所謂修身
이 在正其心者
는 身{心}有所忿
면 則
하며 有所恐懼
면 則不得其正
하며 有所好
면 則不得其正
하며 이면 則不得其正
이니라
이면 視而不見
하며 聽而不聞
하며 食而不知其味
니라
原注
四者
는 皆心之用而
나 而不能察
이면 則欲動情勝
하야 而其用之所行
이 或不能不失其正矣
리라
原注
是以君子必察乎此
하야 而
하니 然後此心常存而身無不修也
니라
原注
今一念之間에 中無私主면 便謂之虛요 事皆不妄이면 便謂之實이니 不是兩件事니라
敬則內欲不萌하고 外誘不入이니 自其內欲不萌而言이면 則曰虛요 自其外誘不入而言이라 故曰實이니 只是一時事라
一時
에 擧
主一銘
하야 以告學者曰 有主則虛
라 神守其郛
요 無主則實
이라 이니라
○ [按] 此下所摭程張論心之說
이 雖非正釋傳意
나 然
하고 者 皆不可不致謹乎此也
니라
原注
明道先生
이 在
하야 修橋
할새 하야 曾博求之民間
이러시니 後因出入
하야 見林木之佳者
하면 必起計
之心
이어늘
○ 問凡事를 須思而後에 通이니 安可謂心不可有一事잇가 朱子曰
所謂無事者는 非棄事也라 但視之를 如早起晏寢, 飢食渴飮하야 終日爲之而未嘗爲也라
大抵胸次를 常令安平和豫면 則事至應之에 自皆中節하야 心廣體胖하고 百疾俱除하리니 蓋養生養心이 同一法也라
荀子言喜事至則和而理
하고 라하니 理者
는 有條理而不亂之謂
니라
原注
疑病者
는 未有事至時
에 先有疑端在心
이요 者
는 先有周事之端
이 在心
이니 皆病也
니라
原注
外面에 酬酢萬變을 都只是隨其分限應去니 纔繫於物이면 心便爲其所動하나니라
其所以繫於物者 有三
하니 하며 正應事之時
에 意有偏重
이니 這都是爲物所繫縛
이라
旣爲所繫縛이면 便有這箇物事니 及別事來到面前에 應之便差了하나니
聖人之心은 瑩然虛明하야 無纖毫形迹하야 事物之來에 若小若大를 四方八面으로 莫不隨物隨應하니 此心이 元不曾有這箇物事니라
原注
正心之始
에 當以己心爲嚴師
하야 니 如此一二年間
에 守得牢固
면 則自然心正矣
리라
定然後有光明이니 若常移易不定이면 何由光明이리오
原注
○ 問大學誠意에 如何便可以平天下잇가 龜山楊氏曰
後世에 自是無人正心이니 正得心이면 其效自然如此니라
原注
聖賢
은 直是眞箇去做
하시니 說正心
엔 直要心正
하고 說誠意
엔 直要意誠
하고 修身齊家 皆非空言
이러니 今之學者
는 說正心
에 但將正心
하야 吟詠
하고 說誠意
에 又將誠意
하야 吟詠一餉
하고 說修身
에 又將聖賢許多說修身處
하야 諷誦而已
요 或掇拾言語
하고 綴緝時文
하나니 如此爲學
이면 却於自家身上
에 有何交涉
이리오
今之朋友 固有樂聞聖賢之學이나 而終不能去世俗之陋者는 無他하니 只是志不立耳라
原注
○ 一日에 因論讀大學하야 諸生이 答以每爲念慮攪擾한대 曰
自不知心所在하고 都要理會他事하며 又要齊家治國平天下하나니 心者는 身之主也라
原注
這心之正
이 하니 未有物時
에 秤無不平
이라가 纔把一物在上面
이면 便不平了
하고
鏡中에 先有一人在裏面이면 別一箇來에 便照不得하나니라
且如今人
이 說我做官
이면 要
이라하야 에도 也去抑他
면 這便是不正
이니라
譬如一件事 若係公衆이면 便心下에 不大管하고 若係私己면 便只管橫在胸中하야 念念不忘하나니 只此便是公私之辨이니라
原注
不同하니 恐懼는 是目下逼來得緊底라 使人恐懼失措요 憂患은 是思慮預防將來有大禍福利害니라
又問 忿懥好
는 在我之事
니 可以勉强不做
어니와 如憂患恐懼
는 是外面來底
니 不由自家
로소이다 曰
라도 須是自家有箇道理
하야 處置得下
하면 恐懼憂患
이 이니라
孔子畏匡人
하시고 文王囚
里
에 死生在前了
로되 聖人
이 處之恬然
하시니
原注
忿懥恐懼好樂憂患四者는 喜怒哀樂之發이니 乃心之用而人所不能無者어늘 則何惡於是而便以爲不得其正哉아
