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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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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心經附註 第4卷
孟子曰
雞鳴而起하야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雞鳴而起하야 孶孶爲利者 蹠之徒也 欲知舜與蹠之分인댄 無他
利與善之間也니라
原注
[原註]
○ 程子曰
言間者 謂相去不遠하야 所爭 毫末耳
善與利 公私而已矣 出於善이면 便以利言也니라
原注
○ 楊氏曰
舜蹠之相去遠矣로되 而其分 乃在利善之間而已 是豈可以不謹이리오
然講之不熟하고 見之不明이면 又學者所當深察也니라
原注
○ 或問 雞鳴而起하야 若未接物이면 如何爲善이닛고 程子曰
原注
[附註]
○ 程子曰
原注
朱子曰
仲舒 甚高하니 後世所以不如古人者 일새니라
原注
○ 上蔡謝氏曰
透得名利關이라야 方是 今之士大夫 何足道리오
原注
朱子曰
上蔡此言 深可畏 須是 立得脚定然後 博文約禮之工 有所施耳니라
原注
○ 問利與善之間한대 朱子曰
不是冷水 便是熱湯이니 無那니라
原注
○ 又曰
天理人欲之分 故周先生 只管說
然辨之 又不可不早 故橫渠每說하시니라
原注
○ 問事有合理而有意爲之 如何잇고
事雖義而心則私
如路 好人行之라도 是路 賊行之라도 亦是路 是天理 起計較 便不是니라
原注
○ 又曰
利與善之間 若纔有心要人知하고 要人道好하고 要以此求利祿이면 皆爲利也
這箇極多般樣하니 雖所爲皆善이라도 但有一毫歆慕外物之心이면 便是利了
如一塊潔白物事上面 只著一點黑이면 便不得爲白矣니라
原注
○ 又曰
世間喩於義者 則爲君子 喩於利者 卽是小人이어늘 호되 卒旣不得爲君子하고 하니 可謂誤用其心矣로다
原注
昨有李某初上一書하야 極說道學恁地不好라하니 那時 某人在要路 故以此說投之하야 卽得超升上州러니
前日 某方赴召하야할새 忽又上一書하야 極稱道學之美하니 他便道某有라하야 要以此相投하니 極好笑로다
原注
○ 南軒張氏曰
學者潛心孔孟하야 必求其門而入이니 愚以爲莫先於明義利之辨이라하노니
蓋聖賢 無所爲而然者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 而非天理之所存이니 此義利之分也
自未知省察者言之하면 終日之間 鮮不爲利矣 非特名位貨殖而後爲利也
意之所向 一涉於有所爲 雖有淺深之不同이나 其爲徇己自私則一而已
是心 日滋 則善端遏塞이니 欲邇聖賢之門牆하야 以求自得이면 豈非却行而望及前人乎
學者當立志以爲先하고 審其爲이면 則有以用吾力矣리라
孔子曰 古之學者 爲己러니 今之學者 爲人이라하시니 爲人者 無適而非利 爲己者 無適而非義
雖在己之事라도 皆爲人也 曰義 則施諸人者라도 亦莫非爲己也
嗟乎
義利之辨 大矣 豈特學者治己之所當先이리오
施之天下國家에도 一也니라
原注
朱子曰
義也者無所爲而然者也此言 蓋可謂之未發하야 而同於者與인저
○ 西山眞氏曰
朱子云 義利之際 固當深明而力辨이나 然伊洛發明未接物時主敬一段工夫 更須精進이라야 乃佳 或無所據以審夫義利之分也라하시니 此說 尤學者所當知니라
原注
○ 象山陸氏曰
라하니 此章 以義利判君子小人하니 苟不於切己觀省이면 亦恐未能有益也
人之所喩 由其所習이요 所習 由其所志
志乎義 則所習者必在於義 所習 在義 斯喩於義矣 志乎利 則所習者必在於利 所習 在利 斯喩於利矣
故學者之志 不可不辨也
今爲士者 固不能免場屋之得失이나 非所以爲君子小人之辨也어늘
而今世以此相尙하야 使汨沒於此而不能自拔하니 則終日從事者 雖曰聖賢之書 而要其志之所이면 則有與聖賢背而馳者矣
하면 則又惟官資崇卑 祿廩厚薄 是計하니 豈能悉心力於國事하야 以無負於任使之者哉
從事其間하야 歷之多하고 講習之熟이면 安得不有所喩리오마는 顧恐不在於義耳
誠能深思是身 不可使之爲小人之歸 其於利欲之習 怛焉爲之痛心疾首하야 專主乎義而日勉焉하야 博學審問謹思明辨而篤行之리니
由是進於場屋이면 其文 必皆道其平日之學 胸中之蘊하야 不詭於聖人이요 由是而仕하면 必皆其職, 勤其事하고 心乎國, 心乎民하야 而不爲身計하리니 其得不謂之君子乎
原注
問 今當讀何書닛고 朱子曰
