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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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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萃는 형통하니,
[注]聚乃通也
모여야 비로소 통한다.
[疏]正義曰:萃, 卦名也, 又萃聚也, 聚集之義也. 能招民聚物, 使物歸而聚己, 故名爲萃也.
正義曰:‘萃’는 卦의 이름이고 또 萃聚이니, 聚集(모임)의 뜻이다. 백성을 부르고 물건을 모아 물건으로 하여금 돌아와 자기에게 모이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름을 ‘萃’라 한 것이다.
[亨] 통함이다. 막혀서 통하지 못하면 모일 수가 없으니, 모이는 일은 반드시 그 道가 통한다. 그러므로 “萃는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王假有廟
王이 사당을 둠에 이른다.
[注]假 王以聚至有廟也
‘假’은 이름[至]이니, 왕이 모임으로써 사당을 둠에 이른 것이다.
[疏]正義曰:假, 至也. 天下崩離, 則民怨神怒, 雖復享祀, 與无廟同,
正義曰:‘假’은 이름이다. 천하가 무너지고 분열되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神이 노여워하니, 비록 다시 제사를 올리나 사당이 없는 것과 같은데,
왕이 ‘크게 모이는 때’에 이르면 효도하는 德이 마침내 밝아지니, 비로소 ‘사당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王이 사당을 둠에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利見大人하여하고 利貞하니라
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롭다.
[注]聚得大人이면 乃得通而利正也
大人을 모으면 마침내 통하고 바름이 이로울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聚而無主, 不散則亂, 惟有大德之人, 能弘正道, 乃得常通而利正, 故曰“利見大人, 亨, 利貞”也.
正義曰:모이기만 하고 주장하는 자가 없을 경우엔 흩어지지 않으면 亂을 일으키니, 오직 大德의 사람이 있어서 능히 正道를 넓혀야 비로소 항상 통하고 바름이 이로울 수 있다. 그러므로 “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用大牲이면하니
큰 희생을 사용하면 吉하니,
[注]全乎聚道하고 用大牲이면 乃吉也 聚道不全이어늘 而用大牲이면 神不福也
모이는 道를 온전히 하고 큰 희생을 쓰면 비로소 吉한 것이다. 모이는 道가 온전하지 못한데 큰 희생을 사용하면 神이 복을 내리지 않는다.
[疏]正義曰:大人爲王, 聚道乃全, 以此而用大牲, 神明降福, 故曰“用大牲, 吉”也.
正義曰:大人이 왕이 되어서 모이는 道가 마침내 온전하니, 이로써 큰 희생을 사용하면 神明이 복을 내린다. 그러므로 “큰 희생을 사용하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利有攸往하니라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疏]正義曰:人聚神祐, 何往不利. 故曰“利有攸往”也.
正義曰:사람이 모이고 神이 도우면 어디로 간들 이롭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萃 聚也 順以說하고 剛中而應이라 聚也
〈彖傳〉에 말하였다. “‘萃’는 모임이니, 순하고 기뻐하며 剛이 中에 있고 應한다. 그러므로 모이는 것이다.
[注]但順而說이면 則邪佞之道也 剛而違於中應이면 則强亢之德也 何由得聚리오
다만 순하고 기뻐하기만 하면 邪佞(간사하고 아첨함)의 道요, 剛하면서 中과 應을 어기면 强亢(강함이 지극함)의 德이니, 어떻게 모일 수 있겠는가.
順說而以剛爲主하고 主剛而履中하니 履中以應이라 得聚也
순하고 기뻐하면서 剛함을 위주로 하고, 剛함을 위주로 하면서 中을 밟고 있으니, 中을 밟고 應하므로 모일 수 있는 것이다.
[疏]‘彖曰’至‘故聚也’
經의 [彖曰]에서 [故聚也]까지
○正義曰:‘萃 聚’者, 訓萃名也.
○正義曰:[萃 聚] 萃卦의 이름을 訓한 것이다.
‘順以說 剛中而應 故聚’者, 此就二體及九五之爻, 釋所以能聚也.
[順以說 剛中而應 故聚] 이는 두 體와 九五의 爻를 가지고 능히 모일 수 있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若全用順說, 則邪佞之道興, 全用剛陽, 而違於中應, 則强亢之德著, 何由得聚.
만약 온전히 순함과 기뻐함만을 쓰면 邪佞의 道가 일어나고, 오로지 剛陽을 써서 中과 應을 어기면 强亢의 德이 드러나니, 어떻게 모일 수 있겠는가.
