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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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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曰
人心也 人路也어늘
舍其路而不由하며 放其心而不知求하나니 哀哉
人有雞犬放이면 則知求之호되 有放心而不知求하나니 學問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니라
原注
[原註]
○ 程子曰
心本善而流於不善하니 所謂放也
原注
○ 朱子曰
仁者 心之德也 程子所謂卽此意也
然但謂之仁이면 則不知其切於己
故反而名之曰人心이라하니 則可見其爲此身酬酢萬變之主하야 而不可須臾失矣니라
義者 行事之宜 謂之人路라하니 則可見其爲出入往來必由之道하야 而不可須臾舍矣니라
原注
○ 又曰
至貴在我而自失之하니 是可哀已니라
原注
○ 又曰
固非一端이나 然皆以求夫不失本心之正而已 無他道也니라
原注
○ 程子曰
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約之하야 使反復入身來 自能하야 下學而上達也니라
原注
○ 此章 孟子指示學者用力之方 最爲深切하시니 學者所宜服膺而勿失也니라
原注
[附註]
○ 程子曰
要在니라
原注
又曰
只外面 有些罅隙이면 니라
○ 問心如何라야 在腔子裏닛가 朱子曰
이면 便在腔子裏니라
原注
○ 又曰
若不能存養이면 只是說話니라
原注
朱子曰
專做底人 他說底 都是聖賢說話
하고 說義 他也會說得好로되 待他身上處에는 只自不廉하고 只自不義하나니 緣將許多話하야 只是就紙上說이라
是題目上合說廉이요 是題目上合說義 都不關自家身上些子事니라
原注
○ 又曰
今之學者 往往以游夏爲小하야 不足學이라하나 然游夏 一言一事 却總是實이러니 後之學者 好高하니 如人游心千里之外 然自身 却只在此니라
原注
問伊川호되 先生與楊時似同志어니와 恕恐二周未可望楊時라하노니
如何잇가
周孚先兄弟 氣象純明하야 可以入道
頤每勸楊時勿好著書하노니
好著書則多言이요 多言則害道 學者要當察此니라
○ 問延平先生言行한대 朱子曰
他却不曾著書하고 充養得極好
凡爲學 不過是恁地涵養將去 初無異義하니 只是先生 自然不可及이니라
原注
○ 又曰
解義理 若一向靠書冊이면 何由得이리오
不惟自失이라 兼亦誤人이니라
原注
朱子曰
學者 是要理會這一箇心이니 那紙上說底 全然靠不得이니라
問學問之道한대 朱子曰
若無存養實踐이요 但欲曉解文義 雖盡通諸經하야 不錯一字라도 亦何所益이리오
原注
○ 朱子曰
學問之道 孟子斷然說在求放心이라하시니 學者須先收拾這放心이라
不然하야 此心放了 博學 也是閑이요 審問 也是閑이니 如何而明辨이며 如何而篤行이리오
蓋身 如一屋子 如一家主
有此家主然後 能灑掃門戶하고 整頓事務 若是無主 則此屋 不過一荒屋爾니라
原注
又曰
初年讀書할새 不理會得하고 又不記러니 因讀孟子求放心一段하야 遂謝絶人事하고 靜坐室中이라가 數月後 看文字하니 記性 加數倍하고 又聰明하니라
原注
○ 又曰
或者錯看하야 謂是收拾放心 遂如釋氏守箇空寂이라하나니 不知其意謂收心 只要存得善端하야 漸能充廣이요 非如釋氏徒使空寂而已니라
原注
自古聖賢敎人 也只就這理上用功하시니 所謂放心者 不是走作向別處去
瞬目間 便不見이라가 纔覺得이면 便又在面前이니 不是苦難收拾이라
公且去提撕하라
便見得이리라
又曰
如今 要下工夫인댄 且須端莊存養하야 獨觀이요 不須枉費工夫하야 待存養得하야 昭明洞達이면 自覺無許多窒礙
方取文字來看이면 則自然有意味하야 道理自然透徹하고 遇事時 自然하야 皆無許多病痛이리라
原注
○ 又曰
學者爲學 하고 且要收拾此心하야 有箇 若收斂하야 都在義理上安頓하야 無許多胡思亂想이면 則久久自於物欲上輕하고 於義理上重이리라
原注
○ 又曰
學者工夫 只在喚醒上이니라
原注
嘗謂
放心 不獨是走作 喚做放이라 纔昏睡去 也卽是放이니라
原注
○ 又曰
人常須收斂箇身心하야 使精神常在這裏하야 이니라
原注
○ 又謂
今公 掀然有飛揚之心하야 以爲治國平天下 如指諸掌이라호되 不知自家一箇身心 都安頓未有下落하니 如何說功名事業이리오
古時英雄豪傑 須先立其本이오야 方以次推及其餘어늘 都倒了하야 緩其所急하고 先其所後하니 少間 使得這身心飛揚悠遠하야 全無收拾處하리라
人不知學底 他心雖放이나 然猶放得近이어니와 今公 雖曰知爲學이나 하여 少間 會失心去하니 이니라
原注
○ 西山眞氏曰
仁者 心之德也어늘 而孟子直以爲人心者 蓋有此心이면 卽有此仁이니 心而不仁이면 則非人矣
孔門之言仁 多矣로되 皆指其用功處而言이어늘 此則徑擧全體하야 使人知心卽仁, 仁卽心하야 而不可以二視之也
義者 人所當行之路 而不由乎此 則陷於邪僻之徑矣어늘 世之人 乃有舍其路而弗由하고 放其心而不知求者 正猶病風喪心之人 猖狂妄行而不知反也 豈不可哀也哉
