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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2)

주역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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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壯 利貞하니라
大壯은 貞함이 이롭다.
[疏]正義曰:‘大壯’, 卦名也, 壯者, 强盛之名. 以陽稱大, 陽長旣多, 是大者盛壯, 故曰“大壯.”
正義曰:[大壯] 卦의 이름이니, ‘壯’은 강하고 盛한 이름이다. 陽을 大라고 칭하니, 陽의 자람이 이미 많으면 이는 大(陽)가 盛하고 건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卦의 이름을 ‘大壯’이라 한 것이다.
‘利貞’者, 卦德也, 群陽盛大, 小道將滅, 大者獲正, 故曰‘利貞’也.
[利貞] 卦의 德이니, 여러 陽이 盛하고 커서 小(陰)의 道가 장차 滅하게 되어 큰 것[大]이 바름을 얻는다. 그러므로 “貞함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大壯 大者 壯也
〈彖傳〉에 말하였다. “大壯은 큰 것이 장성한 것이니,
[注] 謂陽爻 小道將滅하여 大者獲正이라 利貞也
‘大’는 陽爻를 이르니, 小(陰)의 道가 장차 滅하여 큰 것이 바름을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疏]‘彖曰’至‘壯也’
經의 [彖曰]에서 [壯也]까지
○正義曰:‘大者 壯也’者, 就爻釋卦名. 陽爻浸長, 已至於四, 是大者盛壯, 故曰“大者壯也.”
○正義曰:[大者 壯也] 爻를 가지고 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陽爻가 점점 자라서 이미 四爻에 이르렀으니, 이는 큰 것이 盛하고 건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大壯은 큰 것이 장성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大者謂陽爻’至‘利貞也’
○注의 [大者謂陽爻]에서 [利貞也]까지
○正義曰:釋名之下, 剩解利貞, 成大者之義也.
○正義曰:卦의 이름을 해석한 아래에 다시 ‘利貞’을 덧붙여 해석한 것은 큰 것의 뜻을 완성한 것이다.
剛以動이라 故壯하니 大壯利貞 大者正也 正大而天地之情 可見矣리라
剛하고 動한다. 그러므로 건장하니, ‘大壯은 貞함이 이로움’은 큰 것이 바른 것이니, 바르고 크면 天地의 情을 볼 수 있다.”
[注]天地之情 正大而已矣 弘正極大 則天地之情 可見矣
天地의 情은 正大함일 뿐이니, 크게 바르고 지극히 크면 天地의 情을 볼 수 있다.
[疏]正義曰:‘剛以動 故壯’者, 就二體釋卦名. 乾剛而震動, 柔弱而動, 卽有退弱, 剛强以動, 所以成壯.
正義曰:[剛以動 故壯] 두 體를 가지고 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乾은 剛하고 震은 動하니, 柔弱하면서 動하면 곧 물러가고 약함이 있지만 剛强하면서 動하니, 이 때문에 건장함을 이룬 것이다.
‘大壯利貞 大者正也’者, 就爻釋卦德, 大者獲正, 故得利貞.
[大壯利貞 大者正也] 爻를 가지고 卦의 德을 해석한 것이니, 큰 것이 바름을 얻었기 때문에 ‘利貞’을 얻은 것이다.
‘正大而天地之情 可見矣’者, 因大獲正, 遂廣美正之義, 天地之道, 弘正極大, 故正大則見天地之情.
[正大而天地之情 可見矣] 큼을 인하고 바름을 얻어서 마침내 正大의 뜻을 넓혀 찬미하였으니, 天地의 道가 크게 바르고 지극히 크기 때문에 바르고 크면 天地의 情을 볼 수 있는 것이다.
不言萬物者, 壯大之名, 義歸, 故不與咸‧恒同也.
萬物을 말하지 않은 것은, 壯大의 이름은 그 뜻이 天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咸卦, 恒卦와는 같지 않은 것이다.
象曰 雷在天上 大壯이니
〈象傳〉에 말하였다.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大壯卦이니,
[注]剛以動也
剛하고 動하는 것이다.
