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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2)

주역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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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侯用錫馬蕃庶하고 晝日三接이로다
晉은 康侯에게 말을 하사하기를 많이 하고 하루에 세 번 접견하도다.
[疏]正義曰:‘晉’者, 卦名也, 晉之爲義, 進長之名. 此卦, 明臣之昇進, 故謂之晉.
正義曰:[晉] 卦의 이름이니, ‘晉’의 뜻은 나아가 자람의 명칭이다. 이 卦는 신하의 昇進함을 밝혔다. 그러므로 ‘晉’이라 한 것이다.
‘康’者, 美之名也.
[康] 아름다움의 명칭이다.
‘侯’, 謂昇進之臣也. 臣旣柔進, 天子美之, 賜以車馬, 蕃多而衆庶, 故曰“康侯用錫馬蕃庶”也.
[侯] 昇進하는 신하를 이른다. 신하가 이미 柔로서 나아감에 天子가 아름답게 여겨서 수레와 말을 하사한 것이 繁多하고 많다. 그러므로 “康侯에게 말을 하사하기를 많이 한다.”라고 한 것이다.
‘晝日三接’者, 言非惟蒙賜蕃多, 又被親寵頻數, 一晝之間, 三度接見也.
[晝日三接] 하사를 받음이 繁多할 뿐만이 아니요, 또 친애와 총애를 입음이 여러 번이어서 하루 사이에 세 번 접견함을 말한 것이다.
彖曰 晉 進也 明出地上하여 順而麗乎大明하고 柔進而上行이라
〈彖傳〉에 말하였다. “‘晉’은 나아감이니, 밝음이 지상으로 나와서 순종하여 大明에 붙어 있고 柔가 나아가 위로 올라간다.
[注]凡言上行者在貴也
무릇 上行을 말한 것은 가는 바가 귀함에 있는 것이다.
[疏]‘彖曰晉進也’至‘進而上行’
經의 [彖曰晉進也]에서 [進而上行]까지
○正義曰:‘晉 進也’者, 以今釋古, 古之晉字, 卽以進長爲義, 恐後世不曉, 故以進釋之.
○正義曰:[晉 進也] 지금의 글자를 가지고 옛글을 해석하였으니, 옛날 ‘晉’자는 바로 나아가 자라남을 뜻으로 삼았는데, 후세에서 이것을 깨닫지 못할까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進’으로 해석한 것이다.
‘明出地上’者, 此就二體, 釋得晉名, 離上坤下, 故言“明出地上.” 明旣出地, 漸就進長, 所以爲晉.
[明出地上] 이 두 體를 가지고 晉卦의 이름을 얻음을 해석하였으니, 離가 위에 있고 坤이 아래에 있으므로 “밝음이 지상으로 나왔다.”라고 한 것이다. 밝음이 이미 땅에서 나와 점점 나아가 자라니, 이 때문에 卦의 이름이 ‘晉’이 된 것이다.
‘順而麗乎大明 柔進而上行’者, 此就二體之義及六五之爻, 釋康侯用錫馬已下也.
[順而麗乎大明 柔進而上行] 이는 두 體의 뜻과 六五의 爻를 가지고 ‘康侯用錫馬’ 이하를 해석한 것이다.
坤, 順也, 離, 麗也, 又爲明坤能順從而麗著於大明, 六五以柔而進, 上行貴位.
‘坤’은 순함이요, ‘離’는 붙음이니, 또 坤이 능히 順從하여 大明에 붙어 있음을 밝혔고, 六五가 柔로서 나아가서 귀한 자리로 올라간다.
順而著明, 臣之美道也, 柔進而上行, 君上所與也, 故得厚賜而被親寵也.
柔順하면서 밝음에 붙어 있는 것은 신하의 아름다운 道이고, 柔로서 나아가 위로 올라감은 君上이 더부는 바이다. 그러므로 후한 하사를 받고 친애와 총애를 입는 것이다.
是以 康侯用錫馬蕃庶하고 晝日三接也
이 때문에 康侯에게 말을 하사하기를 많이 하고 하루에 세 번 접견하는 것이다.”
[注]康 美之名也 順以著明 臣之道也 柔進而上行 物所與也 得錫馬而蕃庶
‘康’은 아름다움의 명칭이다. 유순하면서 밝음에 붙음은 신하의 道요, 柔가 나아가 위로 올라감은 物(남)이 더부는 바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사하기를 많이 함’을 얻은 것이다.