聖賢敎人 都是切己說話 不是敎人向外하야 只就紙上讀了便了 自家今且一箇義利하야 要自爲己아니 這便是
曰 未也로이다
이어늘 某請他호니 他却說這義利分明하니 是說得好
如云 今人 只讀書爲利하야 又要得官하고 得官이면 又要改官하야 無非爲利라하야 說得來痛快하니
今人 初生稍有知識 此心 便恁舋舋地去了하야 干名逐利하야 浸浸不已하니 其去聖賢 日以益遠이라
豈不深可痛惜이리오
原注
○ 蘭溪范氏曰
善利之念 間不容髮이라 一髮之差 遂分舜蹠이니 學者可不戒且懼哉
不必謂貨利 凡有利心 皆利也
予故發孟子之意하야 爲舜蹠圖하노니 謂夫善利之念 起于心者 其始甚微 而其得失之相去也 若이라
雖舜也 一罔念而狂하고 雖蹠也 一克念而聖하나니 人能於危微之際而得之 則亦幾矣
故又以克念罔念之說 繫于舜蹠焉하노라
原注
舜蹠圖舜蹠圖
[按] 范氏此圖 可與朱子所訂趙氏誠幾圖 參觀이니라


原注
심경부주心經附註 제4권
29. 계명이기장雞鳴而起章
맹자孟子가 말씀하였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을 하는 자는 임금의 무리요, 닭이 울면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利益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盜蹠의 무리이니, 임금과 도척盜蹠의 구별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것이 없다.
의 사이인 것이다.”
原注
[原註]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이라고 말한 것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다투는 바가 털끝 만한 것일 뿐임을 말한 것이다.
일 뿐이니, 조금이라도 에서 벗어나면 곧 라고 말할 수 있다.”
原注
양씨楊氏가 말하였다.
임금과 도척盜蹠상거相去가 멀지만 그 구별은 바로 의 사이에 있을 뿐이니, 이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강론講論하기를 익숙히 하지 않고 보기를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라고 여기지 않을 자가 없으니, 이는 또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原注
혹자或者가 묻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서 만일 사물을 접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야 이 됩니까?”하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다만 을 주장하는 것이 곧 을 하는 것이다.”
原注
[附註]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를 바르게 행하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를 밝히고 을 계산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것이 동중서董仲舒제자諸子들보다 크게 뛰어난 이유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동중서董仲舒성립成立한 것이 매우 높으니, 후세 사람들이 옛사람만 못한 이유는 도의道義공리功利관문關門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原注
상채사씨上蔡謝氏(謝良佐)가 말하였다.
명리名利관문關門을 통과하여야 비로소 조금 쉴 수 있는 곳이니, 지금 사대부士大夫들은 어찌 굳이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말만 잘하는 것이 참으로 앵무새와 같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상채上蔡의 이 말씀은 매우 두려워할 만하니, 모름지기 이곳에 다리를 세워 정한 뒤에야 박문博文약례約禮의 공부가 시행될 곳이 있게 된다.”
