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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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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旣濟 亨小하고 利貞하니 初吉終亂이리라
旣濟는 작은 것도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우니, 처음은 吉하나 종말에는 그쳐 어지러우리라.
[疏]正義曰:‘旣濟 亨小 利貞 初吉終亂’者, 濟者, 濟渡之名, 旣者, 皆盡之稱, 萬事皆濟, 故以旣濟爲名.
正義曰:[旣濟 亨小 利貞 初吉終亂] ‘濟’는 물을 건넘[濟渡]의 이름이고, ‘旣’는 ‘모두 다’의 칭호이니, 萬事가 모두 이루어졌기[濟] 때문에 ‘旣濟’로 卦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미 萬事가 모두 이루어졌는데 만약 작은 것이 통하지 못하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旣濟는 작은 것도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작은 것도 오히려 형통하면 하물며 큰 것에 있어서랴.
則大小剛柔, 各當其位, 皆得其所. 當此之時, 非正不利, 故曰“利貞”也. 但人皆不能, ,
그렇다면 大와 小, 剛과 柔가 각각 자기 자리에 합당하고 모두 그 처소를 얻은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바름이 아니면 이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모두 ‘편안함에 거하여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終을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함’을 하지 못한다.
故戒以今日旣濟之初, 雖皆獲吉, 若不, 至於終極, 則危亂及之, 故曰“初吉終亂”也.
그러므로 오늘 旣濟의 처음에 비록 모두 吉함을 얻었으나 만약 德을 進益하고 業을 닦지 아니하여 終極에 이르면 위태로움과 혼란이 미친다고 경계하였다. 그러므로 “처음은 吉하나 종말에는 그쳐 어지러우리라.”라고 한 것이다.
彖曰 旣濟亨 小者亨也
〈彖傳〉에 말하였다. “‘旣濟가 형통함’은 작은 것도 형통한 것이니,
[注]旣濟者 以皆濟爲義者也 小者不遺라야 乃爲皆濟 擧小者하여 以明旣濟也
‘旣濟’는 ‘모두 이룸’을 뜻으로 삼는 것이니, 작은 것을 빠트리지 아니하여야 비로소 ‘모두 이룸’이 된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들어서 旣濟를 밝힌 것이다.
[疏]正義曰:此釋卦名德, 旣濟之亨, 必小者皆亨也. 但擧小者, 則大者可知, 所以爲旣濟也.
正義曰:이는 卦의 이름과 德을 해석한 것이니, 旣濟의 형통함은 반드시 작은 것도 모두 형통한 것이다. 다만 작은 것을 들면 큰 것을 알 수 있으니, 이 때문에 〈卦 이름을〉 ‘旣濟’라 한 것이다.
모두 충족하여 글을 지으면 마땅히 〈‘旣濟亨’ 아래에〉 다시 한 ‘小’자가 있어야 하나 다만 이미 經文을 중첩하였으므로 대략 충족하여 나타내었다. 이 때문에 생략을 따른 것이다.
利貞 剛柔正而位當也일새라
‘貞함이 이로움’은 剛과 柔가 바르고 자리가 마땅하기 때문이다.
[注]剛柔正而位當이면 則邪不可以行矣 唯正이라야 乃利貞也
剛과 柔가 바르고 자리가 마땅하면 간사함이 행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직 바루어야 비로소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疏]正義曰: 剛柔皆正, 則邪不可行, 故惟正, 乃利貞也.
正義曰:이는 六二ㆍ九三ㆍ六四ㆍ九五가 모두 다 正位를 얻음을 가지고 ‘利貞’을 해석한 것이다. 剛과 柔가 모두 바르면 간사함이 행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직 바루어야 비로소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初吉 柔得中也일새요 終止則亂 其道窮也
‘처음에 吉함’은 柔가 中을 얻었기 때문이요, 종말에는 그쳐 어지러움은 그 道가 窮極한 것이다.”
[注]柔得中이면 則小者亨也 柔不得中이면 則小者未亨이니 小者未亨이면 雖剛得正이나 則爲未旣濟也
柔가 中을 얻으면 작은 것도 형통하고, 柔가 中을 얻지 못하면 작은 것이 형통하지 못하니, 작은 것이 형통하지 못하면 비록 剛이 正位를 얻었으나 旣濟가 되지 못한다.
旣濟之要 在柔得中也 以旣濟爲安者 道極无進하여 終唯有亂이라 曰 初吉終亂이라하니
그러므로 旣濟의 요점은 柔가 中을 얻는 데에 있는 것이다. 旣濟를 편안함으로 삼는 것은, 道가 窮極하여 進益함이 없어서 종말에만 어지러움이 있다. 그러므로 “처음은 吉하고 종말에는 어지럽다.”라고 하였으니,
終亂 不爲自亂이요 由止故亂이라 曰 終止則亂也라하니라
‘종말에 어지러움’은 스스로 亂을 하는 것이 아니요, 그치기 때문에 어지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에는 그쳐 어지럽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初吉 柔得中’者, 此就六二以柔居中, 釋初吉也.