今順以說, 而剛爲主, 則非邪佞也, 應不失中, 則非偏亢也, 如此, 方能聚物, 故曰“順以說, 剛中而應, 故聚也.”
지금 순하고 기뻐하되 剛함을 위주로 하면 邪佞이 아니요, 應하되 中을 잃지 않으면 편벽된 높음이 아니니, 이와 같이 하여야 능히 물건을 모을 수 있다. 그러므로 “순하고 기뻐하며 剛이 中에 있고 應한다. 그러므로 모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王假有廟 致孝享也
‘왕이 사당을 둠에 이름’은 효도의 제향을 올림을 이루는 것이다.
[注]全聚라야 乃得致孝之享也
온전히 모여야 비로소 효도의 제향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享, 獻也. 聚道旣全, 可以至於有廟, 設祭祀而致孝享也.
正義曰:‘享’은 올림이다. 모이는 道가 이미 온전하면 사당을 둠에 이르러서 제사를 陳設하여 효도의 제향을 올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利見大人亨 聚以正也일새라
‘大人을 봄이 이로워 형통함’은 모이기를 바름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注]大人 體中正者也 通衆以正이면 聚乃得全也
大人은 中正을 體行하는 자이니, 여러 사람을 통하기를 바름으로써 하면 모임이 마침내 온전하게 된다.
[疏]正義曰:釋聚所以利見大人, 乃得通而利正者, 良由大人有中正之德,
正義曰:‘모임에 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워서 마침내 통하고 바름이 이로울 수 있는 까닭은 진실로 大人이 中正한 德을 소유하였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니,
能以正道通而化之, 然後聚道得全, 故曰“聚以正也.”
正道로써 통하여 교화한 뒤에야 모이는 道가 온전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바름으로써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用大牲吉 利有攸往 順天命也일새라
‘큰 희생을 사용하면 길하고 가는 바를 둠이 이로움’은 天命을 순히 하기 때문이다.
[注]順以說而不損剛 順天命者也 天德剛而不違中하니 順天하여 而以剛爲主也
순하고 기뻐하되 剛함을 덜지 않음은 天命을 순히 하는 자이다. 하늘의 德은 剛하면서 中을 어기지 않으니, 하늘을 순히 하고 기뻐하면서 剛함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
[疏]正義曰:天之爲德, 剛不違中, 今順以說而以剛爲主, 是順天命也. 動順天命, 可以享於神明, 无往不利, 所以得用大牲吉.
正義曰:하늘의 德은 剛하면서 中을 어기지 않는데, 지금 순하고 기뻐하면서 剛함을 위주로 하니, 이는 天命을 순히 하는 것이다. 動할 때마다 天命을 순히 하면 神明에게 제향을 올려서 가는 곳마다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큰 희생을 사용하면 길함’을 얻는 것이다.
‘利有攸往’者, 只爲順天命也.
[利有攸往] 다만 天命을 순히 하기 때문이다.
觀其所聚하면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그 모이는 바를 보면 天地 萬物의 실정을 알 수 있다.”
[注]하니 情同而後乃聚하고 氣合而後乃群이라
方은 類로써 모이고 物은 무리로써 나누어지니, 情이 같은 뒤에야 비로소 모이고 기운이 합한 뒤에야 비로소 무리가 되는 것이다.
[疏]正義曰:此廣明萃義而歎美之也. 凡物所以得聚者, 由情同也, 情志若乖, 无由得聚, 故觀其所聚, 則天地萬物之情, 可見矣.
正義曰:이는 萃卦의 뜻을 넓혀 밝히고 歎美한 것이다. 모든 물건이 모일 수 있는 것은 情이 같기 때문이니, 情과 뜻이 만약 어긋나면 모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모이는 바를 보면 天地 萬物의 실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象曰 澤上於地 萃 君子以除戎器하여 戒不虞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못이 땅으로 올라감이 萃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兵器를 수리하여 예측하지 못한 비상사태를 경계한다.”
[注]聚而无防이면 則衆心生이라
모이기만 하고 방비가 없으면 여러 사람들의 〈나쁜〉 마음이 생겨난다.
[疏]正義曰:澤上於地, 則水潦聚, 故曰“澤上於地, 萃”也.
正義曰:못이 땅으로 올라가면 빗물이 모인다. 그러므로 “못이 땅으로 올라감이 萃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除’者, 治也. 人旣聚會, 不可无防備. 故君子於此之時, 修治戎器, 以戒備不虞也.
