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所謂毋意者는 是不任己意하고 只看道理如何하여 道理當如此어든 便順理做去하여 自家無些子私心이라
原注
凡人作事에 必先起意하여 不問理之是非하고 必欲其成而後已하며 事旣成이면 又復執滯不化하니 是之謂固니 三者只成就得一箇我라
及至我之根源愈大하여는 少間에 三者又從這裏生出하나니 我生意하고 意又生必하고 必又生固하여 又歸宿於我라
正如元亨利貞
이 元了亨
하고 亨了又利
하고 利了又貞
하여 循環不已
하니 但有
爾
니라
原注
意
는 是私意方起
요 我
는 是私意已成
이니 聖人
은 化
하여 更無査滓
요 顔子則尙有些未盡
하니 所以
이니라
공자孔子는 네 가지를 끊으셨으니, 의意(의도함)가 없고 필必(기필함)이 없고 고固(고집함)가 없고 아我(사사로움)가 없으셨다.
原注
“의意는 사사로운 뜻으로 의도하는 것이요 필必은 기필함이요 고固는 고집함이요 아我는 사기私己이다.”
原注
“경敬하면 곧 예禮이니, 이길 만한 사욕私慾이 없으나 처음에는 모름지기 이 네 가지를 끊어야 한다.”
原注
“네 가지를 끊는 것은 극기克己의 일이니, 능히 공경하면 예禮가 회복된다.
그러므로 이길 만한 사욕私慾이 없다고 한 것이다.”
原注
어떤 사람이 마음이 없어야 함을 말하자, 정자程子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곧 옳지 않으니 마땅히 사심私心이 없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原注
“이른바 무의毋意라는 것은 자기의 뜻에 맡기지 않고 다만 도리道理가 어떠한가를 보아서 도리상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하면 곧 이치를 따라 해 나가서 스스로 조금의 사심私心도 없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의毋意라고 말한 것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안배安排하고 포치布置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는 사사로운 뜻에 맡기는 것이다.
비록 발하여 우연히 도리에 합당하다 하더라도 또한 사사로운 뜻일 뿐이다.”
原注
네 가지를 끊는 것을 묻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모름지기 네 가지가 서로 상관관계相關關係를 가짐을 알아야 한다.
무릇 사람이 일을 할 적에 반드시 먼저 의도意圖를 일으켜서 도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기필코 이룬 뒤에 그만두고자 하며, 일이 이미 이루어지면 또다시 집체執滯하여 변화變化하지 못하니, 이것을 고固라 이르니, 의意‧필必‧고固 세 가지는 다만 하나의 아我를 성취할 뿐이다.
아我의 근원根源이 더욱 커지게 되면 잠깐 동안에 세 가지가 또 이 속으로부터 생겨나니, 아我가 의意를 낳고 의意가 또 필必을 낳고 필必이 또 고固를 낳아서 다시 아我에 귀착된다.
이는 바로 원元‧형亨‧이利‧정貞이 원元이 끝나면 형亨이 되고 형亨이 끝나면 또 이利가 되고 이利가 끝나면 또 정貞이 되어 순환하여 그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다만 선善과 불선不善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原注
“이는 성의장誠意章의 일이니 안자顔子의 사물장四勿章과 함께 가장 마음을 두어 살펴보아야 한다.
의意는 사의私意가 막 일어나는 것이요 아我는 사의私意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니, 성인聖人은 혼연渾然히 화化하여 다시 찌꺼기가 없고, 안자顔子는 아직 조금 미진한 것이 있으니, 이 때문에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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