柔進受寵이면 則一晝三接也
訟事로 관복을 받으면 하루아침을 마치는 사이에 세 번 벗고, 柔로서 나아가 총애를 받으면 하루에 세 번 접견을 하는 것이다.
[疏]‘是以康侯’至‘三接也’
經의 [是以康侯]에서 [三接也]까지
○正義曰:釋訖, 擧經以結君寵之意也.
○正義曰:해석이 끝난 다음, 經文을 들어 임금의 은총을 받는 뜻을 맺은 것이다.
[疏]○注‘康美之名也’至‘一晝三接也’
○注의 [康美之名也]에서 [一晝三接也]까지
○正義曰:擧此對釋者, 蓋訟言終朝, 晉言一晝, 俱不盡一日, 明黜陟之速, 所以示懲勸也.
○正義曰:이것을 들어 〈訟卦와〉 상대하여 해석한 것은, 訟卦에서는 하루아침을 마치는 것을 말하였고 晉卦에서는 하루 동안을 말하였으니, 모두 하루를 다하지 않은 것인바, 내치고 올려줌[黜陟]을 신속히 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勸善懲惡을 보인 것이다.
象曰 明出地上이니 君子以自昭明德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밝음이 地上으로 나오는 것이 晉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스스로 밝은 德을 밝힌다.”
[注]以著明 自顯之道
순종함으로써 밝음에 붙어 있음은 스스로 드러내는 道이다.
[疏]‘象曰’至‘以昭明德’
經의 [象曰]에서 [以自昭明德]까지
○正義曰:‘自昭明德’者, 昭, 亦明也, 謂自顯明其德也.
○正義曰:[自昭明德] ‘昭’ 또한 밝음이니, 스스로 그 德을 드러내어 밝힘을 이른다.
周氏(周宏正) 등은 昭를 照라 하여, “스스로 자기 몸을 비추는 것이니, 老子가 말하기를 ‘스스로 아는 자는 밝다.’ 하였는바, 밝음을 사용하여 스스로 비추는 것을 ‘明德’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案王注此云“以順著明, 自顯之道”, 又此卦與明夷正反, 明夷象云“君子以莅衆, 用晦而明”,
살펴보건대, 王輔嗣(王弼)가 이것을 注하면서 이르기를 “순종함으로써 밝음에 붙어 있음은 스스로 드러내는 道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 卦는 明夷卦와 정반대이니, 明夷卦의 〈象傳〉에 “君子가 보고서 무리에게 임함에 어둠을 사용하여 밝힌다.” 하였는데,
王注彼云“莅衆顯明, 蔽僞百姓, 藏明於內, 乃得明也.” 準此二注, 明王之注意, 以此爲自顯明德.
王輔嗣가 거기에 注하기를 “무리에 임하면서 밝음을 드러냄은 백성을 가리고 속이는 것이니, 밝음을 안에 감추어야 비로소 밝아진다.”라고 하였다. 이 두 곳의 注를 기준해보면 王輔嗣가 注를 낸 뜻은 이것을 ‘스스로 明德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김이 분명하다.
‘昭’자는 마땅히 ‘昭(之遙의 反切)’가 되어야 하니, 周氏 등이 ‘照(之召의 反切)’라 한 것은 注의 本旨가 아니다.
初六 晉如摧如 貞吉하고 罔孚리니 无咎리라
初六은 나아가고 물러감에 貞하고 吉하며 믿지 않을 것이니, 넉넉하게 하여 넓히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處順之初하고 應明之始하여 明順之德 於斯將隆하니 進明退順하여 不失其正이라 故曰 晉如摧如 貞吉也라하니라
順함(坤)의 처음에 처하고 밝음(離)의 시초에 應하여 밝고 순한 德이 여기에서 장차 높아지니, 나아가면 밝고 물러가면 순하여 그 바름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아가고 물러남에 貞하고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處卦之始하여 功業未著하여 物未之信이라 故曰 罔孚라하니라
卦의 시초에 처하여 功業이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남들이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方踐卦始하여 未至履位하니 以此爲足이면 自喪其長者也 必裕之然後 无咎
卦의 시초를 막 밟고 있어서 지위를 밟음에 이르지 않았으니, 이것을 가지고 만족하게 여기면 자라남을 스스로 상실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넉넉하게 하여 넓힌 뒤에야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初六晉如摧如’至‘无咎’
經의 [初六晉如摧如]에서 [无咎]까지
○正義曰:‘晉如摧如 貞吉’者, 何氏云“摧, 退也, 裕, 寬也, 如, 辭也.”
