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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

주역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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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王弼晉韓康伯注하고 唐孔穎達疏
本卜筮之書
末派寖流於讖緯하니 王弼 乘其極敝而攻之하여 遂能排擊漢儒하고 自標新學이라
이나 隋書經籍志 載晉揚州刺史顧夷等有周易難王輔嗣義一卷하고
是在當日 已有異同이라
王儉顔延年以後 此揚彼抑하여 互詰不休라가 至穎達等奉詔作疏하여 始專崇王注하여 而衆說皆廢
故隋志易類 稱鄭學寖微하여 今殆絶矣라하니 蓋長孫無忌等作志之時 在正義旣行之後也
於見龍在田時舍也 則曰經但云時舍어늘 注曰 必以時之通舍者 則輔嗣以通解舍하니 舍是通義也라하고
而不疏舍之何以訓通하며
於天玄而地黃 則曰恐莊氏之言 非王本意 今所不取라하고 而不言莊說之何以未允하니
如斯之類 皆顯然偏袒이라
至說卦傳之分陰分陽하여는 韓注 二四爲陰이요 三五爲陽이라한대
則曰 輔嗣以爲初上 無陰陽定位라하니 此注用王之說이라하고
帝出乎震 韓氏無注어늘 則曰 益卦六二 王用享于帝吉이라한대
輔嗣注云 帝者 生物之主 興益之宗이니 出震而齊巽者也라하니
則輔嗣之意 以此帝 爲天帝也라하니라
是雖弼所未注者 亦委曲旁引以就之
然疏家之體 主於詮解注文하여 不欲有所出入이라
皇侃禮疏 或乖鄭義한대 穎達 至斥爲狐不首丘하고 葉不歸根이라하니 其墨守專門 固通例然也
至於詮釋文句하여는 多用空言하여 不能如諸經正義 根據典籍하여 源委粲然하니 則由王注하여 掃棄舊文하여 無古義之可引하니 亦非考證之疏矣
此書初名義贊이러니 後詔改正義
이나 卷端又題曰兼義라하니 未喩其故
序稱十四卷이로되 唐志 作十八卷하고 書錄解題 作十三卷이어늘 此本十卷이니 乃與王韓注本同하니 殆後人從注本合倂歟


나라 왕필王弼나라 한강백韓康伯를 내고, 나라 공영달孔穎達를 냈다.
》은 본래 복서卜筮하던 책이다.
그러므로 말류末流가 점점 참위설讖緯說(圖讖說)로 흘렀는데, 왕필王弼이 그 지극한 병폐를 틈타 공격하여 마침내 나라 학자들을 배격하고 스스로 새로운 학문을 표출해내었다.
그러나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나라 양주자사揚州刺史 고이顧夷 등이 지은 《주역난왕보사의周易難王輔嗣義》 1권이 있다고 기재하였고,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또 고열지顧悅之가-살펴보건대 열지悅之는 바로 고이顧夷이다. -王弼의 《역의易義》를 힐난한 40여 조항이 있는데, 경구京口관강지關康之는 또 왕필王弼을 해명하고 고열지顧悅之를 힐난했다고 기재하였으니,
이는 당시에 이미 이동異同이 있었던 것이다.
왕검王儉안연년顔延年(顔延之) 이후로 이것을 드날리고 저것을 억제해서 서로 힐난하여 그치지 않다가, 공영달孔穎達 등이 조칙詔勅을 받들어 를 지으면서 처음으로 오로지 왕필王弼만을 높임으로 인해 여러 학설이 모두 폐지되었다.
이 때문에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의 역류易類에 “정현鄭玄이 점점 쇠미해져서 지금에는 거의 끊겼다.”고 말하였으니,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이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를 지은 시기는 《정의正義》가 이미 통행된 뒤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책을 보면, 복괘復卦단전彖傳〉의 “칠일래복七日來復”에 대하여 왕보사王輔嗣(王弼)가 우연히 6 7을 따랐는데 여기에서는 정현鄭玄의 뜻이 좋음을 미루어 밝혔고,
건괘乾卦 구이九二 효사爻辭의 “이견대인利見大人”에 대하여 왕보사王輔嗣구오九五를 보는 것이 이롭다는 을 따르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정현鄭玄의 뜻이 잘못됨을 논박하여 힐난하였다.