蓋當怒則怒라 怒而不遷이요 當懼則懼라 懼而非懾이요 可好則好라 好而非欲이요 可憂則憂라 憂而非傷이라야 是爲得此心體用之正이니 而非可以有無言之也라
今以傳文觀之컨대 一則曰有所라하고 二則曰有所라하니 則是心之所主者 在此하니 其失也固矣로다
라하고 懼而曰恐懼
라하고 好而曰好樂
라하고 憂而曰憂患
이라하니 卽其
컨댄 則是情之所勝者 至此
하니 其滯也深矣
로다
夫以心主於此而失之固하고 情勝至此而滯之深이면 則此心이 能得其正乎아
夫無所喜怒憂懼而歸於寂滅이 固非心之正體요 有所喜怒憂懼而失之滯固도 亦非心之正用이니 惟事至而隨應하고 物去而不留 其斯以爲正乎인저
原注
① 張思叔
이 僕夫
어늘 伊川先生曰 何不
고하신대 思叔
이 慙謝
하니라
原注
古之學者는 惟務養性이요 其他則不學이러니 今爲文者는 專務章句하야 悅人耳目하나니 旣務悅人이면 非俳優而何오
原注
只是燭理不明이니 若能燭理면 則知所懼者妄이니 何懼焉이리오
原注
④ 伊川
陵之行
에 過
할새 波濤洶湧
하니 舟中之人
이 皆驚愕失措
로되 獨伊川
은 凝然不動
이러시니
原注
古人은 有捐軀隕命者하니 若不實見得이면 則烏能如此리오
原注
⑥ 伊川
이 歸自涪州
에 氣貌容色
이 皆勝平昔
이어시늘
大凡學者는 學處患難貧賤이니 若富貴榮達은 卽不須學이니라
原注
伊川先生之學이 專以敬爲主하야 充養旣至하시니 固宜粹然一出於正也라
夫一
之微 若未過也
로되 則戒其動心忍性
하시니 蓋有所忿懥則不得其正
일새요 懼于暗室之頃
이 未爲失也
로되 則斥其燭理不明
하시니 蓋有所恐懼則不得其正
일새요
以至溺文章則惡其玩物하시고 遇患難則憫其不能舍生하시니 蓋有所好樂憂患이면 則俱不得其正일새라
○ [按] 臧氏所論敬
이 이나 然深有警于學者
니라
原注
[按]
는 記朱子正心之學
이니 當與伊川先生事參觀
이니라
原注
先生
이 一日
에 說及受贓者
라가 怒形於言曰
호리라
徐又曰 今說公吏不合取錢이라호되 爲知縣者 自要錢矣라하시고 節節言之하사 爲之吁嘆하시니라
原注
我只有一箇
하니 如何兼得許多
리오하고 自此
로 逐時去了
로라
原注
④ 問每有喜好適意底事
면 便覺有自私之心
하니 若欲見理
인댄 便與克下否
잇가 曰
此等事 見得道理分明이면 自然消磨了니 似此迫切이면 却生病痛이니라
原注
是夜
에 會族人
하야 往官司
할새 有灰
하야 乍飮
에 遂動
終夜
하고 次日
에 又偶有一蛇在階旁
하니 衆人
然
하야 以爲不謁廟之故
라하야늘
中有某人하니 是向學之人이로되 亦來勸往하고 云亦是從衆이라하야늘
原注
⑥ 問人患多懼하야 雖明知其不當懼나 然不能克하니 莫若且强制此心하야 使不動否잇가 曰
原注
⑦
이 作
에 或勸先生散學徒
하고 閉戶省事
하야 以避禍者
어늘
이라하니 只是不去
이 便是默
이니 不成屋下合說底話
를 亦不敢說
이니라
原注
某又不曾上書自辨
하고 又不曾
하고 只是與朋友
로 講習古書
하야 說這道理
하노니 更不敎做
면 却做何事
리오
論語首章에 言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하고 斷章에 言 不知命이면 無以爲君子라하니
今人開口
에 이라호되 及遇小小利害
하야는 便生趨避計較之心
하나니라
古人
이 라도 視之如無物者
는 蓋緣只見得這道理
요 都不見那刀鋸鼎鑊
일새라
原注
先生爲學에 窮理以致其知하고 反躬以踐其實하시니 其存之也虛而靜하고 其發之也果而確하며 其用之也應事接物而不窮하고 其守之也歷變履險而不易이라
至其養深積厚하야는 矜持者純熟하고 嚴厲者和平하야 心不待操而存하고 義不待索而精이로되 猶以爲義理無窮하고 歲月有限이라하야 常慊然有不足之意하시니라
從遊之士 誦習質疑에 務學篤則喜見於言하고 進道難則憂形于色하시되
, 辨別義利, 毋自欺, 謹其獨之戒
엔 未嘗不三致意焉
하시니라