[疏]正義曰:震雷爲威動, 乾天主剛健, 雷在天上, 是剛以動, 所以爲大壯.
正義曰:震의 우레는 위엄이 動함이 되고 乾의 하늘은 剛健함을 주장하는데, 우레가 하늘 위에 있으니, 이는 剛하고 動함이 大壯이 되는 이유이다.
君子以非禮弗履하나니라
君子가 이것을 응용하여 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注]壯而違禮則凶이니 凶則失壯也 君子以大壯而順
건장하면서 禮를 어기면 흉하니, 흉하면 건장함을 잃는다. 그러므로 君子가 大壯을 응용하여 禮를 순히 하는 것이다.
[疏]正義曰:盛極之時, 好生驕溢, 故於大壯以非禮勿履也.
正義曰:盛함이 지극한 때에는 교만함과 방자함이 생기기가 쉽다. 그러므로 大壯에서 ‘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初九 壯于趾하면 凶有孚리라
初九는 발에 건장하니, 그대로 가면 흉함이 틀림없으리라.
[注]夫得大壯者 必能自終成也 未有陵犯於物而得終其壯者 在下而壯이라 曰 壯于趾也라하니라
大壯을 얻은 자는 반드시 능히 스스로 끝마쳐 이루니, 남을 능멸하고 범하고서 그 장성함을 끝마칠 수 있는 자는 있지 않다. 아래에 있으면서 건장하기 때문에 “발에 건장하다.”라고 한 것이다.
居下而用剛壯하니 以斯而進이면 窮凶可必也 曰 征凶有孚라하니라
아래에 있으면서 剛壯을 사용하니, 이런 방식으로 나아가면 곤궁해져 흉함을 기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로 가면 흉함이 틀림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壯于趾 征 凶有孚’者, 趾, 足也, 初在體下, 有如趾足之象, 故曰“壯于趾”也.
正義曰:[壯于趾 征 凶有孚] ‘趾’는 발이니, 初九가 卦體의 아래에 있어서 趾足과 같은 象이 있다. 그러므로 “발에 건장하다.”라고 한 것이다.
施之於人, 卽是在下而用壯也, 在下用壯, 陵犯於物, 以斯而行, 凶其信矣. 故曰“征, 凶有孚.”
이것을 사람에게 베풀면 아래에 있으면서 건장함을 사용하는 것이니, 아래에 있으면서 건장함을 사용하여 남을 능멸하고 침범하니, 이런 방식으로 행하면 흉함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대로 가면 흉함이 틀림없으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壯于趾 其孚窮也
〈象傳〉에 말하였다. “‘발에 건장함’은 그 곤궁함을 믿을 수 있다.”
[注]言其信窮이라
그 곤궁함을 믿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疏]正義曰:‘其孚窮’者, 釋壯於趾者, 人信其窮凶也.
正義曰:[其孚窮] ‘발에 건장한 것은 그 사람이 곤궁해져 흉함을 믿을 수 있음’을 해석한 것이다.
九二 貞吉하니라
九二는 貞하여 吉하다.
[注]居得中位하고 以陽居陰하여 履謙不亢이라 是以貞吉이라
居함이 中位를 얻었고 陽爻로서 陰位에 있어서 겸손을 행하고 높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貞하여 길한 것이다.
象曰 九二貞吉 以中也
〈象傳〉에 말하였다. “‘九二의 貞하여 吉함’은 中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以其居中履謙, 行不違禮, 故得正而吉也.
正義曰:中에 居하고 겸손함을 행하여 행실이 禮를 어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름을 얻어 길한 것이다.
九三 小人用壯하고 君子用罔하니 貞厲 羝羊觸藩하니 羸其角이로다
九三은 小人은 건장함을 사용하고 君子는 罔(그물에 걸림)을 사용하니, 바름이 위태롭다. 숫양이 울타리를 받으니, 그 뿔을 잡아서 매어놓는다.
