顔淵이 問克己復禮之目한대 子曰 非禮勿視하며 非禮勿聽하며 非禮勿言하며 非禮勿動이라하시니
四者
는 身之用也
라 由乎中而應乎外
하나니 는 所以養其中也
라
蔽交於前하면 其中則遷하나니 制之於外하야 以安其內니라
人有秉彝
는 本乎天性
이언마는 하야 遂亡其正
하나니라
人心之動이 因言以宣하나니 發禁躁妄이라야 內斯靜專하나니라
傷易則誕
이요 傷煩則支
하며 己肆物忤
하고 出悖來違
하나니 하야 欽哉訓辭
하라
하야 하고 志士勵行
하야 하나니 順理則裕
요 從欲惟危
니
原注
程子云 制於外
는 所以養其中
이라하시니 這一句
이니라
原注
하니 如非禮之色
이 若過目
이어든 便過了
요 不可有要視之之心
이며 非禮之聲
이 若入耳
어든 也過了
요 不可有要聽之之心
이니라
原注
人之視最在先
하니 遇不當視者
하야 起一念要視他
면 便是非禮
라
原注
○ 問視箴에 何以特說心이며 聽箴에 何以特說性이닛고 曰
互換說이라도 也得이어니와 然諺云 開眼便錯이라하니 視所以就心上說이요
人有秉彛는 本乎天性이라하니 道本自在這裏로되 却因雜得外面言語來誘之라
原注
聽雖主於聲이나 而凡係乎言이 皆屬聽하니 讀書爲學하야 得之於簡冊傳聞者도 皆聽類也라
若於事物之來
에 應之或差
는 猶可改也
어니와 至於
하야는 爲心術之害
라 遂至於亡其性
이면 則不可救藥矣
니
原注
言箴上四句는 是說身上最緊切處니 須是不躁妄이라야 方始靜專이라
下云 矧是樞機 興戎出好四句
는 是說謹言底道理
요 이니라
原注
故不得於言이어든 須求於心이니 心氣和則言順理矣라
然亦須就言上做工夫하야 內外表裏 無少空闕이라야 始得相應이니라
原注
這箇是該動之精粗하니 蓋思於內를 不可不誠이요 爲於外를 不可不守니라
看文字를 須得箇骨子니 諸公은 且道動箴에 那箇是緊要오
答曰 順理則裕
니이다 曰 要連從欲惟危
니 這是生死路頭
니라
原注
故動箴이 兼心說하니 謂內而心之動과 外而身之動이 皆出於正하야 表裏如一이면 則天理流行이니
若强制於外하야 而動於中者 或未盡善이면 則病根不除라 未爲得也니 此卽愼獨工夫니라
原注
四箴
을 舊見
에 只是平常說話
러니 近乃覺其
하니 眞所謂
者
로다
原注
四箴意思 都
得盡
하니 四箇箴
이 有說多底
하며 有說少底
하니 多底
는 減不得
이요 少底
는 添不得
이라
看這意思컨대 都克去己私하야 無非禮之視하고 無非禮之聽하고 無非禮之言하고 無非禮之動이니 這是甚麽氣象고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條目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禮가 아니면 동하지 마는 것이다’ 하셨다.
시視‧청聽‧언言‧동動 이 네 가지는 몸의 용用인데 심중心中으로 말미암아 밖에 응하니, 밖을 제재함은 심중心中을 기르는 것이다.
안연顔淵이 이 말씀에 종사하였으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에 나아간 것이다.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이것을 가슴속에 두고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음이여! 본래 허虛하니, 사물에 응함에 자취가 없다.
마음을 잡음에 요점이 있으니, 보는 것이 그 법칙法則이 된다.
사물이 눈앞에서 가리워 사귀면 마음이 옮겨 가니, 밖에서 제재하여 안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사욕을 이겨 예禮로 돌아가면, 오래되면 저절로 될 것이다.”
“사람이 병이秉彛의 양심良心을 가지고 있음은 천성天性에 근본하였건만 앎(욕심의 지각)이 물건에 유혹되어 변화해서 마침내 올바름을 잃게 된다.
드높은 저 선각자先覺者들은 그칠 곳을 알아 안정함이 있다.
사邪를 막아 성誠을 간직하여 예禮가 아니면 듣지 않으셨다.”
“인심人心의 동함은 말로 인하여 나타나니, 발설發說할 때에 조급함과 경망함을 금하여야 마음이 고요하고 전일해진다.
하물며 이 말은 중요한 추기樞機여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友好를 내기도 하니, 길흉吉凶과 영욕榮辱이 오직 말이 부르는 것이다.
말을 너무 쉽게 함에 잘못되면 허탄해지고 너무 번잡하게 함에 잘못되면 지루해지며, 자신이 말을 함부로 하면 남도 거슬리고 나가는 말이 도리道理에 어그러지면 돌아오는 말도 이치에 위배되니, 법도法度(禮法)에 맞는 말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서 훈계訓戒 말씀을 공경히 받들지어다.”
“철인哲人은 기미幾微를 알아 생각함에 성실히 하고 지사志士는 행실行實을 힘써 하는 일에 지키니, 이치를 순종하면 여유가 있고 욕심을 따르면 위태롭다.
조차造次라도 능히 생각해서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스스로 잡아 지켜라.
