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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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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聖可學章
周子通書曰
聖可學乎 曰可니라
有要乎 曰有니라
請問焉한대
一爲要 一者 無欲也
無欲則靜虛動直이니
原注
[附註]
○ 朱子曰
一者 無欲이라하니 今試看無欲之時 心豈不一이리오
人只爲有欲이라 此心 便千頭萬緖니라
原注
○ 又曰
周先生 說一者 無欲也라하시니 然這하야 卒急難湊泊이니 尋常人 如何便得無欲이리오
故伊川 只說箇敬字하야 敎人하시니 只就這敬字上하야 庶幾執捉得定하야 有箇下手處
이니 要之컨대 皆只要人於此心上 見得分明하야 自然有得耳
然今之言敬者 乃皆外事하고 不知直截於心上求功이라
遂覺不快活하나니 不若於求放心處有功이면 則尤省力이니라
原注
○ 石子重 問 心 하고 備體用이라 故能寂而感하고 感而寂하나니 其寂然不動者 誠也 體也 感而遂通者 神也 用也
唯心之謂與인저 朱子曰 此說 甚善이니라
原注
[按] 此謂誠體神用 卽周子靜虛動直之意니라
原注
○ 伊川先生曰
如此說이면 便是自棄 雖與不能居仁由義者 差等不同이나 其自小 一也
言學인댄 便以道爲志 言人인댄 便以聖爲志니라
原注
[按] 以下所摭四條 皆論學者當以聖人爲師而以聞道爲要 不可恬於小成而羣於自畫이니 蓋所謂心學者如此而已
雖所言 不盡同於周子 然開示後覺之意 則無有不同者焉이니라
原注
○ 龜山楊氏曰
古之學者 以聖人爲師라도 其學 有不至
故其德 有差焉하니
人見聖人之難爲也
故凡學者 以聖人爲可至라하면 則必以爲狂而竊笑之하나니
夫聖人 固未易至어니와 若舍聖人而學이면 是將何所取則乎
以聖人爲師 猶學射而立的然이라
的立於彼然後 射者可視之而求中이니 其中不中 則在人而已어니와 不立之的이면 以何爲準이리오
原注
○ 又語羅公仲素云
今之學者 只爲不知爲學之方하고 又不知學成要何用하나니
하니 須是曾著力來라야 方知不易니라
夫學者 學聖賢之所爲也
欲爲聖賢之所爲인댄 須是聞聖賢所得之道 하야 不爲非義之士而已 則古來如此等人 不少어니와 然以爲聞道則不可
且如東漢之衰 處士逸人與夫名節之士 有聞當世者多矣어니와 觀其作處하야 責以古聖賢之道하면 則略無毫髮相似 何也
以彼於道 初無所聞故也
今時學者平居則曰 吾當爲古人之所爲라호되 有一事到手 便措置不得하나니
蓋其所學 以博古通今하야 爲文章하고 或志於忠信愿慤하야 不爲非義而已
由是觀之컨대 學而不聞道 猶不學也니라
原注
○ 朱子曰
凡人 須以聖賢爲己任이어늘 世人 多以聖賢爲高而自視爲卑
故不肯進하나니 抑不知稟性 與常人一同이니 安得不以聖賢爲己任이리오
自開闢以來 生多少人이로되 求其盡己者하면 千萬人中 無一二하고 只是枉過一世
詩曰 天生烝民 이라하니 今世學者 往往有物而不能有其則하나니
中庸 尊德性而道問學數句 乃是徹首徹尾
人性本善이로되 只爲嗜慾所迷, 利害所逐하야 니라
或問 明性 須以敬爲先이로소이다
固是어니와 但敬亦不可이라
須是每事上檢點이니 論其大要컨대 只是不니라
大抵爲己之學 於他人 無一毫干預하니 聖賢千言萬語 只是使人反其固有而復其性耳니라
原注
學聖賢所知之道 無他
其反躬也 必以無欲爲敬하고 以無息爲誠하고 하고 하고 以天下後世不傳此道爲己憂하면 而此心此道之全體妙用 皆在其中矣
龜山所謂以聖人爲師 猶學射而立的者 此也 所謂學聖賢之所爲인댄 必欲聞聖賢所得之道者 此也
程子曰 言學인댄 便以道爲志 言人인댄 便以聖爲志라하시니 自非體之以身하야 從容默會而有深功하고 驗之以心하야 超然自得而有餘味者 能之乎


32. 성가학장聖可學章
주자周子의 《통서通書》에 말씀하였다.
