劉公이 잘 배운 것이다.
역주18 [釋疑]檃括 : 括은 마땅히 木邊을 따라야 한다. 《韻會》에 “굽게 휘는 것을 檃이라 하고, 곧고 방정하게 하는 것을 栝이라 한다.” 하였고, 또 檃은 혹 隱으로도 쓰니 살핀다는 뜻이요, 栝은 檢栝이니 곧 邪曲한 것을 바로잡는 기구이다. ○ 荀子가 말하기를 “檃栝의 곁에 굽은 나무가 많다.” 하였다.
역주19 [釋疑]掣肘矛盾 : 掣肘(철주)는 팔뚝을 잡아당기는 것으로 글씨 쓰는 사람의 팔뚝을 잡아당겨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함을 이르며, 盾은 방패이니 창으로 찌르고 방패로 막아서 서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魯나라에서 宓子賤을 單父(선보)의 縣令으로 임명하자, 복자천은 글씨를 잘 쓰는 사람 두 명을 데려다 놓고 글씨를 쓰게 한 다음 이들이 글씨를 쓰면 그때마다 옆에서 팔뚝을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글씨가 잘못되면 성을 내고 글씨를 잘 쓰려고 하면 또 팔뚝을 잡아당기니, 글씨 쓰는 자가 사양하고 돌아갔다. 이 사실을 魯나라 군주에게 아뢰자, 魯나라 군주는 말하기를 “복자천은 내가 그를 방해해서 善政을 베풀지 못할까 염려해서 이러한 비유를 한 것이다.” 하고는 선보의 백성들을 함부로 徵發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역주20 [釋疑]蘭溪范氏 : 이름은 浚이고 자는 茂明이다.
역주21 [譯註]有殺心 輒形於聲 : 樂師가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고 거문고를 탔는데, 그 거문고 소리에 殺氣가 있었던 蔡邕의 故事를 든 것으로, 本書 1卷 12, 〈天命之謂性章〉 註 267)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22 [釋疑]有欲炙心 輒形於色 : 晉나라 顧榮이 잔치를 열어 술을 마실 적의 일이다. 고기를 굽는 자가 불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기색이 있자, 顧榮은 불고기를 잘라서 그에게 먹이며 말하기를 “어찌 종일토록 음식을 잡고 있으면서 그 맛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 하였다. 그후 趙王倫의 난리에 顧榮이 붙잡혔는데, 그 사람이 마침 감독하는 병사가 되어서 顧榮을 구해 주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역주23 [釋疑]有懼心 目動而言肆 : 春秋時代에 秦나라가 晉나라를 정벌할 적의 일이다. 秦나라 行人(외교관)이 밤에 와서 晉나라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두 나라 군대가 만나 싸우는 것을 두 나라 군사들이 모두 싫어하지 않으니,[皆不憖] 내일 싸움터에서 서로 만나자.[相見]” 하고 도전하였다. 그러자 臾騈(유병)은 말하기를 “秦나라 使者가 눈빛이 동요하고 말을 함부로 하니,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였는데, 과연 秦나라 군대가 밤에 도망하였다. ○ 憖(은)은 마음에 하고 싶지 않으면서 억지로 하는 뜻이니, ‘모두 싫어하지 않는다[皆不憖]’는 것은 그 마음에 모두 싸우고자 함을 말하고, ‘서로 만난다[相見]’는 것은 서로 싸움을 이른다.
역주24 [釋疑]有異心 視遠而足高 : 春秋時代 柯亭의 會盟에서 單襄公(선양공)이 魯成公에게 이르기를 “晉나라 임금이 먼 곳을 바라보고 발을 높이 들어 눈이 몸에 있지 않고 발이 눈에 있지 않으니, 그 마음이 반드시 이상하다. 눈과 몸이 서로 따르지 않으니, 어찌 오래가겠는가.” 하였다. ○ 선양공은 周나라 大夫이고 晉나라 임금은 厲公이다.