正義曰:[初吉 柔得中] 이는 六二가 柔로서 中에 거함을 가지고 ‘처음에 吉함’을 해석한 것이다.
以柔小尙得其中, 則剛大之理, 皆獲其濟. 物无不濟, 所以爲吉, 故曰“初吉”也.
柔하고 작은 것도 오히려 中을 얻었으면 剛하고 큰 이치는 모두 그 이루어짐을 얻는다. 물건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吉함이 된다. 그러므로 “처음에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終止則亂 其道窮’者, 此正釋戒. 若能進修不止, 則旣濟无終, 旣濟終亂, 由止故亂.
[終止則亂 其道窮] 이는 바로 경계하는 말을 해석한 것이다. 만약 德을 進益하고 業을 닦음을 그치지 않으면 旣濟가 종말이 없으니, 旣濟가 종말에 어지러움은 그치기 때문에 어지러운 것이다.
종말에 그쳐 어지러우면 旣濟의 道가 窮極하다. 그러므로 “종말에 그쳐 어지러움은 그 道가 궁극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水在火上 旣濟 君子以思患而豫防之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물이 불 위에 있는 것이 旣濟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患難을 생각하여 미리 방비한다.”
[注]存不忘亡이니 旣濟 不忘未濟也
보존될 때에 망함을 잊지 않으니, 旣濟에 未濟를 잊지 않는 것이다.
[疏]正義曰:水在火上, 炊爨之象, 飮食以之而成, 性命以之而濟,
正義曰:물이 불 위에 있음은 불을 때어 밥을 짓는 象이니, 음식이 이로써 이루어지고 생명이 이로써 구제된다.
故曰“水在火上, 旣濟”也. 但旣濟之道, 初吉終亂, 故君子思其後患, 而豫防之.
그러므로 “물이 불 위에 있는 것이 旣濟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다만 旣濟의 道가 처음은 吉하나 종말에는 어지럽다. 그러므로 君子가 뒤에 있을 患難을 생각하여 미리 방비하는 것이다.
初九 曳其輪하며 濡其尾 无咎
初九는 수레바퀴를 끌고 꼬리를 적시나 허물이 없다.
[注]最處旣濟之初하여 始濟者也 始濟 未涉於燥 輪曳而尾濡也
旣濟의 가장 초기에 처하여 처음 건너가는 자이니, 처음 건너서 아직 마른 땅에 건너가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수레바퀴가 끌리고 꼬리가 젖는 것이다.
雖未造易 心无顧戀하여 志棄難者也 其爲義也 无所咎也
비록 아직 평탄한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였으나 마음에 돌아보고 연연함이 없어서 뜻에 어려움을 버리는 자이니, 그 의리에 허물될 바가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初九處旣濟之初, 體剛居, 是始欲濟渡也.
正義曰:初九가 旣濟의 초기에 처하여 體가 剛하고 아래에 거하였으니, 이는 처음 물을 건너고자 하는 것이다.
처음 건너서 아직 마른 땅에 건너가지 못했으므로 수레바퀴가 끌리고 꼬리가 젖는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끌고 꼬리를 적신다.”라고 한 것이다. 다만 뜻이 患難을 버림에 있어서 비록 다시 수레바퀴를 끌고 꼬리를 적시나 그 의리에 허물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曳其輪 義无咎也
〈象傳〉에 말하였다. “‘수레바퀴를 끎’은 의리상 허물이 없는 것이다.”
六二 婦喪其茀이니 勿逐이라도 七日得하리라
六二는 부인이 자기의 머리꾸미개를 잃었으니, 쫓아가지 않더라도 7일 만에 얻으리라.
[注]居中履正하고 處文明之盛하여 而應乎五하니 陰之光盛者也 然居初ㆍ三之間하여 而近不相得하여 上不承三하고 下不比初
中에 거하고 正位를 밟고 있으며 文明의 盛함에 처하여 九五와 應하니, 陰으로서 광채가 성한 자이다. 그러나 初九와 九三의 사이에 거하여 가까이 있으면서 뜻이 서로 맞지 못해서 위로는 九三을 받들지 않고 아래로는 初九와 친하지 않다.
夫以光盛之陰으로 處於二陽之間하여 近而不相得이면 能无見侵乎 曰 喪其茀也라하니라
광채가 성한 陰으로서 두 陽의 사이에 처하여 가까이 있으면서 뜻이 서로 맞지 않으면 침탈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머리꾸미개를 잃었다.”라고 한 것이다.
稱婦者 以明自有夫어늘 而它人侵之也 首飾也
‘부인’이라 칭한 것은 본래 남편이 있는데 타인이 침탈함을 밝힌 것이다. ‘茀’은 머리꾸미개이다.
