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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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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淵 問仁한대 子曰 克己復禮爲仁이니 一日克己復禮 하나니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하노이다 子曰 非禮勿視하며 非禮勿聽하며 非禮勿言하며 非禮勿動이니라
顔淵曰 回雖不敏이나 請事斯語矣로리이다
原注
[原註]
勝己之私 謂之克이니라
原注
○ 伊川先生曰
非禮處便是私意 如何得仁이리오
凡人 須是克盡己私하여 皆歸於禮라야 方始是仁이니라
原注
○ 謝氏曰
原注
[附註]
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이니 其本也眞而靜이라
하니 曰仁義禮智信이요 形旣生矣 外物 觸其形而動其中矣
하나니 曰喜怒哀樂愛이라
情旣熾而益蕩하면 其性
故覺者 約其情하여 使合於中하여 正其心, 養其性而已
若顔子之非禮勿視聽言動 不遷怒貳過者 則其好之篤而學之得其道也
然其未至於聖人者 守之也 假之以年이면리라
今人 乃謂聖本生知 非學可至라하여 而所以爲學者 不過記誦文辭之間하니 其亦異乎顔子之學矣로다
原注
西山眞氏曰
此章之要 在覺者約其情使合於中一語하니 蓋情本善이로되 發不中節이면 乃流於不善이라
故必檢制其情하여 使合於中이니 所謂中者 卽中庸所謂中節也 約之爲言 正中庸愼獨之功也
心無不正하고 性無不善이로되 所以害其正, 喪其善者 爲情所累也
故必先約其情然後 能正心而養性이라
下文 又言必先明諸心知所往者 蓋致知而後誠意하고 明善而後誠身이니 其序固如此也니라
原注
天體物而不遺 猶仁體事而無不在也 無一物之非仁也 昊天曰明하사 及爾出하며 無一物之不體也니라
原注
朱子曰
體物 猶言爲物之體也 蓋物物有箇天理 體事 如禮儀三百, 威儀三千 須是仁做라야 始得이니 凡言體 便是니라
○ 問此段 言人之所以爲人者 皆天之所爲 故雖起居動作之頃이라도 而所謂天者未嘗不在也잇가
公說天體物不遺 旣說得是하니 則所謂仁體事而無不在者 亦不過如此
今所以理會不透 是以天與仁으로 爲有二也
今須將聖賢言仁處하여 就自家身上思量하면 이리라
○ 又曰
○ 按張子此言 正是發明克己復禮爲仁之義니라
原注
○ 又曰
學者且須觀禮 蓋禮者 滋養人德性하고 又使人有常業하여 守得定이니 非禮勿言, 非禮勿動 卽是養之之術이니라
原注
又曰
載所以使學者 先學禮者 只爲學禮 則便除去世俗習熟纏繞 리라
○ 程子曰
子厚以禮敎學者最善하니 使學者先有所據守니라
原注
○ 朱子曰
顔子克己이니라
原注
○ 又曰
顔子生平 只是受用克己復禮四箇字하시니라
原注
○ 又曰
孔子告顔子以克己復禮하시니 語雖切이나 看見 不似告樊遲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更詳細하니
蓋爲樊遲未會見得箇己是甚,禮是甚이라 只分曉說하여 敎恁地做去하시니라
原注
○ 又曰
是自家本有底
所以說箇復이니 不是待克了己라야 方去復禮
克得那一分人欲去 便復得這一分天理來니라
原注
○ 問尋常遇事時 也知此爲天理, 彼爲人欲이로되 及到做時하여는 乃爲人欲引去라가 事已却悔하니 如何잇고
此便是無克己工夫 這樣處 이라야 方得이라
如一條大路 又有一條小路어든 明知合行大路로되 然小路面前 有箇物引著이면 自家不知不覺 行從小路去라가 及至前面 荊棘蕪穢하여는 又却生悔하나니 此便是天理人欲交戰之機
須是遇事之時 便與克下 不得放過니라
原注
○ 又曰
謂勿字似旗脚이라하니 此旗一麾 三軍盡退하나니 工夫只在勿字上이라
纔見非禮來 則禁止之하여 便克去 纔克去 便能復禮니라
原注
西山眞氏曰
曰 貌言視聽思어늘
顔淵問仁 夫子告之以克己復禮爲仁이라하시고 至問其目하여는 則又告之曰 非禮勿視聽言動이요 何哉
勿之爲言 禁止之謂也
耳目口鼻 因物而動하나니 非心爲之主宰 其孰能止之리오
然則勿云者 正指心而言也 特學者弗之察耳니라