○正義曰:[晉如摧如 貞吉] 何氏(何妥)가 이르기를 “摧는 물러감이요, 裕는 넉넉함이요, 如는 어조사이다.” 하였다.
初六이 順함의 처음에 처하고 밝음의 시초에 應하여 밝고 순한 德이 여기에서 장차 높아지니, 나아가면 밝음으로 가고 물러가면 순함에 거하여, 나아고 물러감에 그 바름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아가고 물러감에 貞하고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罔孚’者, 處卦之始, 功業未著, 未爲人所信服, 故曰“罔孚.”
[罔孚] 卦의 시초에 처하여 功業이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남들로부터 신임과 복종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裕 无咎’者, 裕, 寬也, 方踐卦始, 未至履位, 不可自以爲足也, 若以此爲足, 是自喪其長也.
[裕 无咎] ‘裕’는 넉넉함이니, 卦의 시초를 막 밟고 있어서 지위를 밟음에 이르지 못하므로 스스로 만족하게 여겨서는 안 되니, 만약 이것을 만족하게 여기면 자라남을 스스로 잃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그 德을 寬裕하게 하여 功業이 커지고 넓어지게 한 뒤에야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넉넉하게 하여 넓히면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晉如摧如 獨行正也 裕无咎 未受命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나아가고 물러감’은 오로지 바름을 행하는 것이요, ‘넉넉하게 하여 넓히면 허물이 없음’은 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注]未得履位하여 未受命也
지위를 밟지 못하여 아직 命을 받지 못한 것이다.
[疏]‘象曰’至‘未受命也’
經의 [象曰]에서 [未受命也]까지
○正義曰:‘獨行正’者, 獨, 猶專也, 言進與退, 專行其正也.
○正義曰:[獨行正] ‘獨’은 專과 같으니, 나아가고 물러감에 오로지 그 바름을 행함을 말한 것이다.
‘裕无咎 未受命也’者, 進之初, 未得履位, 未受錫命, 故宜寬裕進德, 乃得无咎.
[裕无咎 未受命也] 나아가는 초기에 있어 아직 지위를 밟지 못해서 하사하는 命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아가는 德을 寬裕하게 하여야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六二 晉如愁如하여하니 受玆介福于其王母로다
六二는 나아감에 근심하나 바루어 吉하니, 이 큰 福을 王母에게 받도다.
[注]進而无應하여 其德不昭 曰 晉如愁如라하니라 居中得位하고 履順而正하니
나아감에 應이 없어서 그 德이 밝지 못하다. 그러므로 “나아감에 근심한다.”라고 한 것이다. 中에 거하고 正位를 얻고 순함을 밟고 바루니,
不以无應而回其志하여 處晦 能致其誠者也 脩德以斯하면 乎幽昧하니 得正之吉也 故曰 貞吉이라하니라
應이 없다는 이유로 그 뜻을 돌리지(굽히지) 아니하여 어둠에 처함에 능히 정성을 다하는 자이다. 德을 닦기를 이런 방법으로 하면 그윽하고 어두운 곳에서도 알려지니, 바름의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바루어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母者 處內而成德者也 鳴鶴在陰이면 則其子和之 立誠於闇이면 闇亦應之 其初愁如 履貞不回하면 則乃受玆大福于其王母也
‘母’는 안에 처하여 德을 이룬 자이다. 우는 鶴이 음지에 있으면 그 새끼가 화답하고, 어둔 곳에 성실함을 세우면 어둠이 또한 응한다. 그러므로 그 처음은 근심하는 것이요, 貞을 행하여 돌리지 않으면 마침내 이 큰 福을 王母에게 받는 것이다.
[疏]‘六二晉如愁如’至‘于其王母’
經의 [六二晉如愁如]에서 [于其王母]까지
○正義曰:‘晉如愁如’者, 六二進而无應於上, 其德不見昭明, 故曰“如愁如”, 憂其不昭也.
○正義曰:[晉如愁如] 六二가 나아감에 위에 應이 없어서 그 德이 밝음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아감에 근심한다.”라고 하였으니, 그 밝지 못함을 근심하는 것이다.
‘貞吉’者, 然履順居於中正, 不以无應而不脩其德, 正而獲吉, 故曰“貞吉”也.