[除] 다스림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방비가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때에 병기를 수리하여 예측하지 못한 비상사태를 경계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初六 有孚不終하여 乃亂乃萃하리니 若號一握爲笑하면 勿恤하여 往无咎리라
初六은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하여 무리를 혼란하게 할 것이니, 만일 이름하되 한 줌의 작은 것으로 하고 〈나약하고 용렬하게〉 웃으면 근심하지 않아서 감에 허물이 없으리라.
[注]有應在四而三承之하여 心懷嫌疑 有孚不終也 不能守道以結至好하고 迷務競爭이라 乃亂乃萃也
初六의 應이 九四에 있는데 六三이 九四를 받들어서 初六이 마음에 혐의를 품으므로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하는 것이요, 능히 道를 지켜서 지극히 친한 사람을 맺지 못하고 혼미하여 경쟁에 힘쓰므로 무리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다.
一握者 小之貌也 爲笑者 懦劣之貌也 己爲正配하여 三以近寵하니 若安夫卑退하고 謙以自牧이면 則勿恤而往无咎也
‘한 줌’은 작은 모양이요, ‘웃음’은 나약하고 용렬한 모양이다. 자기가 바른 배필이 되었는데 六三이 가까이 있으므로 〈九四에게〉 총애를 받으니, 〈初六이〉 만약 낮추고 물러감을 편안히 여겨 겸손함으로써 자처하면 근심하지 않아서 감에 허물이 없을 것이다.
[疏]‘初六有孚’至‘往无咎’
經의 [初六有孚]에서 [往无咎]까지
○正義曰:‘有孚不終 乃亂乃萃’者, 初六有應在四, 而三承之, 萃聚之時, 貴於近合,
○正義曰:[有孚不終 乃亂乃萃] 初六의 應이 九四에 있는데 六三이 九四를 받드니, 모이는 때에는 가까이 합함을 귀하게 여긴다.
見三承四, 疑四與三, 始以應相信,
〈初六은〉 六三이 九四를 받드는 것을 보고 九四와 六三을 의심하여 처음에는 正應으로 서로 믿다가 종말에는 딴 뜻으로 서로 막힌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旣心懷嫌疑, 則情意迷亂, 奔馳而行, 萃不以禮, 故曰“乃亂乃萃.”
이미 마음에 혐의를 품으면 情意가 혼미하고 어지러워 치달려 가서 禮로써 모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리를 혼란하게 할 것이다.”라 한 것이다.
‘一握’者, 小之貌也, 自比一握之間, 言至小也.
[一握] 작은 모양이니, 스스로 한 줌의 사이에 比함은 지극히 작음을 말한 것이다.
爲笑者, 非嚴毅之容, 言懦劣也. 己爲正配, 三以近寵,
[爲笑] 엄숙하고 굳센 용모가 아니니, 나약하고 용렬함을 말한 것이다. 자기가 바른 배필이 되었는데 六三이 가까이 있으므로 九四에게 총애를 받으니,
만약 스스로 이름하되 한 줌의 작은 것에 比하여 그 겸손한 용모를 지키고 남과 다투지 않으면 六三을 근심하지 아니하여 감에 반드시 합함을 얻어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이름하되 한 줌의 작은 것으로 하고 웃으면 근심하지 않아서 감에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乃亂乃萃 其志亂也
〈象傳〉에 말하였다. “‘무리를 혼란하게 함’은 그 뜻이 혼란한 것이다.”
[疏]正義曰:‘其志亂’者, 只爲疑四與三, 故志意迷亂也.
正義曰:[其志亂] 다만 九四와 六三을 의심하기 때문에 뜻이 혼미하고 어지러운 것이다.
六二하면 吉无咎하리니 孚乃利用禴이니라
六二는 이끌어주면 吉하여 허물이 없으리니, 믿음이 있어서 마침내 禴제사를 씀이 이롭다.
[注]居萃之時하여 體柔當位하고 處坤之中하여 己獨處正하여 與衆相殊하여 異操而聚하니
모이는 때에 거하여 體가 柔이면서 자리에 합당하고 坤의 가운데에 처하여 자기만 홀로 正位에 처해서 남들과 서로 달라 지조가 다르면서 모이니,
民之多僻하여 獨正者危어늘 能變體以遠於害 必見引然後 乃吉而无咎也
백성들은 邪辟함이 많아 홀로 바른 자가 위태로운데 능히 體를 바꾸어 해로움을 멀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끌어줌을 본 뒤에야 비로소 吉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祭名也 四時祭之省者也 居聚之時하여 處於中正하여 而行以忠信하여
‘禴’은 殷나라의 봄 제사 이름이니, 四時의 제사 중에 가장 간략한 것이다. 모일 때에 거하여 中正에 처해서 忠信을 행한다.