原注
顔淵問仁而夫子告之以此 何也
以生하여 而仁義禮智之性 具於其心하니 仁雖專主於愛 而實心體之全德이요 禮則專主於敬이나 而實天理之節文也
然人有是身이면 則耳目口體之間 不能無私欲之累以違於理하여 而害夫仁하나니
人而不仁이면 則自其一身으로 莫適爲主하여 而事物之間 顚倒錯亂하여
然己者 人欲之私也 禮者 天理之公也 一心之中 二者不容竝立이로되 而其相去之間 不能以毫髮이라
出乎此則入乎彼하고 出乎彼則入於此矣 是其克與不克 復與不復 如手하고 如臂屈伸이라
誠欲爲之인댄 其機固亦在我而已 夫豈他人之所得與哉리오
顔子之質 幾於聖人이라
故其問仁 夫子告之 獨爲要切而詳盡耳시니라
且非禮而勿視聽者 防其自外入而動於內者也 非禮而勿言動者 謹其自內出而接於外者也 內外交進 爲仁之功 不遺餘力矣
顔子於是 請事斯語而力行之하시니 所以三月不違而卒進乎聖人之域也
然熟味聖言하여 以求顔子之所用力인댄 其機特在勿與不勿之間而已
自是而反則爲天理 自是而流則爲人欲이며 自是而克念則爲聖이요 自是而罔念則爲狂이니
學者可不謹其所操哉
原注
西山眞氏曰
堯舜以及周孔 其相傳之大槩 至孔子授顔子하니 聖人之蘊 無復遺餘
蓋希顔 所以希孔이니 而堯舜禹湯文武周公之道 從可知矣
夫精一執中 堯舜禹相傳之要指也 克復爲仁 孔顔相傳之要指也 以言語求之하면 蓋甚不同矣 이요 孔子之所謂禮 卽舜之所謂道心이요 克而復 卽精一之功이며 而仁之與中 又名異而實同者也
蓋合乎義理之正而無過不及者 中也 純乎義理之正而不雜之以私欲者 仁也 未有中而不仁이요 亦未有仁而不中者
卽此推之하면 凡聖賢相傳之心法 皆可一以貫之矣리라


10. 안연문인장顔淵問仁章
안연顔淵을 묻자,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私慾을 이겨 로 돌아감)가 을 하는 것이니 하루만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하면 천하가 하다고 허여할 것이다.
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 하였다.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청컨대 그 조목條目을 묻습니다.” 하니, 공자孔子는 말씀하기를 “가 아니거든 보지 말며 가 아니거든 듣지 말며 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며 가 아니거든 동하지 말라.” 하였다.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제가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청컨대 이 말씀에 종사하겠습니다.” 하였다.
原注
[原註]
양자揚子(揚雄)가 말하였다.
“자신의 사욕私慾을 이김을 이라 이른다.”
原注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가 아닌 곳은 곧 사의私意이니, 〈사의私意가 있으면〉 어떻게 이 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자신의 를 다 이겨서 모두 로 돌아가야 비로소 일 수 있는 것이다.”
原注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극기克己는 모름지기 성질이 편벽되어서 이기기 어려운 곳부터 이겨 나가야 한다.”
原注
[附註]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천지天地정기精氣를 쌓아 만물萬物을 낳는데 오행五行의 빼어난 정기精氣를 얻은 것이 사람이니, 그 근본은 참되고 고요하다.
이것이 미발未發했을 때에는 오성五性이 구비되어 있으니 이고, 형체形體가 이미 생기고 나면 외물外物이 그 형체에 접촉되어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여 칠정七情이 나오니 이다.
이 이미 성해져 더욱 방탕해지면 이 해롭게 된다.