[貞吉] 그러나 順함을 행하고 中正에 거하였으므로, 應이 없다는 이유로 그 德을 닦지 않지는 않아서 바루어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바루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受玆介福于其王母’者, 介者, 大也, 母者, 處內而成德者也.
[受玆介福于其王母] ‘介’는 큼이요, ‘母’는 안에 처하여 德을 이룬 자이다.
처음은 비록 근심하나, 다만 正道를 지키고 고치지 않으면 끝내 이 大福을 자기가 닦은 바대로 받는다. 그러므로 “이 큰 福을 王母에게 받는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進而无應’至‘于其王母也’
○注의 [進而无應]에서 [于其王母也]까지
○正義曰:‘鳴鶴在陰 則其子和之’者, 此王用中孚九二爻辭也.
○正義曰:[鳴鶴在陰 則其子和之] 이는 王輔嗣가 中孚卦 九二爻의 爻辭를 사용한 것이다.
象曰 受玆介福 以中正也
〈象傳〉에 말하였다. “‘이 큰 福을 받음’은 中正하기 때문이다.”
六三 衆允이라 悔亡하리라
六三은 여러 사람들과 믿으므로 후회가 없어지리라.
[注]處非其位 悔也 志在上行하여 與衆同信하니 順而麗明이라 得悔亡也
처함이 正位가 아닌 것은 후회함이나, 뜻이 위로 나아감에 있어서 사람들과 함께 믿으니, 순하고 밝음에 붙어 있다. 그러므로 후회가 없어짐을 얻는 것이다.
[疏]正義曰:六三處非其位, 有悔也, 志在上行, 與衆同信, 順而麗明, 故得其悔亡.
正義曰:六三은 처함이 正位가 아니어서 후회가 있으나 뜻이 위로 나아감에 있어서 사람들과 함께 믿으니, 순하고 밝음에 붙어 있다. 그러므로 후회가 없어짐을 얻는 것이다.
象曰 衆允之 志上行也
〈象傳〉에 말하였다. “‘여러 사람들과 믿음’은 뜻이 위로 가는 것이다.”
[疏]正義曰:居晉之時, 衆皆欲進, 己應於上, 志在上行, 故能與衆同信也.
正義曰:晉卦의 때에 거하여 사람들이 모두 나아가고자 하는데, 자기가 上九에 應하여 뜻이 위로 나아감에 있다. 그러므로 능히 여러 사람과 함께 믿는 것이다.
九四 晉如鼫鼠하니하니라
九四는 나아감이 鼫鼠와 같으니, 正道가 위태롭다.
[注]履非其位하여 上承於五하고 下據三陰하니 履非其位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면서, 위로 六五를 받들고 아래로 세 陰을 점거하고 있으니,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고,
又負且乘하여 无業可安하고 志无所據하니 以斯爲進 正之 進如鼫鼠 无所守也
또 지고 탐에 편안히 여길 만한 業이 없고 뜻이 의거할 곳이 없으니, 이런 방식으로 나아감은 正道가 위태로운 것이다. 나아가기를 鼫鼠와 같이 함은 지키는 바가 없는 것이다.
[疏]‘九四晉如鼫鼠貞厲’
經의 [九四晉如鼫鼠貞厲]
○正義曰:‘晉如鼫鼠’者, 鼫鼠, 有五能而不成伎之蟲也. 九四履非其位, 上承於五, 下據三陰, 上不許其承, 下不許其據.
○正義曰:[晉如鼫鼠] ‘鼫鼠’는 다섯 가지 재능이 있으나 한 가지 기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벌레(동물)이다. 九四가 밟은 것이 正位가 아니면서 위로 六五를 받들고 아래로 세 陰을 점거하고 있으니, 위에서는 그 받듦을 허락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그 점거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나아가면 편안히 여길 만한 業이 없고 지킬 만한 依據가 없으니, 일이 鼫鼠와 같아 성공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아가면 正道가 위태롭다. 그러므로 “나아감이 鼫鼠와 같으니, 正道가 위태롭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履非其位’至‘无所守也’
○注의 [履非其位]에서 [无所守也]까지
○正義曰:‘晉如鼫鼠 无所守也’者, 蔡邕勸學篇云“鼫鼠五能, 不成一伎”,
○正義曰:[晉如鼫鼠 无所守也] 蔡邕의 〈勸學篇〉에 “鼫鼠는 다섯 가지 재능이 있으나 한 가지 기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라고 하였는데,
注曰“能飛不能過屋, 能緣不能窮木, 能游不能度谷, 能穴不能掩身, 能走不能先人.”