[注]處健之極하고 以陽處陽하니 用其壯者也 小人用之以爲壯하고 君子用之以爲羅己者也
健의 極에 처하고 陽爻로서 陽의 자리에 처했으니, 그 건장함을 사용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小人은 이것을 사용하여 건장함으로 여기고 君子는 이것을 사용하여 자기를 그물질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貞厲以壯하니 雖復羝羊이나 以之觸藩이면 能无羸乎
바름이 위태로운데 건장하니, 비록 다시 숫양이나 이로써 울타리를 받으면 잡아서 매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疏]‘九三小人用’至‘羸其角’
經의 [九三小人用]에서 [羸其角]까지
○正義曰: 羝羊, 羖羊也. 藩, 藩籬也.
○正義曰:罔은 羅罔(그물)이다. 羝羊은 숫양이다. 藩은 울타리이다. 羸는 拘纍하고 얽어매는 것이다.
九三處乾之上, 是健之極也, 又以陽居陽, 是健而不謙也.
九三이 乾의 위에 처하였으니, 이는 剛健함이 지극한 것이요, 또 陽爻로서 陽의 자리에 거했으니, 이는 剛健하여 겸손하지 않은 것이다.
健而不謙, 必用其壯也, 小人當此, 不知恐懼, 卽用以爲壯盛, 故曰“小人用壯.”
剛健하여 겸손하지 않으면 반드시 건장함을 사용하니, 小人이 이것을 당하면 두려워할 줄 모르고 곧바로 사용하여 건장함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小人은 건장함을 사용한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當此, 卽慮危難, 用之以爲羅罔於己, 故曰“君子用罔.”
君子가 이것을 당하면 위태로움과 어려움을 염려하여 이것을 사용하여 자기를 그물질하는 위험한 것으로 여겨 조심한다. 그러므로 “君子는 罔을 사용한다.”라고 한 것이다.
以此爲正, 狀似羝羊觸藩也, 必拘羸其角矣.
건장함을 바름으로 삼으면 그 바름이 반드시 위태롭다. 그러므로 “바름이 위태롭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을 바름으로 삼으면 모습이 숫양이 울타리를 받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그 뿔을 잡아서 매어놓게 될 것이다.
〈象傳〉에 말하였다. “小人이 건장함을 씀은 君子는 그물로 여겨 조심한다.”
[疏]正義曰:言小人用以爲壯者, 卽是君子所以爲羅罔也.
正義曰:小人이 사용하여 건장함으로 여김은 바로 君子가 그물로 여겨 조심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九四하며 悔亡하리니 藩決不羸하며 壯于大輿之輹이로다
九四는 正道가 吉하며 후회가 없어질 것이니, 울타리가 터져서 잡혀 매이지 않으며 큰 수레의 바퀴살이 건장하도다.
[注]下剛而進하여 將有憂虞로되 而以陽處陰하여 行不違謙하여 不失其壯이라 得貞吉而悔亡也
아래가 剛하면서 나와 장차 근심이 있을 것이나 陽爻로서 陰의 자리에 처하여 행함이 겸손을 떠나지 않아서 건장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正道가 吉하며 후회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已得其壯하고 而上陰不罔己路 藩決不羸也 壯于大輿之輹 无有能說其輹者하니 可以往也
이미 그 장성함을 얻고 위에서 陰이 자신의 길을 그물로 막지 않는다. 그러므로 울타리가 터져서 잡혀 매이지 않는 것이다. 큰 수레의 바퀴살이 건장함은 능히 그 바퀴살을 벗길 자가 없는 것이니,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大輿’者, 大車也. 下剛而進, 將有憂虞, 而九四以陽處陰, 行不違謙, 居謙卽不失其壯,
正義曰:[大輿] 큰 수레이다. 아래가 剛하면서 나아가면 장차 근심이 있을 것이나, 九四가 陽爻로서 陰의 자리에 처하여 행함이 겸손을 떠나지 않으니, 겸손함에 거하면 건장함을 잃지 않는다.
