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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2)

주역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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盥而不薦이면 有孚하여 顒若하니라
觀은 세수만 하고 祭需를 올리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이〉 孚信이 있어 엄숙하다.
[注]王道之可觀者 莫盛乎宗廟 宗廟之可觀者 莫盛於盥也 至薦하여는 簡略하여 不足復觀이라 觀盥而不觀薦也
王道 중에 볼 만한 것은 종묘보다 성한 것이 없고, 종묘 중에 볼 만한 것은 세수하는 것보다 성한 것이 없으니, 제수를 올리게 되면 간략하여 다시 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세수하는 것만 보고 제수를 올리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로라하시니 盡夫觀盛하면 則下觀而化矣 觀至盥하면 則有孚하여 顒若也
孔子가 말씀하기를 “禘제사는 降神酒를 따른 뒤로부터는 내 보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으니, 봄의 성함을 다하면 아랫사람들이 보고 교화된다. 그러므로 봄이 세수함에 이르면 孚信이 있어 엄숙한 것이다.
[疏]‘觀盥而’至‘顒若’
經의 [觀盥而]에서 [顒若]까지
○正義曰:觀者, 王者道德之美而可觀也, 故謂之觀.
○正義曰:[觀] 王者의 道德의 아름다움으로 볼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觀’이라 하였다.
‘觀盥而不薦’者, 可觀之事, 莫過宗廟之祭, 盥其禮盛也. 薦者, 謂旣灌之後, 陳薦籩豆之事, 故云“觀盥而不薦”也.
[觀盥而不薦] 볼 만한 일이 종묘의 제사보다 더한 것이 없고, 세수함은 그 禮가 성대하다. ‘薦’은 이미 降神한 뒤에 籩豆의 일을 진설하여 올림을 이른다. 그러므로 “觀은 세수하기만 하고 제수를 올리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有孚 顒若’者, 孚, 信也, 但下觀此盛禮, 莫不皆化, 悉有孚信而顒然, 故云“有孚顒若.”
[有孚 顒若] ‘孚’는 信이니, 아랫사람들이 다만 이 성대한 禮를 보면 다 교화되지 않음이 없어서 모두 孚信이 있어 엄숙[顒然]하다. 그러므로 “孚信이 있어서 엄숙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王道之可觀’至‘有孚顒若也’
○注의 [王道之可觀]에서 [有孚顒若也]까지
○正義曰:[盡夫觀盛 則下觀而化] ‘觀盛’은 세수하는 禮의 성대함을 보면 쉬고 그침을 이르니, 이는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본받을 적에 봄으로 인하여 다 교화가 되는 것이다.
‘故觀至盥 則有孚 顒若’者, 顒是嚴正之貌, 若爲語辭, 言下觀而化, 皆孚信, 容貌儼然也.
[故觀至盥 則有孚 顒若] ‘顒’은 嚴正한 모양이요, ‘若’은 어조사이니, 아랫사람들이 보고 교화되어서 모두 믿어 용모가 엄숙함을 말한 것이다.
彖曰 大觀으로 在上하여
〈彖傳〉에 말하였다. “큰 볼것으로 위에 있어,
[注]下賤而上貴也
아래는 천하고 위는 귀하다.
[疏]正義曰:謂大爲在下所觀, 唯在於上. 由在上旣貴, 故在下大觀, 今大觀在於上.
正義曰: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보여줌은 오직 위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위에 있어 이미 귀하기 때문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보는 것이니, 지금 큰 볼것이 위에 있는 것이다.
順而巽하고 中正以觀天下 觀盥而不薦 有孚顒若 下觀而化也
순하고 공손하며 中正함으로써 천하에게 보여주니, ‘觀은 세수만 하고 제수를 올리지 않으면 孚信이 있어 엄숙하다.’는 것은 아랫사람들이 보고 교화되는 것이다.
觀天之神道하면 而四時不忒하니 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니라
하늘의 神道를 보면 四時가 어긋나지 않으니, 聖人이 神道로써 가르침을 베풀어서 천하가 복종하는 것이다.”
[注]統說觀之爲道 不以刑制使物而以觀感化物者也
觀의 道가 형벌과 제재로써 물건을 부리지 않고, 보고 감동함으로써 물건을 교화함을 통합하여 말한 것이다.