注에 “능히 날아가나 지붕을 넘지 못하고, 능히 나무에 올라가나 나무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능히 헤엄치나 골짜기 물을 건너가지 못하고, 능히 구멍을 파나 제 몸을 가리지 못하고, 능히 도망하나 사람보다 앞서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本草經云“螻蛄, 一名鼫鼠, 謂此也”,
≪本草經≫에는 “螻蛄는 일명 鼫鼠이니, 이것을 이른다.”라고 하였고, 鄭玄은 ≪詩經≫에 “큰 쥐[碩鼠]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마라.”라고 한 것을 인용하여 ‘大鼠(큰 쥐)’라고 하였고,
陸機以爲“雀鼠.” 案王以爲“无所守”, 蓋五伎者當之.
陸機는 “雀鼠(大鼠)이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王輔嗣는 “지키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다섯 가지 기예를 가진 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象曰 鼫鼠貞厲 位不當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鼫鼠는 正道가 위태로움’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六五 悔亡이니 失得勿恤하고하면하여 无不利하니라
六五는 후회가 없어지니, 잃음과 얻음을 근심하지 않으며 가면 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注]柔得尊位하고 陰爲明主하여 能不用柔하여 不代下任也
柔가 尊位를 얻고 陰이 밝음의 주체가 되어서 능히 柔를 쓰지 않고 아랫사람의 임무를 대신하지 않는다.
雖不當位 能消其悔 失得勿恤 各有其司하니 術斯以往이면 无不利也
그러므로 비록 자리에 합당하지 않으나 후회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잃음과 얻음을 근심하지 않음은 각기 맡은 사람이 있으니, 이것을 따라가면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疏]‘象曰鼫鼠’至‘无不利’
經의 [象曰鼫鼠]에서 [无不利]까지
○正義曰:‘悔亡 失得勿恤 往 吉 无不利’者, 居不當位, 悔也.
○正義曰:[悔亡 失得勿恤 往 吉 无不利] 居함이 제자리에 합당하지 않음은 후회함이다.
柔가 尊位를 얻고 陰이 밝음의 주체가 되어서 능히 스스로 자기 밝음을 쓰지 않고 일을 아랫사람에게 위임한다. 그러므로 후회가 없어짐을 얻는 것이다.
旣以事任下, 委物責成, 失之與得, 不須憂恤, 故曰“失得勿恤”也.
이미 일을 아랫사람에게 맡겨서 남에게 위임하여 성공을 책임 지우면 잃음과 얻음을 굳이 근심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잃음과 얻음을 근심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능히 이 방도를 사용하면 가는 곳마다 모두 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가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失得勿恤往 有慶也
〈象傳〉에 말하였다. “‘잃음과 얻음을 근심하지 않고 감’은 경사가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 非惟自得无憂, 亦將人所慶說, 故曰“有慶”也.
正義曰:[有慶] 委任함에 올바른 사람을 얻으면 비단 자신만 근심이 없음을 얻을 뿐이 아니요, 또한 장차 남들이 慶賀하고 기뻐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경사가 있다.”라고 한 것이다.
上九 晉其角이라 維用伐邑이니 厲吉하고 无咎하니 貞吝이리라
上九는 귀퉁이에서 나아감이다. 오직 자기 고을을 정벌할 수 있으니, 위태로워야 吉하고 허물이 없으니, 正道가 鄙賤하게 여기리라.
[注]處進之極하고 過明之中하여 明將夷焉이요 已在乎角이어늘 在猶進之하니 非亢如何
나아감의 極에 처하고 밝음의 中을 넘어서 밝음이 장차 사라지게 되었고, 이미 귀퉁이에 있는데 오히려 나아가니, 亢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失夫道化无爲之事하면 必須攻伐然後 服邑이니 危乃得吉이요 吉乃无咎리니 用斯爲正 亦以賤矣
道로 교화하고 无爲하는 일을 잃으면 반드시 모름지기 공격하고 정벌한 뒤에야 고을을 복종시킬 수 있으니, 위태로워야 비로소 吉함을 얻고 吉하여야 비로소 허물이 없으리니, 이것을 사용하여 正道로 삼음은 또한 鄙賤한 것이다.