原注
의 사이를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냉수冷水가 아니면 곧 열탕熱湯이니, 중간에 따뜻함이 따뜻함을 머금은 곳(미지근한 부분)은 없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천리天理인욕人欲의 구분이 단지 사소한 것을 다투므로 주염계周濂溪선생은 다만 기자幾字를 말씀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분별하기를 일찍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횡거橫渠는 언제나 (미리)字를 말씀하였다.”
原注
“일이 도리道理에 부합하는데, 뜻을 두어 이것을 하면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일은 비록 의로우나 마음은 사사롭다.
예를 들면 길을 좋은 사람이 가더라도 이 길이요 도적이 가더라도 이 길인 것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것은 천리天理이고 계교計較하는 마음을 두면 곧 옳지 않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의 사이에 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을 두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남이 좋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고 이것으로 祿을 구하려고 한다면 모두 가 된다.
이러한 경우는 양상樣相이 지극히 많아 여러가지니, 비록 행하는 바가 모두 하더라도 다만 일호一毫(조금)라도 외물外物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이다.
예컨대 한 덩어리의 깨끗하고 흰 사물의 상면上面에 다만 한 점의 검은 것을 붙여 놓으면 곧 흰 것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세간世間를 깨달은 자는 군자君子가 되고 를 깨달은 자는 곧 소인小人인데, 근년에 일종의 의론議論은 마침내 이 두 가지의 사이에서 맴돌고자 하여 회호위곡回互委曲(明白正直하지 못함)해서 심기心機를 다 허비해도 마침내는 군자君子가 되지 못하고, 소인小人이 되는 것도 색성索性소인小人은 되지 못하니, 마음을 잘못 쓴다고 이를 만하다.”
原注
지난번에 이모李某가 처음 한 글을 올려 도학道學이 이처럼 나쁘다고 극구 말하였으니, 이 때에 아무개가 요로要路에 있었으므로 이 말로 비위를 맞춰서 상주上州로 높이 승진되었다.
그러다가 지난날 내가 막 소명召命에 달려가 행재소行在所에 이르자, 갑자기 또 한 글을 올려 도학道學의 아름다움을 극구 칭찬하였으니, 저는 내가 어떤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것으로 비위를 맞추고자 한 것이니, 지극히 우습다.
原注
남헌장씨南軒張氏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는 공맹孔孟잠심潛心하여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데, 어리석은 나는 생각하건대 의 구분을 밝히는 것보다 더 먼저 할 것이 없다고 여긴다.
성현聖賢은 위한(목적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니, 위한 바가 없이 그러한 것은 천명天命이 그치지 않고 이 편벽되지 않고 가르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무릇 위한 바가 있어 그러한 것은 모두 인욕人欲이고 천리天理가 보존된 것이 아니니, 이것이 의 구분이다.
성찰할 줄 모르는 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하루를 마치는 사이에 를 위하지 않는 경우가 드무니, 다만 명예와 지위와 재화財貨인 뒤에야 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향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위한 바가 있음에 해당되면 비록 얕고 깊음의 차이가 있으나 자기를 따라 스스로 사사롭게 함에 있어서는 똑같을 뿐이다.
이 마음이 날로 불어나면 한 마음이 막히게 되니, 성현聖賢문장門墻을 가까이하여 자득自得하기를 바란다면 어찌 뒷걸음을 치면서 앞사람에게 미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배우는 자는 마땅히 뜻을 세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을 잡아 지키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서 동정動靜의 사이에 정밀하게 살펴 털끝 만한 차이에서 천양天壤의 구분이 됨을 안다면 자신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하였는데,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다’고 하셨으니, 남을 위하는 자는 가는 곳마다 아님이 없고 자신을 위하는 자는 가는 곳마다 아님이 없다.
이로우면 비록 자신에게 있는 일이라도 모두 남을 위하는 것이요, 의로우면 비록 남에게 베푸는 일이라도 모두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아!
의 구분이 크니, 어찌 다만 배우는 자가 자신을 다스리는 데에만 먼저 하여야 할 바이겠는가.