神則無形者也 不見天之使四時 而四時不忒하고 不見聖人使百姓이나 而百姓自服也
神은 형체가 없는 것이니, 하늘이 四時를 부림을 보지 못하나 四時가 어긋나지 않고, 聖人이 백성을 부림을 보지 못하나 백성이 저절로 복종하는 것이다.
[疏]‘順而巽’至‘天下服矣’
經의 [順而巽]에서 [天下服矣]까지
○正義曰:順而和巽, 居中得正, 以觀於天下, 謂之觀也, 此釋觀卦之名.
○正義曰:순하고 和하고 공손하며 中에 거하고 正位를 얻어서 천하에 보여주는 것을 觀이라 이르니, 이는 觀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觀盥而不薦 有孚顒若 下觀而化’者, 釋有孚顒若之義. 本由在下觀效在上而變化, 故有孚顒若也.
[觀盥而不薦 有孚顒若 下觀而化] ‘孚信이 있어 엄숙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본래 아래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사람을 보고 본받아서 변화하였기 때문에 孚信이 있어 엄숙한 것이다.
‘觀天之神道 而四時不忒’者, 此盛名觀卦之美. 言觀盥與天之神道相合, 觀此天之神道, 而四時不有差忒.
[觀天之神道 而四時不忒] 이는 觀卦의 아름다움을 성대하게 형용한 것이다. 세수하는 것을 봄이 하늘의 神道와 서로 부합함을 말하였으니, 이 하늘의 神道를 보면 四時가 어긋남이 있지 않은 것이다.
神道者, 微妙无方, 理不可知, 目不可見, 不知所以然而然, 謂之神道, 而四時之節氣見矣.
神道란 미묘하고 방소가 없어서 이치를 알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어서 所以然을 알지 못하고 그러한 것이니, 이것을 神道라 이르는데 四時의 절기는 볼 수 있다.
豈見天之所爲, 不知從何而來邪. 蓋四時流行, 不有差忒, 故云“觀天之神道, 而四時不忒”也.
어찌 하늘이 하는 바를 보겠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四時가 유행하여 어긋남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늘의 神道를 보면 四時가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者, 此明聖人用此天之神道, 以觀設敎而天下服矣.
[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 이는 聖人이 이 하늘의 神道를 사용하여 觀으로써 가르침을 베풀어 천하가 복종함을 밝힌 것이다.
天旣不言而行, 不爲而成, 聖人法則天之神道, 本身自行善, 垂化於人,
하늘이 이미 말하지 않으면서 행하고, 하지 않으면서 이루는데, 성인이 하늘의 神道를 본받아서 자기 몸이 스스로 善을 행하여 남에게 교화를 드리운다.
不假言語敎戒, 不須威刑恐逼, 在下自然觀化服從, 故云“天下服矣.”
그리하여 언어와 가르침과 경계를 빌리지 않고, 위엄과 형벌로 공갈하고 핍박함을 쓰지 않고도 아래에 있는 자가 자연히 보고 감화되고 복종한다. 그러므로 “천하가 복종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風行地上이니 先王以省方觀民하여 設敎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바람이 지상으로 다니는 것이 觀卦이니, 先王이 보고서 사방을 살펴보아 백성의 풍속을 관찰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疏]正義曰:‘風行地上’者, 風主號令行于地上, 猶如先王設敎在於民上, 故云“風行地上觀”也.
正義曰:[風行地上] 바람은 號令이 지상으로 다님을 주장하니, 先王이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백성의 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바람이 지상으로 다니는 것이 觀卦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先王以省方觀民 設敎’者, 以省視萬方, 觀看民之風俗, 以設於敎, 非諸侯以下之所爲, 故云“先王”也.
[先王以省方觀民 設敎] 萬方을 살펴보아 백성들의 풍속을 관찰해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니, 이는 제후 이하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先王”이라 한 것이다.
初六 童觀이니 小人无咎 君子吝이리라
初六은 童子의 봄이니, 小人은 허물이 없고 君子는 부끄러우리라.
[注]處於觀하여 而最遠하고 體於陰柔하여 不能自進하여 无所鑒見이라 故曰 童觀이라
觀의 때에 처하여 조정의 아름다움에서 가장 멀고 體가 陰柔여서 능히 스스로 나아가지 못하여 보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童子의 봄[童觀]”이라 한 것이다.