以省薄으로 薦於鬼神也
그러므로 간략하고 薄한 제수를 가지고 鬼神에게 올릴 수 있는 것이다.
[疏]‘六二’至‘利用禴’
經의 [六二]에서 [利用禴]까지
○正義曰:‘引 吉无咎’者, 萃之爲體, 貴相從就, 聚道乃成, 今六二以陰居陰, 復在坤體, 志於靜退,
○正義曰:[引 吉无咎] 萃의 體는 서로 따르고 찾아감을 귀하게 여겨서 모이는 道가 마침내 이루어지는데, 지금 六二가 陰으로서 陰의 자리에 있고 또 坤의 體에 있어서 뜻이 고요히 물러감에 있으니,
則是守中未變, 不欲相從者也. 乖衆違時, 則致危害, 故須牽引, 乃得吉而无咎也, 故曰“引, 吉无咎.”
이는 中을 지키고 변치 아니하여 서로 따르려고 하지 않는 자이다. 무리와 乖離되고 때를 어기면 위태로움과 해로움을 부른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이끌어주어야 비로소 吉하고 허물이 없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이끌어주면 吉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孚乃利用禴’者, 禴, 殷(者)[春]祭之名也, 四時之祭最薄者也.
[孚乃利用禴] ‘禴’은 殷나라 봄 제사의 이름이니, 四時의 제사 중에 가장 薄한 것이다.
雖乖於衆, 志須牽引, 然居中得正, 忠信而行, 故可以省薄祭於鬼神也, 故曰“孚乃利用禴.”
비록 무리와 乖離되어서 뜻이 모름지기 끌려가야 하나 中에 거하고 正을 얻어서 忠信으로 행한다. 그러므로 간략하고 薄한 것을 가지고 鬼神에게 제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서 마침내 禴제사를 씀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引吉无咎 中未變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이끌어주면 吉하여 허물이 없음’은 中을 변치 않기 때문이다.”
正義曰:[中未變也] 모름지기 이끌어주어야 비로소 吉한 이유는 진실로 中에 거하여 변치 않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六三 萃如嗟如하여 无攸利하니하여 无咎어니와 小吝하니라
六三은 모여서 한탄하여 이로운 바가 없으니, 가서 허물이 없으나 약간 부끄럽다.
[注]履非其位하여 以比於四하고 四亦失位하여 不正相聚하니 相聚不正이면 患所生也 干人之應이면 害所起也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면서 九四와 가까이 있고 九四 또한 正位를 잃어서 바르지 못한 것이 서로 모였으니, 서로 모인 것이 바르지 못하면 근심이 생기고, 남의 應을 범하면 害가 일어난다.
萃如嗟如하여 无攸利也 上六亦无應而獨立하고 處極而憂危하여 思援而求朋하여 巽以待物者也
그러므로 모여서 한탄하여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上六 또한 應이 없어 홀로 서 있고 極에 처하여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겨서 援助를 생각하고 벗을 구하여 공손히 남을 기다리는 자이니,
與其萃於不正으론 不若之於同志 可以往而无咎也 二陰相合하니 猶不若一陰一陽之이라 有小吝也
不正한 자에게 모이기보다는 同志(같은 陰)에게 가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가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두 陰이 서로 합하였으니, 오히려 한 陰과 한 陽이 應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다.
[疏]‘六三萃如嗟如’至‘小吝’
經의 [六三萃如嗟如]에서 [小吝]까지
○正義曰:居萃之時, 履非其位, 以比於四, 四亦失位, 不正相聚, 相聚不正,
○正義曰:萃의 때에 거하여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면서 九四와 가까이 있고 九四 또한 正位를 잃어서 바르지 못한 것이 서로 모였으니,
서로 모인 것이 바르지 못하면 근심이 생기고, 남의 應을 범하면 害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모여서 한탄하여 이로운 바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往 无咎 小吝’者, 上六亦无應而獨立, 處極而憂危, 思援而求朋, 巽以待物者也, 與其萃於不正, 不若之於同志, 故可往而无咎.