그러므로 선각자先覺者을 단속하여 중도中道에 합하게 해서 마음을 바루어 을 기를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마음을 밝혀서 갈 곳을 안 뒤에야 힘써 행하여 에 이르기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안자顔子가 아니거든 보고 듣고 말하고 동하지 않은 것과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거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니, 이는 좋아함이 독실하고 배움에 그 방법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이를 지킨 것이고 저절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몇 년만 수명을 연장해 주었다면 하루가 못되어 저절로 하였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마침내 ‘성인聖人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요, 배워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여 학문學問하는 것이 단지 글을 기억하고 외며 문장을 짓는 데에 지나지 않으니, 이 또한 안자顔子학문學問과는 다르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이 의 요점은 ‘선각자先覺者을 단속하여 중도中道에 합하게 한다’는 한 마디에 있으니, 이 본래 하나 할 때에 절도에 맞지 않으면 반드시 불선不善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반드시 검제檢制(억제)하여 중도中道에 합하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이란 곧 《중용中庸》의 이른바 ‘절도에 맞는다[中節]’는 것이요 이란 말은 바로 《중용中庸》의 신독愼獨공부이다.
마음은 바르지 않음이 없고 하지 않음이 없으나 바름을 해치고 을 잃는 까닭은 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을 단속한 뒤에야 마음을 바루어 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하문下文에 또 반드시 먼저 마음을 밝혀서 갈 곳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지식을 지극히 한 뒤에 뜻을 성실하게 하고 을 밝힌 뒤에 몸을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니, 그 순서가 진실로 이와 같다.”
原注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하늘이 사물事物(根幹)가 되어 빠뜨릴 수 없음은 이 일의 본체本體가 되어 있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 예의禮儀 3백 가지와 위의威儀 3천 가지가 어느 한 가지 일도 아님이 없고, 하늘이 밝으시어 너의 나가고 들어오는 데에 미치며 하늘이 밝으시어 너의 놀고 즐기는 데에 미치는 것이 어느 한 가지 일도 가 되지 않음이 없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체물體物은 사물의 본체本體가 된다고 말함과 같으니 물건마다 천리天理가 있으며, 체사體事는 일마다 으로 해냄을 이르니 예의禮儀 3백 가지와 위의威儀 3천 가지가 모름지기 으로 하는 것처럼 하여야 비로소 되니, 무릇 라고 말한 것은 곧 이 골자骨子가 되는 것이다.”
○ “이 단락은 사람이 사람된 소이所以가 모두 하늘이 한 것이므로 비록 기거起居하고 동작動作하는 때라도 이른바 하늘이란 것이 일찍이 있지 않은 적이 없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 하늘이 사물의 본체가 되어 빠뜨릴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이미 옳은 말이니, 그렇다면 이른바 ‘이 사물의 본체가 되어 있지 않음이 없다’는 것 또한 이와 같음에 불과하다.
지금 통투通透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하늘과 을 둘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 모름지기 성현聖賢을 말씀한 부분을 가지고 자신의 신상身上에 나아가 생각해 보면 오래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횡거橫渠의 이 말씀은 적심赤心(眞心)을 가져다가 낱낱이 사람들에게 말씀해 준 것이니, 순자荀子양자揚子가 어찌 일찍이 이러한 것이 있었겠는가.”
○ 살펴보건대 장자張子의 이 말씀은 바로 극기복례克己復禮하여 을 하는 뜻을 발명發明하신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는 우선 모름지기 를 살펴보아야 하니, 라는 것은 사람의 덕성德性을 기르고 사람으로 하여금 일정한 (일)이 있게 하여 안정되게 지키는 것이니, 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고 가 아니거든 동하지 마는 것이 바로 이것을 기르는 방법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내(張載)가 배우는 자들에게 먼저 를 배우게 하는 까닭은 다만 를 배우면 곧 세속의 한 가지(一副) 습숙習熟에 얽매임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니, 비유하건대 뻗어 나가는 물건이 감긴 것을 풀어 주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만일 세속의 습속을 제거한다면 자연 깨끗이 벗어날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자후子厚(張橫渠)가 로써 배우는 자들을 가르친 것이 가장 좋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먼저 근거하여 지키는 바가 있게 하였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안자顔子극기克己는 붉게 타오르는 화로 위의 한 점 눈과 같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안자顔子는 평소에 다만 ‘극기복례克己復禮’ 네 글자를 받아 쓰셨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공자孔子안자顔子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고해 주셨으니, 이 말씀이 비록 간절하나 살펴봄에 번지樊遲에게 ‘거처할 적에 공손하게 하고 일을 집행할 적에 공경하고 남을 대할 적에 충성스럽게 하라’고 고해 준 말씀처럼 상세하지는 못하다.