천하와 국가에 베풀어도 똑같은 것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는 위한 바가 없이 그러하다는 이 말씀은 예전의 성인聖人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넓혀서 성선性善양기養氣발명發明맹자孟子과 같다고 이를 만하다.”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주자朱子가 ‘의 사이를 진실로 깊이 밝혀 힘써 구분하여야 하나, 이락伊洛(程子)이 사물을 접하지 않았을 때에 을 주장해야 한다는 일단一段의 공부를 발명하신 것을 다시 모름지기 정진精進하여야 비로소 아름다우니, 그렇지 않으면 혹 의거하여 의 구분을 살필 수가 없다’ 하신 이 말씀을 더욱 배우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原注
상산육씨象山陸氏(陸九淵)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를 깨닫고 소인小人를 깨닫는다 하였으니, 이 로써 군자君子소인小人을 판별하였는 바, 만일 자기 몸에 절실하게 보고 살피지 않으면 또한 유익함이 없을 듯하다.
사람이 깨닫는 바는 익힌 바에 연유하고 익히는 바는 뜻한 바에 연유한다.
에 뜻하면 익힌 바가 반드시 에 있을 것이니 익힌 바가 에 있으면 를 깨달을 것이요, 에 뜻하면 익히는 바가 에 있을 것이니 익힌 바가 에 있으면 를 깨달을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의 뜻을 분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선비가 된 자들은 진실로 장옥場屋(科擧)의 득실得失을 면치 못하나 다만 그 기예技藝유사有司의 좋아하고 싫어함과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니, 군자君子소인小人의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세속에서는 이것을 서로 숭상하여 여기에 골몰해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니, 그렇다면 종일토록 종사하는 것이 비록 성현聖賢의 책이라 하더라도 그 뜻이 향하는 바를 찾아보면 성현聖賢배치背馳됨이 있는 것이다.
미루어 올라가면 또 관자官資의 높고 낮음과 녹봉祿俸의 많고 적음만을 계산하니, 어찌 국가의 일과 백성의 고통에 마음과 힘을 다하여, 맡기고 부린 자(君上)를 저버림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 사이에 종사하여 경력更歷(經歷)함이 많고 강습講習함이 익숙하면 어찌 깨닫는 바가 없겠는가마는 다만 에 있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진실로 이 몸을 소인小人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여, 이욕利慾의 익힘에 대하여 서글프게 마음을 아파하고 머리를 아파해서 오로지 를 주장하여 날로 힘써서,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구분하여 독실히 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장옥場屋에 나아가면 그 문장文章이 반드시 평소의 학문學問흉중胸中에 쌓인 것을 다 말하여, 성인聖人와 어긋나지 않을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벼슬하면 반드시 모두 직책을 수행하고 일을 부지런히 하며 나라에 마음을 두고 백성에게 마음을 두어서 자신을 위한 계교를 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군자君子라 이르지 않겠는가.”
原注
진지陳芝가 “지금 마땅히 무슨 책을 읽어야 합니까?”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성현聖賢이 사람을 가르친 것은 모두 자신에게 간절한 말씀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밖을 향하여 다만 책 위에 나아가 읽고 곧 끝나게 한 것이 아니니, 자신이 지금 우선 하나의 를 판별하여, 자신이 지금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자신을 위하는가를 한 번 살펴보아야 하니, 이것이 바로 죽고 사는 노두路頭(갈림길)이다.
일찍이 육자정陸子靜(陸九淵)의 의리義利의 말을 보았는가?”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것(義利의 말)은 그가 남강南康에 왔으므로 내가 그에게 글을 해설해 줄 것을 요청하였더니, 그는 도리어 이 를 분명히 해야 함을 말하였으니, 이 말이 참으로 좋다.
예컨대 ‘지금 사람들은 단지 책을 읽음에 를 위하여, (鄕試에 합격함)를 취한 뒤에는 또 벼슬을 얻고자 하고 벼슬을 얻으면 또 벼슬이 승진되기를 구하여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를 위하지 않음이 없다’ 하여 말함이 통쾌하였으니, 이 말을 듣고 심지어는 눈물을 흘린 자도 있었다.