九三以壯健不謙, 卽被羸其角.
그러므로 正道가 吉하며 후회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正道가 吉하며 후회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九三은 건장하고 굳세되 겸손하지 않으므로 그 뿔을 잡아서 매어놓음을 당하였고,
九四以謙而進, 謂之上行, 陰爻不罔己路, 故藩決不羸也.
九四는 겸손함으로 나아가므로 ‘上行’이라 한 것이니, 陰爻가 자기 길을 그물로 막지 않기 때문에 울타리가 터져서 잡혀 매이지 않는 것이다.
‘壯于大輿之輹’者, 言四乘車而進, 其輹壯大, 无有能脫之者, 故曰“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也.
[壯于大輿之輹] 九四가 수레를 타고 나아감을 말하였으니, 바퀴살이 장대하여 능히 벗길 자가 없다. 그러므로 “울타리가 터져서 잡혀 매이지 않으며 큰 수레의 바퀴살이 건장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藩決不羸 尙往也
〈象傳〉에 말하였다. “‘울타리가 터져 잡혀 매이지 않음’은 거의 갈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尙往’者, 尙, 庶幾也, 言己不失其壯, 庶幾可以往也.
正義曰:[尙往] ‘尙’은 庶幾(거의)이니, 자기가 그 건장함을 잃지 않아서 거의 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六五 喪羊于易하면 无悔리라
六五는 羊을 平易함에서 잃으면 후회가 없으리라.
[注]居於大壯하여 以陽處陽이라도 猶不免咎어든 而況以陰處陽하고 以柔乘剛者乎
大壯에 거하여 陽爻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여도 오히려 허물을 면치 못하는데, 하물며 陰爻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고 柔로서 剛을 탐에 있어서랴.
壯也 必喪其羊하면 失其所居也 能喪壯于易하고 不于險難이라 故得无悔
羊은 건장한 물건이니, 반드시 그 羊을 잃으면 거처할 바를 잃는 것이니, 건장함을 平易함에서 잃고 험난함에서 잃지 않을 수 있으므로 후회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二履貞吉하여 能幹其任하여 而己委焉하니 則得无悔 委之則難不至하고 居之則敵寇來 曰 喪羊于易라하니라
九二가 貞吉을 행하여 능히 그 임무를 맡을 수 있어서 자기가 九二에게 맡기니, 이렇게 하면 후회가 없게 된다. 九二에게 맡기면 難이 이르지 않고 자기가 차지하면 敵寇가 온다. 그러므로 “羊을 平易함에서 잃는다.”라고 한 것이다.
[疏]‘六五喪羊于易无悔’
經의 [六五喪羊于易无悔]
○正義曰:‘喪羊于易 无悔’者, 羊, 壯也, 居大壯之時, 以陽處陽, 猶不免咎, 而況以陰處陽, 以柔乘剛者乎.
○正義曰:[喪羊于易 无悔] ‘羊’은 건장한 물건이니, 大壯의 때에 거하여 陽爻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여도 오히려 허물을 면치 못하는데, 하물며 陰爻로서 陽의 자리에 처하고 柔로서 剛을 탐에 있어서랴.
違謙越禮, 必喪其壯. 群陽方進, 勢不可止, 若於平易之時, 逆捨其壯, 委身任二, 不爲違拒, 亦剛所不害,
겸손함을 어기고 禮를 넘으니, 반드시 그 건장함을 잃는다. 여러 陽이 막 나와서 형세를 그칠 수가 없으니, 만약 平易할 때에 미리 그 건장함을 버리고 몸을 바쳐 九二에게 맡겨서 어기고 거역하지 않으면 또한 剛함이 해치지 않을 것이니,
해치지 않으면 후회가 없다. 그러므로 “羊을 平易함에서 잃으면 후회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居於大壯’至‘喪羊于易’
○注의 [居於大壯]에서 [喪羊于易]까지
○正義曰:羊, 剛狠之物, 故以譬壯.
