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所謂
者
는 毋自欺也
니 如惡惡臭
하며 如好好色
이 此之謂自
이니
小人閒居에 爲不善호되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에 厭然揜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原注
言欲自修者 知爲善以去其惡이어든 則當實用其力하야 而禁止其自欺하야 使其惡惡則如惡惡臭하고 好善則如好好色하야 皆務決去而求必得之하야 以自快足於己요 不可徒苟且以徇外而爲人也라
原注
此는 言小人이 陰爲不善而陽欲揜之하니 則是非不知善之當爲與惡之當去也로되 但不能實用其力하야 以至此爾라
然欲揜其惡而卒不可揜하고 欲詐爲善而卒不可詐하니 則亦何益之有哉리오
原注
有天德이라야 便可語王道니 其要는 只在謹獨이니라
原注
有天德이면 便是天理니 便做得王道요 無天德이면 便是私意라 是計較니 人多無天德이라 所以做王道不成이니라
天德은 卽正心修身之謂요 王道는 卽齊家治國平天下之謂요 謹獨은 卽誠意之謂니 此章은 乃大學一篇緊要之處니라
原注
有人이 胸中에 常若有兩人焉하야 欲爲善엔 如有惡以爲之間하고 欲爲不善엔 又若有羞惡之心者하니 本無二人이라 此正交戰之驗也라
原注
或問 方持志之時에 二者猶交戰于胸中이면 則奈何잇가 南軒張氏曰
持志者는 主一之謂니 若持志之時에 二者猶交戰于胸中이면 是는 不能主一也니 志不立也일새니라
原注
欲知得與不得
인댄 於心氣上
에 驗之
니 思慮有得
에 中心悅豫
하야 沛然有裕者
는 實得也
요 思慮有得
에 心氣勞耗者
는 實未得也
니 强揣
耳
라
原注
然皆以心病爲言하니 蓋恐學者持之太過而又不可失其所有事라
必如孟子所謂勿忘勿助하야 而馴致于心廣體胖이라야 乃有得耳니라
原注
○
이 見溫公
하고 問盡心行己之要
에 可以終身行之者
한대 公曰 其誠乎
인저
劉初甚易之
러니 及退而自
日之所行
과 與凡所言
하니 自相
者多矣
라
力行七年而後成하니 自此로 言行一致하고 表裏相應하야 遇事坦然하야 常有餘裕러라
原注
如周子謂誠者聖人之本은 蓋指實理而言이니 卽中庸所謂天下至誠者니 指人之實有此理者而言也요
溫公所謂誠은 卽大學所謂誠其意者니 指人之實其心而不自欺者也니라
溫公之所謂誠은 主於不欺詐, 無矯僞하니 正學者立心之初에 所當從事者요 非指誠之至者而言也니라
原注
孰不欲謂己君子리오마는 而多不免爲常人하고 或陷于大惡者는 患在心違其貌而安於自欺也라
夫人
이 하고 하고 하고 하니 其心一動
이 雖甚微也
나 而形於外者
를 已不可揜
이 如此
어늘
彼小人은 乃欲揜其不善於君子之前하니 當其念已不善而思揜之면 則不善之念이 已誠乎中이라
旣誠乎中이면 則必有自匿 不慊之微情이 呈露于言意態度之間하리니 自以爲人莫我知也나 而不知人已得其所謂不可揜者를 如見其肺肝이니
原注
[按] 范氏
는 莫知其師承
이나 而
하시니 其學
이 誠有得于孟子
라
故於論心處에 多警切하야 與濂洛之語로 相出入하니 蓋不獨心箴也니라
原注
○
하시되 看大學自欺之說
을 如何
오 曰 不知義理
하고 却道我知義理 是自欺
니이다
自欺는 是箇半知半不知底人이 知道善我所當爲로되 却又不十分去爲善하고 知道惡不可作이로되 却又是自家所愛라 舍他不得이니 這便是自欺라
原注
自欺
는 니 恰如
을 不可不謂之金
이로되 只是欠了分數
라
如爲善에 有八分欲爲하고 有兩分不爲면 此便是自欺니 是自欠了分數라
某自十六七讀時에 便曉得此意호니 蓋偸心은 是不知不覺에 自走去하야 不由自家使底라
潙山禪師云 某參禪幾年
이로되 至今
斷得流注想
이라하니 此卽荀子所謂偸則自行之心也
니라
原注
謂心之所發이 不知不覺地에 陷於自欺니 非是陰有心於爲惡而詐於爲善하야 以自欺也라
如公之言
인댄 須是鑄私錢,
라야 方爲自欺
니 無狀小人
이라
原注
那箇形色氣貌之見於外者 決不能欺人
이니 自欺而已
라
這樣底는 永無緣做得好人이니 爲其無爲善之地也니라
原注
近來學者 多是以自家合做底事
로 報與人
하고 只是將義理
하야 略從
過
하야 却翻出許多說話
하나니 如此者
는 이니 니라
原注
蓋誠意爲善惡關이니 過得此關이라야 方是君子요 過不得此關이면 猶是小人이니
傳末章에 長國家而務財用之小人은 卽此閒居爲不善之小人也라
意有不誠이면 已害自家心術이니 他日用之면 爲天下國家害也 必矣니라
原注
周子云 誠無爲요 幾善惡이라하시니 此는 明人心未發之體而指已發之端이라
蓋欲學者 致察於萌動之微하야 知所決擇而去取之하야 以不失乎本心之體而已어늘
或疑之
하야 以謂有類於
同體異用之云者
일새 遂妄以意
로 揣量爲圖如后
하노이다
善惡이 雖相對나 當分賓主요 天理人欲이 雖分泒나 必省宗孽이니
自誠之動而之善이면 則如木之自本而榦, 自榦而末하야 上下相達者는 則道心之發見과 天理之流行이니 此心之本主而誠之正宗也라
其或旁榮側秀
하야 若
者
는 이나 則
이요 私欲之流行
이니 所謂惡也
니
非心之固有요 蓋客寓也며 非誠之正宗이요 蓋庶孽也라