雞犬 至輕也로되 放則知求之하고 人心 至重也로되 放而不知求라하야 借至輕而喩至重하시니 所以使人知警也
然則人心之放 何也
欲汨之則放하고 利誘之則放하나니 心旣放이면 則其行必差
故孟子始以人心人路並言하사되 而終獨諄諄於放心之求하시니 能求放心이면 則中有主而行不失矣
求之匪他 以敬自持하야 而一念 不敢肆而已니라
心本非外언마는 縱之則放하고 求之則存하야 猶反覆手也 心存則仁存하고 仁存則動無非理
卽所謂義人路也 聖學之要 孰先乎此리오


23. 인인심장仁人心章
맹자孟子가 말씀하였다.
은 사람의 마음이요 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고 찾을 줄을 모르니, 애처롭다.
사람들은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을 알지만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알지 못하니, 학문學問하는 방법은 딴 것이 없다.
방심放心을 찾는 것일 뿐이다.”
原注
[原註]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마음이 본래 한데 불선不善함에 흐르니, 이것이 이른바 이란 것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은 마음의 이니,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은 곡식의 씨와 같고 낳는(발생하는) (理)이 바로 이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다만 이라고만 말하면 사람들이 자기에게 절실한 것인 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돌이켜 인심人心이라 이름하였으니, 그렇다면 만 가지 변화에 수작酬酢(수작)하는 이 몸의 주장이 되어서 잠시라도 잃어서는 안 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행사行事의 마땅함인데 이것을 인로人路라고 일렀으니, 그렇다면 출입出入하고 왕래往來할 때에 반드시 경유해야 할 길이어서 잠시라도 버려서는 안 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지극히 귀한 것이 자신에게 있는데 스스로 잃으니, 이는 애처롭게 여길 만하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학문하는 일이 진실로 한 가지가 아니나 모두 본심本心의 바름을 잃지 않음을 구하려고 할 뿐이요, 딴 방도가 없다.”
原注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성현聖賢의 천 마디 말씀과 만 마디 말씀이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 잃어버린 마음을 가져다가 거두어서 돌이켜 몸에 들어오게 하고자 하였을 뿐이니, 이렇게 하면 자연히 위를 찾아가서 아래로 〈인간人間의 일을〉 배워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하게 될 것이다.”
原注
맹자孟子가 배우는 자들에게 힘쓰는 방법을 지시한 것이 가장 깊고 간절하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가슴속에 새겨두어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原注
[附註]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마음은 〈밖으로 달려가지 말고〉 강자腔子(몸) 속에 있어야 한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다만 외면外面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마음은 곧 달아난다.”
○ “마음이 어떠하여야 강자腔子 속에 있습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하면 곧 강자腔子 속에 있게 된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만약 존양存養하지 못하면 이는 단지 말로만 할 뿐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오로지 시문時文(科文)만 공부하는 사람은 그들이 〈글을 지어〉 말하는 것은 모두 성현聖賢의 말씀이다.
