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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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已日乃孚 元亨利貞하여 悔亡하니라
革은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믿으니,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워 후회가 없어진다.
[注]夫民 可與習常이요 難與適變이며 可與樂成이요 難與慮始 革之爲道 卽日不孚하여 已日乃孚也
백성들은 평상적인 것을 함께 익힐 수 있고 변화함에 함께 나아가기 어려우며, 이루어진 것을 함께 즐길 수 있고 시작을 함께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革의 道는 당일에 믿지 아니하여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믿는 것이다.
孚然後 乃得元亨利貞하여 悔亡也 已日而不孚 革不當也 悔吝之所生 在乎變動者也 革而當이면 其悔乃亡也
믿은 뒤에 비로소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움’을 얻어서 후회가 없어지는 것이니, 하루가 지나도 믿지 않으면 개혁이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후회와 부끄러움이 생겨나는 것은 變動에 달렸나니, 개혁하여 합당하면 후회가 마침내 없어지는 것이다.
[疏]正義曰:‘革’者, 改變之名也. 此卦明改制革命, 故名革也.
正義曰:[革] 고치고 변하는 것의 이름이다. 이 卦는 제도를 고치고 명령을 개혁함[革命]을 밝혔다. 그러므로 卦의 이름을 ‘革’이라 한 것이다.
‘已日乃孚’者, 夫民情, 可與習常, 難與適變, 可與樂成, 難與慮始. 故革命之初, 人未信服, 所以卽日不孚, 已日乃孚也.
[已日乃孚] 무릇 백성의 情은 평상적인 것을 함께 익힐 수 있고 변화함에 함께 나아가기 어려우며, 이루어진 것을 함께 즐길 수 있고 시작을 함께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革命하는 초기에는 사람들이 믿고 복종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당일에 믿지 아니하여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믿는 것이다.
‘元亨利貞 悔亡’者, 爲革而民信之, 然後乃得大通而利正也. 悔吝之所生, 生乎變動, 革之爲義, 變動者也.
[元亨利貞 悔亡] 개혁하여 백성들이 믿은 뒤에 비로소 크게 통하고 正함이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후회와 부끄러움이 생겨나는 것은 變動에서 생겨나니, 革의 뜻은 變動하는 것이다.
革若不當, 則悔吝交及, 如能大通利貞, 則革道當矣, 爲革而當, 乃得亡其悔吝, 故曰“元亨, 利貞, 悔亡.”
개혁이 만약 합당하지 않으면 후회와 부끄러움이 서로 미치게 되고, 만일 크게 형통하여 貞함이 이로우면 개혁하는 道가 합당한 것이니, 개혁함이 합당하면 비로소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크게 형통하고 貞함이 이로워 후회가 없어진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革 水火相息하며 二女同居호되 其志不相得 曰 革이라
〈彖傳〉에 말하였다. “革은 물과 불이 서로 〈變을〉 낳으며 두 女子가 함께 거처하나 그 뜻이 서로 맞지 않으므로 革이라 한 것이다.
[注]凡不合然後 乃變生하니 變之所生 生於不合者也 取不合之象하여 以爲革也
무릇 합하지 않은 뒤에 비로소 變이 생겨나니, 變이 생겨나는 이유는 합하지 않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하지 않음의 象을 취하여 卦 이름을 ‘革’이라 한 것이다.
息者 生變之謂也 火欲上而澤欲下하여 水火相戰하니 而後 生變者也 二女同居로되 而有水火之性하여 近而不相得也
‘息’은 變이 생겨남을 이르니, 불은 위로 올라가고자 하고 못은 아래로 흐르고자 하여 물과 불이 서로 싸우니, 그런 뒤에 變이 생겨나는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사나 물과 불의 성질이 있어서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서로 뜻이 맞지 못한다.
[疏]‘彖曰’‘其志不相得曰革’
經의 [彖曰]에서 [其志不相得曰革]까지
○正義曰:此就二體, 釋卦名也. 火本乾燥, 澤本潤濕, 燥濕殊性, 不可共處.
○正義曰:이는 두 體를 가지고 卦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물과 불이 서로 變을 낳으니, 먼저 두 象을 가지고 革을 밝힌 것이다. ‘息’은 낳는 것이다. 불은 본래 乾燥하고 못[澤]은 본래 濕潤하니, 건조한 것과 습윤한 것은 성질이 달라서 함께 거처할 수가 없다.