이는 번지樊遲가 무엇이고 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분명히 말씀해 주어서 그에게 이와 같이 해 나가게 한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는 자신에게 본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회복함)이라고 말씀한 것이니, 를 완전히 이기기를 기다리고서야 비로소 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일분의 인욕人欲을 이기면 곧 일분의 천리天理를 회복하는 것이다.”
原注
심장중沈莊仲이〉 “평소 일을 만날 때에는 이것이 천리天理가 되고 저것이 인욕人欲이 됨을 알지만 일을 할 때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인욕人欲에 끌려갔다가 일이 끝나면 후회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것은 곧 극기공부克己工夫가 없어서이니 이러한 부분을 완전히 타첩打疊(打破)하여야 비로소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한 갈래의 큰 길에 또 한 갈래의 작은 길이 있으면 큰 길로 가야 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목전目前의 작은 길에 어떤 유인하는 물건이 있으면 자신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작은 길로 따라 가다가 목전目前에 가시나무가 우거진 곳에 이르러서는 또다시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이는 곧 천리天理인욕人欲이 서로 싸우는 시기이다.
모름지기 일을 만났을 때에 곧 이겨낼 것이요 구차히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설문說文》에 ‘물자勿字는 깃발의 다리(갈기)와 같다’고 말하였으니, 이 깃발을 한번 저으면 삼군三軍이 모두 후퇴하니, 공부가 다만 물자勿字 에 있다.
조금이라도 비례非禮를 보면 곧 이를 금지해서 이겨내야 하니, 이겨내기만 하면 곧 로 돌아갈 수 있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기자箕子홍범洪範오사五事(다섯 가지 일)를 말하기를 ‘모양[貌]과 말[言]과 봄[視]과 들음[聽]과 생각[思]’이라 하였는데,
안연顔淵을 묻자 부자夫子극기복례克己復禮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그 조목을 묻자 또 가 아니거든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동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어, 생각함[思]이 여기에 끼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이란 말은 금지함을 이른다.
이목구비耳目口鼻외물外物로 인하여 동하니, 마음이 주재主宰가 되지 않는다면 누가 이것을 금지하겠는가.
그렇다면 이라 한 것은 바로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다만 배우는 자들이 이것을 살피지 못한 것일 뿐이다.”
原注
혹자或者가 묻기를 “안연顔淵을 묻자, 부자夫子께서 이것으로 말씀해 주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사람이 천지天地(진리)을 받고 태어나 인의예지仁義禮智이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으니, 은 비록 오로지 사랑을 주장하나 실로 심체心體전덕全德이요, 는 오로지 을 주장하나 실로 천리天理절문節文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 몸을 가지고 있으면 이목耳目구체口體의 사이에 사욕私慾에 얽매여서 이치를 어겨 을 해침이 없지 못하다.
사람으로서 하지 못하면 자기 한 몸으로부터 전적專的으로 주장하는 것이 없어서 사물의 사이에 전도되고 착란하여 더욱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인욕人欲이고 천리天理이니, 한 마음의 가운데에 두 가지가 병립할 수 없으나 그 서로간의 차이는 털끝만큼도 못된다.
여기에서 나오면 저기로 들어가고, 저기에서 나오면 여기로 들어오니, 이는 불극不克, 불복不復이 손을 뒤집는 것과 같고 팔뚝을 굽히고 펴는 것과 같이 쉽다.
그리하여 자신이 진실로 하고자 할진댄 그 기틀이 참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어찌 타인이 관여할 바이겠는가.
안자顔子자질資質성인聖人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을 물음에 부자夫子께서 해주심이 유독 요긴하고 간절하며 자세하고 극진한 것이다.
가 아니거든 보지 말고 듣지 말라는 것은 밖에서 들어와서 안을 동하는 것을 막는 것이요, 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고 동하지 말라는 것은 안에서 나와서 밖을 접함을 삼간 것이니, 안팎으로 서로 나아감에 을 하는 공부가 여력을 남기지 않는다.
안자顔子가 이에 이 말씀에 종사할 것을 청하여 힘써 행하셨으니, 이 때문에 3개월 동안 을 떠나지 아니하여 마침내 성인聖人의 경지에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말씀을 익숙히 음미하여 안자顔子가 힘쓴 바를 찾아본다면 그 기틀이 다만 불물不勿의 사이에 있을 뿐이다.