역주25 [譯註]朱子於其心箴 有取焉 : 〈心箴〉은 ‘마음을 경계한 글’이란 뜻으로 이 글은 本書 4卷에 수록되어 있다. 朱子가 일찍이 이 〈心箴〉을 《孟子集註》 〈告子 上〉의 章下註에 수록하였으므로 ‘취했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26 [釋疑]問劉楝(련) : 물음은 朱子가 물은 것이다. 劉楝은 朱子의 門人이니, 楝은 柬을 따른다. [補註]棟은 音이 ‘동’이고 楝은 音이 ‘련’이어서 서로 다른 字인데,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같이 쓰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역주27 [釋疑]不知不識 : 《孟子》의 註에 “知는 이 일을 아는 것이고 覺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하였으니, 知와 識 두 글자도 또한 이렇게 보면 된다.
역주28 [刊補]却不喚做自欺 : 喚做는‘이 일이라고 칭한다’는 말과 같다. ○ 이 문단과 다음 문장의 不知不覺條에서 말한 自欺는 얕고 깊은 차이가 있다.
역주29 [釋疑]又曰條 : 篁墩이 이 조목에 대한 《語類》의 問答 가운데에서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합하여 한 가지 說을 만들었기 때문에 말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한 단락을 만일 操存章에 옮겨 붙인다면 온당할 듯하다. [刊補]‘又曰’이하는 李敬子의 질문에 대한 朱子의 답변으로 《朱子語類》 〈誠意章〉에 보인다. 그 답변은 ‘是自欠了分數’까지이며, 그 아래에 어떤 사람의 질문에 대해 荀子의 말을 인용하여 답한 것이 있는데, 篁墩이 구절을 잘라서 한 문단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뜻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荀子의 한 문단을 〈操存章〉으로 옮겨 붙이면 온당할 듯하다.
역주30 [釋疑]只是自欠了分數 : 金 한 냥 가운데에 납이나 쇠가 1, 2푼 섞여 있으면 금은 다만 8, 9푼이 있을 뿐이니, 이것이 바로 分數가 부족한 것이다. [補註]欠은 부족의 뜻이고 分數는 지금의 %와 같은 뜻이다.
역주31 [釋疑]淡底金 : 金 가운데에 납이나 쇠가 섞여 있으면 금색깔이 옅어진다. [補註]淡은 농도나 색깔이 옅음을 이른다.
역주32 [釋疑]偸 : 도둑이 몰래 도둑질하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이 자신을 따르지 않고 流注하여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 하여 붙인 것이다.
역주33 [譯註]流注想 : 流注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으로, 곧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남을 이른다.
역주34 [釋疑]不會 : 不能이라는 말과 같다.
역주35 [釋疑]做官會 : 做는 위조이다. 官會는 관청에서 만든 會子이니, 宋나라의 화폐 이름으로 지금의 楮貨와 같은 것이다.
역주36 [釋疑]粗處 : 私錢을 鑄造하고 官會를 위조하는 따위를 가리킨다. [補註]粗處는 거친 곳(부분)으로 세미하거나 은미하지 않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37 [釋疑]多說差了는 蓋爲賺(잠)却下文小人閒居爲不善一段하야 看了 : 賺은 물건을 팔 때에 진실함을 잃은 것이다. 自欺는 지극히 세미한 일인데, 마침내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不善을 하는 小人으로 지극히 거친 곳을 연결하여 보니, 이는 마치 물건을 파는 자가 진실함을 잃은 것과 같다. [補註]賺은 속여서 물건을 파는 것으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을 가리키는 바, 여기서는 속여서 팔기보다는 속고 사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 때문에 ‘속아서 잘못 보기 때문’으로 해석하였음을 밝혀둔다. 自欺는 남은 모르고 자신만이 아는 것에 성실하지 못하여 良心에 부끄러움이 있는 것으로 지극히 정미한 것이며,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不善을 하는 小人은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나쁜 짓을 하는 자로 지극히 거친 것이다. 그런데 위의 自欺를 아래의 小人과 연관시켜 自欺 역시 지극히 거칠고 나쁜 小人의 행위로 착각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38 [刊補]又曰條 : 살펴보건대 이 말은 ‘閒居’한 문단에 관계되는 사항인데 ‘다만 스스로 속일뿐이다.[祗自欺而已]’라고 하였으니, 앞 註의 해석과 약간 다르다.