○正義曰:羊은 剛하고 사나운 물건이므로 건장함을 비유하였다.
云‘必喪其羊 失其所居’者, 言違謙越禮, 理勢必然.
[必喪其羊 失其所居] 겸손함을 떠나고 禮를 넘으면 이치와 형세가 반드시 그러함을 말한 것이다.
云‘能喪壯于易 不於險難’者, 二雖應己, 剛長則侵陰, 爲己寇難, 必喪其壯,
[能喪壯于易 不於險難] 九二가 비록 자기에게 應하나 剛이 자라면 陰을 侵害하니, 〈九二가〉 자신의 寇難이 되어서 반드시 자신의 건장함을 잃을 것이다.
當在於平易寇難未來之時, 勿於險難敵寇旣來之日. 良由居之有必喪之理,
마땅히 平易하여 寇難이 오지 않을 때에 잃을 것이요, 험난하여 敵寇가 이미 온 날에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진실로 차지하면 반드시 잃을 이치가 있다.
故戒其預防, 而莊氏云“經止一言喪羊, 而注爲兩處分用. 初云‘必喪其羊, 失其所居’, 是自然應失,
그러므로 미리 방비할 것을 경계한 것인데, 莊氏는 말하기를 “經文에는 다만 ‘양을 잃는다.’라고 한 번만 말하였는데, 注에는 두 가지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처음에 ‘반드시 그 羊을 잃으면 그 거처할 바를 잃는다.’고 말한 것은 자연히 잃는 것이요,
後云‘能喪壯於易, 不於險難, 故得无咎’, 自能喪其羊, 二理自爲矛揗”, 竊謂莊氏此言, 全不識注意.
뒤에 ‘건장함을 平易함에서 잃고 험난함에서 잃지 않을 수 있으므로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스스로 자기의 양을 잃은 것이니, 두 이치가 저절로 모순된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건대, 莊氏의 이 말은 注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象曰 喪羊于易 位不當也
〈象傳〉에 말하였다. “‘羊을 平易함에서 잃음’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位不當’者, 正由處不當位, 故須捨其壯也.
正義曰:[位不當] 바로 처한 것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모름지기 그 건장함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上六 羝羊觸藩하여 不能退하고 不能遂하여 无攸利하니 艱則吉하리라
上六은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서 능히 물러가지도 못하고 능히 나아가지도 못하여 이로운 바가 없으니, 어렵게 여기면 吉하리라.
[注]有應於三이라 不能退하고 懼於剛長이라 不能遂 持疑猶豫하여 志无所定하니 以斯決事하면 未見所利
九三에 應이 있으므로 물러가지 못하고, 剛이 자람을 두려워하므로 능히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猶豫하여 뜻이 정해진 바가 없으니, 이런 방식으로 일을 결단하면 이로운 바를 보지 못한다.
雖處剛長이나 剛不害正하니 苟定其分하여 固志在하여 以斯自處하면 則憂患消亡이라 故曰 艱則吉也라하니라
비록 剛이 자라남에 처하였으나 剛이 바름을 해치지 않으니, 만일 그 분수를 정하여 굳은 뜻이 九三에 있어, 이로써 자처하면 憂患이 사라지고 없어진다. 그러므로 “어렵게 여기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上六羝羊觸藩’至‘艱則吉’
經의 [上六羝羊觸藩]에서 [艱則吉]까지
○正義曰:退, 謂退避. 遂, 謂進往. 有應於三, 疑之不已, 故不能退避.
○正義曰:退는 물러가 피함을 이른다. 遂는 나아감을 이른다. 九三에 應이 있어서 의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물러가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然懼於剛長, 故不能遂往, 故云“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也.
그러나 剛이 자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서 능히 물러가지도 못하고 능히 나아가지도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无攸利’者, 持疑猶豫, 不能自決, 以此處事, 未見其利, 故曰“无攸利”也.
[无攸利]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猶豫하여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니,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이로움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로운 바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艱則吉’者, 雖處剛長, 剛不害正, 但艱固其志, 不捨於三, 卽得吉, 故曰“艱則吉”也.