苟辨之不早하고 擇之不精이면 則客或乘主하고 孽或代宗矣리라
學者能於萌動幾微之間
에 察其所發向背
하야 凡直出者爲天理
요 旁出者爲人欲
이며 直出者爲善
이요 旁出者爲惡
하야 而於直出者
에 利
之
하고 旁出者
에 遏絶之
하야 功力旣至
면 則此心之發
이 自然出於一途而保有天命矣
리라
於此에 可見未發之前에 有善無惡이니 而程子所謂不是性中에 元有此兩端이 相對而生者 蓋謂此也라
若以善惡으로 爲東西相對하고 彼此角立이면 則是天理人欲이 同出一原하야 未發之前에 已具兩端이니 所謂天命之性이 亦甚汙雜矣리라
니라誠幾圖
原注
[按]
나 然其所謂幾善惡
은 與朱子所謂謹獨而審其幾
로 一也
라
《대학大學》의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마는 것이니, 악惡을 미워하기를 악취惡臭를 싫어하듯이 하고 선善을 좋아하기를 호색好色을 좋아하듯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자겸自慊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
소인小人은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한 짓을 하되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불선不善함을 가리고 선善함을 드러낸다.
남들이 자기를 보기를 그의 폐부肺腑를 보듯이 할 것이니, 그렇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중심中心에 진실(가득)하면 외면外面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증자曾子가 말씀하기를 “열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무섭구나!” 하였다.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德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덕德이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原注
“독獨은 남은 알지 못하고 자기만 홀로 아는 곳이다.
스스로 닦고자 하는 자가 〈격물치지格物致知하여〉 선善을 하고 악惡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으면 마땅히 실제로 그 힘을 써서 자기自欺함을 금지하여, 가령 악惡을 미워함에는 악취惡臭를 싫어하듯이 하고 선善을 좋아함에는 호색好色을 좋아하듯이 하여, 모두 힘써 결단하여 버리고 구함에 반드시 얻어서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하게 해야 할 것이요, 한갓 구차하게 외면外面을 따라 남을 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실하고 성실하지 못함은 남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홀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을 삼가서 그 기미幾微를 살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原注
“염厭은 암黶(암)으로 읽으니, 염黶은 은폐하고 감추는 모양이다.”
原注
“염연厭然은 소저銷沮(의기소침)하여 은폐하고 감추는 모양이다.
이는 소인小人이 속으로 불선不善한 짓을 하고는 겉으로 이것을 감추고자 함을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이것은 선善을 해야 함과 악惡을 제거해야 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다만 실제로 힘을 쓰지 못하여 이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악惡을 가리려고 해도 끝내 가릴 수가 없고 거짓으로 선善을 하려고 해도 끝내 속일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또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이 군자君子가 거듭 경계하여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까닭인 것이다.”
原注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광대廣大하고 관평寬平하여 몸이 항상 펴지고 편안하다.”