이로부터 돌아오면 천리天理가 되고 이로부터 흘러가면 인욕人欲이 되며, 이로부터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人이 되고 이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는 것이니, 다만 털끝 만한 차이일 뿐이다.
배우는 자가 어떻게 그 잡는 바를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요순堯舜으로부터 주공周公공자孔子에 이르기까지 서로 전한 대개大槪공자孔子안자顔子에게 전수함에 이르면 본말本末이 모두 나타나니, 성인聖人온축蘊蓄함이 다시는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안자顔子를 바람은 공자孔子를 바라는 것이니, , , , , , 주공周公를 따라서 알 수 있다.
정일집중精一執中, , 가 서로 전수해 준 요지要指이고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공자孔子안자顔子가 서로 전수해 준 요지要指이니, 언어言語를 가지고 찾아보면 심히 같지 않으나 공자孔子의 이른바 는 곧 임금의 이른바 인심人心이고, 공자孔子의 이른바 는 곧 임금의 이른바 도심道心이고, 사욕私慾을 이겨서 로 돌아온다는 것은 곧 정일精一의 공부이며, 은 또 명칭은 다르나 실제는 같은 것이다.
의리義理의 바름에 합하여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은 이고, 의리義理의 바름에 순수하여 사욕을 뒤섞이지 않게 한 것은 이니, 하고서 하지 못한 경우는 있지 않고 또한 하고서 하지 못한 경우는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무릇 성현聖賢이 서로 전수한 심법心法을 모두 일이관지一以貫之(하나로 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顔淵問仁章 : 《論語》 〈顔淵〉에 보인다.
역주2 [刊補]天下歸仁焉 : 그동안 諸儒들이 모두 이르기를 “천하가 다 나의 仁으로 돌아온다.”고 해석하였는데, 程子는 이것을 옳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程子의 門人으로 浙中에 사는 王蘋 信伯은 오로지 사람들에게 天下歸仁만을 가르쳐서 사람만 만나면 곧 天下歸仁을 말하고 다시 克己復禮는 말하지 않았다. 이에 朱子는 그가 직접 伊川을 뵙고 직접 배웠으면서도 훗날의 說敎가 이처럼 괴이함을 탄식하였다. ○ 歸는 許與(인정)함이니, 천하가 모두 그 仁을 許與한다는 말이다.
역주3 [釋疑]揚子 : 이름은 雄이고 자는 子雲이다. 前漢 말기의 학자로, 일찍이 《太玄經》과 《法言》을 지었다.
역주4 [釋疑]須從性偏難克處克將去 : 謝氏의 이 말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謝氏가 예전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았는데 항상 높은 계단 위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익혔으며, 또 집에 좋은 벼루가 있어서 매우 아꼈는데 뒤에 또한 이것을 남에게 주었다. 또 예전에는 병통이 矜字에 있었는데, 뒤에 伊川이 공부하는 내용을 묻자 謝氏는 대답하기를 “다만 矜字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역주5 [刊補]伊川先生曰條 : 安定先生 胡瑗이 일찍이 學官이 되어 ‘顔子가 좋아한 것은 무슨 학문인가에 대한 논[顔子所好何學論]’을 제목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伊川이 이 글을 지었으니, 이때 나이가 18세였다. ○ 伊川先生이 18세 때에 太學에 있었는데, 그 당시 大儒였던 胡瑗이 學官이 되어 顔子가 좋아한 것은 어떤 배움이었는가에 대한 論文을 課題로 명하였다. 그리하여 伊川이 이 글을 지었는데, 끝내 科擧에 뽑히지 못하였다. [補註] 이 때문에 이 글을 顔子好學論이라 칭한다.
역주6 [釋疑]天地儲精 …… 五性具焉 : 精은 곧 〈太極圖說〉에 말한 二氣五行의 精이라는 것이니, 여기서 유독 精만을 말한 것은 精을 말하면 無極의 眞(理)이 이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儲는 곧 이른바 묘하게 합하여 엉긴다는 뜻이다. 本은 본체이다. 眞은 사람의 거짓이 섞이지 않은 것이고, 靜은 사물에 감동되지 않았을 때이니, 五性(仁‧義‧禮‧智‧信)은 바로 眞이고 未發은 바로 靜이다. [講錄]朱子는 말씀하기를 “本은 本體이고 眞은 인위적인 거짓이 아니며 靜은 사물에 感觸되지 않은 때이니, 五性은 바로 眞이고 未發은 바로 靜이다.” 하였다.