“‘나타난 이 밭에 있음’은 때가 통함이다.[見龍在田 時舍也]”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에는 오직 ‘시사時舍’라고 말하였는데 에 ‘필이시지통사必以時之通舍’라고 말한 것은 왕보사王輔嗣으로 를 해석한 것이니, 가 바로 의 뜻이다.”
하고는 가 어찌하여 의 뜻이 되는지는 를 내지 않았으며,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장씨莊氏의 말은 왕보사王輔嗣의 본뜻이 아닐 듯하므로 이제 취하지 않는다.” 하고는 장씨莊氏이 어찌하여 합당하지 않은지는 말하지 않았으니,
이와 같은 따위는 모두 드러나게 한쪽만을 주장한 것이다.
설괘전說卦傳〉의 “분음분양分陰分陽”에 이르러서는 한강백韓康伯에 “이 되고 이 된다.” 하였는데,
에 이르기를 “왕보사王輔嗣가 ‘음양陰陽정위定位가 없다.’고 하였으니, 이 왕보사王輔嗣을 따른 것이다.” 하였으며,
제출호진帝出乎震”에 대하여 한씨韓氏가 없는데, 〈에서 또〉 이르기를 “익괘益卦육이六二에 ‘상제上帝에게 제향하면 길하다.’ 하였는데,
왕보사王輔嗣에 ‘는 물건을 낳는 주체이고 유익함을 일으키는 종주宗主이니, 에서 나와 에서 가지런히 한 자이다.’ 하였으니,
왕보사王輔嗣의 뜻은 이 천제天帝로 여긴 것이다.” 하였다.
이것은 비록 왕필王弼를 달지 않은 것이나 또한 곡진히 넓게 인용하여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소가疏家의 본체는 의 글을 해석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 출입하는 바가 있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황간皇侃의 《예기의소禮記義疏》가 간혹 정현鄭玄의 뜻에 어긋나자, 공영달孔穎達은 “여우가 머리를 언덕에 두지 않고 잎이 뿌리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배척하기까지 하였으니, 하나의 전문專門을 굳게 지키는 것은 진실로 통례通例가 그러한 것이다.
문구文句를 해석함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공허한 말을 사용하여, 다른 여러 의 《정의正義》가 전적典籍에 근거하여 본말本末이 찬란한 것만 못하니, 이는 왕보사王輔嗣만을 따르고 옛글을 쓸어버려서 인용할 만한 옛 뜻이 없어진 것이니, 또한 고증한 가 아니다.
이 책이 처음에는 ‘의찬義贊’이라고 이름하였는데 뒤에는 조칙에 따라 ‘정의正義’라고 고쳤다.
그러나 책머리에는 또 ‘겸의兼義’라고 썼으니, 그 연고를 알 수 없다.
공영달孔穎達서문序文에는 14권이라고 칭하였으나, 《당서唐書》 〈경적지經籍志〉에는 18권이라 하였고,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에는 13권이라 하였는데, 이 판본板本은 10권으로 왕보사王輔嗣한강백韓康伯주본注本과 같으니, 아마도 후인後人주본注本을 따라 합병한 것인 듯하다.


역주
역주1 (閔)[關] : 저본에는 ‘閔’으로 되어 있으나, 《冊府元龜》에 의거하여 ‘關’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冊府元龜……又申王難顧 : 《冊府元龜》는 《太平廣記》, 《太平御覽》, 《文苑英華》와 함께 宋四大書로 불리는 類書의 하나로, 원래의 명칭은 《歷代君臣事蹟》이다. 北宋 眞宗 때 王欽若과 楊億 등이 上古시대부터 五代에 이르는 歷代 君臣 및 정치에 관한 사적을 광범위하게 채집, 정리하여 31部 천 권으로 완성하였다. 《冊府元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顧悅之가 王弼의 《易義》를 힐난한 40여 조항이 있는데, 關康之가 王弼을 해명하고 顧悅之를 힐난하니 매우 情理가 있다.[顧悅之難王弼易義四十餘條 康之申王難顧 遠有情理]”
역주3 如復彖……則推明鄭義之善 : 復卦의 〈彖傳〉에 “그 道를 반복하여 7일 만에 와서 회복함은 하늘의 운행이다.[反復其道 七日來復 天行也]”라고 한 것에 대하여, 王弼은 “陽氣가 처음 깎여[剝] 다하였다가 와서 회복하는 때까지가 모두 7일이다.[陽氣始剝盡 至來復時 凡七日]”라고 注를 내었다.