夫以中道 執乎貞正이어늘 而見侵者 衆之所助也 處旣濟之時하여 不容邪道者也
中道로써 貞正을 지키고 있는데 남에게 침탈을 당하는 자는 여러 사람이 도와주는 바요, 旣濟의 때에 처하여 간사한 道를 용납하지 않는 자이다.
時旣明峻하고 衆又助之하여 竊之者逃竄而莫之歸矣 量斯勢也하면 不過七日 不須己逐이라도 而自得也
때가 이미 밝음이 높고 여러 사람이 또 도와주어서 도둑질한 자가 도망가서 돌아오지 못한다. 이 형세를 헤아려보면 불과 7일 만에 자기가 굳이 쫓아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얻을 것이다.
[疏]‘六二’至‘七日得’
經의 [六二]에서 [七日得]까지
○正義曰:‘婦喪其茀 勿逐 七日得’者, 茀者, 婦人之首飾也. 六二居中履正, 處文明之盛, 而應乎五, 陰之光盛者也.
○正義曰:[婦喪其茀 勿逐 七日得] ‘茀’은 부인의 머리꾸미개이다. 六二가 中에 거하고 正位를 밟고 있으며 文明의 盛함에 처하여 九五와 應하니, 陰으로서 광채가 성한 자이다.
그러나 初九와 九三의 사이에 거하여 가까이 있으면서 뜻이 서로 맞지 못하니, 광채가 성한 陰으로서 두 陽의 사이에 처하여 가까이 있으면서 뜻이 서로 맞지 못하면 침탈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인이 자기의 머리꾸미개를 잃었다.”라고 한 것이다.
稱婦者, 以明自有夫, 而他人侵之也. 夫以中道執乎貞正, 而見侵者, 物之所助也, 處旣濟之時, 不容邪道者也.
‘부인’이라고 칭한 것은 본래 남편이 있는데 타인이 침탈함을 밝힌 것이다. 中道로써 貞正을 지키고 있는데 남에게 침탈을 당하는 자는 사람들이 도와주는 바요, 旣濟의 때에 처하여 간사한 道를 용납하지 않는 자이다.
時旣明峻, 衆又助之, 竊之者逃竄而莫之歸矣.
때가 이미 밝음이 높고 여러 사람이 또 도와주어서 도둑질한 자가 도망하여 돌아오지 못한다. 이 형세를 헤아려보면 불과 7일 만에 자기가 굳이 쫓아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쫓아가지 않아도 7일 만에 얻는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七日得 以中道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7일 만에 얻음’은 中道를 지키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以中道’者, 釋不須追逐而自得者, 以執守中道故也.
殷 高宗(武丁)殷 高宗(武丁)
正義曰:[以中道] 굳이 쫓아가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 까닭은 中道를 잡아 지키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九三 高宗伐鬼方하여 三年克之하니 小人勿用이니라
九三은 高宗이 鬼方을 정벌하여 3년 만에 이기니, 小人은 쓰지 말아야 한다.
[注]處旣濟之時하고 居文明之終하여 履得其位하니 是居衰末而能濟者
旣濟의 때에 처하고 文明의 끝에 거하여 밟은 것이 正位를 얻었으니, 이는 衰末의 시대에 거하여 능히 이루는 자이다.
高宗伐鬼方하여 三年乃克也 君子處之故 能興也 小人居之 遂喪邦也
高宗이 鬼方을 정벌하여 3년 만에 비로소 이긴 것은, 君子가 여기에 처했기 때문에 능히 일으킨 것이니, 小人이 여기에 거하면 마침내 나라를 잃는다.
[疏]正義曰:‘高宗伐鬼方 三年克之’者,
正義曰:[高宗伐鬼方 三年克之] ‘高宗’은 殷王 武丁의 칭호이다.
九三이 旣濟의 때에 처하고 文明의 끝에 거하여 밟은 것이 正位를 얻었으니, 이는 衰末의 시대에 거하여 능히 이루는 자이다. 高宗이 鬼方을 정벌하여 殷나라의 道(政治)를 中興하였으니, 일이 이 爻와 같으므로 취하여 비유한 것이다.
高宗德實文明, 而勢甚衰憊, 不能卽勝, 三年乃克, 故曰“高宗伐鬼方, 三年克之”也.
高宗의 德이 실로 文明하였으나 세력이 심히 쇠하고 고단하여 즉시 승리하지 못하고 3년 만에 비로소 이겼다. 그러므로 “高宗이 鬼方을 정벌하여 3년 만에 이겼다.”라고 한 것이다.
‘小人勿用’者, 勢旣衰弱, 君子處之, 能建功立德, 故興而復之, 小人居之, 日就危亂, 必喪邦也, 故曰“小人勿用.”