역주7 [刊補]其中動而七情出焉 : 묻기를 “好學論에서 四端을 말하지 않고 七情만 말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이는 섞어서 말한 것이니, 七情을 말하면 四端은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하였다. ○ 묻기를 “《中庸》에서 ‘喜怒哀樂’을 말하고 ‘喜怒哀懼’를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子思는 《中庸》을 지으면서 ‘喜怒哀樂’만 말하고 ‘懼’를 뺐으며, 《禮記》에서 처음으로 ‘喜怒哀懼愛惡欲’을 말했다.” 하였다. 또 말씀하기를 “각각 알맞게 들어서 말한 것이요, 그 사이에 특별히 깊은 의미가 있지는 않으니, 뜻이 그 가운데 합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역주8 : 오
역주9 [釋疑]鑿 : 나무의 구멍을 뚫는 끌이니, 감정이 性을 뚫어 해침은 끌이 물건을 해치는 것과 같다.
역주10 [釋疑]約其情 …… 力行以求至焉 : 마음을 밝혀서 갈 곳을 아는 것은 窮理(知)의 일이고, 마음을 바루어 性을 기르는 것은 踐履(行)의 일이다.
역주11 [釋疑]非化之 : 化는 힘쓰고 억지로 하는 바가 없이 저절로 예절에 맞는 것이다.
역주12 [譯註]不日而化 : 不日은 不終日의 뜻으로 곧 짧은 시간내에 저절로 化하여 聖人의 경지에 도달함을 이른다.
역주13 [刊補]張子曰條 : 이 단락의 앞부분에는 天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仁을 말하였는데, 뒷부분에는 仁을 먼저 말하고 天을 나중에 말하였으니, 이것은 서로 바꾸어 말해서 철저히 發明한 것일 뿐이다. ○ 살펴보건대 이 단락의 本旨는 하늘이 物의 體가 됨을 위주로 말하면서 仁을 가지고 天道를 밝혔다. 그러므로 뒷부분에는 결국 天道로 歸結한 것이다.
역주14 [釋疑]禮儀三百 威儀三千 : 禮儀는 큰 禮로 冠‧婚‧喪‧祭와 大射禮와 鄕飮酒 따위이고, 威儀는 나아가고 물러나며 올라가고 내려오는 소소한 예절 따위이다. 3천이니 3백이니 한 것은 숫자가 반드시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니고, 그 많음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다.
역주15 : 往
역주16 [釋疑]昊天曰旦 及爾游衍 : 旦은 《詩經》 〈大雅 板〉의 本註에 “밝음이다.” 하였다. 朝鮮朝에서는 太祖의 諱를 피하여 朝로 읽었으며, 아예 朝字로 바꾸어 쓰기도 하였다. 衍은 너그럽다는 뜻이다.
역주17 [刊補]事事是仁做出來 : 묻기를 “모든 일에는 각각 하나의 理致가 있어서 서로 빌리지도 않고 서로 더하지도 않는데, 지금 仁으로부터 만들어져 나온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退溪가 답하기를 “理는 진실로 서로 빌릴 수 없으나 한 가지 일을 하는 데 있어 마음이 만약 보존되지 않으면 이 일을 이룰 수가 없다. 《大學》의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視而不見 聽而不聞]’는 것과 《中庸》의 ‘誠하지 않으면 物이 없다[不誠無物]’는 것이 모두 이것을 말한 것이다. 마음이 보존되면 仁하고 보존되지 않으면 仁하지 못하니, 만약 仁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보고 들으며, 어떻게 物이 있겠는가.” 하였다.
역주18 [釋疑]做他那骨子 : 做는 짓다(하다)의 뜻이고, 他는 저것이니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骨子는 근본이다.
역주19 [釋疑]莫是 : 의문사이다.
역주20 [刊補]秪 : 只字와 같다.
역주21 [釋疑]久之自見 : 하늘과 仁이 하나가 되는 이치를 스스로 보는 것을 이른다.
역주22 [釋疑]是將赤心 片片說與人 : 將은 가짐이요 赤心은 誠心이다. [刊補] 그 마음(진심)을 다해서 남에게 말해 준다는 뜻이다.
역주23 [釋疑]荀揚 何曾有此 : 漢나라와 唐나라 이래로 모두 荀子와 揚雄을 大儒라 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두 사람을 든 것이다.