[往 无咎 小吝] 上六 또한 應이 없어 홀로 서 있고 極에 처하여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겨서 援助를 생각하고 벗을 구하여 공손히 남을 기다리는 자이니, 不正한 자에게 모이기보다는 同志에게 가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가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上六이 陰이고 자기도 陰이니, 두 陰이 서로 합함은 오히려 한 陰과 한 陽이 應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다.
象曰 往无咎 上巽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가서 허물이 없음’은 위가 공손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以上體柔巽, 以求其朋, 故三可以往而无咎也.
正義曰:上六의 體가 柔順하고 공손하여 그 벗을 구하므로 六三이 가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九四 大吉이라야 无咎리라
九四는 크게 吉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
[注]履非其位而下據三陰하여 得其所據하고 失其所處하니 處聚之時하여 不正而據 必大吉하여 立夫大功然後 无咎也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고 아래로 세 陰을 점거해서 점거할 바를 얻고 거처할 바를 잃었으니, 모이는 때에 처하여 바르지 못하면서 점거하였으므로 반드시 크게 吉하여 큰 功을 세운 뒤에야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以陽處陰, 明履非其位, 又據三陰, 得其所據, 失其所處, 處聚之時, 不正而據, 是其凶也.
正義曰:陽으로서 陰의 자리에 처함은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님을 밝힌 것이고, 또 아래로 세 陰을 점거하여 점거할 바를 얻고 거처할 바를 잃었으니, 모이는 때에 처하여 바르지 못하면서 점거함은 바로 흉한 것이다.
若以萃之時, 立夫大功, 獲其大吉, 乃得无咎, 故曰“大吉, 无咎.”
만약 모이는 때에 큰 功을 세워서 큰 吉함을 얻으면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크게 吉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大吉无咎 位不當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크게 吉하여야 허물이 없음’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位不當’者, 謂以陽居陰也.
正義曰:[位不當] 陽으로서 陰의 자리에 거함을 말한 것이다.
九五 萃有位하여 无咎하나 匪孚하니 元永貞이면 悔亡이리라
九五는 모임에 지위가 있어서 허물이 없으나 믿지 않으니, 元하고 길이 貞하면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注]處聚之時하여 最得盛位 曰 萃有位也 四專而據하여 己德不行하여 自守而已 故曰 无咎匪孚
모이는 때에 처하여 가장 성한 지위를 얻었으므로 “모임에 지위가 있다.”라 한 것이다. 九四가 전적으로 〈아래의 세 陰을〉 점거하여 자기(九五)의 德이 행해지지 못해서 스스로 지킬 뿐이므로 “허물이 없으나 믿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夫修仁守正이면 久必悔消 曰 元永貞이면 悔亡이라하니라
仁을 닦고 正을 지키면 오래됨에 반드시 뉘우침이 사라질 것이므로 “元하고 길이 貞하면 뉘우침이 없어지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九五’至‘悔亡’
經의 [九五]에서 [悔亡]까지
○正義曰:九五處聚之時, 最得盛位, 故曰“萃有位”也. 旣得盛位, 所以无咎.
○正義曰:九五가 모이는 때에 처하여 가장 성한 지위를 얻었다. 그러므로 “모임에 지위가 있다.”라고 한 것이다. 이미 성한 지위를 얻었으니, 이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匪孚] 진실로 九四가 전적으로 〈아래의 세 陰을〉 점거하였기 때문에 자신(九五)의 德化가 행해지지 못해서 信이 남에게 믿어지지 아니하여 스스로 지킬 뿐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으나 믿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則其悔可消, 故曰“元永貞, 悔亡.”
만약 능히 큰 德을 닦아서 오랫동안 바름을 행하면 후회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元하고 길이 貞하면 뉘우침이 없어지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萃有位 志未光也
〈象傳〉에 말하였다. “‘모임에 지위가 있음’은 뜻이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正義曰:[志未光也] 비록 성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나 德이 행해지지 못하다가 오랜 뒤에야 비로소 뉘우침이 없어지니, 지금 때에는 뜻이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上六 齎咨涕洟하면 无咎리라
上六은 한탄하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處聚之時하여 居於上極하니 五非所乘이요 內无應援이라 處上獨立하고 近遠无助하니 危莫甚焉이라
모이는 때에 처하여 上의 極에 거하였으니, 九五는 〈上六이〉 탈 바가 아니고 안에 應援이 없다. 위에 처하여 홀로 서 있고 가까운 곳과 먼 곳에 도와주는 자가 없으니, 위태로움이 이보다 더 심함이 없다.