○ [按] 黃氏所記朱子心學이 甚精하니 最宜體玩이니라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그 마음을 바루는 데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며,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며,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일러 ‘몸을 닦는 것이 그 마음을 바루는 데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原注
“네 가지는 모두 마음의 용用이니, 사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나 한 번(조금)이라도 이것을 두고(가지고 있고) 살피지 못한다면 욕심이 동하고 정情이 치우쳐서 용用의 행하는 바가 혹 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原注
“마음이 보존되지 않음이 있으면 몸을 검속檢束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군자君子는 반드시 이를 살펴서 경敬하여 마음을 곧게 하는 것이니, 그런 뒤에야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 몸이 닦아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原注
“마음속에 주재主宰가 있으면 실實(진실)해지니, 실實하면 밖의 근심이 들어오지 못하여 자연 일이 없게 된다.”
“주재가 있으면 허虛해지니 허虛는 사邪가 들어오지 못함을 이르고, 주재가 없으면 실實해지니 실實은 외물外物(物慾)이 와서 빼앗음을 이른다.”
原注
“이제 한 번 생각하는 사이에 마음속에 사사로운 주장이 없으면 곧 이것을 허虛라 이르며, 일이 모두 망령되지 않으면 곧 이것을 실實이라 이르니, 두 가지 일이 아니다.”
“공경하면 안의 욕심이 싹트지 않고 외물外物의 유혹이 들어오지 않으니, 안에 욕심이 싹트지 않는 것을 가지고 말하면 허虛라 하며, 외물外物의 유혹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가지고 말하였으므로 실實이라 한 것이니, 다만 한 때의 일이다.
언젠가 (한번은) 임용중林用中(林擇之)의 주일명主一銘을 들어서 배우는 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주재가 있으면 허虛하여 신神이 그 성곽城郭(집)을 지키고 주재가 없으면 실實하여 귀신이 그 방안을 엿본다’ 하였다.”
○ [按] 이 아래에 뽑은 정자程子와 장자張子의 마음을 논한 말씀은 비록 전문傳文의 뜻을 바로 해석한 것이 아니나, 마음이 있어서(留滯되어) 편벽된 바가 있고 마음이 없어서 아는 바가 없는 자들은 다 여기에 삼감을 지극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原注
“마음에는 한 가지 일(사물)도 머물러 두어서는 안 된다.”
原注
명도선생明道先生이 전주澶州에 부임해 있으면서 다리를 보수할 적에 긴 들보감 한 개가 부족하여 일찍이 민간民間에 널리 구하였는데, 뒤에 출입함으로 인하여 산림山林의 나무 중에 아름다운 것을 보면 반드시 헤아려보는 마음이 일어나곤 하였다.
인하여 이 말씀을 가지고 배우는 자들을 경계한 것이다.