역주24 [釋疑]一副當 : 모든 물건의 한 件을 一副라 이른다. 當은 語助辭이다.
역주25 [釋疑]譬之延蔓之物 …… 則自然脫灑也 : 譬의 아래에 被字가 빠진 듯하다 하여 ‘蔓延(감김)당한 물건을 纏繞한 것을 풀어주면’으로 해석하였다. ○ 蔓延을 세속의 습관에 비유하였다. 배우는 자가 세상의 속박을 당했을 때에 만일 禮를 배워 이것을 제거하면 자연 깨끗이 벗어나 長足의 발전을 할 것이니, 草木이 칡 등의 물건에게 감김을 당했다가 만약 이것을 풀어주면 자연 자라서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살펴보건대 延蔓의 앞에 억지로 被字를 붙였으니 온당치 못한 듯하며, 또 草木이라는 글자를 끼워 넣었으니, 더욱 군더더기인 듯하다. 延蔓과 纏繞는 같은 뜻인데, 문자가 같지 않다. 삼가 생각하건대 만연하는 물건이란 칡덩굴과 등나무 따위이니, 이 물건이 저희들끼리 서로 감겨 있는 것을 이제 이미 풀어주면 저절로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주26 [刊補]紅爐上一點雪 : 이는 본래 禪家의 말인데 선생(朱子)이 빌려서 밝힌 것이다.
역주27 [刊補]極要與他打疊 : 與는 當字와 같은 뜻으로 뒤에도 대부분 이와 같으며, 打疊은 打去(타파)라는 말과 같다. 疊은 《大典》의 疊鍾과 뜻이 서로 비슷한 듯하다.
역주28 [釋疑]苟且 : 불가한 줄 알면서도 그대로 따르고 고치지 않는 것을 이른다.
역주29 [釋疑]說文 : 《說文解字》로 東漢 때 許愼이 지은 것이다.
역주30 [講錄]箕子陳洪範五事 : 箕子가 九疇를 말씀할 적에 五行이 가장 먼저이고 다음이 五事로 되어 있다. 箕子의 思字와 西山의 心字는 모두 用으로 말씀한 것이다. [補註]洪範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이란 뜻이며 九疇는 아홉 가지 종류로 자세한 내용은 《書經》 〈洪範〉에 보인다.
역주31 [釋疑]思不與焉 : 程伊川의 四勿箴 중 動箴에 “명철한 사람은 기미를 알아 생각할 때에 성실히 한다.” 하였다. 그리하여 程子는 생각함을 動에 속하였고, 眞氏는 勿字를 思字에 해당시켜 視聽言動을 겸하여 말하였으니, 程子의 뜻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듯하다. 또 비록 마음이 맡은 것은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나 眞氏는 다만 心字만을 말하고 끝내 思字를 說破하지 아니하여, 말이 구비되지 못한 듯하다.
역주32 [釋疑]或問條 : 이 단락은 《論語或問》에 보인다.
역주33 [釋疑]人受天地之中 : 사람이 天地의 中을 받았다는 것은 《春秋左傳》의 劉子(劉康公)의 말이다. 《書經》 〈湯誥〉에 또한 “下民에게 衷을 내렸다.[降衷于下民]” 하였다.
역주34 [刊補]益無所不至矣 : 趙士敬이 益字는 蓋字가 되어야 할 듯하다고 의심하였는데, 批에 이르기를 “益字의 의미가 무궁하다.” 하였다. ○ 《論語或問》의 이 條에는 위아래에 글이 더 있는데, 程篁墩이 손질하여 요약해서 문장을 만들었는 바, 益字가 옳다.
역주35 : 번
역주36 [釋疑]毫忽之間 : 누에가 실을 토해낼 때에 그 가늘기가 비할 데가 없으니, 누에 한 마리가 토해낸 것을 忽이라 하고 10忽을 絲라 하고 10絲를 毫라 한다.
역주37 [釋疑]本末 : 처음과 끝이니, 先後의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주38 : 현
역주39 [釋疑]然孔子之所謂己 卽舜之所謂人心 : 己를 人心이라 한 것은 程子와 朱子의 初年說과 같으니, 전적으로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中庸》의 序文은 바로 朱子의 晩年의 定論인데, 西山이 정론을 따르지 않고 초년설을 따랐으니,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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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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