[疏]‘上九晉其角’至‘貞吝’
經의 [上九晉其角]에서 [貞吝]까지
○正義曰:‘晉其角’者, 上九處晉之極, 過明之中, 其猶日過於中, 已在於角而猶進之, 故曰“進其角”也.
○正義曰:[晉其角] ‘角’은 西南쪽 모퉁이이다. 上九가 晉의 極에 처하고 밝음의 中을 넘어서 해가 중천을 지나간 것과 같으니, 이미 귀퉁이에 있는데 오히려 나아간다. 그러므로 “귀퉁이에서 나아간다.”라고 한 것이다.
‘維用伐邑’者, 在角猶進, 過亢不已, 不能端拱无爲, 使物自服, 必須攻伐其邑, 然後服之, 故云“維用伐邑”也.
[維用伐邑] 귀퉁이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나아가서 지나치게 높은데도 그치지 않으니, 단정히 拱手하고서 无爲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복종하게 하지 못하고, 반드시 자기 고을을 정벌한 뒤에야 복종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 고을을 정벌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厲吉 无咎 貞吝’者, 兵者, 凶器, 伐而服之, 是危乃得吉, 吉乃无咎,
[厲吉 无咎 貞吝] 兵은 凶器이니, 정벌하여 남을 복종시킴은 이는 위태로워야 비로소 吉함을 얻을 수 있고, 吉하여야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태로워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을 正道로 삼으면 또한 鄙賤하다. 그러므로 “正道가 鄙賤하게 여기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維用伐邑 道未光也
〈象傳〉에 말하였다. “‘오직 자기 고을을 정벌함’은 道가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疏]正義曰:‘道未光也’者, 用伐乃服, 雖得之, 其道未光大也.
正義曰:[道未光也] 정벌을 사용하여야 비로소 복종하니, 비록 얻으나 道가 光大하지 못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以)[之] : 저본에는 ‘以’로 되어 있으나, 岳本‧宋本‧古本‧足利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阮刻本 〈校勘記〉에 “살펴보건대, 噬嗑卦의 注에 모두 ‘所之在貴也’라고 하였으니, 이 글의 ‘以’자가 ‘之’자의 誤字임을 징험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역주2 以訟受服 則終朝三褫 : 訟卦 上九 爻辭에 “혹 鞶帶를 하사받더라도 하루아침을 마치는 사이에 세 번 벗을 것이다.[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라고 보인다. 鞶帶는 官服이다.
역주3 (顯)[順] : 저본에는 ‘顯’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監本‧毛本에 의거하여 ‘順’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4 [自] : 저본에는 ‘自’가 없으나, 經文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周氏等爲照……爲明德 : 周宏正은 ‘昭’를 ‘비추다(알다)’의 뜻으로 보아, ‘君子以自昭明德’을 ‘군자가 이것을 이용하여 스스로 아는 것을 明德으로 삼는다.’로 해석한 것이다. 老子의 말은 ≪道德經≫에 보인다.
역주6 昭字宜爲昭……非注旨也 : 程伊川과 朱子 역시 ‘昭’를 ‘밝힘’의 뜻으로 보았는바, 특히 程伊川은 ≪春秋左氏傳≫ 桓公 2년조에 “德을 밝히고 잘못을 막음은 그 法度를 밝히는 것이다.[昭德塞違 昭其度也]”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역주7 初六處順之初……貞吉也 : ‘晉如摧如 貞吉’을 王弼과 孔穎達은 初六이 坤에 처하여 順(순종)하고 離의 九四와 응하여 밝기 때문에, 나아가면 밝고 물러가면 순하여 바르고 길하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程伊川은 “初六은 晉卦의 아래에 거하였으니, 나아감의 시초이다. 晉如는 올라감이요, 摧如는 꺾여 물러남이니, 처음 나아갈 때에 ‘나아감을 이루거나 나아감을 이루지 못하거나 오직 正道를 얻으면 길하다.’라고 말한 것이다.[初居晉之下 進之始也 晉如 升進也 摧如 抑退也 於始進而言 遂其進 不遂其進 唯得正則吉也]”라고 하여, ‘貞吉’을 ‘바르면 길하다’로 해석하였다.
朱子 역시 ‘貞吉’을 ‘바르면 길하다’로 보았는데, ‘晉如摧如’는 “陰으로서 아래에 거하여 應이 中正하지 못하니, 나아가고자 하다가 꺾임을 당하는 象이 있다.[以陰居下 應不中正 有欲進見摧之象]”라고 하여, ‘晉如摧如’를 初六이 九四에게 나아가고자 하나 九四가 中正하지 못하므로 初六이 꺾임을 당하는 象이라고 해석하였다.