若其共處, 必相侵剋, 旣相侵剋, 其變乃生, 變生則本性改矣. 水熱而成湯, 火滅而氣冷, 是謂革也.
만약 함께 거처하면 반드시 서로 침해하고 이길 것이요, 이미 서로 침해하고 이기면 그 變이 마침내 생겨나니, 變이 생겨나면 本性이 바뀐다. 물이 뜨거워져서 끓음을 이루고 불이 꺼져서 기운이 차가워짐, 이것을 ‘革’이라 한다.
‘二女同居’者, 此就人事, 明革也. 此雖形同而志革也.
[二女同居] 이는 사람의 일을 가지고 ‘革’을 밝힌 것이다. 中女와 少女 두 여자가 한 卦를 이루었으니, 이는 비록 형체가 같으나 뜻이 바뀐 것이다.
一男一女, 乃相感應, 二女雖復同居, 其志終不相得. 志不相得, 則變必生矣, 所以爲革.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마침내 서로 감응을 하고, 두 여자는 비록 다시 동거를 하나 그 뜻이 마침내 서로 맞지 못한다. 뜻이 맞지 못하면 變이 반드시 생겨나니, 이 때문에 卦 이름을 ‘革’이라 한 것이다.
已日乃孚 革而信 文明以說일새니 大亨以正하여 革而當이면 其悔乃亡이라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믿음’은 改革하여 믿는 것이니, 文明하고 기뻐하기 때문이다. 크게 형통하고 바루어 개혁하여 합당하면 그 후회가 마침내 없어지는 것이다.
[注]夫所以得革而信者 文明以說也일새라 文明以說하고 履正而行하여 以斯爲革이면
‘개혁하여 믿음’을 얻는 이유는 文明하고 기뻐하기 때문이다. 文明하고 기뻐하며 正道를 밟고 행하여 이로써 개혁을 하면
應天順民하여 大亨以正者也 革而大亨以正이면 非當如何
하늘에 應하고 民心에 순응하여 크게 형통하고 바른 자이니, 개혁하여 크게 형통하고 바르면 합당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疏]‘已日乃孚’至‘其悔乃亡’
經의 [已日乃孚]에서 [其悔乃亡]까지
○正義曰:‘已日乃孚 革而信’者, 釋革之爲義, 革初未孚, 已日乃信也.
○正義曰:[已日乃孚 革而信] ‘革의 뜻이 개혁한 초기에는 믿지 않고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믿음’을 해석한 것이다.
‘文明以說’者, 此擧二體, 上釋革而信, 下釋四德也. 能思文明之德以說於人, 所以革命而爲民所信也.
[文明以說] 이는 두 體를 들어서 위로는 ‘개혁하여 믿음’을 해석하고 아래로는 네 德(元‧亨‧利‧貞)을 해석한 것이다. 능히 文明의 德을 생각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니, 이 때문에 革命을 하면 백성들이 믿는 것이다.
大亨以正者, 民旣說文明之德而從之, 所以大通而利正也.
[大亨以正] 백성들이 이미 文明의 德을 기뻐하여 따르니,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운 것이다.
‘革而當 其悔乃亡’, 爲革若合於大通而利, 可謂當矣, 革而當理, 其悔乃亡消也.
[革而當 其悔乃亡] 개혁함이 만약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움’에 부합하면 합당하다고 이를 수 있으니, 개혁하여 이치에 합당하면 그 후회가 마침내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殷 湯王殷 湯王
周 武王周 武王
天地革而四時成하며 湯武革命하여 順乎天而應乎人하니 革之時大矣哉
하늘과 땅이 바뀌어 四時가 이루어지며 湯王‧武王이 革命하여 하늘에 순하고 사람들에게 應하였으니, 革의 때가 크다.”
[疏]‘天地革而四時成’至‘大矣哉’
經의 [天地革而四時成]에서 [大矣哉]까지
○正義曰:‘天地革而四時成’者, 以下廣明革義, 此先明天地革者,
○正義曰:[天地革而四時成] 이하는 革의 뜻을 넓혀 밝힌 것이니, 이는 먼저 ‘하늘과 땅이 바뀜’을 밝혔는바,
天地之道, 陰陽升降, 溫暑涼寒迭相變革, 然後四時之序皆有成也.