○ “모든 일을 반드시 생각한 뒤에야 통하니, 어찌 마음에는 한 가지 일도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다만 일이 지나가면 마음에 머물러 두지 않음이 옳은 것이다.”
“이른바 ‘일이 없다’는 것은 일을 버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보기를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며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듯이 하여 종일토록 하여도 일찍이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대저 가슴속을 항상 평안하고 즐겁게 하면 일이 이르러 응함에 자연히 모두 절도節度에 맞아서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지며 온갖 병이 모두 제거될 것이니, 양생養生과 양심養心이 똑같은 방법이다.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기쁜 일이 이르면 화하게 다스리고 근심스러운 일이 이르면 고요히 다스린다’ 하였으니, 이理란 조리가 있어서 어지럽지 않음을 이른다.”
原注
“기사機事를 보기를 오랫동안 하면 기심機心이 반드시 생겨나게 된다.
그리하여 기사機事를 볼 때에 마음이 반드시 기뻐질 것이니, 이미 기뻐하면 나쁜 종자種子를 심어 놓는 것과 같다.”
“의심스러운 병이 있는 자는 일이 이르지 않았을 때에 먼저 의심하는 단서가 마음속에 있고, 일을 주라周羅(두루 망라함)하는 자는 먼저 일을 망라하려는 단서가 마음속에 있으니, 모두 병통이다.”
原注
외면外面에 만 가지 변화를 수작酬酌함을 모두 다만 그 분한分限(分數)에 따라 응할 뿐이니, 조금이라도 사물에 얽매이면 마음이 곧 동요되고 만다.
사물에 얽매이는 것은 세 가지가 있으니, 혹은 일이 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기대하는 마음이 있으며, 혹은 일에 이미 응한 뒤에 또 항상 가슴속에 두고 있어서 잊지 못하며, 바로 일에 응할 때에 뜻에 편중偏重함이 있는 것이니, 모두 사물에 매이고 속박당하는 것이다.
이미 매이고 속박 당하면 곧 이러한 사물이 있게 되니, 딴 일이 면전에 왔을 때에 응하면 곧 잘못된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환하게 비고 밝아서 털끝 만한 형적形迹도 없어 사물이 올 적에 작은 것과 큰 것을 사방四方과 팔면八面으로 사물에 따라 응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마음에 원래 이러한 사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좋아하면 방촌方寸(마음)이 응정凝定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의義를 택함에 정밀하지 못하고 생生을 보전함에 삼가지 못하는 것이다.”
原注
“마음을 바루는 초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엄한 스승으로 삼아서 무릇 동작함이 있을 적에 두려워(공경)할 줄을 알아야 하니, 1, 2년 동안 이와 같이 하는 사이에 지킴이 견고해지면 자연 마음이 바루어질 것이다.”
“마음이 안정된 뒤에야 광명光明함이 있으니, 만약 항상 옮기고 바뀌어 안정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광명할 수 있겠는가.
《주역周易》에 대저 간괘艮卦를 그침(머물러 안정함)으로 삼았으니, 그쳐야 비로소 광명해진다.
그러므로 《대학大學》에 정定하여 생각함에 이르렀으니, 사람이 마음이 많으면 광명할 수가 없다.”
“마음이 많다는 것은 사려思慮가 분분하고 번잡함을 이른다.”
原注
“《대학大學》에 뜻을 성실히 함에 어떻게 곧 천하를 평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구산양씨龜山楊氏가 말씀하였다.
“후세에는 진실로 마음을 바룬 사람이 없으니, 마음을 바루면 그 효험이 자연 이와 같은 것이다.
마음은 한 번 생각하는 사이에 털끝만큼이라도 차실差失이 있으면 곧 바르지 못한 것이다.”
原注
“고인古人이 ‘뜻은 장수이고 마음은 군주’라고 말하였으니, 모름지기 마음에 주장함이 있어야 비로소 되는 것이다.”
原注
“사람이 다만 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 항복시키지 못한다면 다시 어떠한 사람이 되겠는가.”
原注
“세속의 학문이 성현聖賢과 다른 까닭은 또한 알기가 어렵지 않다.