[小人勿用] 세력이 이미 쇠약하니, 君子가 여기에 처하면 功을 세우고 德을 수립할 수 있으므로 중흥하여 회복할 수 있지만, 小人이 여기에 거하면 날로 위태로움과 혼란함에 나아가서 반드시 나라를 잃는다. 그러므로 “소인은 쓰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三年克之 憊也
〈象傳〉에 말하였다. “‘3년 만에 이김’은 고단한 것이다.”
[疏]正義曰:‘憊也’者, 以衰憊之故, 故三年乃克之.
正義曰:[憊也] 쇠하고 고단하기 때문에 3년 만에 비로소 이긴 것이다.
六四 繻有衣袽하고 終日戒로다
六四는 〈배가 물이 새어〉 젖는데 헌옷이 있고 종일토록 경계하도다.
[注]繻 宜曰濡 衣袽 所以塞舟漏也 履得其正이로되 而近不與三ㆍ五相得하니
‘繻’는 마땅히 ‘濡’가 되어야 하고, ‘헌옷[衣袽]’은 배에 물이 새는 것을 막는 것이다. 밟은 것이 正位를 얻었으나 가까이 九三ㆍ九五와 뜻이 서로 맞지 못하니,
夫有隙之棄舟로되 而得濟者 有衣袽也일새요 隣於不親이로되 而得全者 終日戒也일새라
〈물이 새는〉 틈이 있어 버려야 할 배이나 건너갈 수 있는 것은 헌옷이 있기 때문이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이웃이 되었으나 온전함을 얻는 것은 종일토록 경계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繻有衣袽 終日戒’者, 王注云“繻, 宜曰濡,
正義曰:[繻有衣袽 終日戒] 王輔嗣(王弼)의 注에 “‘繻’는 마땅히 ‘濡’가 되어야 하고, ‘헌옷[衣袽]’은 배에 물이 새는 것을 막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六四處旣濟之時, 履得其位, 而近不與三ㆍ五相得, 如在舟而漏矣.
六四가 旣濟의 때에 처하여 밟은 것이 正位를 얻었으나 가까이 九三ㆍ九五와 뜻이 서로 맞지 못하니, 마치 배에 있으면서 물이 새는 것과 같다.
而舟漏則濡濕, 所以得濟者, 有衣袽也. 隣於不親而得全者, 終日戒也, 故曰“繻有衣袽, 終日戒”也.
배가 물이 새면 옷이 젖으나 물을 건널 수 있는 것은 헌옷이 있기 때문이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이웃이 되었으나 온전함을 얻는 것은 종일토록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가 물이 새어〉 젖는데 헌옷이 있고 종일토록 경계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終日戒 有所疑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종일토록 경계함’은 의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疏]正義曰:‘有所疑’者, 釋所以終日戒, 以不與三ㆍ五相得, 懼其侵克, 有所疑故也.
正義曰:[有所疑] ‘종일토록 경계함’의 이유를 해석한 것이니, 九三ㆍ九五와 뜻이 서로 맞지 못하여 그들이 침탈하고 공격할까 두려워해서 의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九五 東隣殺牛 不如西隣之禴祭 實受其福이로다
九五는 동쪽 이웃집에서 소를 잡아 祭祀함이 서쪽 이웃집의 禴제사에 실제로 그 福을 받음만 못하다.
[注]牛 祭之盛者也 祭之薄者也 居旣濟之時하여 而處尊位하여 物皆盛矣하니 將何爲焉
‘소’는 祭物 중에 盛한 것이요, ‘禴’은 제사 중에 薄한 것이다. 旣濟의 때에 거하여 높은 지위에 처해서 물건이 모두 풍성하니, 장차 무엇을 하겠는가.
其所務者 祭祀而已 祭祀之盛 莫盛修德이라 沼沚之毛 蘋蘩之菜 可羞於鬼神이라
힘써야 할 것은 제사뿐이니, 제사의 盛함은 德을 닦는 것보다 더 盛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연못과 저수지의 물풀과, 마름과 다북쑥의 채소도 귀신에게 올릴 수 있다.
이라 是以 東隣殺牛 不如西隣之禴祭 實受其福也니라
그러므로 기장과 피가 향기로운 것이 아니요, 밝은 德이 향기로운 것이다. 이 때문에 동쪽 이웃집에서 소를 잡아 祭祀함이 서쪽 이웃집의 禴제사에 실제로 그 福을 받음만 못한 것이다.
[疏]‘九五東隣’至‘受其福’
經의 [九五東隣]에서 [受其福]까지
○正義曰:牛, 祭之盛者也. 禴, 殷春祭之名, 祭之薄者也. 九五居旣濟之時, 而處尊位, 物旣濟矣, 將何爲焉.
○正義曰:‘소’는 제물 중에 盛한 것이다. ‘禴’은 殷나라 봄 제사의 이름이니, 제사 중에 薄한 것이다. 九五가 旣濟의 때에 거하여 높은 지위에 처해서 물건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장차 무엇을 하겠는가.