“ ‘성인聖人을 배워서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가능하다’고 대답하였다.
‘요점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 이유를 묻습니다’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 요점이 되니, 이란 욕심이 없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할 때에는 마음이 비워지고 동할 때에는 마음이 곧아진다.
고요할 때에 마음이 비워지면 밝고 밝으면 통하며, 동할 때에 마음이 곧아지면 공정公正하고 공정하면 넓어지니, 밝고 통하며 공정公正하고 넓으면 거의 에 가까울 것이다’ ”
原注
[附註]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란 욕심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제 시험해 보건대 욕심이 없을 때에 마음이 어찌 한결같지 않겠는가.
사람이 다만 욕심이 있기 때문에 이 마음이 곧 천 갈래 만 갈래가 되는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주선생周先生이 ‘이란 욕심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였는데, 이것은 화두話頭가 높아서 갑자기 도달하기가 어려우니, 심상尋常(보통)한 사람들이 어떻게 곧 욕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천伊川이 다만 경자敬字를 말씀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니, 다만 이 경자상敬字上에 나아가 떠밀고 나가면 거의 잡아 안정되어서 착수着手할 곳이 있을 것이다.
비록 얻지 못하더라도 잃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 요컨대 모두 다만 사람이 심상心上에 보기를 분명히 하여 자연 얻음이 있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에 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다 바깥일을 꾸미고 곧바로 심상心上에서 공부할 줄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하여 쾌활하지 못함을 깨달으니, 목전目前방심放心을 구하는 곳에 공부하는 것만 못하니, 이렇게 하면 보다 힘이 덜들 것이다.”
原注
석자중石子重이 “마음은 을 겸하고 을 구비하였으므로 고요하면서도 감동하고 감동하면서도 고요한 것이니, 고요하여 동하지 않음은 이고 이며 감동하여 마침내 통함은 이고 입니다.
근원根源이 하나이고 (드러난 )과 (은미한 )가 간격이 없다는 것은 바로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인 듯합니다.”하고 묻자, 주자朱子는 “이 말이 매우 좋다.”하고 대답하였다.
原注
[按] 여기에 말한 이고 이라는 말은 바로 주자周子의 고요할 때에는 마음이 비워지고 동할 때에는 마음이 곧아진다는 뜻이다.
原注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일등을 가져다가 딴 사람에게 양보하여 주고 우선 이등을 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조금이라도 이와 같이 말하면 곧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니, 비록 에 거하고 를 행하지 못하는 자와는 차등差等(등급)이 똑같지 않으나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것은 똑같다.
학문을 말할진댄 곧 로써 뜻을 삼아야 하고, 사람을 말할진댄 곧 성인聖人으로써 뜻을 삼아야 한다.”
原注
[按] 이 아래에 뽑은 네 조목은 모두 배우는 자가 성인聖人을 스승으로 삼고 를 듣는 것을 요점으로 삼아야 하며 소성小成을 편안히 여겨 스스로 한계 짓는 무리와 어울려서는 안 됨을 논한 것이니, 이른바 심학心學이라는 것은 이와 같을 뿐이다.
비록 말한 바가 주자周子와 모두 같지는 않으나 후각後覺(後學)들을 열어 보여주신 뜻은 같지 않음이 없다.