성현聖賢은 곧바로 진실하게 하시니, 정심正心을 말할 때에는 곧 마음이 바르고 성의誠意를 말할 때에는 곧 뜻이 성실하고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도 모두 빈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정심正心을 말할 때에는 다만 정심正心을 가지고 잠시 읊을 뿐이요, 성의誠意를 말할 때에도 성의誠意를 가지고 잠시 읊을 뿐이요, 수신修身을 말할 때에도 성현聖賢이 허다하게 수신修身을 말씀한 부분을 가지고 입으로만 욀 뿐이며 혹은 언어言語를 주워 모으고 시문時文(科文)을 엮어 지으니, 이와 같이 학문을 하면 자기 신상身上에 무슨 교섭交涉(상관)이 있겠는가.
여기에 반드시 뜻을 써서 이회理會하여야 한다.
지금의 붕우朋友 중에 진실로 성현聖賢의 학문을 듣기 좋아하는 자가 있으나 끝내 세속의 누추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딴 이유가 없으니, 다만 뜻이 서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대저 뜻을 세워야 하니, 잠시라도 배우면 곧 성인聖人이 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原注
하루는 《대학大學》을 읽는 방법을 논하다가 제생諸生들이 언제나 생각이 요란하다고 대답하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는 다만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니, 경敬은 항상 마음을 깨우는 법이다.
경敬으로써 주장을 삼으면 모든 일이 다 이로부터 해나가게 된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이회理會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의 마음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모두 딴 일을 이회理會하려고 하며 또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하려고 하니, 마음은 몸의 주장이다.
배를 부리려면 모름지기 상앗대를 사용하여야 하고 밥을 먹으려면 모름지기 수저를 사용하여야 하니, 마음을 이회理會하지 못한다면 이는 배를 부림에 상앗대를 사용하지 않고 밥을 먹음에 수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을 잡는 것은 단지 경敬이니, 조금(잠시)만 경敬하면 무슨 일을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산에 오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이요 물에 들어가는 것도 다만 이 마음인 것이다.”
原注
《대학大學》의 분치장忿懥章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 마음의 바름은 저울과 똑같으니, 〈저울 위에〉 물건이 놓여 있지 않았을 때에는 저울이 평평하지 않음이 없다가 조금이라도 한 물건을 그 위에 놓으면 곧 평평하지 못하게 된다.
거울 속에 먼저 한 사람의 모습이 그 속에 있으면 딴 것이 올 적에 제대로 비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마음이 사물이 있지 않을 때에 먼저 하나의 주장이 있어서 내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려 한다고 말하면 곧 바르지 못하게 된다.
우선 예를 들면 지금 사람들이 내가 벼슬살이를 하면 강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붙들어주겠다고 말하여, 〈아랫사람이〉 마땅히 강하게 해야 할 일을 〈강하게 함을〉 만났을 경우에도 저를 〈강한 사람이라 하여〉 억제한다면 이는 곧 바르지 못한 것이다.”
또 공사公私의 구별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비유하건대 한 가지 일이 만약 공중公衆에 관계되면 마음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만약 자신에게 관계되면 이것만은 가슴속에 걸려 있어서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못하니, 다만 이것이 곧 공公과 사私의 구별이다.”
原注
“우환憂患과 공구恐懼 네 글자는 똑같은 뜻인 듯합니다.”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똑같지 않으니, 공구恐懼는 목하目下(당장)에 핍박함이 긴급한 것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공구恐懼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게 하는 것이요, 우환憂患은 장래에 큰 화복禍福과 이해利害가 있음을 사려思慮하여 미리 방비하는 것이다.”
또 “분치忿懥와 호악好樂는 나에게 있는 일이니, 억지로 힘써서 하지 않을 수 있으나 우환憂患과 공구恐懼같은 것은 외면에서 오는 것이니, 자신에게 말미암지 않습니다.”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곧 (비록) 외면에서 오는 것이라도 모름지기 자신에게 알맞는 도리道理가 있어서 제대로 처치處置하면 공구恐懼와 우환憂患도 단지 공연空然한 것일 뿐이다.
공자孔子는 광匡땅 사람들을 경계하시고 문왕文王은 유리羑里에 갇혀 있었는데, 죽고 사는 것이 눈앞에 있었으나 성인聖人이 태연히 대처하셨다.