順而已 無所能爲하니 小人之道也 故曰 小人无咎라하니 君子處大觀之時하여 而爲童觀이면 不亦鄙乎
나아감이 순종할 뿐이요 능히 하는 바가 없으니, 小人의 道이다. 그러므로 “小人은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君子가 大觀의 때에 처하여 童觀이 된다면 비루하지 않겠는가.
[疏]正義曰:‘童觀’者, 處於觀時, 而最遠朝廷之美觀, 是柔弱不能自進, 无所鑒見, 唯如童稚之子而觀之.
正義曰:[童觀] 觀의 때에 처하여 조정의 아름다운 볼것에서 가장 머니, 이는 柔弱하여 스스로 나아가지 못해서 보는 바가 없는 것이요, 오직 어린 童子가 보는 것과 같다.
爲‘小人无咎 君子吝’者, 爲此觀看, 趣在順從而已, 無所能爲, 於小人行之, 纔得无咎, 若君子行之, 則鄙吝也.
[小人无咎 君子吝] 이 봄은 나아감이 순종함에 있을 뿐이요 능히 하는 바가 없으니, 소인에 있어서 이것을 행하면 겨우 허물이 없을 수 있고, 만약 군자가 이것을 행하면 鄙吝한 것이다.
象曰 初六童觀 小人道也
〈象傳〉에 말하였다. “初六의 童觀은 小人의 道이다.”
六二 闚觀이니 利女貞하니라
六二는 엿봄이니, 여자의 貞함이 이롭다.
[注]處在於內하여 無所鑒見하고 體性柔弱하여 從順而已 猶有應焉하여 不爲全蒙이나 所見者狹이라 曰 闚觀이라
처함이 안(內卦)에 있어서 보는 바가 없고 體의 성질이 柔弱하여 순함을 따를 뿐이다. 그래도 應이 있어서 완전히 몽매함은 되지 않으나 보는 바가 좁다. 그러므로 “엿봄”이라 한 것이다.
居觀得位하여 柔順寡見이라 曰 利女貞이라하니 婦人之道也
觀에 거하고 正位를 얻어서 유순하여 조금 봄이 있다. 그러므로 “여자의 貞함이 이롭다.”라고 하였으니, 부인의 道이다.
處大觀之時하여 居中得位호되 不能大觀廣鑒하고 闚觀而已 誠可醜也
大觀의 때에 처하여 中에 거하고 正位를 얻었으나 크게 보고 널리 살피지 못하고 엿볼 뿐이니, 진실로 추하다 할 만하다.
[疏]‘象曰’至‘利女貞’
經의 [象曰]에서 [利女貞]까지
○正義曰:‘闚觀 利女貞’者, 旣是陰爻, 又處在卦內, 性又柔弱, 唯闚竊而觀, 如此之事, 唯利女之所貞, 非丈夫所爲之事也.
○正義曰:[闚觀 利女貞] 이미 陰爻이고 또 처함이 內卦에 있고 성질이 또 柔弱하여 오직 엿보고 훔쳐볼 뿐이니, 이와 같은 일은 오직 여자의 貞한 바가 이롭고 丈夫가 할 일이 아니다.
[疏]○注‘處在於內’至‘誠可醜也’
○注의 [處在於內]에서 [誠可醜也]까지
○正義曰:‘猶有應焉 不爲全蒙’者, 六二以柔弱在內, 猶有九五剛陽與之爲應, 則爲有闚竊, 不爲全蒙.
○正義曰:[猶有應焉 不爲全蒙] 六二가 柔弱함으로서 안(內卦)에 있으나 그래도 九五의 剛陽이 자기와 더불어 應이 되니, 이는 엿보고 훔쳐봄이 있어서 완전히 몽매함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童蒙, 如初六也, 故能闚而外觀.
童蒙은 初六과 같으므로 능히 엿보아 밖을 보는 것이다. 이 童觀과 闚觀은 모두 去聲으로 읽는다.
象曰 闚觀女貞 亦可醜也
〈象傳〉에 말하였다. “‘엿봄이니 여자의 貞함이 이로움’은 또한 추하다 할 만한 것이다.”
六三 觀我生하여 進退하니라
六三은 나의 냄(행동이나 道)을 살펴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간다.