原注
구산양씨龜山楊氏(楊時)가 말하였다.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성인聖人을 스승으로 삼았는데도 그 배움이 지극하지 못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인聖人이 되기 어려움을 보았다.
이 때문에 모든 배우는 자들이 ‘성인聖人의 경지를 배워서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쳤다고 여기며 속으로 비웃는다.
성인聖人은 진실로 쉽게 이를 수 없으나 만약 성인聖人을 버리고 배운다면 장차 무엇을 법칙으로 삼겠는가.
성인聖人을 스승으로 삼음은 활쏘기를 배울 때에 과녁[的]을 세우는 것과 같다.
과녁을 저기에다 세운 뒤에야 활쏘는 자가 이것을 보고서 적중的中하기를 구할 수 있으니, 과녁에 적중하고 적중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지만 과녁을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을 표준으로 삼겠는가.”
原注
나공羅公 중소仲素(羅從彦)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학문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학문이 이루어지면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 문제는 사체事體가 매우 중대하니, 모름지기 일찍이 힘을 써 보아야만 비로소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배움이란 성현聖賢이 행하신 바를 배우는 것이다.
성현聖賢이 행하신 바를 배우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성현聖賢이 얻은 바의 를 들어야 하니, 만약 단지 고금古今의 일을 널리 통달하여 문장文章을 짓고 충신忠信원각愿慤(삼가고 후덕함)을 하여 비의非義의 선비가 되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면 예로부터 이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를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
동한東漢이 쇠퇴했을 때에 처사處士일인逸人, 명망名望지절志節이 있는 선비로 당대에 알려진 자가 많았으나 그 행동한 곳을 관찰하여 옛 성현聖賢로써 책한다면 털끝만큼도 방불彷彿하여 서로 같은 자가 조금도 없음은 어째서인가?
이들이 에 대해 애당초 들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평소에는 ‘내 마땅히 옛사람이 하신 것을 하겠다’고 말하나 겨우 한 가지 일이 손에 이르면 곧 조치措置하지 못하니,
이는 그 배운 바가 고금古今의 일을 널리 통달하여 문장文章을 짓고 혹은 충신忠信원각愿慤에 뜻을 두어 비의非義를 하지 않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배우면서 를 듣지 못하면 배우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모름지기 성현聖賢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성현聖賢을 높다고 여기고 자신을 보기를 낮게 여긴다.
그러므로 성현聖賢에 나아가려고 하지 않으니, ‘성현聖賢품성稟性상인常人과 똑같으니, 어찌 성현聖賢을 자신의 임무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천지天地개벽開闢한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지만 자신의 도리道理를 다한 자를 찾아보면 천만 명 가운데에 한두 명밖에 없고 다만 뒤섞여서 한 세상을 헛되이 보냈을 뿐이다.
시경詩經》에 ‘하늘이 만백성을 낼 적에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하였는데, 지금 세상에 배우는 자들은 왕왕 사물만 있고 법칙은 있지 못하다.
중용中庸》의 ‘덕성德性을 높이면서도 문학問學을 말미암아야 한다’는 몇 는 바로 철두철미徹頭徹尾한 내용이다.
사람의 은 본래 하지만 다만 기욕嗜慾에 혼미해지고 이해利害에 쫓겨서 일제히 어두워지는 것이다.”
혹자가 “을 밝힘은 모름지기 을 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진실로 옳거니와 다만 또한 뒤섞어 말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매사에 점검하여야 하니, 그 대요大要를 논한다면 다만 방과放過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대체로 자신을 위하는 학문은 타인에게는 일호一毫도 간여함이 없으니, 성현聖賢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씀은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고유固有한 것을 되찾아서 본성本性을 회복하게 하였을 뿐이다.”
原注
휘암정씨徽菴程氏(程若庸)가 말하였다.
성현聖賢이 아신 바의 를 배우는 것은 딴 방법이 없다.