지금 사람들은 처음 출생하여 다소 지식이 있으면 이 마음이 곧 이와 같이 부지런히 가서 명예를 구하고 이익을 좇아 점점 달려가고 그치지 않으니, 성현聖賢과의 거리가 날로 더욱 멀어진다.
어찌 심히 애통하고 애석하지 않겠는가.”
原注
난계범씨蘭溪范氏가 말하였다.
에 대한 생각은 그 사이에 머리털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間髮의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한 털끝 만한 차이에서 임금과 도척盜蹠이 나누어지니, 배우는 자가 경계하고 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는 반드시 재화財貨의 이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릇 이롭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두 이다.
그러므로 내가 맹자孟子의 뜻을 발명하여 순척도舜蹠圖를 만드나니, 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미미하나 득실得失상거相去구천九泉의 아래와 중천重天의 꼭대기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또 생각하기를 ‘비록 임금이라도 한 번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비록 도척盜蹠이라도 한 번 잘 생각하면 성인聖人이 된다’고 여기나니, 사람이 (人心)‧(道心)의 사이에서 이것을 안다면 또한 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므로 또 극념克念망념罔念의 말을 임금과 도척盜蹠의 아래에 붙인 것이다.”
原注
[按]범씨范氏의 이 그림은 주자朱子정정訂正조씨趙氏(趙致道)의 성기도誠幾圖와 참고하여 보아야 한다.


역주
역주1 雞鳴而起章 : 《孟子》 〈盡心 下〉에 보인다.
역주2 : 纔
역주3 [刊補]未有不反以利爲義者 : 이것은 크게 드러난 利慾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고 心術의 精微한 곳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또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라고 경계한 것이다. ○ 살펴보건대 학문을 강론함이 밝지 못하고 이치를 봄이 정확하지 못하면 利를 義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謝良佐가 말한 “만약 道로써 살피지 않으면 곧은 것을 굽다고 하고 굽은 것을 곧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라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心術의 隱微한 곳만을 가리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주4 [釋疑]只主於敬 便是爲善 : 朱子가 말씀하기를 “聖人의 마음은 순수함이 또한 그치지 아니하여 비록 일이 없을 때라도 항상 主宰가 있다.”하였다.
역주5 [釋疑]董仲舒有言 …… 明其道不計其功 : 前漢의 董仲舒가 江都의 相(정승)이 되어 易王(역왕)을 섬겼는데, 王이 일찍이 묻기를 “越王 句踐이 泄庸(예용)과 文種, 范蠡와 함께 吳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켰으니, 寡人은 越나라에 세 仁者가 있다고 여기노라.”하자, 董仲舒가 대답하기를 “仁人(어진 사람)은 그 義를 바르게 행하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道를 밝히고 功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仲尼의 門下에는 5尺의 童子들도 五伯(오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으니, 이는 五伯가 속임수와 무력을 앞세우고 仁義를 뒤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越나라에는 한 사람의 仁者도 있지 않은 것입니다.”하였다.
역주6 [釋疑]所立 : 地位(경지)를 이른다.
역주7 [釋疑]道義功利關 : 道義와 功利의 限隔(경계)가 되는 문이다.
역주8 [釋疑]不透 : 저기에서 벗어나 여기에 들어오지 못함을 이른다.
역주9 [刊補]小歇處 : 살펴보건대 名利의 關門을 통과하여 基址에 다리를 세워야 비로소 歇泊處(머물 곳)가 있으니, 上面에 비로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잠시 쉬는 곳이라 하나, 옳지 않다.
역주10 [釋疑]能言 眞如鸚鵡也 : 《禮記》에 “앵무새가 말을 잘하나 나는 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하였다.
역주11 [釋疑]此處 : 名利關을 통과하는 곳이다.