[注]居下體之極하고 處二卦之際하여 近不比尊하고 遠不童觀하니 觀風者也 居此時也하여 可以觀我生進退也
下體의 極에 거하고 두 卦의 사이에 처하여 가까이는 尊位에 붙지 않고 멀리는 童子의 봄을 하지 않으니, 풍속을 관찰하는 자이다. 이때에 거하여 나의 냄을 살펴보아서 나아가고 물러날 수 있는 것이다.
[疏]‘象曰’至‘進退’
經의 [象曰]에서 [進退]까지
○正義曰:‘觀我生進退’者, 我生, 我身所動出. 三居下體之極, 是有可進之時, 又居上體之下, 復是可退之地.
○正義曰:[觀我生進退] ‘我生’은 내 몸이 동하여 내는 것이다. 六三이 下體의 極에 거하였으니 이는 나아갈 수 있는 때요, 또 上體의 아래에 거하였으니 다시 물러갈 수 있는 자리이다.
遠則不爲童觀, 近則未爲觀國, 居在進退之處, 可以自觀我之動出也. 故時可則進, 時不可則退, 觀風相幾, 未失其道,
멀리는 童子의 봄을 하지 않고 가까이는 나라의 광채를 보지 못하여 거함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곳에 있어서 내가 동하여 냄을 스스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므로 때가 가하면 나아가고 때가 불가하면 물러나서 풍속을 보고 기회를 살펴서 그 道를 잃지 않는다.
故曰“觀我生進退”也. 道得名生者, 道是開通生利萬物, 故繫辭云“生生之謂易.” 是道爲生也.
그러므로 “나의 냄을 살펴보아서 나아가고 물러난다.”라고 한 것이다. 道를 ‘生’이라고 이름한 것은 道는 開通하여 만물을 낳고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繫辭傳〉에 이르기를 “낳고 낳는 것을 易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道가 生이 되는 것이다.
象曰 觀我生進退 未失道也
〈象傳〉에 말하였다. “‘나의 냄을 살펴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감’은 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注]處進退之時하여 以觀進退之幾하여 未失道也
正義曰:六三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때에 처하여 나아가고 물러나는 기회를 관찰해서 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六四 觀國之光이니 利用賓于王하니라
六四는 나라의 광채를 봄이니, 왕의 조정에 손님이 되는 것이 이롭다.
[注]居觀之時하여 最近至五하니 觀國之光者也 居近得位하여 明習國儀者也 曰 利用賓于王也라하니라
觀의 때에 거하여 至尊의 六五에 가장 가까우니, 나라의 광채를 보는 자이다. 가까운 곳에 거하고 正位를 얻어서 국가의 禮儀를 밝게 익힌 자이다. 그러므로 “왕의 조정에 손님이 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最近至五, 是觀國之光.
正義曰:至尊의 六五에 가장 가까우니, 이것이 “나라의 광채를 봄”이다.
‘利用賓于王’者, 居在親近, 而得其位, 明習國之禮儀, 故曰“利用賓于王庭”也.
[利用賓于王] 거함이 군주와 가까운 자리에 있고 正位를 얻어서 나라의 禮儀를 밝게 익힌다. 그러므로 “왕의 조정에 손님이 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觀國之光 尙賓也
〈象傳〉에 말하였다. “‘나라의 광채를 봄’은 손님이 됨을 숭상하는 것이다.”
[疏]正義曰:釋觀國之光義, 以居近至尊之道, 志意慕尙爲王賓也.
正義曰:‘나라의 광채를 봄’의 뜻을 해석하였으니, 거함이 至尊에 가까이 있는 道를 가지고 뜻이 왕의 손님이 됨을 사모하고 숭상하는 것이다.
九五 觀我生호되 君子 无咎리라
九五는 나의 냄을 살펴보되 君子의 풍속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居於尊位하여 爲觀之主하여 宣弘大化하여 光于四表하니 觀之極者也
尊位에 거하여 觀의 주체가 되어서 큰 교화를 베풀고 키워 四表에 빛나니, 봄이 지극한 자이다.
上之化下 猶風之靡 觀民之俗하여 以察己
위가 아래를 교화함은 바람이 풀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백성의 풍속을 관찰하여 자기의 道를 살펴보는 것이다.