[艱則吉] 비록 剛이 자라날 때에 처하였으나 剛이 바름을 해치지 않으니, 다만 그 뜻을 어렵게 여기고 견고히 하여 九三을 버리지 않으면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어렵게 여기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不能退, 不能遂 艱則吉 咎不長也
〈象傳〉에 말하였다. “‘능히 물러가지도 못하고 능히 나아가지도 못함’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요, ‘어렵게 여기면 吉함’은 허물이 長久하지 않은 것이다.”
[疏]正義曰:‘不也’者, 祥者, 善也, 進退不定, 非爲善也, 故云“不祥也.”
正義曰:[不詳也] ‘祥’은 善함(좋음)이니, 나아가고 물러감을 결정하지 못하면 선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한 것이다.
‘咎不長也’者, 能艱固其志, 卽憂患消亡, 其咎不長, 釋所以得吉也.
[咎不長也] 능히 그 뜻을 어렵게 여기고 견고히 하면 憂患이 사라지고 없어져서 허물이 長久하지 않을 것이니, 吉함을 얻게 된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一)[大]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岳本‧閩本‧監本‧毛本에 의거하여 ‘大’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2 (人)[大] : 저본에는 ‘人’으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 〈校勘記〉에 “‘人’은 ‘大’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大’로 바로잡았다.
역주3 天極 : 毛本에는 ‘天大’로 되어 있다.[阮刻本 참조]
역주4 (體)[禮] : 저본에는 ‘體’로 되어 있으나, 岳本‧錢本‧閩本‧監本‧毛本에 의거하여 ‘禮’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5 (誠)[誡] : 저본에는 ‘誠’으로 되어 있으나, 글 뜻에 의거하여 ‘誡’로 바로잡았다. 北京大本에는 별다른 교감주 없이 ‘誡’로 되어 있다.
역주6 : 錢本과 宋本에는 ‘有’로 되어 있다.[阮刻本 참조]
역주7 罔 羅罔也 : 王弼과 孔穎達은 ‘罔’을 그물로 보아, ‘君子用罔’을 ‘군자가 危難을 염려하여 자신을 그물질하는 위험한 것으로 여김’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罔’을 ‘无(무시함)’로 보아 ‘小人用壯 君子用罔’을 ‘九三은 건장함이 지극한 자이므로, 소인은 힘을 숭상하여 건장함을 쓰고 군자는 뜻이 강하여 무시함을 쓰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程伊川과 朱子의 해석에서 군자와 소인은 德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지위로 말한 것이 된다.
역주8 羸 拘纍纏繞也 : 程伊川과 朱子는 羸를 困窮함으로 訓하였다.
역주9 以壯爲正……故云貞厲也 : ‘貞厲’를 王弼과 孔穎達은 ‘건장함을 바름으로 삼으므로 바름이 위태로움’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程伊川은 貞을 貞固함으로 보아 “剛과 柔가 中道를 얻으면 꺾이지 않고 굽히지 않아 천하에 베풂에 마땅하지 않음이 없고, 만일 剛함이 너무 지나치면 和順한 德이 없어서 많이 상하여 함께하는 이가 없으니, 貞固히 이것을 지키면 위험한 길이다.[剛柔得中 則不折不屈 施於天下而无不宜 苟剛之太過 則无和順之德 多傷莫與 貞固守此則危道也]”라고 하였다.
朱子는 王弼‧孔穎達과 마찬가지로 貞을 바름으로 보았으나, ‘貞厲’는 ‘九三이 지나치게 강하니, 이와 같으면 비록 바르더라도 위태로움’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역주10 小人用壯 君子罔也 : ‘小人用壯’을 孔穎達은 “小人이 건장함을 쓰는 일”로 보았으나, 程伊川과 朱子는 爻辭와 같이 “小人은 건장을 쓰고 君子는 멸시(무시)하는 것이다.”라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諺解 역시 ‘小人은 用壯이요’로 懸吐하였다.