역주8 裕无咎者……故曰裕无咎也 : ‘裕 无咎’를 王弼과 孔穎達은 ‘初六이 아직 지위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자신의 德을 寬裕하게 하여 功業을 廣大하게 만들어야 허물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이 해석에서 ‘裕’는 넉넉하게 하고 넓힌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初六이 아직 윗사람의 신임을 구하지 못했으나 신임을 구함에 급급하지 말고 寬裕함으로 처신해야 허물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이 해석에서 寬裕는 급박하지 않고 여유로움의 뜻이다.
역주9 (間)[聞] : 저본에는 ‘間’으로 되어 있으나, 岳本‧宋本‧古本‧足利本에 의거하여 ‘聞’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0 (進)[晉] : 저본에는 ‘進’으로 되어 있으나, 經文과 毛本에 의거하여 ‘晉’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1 初雖愁如……故曰受玆介福於其王母 : ‘王母’를 王弼과 孔穎達은 ‘안에 처하여 德을 이룬 자’라고 하고, ‘受玆介福于其王母’를 ‘六二가 안에 처하여 자신의 바름을 계속 지키면 끝내 이로써 큰 복을 받음’의 뜻이라 하였는바, 이 해석에서 ‘王母’는 바름을 지킨 六二 자신을 말한다.
반면 程伊川은 王母를 六五로 보고, “王母는 祖母이니, 陰의 지극히 높은 자를 이르니, 六五를 가리킨다. 六二가 中正의 道로 스스로 지키면 비록 위에 응원이 없어 스스로 나아갈 수 없으나 中正한 德이 오래되면 반드시 드러나 윗사람이 스스로 마땅히 구할 것이니, 六五 大明의 군주가 자기와 더불어 德이 같은바, 반드시 마땅히 구하여 寵祿을 加하리니, 큰 福을 王母에게 받는 것이다.[王母 祖母也 謂陰之至尊者 指六五也 二以中正之道 自守 雖上无應援 不能自進 然其中正之德 久而必彰 上之人 自當求之 蓋六五大明之君 與之同德 必當求之 加之寵祿 受介福於王母也]”라고 하였다. 朱子도 이와 같은데, 특히 朱子는 이 爻를 “先妣를 祭享하는 길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2 (厄)[危] : 저본에는 ‘厄’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危’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3 九四履非其位……无所成功也 : ‘晉如鼫鼠’를 王弼과 孔穎達은 ‘九四가 正位를 밟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아가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함’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니, ‘鼫鼠’를 지키는 바가 없어 성공하지 못함을 비유한 것으로 본 것이다.
程伊川과 朱子는 ‘鼫鼠’를 ‘남의 것을 탐하여 두려워함’을 비유한 것으로 보았는바, 이를 程伊川은 “九가 四에 거함은 正位가 아니니, 正位가 아닌데 거함은 그 지위를 탐하여 차지한 것이다. 높은 지위를 탐하여 처함은 이미 편안한 바가 아니요, 또 上과 德이 같아서 위에 순종하여 붙고 세 陰이 모두 자신의 아래에 있어 형세가 반드시 위로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두려워하고 꺼리니, 탐하여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鼫鼠이다. 그러므로 ‘晉如鼫鼠’라고 말한 것이다.[以九居四 非其位也 非其位而居之 貪據其位者也 貪處高位 旣非所安 而又與上同德 順麗於上 三陰皆在己下 勢必上進 故其心畏忌之 貪而畏人者 鼫鼠也 故云晉如鼫鼠]” 하였다.
역주14 以斯爲進……貞厲也 : ‘貞厲’를 王弼과 孔穎達은 九四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면 正道가 위태롭게 됨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程伊川은 ‘貞固하면 위태로움’으로 보아 “차지할 자리가 아닌 것을 탐하여 두려워하고 꺼리는 마음을 두니, 貞固하게 이를 지키면 그 위태로움을 알 수 있다.[貪於非據而存畏忌之心 貞固守此 其危可知]”라고 하였다.
朱子는 ‘바르더라도 위태로움’으로 보아, “점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비록 바르더라도 위태로운 것이다.[占者如是 雖正亦危]”라고 하였다.