其所務者, 祭祀而已, 祭祀之盛, 莫盛修德. 九五履正居中, 動不爲妄, 修德者也.
힘써야 할 것은 제사뿐이니, 제사의 盛함은 德을 닦는 것보다 더 盛한 것이 없다. 九五가 正位를 밟고 中에 거해서 動함에 망령된 짓을 하지 않으니, 德을 닦는 자이다.
苟能修德, 雖薄可饗. 假有東隣不能修德, 雖復殺牛至盛, 不爲鬼神歆饗,
진실로 능히 德을 닦는다면 비록 祭需가 薄하더라도 제향할 수 있다. 가령 동쪽 이웃에서 德을 닦지 못했으면 비록 다시 소를 잡아 제수가 지극히 풍성하더라도 귀신이 흠향하지 않으니,
이는 ‘우리 서쪽 이웃의 禴제사가 비록 薄하나 능히 德을 닦기 때문에 神明이 福을 내리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동쪽 이웃집에서 소를 잡아 祭祀함이 서쪽 이웃집의 禴제사에 실제로 그 福을 받음만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沼沚之毛’至‘鬼神’
○注의 [沼沚之毛]에서 [鬼神]까지
○正義曰:[沼沚之毛 蘋蘩之菜 可羞於鬼神] 모두 ≪春秋左氏傳≫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象曰 東隣殺牛 不如西隣之時也
〈象傳〉에 말하였다. “동쪽 이웃집에서 소를 잡아 제사함이 서쪽 이웃집에서 때에 맞게 제사하는 것만 못하니,
[注]在於合時 不在於豐也
때에 합당함에 달려 있고, 제수의 풍성함에 달려 있지 않은 것이다.
[疏]正義曰:‘不如西隣之時’者, , 能修德致敬, 合於祭祀之時, 雖薄降福, 故曰“時也.”
正義曰:[不如西隣之時] 神明은 德을 흠향하니, 능히 德을 닦고 공경을 지극히 하여 제사의 때에 합당하면 비록 제수가 薄하더라도 福을 내린다. 그러므로 “때에 맞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在於合時’
○注의 [在於合時]
○正義曰:‘在於合時’者, 言周王廟中, 群臣助祭, 並皆威儀肅敬, 甚得其時, 此合時之義, 亦當如彼也.
○正義曰:[在於合時] ≪詩經≫에 “威儀가 매우 때에 알맞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周王의 사당 가운데에 여러 신하들이 제사를 도우면서 모두 威儀가 엄숙하고 공경스러워 심히 그 때에 맞음을 말한 것이니, 여기의 ‘때에 합당하다.’는 뜻도 마땅히 ≪詩經≫과 같은 것이다.
實受其福 吉大來也
‘실제로 그 福을 받음’은 吉함이 크게 오는 것이다.”
[疏]正義曰:‘吉大來’者, 非惟當身, 福流後世.
正義曰:[吉大來]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요 福이 후세에까지 흐르는 것이다.
上六 濡其首니라
上六은 머리를 적시니 위태롭다.
[注]處旣濟之極하여 旣濟道窮이면 則之於未濟 之於未濟 則首先犯焉이라
旣濟의 極에 처하여 旣濟의 道가 窮極하면 未濟로 가고, 未濟로 가면 머리가 먼저 犯한다.
不已 則遇於難이라 濡其首也 將沒不久하니 危莫先焉이라
지나치게 나아가고 그치지 않으면 患難을 만나므로 머리를 적시는 것이다. 장차 침몰할 날이 오래지 않으리니, 위태로움이 이보다 앞서는 것이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上六處旣濟之極, 則反於未濟, 若反於未濟, 則首先犯焉.
正義曰:上六이 旣濟의 極에 처하였으니 未濟로 돌아가고, 만약 未濟로 돌아가면 머리가 먼저 犯한다.
若進而不已, 必遇於難, 故濡其首也. 旣被濡首, 將沒不久, 危莫先焉, 故曰“濡其首, 厲”也.
만약 나아가고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患難을 만나므로 머리를 적시는 것이다. 이미 머리가 적셔지면 장차 침몰할 날이 오래지 않으리니, 위태로움이 이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시니 위태롭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濡其首厲 何可久也리오
〈象傳〉에 말하였다. “머리가 적셔져 위태로우니, 어찌 長久할 수 있겠는가.”
[疏]正義曰:‘何可久’者, 首旣被濡, 身將陷沒, 何可久長者也.