齎咨 嗟歎之辭也 若能知危之至하여 懼禍之深하고 憂病之甚하여 至于涕洟하여 不敢自安이면 亦衆所不害 得无咎也
‘齎咨’는 한탄하는 말이다. 만약 위태로움이 이를 줄을 알고서 禍를 두려워하기를 깊게 하고 病을 염려하기를 심하게 하여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림에 이르러서 감히 스스로 편안하지 않을 수 있으면 또한 여러 사람들이 해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齎咨’者, 居萃之時, 最處上極, 內又无應,
正義曰:[齎咨] 모이는 때에 거하여 上의 가장 極에 처하였으니, 九五는 〈上六이〉 탈[乘] 바가 아니고 안에 또 應이 없다.
處上獨立, 无其援助, 危亡之甚, 居不獲安, 故齎咨而嗟歎也.
위에 처하여 홀로 서 있고 원조하는 이가 없어서 危亡함이 심하여 거함에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齎咨하여 한탄하는 것이다.
만약 危亡함이 있을 줄을 알고서 害를 두려워하기를 깊게 하고 위태로움을 염려하기를 심하게 하여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림에 이르러서 이와 같이 거처함에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면 비로소 무리가 해치지 않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눈에서 나오는 것을 ‘涕’라 하고, 코에서 나오는 것을 ‘洟’라 한다.
象曰 齎咨涕洟 未安上也
〈象傳〉에 말하였다. “‘한탄하고 눈물 콧물을 흘림’은 위에 있음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疏]正義曰:‘未安上’者, 未敢安居其上所乘也.
正義曰:[未安上] 〈上六이〉 그(九五) 위에 타고 있음을 감히 편안하게 여겨 거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亨者……故云萃亨 :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따르면, 馬融과 鄭玄 등의 本에는 ‘亨’자가 없는데 王弼과 王肅의 本에만 ‘亨’자가 있다고 한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程伊川과 朱子는 모두 이 ‘亨’자를 衍文으로 보았는바, 程伊川은 〈彖傳〉에서 이 ‘亨’자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역주2 (聚)[也] : 저본에는 ‘聚’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근거하여 ‘也’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3 假至也……故曰王假有廟 : 程伊川은 王弼ㆍ孔穎達과 마찬가지로 ‘假’을 ‘至’로 訓하되 ‘이르다’와 ‘지극하다’의 두 가지 뜻을 모두 적용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王者가 천하를 모으는 道가 사당을 둠에 이르면 지극한 것이다.……천하에 人心을 모으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총괄하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나, 지극히 큰 것은 宗廟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王者가 천하를 모으는 道가 사당을 둠에 이르면 萃道가 지극한 것이다.[王者萃聚天下之道 至於有廟 極也……天下萃合人心總攝衆志之道 非一 其至大莫過於宗廟 故王者萃天下之道 至於有廟 則萃道之至也]”
반면 朱子는 ‘至’를 ‘감’으로 訓하고 ‘有廟’를 宗廟로 보았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王者가 종묘의 가운데에 이름을 말한 것이니, 王者가 祭祀를 점칠 때에 吉한 占이다. ≪禮記≫ 〈祭義〉에 ‘公이 太廟에 이르렀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廟는 祖ㆍ考의 精神을 모은 곳이요, 또 사람이 반드시 자기의 정신을 모으면 祠堂에 이르러 祖ㆍ考를 받들 수 있는 것이다.[言王者可以至乎宗廟之中 王者卜祭之吉占也 祭義曰 公假于太廟是也 廟 所以聚祖考之精神 又人必能聚己之精神 則可以至于廟而承祖考也]”
역주4 (則)[而] : 저본에는 ‘則’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에 의거하여 ‘而’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5 方以類聚 物以群分 : 〈繫辭傳 上〉에 보이는바, 朱子는 ≪本義≫에서 “方은 事情이 향하는 바를 이르니, 사물의 善ㆍ惡이 각기 類로써 나누어짐을 말한 것이다.[方 謂事情所向 言事物善惡各以類分]”라고 하였다.