역주12 [釋疑]中間溫呑煖處 : 溫과 煖이 서로 삼키면(합하면) 이것이 冷과 熱의 중간인 것이다. [刊補] 《考誤》에 “煖은 바로 溫의 뜻이요, 溫 역시 煖의 뜻이다.”하였다. 살펴보건대 善과 利의 구분은 冷과 熱의 구분과 같아서 끝내 하나가 되어 溫과 煖처럼 분별이 없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補註]溫과 煖은 모두 크게 뜨겁지 않고 약간 따뜻한 것인 바, 우리 속담에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하다’는 것과 같은 말로 크게 구별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13 [釋疑]只爭些子 : 爭은 辨爭과 分爭의 뜻이 있으니, 털끝 만한 차이를 분별한다는 말과 같다.
역주14 [釋疑]幾字 : 周子가 말씀하기를 “誠은 함이 없고 幾에서 善惡이 나누어진다.[誠無爲 幾善惡]”하였는데, 朱子는 말씀하기를 “幾는 動함의 은미한 것으로 善과 惡이 이로 말미암아 나누어진다.”하였다. 마음의 은미함에 동하면 天理가 진실로 발현되고, 人欲 또한 이미 이 사이에 싹트니, 이는 陰陽의 象이다. [補註]太極이 動하면 陰과 陽이 나누어지듯 人心도 動하면 天理와 人欲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陰陽의 象’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5 [釋疑]豫字 : 張子가 말씀하기를 “義를 정하게 연구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일이 내 마음속에 미리 정해져서 나의 밖을 이롭게 하기를 구하는 것이다.”하였다. 《中庸》의 註에 “豫는 평소에 미리 정하는 것이다.”하였다.
역주16 [釋疑]合是如此者 : 義理上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여겨서 하는 것이다.
역주17 [釋疑]而近年一種議論 …… 費盡心機 : 이는 朱子가 楊方에게 준 편지의 내용이다. 이때 黨禍가 크게 일어나자 楊方은 두려워서 直截(분명)하게 君子의 黨으로 自處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朱子가 이것으로 回互(돌림)하고 委曲하여 直截하지 못한 뜻을 貶下한 것이다. 心機는 心術의 機巧이다. [補註]回互는 사태를 관망하기 위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우물쭈물함을 이른다.
역주18 [刊補]其爲小人 亦不索性 : 索性은 ‘極意(매우)’의 뜻과 같다. 또 ‘直截’이라고도 한다. 혹 索字만 쓴 곳도 있다. ○ 묻기를 “이는 형편없는 小人인데 ‘小人이 되는 것도 索性의 小人은 되지 못한다’ 하였으니, 어째서입니까?”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자신을 回護하여 義와 利 두 가지 사이에서 맴돌아 義를 하고자 하면서도 실제로는 利에 이끌리고, 利를 하고자 하면서도 또 義를 버리려고 하지 아니하여, 그대로 머뭇거리면서 마음의 機智를 다 허비하니, 비록 형편없는 小人이라고 논할 수 없으나 어찌 다리를 꼿꼿이 세운 君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벼슬아치가 되어 학문이 밝지 못하고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 이것을 면할 자가 드물 것이다.”하였다.
역주19 [釋疑]行在 : 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곳으로, 이때 宋나라가 金나라의 침공을 피하여 남쪽으로 遷都하였으므로 도읍한 곳을 가리켜 行在라 한 것이다.
역주20 : 삼
역주21 [刊補]無所爲而然也 : 無所爲는 살펴보건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기대하거나 도모함이 없다는 뜻이다. [補註] 명예나 이익 따위를 위한 바가 없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곧 목적한 바가 없이 義理를 행함을 이른다.
역주22 [釋疑]命之所以不已 …… 而敎之所以無窮也 : 《中庸》 首章의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세 句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역주23 [釋疑]持敬以爲本 …… 毫釐之差 : 敬을 지키면 마음이 비워지고 밝으므로 動하고 靜하는 털끝 만한 사이에 義와 利를 精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이다. 動靜은 몸으로 말하였고 毫釐는 일로 말하였다.