正義曰:[何可久] 머리가 이미 적셔지면 몸이 장차 빠지고 침몰될 것이니, 어찌 長久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旣萬事皆濟……亨小也 : 王弼과 孔穎達은 ‘亨小’를 ‘작은 것도 형통함’의 의미로 해석하였는데, 이는 旣濟의 때에는 모든 것이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보았기 때문인바, 이는 아래 〈彖傳〉의 ‘小者亨也’의 해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旣濟의 때에도 아직 형통하지 못함이 있다.’고 보았는데, 다만 程伊川은 經文의 ‘亨小’를 그대로 두고 이를 ‘작은 것이 형통함’으로 해석하였고, 朱子는 “亨小는 小亨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여, 經文을 ‘조금 형통하다’로 해석하였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旣濟의 때에 큰 것은 이미 亨通하였으나 작은 것은 아직 亨通할 것이 있다. 비록 旣濟의 때라도 조금 亨通하지 못한 것이 없지 못하니, ‘小’자가 아래에 있는 것은 말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다. 만약 小亨이라고 말하면 亨通함이 작음이 된다.[旣濟之時 大者旣已亨矣 小者尙有亨也 雖旣濟之時 不能无小未亨也 小字在下 語當然也 若言小亨 則爲亨之小也]” 즉, 작은 것은 아직 형통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어서 앞으로 형통할 일이 있으므로 이렇게 말했다고 본 것이다.
역주2 居安思危 : 이 말은 ≪春秋左氏傳≫ 襄公 11년조에, “≪書經≫에 이르기를 ‘편안함에 거하여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하였으니, 생각을 하면 대비가 있고, 대비가 있으면 患難이 일어나지 않는다.[書曰 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라고 보이는데, 杜預의 注에 “이것은 逸書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 愼終如始 : ≪道德經≫에, “사람들이 종사할 적에 항상 거의 성공할 단계에서 실패한다. 終을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한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라고 보인다.
역주4 進德修業 : 乾卦 〈文言傳〉에, “君子는 德을 進益하고 業을 닦으니, 忠信함은 德을 進益하는 것이요, 말을 닦고 성실함을 세움은 業을 쌓는 것이다.[君子進德修業 忠信所以進德也 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라고 보인다.
역주5 具足爲文……故從省也 : 經文 그대로 ‘旣濟亨小’라고 쓰지 않고 ‘旣濟亨’이라고 줄여 쓴 것에 대한 설명이다. 朱子는 “濟 아래에 ‘小’자가 빠진 듯하다.[濟下疑脫小字]”라고 하였다.
역주6 此就二三四五並皆得正 以釋利貞也 : 陰爻가 陰位에 거하고 陽爻가 陽位에 거함이 ‘正位를 얻음’이 되는바, 旣濟卦는 初九부터 上六까지 모두 正位를 얻었다. 다만 王弼과 孔穎達은 初爻와 上爻에는 陰陽의 定位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六二부터 九五까지만 언급한 것이다.
역주7 終止則亂……其道窮也 : 王弼과 孔穎達은 ‘終止則亂’을 ‘進德修業하는 일을 그치면 종말에 어지러워짐’의 의미로 보고, ‘其道窮也’를 ‘종말에 그쳐 어지러워지면 旣濟의 道가 窮極해짐’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終止則亂’을 ‘終에 이르기 전에 멈추지 못하고 終에서 멈추면 어지러워짐’의 의미로 보고, ‘其道窮也’를 ‘終에 멈추면 어지러워지는 이유는 終에는 그 道가 窮極하기 때문임’의 의미로 보았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天下의 일은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나서 일정한 이치가 없다. 濟의 終에 나아가지 않고 멈추면 떳떳하지 못한 멈춤이어서 衰亂이 이르게 되니, 그 道가 이미 궁극한 것이다. 九五의 재질은 不善한 것이 아니나 때가 極에 이르고 道가 궁하니, 이치에 반드시 변해야 한다. 聖人이 이에 이르면 어찌해야 하는가? 오직 聖人은 궁극하지 않을 때에 변통하여 極에 이르지 않게 하니, 堯ㆍ舜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終이 있고 혼란함이 없었던 것이다.[天下之事 不進則退 无一定之理 濟之終 不進而止矣 无常止也 衰亂至矣 蓋其道已窮極也 九五之才 非不善也 時極道窮 理當必變也 聖人至此 奈何 曰唯聖人爲能通其變於未窮 不使至於極也 堯舜是也 故有終而无亂]”