原注
“천덕天德이 있어야 곧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으니, 그 요점은 다만 신독愼獨에 있다.”
原注
“천덕天德이 있으면 곧 천리天理이니 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고, 천덕天德이 없으면 곧 사사로운 마음이어서 〈이해利害를〉 계교計較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대부분 천덕天德이 없기 때문에 왕도王道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천덕天德은 곧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을 이르고 왕도王道는 곧 제가齊家와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이르며 근독謹獨은 곧 성의誠意를 이르니, 이 장章은 바로 《대학大學》 한 편의 요긴한 부분이다.”
原注
“어떤 사람이 가슴속에 항상 두 사람이 있는 듯하여, 선善을 하려고 하면 악惡이 가로막는 듯하고 불선不善을 하려고 하면 또 수오羞惡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니, 본래 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바로 선善과 악惡이 서로 싸우는 징험이다.
뜻을 잡아 지켜서 기氣로 하여금 혼란하지 않게 하여야 하니, 이것을 여기에서 크게 징험할 수 있다.
요컨대 성현聖賢은 반드시 마음의 병에 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
原注
혹자가 “막 뜻을 잡아 지키고 있을 때에 두 가지가 오히려 가슴속에서 서로 싸우면 어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남헌장씨南軒張氏가 말하였다.
“뜻을 잡아 지킨다는 것은 한 가지를 주장함을 이르니, 만약 뜻을 잡아 지키고 있을 때에 두 가지가 오히려 가슴속에서 서로 싸운다면 이는 한 가지를 주장하지 못한 것이니, 뜻이 서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原注
“득得(터득함)과 부득不得(터득하지 못함)을 알고자 한다면 심기心氣 상上에서 징험하여야 하니, 사려하여 터득함이 있을 적에 중심中心이 기뻐져서 패연沛然하게 여유가 있는 것은 실제로 터득한 것이고, 사려하여 터득함이 있을 적에 심기心氣가 피로한 것은 실제로 터득하지 못한 것이니, 억지로 헤아린 것일 뿐이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근래에 도道를 배우고 사려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허약해졌다.”고 말하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의 혈기血氣는 진실로 허약하고 충실한 차이가 있으니, 질병이 오는 것은 성인聖人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성현聖賢이 학문으로 인하여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原注
[按]위에 뽑은 두 조목은 모두 성의장誠意章의 일이다.
그러나 모두 마음의 병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이는 배우는 자가 마음을 잡아 지키기를 너무 지나치게 할까 두렵고, 또 일삼음이 있는 것을 잃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반드시 맹자孟子의 이른바 ‘잊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말라’는 것과 같이 하여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짐을 점점 이루어야 비로소 얻음이 있을 것이다.
原注
유충정공劉忠定公(劉安世)이 사마온공司馬溫公을 뵙고는 마음을 다하고 몸을 행하는 요점 중에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자, 공公은 “성誠일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또다시 “이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公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하였다.
유충정공劉忠定公이 처음에 이것을 매우 쉽게 여겼는데, 물러 나와서 스스로 날마다 행하는 바와 말하는 바를 법도에 맞춰 보니, 서로 제지당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7년 동안 힘써 행한 뒤에야 완성되었으니, 이로부터 말과 행실이 일치되고 안과 밖이 서로 응해서 일을 만나면 평탄하여 항상 여유가 있었다.
原注
그러나 경전經傳에서 이를 사용함에 각각 가리킨 바가 있으니, 일괄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예컨대 주자周子가 ‘성誠은 성인聖人의 근본’이라고 한 것은 진실한 이치를 가리켜 말씀한 것인 바, 바로 《중용中庸》의 이른바 ‘천하에 지극히 성실한 자’라는 것이니, 사람이 실제로 이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한 성誠이라는 것은 바로 《대학大學》의 이른바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이니, 사람이 그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스스로 속이지 않음을 가리킨 것이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의 이른바 성誠이라는 것은 속이지 않고 거짓으로 꾸미지 않는 것을 주장하였으니, 바로 배우는 자가 마음을 세우는 초기에 마땅히 종사하여야 하는 것이요, 성誠이 지극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다.”
原注
누군들 자기를 군자君子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대부분 보통사람이 됨을 면치 못하고 혹은 대악大惡에 빠지는 것은 마음이 용모와 어긋나 스스로 속이는 것을 편안히 여기는 데에 병통이 있다.