다만 이것을 보면 곧 그러하니, 요컨대 도리道理를 봄이 분명하면 자연 이러한 근심이 없을 것이다.”
原注
“분치忿懥‧공구恐懼‧호악好樂‧우환憂患 네 가지는 희喜‧노怒‧애哀‧락樂이 발한 것이니, 바로 마음의 용用이어서 사람이 없을 수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것을 미워하여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였는가.
마땅히 노해야 하면 노하되 노하면서도 옮기지 않으며,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면 두려워하되 두려워하면서도 공포에 떨지 않으며, 좋아할 만하면 좋아하되 좋아하면서도 욕심 내지 않으며, 근심할 만하면 근심하되 근심하면서도 상심하지 않아야 이 마음의 체體와 용用이 바름을 얻은 것이 되니, 있고 없음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전문傳文을 가지고 관찰하면 첫 번째도 유소有所라고 말했고 두 번째도 유소有所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마음의 주장하는 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니, 그 잘못됨이 확고하다.
분함을 분치忿懥라 하고 두려움을 공구恐懼라 하고 좋아함을 호악好樂라 하고 근심함을 우환憂患이라 하였으니, 중첩한 말을 가지고 보건대 정情의 이김이 이에 이른 것이니, 집체執滯함이 깊다.
마음이 이것을 주장하여 잘못됨이 확고하고 정情의 이김이 이에 이르러 집체執滯함이 깊으면 이 마음이 바름을 얻을 수 있겠는가.
기뻐하고 노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서 적멸寂滅로 돌아가는 것도 진실로 마음의 올바른 체體가 아니요, 기뻐하고 노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집체執滯하고 고집固執함에 잘못되는 것도 또한 마음의 올바른 용用이 아니니, 오직 사물이 이르면 따라서 응하고 사물이 가면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 이것이 바름이 될 것이다.
성현聖賢이 아니면 그 누가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原注
① 장사숙張思叔(張繹)이 복부僕夫(마부)를 심하게 꾸짖자,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기를 “어찌하여 마음을 동動(분발)하고 성질을 참지 않는가?” 하시니, 장사숙張思叔은 부끄러워하여 사죄하였다.
原注
[按] 이 아래에 뽑은 여섯 조목은 이천선생伊川先生의 마음을 바루는 학문을 기록한 것이다.
原注
“여여숙呂與叔의 시詩에 ‘배움은 원개元凱(杜預)와 같으면 비로소 벽癖을 이루고 문장은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같으면 자못 배우와 같네.
오직 공문孔門에는 한 가지 일도 없으니, 다만 안씨顔氏의 마음을 공경함만 못하다네’ 하였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성性을 기름을 힘썼고 그 나머지는 배우지 않았는데, 지금에 문장을 짓는 자들은 오로지 장구章句에 힘써서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니, 이미 남을 기쁘게 하기를 힘쓴다면 배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原注
③ “홀로 한 방안에 거처하거나 혹은 어둠 속을 다닐 때에 놀람과 두려움이 많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다만 이치를 밝힘이 분명하지 못해서이니, 만약 이치를 밝게 안다면 두려움이 망령된 것임을 알 것이니,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사람들이 비록 이것을 아나 두려운 마음이 있음을 면치 못하는 것은 다만 기氣가 충만充滿하지 못해서이다.
모름지기 함양涵養을 하여야 하니, 오래되면 기氣가 충만해져서 자연 물건이 동요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은 또한 공경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原注
④ 이천伊川이 부릉涪陵으로 유배갈 적에 염여퇴灎澦堆(염여퇴)를 지나가는데 파도가 사납게 일자, 배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어찌할 줄 몰랐으나 홀로 이천伊川은 응연凝然히(태연히) 동요하지 않았다.
강안江岸에서 나무하던 자가 큰 소리로 묻기를 “목숨을 버릴 작정을 하여 이러한 것인가?
도리道理를 통달하여 이러한 것인가?” 하였는데, 이에 답하고자 하였으나 배가 이미 떠나가서 대답하지 못하였다.