을 주장하여 근본根本을 세우고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知識을 지극히 하고 자기 몸에 돌이켜 실제實際를 행하는 것일 뿐이니, 자기 몸에 돌이킬 적에 반드시 욕심이 없는 것을 으로 삼고 쉼이 없는 것을 으로 삼고 날로 새로워짐을 으로 삼고 풍부하게 소유함을 사업事業으로 삼고, 한 사람과 한 물건이라도 은택을 입지 못함을 자신의 책임으로 삼고 천하와 후세에 이 가 전해지지 못함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는다면 이 마음과 이 전체全體묘용妙用이 모두 이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귀산龜山의 이른바 ‘성인聖人을 스승으로 삼음은 활쏘기를 배울 때에 과녁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이른바 ‘성현聖賢이 행하신 바를 배우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성현聖賢이 얻은 바의 도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학문을 말할진댄 곧 로써 뜻을 삼아야 하고, 사람을 말할진댄 곧 성인聖人으로써 뜻을 삼아야 한다’ 하셨으니, 만일 몸으로 체행體行하여 종용從容(조용하고 여유 있음)하고 묵묵히 알아 깊은 공부가 있으며 마음으로 체험하여 초연超然자득自得하여 충분한 맛이 있는 자가 아니라면 이에 능하겠는가.”


역주
역주1 [釋疑]周子通書曰 …… 明通公溥 : 《通書》는 《周易》의 道와 통하기 때문에 일명 易通이라고도 한다. 一은 太極이고 靜虛動直(靜하면 虛하고 動하면 곧음)은 兩儀이고 明通公溥(밝고 통하고 公正하고 넓음)는 四象이다. 또 一은 一元의 기운이고 靜虛動直은 陰陽이고 明通公溥는 春夏秋冬이다. [刊補]溥는 普徧(넓고 두루함)이다. 살펴보건대 고요할 때에 마음이 비워지면[靜虛] 발할 때에 밝고 통하니, 明通은 바로 動直을 가리킨다. 動할 때에 마음이 곧아지면[動直]靜할 때에 公正하고 넓어지니, 公溥는 바로 靜虛를 가리킨다. 朱子가 明通公溥를 四時에 分屬시킨 것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있으나 ‘明通公溥는 바로 春夏秋冬의 순서와 같다.’는 것이 바로 定論이다. 대체로 周濂溪의 학문은 모두 一에서 二, 二에서 四로 전개되는 바, 《朱子語類》에 “明通公溥는 곧 五行이다.”하였다.
역주2 [釋疑]話頭 : 佛家의 책에 보이니, ‘뜰 앞의 측백나무와 삼 세 근이요, 萬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庭前柏樹麻三斤 萬法歸一一何歸]’라는 따위와 같은 것이다. 그 門徒들이 祖師에게 道를 물으면 祖師가 이처럼 의미 없는 말을 일러주어서 그로 하여금 전일한 마음으로 이것을 생각해서 마음이 다른 데로 가지 않아 그 마음이 갑자기 깨닫게 하는 것이다.
역주3 [釋疑]崖去 : 崖는 《性理大全》에는 捱(떠밀다)로 되어 있다.
역주4 [刊補]縱不得 亦不至失 : 살펴보건대 ‘一이란 욕심이 없는 것’이라는 말은 갑자기 힘쓰기가 어려워 착수할 곳이 없으니, 周子와 같은 식견이 없으면 혹 어긋나 佛家의 空寂에 들어감을 면치 못한다. ‘敬’ 공부는 잡아 지키고 의거할 곳이 있으니, 비록 十分 다 얻지는 못하더라도 空虛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비록 얻지 못하더라도 잃음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要之’ 이하는 周子와 程子의 뜻을 통괄하여 말한 것이다.
역주5 [刊補]裝點 : ‘修飾’이라는 말과 같다.