하늘과 땅의 道는 陰과 陽이 올라가고 내려가서 따뜻함과 더움, 시원함과 차가움이 번갈아 서로 變革한 뒤에 四時의 순서가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者, 以明人革也. 夏桀ㆍ殷紂, 凶狂无度, 天旣震怒, 人亦叛.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사람의 개혁을 밝힌 것이다. 夏나라 桀王과 殷나라 紂王이 흉악하고 狂暴하고 법도가 없어서 하늘이 이미 震怒하고 사람들 또한 배반하여 도망하였다.
殷湯ㆍ周武, 聰明睿智, 上順天命, 下應人心, 放桀鳴條, 誅紂牧野, 革其王命, 改其惡俗,
이에 殷나라 湯王과 周나라 武王이 聰明하고 睿智하여 위로 天命을 순히 하고 아래로 人心에 호응하여 桀王을 鳴條에 추방(幽置)하고 紂王을 牧野에서 주벌하여 왕의 命을 바꾸고 악한 풍속을 고쳤다.
故曰“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計王者相承, 改正易服, 皆有變革, 而獨擧湯ㆍ武者,
그러므로 “湯王ㆍ武王이 革命하여 하늘에 순하고 사람들에게 應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헤아려보건대, 王者가 서로 계승할 적에 正朔을 고치고 衣服의 색깔을 바꾸어서 모두 변혁이 있으나 유독 湯王과 武王을 든 것은,
蓋舜ㆍ禹禪讓, 猶或因循, 湯ㆍ武干戈, 極其損益, 故取相變甚者, 以明人革也.
舜임금과 禹임금은 禪讓을 하여 그래도 혹 앞의 왕의 제도를 따랐지만 湯王과 武王은 창과 방패로 싸워 이겨서 그 損益(加減)을 지극히 하였으므로 서로 변함이 심한 것을 취하여 사람의 개혁을 밝힌 것이다.
‘革之時大矣哉’者, 備論革道之廣訖, 摠結歎其大, 故曰“大矣哉”也.
[革之時大矣哉] 革卦의 道가 넓음을 자세히 논하여 끝마치고서 그 큼을 摠結하여 감탄하였다. 그러므로 “크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澤中有火 革이니 君子以治歷明時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못 가운데 불이 있는 것이 革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歷數(曆數)를 다스려 天時를 밝힌다.”
[注]歷數時會 存乎變也
歷數의 時會(시기)는 變易에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澤中有火 革’者, 火在澤中, 二性相違, 必相改變, 故爲革象也.
正義曰:[澤中有火 革] 불이 못 가운데에 있어서 두 성질이 서로 어긋나 반드시 서로 고치고 변한다. 그러므로 革의 象이 되는 것이다.
‘君子以治歷明時’者, 天時變改, 故須歷數, 所以君子觀玆革象, 修治歷數, 以明天時也.
[君子以治歷明時] 天時가 변하고 바뀌므로 모름지기 歷數가 필요하니, 이 때문에 군자가 이 革의 象을 보고서 歷數를 다스려서 天時를 밝히는 것이다.
初九 鞏用黃牛之革이로다
初九는 공고히 하되 황소 가죽을 사용하도다.
[注]在革之始하여 革道未成하여 固夫常中하여 未能應變者也 此可以守成이요 不可以有爲也
革의 시초에 있어서 개혁의 道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해서 떳떳한(일정한) 中을 굳게 지켜 변화에 應하지 못하는 자이니, 이는 守成을 할 수는 있고 훌륭한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固也 牛之革하여 不可變也 固之所用常中하여 堅仞不肯變也
‘鞏’은 견고함이요, ‘黃’은 中이요, 소의 가죽은 견고하고 질겨서 변할 수가 없으니, 견고함의 쓰는 바가 떳떳한 中이어서 견고하고 질겨 변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疏]正義曰:鞏, 固也. 黃, 中也. 牛革, 牛皮也. 革之爲義, 變改之名, 而名皮爲革者, 以禽獸之皮, 故以喩焉.
正義曰:‘鞏’은 견고함이다. ‘黃’은 中이다. ‘牛革’은 소가죽이다. 革의 뜻은 변하고 고치는 것의 이름인데 가죽을 이름하여 ‘革’이라 한 것은 새와 짐승의 가죽이 모두 따라서 개혁될 수[從革] 있기 때문에 이로써 비유한 것이다.