百姓有罪一人하니 君子風著 己乃无咎 上爲觀主하니 將欲自觀이면 乃觀民也
백성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군주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니, 君子의 풍속이 드러나면 자기가 바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上은 觀의 주체가 되니, 장차 스스로 자신을 살펴보고자 하면 바로 백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疏]正義曰:九五居尊, 爲觀之主, 四海之內, 由我而觀, 而敎化善, 則天下有君子之風, 敎化不善, 則天下著小人之俗,
正義曰:九五가 尊位에 거하여 觀의 주체가 되었으니, 四海의 안이 나로 말미암아 보아서 교화가 좋으면 천하에 君子의 풍속이 있고, 교화가 좋지 못하면 천하에 小人의 풍속이 드러난다.
民以察我道, 有君子之風著, 則无咎也, 故曰“觀我生, 君子无咎”也.
그러므로 백성을 관찰하여 나의 道를 살펴보는 것이니, 군자의 풍속이 드러나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냄을 살펴보되 君子의 풍속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觀我生 觀民也
〈象傳〉에 말하였다. “‘나의 냄을 살펴봄’은 백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疏]正義曰:謂觀民以觀我, 故觀我卽觀民也.
正義曰:백성을 살펴보아 나를 관찰하므로 나를 살펴봄은 바로 백성을 살펴보는 것임을 말하였다.
上九 觀其生하되 君子 无咎리라
上九는 그 냄을 살펴보되 君子의 德이 있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觀我生 自觀其道也 觀其生 爲民所觀者也 不在於位하고 最處上極하여 高尙其志하여 爲天下所觀者也
나의 냄을 살펴봄은 스스로 그 道를 보는 것이요, 그 냄을 살펴봄은 백성이 우러러보는 바가 되는 것이다. 지위에 있지 않고 上의 極에 가장 높이 처하여 그 뜻을 높여서 천하가 우러러보는 바가 된 자이다.
處天下所觀之地하니 可不愼乎 君子德見하면 乃得无咎 猶動出也
천하가 우러러보는 자리에 처하였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君子의 德이 나타나면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生’은 동하여 냄과 같다.
[疏]‘上九’至‘无咎’
經의 [上九]에서 [无咎]까지
○正義曰:[觀其生] 上의 極에 가장 높이 처하여 그 뜻을 높이니, 生은 또한 道인바, 천하가 자기의 道를 살펴봄이 된다. 그러므로 “그 냄을 살펴본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无咎’者, 旣居天下可觀之地, 可不愼乎, 故君子謹愼, 乃得無咎也.
[君子无咎] 이미 천하가 볼 수 있는 자리에 거하였으면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군자가 조심하고 삼가면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注‘觀我生’至‘動出也’
注의 [觀我生]에서 [動出也]까지
○正義曰:‘生猶勸出’者, 或動或出, 是生長之義, 故云“生猶動出.”
○正義曰:[生猶勸出] 혹은 동하고 혹은 냄이 바로 生長의 뜻이다. 그러므로 “生은 동하여 냄과 같다.”라고 한 것이다.
六三‧九五皆云“觀我生”, 上九云“觀其生”, 此等云生, 皆爲動出, 故於卦總明之也.
六三과 九五에는 모두 “觀我生”이라 하였고 上九에 “觀其生”이라 하였으니, 여기서 똑같이 ‘生’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동하여 냄이 된다. 그러므로 卦의 끝 注에 총괄하여 밝힌 것이다.
象曰 觀其生 志未平也
〈象傳〉에 말하였다. “‘그 냄을 살펴봄’은 뜻이 화평하지 못한 것이다.”
[注]處異地하여 爲衆觀하여 不爲平易和光流通하니 志未平也
특이한 자리에 특별히 처하여 여러 사람의 우러러봄이 되어서 평이하지 않아 和光이 유통하지 않으니, 뜻이 화평하지 못한 것이다.
正義曰:‘그 냄을 살펴봄’의 뜻을 해석하였다. 특이한 자리에 특별히 처하여 여러 사람의 우러러보는 바가 되어서 평이하지 않아 和光이 유통하지 않으니, 뜻이 세속과 더불어 균평하지 못하다.
世無危懼之憂, 我有符同之慮, 故曰“志未平也.”