역주11 下剛而進……悔亡 : ‘貞吉 悔亡’을 王弼과 孔穎達은 ‘九四가 陽爻로 陰位에 있어서 강하되 겸손하기 때문에 正道가 길하고 후회가 없어짐’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九四 역시 九三과 마찬가지로 건장함이 지나친 자로 보아 ‘貞吉 悔亡’을 경계의 말로 해석하였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四는 陽剛이 자라나 성하여 장성함이 이미 中을 지났으니, 장성함이 심한 것이다. 그러나 四爻에 거하여 不正함이 되니, 君子의 道가 자라날 때를 당하여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貞하면 길하여 후회가 없어진다.’라고 경계한 것이다. 道가 자라날 때를 당하여 조금 잘못하면 형통하여 나아가는 형세를 해치니, 이는 후회가 있는 것이다. 만일 다른 卦에 있다면 重剛으로 柔에 거함이 반드시 좋음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 大過가 이것이다.[四 陽剛長盛 壯已過中 壯之甚也 然居四 爲不正 方君子道長之時 豈可有不正也 故戒以貞則吉而悔亡 蓋方道長之時 小失則害亨進之勢 是有悔也 若在他卦 重剛而居柔 未必不爲善也 大過是也]”
역주12 群陽方進……无悔也 : ‘喪羊于易’를 王弼과 孔穎達은 ‘환란이 이르기 전에 九二에게 자신을 맡김’의 의미로 보았는바, ‘易’를 平易로 해석한 것이다.
반면 程伊川은 ‘易’를 和易로 보고 “양은 떼지어 다니고 떠받기를 좋아하니, 여러 陽이 함께 나옴을 상징한 것이다. 네 陽이 막 자라나 함께 나오니, 九五가 柔로 위에 거하여 만일 힘으로써 제재하려 하면 이기기 어려워 후회가 있을 것이요, 오직 和易로써 대하면 여러 陽이 그 剛함을 쓸 곳이 없으니, 이는 그 장성함을 和易함에 잃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후회가 없을 수 있다. 六五는 지위로 말하면 正이고 德으로 말하면 中이다. 그러므로 和易의 道를 써서 여러 陽이 비록 장성하나 쓸 곳이 없게 한 것이다.[羊 群行而喜觸 以象諸陽竝進 四陽方長而竝進 五以柔居上 若以力制 則難勝而有悔 唯和易以待之 則群陽 无所用其剛 是喪其壯于和易也 如此則可以无悔 五以位言則正 以德言則中 故能用和易之道 使群陽雖壯 无所用也]”라고 하였는바, 이 해석에서 ‘양을 잃음’은 ‘여러 陽爻가 자신의 장성함을 잃음’의 뜻이 된다.
역주13 (一)[三] : 저본에는 ‘一’로 되어 있으나, 閩本‧監本‧毛本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阮刻本 참조]
역주14 (詳)[祥] : 저본에는 ‘詳’으로 되어 있으나, 古本‧足利本에 의거하여 ‘祥’으로 바로잡았다. 阮刻本 〈校勘記〉에 “살펴보건대, 이는 王弼本에 본래 ‘詳’으로 되어 있으니, 古本과 足利本은 잘못되었다.”고 하였으나, 아래 疏에 ‘祥者 善也’라 하였으며, 옛날에는 詳과 祥은 통용하였으므로 교감한 것이다.
역주15 (詳)[祥] : 저본에는 ‘詳’으로 되어 있으나, 錢本‧宋本에 의거하여 ‘祥’으로 바로잡았다. 阮刻本 〈校勘記〉에는 “살펴보건대, 아래도 같다.”라 하여 ‘祥者’의 ‘祥’도 저본에 ‘詳’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저본에는 ‘祥’으로 되어 있다. 北京大本에는 이에 대하여 “살펴보건대, 아래에 본래 ‘祥’으로 되어 있으니, 阮元의 〈校勘記〉와 출입이 있다.”라고 하였다.

주역정의(2)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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