原注
“옛사람들은 몸을 버리고 목숨을 버린 자가 있었으니, 만약 실제로 보지 못하였다면 어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사는 것이 의義보다 중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죽음보다 편안하지 못함을 실제로 보았다.
그러므로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 것이니, 다만 하나의 옳음을 성취할 뿐이다.”
原注
⑥ 이천伊川이 부주涪州에서 돌아옴에 기모氣貌와 용색容色과 수염이 모두 평소보다 나아졌다.
문인門人이 어떻게 하여 이렇게 되셨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대체로 배우는 자는 환난患難과 빈천貧賤에 대처함을 배워야 하니, 부귀富貴와 영달榮達로 말하면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
原注
태상太常 장격臧格이 찬撰한 시의諡議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천선생伊川先生의 학문은 오로지 경敬을 주장하여 충양充養함이 이미 지극하니, 진실로 순수하게 한결같이 바름에서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한 번 성내고 꾸짖는 하찮은 것은 허물이 되지 않을 듯하나 마음을 동하고 성질을 참으라고 경계하였으니, 마음에 분치忿懥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요, 어두운 방에 있을 때에 한 번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잘못이 되지 않지만 이치를 밝힘이 분명하지 못함을 배척하였으니, 이는 공구恐懼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장文章에 빠짐에는 물건을 좋아하여 뜻을 잃음을 미워하고 환난患難을 만남에는 생명生命을 버리지 못함을 민망히 여겼으니, 좋아하고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모두 그 바름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마음의 누累(사물에 얽매임)를 모두 제거한다면 그 온전함을 다 회복하지 못함을 어찌 걱정하겠는가.”
○ [按]장씨臧氏가 논한 경敬은 《장구章句》와 부합하지 않으나 배우는 자들에게 깊이 경계됨이 있다.
原注
“나의 기질氣質의 병통은 대부분 분치忿懥에 있노라.”
原注
[按] 이 아래에 뽑은 여덟 조목은 주자朱子의 마음을 바루는 학문學問을 기록하였으니, 마땅히 이천선생伊川先生의 일과 참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原注
“선생先生(朱子)이 하루는 장물贓物을 받는 자를 언급하시다가 노기怒氣가 말씀에 나타나 이르기를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다만 얼굴에 큰 글자로 묵형墨刑을 가하여 유배 보내리라’ 하였다.”
천천히 또 말씀하기를 “지금 공리公吏들은 돈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나 지현知縣(縣令)이 된 자가 스스로 돈을 요구한다.”고 하시고는 구구절절句句節節 이를 말씀하면서 한탄하였다.
原注
“나는 옛날에 또한 배우지 않는 것이 없고자 하여, 선도禪道와 문장文章, 초사楚詞와 시詩, 병법兵法을 일마다 모두 배우고자 해서 출입할 때에 무수한 문자文字를 일마다 기록하려고 두 책을 장만해 두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생각하기를 ‘우선 긴요치 않다.
나는 다만 하나의 혼신渾身(온전한 몸)이 있을 뿐이니, 어떻게 허다한 것을 겸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이로부터 그때마다 제거하였다.
대체로 사람이 마음을 써야 할 곳을 알면 자연 밖의 일에는 미칠 수가 없게 된다.”
原注
④ “언제나 기쁘고 좋아서 뜻에 맞는 일이 있으면 곧 스스로 사사로이 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깨달으니, 만약 이치를 보고자 한다면 이것을 곧 이겨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러한 일은 도리道理를 봄이 분명하면 자연 사라지게 되니, 이와 같이 절박하게 하면 도리어 병통이 생겨난다.”
原注
“풍속이 귀신鬼神을 숭상하니, 신안新安지방과 같은 곳은 아침저녁으로 귀신의 굴속에 있는 듯하다.
향리鄕里에 이른바 오통묘五通廟라는 것이 있는데, 가장 영험하고 괴이하다고 소문이 났다.
내가 처음 고향으로 돌아오자 종인宗人(일가친족)들이 핍박하여 이곳에 가게 하였으나 나는 가지 않았다.