사람이 죽이려는 마음이 있으면 곧 소리(음악)에 나타나고 불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얼굴빛에 나타나며,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눈동자가 움직이고 말소리가 제멋대로 나오며 딴 마음이 있으면 먼 곳을 바라보고 발을 높이 드니, 마음이 한 번 동하는 것이 비록 매우 미미하나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은폐할 수 없음이 이와 같다.
그런데 저 소인小人들은 마침내 자신의 불선不善을 군자君子의 앞에서 은폐하려고 하니, 그 생각이 이미 불선不善한데 은폐할 것을 생각한다면 불선不善한 생각이 이미 마음속에 진실(가득)한 것이다.
이미 마음속에 진실하면 반드시 스스로 속여서 만족스럽지 못한 은미隱微한 실정實情이 말뜻과 태도에 드러남이 있을 것이니, 사람들이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이른바 ‘은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를 그 폐간肺肝을 들여다보듯이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나는 두려워하여 경계할 것을 생각해서 반드시 신독愼獨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는 것이다.”
原注
[按]범씨范氏는 스승의 전승傳承을 알 수 없으나 주자朱子가 그의 〈심잠心箴〉을 취함이 있었으니, 그의 학문은 진실로 맹자孟子에게서 얻은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마음을 논한 부분에 경계하고 절실한 것이 많아 염락濂洛의 말과 서로 출입出入하니, 비단 〈심잠心箴〉 뿐만이 아니다.
原注
주자朱子가 유련劉楝에게 “《대학大學》의 자기自欺라는 말을 어떻게 보는가?” 하고 물으니, “의리義理를 알지 못하면서 도리어 내가 의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자기自欺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자기自欺는 반은 알고 반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선善을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또 십분十分 가서 선善을 하지 않고, 악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어서 이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기自欺이다.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다만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할 뿐이요 자기自欺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原注
“자기自欺는 다만 스스로 분수分數가 부족한 것이니, 흡사 순도純度가 낮은 금金을 금金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다만 푼수가 부족한 것과 같다.
만약 선善을 할 적에 8분分은 선善을 하려 하고 2분分은 선善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이 곧 자기自欺이니, 이는 스스로 분수分數가 부족한 것이다.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마음은 누워 있으면 꿈을 꾸고, 몰래 도망가면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부리면 도모(생각)한다.’하였다.
나는 16, 17세에 이 글을 읽을 때부터 곧 이 뜻을 깨달았으니, 몰래 도망가는 마음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도망가서 자신의 부림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불가佛家에 또한 이른바 ‘유주상流注想’이란 것이 있으니, 저들은 이것을 가장 두려워(싫어)한다.
위산선사潙山禪師가 말하기를 ‘내가 몇 년동안 참선參禪하였으나 지금까지도 유주상을 끊지 못하였다’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순자荀子의 이른바 ‘몰래 도망가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는 마음이다.”
原注
“마음이 발하는 것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自欺에 빠지는 것을 이르니, 속으로 악惡을 하는 데에 마음을 두고서 거짓으로 선善을 하여 스스로 속이는 것은 아니다.
공公의 말 대로라면 반드시 사전私錢을 주조鑄造하고 관회官會(관청에서 만드는 지폐)를 위조僞造하여야 비로소 자기自欺가 되는 것이니, 이는 불초不肖한 소인小人이다.
이 공부는 지극히 세미한 것이 있으니, 곧바로 거친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전후前後의 학자들이 잘못 말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은 아랫글의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한 짓을 한다’는 한 단락에 속아서 잘못 보기 때문이다.”
原注
이 형색形色과 기모氣貌가 외면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남을 속일 수가 없으니, 다만 자신을 속일뿐이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으니, 선善을 행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原注
“배우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여야 하니, 비유하면 밥을 먹을 적에 조금씩 먹어서 배부르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밥을 헤쳐 문밖에 늘어놓고 남에게 ‘우리 집에 밥이 많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는가.
근래에 배우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루어 주고는 다만 의리義理를 가져다가 간략히 가슴속을 통과하고 허다한 말을 이리저리 만들어낼 뿐이니, 이와 같은 자는 다만 자신을 위하지 않고 보기 좋은 것만을 도모하는 것이니, 예컨대 남월왕南越王이 황옥黃屋과 좌독左纛으로 애오라지 스스로 즐길 뿐인 것과 같다.”
原注
“성의誠意는 바로 인人‧귀鬼의 관문關門이니, 이 한 관문을 통과하여야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
原注
“이 장章에서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을 분별함이 매우 엄격하다.