역주6 [釋疑]累墜 : 累는 累卵과 같으며, 墜는 물건이 공중에 매달려 떨어지려고 하는 모양과 같은 것이니, 모두 불안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7 [釋疑]眼下 : 當前이라는 말과 같다. [補註]目下와 같은 말로 ‘당장’을 의미한다.
역주8 [釋疑]該誠神 : 誠은 진실한 이치가 본래 그러함을 이르고, 神은 유통하여 측량할 수 없음을 이른다.
역주9 [釋疑]體用一源 顯微無間 : 伊川의 《易傳》 序文에 보이는 말이다. 朱子는 말씀하기를 “體에 나아가면 用이 이 가운데에 있으므로 一源이라 이르고, 드러난 象에 나아가면 은미한 理가 벗어날 수 없으므로 無間이라 이른 것이다.”하였다.
역주10 [釋疑]莫說道將第一等 …… 且做第二等 : 第一等은 聖人의 일이고, 第二等은 賢人의 일이라고 말함과 같다.
역주11 : 纔
역주12 [釋疑]此事體大 : 이는 體面이 매우 중대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13 [釋疑]若只要博古通今 …… 不爲非義之士而已 : 忠信은 충후하고 신실함이니, 《論語》의 忠信이 아니다. [補註] 충후하고 신실함은 단지 사람의 자질을 말한 것이며, 《논어》의 忠信은 공부를 말한 것이다.
역주14 愿慤 : 원각
역주15 [刊補]髣髴 : 《韻會》에 “若似(같음, 비슷함)이다.”하였다.
역주16 : 纔
역주17 [釋疑]滾同 : 滾은 《韻會》에 “混과 통한다.”하였다.
역주18 [釋疑]有物有則 : 父子가 있으면 慈孝하는 性이 있는 것과 같다. [補註]物은 事物이고 則은 道理와 법칙으로, 父子는 物이고 慈孝의 性은 則이다.
역주19 [刊補]凡人須以聖賢爲己任 …… 一齊昏了 : 살펴보건대 ‘凡人須以’ 이하는 사람은 마땅히 聖賢을 準則으로 삼아야 함을 말하였으며, ‘詩曰’ 이하는 사람은 누구나 聖賢이 될 수 있으니, 이는 하늘이 낸 바가 본래 이와 같아서 聖賢이든 凡人이든 모두 같음을 말하였는 바, 이는 原頭處에서 말한 것이며, ‘中庸’ 이하는 공부하여 들어가는 入頭處를 말한 것이니, 朱子의 말씀이 겸비하고 상세함이 이와 같다. 윗 단락의 龜山楊氏의 말은 뜻은 매우 좋으나 다만 학문을 할 적에 어디로부터 들어가야 하는 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역주20 [釋疑]混淪 : 분별하지 않고 통합하여 말하는 것이다.
역주21 [釋疑]放過 : 내버려두고 照管하지 않음을 이른다.
역주22 [釋疑]徽菴程氏 : 이름은 若庸이고 字는 達原이니, 말년에 勿齋라 호하였다.
역주23 [釋疑]主敬以立其本 …… 反躬以踐其實而已 : 이 세 가지는 朱子의 學問의 규모인데, 黃勉齋가 朱子의 行狀에서 특별히 강조하여 드러낸 것이다.
역주24 [釋疑]以日新爲德 以富有爲業 : 《周易》 〈繫辭傳〉에 “날로 새로워짐을 盛德이라 이르고, 많이 소유함을 大業이라 이른다.[日新之謂盛德 富有之謂大業]”하였다.
역주25 [刊補]以一民一物不被其澤爲己任 : 《孟子》 〈萬章 下〉에 “伊尹은 한 지아비라도 그 恩澤을 입지 못함을 자신의 수치로 여겼다.”하였는데, 지금 “그 恩澤을 입지 못함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겼다.”라고 하였으니, 文勢로 볼 때 온당치 못하다. 任字는 마땅히 恥字가 되어야 한다.

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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