역주39 [刊補]秪 : 祇로 쓰기도 하고 秖로 쓰기도 하는데, 모두 아래에 한 획이 없다. [補註]秪는 只와 통하는 바, 辭典에는 祇와 祗가 서로 通하며 秖로 쓰는 것이 옳은 것으로 되어 있다.
역주40 [釋疑]寧可逐些喫令飽 爲是乎 : 이것으로써 爲己의 學問은 내면에 마음을 써서 한 눈금씩 쌓고 한 치씩 쌓아 얻음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41 [刊補]鋪攤放門外 : 鋪와 攤은 모두 펼친다는 뜻이며, 放門外는 문 밖에 둔다(내놓다)는 뜻이다.
역주42 [刊補]肚裏 : 뱃속이란 뜻이다.
역주43 [釋疑]只是不爲己 圖好看 : 《語類》에는 다만 “자신을 위하지 아니하여 유익함을 구하지 않고 단지 명예를 좋아하여 보기 좋은 것을 도모하다.[只是不爲己 不求益 只是好名 圖好看]”로 되어 있다.
역주44 [釋疑]如南越王 …… 聊以自娛耳 : 漢나라 趙佗(조타)가 黃屋과 左纛을 사용하여 나갈 때에 경계하고 들어올 때에 辟除하였다. 文帝가 陸賈를 시켜 명령을 전하기를 “하늘에는 두 해(태양)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王이 없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塗炭의 고통에 빠지지 않게 하라.” 하였다. 조타가 말하기를 “나는 황옥과 좌독으로 애오라지 스스로 즐길 뿐이다.” 하였다. [補註]黃屋은 노란 비단으로 만든 수레의 덮개를 이르며, 左纛은 검정색 들소 꼬리로 만든 纛旗로 크기가 말[斗] 만한데, 왼쪽 곁말의 멍에 위에 매달기 때문에 左纛이라 하는 바, 黃屋과 左纛은 황제의 수레를 꾸미는 물건으로 제왕의 수레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당시 南越王으로 있던 趙佗가 참람하게 황제의 수레를 타고 다니자, 文帝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지 말라.”고 경고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趙佗는 “나는 참으로 황제노릇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지 보기 좋아서 이렇게 치장하고 다닐 뿐입니다.” 라고 해명하였다. 이는 마치 학자들이 입으로만 義理를 말하여 아름답게 꾸미는 것과 같으므로 비유한 것이다.
역주45 [譯註]人鬼關 : 사람과 魔鬼의 關門으로, 誠意를 하지 못하면 惡魔에 빠지고 마는 것을 비유한다. 이 때문에 誠意工夫를 善惡關이라 하기도 한다.
역주46 [釋疑]雲峯胡氏 : 이름은 炳文이고 자는 仲虎이다.
역주47 [釋疑]趙致道 : 이름은 師夏이니, 朱子의 門人으로 朱子의 孫女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역주48 [釋疑]胡子 : 五峯이니, 그가 지은 《知言》이라는 책에 “天理와 人欲이 體는 같으나 用은 다르다.” 하였다.
역주49 [刊補]寄生疣贅 : 寄生은 나무 위의 겨우살이이며, 疣는 사마귀로 본래 肬丘라고 쓰니, 이는 피부 위에 불룩 솟아난 것이 마치 땅에 구릉이 있는 것과 같아서이며, 贅는 뭉쳐있는 살로 혹이다. 《莊子》에 “매달린 사마귀와 붙어있는 혹이다.[縣疣附贅]” 하였다.
역주50 [釋疑]此雖亦誠之動 : 善은 하늘이 명하여 부여해 준 바른 이치이고 惡은 物慾에서 생겨난 간사하고 더러운 것인데, 이제 惡을 또한 誠의 동함이라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朱子는 일찍이 말씀하기를 “天理 가운데에는 본래 人欲이 없고, 오직 不善으로 흘러가 마침내 人欲이 생겨나게 된다.” 하였다. 그리고 程子는 “善과 惡이 모두 天理이니, 惡이라고 한 것은 본래 악한 것이 아니고 다만 過하거나 不及하면 곧 이와 같이 되는 것이다.” 하였다.