우선 예를 들면 청렴을 말할 적에 저들도 좋다고 말하고 를 말할 적에 저들도 좋다고 말할 줄 아나 자기 신상身上을 대하는 곳에는 단지 청렴하지도 못하고 의롭지도 못하니, 이는 허다한 말을 가져다가 다만 종이 위에 나아가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청렴은 제목 상으로 청렴해야 한다고 말하고 는 제목 상으로 의로워야 한다고 말할 뿐이니, 모두 자신의 신상身上에는 조그마한 일도 관계되지 않는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왕왕 자유子游자하子夏를 하찮게 여겨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하나 자유子游자하子夏는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일이 모두 실제였는데, 후세의 배우는 자들은 고원高遠한 것을 좋아하니, 마치 사람이 마음은 천리밖에 놀고 있으나 그 몸은 단지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
原注
형화숙邢和叔(邢恕)이 이천伊川에게 묻기를 “선생이 이주二周(周孚先, 주공선周恭先 형제)가 양시楊時동지同志인 듯하다고 말씀하셨으나 제 생각에는 이주二周양시楊時를 따라갈 수 없을 듯합니다.
어떠합니까?” 하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주부선周孚先 형제는 기상氣象이 순수하고 밝아서 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양시楊時에게 저서著書를 좋아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저서를 좋아하면 말을 많이 하고 말을 많이 하면 를 해치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이것을 살펴야 한다.”
연평延平(李侗)先生의 언행言行을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그 분은 일찍이 저서著書를 하지 않고 충양充養하기를 지극히 잘하였다.
무릇 학문을 함은 이렇게 함양해 가는 것에 불과하고 애당초 딴 의리義理가 없으니, 다만 선생의 얼굴이 온화하고 〈덕용德容이〉 등이 가득한 것은 자연 따라갈 수가 없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의리義理를 이해하는 것을 만일 한결같이 서책에만 의지한다면 어떻게 거처함이 편안하고 자뢰함이 깊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 잃을 뿐만 아니라 겸하여 또한 남도 그르치게 된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에게 긴요한 것은 이 하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니, 저 종이 위에 말한 것은 전혀 힘을 붙일(쓸) 수가 없다.”
정중례鄭仲禮가 학문하는 방도를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만약 존양存養실천實踐은 없고 다만 글 뜻만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비록 여러 경서經書를 다 통달하여 한 글자도 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학문하는 방도를 맹자孟子는 단연코 방심放心을 찾는 데에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먼저 이 방심放心을 수습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이 마음을 놓아버리면 박학博學도 쓸데없는 짓이고 심문審問도 쓸데없는 짓이니, 어떻게 밝게 분별하며 어떻게 독실히 행하겠는가.
몸은 하나의 집과 같고 마음은 한 집안의 주인과 같다.
이 집의 주인이 있은 뒤에야 문호門戶를 청소하고 사무事務를 정돈할 수 있으니, 만약 주인이 없다면 이 집은 황폐한 집에 불과할 뿐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진열陳烈초년初年에 책을 읽을 적에는 이해하지 못하고 또 기억하지 못하였는데, 《맹자孟子》의 구방심求放心 한 단락을 읽고는 마침내 인간人間의 일을 사절하고 방안에 정좌靜坐하였다가 몇 달 후에 문자文字를 보니, 기억력이 몇 배나 증가하였고 또 총명해졌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혹자가 명도明道의 말씀을 잘못 보아 ‘방심放心을 수습한다’고 한 말씀을 마침내 석씨釋氏(佛敎)의 공적空寂을 지키는 것과 같다고 여기니, 그(明道) 뜻이 마음을 거두는 것은 다만 착한 마음을 보존하여 점점 채워 넓힘을 말한 것이요, 석씨釋氏의 한갓 공적空寂하게 할뿐인 것과는 같지 않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原注
문인門人들에게 말씀하였다.
“예로부터 성현聖賢들이 사람을 가르친 것은 다만 이 이치 상에 나아가 공부하게 하였으니, 이른바 방심放心이라는 것은 마음이 달아나 딴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았을 때에는 곧 보이지 않다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곧 또 면전面前에 있는 것이니, 괴롭고 어렵게 수습하는 것이 아니다.
은 우선 가서 마음을 깨우고 일으켜라.
곧 보게 될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지금에 공부하려고 할진댄 우선 모름지기 단장端莊하고 존양存養하여 홀로 밝고 넓은 마음의 근원을 보아야 할 것이요, 굳이 공부를 허비하여 종이 위의 말(文字)만 연구할 것이 없으니, 이 존양存養하여 밝아지고 통달하기를 기다리면 자연 허다한 막힘이 없어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문자文字를 가져다가 보면 자연 의미가 있어서 도리道理가 자연 통투通透해지고 일을 만났을 때에 자연 칼날을 맞아 풀리듯(대나무가 쪼개지듯) 하여 허다한 병통이 모두 없어질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가 학문을 할 적에 진지眞知역행力行을 따지지 말고 우선 이 마음을 수습하여 편안히 놓아둘(머물) 곳이 있게 하여야 하니, 만약 수렴하여 모두 의리상義理上에 편안히 두어 허다한 어지러운 생각을 없앤다면 오래될 경우 저절로 물욕상物慾上에는 가벼워지고 의리상義理上에는 중하게 될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의 공부는 다만 마음을 불러 깨우는 데에 있다.”