역주6 (中)[正] : 저본에는 ‘中’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正’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7 (不)[末] : 저본에는 ‘不’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末’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8 初六有應在四……故曰有孚不終也 : ‘有孚不終’을 王弼과 孔穎達은 ‘初六이 正應인 九四를 믿다가 六三이 九四에게 총애를 받는 것을 보고 둘을 의심하여 끝내는 九四와 뜻이 어긋남’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初六은 九四와 正應이 되니, 본래 믿음이 있어 서로 따르는 자이다. 그러나 萃의 때를 당하여 세 陰이 모여 있어서 柔가 正을 지키는 절개가 없으니, 만일 正應을 버리고 同類를 따르면 이는 믿음이 있으나 끝마치지 못하는 것이다.[初與四爲正應 本有孚以相從者也 然當萃時 三陰聚處 柔无守正之節 若捨正應而從其類 乃有孚而不終也]”라고 하였는바, 初六이 ‘終’하지 못하는 이유를 ‘同類(六二ㆍ六三)들에게 미혹되어 그들을 따르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역주9 己爲正配……往无咎也 : ‘若號一握爲笑 勿恤 往无咎’를 王弼과 孔穎達은 ‘初六이 스스로 자신을 한 줌에 비유하고 또 나약한 용모(웃음)를 지키면 六三과 다투지 않고 六三을 근심하지 않아서 九四에게 나아감에 허물이 없음’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이를 ‘初六이 九四를 부르면 여러 陰들이 비웃을 것이지만 이를 근심하지 말고 九四를 따르면 허물이 없을 것’의 의미로 보았는바, 朱子의 해석도 이와 같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初六이 만일 正道를 지켜 同類들을 따르지 않고 부르짖어 正應을 구하면 一握이 비웃을 것이다. 一握은 俗語에 一團이니, 여럿이 비웃음을 이른다. 만일 이것을 근심하지 말고 가서 剛陽의 正應을 따르면 허물이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小人의 무리에 들어갈 것이다.[若守正不從 號呼以求正應 則一握笑之矣 一握 俗語一團也 謂衆以爲笑也 若能勿恤而往從剛陽之正應 則无過咎 不然則入小人之群矣]”
역주10 (矣)[未] : 저본에는 ‘矣’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未’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1 (者)[春] : 저본에는 ‘者’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春’으로 바로잡았다. 아래의 疏도 같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2 (致之)[故可] : 저본에는 ‘致之’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故可’로 바로잡았다. 北京大 整理本은 ‘致之’를 그대로 두고 위의 ‘忠信’에 붙여 句를 떼었으며, ≪周易集解纂疏≫에는 ‘致之’ 두 글자가 없다.(阮元의 〈校勘記〉 및 北京大 整理本 참조)
역주13 中未變也者……良由居中未變 : 孔穎達은 六二의 象辭를 ‘六二가 홀로 中을 지키고서 무리를 따르지 않으므로 이끌어주어야 무리를 따르게 되어 吉无咎가 될 수 있음’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즉 中을 지키지 않고 무리를 따라가야 吉无咎가 된다고 본 것이다.
程伊川은 반대로 六二가 中을 지켜야 吉无咎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하였는바, 六二가 中正의 德을 지켜 九五와 만나야 허물이 없다고 본 것이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萃의 때는 모임을 얻음을 吉함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九四가 上ㆍ下의 모임을 얻음이 된다. 六二는 九五와 비록 正應이나 달리 처하여 간격이 있으니, 마땅히 모여야 하나 합하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서로 이끌어 모이면 吉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는 中正한 德이 있어 대번에 고치고 변함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니, 변하면 서로 이끌어주지 않을 것이다.[萃之時 以得聚爲吉 故九四爲得上下之萃 二與五雖正應 然異處有間 乃當萃而未合者也 故能相引而萃 則吉而无咎 以其有中正之德 未遽至改變也 變則不相引矣]”
역주14 (至)[應] : 저본에는 ‘至’로 되어 있으나, 閩本ㆍ監本ㆍ毛本에 의거하여 ‘應’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5 居萃之時……无攸利也 : 王弼과 孔穎達은 ‘萃如嗟如’를 ‘六三이 九四와 서로 모인 것이 바르게 모인 것이 아니므로 한탄함’의 의미로 보았다. 그러나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六三이 六二와 九四에게 버림을 받고 그들과 모이지 못하므로 한탄함’의 의미로 보았는바, 이 해석을 따르면 ‘萃如嗟如’는 “모이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탄식한다.”라고 번역된다.
