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按] 正思
의 名
은 端蒙
이니 新安人
으로 遷
陽
하여 從學朱子
하니 所著有小學字訓諸書
하니라
原注
一念之微에 所當深謹이니 心不專靜純一이라 故思慮不精明하나니
要須養得此心하야 虛明專靜하야 使道理從此流出이라야 乃善이니라
原注
孟子言學問之道 惟在求其放心이요 而程子亦言 心要在腔子裏어늘 今一向耽著文字하야 令此心全體로 都奔在冊子上하고 更不知有己면 便是箇無知覺不識痛癢之人이니 雖讀得書라도 亦何益於吾事邪아
原注
若不察於良心發見處면 卽渺渺茫茫하야 無下手處也리라
은 固君子之所急
이니 某向來所見
도 亦是如此
러니 近因反求
하야 未得箇安穩處
하야 却始知此未免支離
라
如
하야 以求程氏
하고 因程氏
하야 以求聖人
은 是隔幾重
고
曷若默會諸心
하야 以立其本
하야 而
之得失
이 自不能逃吾之鑒邪
아
原注
心者는 神明之舍니 虛靈洞徹하야 具衆理而應萬物者也라
然耳目口鼻之欲과 喜怒哀樂之私 皆足以爲吾心之累也라
此心
이 一爲物欲所累
면 則奔逸流蕩
하야 失其
하야 而無所不至矣
라
是以
로 古之聖賢
이 戰戰兢兢
하야 靜存動察
하야 如履淵冰
하고 如奉槃水
하야 不使此心少有所放
하시니 則
而道義行矣
라
自秦漢以來로 學者所習이 不曰詞章之富면 則曰記問之博也니 視古人存心之學하면 爲何事哉아
故其所以誨門人者 尤先於持敬하시니 敬則此心自存이니 而所以求放心之要旨歟인저
주자朱子의 〈구방심재명求放心齋銘〉에 말하였다.
“천지天地가 변화함에 이 마음이 매우 인仁하다.
인仁을 이룸이 자신에게 있으니, 마음은 몸을 주재한다.
만 가지 변화를 발휘하여 이 인극人極을 세운다.
잠시라도 잃으면 천리千里로 달아나니, 성誠이 아니면 어찌 있으며 경敬이 아니면 어찌 보존하겠는가.
무엇이 잃는 것이고 무엇이 찾는 것이며, 무엇이 없는 것이고 무엇이 있는 것인가?
굴신屈伸함이 팔뚝에 있고 반복反覆(번복)함이 손에 있는 것과 같다.
은미함을 막고 홀로를 삼감이 지킴의 떳떳한 법이니,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함으로써 도울지어다.”
原注
주자朱子의 자서自序에 “정정사程正思를 위하여 지었다.”하였다.
原注
[按]정사正思의 이름은 단몽端蒙이니 신안新安 사람으로 파양鄱陽으로 이사하여 주자朱子를 따라 배웠는데, 저서로는 《소학자훈小學字訓》 등의 여러 책이 있다.
原注
작은 한 생각을 마땅히 깊이 삼가야 할 것이니, 마음이 전정專靜하고 순일純一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려思慮가 정밀하고 밝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이 마음을 수양하여 허명虛明하고 전정專靜하게 해서 도리道理로 하여금 여기에서 흘러나오게 하여야 선善한 것이다.”
原注
여자약呂子約(呂祖儉)에게 준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맹자孟子는 학문學問의 도道가 오직 방심放心을 찾음에 있다고 말씀하였고, 정자程子 또한 마음이 강자腔子 속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였는데, 이제 한결같이 문자文字를 즐겨서 이 마음의 전체全體로 하여금 모두 달려가 책자冊子의 위에 있게 하고 다시는 자신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곧 지각知覺이 없어 아픔과 가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니, 비록 책을 읽더라도 또한 우리의 일에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原注
하숙경何叔京에게 답한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양심良心의 발현發現함이 미미하므로 맹렬히 살피고 일깨워서 마음을 어둡지 않게 하면 이것이 공부하는 본령本領이니, 본령本領이 이미 확립되면 자연 아래로 인사人事를 배우면서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할 것이다.
만약 양심良心의 발현發現하는 곳에 살피지 못한다면 아득하고 망망하여 착수할 곳이 없을 것이다.
선현先賢의 훌륭한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아는 것은 진실로 군자君子가 시급하게 여기는 바이니, 나도 그 동안 소견이 역시 이와 같았는데, 근래에 돌이켜 찾아 안온安穩한 곳을 얻지 못함으로 인하여, 비로소 이것이 지리함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이른바 ‘제공諸公으로 인하여 정씨程氏를 찾고 정씨程氏로 인하여 성인聖人을 찾는다’는 것은 이 몇 겹이나 막혀 있는 공안公案인가.
어찌 묵묵히 마음속에 이해하여 근본을 세워서 말의 득실得失이 자연 나의 거울을 도피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 하겠는가.”
原注
“마음은 신명神明의 집이니, 허령虛靈하고 통철洞徹(밝게 통함)하여 온갖 이치를 갖추고 만물萬物에 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욕망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사사로움이 모두 나의 마음에 누가 될 수 있다.
이 마음이 한 번(조금)이라도 물욕物慾에 얽매임을 당하면 분일奔逸하고(달려가고) 유탕流蕩하여 올바른 이치를 잃어서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옛 성현聖賢들은 전전戰戰하고 긍긍兢兢하여 정靜할 때에는 보존하고 동動할 때에는 살펴서 깊은 못에 임한 듯이 살얼음을 밟는 듯이 조심하고 쟁반의 물을 받들 듯이 공경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잃는 바가 없게 한 것이니, 이렇게 하면 이룬 성性을 보존하고 보존하여 도의道義가 행해질 것이다.
이는 맹자孟子의 ‘방심放心을 찾으라’는 한 말씀이 배우는 자들을 경계하신 뜻이 간절한 것이다.
진秦‧한漢 이래로 배우는 자들은 익히는 바가 사장詞章의 풍부함이 아니면 기문記問의 해박該博함이니, 고인古人의 마음을 보존한 학문에 비한다면 무슨 일이 되는가?
그러다가 주자周子와 정자程子에 이르러 성학聖學을 창명倡明해서 맹자孟子 이후 전하지 않던 실마리(전통)를 이었다.
그러므로 문인門人을 가르침에 더욱 지경持敬을 우선하였으니, 경敬하면 이 마음이 저절로 보존되는 바, 이것이 방심放心을 찾는 요지要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