原注
일찍이 임각林恪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방심放心은 다만 달아나는 것만을 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조금이라도 어두워지고 조는 것도 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사람은 항상 모름지기 몸과 마음을 수렴하여 정신이 항상 이 속에 있게 해서 백십근百十斤의 짐을 진 것처럼 하여 모름지기 근골筋骨을 꿋꿋하게 하여 짊어져야 한다.”
原注
또 한 배우는 자에게 일러 말씀하였다.
“지금 흔연掀然(흔들리는 모양)히 비양飛揚하는 마음이 있어서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처럼 쉽게 여기나 자신의 한 몸과 마음은 모두 안돈安頓하여 놓아둘 곳이 없음을 알지 못하니, 이러고서 어떻게 공명功名사업事業을 말하는가.
옛날의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은 모름지기 먼저 그 근본根本을 세우고서 비로소 차례로 미루어 그 나머지에 이르렀는데, 지금 들은 학문이 모두 전도顚倒되어 급한 것을 늦추고 뒤에 할 것을 먼저 하니, 잠깐 사이에 이 몸과 마음이 먼 곳으로 날아가서 전혀 수습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지금에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비록 잃었으나 오히려 잃은 것이 가깝거니와 지금 은 비록 학문을 할 줄 안다고 말하나 도리어 잃은 것이 멀어 잠깐 사이에 마음을 잃어버리기를 잘하니, 이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은 마음의 인데 맹자孟子가 곧바로 인심人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마음이 있으면 이 이 있으니, 마음이 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문孔門에서 을 말한 것이 많으나 모두 공부하는 곳을 가리켜 말씀하였는데, 여기서는 곧바로 전체全體를 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곧 이요 이 곧 마음이어서 두 가지로 보아서는 안 됨을 알게 한 것이다.
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니, 반 걸음이나 한 걸음이라도 이것을 따르지 않으면 사벽邪辟한 길로 빠지는데, 세상 사람들이 마침내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고 구할 줄을 모르는 것은 바로 풍병風病을 앓고 상심喪心(失性)한 사람이 미쳐 날뛰어 제멋대로 행동해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과 같으니, 어찌 애처로울 만하지 않겠는가.
‘닭과 개는 지극히 가벼운 것인데 잃으면 찾을 줄을 알고,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중한 것인데 잃어도 찾을 줄을 모른다’ 하여, 지극히 가벼운 것을 빌어서 지극히 중한 것을 비유하였으니,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할 줄을 알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심人心을 잃어버림은 어째서인가?
욕심이 어지럽히면 잃고 이익이 유혹하면 잃으니, 마음이 이미 잃어지면 행실이 반드시 어그러진다.
그러므로 맹자孟子가 처음에는 인심人心인로人路를 아울러 말씀하였으나 끝에는 오직 방심放心을 찾는 것에 간곡히 말씀하였으니, 방심放心을 찾는다면 마음이 주장이 있어서 행실이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방심放心을 찾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으로 스스로 잡아서 한 생각도 감히 함부로 하지 않을 뿐이다.
마음은 본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나 놓으면 잃고 찾으면 보존되어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쉬우니, 마음이 보존되면 이 보존되고, 이 보존되면 행동이 모두 이치에 맞는다.
이는 곧 이른바 ‘는 사람의 길’이라는 것이니, 성학聖學의 요점이 무엇이 이보다 먼저이겠는가.”


역주
역주1 仁人心章 : 《孟子》 〈告子 上〉에 보인다.
역주2 [釋疑]心譬如穀種 生之性乃仁也 : 곡식의 씨앗을 마음에 비유하였으니, 곡식이 生하는 性은 바로 仁이고, 싹이 나오는 곳은 곧 惻隱이다. [補註]生之性이란 生之理로, 발생하는(나오는) 이치를 말한 것이다.
역주3 [刊補]又曰 學問之事 : 살펴보건대 朱子가 《孟子》의 이 단락을 논한 것에 두 가지 說이 있다. 하나는 學問을 求放心의 공부로 삼은 것이고, 또 하나는 求放心을 學問의 근본으로 삼은 것이니, 《朱子語類》를 상고해보면 알 수 있다.
역주4 [釋疑]尋向上去 : 向上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向上은 上이니, 向字는 굳이 깊이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역주5 [釋疑]腔子 : 軀殼이란 말과 같으니, 껍질(몸통) 안을 통틀어 腔子라고 이른다.