皮雖從革之物, 然牛皮堅仞難變. 初九在革之始, 革道未成, 守夫常中, 未能應變,
가죽이 비록 따라서 개혁되는 물건이나 소가죽은 견고하고 질겨서 변하기 어렵다. 初九가 革의 시초에 있어서 革의 道가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떳떳한 中을 지켜서 변화에 應하지 못하니,
이를 人事에 베풀면 소가죽을 사용하여 스스로 견고하게 지켜서 造次(잠시)라도 따라 변하지 못하는 것과 같음이 있다. 그러므로 “공고히 하되 황소 가죽을 사용한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鞏用黃牛 不可以有爲也
〈象傳〉에 말하였다. “‘공고히 하되 황소 가죽을 사용함’은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正義曰:[不可以有爲] ‘有爲’는 때의 변화에 적응하여 말하고 행하는 바가 있음을 이른다. 이미 견고하게 하여 스스로 공고히 하면 떳떳함만 지킬 수 있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六二 已日 乃革之 征吉하여 无咎하니라
六二는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改革하니, 가면 吉하여 허물이 없다.
[注]陰之爲物 不能先唱하여 順從者也 不能自革하고 革已 乃能從之 曰 已日乃革之也라하니라
陰이란 물건은 先唱을 하지 못하여 順從하는 자이다. 능히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개혁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따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改革한다.”라고 한 것이다.
二與五雖有水火殊體之異 同處厥中하여 陰陽相應하니 往必合志하여 不憂咎也 是以 征吉而无咎
六二와 九五는 비록 물과 불이 體가 다른 차이가 있으나 함께 中에 처하여 陰과 陽이 서로 應하니, 가면 반드시 뜻이 합하여 허물을 근심할 것이 없다. 이 때문에 가면 吉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疏]‘六二已日’至‘无咎’
經의 [六二已日]에서 [无咎]까지
○正義曰:‘已日乃革之’者, 陰道柔弱, 每事順從, 不能自革, 革已日乃能從之, 故曰“已日乃革之.”
○正義曰:[已日乃革之] 陰의 道가 柔弱하여 每事를 순종해서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개혁하여 하루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따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루가 지나야 비로소 改革한다.”라고 한 것이다.
‘征吉 无咎’者, 與五相應, 同處厥中, 陰陽相應, 往必合志, 不憂咎也, 故曰“征吉, 无咎.”
[征吉 无咎] 〈六二가〉 九五와 서로 應하고 함께 中에 처하여 陰과 陽이 서로 應하니, 가면 반드시 뜻이 합하여 허물을 근심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가면 吉하여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六二와 九五가 비록 서로 應하나 물과 불이 體가 달라서 相剋하는 허물이 있음을 혐의하였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已日革之 行有嘉也
〈象傳〉에 말하였다. “하루가 지나 改革함은 감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行有嘉’者, 往應見納, 故行有嘉慶也.
正義曰:[行有嘉] 가서 응하면 받아들이므로 감에 아름다운 福慶이 있는 것이다.
九三하면하여하니 革言三就하여 有孚로다
九三은 정벌하면 凶하여 正道가 위태로우니, 개혁하자는 말이 세 번 성취되어 성실함이 있도다.
[注]己處火極하여 上卦三爻 雖體水性이나 皆從革者也 自四至上 從命而變하여 不敢自違
자기가 불의 極에 처하여 上卦의 세 爻가 비록 體가 물의 성질이나 모두 따라서 개혁되는 자이다. 九四부터 上六에 이르기까지 命을 따라 변하여 감히 스스로 어기지 못한다.
曰 革言三就 其言實誠이라 曰 有孚라하니라 革言三就有孚어늘 而猶征之 凶其宜也
그러므로 “개혁하자는 말이 세 번 성취된다.”라고 한 것이고, 그 말이 성실하므로 “성실함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개혁하자는 말이 세 번 성취되어 성실함이 있는데 오히려 정벌하면 凶한 것이 당연하다.
正義曰:九三은 陽爻여서 剛하고 건장하며 또 불의 極에 거하였으니, 불의 성질은 위로 타 올라가고 개혁하는 때에 처해서 정벌하여 개혁하게 하고자 한다. 정벌함이 道가 아니면 正道가 위태롭다. 그러므로 “정벌하면 凶하여 正道가 위태롭다.”라고 한 것이다.