역주24 [釋疑]霄壤之判 : 霄壤은 하늘과 땅으로, 義의 높음은 하늘과 같고 利의 낮음은 땅과 같은 것이다.
역주25 [刊補]曰利 : 曰利 아래에 則字가 있어야 할 듯하다.
역주26 [釋疑]廣前聖 : 廣은 《大學或問》에는 擴으로 되어 있으니, 擴은 宋나라 寧宗의 諱이기 때문에 廣으로 바꿔 쓴 것이다.
역주27 [釋疑]性善養氣之功 : 孟子의 功이다.
역주28 [釋疑]不爾 : 不然이란 말과 같다.
역주29 [釋疑]君子 …… 喩於利 : 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伊川은 ‘오직 義를 깊이 깨닫기 때문에 돈독히 좋아하는 것이다’ 하였고, 陸子靜(陸九淵)은 ‘좋아한 뒤에 바야흐로 깨닫는다’ 하였다. 내가 살펴보건대 사람이 義理에 있어서 깨닫고 나서 좋아하는 자가 많으니, 만약 전혀 깨닫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좋아하면 깨닫는다. 하지만 필경 伊川의 말씀이 더 낫다.” [補註] 이 내용은 《論語》 〈里仁〉에 보이는 孔子의 말씀이다.
역주30 [釋疑]顧其技與有司好惡如何耳 : 나의 文章이 有司(考試官)의 好惡(취향)에 합당한가의 여부이다. [刊補]顧는 念(생각)의 뜻이다. [補註]顧는 ‘다만’ 또 ‘생각하건대’의 뜻이며, 技藝는 文章을 짓는 솜씨를 이르는 바, 《刊補》에서는 ‘자신의 文章 솜씨가 考試官의 好惡(취향)와 어떠한가를 생각한다’로 본 듯하다.
역주31 : 向
역주32 [刊補]推而上之 : 미루어 올라간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科擧의 得失을 논하다가 점차 品階나 祿俸을 언급한 것이 ‘推而上之’이다.
역주33 [釋疑]民隱 : 백성의 隱痛(고통)이다.
역주34 : 경
역주35 : 供
역주36 [釋疑]陳芝 : 字는 廷秀이니, 朱子의 門人이다.
역주37 [刊補]剖判 : 辨別한다는 뜻이다.
역주38 [釋疑]試自睹當自家今是要人求知 : 睹當은 見得(보다)의 뜻이다. [刊補] ‘人求知’가 《朱子語類》에는 ‘求人知’로 되어 있다.
역주39 [釋疑]死生路頭 : 生과 死가 분별되는 路頭(갈림길)를 이르니, 남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死이고 자신을 위하는 것은 生이다.
역주40 [刊補]曾見陸子靜義利之說否 : 살펴보건대 《朱子語類》에는 曾字 앞에 ‘顧謂道夫曰’이란 다섯 글자가 있다.
역주41 [釋疑]這是他來南康 : 這는 義理에 대한 말이고 他는 陸子靜이다. 朱子가 南康을 맡았을 때에 陸子靜이 왔었다.
역주42 [釋疑]說書 : 講書(책을 강함)라는 말과 같다.
역주43 [釋疑]取解 : 解는 初試이다. 郡縣에서 선비를 천거하여 京師로 보내기 때문에 解라 이르니, 解送의 解와 같다.
역주44 [釋疑]自少至老 自頂至踵 : 自少至老는 一生을 들어 말한 것이고, 自頂至踵은 一身을 들어 말한 것이다.
역주45 [釋疑]至有流涕者 : 諸生 중에 陸九淵의 講說을 들은 자가 눈물을 흘린 것을 말한다.
역주46 [釋疑]九地之下與重天之顚 : 九地는 重泉(깊은 지하)과 같으니, 相去가 현격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47 [釋疑]又以謂 : 范氏가 스스로 말한(생각한) 것이다.
역주48 舜蹠圖 : 善 舜 罔念 狂心利 蹠 克念 聖

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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