역주8 (中)[下] : 저본에는 ‘中’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ㆍ宋本에 의거하여 ‘下’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9 初九處旣濟之初……故云无咎 : 王弼과 孔穎達은 ‘曳其輪 濡其尾’를 ‘처음 물을 건너서 아직 뭍으로 건너가지 못한 象’으로 보고, ‘无咎’를 ‘아직 물을 완전히 건너가지 못했으나 患難을 버리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의리상 허물이 없음’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曳其輪 濡其尾’를 ‘전진하지 않는 象’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初九는 陽으로서 아래에 거하여 위로 六四에 應하고 또 火의 體이니, 그 나아가려는 뜻이 예리하다. 그러나 때가 이미 이루어졌는데도 나아감을 그치지 않으면 뉘우침과 허물에 미친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뒤로〉 끌고 꼬리를 적셔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수레바퀴는 굴러가는 것이니, 거꾸로 끌어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짐승(여우)은 물을 건널 때에 반드시 꼬리를 드니, 꼬리를 적시면 건너가지 못한다. 旣濟의 초기를 당하여 그 나아감을 그치면 이에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그칠 줄 모르면 허물에 이른다.[初以陽居下 上應於四 又火體 其進之志銳也 然時旣濟矣 進不已則及於悔咎 故曳其輪 濡其尾 乃得无咎 輪 所以行 倒曳之 使不進也 獸之涉水 必揭其尾 濡其尾則不能濟 方旣濟之初 能止其進 乃得无咎 不知已則至於咎也]”
朱子의 ≪本義≫는 다음과 같다. “수레바퀴는 아래에 있고 꼬리는 뒤에 있으니, 初의 象이다. 수레바퀴를 〈뒤로〉 끌면 수레가 전진하지 못하고 꼬리를 적시면 여우가 건너가지 못한다. 旣濟의 초기에 삼가고 경계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无咎의 道이니, 점치는 자가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輪 在下 尾 在後 初之象也 曳輪則車不前 濡尾則狐不濟 旣濟之初 謹戒如是 无咎之道 占者如是 則无咎矣]”
역주10 婦喪其茀……故曰婦喪其茀 : 王弼과 孔穎達은 ‘茀’을 ‘부인의 머리꾸미개’로 해석하였으나, 程伊川은 이를 ‘부인의 얼굴가리개’로 보아 “茀은 부인이 문을 나갈 때에 스스로 가리는 것이니, 가리개를 잃으면 갈 수가 없다.[茀 婦人出門以自蔽者也 喪其茀 則不可行矣]”라 하였고, 朱子는 이를 ‘부인의 수레가리개’로 보아 “茀은 부인의 수레의 가리개이니, 행할 바를 잃음을 말한 것이다.[茀 婦車之蔽 言失其所以行也]”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喪其茀’이 ‘군주에게 등용되지 못하여 자신의 道를 행하지 못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喪其茀’하게 되는 이유를 ‘이미 이루어진 시대에는 군주가 아래에 있는 賢才를 등용해 쓰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二는 文明中正한 德으로써 위로 九五의 剛陽中正한 君主에게 應하니, 마땅히 그 뜻을 행할 것이다. 그러나 九五가 이미 尊位를 얻고 때가 이미 旣濟여서 다시 나아가 할 일이 없으니, 〈군주가〉 아래에 있는 賢才에 대하여 어찌 구하여 쓰려는 뜻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六二가 그 행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이미 이루고서 사람을 등용한 자가 드무니, 唐 太宗처럼 諫言을 받아들인 사람도 오히려 끝에는 게을러졌으니, 하물며 그보다 아래인 자에 있어서랴. 이러한 때에는 九五의 剛中이 도리어 中滿(마음속에 자만함)이 되고 坎과 離가 서로 어그러짐이 된다.[二以文明中正之德 上應九五剛陽中正之君 宜得行其志也 然五旣得尊位 時已旣濟 无復進而有爲矣 則於在下賢才 豈有求用之意 故二不得遂其行也 自古旣濟而能用人者鮮矣 以唐太宗之用言 尙怠於終 況其下者乎 於斯時也 則剛中反爲中滿 坎離乃爲相戾矣]”
역주11 量斯勢也……七日得 : ‘七日得’에 대하여 程伊川은 卦가 딴 卦로 변하는 것으로 보아, ‘때가 변함’으로 풀이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卦에는 여섯 자리가 있는데 일곱이면 변하니, 7일에 얻는다는 것은 때가 변함을 말한 것이다. 비록 윗사람에게 쓰이지 않으나 中正의 道가 끝내 폐해질 이치가 없으니, 지금에 행하지 못하면 반드시 다른 때에 행해질 것이니, 聖人의 勸戒하심이 깊도다.[卦有六位 七則變矣 七日得 謂時變也 雖不爲上所用 中正之道 无終廢之理 不得行於今 必行於異時也 聖人之勸戒深矣]”
역주12 高宗者 殷王武丁之號也 : 高宗은 殷王 武丁의 廟號이다. 武丁은 名宰相 傅說을 얻어 盤庚이 별세한 이후 쇠약해진 殷나라를 中興시켰다.
역주13 高宗伐鬼方……故取譬焉 : 樓宇烈은 이것이 殷 高宗 武丁이 西北쪽 부족의 鬼方을 정벌한 고사를 가리킨다고 하고, 이 내용이 ≪竹書紀年≫에 실려 있는데, 淸代 고증학자들과 근래의 학자들은 ≪竹書紀年≫의 이 기록이 ≪詩經≫의 〈商頌〉편과 ≪周易≫의 이 爻辭와 함께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하였다. ≪王弼集校釋≫(華正書局, 1983) 529쪽 참조.