所以征凶致危者, 正以水火相息之物, 旣處於火極, 上之三爻, 水在火上, 皆從革者也.
정벌하면 흉하여 위태로움을 이루는 까닭은, 바로 물과 불이 서로 變을 낳는 물건인데 이미 불의 極에 처하였고 위의 세 爻는 물이 불 위에 있어서 모두 따라서 개혁되는 자이기 때문이다.
九四부터 上六에 이르기까지 命을 따라 變하여 감히 어김이 있지 않으니, 따라서 개혁하자는 말을 세 爻가 모두 성취하여 그 말이 공허하지 않다. 그러므로 “개혁하자는 말이 세 번 성취된다.”라고 한 것이고, 그 말이 성실하므로 “성실함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言三就有孚, 從革已矣, 而猶征之則凶, 所以征凶而厲貞.
이미 개혁하자는 말이 세 번 성취되어 성실함이 있으면 따라서 개혁됨이 끝나는데 오히려 정벌하면 흉하니, 이 때문에 정벌하면 흉하여 正道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象曰 革言三就어니 又何之矣리오
〈象傳〉에 말하였다. “개혁하자는 말이 세 번 성취되었으니, 또 어찌 가서 정벌할 것이 있겠는가.”
正義曰:[又何之矣] 정벌함은 본래 따르지 않기 때문인데, 이미 개혁하자는 말이 세 번 성취되었으니, 다시 또 어찌 가서 정벌할 것이 있겠는가.
九四 悔亡하니 有孚改命하여하니라
九四는 뉘우침이 없어지니 命을 고침에 믿음이 있어서 길하다.
[注]初九處下卦之下하고 九四處上卦之下 能變也 无應 悔也 與水火相比 能變者也 是以悔亡이라
初九는 下卦의 아래에 처하였고, 九四는 上卦의 아래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능히 變할 수 있는 것이다. 應이 없음은 뉘우침이나, 물과 불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능히 變하는 자이니, 이 때문에 뉘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處水火之際하고 居會變之始하여 能不固吝하여 不疑於下하고 信志改命하여 不失時願이라 是以吉也
물과 불의 사이에 처하고 때마침 변해야 하는 시초에 거하여 고집스럽고 인색하지 않아서 아래를 의심하지 않고 命을 고치는 뜻을 믿어서 때의 소원을 잃지 않는다. 이 때문에 吉한 것이다.
有孚則見信矣 見信以改命이면 則物安而无違 曰 悔亡하니 有孚改命하여 吉也라하니라 處上體之下하니 始宣命也
믿음이 있으면 신임을 받으니, 신임을 받고 命을 고치면 물건(사람)이 편안하여 어김이 없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지니 命을 고침에 믿음이 있어서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上體의 아래에 처하였으니, 처음 명령을 베푸는 것이다.
[疏]正義曰:九四與初, 同處卦下, 初九處下卦之下, 革道未成, 故未能變,
正義曰:九四가 初九와 함께 卦의 아래에 처하였는데, 初九는 下卦의 아래에 처하여 개혁하는 道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므로 변하지 못하고,
九四處上卦之下, 所以能變也. 无應, 悔也, 能變, 故悔亡也.
九四는 上卦의 아래에 처하여 이 때문에 변할 수 있는 것이다. 應이 없음은 뉘우침이나, 능히 변하므로 뉘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물과 불의 사이에 처하고 때마침 변해야 하는 시초에 거하여 고집스럽고 인색하지 않아서 아래를 의심하지 않고 저 ‘命을 고치는 뜻’을 믿어서 능히 따르면 때의 소원에 부합하니, 이 때문에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命을 고침에 믿음이 있어서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改命之吉 信志也
〈象傳〉에 말하였다. “命을 고치는 것이 吉함은 뜻을 믿는 것이다.”
[注]信志而行이라
뜻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正義曰:[信志] 아랫사람의 뜻을 믿고 그 命을 행하는 것이다.
九五 大人虎變이니 未占이라도 有孚니라
九五는 大人이 범처럼 변함이니, 점치지 않고도 믿음이 있다.
[注]未占而孚 合時心也
점치지 않고도 믿음은 때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다.