王弼‧孔穎達과 程伊川과 朱子의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貞吝’과 ‘貞凶’의 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역주15 (王)[術]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宋本에 의거하여 ‘術’로 바로잡았다. 阮刻本 〈校勘記〉에 “살펴보건대, 盧文弨가 ‘≪顔氏家訓≫에 「不成伎術」로 되어 있으니, 「王」자가 誤字임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하였다.
역주16 鄭引詩云……謂大鼠也 : 큰 쥐[大鼠]는 쥐 중에 큰 것이 아니고 종자가 다른 쥐를 말하는바, 일설에는 다람쥐라고도 한다.
역주17 柔得尊位……故得悔亡 : ‘悔亡’을 王弼과 孔穎達은 ‘六五가 正位가 아니므로 후회가 있지만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기므로 후회가 없어짐’의 뜻으로 보았다.
程伊川과 朱子 역시 ‘悔’의 원인을 六五의 不正에 두었지만, ‘悔亡’의 이유를 ‘六五가 大明으로 위에 있고 아래가 모두 순종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역주18 旣以事任下……无不利也 : ‘失得勿恤’을 王弼과 孔穎達은 ‘六五가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겼으므로 일의 득실을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음’의 의미로 보았다.
程伊川은 “아래가 이미 德을 같이하고 순종하여 따르면 마땅히 정성을 미루어 위임해서 衆人의 재주를 다하고 천하의 뜻을 통할 것이요, 다시 그 밝음을 自任하여 잃고 얻음을 근심하지 말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가면 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六五는 大明의 군주이니, 밝게 비추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고, 밝음을 씀이 지나쳐 살피고 살핌에 이르러 委任하는 道를 잃을까 염려된다. 그러므로 잃고 얻음을 근심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下旣同德順附 當推誠委任 盡衆人之才 通天下之志 勿復自任其明 恤其失得 如此而往 則吉而无不利也 六五 大明之主 不患其不能明照 患其用明之過 至於察察 失委任之道 故戒以失得勿恤也]”라고 하였는바, 王弼‧孔穎達과 비슷한 맥락이나 이를 경계의 말로 본 것이 다르다.
朱子는 “일체 功을 계산하고 이익을 도모하는 마음을 버리면 감에 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一切去其計功謀利之心 則往吉而无不利也]”라고 하였다.
역주19 有慶者 委任得人 : 阮刻本 〈校勘記〉에 “盧文弨가 이르기를, ‘疏는 「失得勿恤往」을 句로 만들어 읽었기 때문에 이(有慶者) 위에 「往」자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라 한 것에 의거하여 經文을 ‘失得勿恤往 有慶也’로 끊어 번역하였다.
程伊川은 “大明의 德으로 아래의 따름을 얻어 정성을 미루어 委任하면 천하의 大功을 이룰 수 있으니, 이는 감에 福慶이 있는 것이다.[以大明之德 得下之附 推誠委任 則可以成天下之大功 是往而有福慶也]”라고 하여, 經文을 ‘失得勿恤 往有慶也’로 끊었다.
역주20 角 西南隅也 : ‘角’은 뿔이란 뜻 외에 귀퉁이의 뜻이 있어 ‘四角’은 네 귀를 이르는바, 孔穎達은 經文의 角을 서남쪽 귀퉁이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뿔로 보았다. 程伊川은 “뿔은 剛하고 위에 있는 물건이다. 上九가 剛으로서 卦의 極에 처하였으므로 뿔을 취하여 象을 삼은 것이다.[角 剛而居上之物 上九以剛居卦之極 故取角爲象]”라고 하였으며, 朱子는 “뿔은 剛하고 위에 있으니, 上九가 剛하고 나아감이 지극하여 이러한 象이 있는 것이다.[角 剛而居上 上九剛進之極 有其象矣]”라고 하였다.
역주21 維用伐邑者……故曰貞吝也 : ‘維用伐邑 厲吉 无咎’를 程伊川은 ‘上九가 剛함과 나아감이 지극하여 사나운 잘못이 있지만, 이러한 剛함을 자신을 다스리는 데에 쓰면 비록 사나우나 길하고 허물이 없음’의 뜻으로 보았는바, ‘邑을 정벌함’을 ‘안으로 스스로를 다스림’을 비유한 것으로 본 것이다. ‘貞吝’도 이러한 맥락에서 ‘사나움은 中和의 德이 아니므로 貞正의 道에는 부끄러울 만한 것임’의 뜻으로 보았다.

주역정의(2)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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