復卦의 ‘七日來復’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程伊川과 朱子가 따랐던 說로, 12辟卦說에 의거하여 ‘七日’을 陰氣가 처음 생긴 姤卦(5월)로부터 陽氣가 처음 생긴 復卦(11월)까지의 7개월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王弼과 孔穎達이 따랐던 6日 7分의 說로, 이는 剝卦와 復卦 사이에 坤卦 하나가 끼어 있는데 한 卦는 총 6日 7分을 점유하므로 큰 수를 들어 7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는 해석이다.
한 卦가 6日 7分을 점유한다는 것은 易緯의 說로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卦의 氣는 中孚卦로부터 시작되므로 離卦, 坎卦, 震卦, 兌卦가 각각 하나의 正方을 주관한다. 이 네 卦를 뺀 60卦에는 6개의 爻가 있는데, 이를 모두 합하면 360爻이므로 각각의 爻가 하루씩을 점유한다. 1년에서 360일을 빼면 5와 4분의 1일이 남는데, 하루는 80分으로 나뉘므로 곧 420分이 남는다. 이를 60卦로 나누면 한 卦당 7分을 점유하게 되어 卦마다 총 6일(6爻에 해당)과 7分을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孔穎達은 王弼의 注에 疏를 달면서 ‘七月’을 7개월로 보는 說을 비판하고 “만약 姤卦의 5월부터 말한다면 注에서 어떻게 ‘始盡’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臨卦 역시 陽이 자라는데 卦辭에 ‘八月’이라고 말하였으니, 지금 復卦 역시 陽이 자라는바, 어찌 유독 月을 바꾸어 ‘七日’이라고 칭하였겠는가. 注의 뜻을 보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요, 또한 易緯의 6日 7分의 뜻을 사용한 것이니, 鄭康成(鄭玄)의 說과 같다.[若從五月言之 何得云始盡也 又臨卦亦是陽長 而言八月 今復卦亦是陽長 何以獨變月而稱七日 觀注之意 必謂不然 亦用易緯六日七分之義 同鄭康成之說]” 하였다. ‘始盡’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姤卦䷫는 겨우 陽爻 하나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盡’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역주4 乾九二利見大人……則駁詰鄭義之非 : 乾卦 九二 爻辭에 “나타난 龍이 밭에 있으니, 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見龍在田 利見大人]”라고 한 것에 대하여, 王弼은 “德의 베풂이 두루 하여 넓고, 中에 거하여 편벽되지 않으니, 비록 人君의 자리가 아니나 人君의 德이다. 初爻는 드러나지 못하였고 三爻는 부지런히 힘쓰며, 四爻는 혹 뛰어오르고 上爻는 지나치게 높으니, ‘利見大人’은 오직 二爻와 五爻뿐이다.[德施周普 居中不偏 雖非君位 君之德也 初則不彰 三則乾乾 四則或躍 上則過亢 利見大人 唯二五焉]”라고 하였으니, ‘利見大人’의 大人을 九二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하여 孔穎達은 “王輔嗣(王弼)는 또 말하기를 ‘利見大人은 오직 二爻와 五爻 뿐이다.’ 하였으니, 이는 二爻와 五爻가 모두 大人으로 천하 사람들이 그를 만나봄이 이로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褚氏(褚仲都)와 張氏(張譏)는 鄭康成의 說과 똑같이 모두 ‘九二가 九五의 大人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 하였으니, 그 뜻이 잘못되었다.[輔嗣又云 利見大人 唯二五焉 是二之與五 俱是大人 爲天下所利見也 而褚氏張氏同鄭康成之說 皆以爲九二利見九五之大人 其義非也]”라고 하여 鄭玄의 說을 반박하였다. 한편 程伊川과 朱子는 모두 鄭玄과 마찬가지로 九二가 九五의 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주역정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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