역주6 [釋疑]只外面 …… 便走了 : 罅隙(하극)은 용모가 태만한 때이니, 흘겨보거나 귀 기울여 들으며 두 다리를 뻗거나 걸터앉고 외발로 서거나 몸을 기울이는 따위의 不敬한 행동거지이다. 走는 마음이 달아나는 것이니, 비유하면 물이 그릇 속에 있을 때에 그릇에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물이 곧 새어 나가는 것과 같다.
역주7 [釋疑]時文 : 科文이다. [補註]科文은 科擧及第에 필요한 詩賦나 對策文 따위를 이른다.
역주8 [釋疑]且如說廉 他且會說得好 : 說은 科文에 늘어놓아 청렴해야 함을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역주9 [刊補]邢和叔 : 名은 恕이며 和叔은 字이다. 자세한 것은 뒤의 〈魚我所欲章〉에 보인다.
역주10 [釋疑]二周 : 周孚先은 字가 伯忱이니, 아우 恭先 伯溫과 함께 程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역주11 [釋疑]睟面盎背 : 《孟子》에 보이니, 睟는 淸和하고 溫潤한 뜻이고, 盎은 豊厚하고 가득 넘치는 뜻이다. [補註] 《孟子》 〈盡心 下〉에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라 한 것을 축약한 것이다.
역주12 [譯註]居之安 資之深 : 《孟子》 〈離婁 下〉의 深造之以道章에 보인다.
역주13 [釋疑]喫緊 : 喫은 語助辭에 가깝다.
역주14 [釋疑]鄭仲禮 : 張南軒(張栻)의 문인이다.
역주15 [釋疑]陳烈 : 字는 季慈이니 周濂溪와 동시대의 유명한 선비이다.
역주16 [釋疑]明道之語 : 곧 윗글의 ‘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約之 使反復入身來’ 云云한 단락이다.
역주17 [刊補]又謂門人 : 門人은 石洪慶으로 字는 子餘이니,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에 朱子가 불러들여 말씀한 것이다.
역주18 [釋疑]昭曠之原 : 昭明하고 曠達한 근원으로, 바로 마음의 本體이다.
역주19 [釋疑]鑽紙上語 : 鑽은 뚫는 것이니, 貫穿 또는 羅穿의 뜻이다.
역주20 [釋疑]此中 : 心中을 가리킨다.
역주21 [釋疑]恁時 : 此時(이 때)와 같은 말이다.
역주22 [釋疑]迎刃而解 : 대나무를 쪼갤 적에 몇 마디를 쪼갠 뒤에는 저절로 칼날을 맞자마자 쪼개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주23 [釋疑]未問眞知與力行 : 未問은 無論(막론)이란 말과 같다. [刊補]問은 따지는 것으로, 眞知와 力行을 따지지 말고 모두 이 마음을 수습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역주24 [釋疑]頓放 : 安置한다는 말과 같다. [刊補]安置라는 말과 같으니, 곧 마음이 머물러 있을 곳을 말한다.
역주25 [釋疑]林恪 : 字는 叔恭이니, 朱子의 문인이다.
역주26 [釋疑]似擔百十斤擔相似 須硬著筋骨擔 : ‘百千斤의 짐을 짊어진 것과 같은 듯하니’로 해석한다. 위아래의 擔字는 짊어지는 것이니 平聲이고, 가운데의 擔字는 짐이니 去聲이다.
역주27 [釋疑]一學者 : 沈莊仲에게 고한 것이다.
역주28 [釋疑]今公問{門} : 問은 마땅히 《語類》를 따라 門字가 되어야 한다. 《語類》의 또 한 조목에 沈莊仲에게 이르기를 “公들은 마음이 모두 거칠고 크다.[公們心都麤大]” 하였으니, 말뜻이 바로 이와 같다. [補註]公門은 公們과 같다.
역주29 [刊補]而今 : 今字가 句이다. 혹 人字에 붙이기도 하는데, 옳지 않다. 《朱子語類》에 이와 같은 유형이 많이 있다.
역주30 [釋疑]人不知學底 …… 然却放得遠 : 學問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전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가깝지만(크게 멀지 않지만), 지금 沈莊仲은 비록 학문을 안다고 말하나 마음이 먼저 천하의 일에 달려가기 때문에 잃어버림이 먼 것이다.
역주31 [釋疑]不可不覺 : 覺은 察과 같다.
역주32 [刊補]跬步 : 跬는 半步이다. 蹞로도 쓴다.

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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