역주16 但以上六是陰……故有小吝也 : 王弼과 孔穎達은 ‘小吝’의 이유를 ‘陰과 陽이 서로 응하지 못하고 두 陰이 서로 합하였기 때문’으로 보았는바, 易에서는 서로 다른 것(陰과 陽)의 합을 바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 程伊川과 朱子는 ‘小吝’의 이유를 ‘六三이 처음에 六二와 九四를 구하다가 그 모임을 얻지 못한 뒤에 上六에게 갔기 때문’으로 보았다.
역주17 (不)[下] : 저본에는 ‘不’로 되어 있으나, 注에 의거하여 ‘下’로 바로잡았다.
역주18 匪孚者……匪孚 : ‘匪孚’를 王弼과 孔穎達은 ‘아래의 세 陰을 모두 九四가 점거하여 그들이 九五를 믿어주지 않음’의 의미로 보았다.
그러나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가정의 말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陽剛으로 尊位에 거하여 그 지위에 걸맞으니 이는 지위를 소유함이 되고, 中正의 道를 얻었으니 이는 過咎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데도 믿지 아니하여 돌아오지 않는 자가 있거든 마땅히 스스로 반성하여 元永貞의 德을 닦으면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어 뉘우침이 없을 것이다.[以陽剛 居尊位 稱其位矣 爲有其位矣 得中正之道 无過咎也 如是而有不信而未歸者 則當自反 以修其元永貞之德 則无思不服而悔亡矣]”
역주19 若能修夫大德 久行其正 : 經文의 ‘元’을 王弼은 ‘仁을 닦음’으로 해석하고, 孔穎達은 ‘大德을 닦음’으로 해석하였으며, ‘永貞’을 王弼은 ‘바름을 지킴’으로 해석하고, 孔穎達은 ‘오랫동안 바름을 행함’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元ㆍ永ㆍ貞의 세 가지 德’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元永貞은 君主의 德이니, 百姓들이 돌아오는 바이다. 그러므로 天下를 친히 하는 道와 天下를 모으는 道가 모두 이 세 가지에 있는 것이다.……元은 우두머리이고 으뜸이니, 君主의 德이 庶物 중에 첫 번째로 나와 여러 생민에게 君長이 되어 尊大한 뜻이 있고 주관ㆍ통솔하는 뜻이 있다. 또 恒永하고 貞固하면 神明을 통하고 四海에 빛나서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믿지 않는 자가 없어서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元永貞者 君之德 民所歸也 故比天下之道 與萃天下之道 皆在此三者……元 首也 長也 爲君德 首出庶物 君長群生 有尊大之義焉 有主統之義焉 而又恒永貞固 則通於神明 光於四海 无思不服矣 乃无匪孚而其悔亡也]”
역주20 志未光也者……志意未光大也 : 程伊川은 “〈象傳〉은 爻辭의 윗구만을 거론했다.[象擧爻上句]”라고 하였다.
역주21 五非所乘 : 九五는 陽爻이기 때문에 陰爻인 上六이 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陽爻가 陰爻의 위에 있는 것을 履(陽爻의 관점에서) 혹은 承(陰爻의 관점에서)이라 하며, 陰爻가 陽爻의 위에 있는 것을 乘(陰爻의 관점에서)이라고 하는데, 履와 承은 吉한 것이 되고 乘은 不吉한 것이 된다.
역주22 若能知有危亡……故无咎矣 : 王弼과 孔穎達은 ‘涕洟’를 ‘上六이 자신의 위태로움을 알고서 불안해하여 눈물과 콧물을 흘림’의 의미로 보아 ‘无咎’를 ‘이렇게 두려워하므로 남이 해치지 않아 허물이 없음’의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朱子의 해석도 이와 유사한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萃卦의 終에 처하여 陰柔로 지위가 없어서 모이기를 구하나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점치는 자에게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處萃之終 陰柔无位 求萃不得 故戒占者必如此而後可以无咎也]”
반면 程伊川은 ‘无咎’를 ‘上六의 곤궁함이 自招한 것이므로 허물할 데가 없음’의 의미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절교하는 것은 자신이 自取함에서 연유하니, 또 장차 누구를 허물하겠는가. 사람들에게 증오와 절교를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隕穫(뜻을 상실하여 슬퍼하고 불안함)하여 한탄하고 눈물 흘림에 이르니, 참으로 小人의 情狀이다.[人之絶之 由己自取 又將誰咎 爲人惡絶 不知所爲 則隕穫而至嗟涕 眞小人之情狀也]”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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