성의誠意는 선악善惡의 관문關門이 되니, 이 관문을 통과하여야 비로소 군자君子가 되고,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소인小人이다.
전문傳文의 마지막 장章에 ‘국가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재용財用을 힘쓰는 소인小人’이란 바로 ‘한가로이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한 짓을 하는 소인小人’이다.
뜻이 성실하지 못함이 있으면 이미 자신의 심술心術을 해치니, 후일에 그를 등용하면 천하天下와 국가國家의 폐해가 될 것이 틀림없다.”
原注
조치도趙致道가 주자朱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주자周子가 말씀하기를 ‘성誠은 함이 없고 기幾는 선악善惡이 있다’하셨으니, 이는 인심人心이 미발未發했을 때의 체體를 밝혀 이발已發했을 때의 단서를 가리킨 것입니다.
이는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마음이 싹터 동하는 은미한 데에서 살피기를 지극히 하여, 결정하고 선택할 바를 알아서 버리고 취하여 본심本心의 체體를 잃지 않게 하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의심하여 호자胡子(胡宏)의 ‘체體는 같으나 용用은 다르다’는 말과 유사하다고 여기므로 마침내 망령되이 마음대로 헤아려서 다음과 같이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선善과 악惡이 비록 상대가 되나 빈賓과 주主를 나누어야 하고,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이 비록 파派를 나누나 종宗(종자)과 얼孼(서자)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성誠이 동함으로부터 선善으로 가면 나무가 뿌리에서 줄기에 이르고 줄기에서 끝에 이르러 상하上下가 서로 통함과 같으니, 이는 도심道心의 발현이요 천리天理의 유행이니, 이는 마음의 본주本主이고 성誠의 정종正宗입니다.
혹 옆에서 나와 꽃이 피고 곁에서 빼어나 기생寄生하는 겨우살이나 사마귀와 혹과 같은 것은 이것도 비록 성誠이 동한 것이기는 하나 인심人心의 발현이요 사욕私慾의 유행이니, 이른바 악惡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에 고유固有한 것이 아니고 나그네가 붙여있는 것이며, 성誠의 정종正宗이 아니고 서얼庶孼입니다.
만일 일찍 분변하지 않고 정精하게 선별하지 않으면 객이 혹 주인을 타고 서얼이 혹 종자를 대신할 것입니다.
배우는 자가 마음이 싹터 동하는 기미幾微의 사이에 발한 바의 향배向背를 살펴서, 무릇 곧게 나온 것은 천리天理가 되고 곁에서 나온 것은 인욕人欲이 되며 곧게 나온 것은 선善이 되고 곁에서 나온 것은 악惡이 됨을 알아서, 곧게 나온 것은 순히 인도하고 곁에서 나온 것은 끊어버려 공력功力이 이미 지극하면 이 마음의 발함이 자연 한 길에서 나와 천명天命을 보유保有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발未發의 전에는 선善만 있고 악惡이 없음을 볼 수 있으니, 정자程子의 이른바 ‘성性 가운데에 원래 선善‧악惡 두 가지가 상대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만약 선善과 악惡을 동東과 서西가 상대하고 피彼와 차此가 버티고 서 있는 것처럼 여긴다면 이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이 함께 한 근원에서 나와 미발未發의 전에 이미 두 가지 단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니, 이른바 ‘천명天命의 성性’이라는 것도 또한 매우 더럽고 잡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호씨胡氏의 ‘체體는 같으나 용用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주자朱子가 말씀하기를 “이 말이 맞는다.” 하였다.
原注
[按]주자周子가 말씀한 ‘성誠’은 비록 《대학大學》의 성誠과 뜻이 다르나, 이른바 ‘기선악幾善惡’이라는 것은 주자朱子의 이른바 ‘홀로를 삼가서 그 기미를 살핀다’는 것과 똑같다.
이 그림은 뜻을 성실히 하는 학문에 지극히 유익하므로 삼가 붙인다.
1
1. 성의장(1)
243
2
1. 성의장(1)
76
3
1. 성의장(1)
881
4
1. 성의장(1)
565
5
1. 성의장(2)
262
6
1. 성의장(3)
116
7
1. 성의장(4)
45
8
1. 성의장(5)
381
9
1. 성의장(6)
356
10
1. 성의장(7)
539
11
1. 성의장(8)
1010
12
1. 성의장(9)
987
13
1. 성의장(10)
751
14
1. 성의장(11)
369
15
1. 성의장(12)
344
16
1. 성의장(13)
549
17
1. 성의장(14)
316
18
1. 성의장(15)
1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