세상은 위태롭고 두려워하는 근심이 없고 나는 부합하여 함께하려는 생각이 있으므로, “뜻이 화평하지 못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孔子曰……吾不欲觀之矣 : ≪論語≫ 〈八佾〉에 보인다. 禘제사는 王者의 제사로, 시조의 所自出을 모시는 제사이다. 朱子는 孔子의 이 말씀을 “灌은 제사하는 초기에 鬱鬯 술을 사용하여 땅에 부어 神을 降臨하게 하는 것이다. 魯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이때를 당해서는 誠意가 아직 흩어지지 않아 그래도 볼 만한 것이 있었고, 이로부터 이후는 점차 게을러져서 볼 만한 것이 없었다. 魯나라의 禘제사는 禮가 아니니 孔子께서 본래 보고 싶어 하지 않으셨고, 이때에 이르러서는 失禮한 가운데 또 失禮를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탄식을 하신 것이다.[灌者 方祭之始 用鬱鬯之酒 灌地以降神也 魯之君臣 當此之時 誠意未散 猶有可觀 自此以後 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 蓋魯祭非禮 孔子本不欲觀 至此而失禮之中 又失禮焉 故發此歎也]”라고 해석하였다. 禘제사는 王者(天子)의 제사인데, 제후국인 魯나라에서 제사한 것은 참람한 행위이므로 禮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2 盡夫觀盛……容貌儼然也 : 王弼과 孔穎達은 卦辭를 “아랫사람들이 王者의 제사에서 세수하는 禮만 보고 제수를 올리는 禮는 보지 않으면, 교화되어 윗사람을 믿어서 엄숙한 용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程伊川 역시 ‘有孚顒若’을 백성들이 윗사람을 보고 교화되어 孚誠을 다하여 우러러 존경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盥而不薦’은 천하의 본보기가 되는 君子가 모든 행위를 할 때 제사에서 盥할 때처럼 精一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朱子는 ‘盥而不薦 有孚顒若’을 모두 점치는 자 자신에 해당하는 말로 보아 “깨끗함을 지극히 하고 가볍게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孚信이 마음속에 있어서 顒然히 우러를 만함을 말한 것이니, 점치는 자가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경계한 것이다.[言致其潔淸而不輕自用 則其孚信在中而顒然可仰 戒占者當如是也]”라고 하였다.
역주3 (盥)[時] : 저본에는 ‘盥’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時’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4 (德)[朝] : 저본에는 ‘德’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朝’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5 (巽)[趣] : 저본에는 ‘巽’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趣’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6 此童觀闚觀 皆讀爲去聲也 : 觀이 去聲일 경우에는 ‘눈여겨보다’, ‘보여주다’, 또는 ‘누대’나 ‘경관’의 의미이다.
역주7 (正義曰) : 저본에는 ‘正義曰’이 있으나, 岳本ㆍ錢本ㆍ宋本ㆍ古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阮刻本 참조]
역주8 (○)[三] : 저본에는 ‘○’으로 되어 있으나, 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9 (章)[草] : 저본에는 ‘章’으로 되어 있으나, 北京大本에 의거하여 ‘草’로 바로잡았다.
역주10 (之)[道] : 저본에는 ‘之’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宋本ㆍ古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道’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1 (于)[予] : 저본에는 ‘于’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予’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2 (則)[觀] : 저본에는 ‘則’으로 되어 있으나, 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觀’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3 觀其生者……故云觀其生也 : 王弼과 孔穎達은 ‘觀其生’을 ‘觀我生’과 구분하여, ‘觀其生’은 백성이 上九를 살펴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觀其生’ 역시 上九가 자신의 德業과 行爲를 관찰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朱子는 ‘觀我生’이라 하지 않고 ‘觀其生’이라고 한 이유에 대하여 “그 경계하는 말이 대략 九五와 같으나 다만 ‘我’를 ‘其’라고 하여 주인(九五)과 손님(上九)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이다.[其戒辭 略與五同 但以我爲其 小有主賓之異耳]”라고 하였다.
역주14 (主主)[末注] : 저본에는 ‘主主’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末注’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5 (將)[特] : 저본에는 ‘將’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ㆍ宋本ㆍ古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特’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6 以特處異地……志未與世俗均平 : 王弼과 孔穎達은 ‘志未平’을 上九가 윗자리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그 뜻이 均平하지 못함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上九가 비록 군주의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항상 戒懼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는바, 이때에 ‘平’은 平安의 뜻이 된다.

주역정의(2)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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