습관習慣이 천성天性처럼 이루어지면 성현聖賢과 함께 돌아갈 것이다.”
原注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밖을 제재함은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하셨으니, 이 한 구句는 참으로 좋아 보인다.”
原注
“시視는 간看‧견見과 똑같지 않고 청聽은 문聞과 똑같지 않으니, 예컨대 예禮가 아닌 색色이 만약 눈앞에 지나가거든 곧 지나칠 뿐이요 보려고 하는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며, 예禮가 아닌 소리가 만약 귀에 들어오거든 또한 지나칠 뿐이요 들으려는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原注
“사람의 보는 것이 가장 앞에 있으니, 마땅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만났을 때에 조금이라도 그것을 보고자 하는 한 생각이 일어나면 곧 예禮가 아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것(보는 것)으로 마음을 잡는 법칙을 삼아야 한다.”
原注
“시잠視箴에 어찌하여 특별히 마음을 말했으며 청잠聽箴에 어찌하여 특별히 성性을 말했습니까?”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서로 바꾸어 말해도 되지만 그러나 속담俗談에 ‘눈을 뜨면 곧 잘못된다’ 하였으니, 보는 것을 이 때문에 심상心上에 나아가 말한 것이요,
‘사람이 병이秉彛의 양심良心이 있는 것은 천성天性에 근본 한다’ 하였으니, 도道가 본래 저절로 여기에 있지만 외면의 언어言語가 섞임으로 인하여 유혹된다.
이 때문에 듣는 것을 성상性上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原注
“들음은 비록 소리를 위주로 하나 모든 말에 관계된 것은 모두 들음에 속하니, 책을 읽어 학문을 하여 간책簡冊과 전문傳聞에서 얻는 것도 모두 듣는 종류이다.
만약 사물이 올 적에 대응을 혹 잘못하는 것은 오히려 고칠 수 있지만 학문의 착오에 이르러서는 심술心術의 해로움이 되어 마침내 성性을 잃는 데에 이르니, 이렇게 되면 구제하여 치료할 수가 없다.
말의 간사하고 바름을 들음에 두려울 만함이 이와 같다.”
原注
“언잠言箴에 위의 네 구句는 신상身上에 가장 긴절한 부분을 말하였으니, 모름지기 조급하고 경망하지 않아야 〈마음이〉 비로소 고요하고 전일專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주재主宰가 될 수 없으면 어떻게 가서 사물을 접할 수 있겠는가.
아랫구의 ‘하물며 이 말은 중요한 추기樞機여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友好를 내기도 한다’는 네 구句는 말을 삼가는 도리道理를 말한 것이요, 아래의 네 구句는 네 가지의 병통을 말한 것이다.”
原注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곧 마음이 이치에 순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에 이해되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마음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니, 심기心氣가 화평하면 말이 이치에 순하게 된다.
그러나 또한 모름지기 언어상言語上에 나아가 공부하여 내內‧외外와 표表‧이裏에 조금이라도 공결空缺이 없어야 비로소 서로 응하게 된다.”
原注
또 말씀하기를 “사思는 동動의 은미함이요 위爲는 동動의 드러남이다.
이것은 동動의 정精(思)과 조粗(爲)를 겸하였으니, 안에 생각함을 성실히 하지 않을 수 없고 밖에 행함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자文字를 볼 때에는 모름지기 골자骨子를 알아야 하니, 제공諸公들은 우선 동잠動箴에서 어느 것이 긴요한 것인가 말해 보라.”하였다.
이에 대답하기를 “이치를 따르면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하자, 말씀하기를 “욕심을 따르면 위태롭다는 것까지 이어서 모두 긴요하니, 이것은 생사生死의 노두路頭(갈림길)이다.”하였다.
原注
“시視‧청聽‧언言은 각각 한 가지 일을 가리켰고, 동動은 온몸을 들어서 말하였다.
그러므로 동잠動箴은 마음을 겸하여 말하였으니, 안으로 마음의 동함과 밖으로 몸의 동함이 모두 바름에서 나와 표리表裏가 똑같으면 천리天理가 유행流行됨을 말한 것이다.
만약 밖을 억지로 제재하여 심중心中에 동하는 것이 혹 다 선善하지 못하면 병근病根이 제거되지 못하여 얻음이 되지 못하니, 이것은 바로 신독愼獨공부이다.”
原注
“사잠四箴을 옛날에 볼 때에는 다만 평상적인 말씀이라고 여겼는데, 근래에야 비로소 그 뜻이 정밀함을 깨달았으니, 참으로 이른바 한 지팡이로 때리면 한 줄기의 지팡이 자국이 생기고 한 손으로 때리면 한 손바닥의 핏자국이 생긴다는 것이다.”
原注
“사잠四箴의 의사意思는 모두 다 포괄하였으니, 네 개의 잠箴은 말(내용)이 많은 것도 있고 말이 적은 것도 있는 바, 많은 것은 줄일 수가 없고 적은 것은 보탤 수가 없다.
다만 모름지기 자신이 공부를 하여야 실제로 어떠한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의사를 보건대 모두 사욕私慾을 이겨서 예禮가 아닌 봄이 없고 예禮가 아닌 들음이 없고 예禮가 아닌 말이 없고 예禮가 아닌 동함이 없어야 하니, 이것이 어떠한 기상氣象인가?
곧 혼연渾然한 천리天理이니, 이는 곧 인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