역주14 衣袽 所以塞舟漏者也 : 衣袽에 대하여 모두 분명한 해석이 없고 諺解에도 衣袽를 하나로 묶어서 해석하였으며, 李鼎祚의 ≪周易集解≫에는 虞翻의 說을 인용하여 “袽는 敗衣(헌옷)이다.” 하였으므로 衣袽를 ‘헌옷’으로 번역하였으나, ‘衣’를 헌옷으로, ‘袽’를 ‘헌솜’으로 보아도 無理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주15 黍稷非馨 明德惟馨 : 黍稷은 기장과 피로, 대표적인 祭需이다. ≪書經≫ 〈君陳〉에 “지극한 정치는 향기로워 神明을 감동시키니, 기장과 피가 향기로운 것이 아니요, 밝은 德이 향기로운 것이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馨 明德惟馨]”라고 보인다. 이 말은, 군주가 밝은 德이 있어 제사하면 神明이 이를 흠향하고 福을 내리는데 이것은 제수가 향기로워서가 아니라 군주의 밝은 덕이 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僖公 5년조에도 보인다.
역주16 九五履正居中……實受其福也 : 孔穎達은 ‘西隣’이 九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으나, 程伊川과 朱子는 ‘西隣’이 六二를 가리키고 ‘東隣’이 九五를 가리킨다고 보았는바, 그 이유는 東隣은 陽의 방위이고 西隣은 陰의 방위이기 때문이다. 陰陽五行說에 의하면 동쪽은 陽方, 서쪽은 陰方에 해당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五의 가운데가 實함은 믿음이요, 六二의 가운데가 虛함은 정성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취하여 뜻으로 삼은 것이다. 동쪽 이웃은 陽이니 九五를 이르고, 서쪽 이웃은 陰이니 六二를 이른다. 소를 잡음은 성대한 제사이고 禴은 박한 제사이니, 성대함이 박함만 못한 것은 때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二爻와 五爻가 모두 孚誠과 中正의 德이 있으나 六二는 旣濟의 아래에 있어서 아직 나아갈 곳이 있으므로 福을 받고, 九五는 旣濟의 極에 처하여 나아갈 곳이 없으니, 至誠과 中正으로 지키면 진실로 뒤집힘에 이르지 않을 뿐이다. 이치는 極에 이르고서 끝내 뒤집히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미 極에 이르렀으면 비록 잘 대처하나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爻와 象에 오직 그 때를 말한 것이다.[五中實 孚也 二虛中 誠也 故皆取祭祀爲義 東隣 陽也 謂五 西隣 陰也 謂二 殺牛 盛祭也 禴 薄祭也 盛不如薄者 時不同也 二五皆有孚誠中正之德 二在濟下 尙有進也 故受福 五處濟極 无所進矣 以至誠中正守之 苟未至於反耳 理无極而終不反者也 已至於極 雖善處 无如之何矣 故爻象唯言其時也]”
역주17 沼沚之毛……並略左傳之文也 : 沼沚之毛와 蘋蘩之菜는 제물 중에 매우 薄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3년조에, “만약 마음이 光明하고 信實하다면 澗ㆍ溪ㆍ沼ㆍ沚에서 자라는 물풀과, 蘋ㆍ蘩ㆍ薀藻 등의 야채와, 筐ㆍ筥ㆍ錡ㆍ釜 등의 기물과, 潢汚ㆍ行潦의 물도 鬼神에게 바칠 수 있고 王公에게 올릴 수 있다.[苟有明信 澗溪沼沚之毛 蘋蘩薀藻之菜 筐筥錡釜之器 潢汚行潦之水 可薦於鬼神 可羞於王公]”라고 보이는데, 杜預의 注에 “沼는 연못이고, 沚는 작은 저수지이고, 毛는 풀이다.”라 하고, 또 “蘋은 大萍이고, 蘩은 皤蒿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8 神明饗德 : ≪禮記≫ 〈禮器〉에, “君子인 사람이 이 禮를 소유하기 때문에 밖의 사람으로서 疎遠한 자가 화합하지 않음이 없고, 안의 사람으로서 親近한 자가 원망하는 바가 없어서 사람은 그 仁에 귀의하고 鬼神은 그 德을 흠향하는 것이다.[君子之人 惟其有此禮也 故外人之疎遠者 無不諧恊 內人之親近者 無所怨憾 人歸其仁 神歆其德也]”라고 보인다.
역주19 詩云威儀孔時 : ≪詩經≫ 〈大雅 旣醉〉에, “威儀가 매우 때에 알맞는데 君子가 孝子를 두었다. 孝子가 다하지 아니하니 길이 너에게 좋음을 주리로다.[威儀孔時 君子有孝子 孝子不匱 永錫爾類]”라고 하였다.
역주20 (惟)[進] : 저본에는 ‘惟’로 되어 있으나, 疏의 ‘若進而不已’와 岳本ㆍ錢本ㆍ宋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進’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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