[疏]正義曰:九五居中處尊, 以大人之德爲革之主, 損益前王, 創制立法, 有文章之美, 煥然可觀,
正義曰:九五가 中에 거하고 尊位에 처하여 大人의 德으로 개혁의 주체가 되어서 前王의 제도를 損益하여 제도를 창건하고 법을 세우니, 文章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찬란하게 볼만하여 마치 범이 변함에 그 무늬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과 같다.
則是湯ㆍ武革命, 廣大應人, 不勞占決, 信德自著, 故曰“大人虎變, 未占, 有孚”也.
이는 湯王과 武王이 革命을 하여 廣大하게 人心에 호응하여 수고롭게 점쳐 결단하지 않고도 믿음의 德이 저절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大人이 범처럼 변함이니, 점치지 않고도 믿음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大人虎變 其文炳也
〈象傳〉에 말하였다. “‘大人이 범처럼 변함’은 그 文章이 빛나는 것이다.”
[疏]正義曰:‘其文炳’者, 義取文章炳著也.
正義曰:[其文炳] 文章이 밝게 드러난 뜻을 취한 것이다.
上六 君子豹變이요 小人革面이니
上六은 君子는 표범처럼 변하고 小人은 얼굴을 바꾸니,
[注]居變之終하여 變道已成하니 君子處之 能成其文이요 小人樂成이면 則變面以順上也
變의 끝에 거하여 변하는 道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君子가 이에 처하면 능히 그 文을 이루고 小人이 성공을 즐거워하면 얼굴을 바꿔 윗사람을 순종하는 것이다.
[疏]正義曰:上六居革之終, 變道已成, 君子處之, 雖不能同九五革命創制, 如虎文之彪炳,
正義曰:上六이 革의 끝에 거하여 변하는 道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君子가 이에 처하면 비록 九五가 革命하여 제도를 창건해서 마치 범의 무늬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것과는 같지 못하나,
然亦潤色鴻業, 如豹文之蔚縟, 故曰“君子豹變”也.
또한 큰 사업을 潤色하기를 표범의 무늬가 아름다운 것과 같게 한다. 그러므로 “君子는 표범처럼 변한다.”라고 한 것이다.
‘小人革面’者, 小人處之, 但能變其顔面, 容色順上而已, 故曰“小人革面”也.
[小人革面] 小人이 이에 처하면 〈마음은 고치지 못하고〉 다만 안면을 바꾸어서 용모와 얼굴빛으로 윗사람에게 순종할 뿐이다. 그러므로 “小人은 얼굴을 바꾼다.”라고 한 것이다.
하면이요하면 貞吉하니라
정벌하면 凶하고, 거하면 貞하여 길하다.
[注]改命創制하여 變道已成하니 功成則事損이요 事損則无爲 居則得正而吉이요 征則躁擾而凶也
命을 고치고 제도를 창건해서 변하는 道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功이 이루어지면 일이 줄어들고 일이 줄어들면 함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거하면 바름을 얻어 吉하고, 정벌하면 조급하게 동요하여 凶한 것이다.
[疏]正義曰:革道已成, 宜安靜守正, 更有所征則凶, 居而守正則吉, 故曰“征凶, 居貞吉”也.
正義曰:개혁하는 道가 이미 이루어졌으면 마땅히 고요함을 편안히 여기고 正道를 지켜야 하니, 다시 정벌하는 바가 있으면 凶하고 거하면서 正道를 지키면 吉하다. 그러므로 “정벌하면 흉하고, 거하면 貞하여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君子豹變 其文蔚也 小人革面 順以從君也
〈象傳〉에 말하였다. “‘君子가 표범처럼 변함’은 그 文章이 아름다운 것이요, ‘小人이 얼굴을 바꿈’은 순종하여 군주를 따르는 것이다.”
[疏]正義曰:‘其文蔚’者, 明其不能大變, 故文而相暎蔚也.
正義曰:[其文蔚] ‘크게 변하지는 못했으므로 文章이 찬란하여 서로 비춰 아름다움’을 밝힌 것이다.
‘順以從君’者, 明其不能潤色立制, 但順而從君也.
[順以從君] ‘潤色하여 제도를 세우지는 못하고 다만 순종하여 군주를 따를 뿐임’을 밝힌 것이다.