역주51 [釋疑]人心之發見 : 人心이 私欲이 아님을 朱子가 이미 말씀하였는데, 지금 趙致道가 人心을 私欲이라고 하였는데도 朱子가 맞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반드시 初年의 問答일 것이다. [刊補]묻기를 “人心은 人欲이 아니라고 朱子가 이미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趙致道가 ‘人心의 發見이요 私欲의 流行이다.’라고 하였는데도 朱子가 ‘이 말이 맞는다.’하였으니, 이 또한 朱子 初年의 확정되지 않은 말씀입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아직 상고한 바가 없다.” 하였다.
역주52 : 導
역주53 [刊補]此雖亦誠之動 …… 朱子曰 得之 : 묻기를 “善은 하늘이 부여한 바른 이치이고 惡은 물욕에서 생겨난 사악하고 더러운 것이니, 惡을 誠의 動이라고 이를 수가 없습니다. 趙氏가 이와 같이 말하였는데도 朱子가 ‘옳다’고 하였으니, 여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듣고 싶습니다.” 하자, 退溪는 답하기를 “趙氏가 ‘惡도 誠의 動함이다’라고 말하였는 바, 이 말씀이 나온 유래가 멀다. 何叔京이 일찍이 편지로 이것을 논하고, 또 ‘어디로부터 이 人欲이 생겨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朱子는 답하기를 ‘이 물음이 매우 긴요하고 간절하다. 내가 생각하건대 人欲이란 天理의 반대이니, 「天理로 인하여 人欲이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人欲 또한 天理」라고 말한다면 옳지 않다. 天理 가운데에는 본래 人欲이 없고, 오직 흐름에 잘못이 있어서 마침내 人欲이 생겨 나오게 되는 것이다. 程子는 「善과 惡이 모두 天理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句는 매우 놀랄 만하다.) 惡이라고 이르는 것은 본래 惡이 아니요, (이 句는 모두 뜻을 돌려 바꾼 것이다.) 다만 過하거나 不及하여 곧 이와 같이 되었다」’하였으니, (어디로부터 이 人欲이 생겨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까지이다. 이상의 두 小註도 모두 朱子의 말씀이다.) 여기에 인용한 ‘惡 또한 性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뜻이 또한 이와 같으니, 이것이 趙氏의 말이 나오게 된 이유이다.” (程子의 말씀은 《近思錄》에 보인다. ○ ‘惡 또한 性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程子의 말씀이니, 何叔京이 이것을 인용하였으므로 朱子가 함께 거론하여 답한 것이다.)
역주54 誠幾圖 : 誠幾圖
誠 幾 惡 幾 善幾 此明周子之意
誠 幾 善幾 惡幾 此證胡氏之說[說’이 《通書》에는 ‘失’로 되어 있다.]
역주55 [釋疑]周子之所謂誠 雖與大學指異 : 周子가 말씀한 誠은 진실한 이치가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體이고, 《大學》에 말한 誠은 성실하게 하는 일이니 이것은 用이다. 그러므로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
동영상 재생
1 1. 성의장(1) 243
동영상 재생
2 1. 성의장(1) 76
동영상 재생
3 1. 성의장(1) 881
동영상 재생
4 1. 성의장(1) 565
동영상 재생
5 1. 성의장(2) 262
동영상 재생
6 1. 성의장(3) 116
동영상 재생
7 1. 성의장(4) 45
동영상 재생
8 1. 성의장(5) 381
동영상 재생
9 1. 성의장(6) 356
동영상 재생
10 1. 성의장(7) 539
동영상 재생
11 1. 성의장(8) 1010
동영상 재생
12 1. 성의장(9) 987
동영상 재생
13 1. 성의장(10) 751
동영상 재생
14 1. 성의장(11) 369
동영상 재생
15 1. 성의장(12) 344
동영상 재생
16 1. 성의장(13) 549
동영상 재생
17 1. 성의장(14) 316
동영상 재생
18 1. 성의장(15) 1587

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