이날 밤에 집안 사람들이 모여 관사官司에 가서 술을 받아다가 마셨는데, 술에 회灰(재)가 들어 있어 조금 마시자 마침내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뒤틀려 밤새도록 배앓이를 하였으며, 다음 날 또 우연히 뱀 한 마리가 나와 계단 옆에 있으니,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오통묘五通廟를 배알하지 않은 탓이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말하기를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뒤틀린 것은 음식이 맞지 않아서이니, 저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오통묘五通廟를 억지로 끌어다 대지 말라’ 하였다.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학문學問을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또한 와서 나더러 가라고 권하고, 또한 ‘사람들을 따르라’고 권하였다.
이에 나는 말하기를 ‘어찌하여 사람들을 따른단 말인가?
공公마저도 이러한 말을 할 줄은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였다.”
原注
⑥ “사람이 두려움이 많음을 걱정하여 비록 두려워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아나 이겨내지 못하니, 우선 이 마음을 억지로 제재하여 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다만 억지로 제재하면 끝날 때가 없으니, 다만 이치가 밝아지면 자연히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原注
⑦ 위학당僞學黨이 일어나자, 혹자가 선생先生에게 학도學徒들을 해산하고 문을 닫고 일을 줄여서 화禍를 피할 것을 권하였다.
‘침묵함이 몸을 용납할 수 있다’ 하였으니, 다만 가서 신문고申聞鼓를 두드려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않는 것이 바로 침묵이니, 집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말도 또한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原注
⑧ 한 붕우朋友가 은미하게 풍간諷諫하기를 “선생先生은 하늘이 나에게 덕德을 내려 주었다는 의사意思만 있으시고 미복微服으로 송宋나라를 지나가는 뜻이 없으십니다.” 하고 말하자, 선생先生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내가 일찍이 글을 올려 스스로 변명하지도 않았고, 또 일찍이 시詩를 지어 비방하지도 않았으며, 다만 붕우朋友들과 옛책을 강습講習하여 이 도리道理를 말할 뿐이니, 다시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논어論語》의 수장首章에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으면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하였고, 마지막 장章에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君子가 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입만 열면 또한 한 번 마시고 한 번 먹는 것에도 자연 정해진 분수分數가 있다고 말할 줄을 알지만 소소小小한 이해利害를 당하게 되면 곧 이익을 따르고 해를 피하여 계교計較하는 마음을 낸다.
옛사람이 칼과 톱이 앞에 있고 솥과 가마솥이 뒤에 있어도 이러한 물건을 보기를 없는 것처럼 여긴 것은 다만 이 도리道理만을 보고 저 칼과 톱과 솥과 가마솥 따위는 전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붕우朋友들은 모두 이것(聖人의 말씀)을 믿지 않으니, 이 도道가 날로 외로워짐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이 좋지 못하게 한다.”
原注
면재황씨勉齋黃氏가 찬撰한 〈주자朱子의〉 행장行狀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생先生은 학문을 할 적에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지극히 하고 자기 몸에 돌이켜 실제를 행하시니, 마음에 보존함은 허虛하고 고요하며, 외면에 발함은 과단하고 확고하며, 씀은 사물을 응접하여 다하지 않고, 지킴은 변고와 험한 일을 당해도 변치 않았다.
존양存養함이 깊고 쌓임이 두터움에 이르러서는 억지로 긍지矜持하던 것이 순수해지고 익숙해지며 엄하던 것이 화평해져서 마음을 굳이 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보존되고 의義를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정精해졌으나 오히려 생각하기를 ‘의리義理는 무궁하고 세월歲月은 유한하다’ 하여 항상 겸연慊然히 부족하게 여기는 뜻이 있으셨다.
종유從遊하는 선비들이 강습講習하고 질문할 적에 학문을 힘쓰는 것이 독실하면 기뻐하는 기색이 말씀에 나타났고, 도道에 나아가는 것이 어려우면 걱정하는 기색이 얼굴빛에 나타나셨다.
그러나 자신을 위하고 실제를 힘쓰며 의義‧이利를 분별하고 스스로 속이지 않으며 홀로를 삼가는 경계에 있어서는 일찍이 세 번 뜻을 다하지 않음이 없으셨다.”
○ [按]황씨黃氏가 기록한 주자朱子의 심학心學이 매우 정밀하니, 가장 잘 체험하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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