역주
역주1 (居)[至] : 저본에는 ‘居’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至’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2 水火相息……生也 : 王弼과 孔穎達은 ‘息’을 生息으로 訓하여 ‘水火相息’을 ‘물과 불이 서로 變을 낳음’으로 해석하였는데, 程伊川은 “息은 止息(그침)이 되고 또 生息(생겨남)이 되니, 물건이 그친 뒤에 생겨남이 있으므로 생겨나는 뜻이 된다.[息 爲止息 又爲生息 物止而後有生 故爲生義]”라고 하여 止息과 生息의 두 가지로 訓하였는바, 朱子도 이와 같다.
역주3 中少二女而成一卦 : 八卦(小成卦) 가운데 離卦☲는 次女(中女)를 상징하고, 兌卦☱는 少女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卦의 主爻는 홀로 陰이거나 홀로 陽인 爻이므로 한 爻가 陰爻이면 여자, 陽爻이면 남자가 되고, 爻의 생성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므로 主爻가 初爻이면 長子, 中爻이면 次子, 上爻이면 少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震卦☳는 長男, 坎卦☵는 次男, 艮卦☶는 少男이 되고, 巽卦☴는 長女, 離卦☲는 次女, 兌卦☱는 少女가 되며, 乾卦☰는 아버지, 坤卦☷는 어머니가 된다.
역주4 : 阮元의 〈校勘記〉에 “≪經典釋文≫에 ‘一本에는 「之」자가 없다.’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아래의 注와 疏에서도 經文을 인용하며 모두 ‘之’자를 생략하였다.
역주5 (名)[者] : 저본에는 ‘名’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者’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6 (王)[正]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正’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主)[亡] : 저본에는 ‘主’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亡’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8 黃 中也 : 黃色은 中央의 색에 해당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황색은 五行 중 土의 색인데 土의 해당 방위가 중앙이기 때문에 황색이 중앙의 색이 된 것이다.
역주9 : 靭(질기다)과 같다.
역주10 皆可從革 : 革은 원래 짐승의 가죽인데 개혁이 뜻이 되는 까닭은 털이 있는 가죽[皮]을 加工하여 털을 제거하고 기름기를 빼내어 부드럽게 바꾸기 때문이다. ‘從革’은 사람이 加工함에 따라 바뀜을 이르니, ≪書經≫ 〈洪範〉에 ‘金曰從革’이라고 보이는바, 이 말은 ‘쇠가 사람의 가공에 의하여 원래의 상태를 그대로 따르기도 하고 새로운 형태로 완전히 탈바꿈하기도 함’의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따라서 개혁됨[從而革]’의 뜻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역주11 初九在革之始……故曰鞏用黃牛之革也 : 王弼과 孔穎達은 初九를 ‘스스로 견고하게 지켜서 변화에 응하지 못하는 자’로 보았는바, 스스로 견고하게 지킴을 좋지 않은 뜻으로 본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初九가 스스로 견고하게 지켜서 妄動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變革은 일의 큰 것이니, 반드시 때가 있고 지위가 있고 재주가 있어서 살펴 생각하고 신중히 동한 뒤에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九는 때로써 보면 初이니 일의 초기에 동하면 살피고 삼가는 뜻이 없어 조급하고 함부로 하는 象이 있으며, 지위로써 보면 아래이니 이미 때가 없고 援助가 없으면서 아래에서 동하면 참람하고 망령된 허물이 있고 體勢의 중함이 없으며, 재주로써 보면 離의 體로서 陽이니 離의 성질은 올라가고 剛의 體는 굳세어 모두 동함에 신속하다. 그 재질이 이와 같으니, 일을 함이 있으면 凶咎가 이를 것이다. 剛하고 中하지 못하면서 體가 조급한 자에게 부족한 것은 中과 順이니, 마땅히 中順으로써 스스로 堅固히 지키고 妄動함이 없으면 可하다. 鞏은 묶음이요 革은 묶음을 싸는 것이며, 黃은 중앙의 색이요 牛는 순한 물건이니, 공고히 하되 황소 가죽을 쓴다는 것은 中順한 道로써 스스로 굳게 지키고 妄動하지 않음을 이른다.[變革 事之大也 必有其時 有其位 有其才 審慮而愼動而後可以无悔 九以時則初也 動於事初 則无審愼之意 而有躁易之象 以位則下也 无時无援而動於下 則有僭妄之咎 而无體勢之重 以才則離體而陽也 離性上而剛體健 皆速於動也 其才如此 有爲則凶咎至矣 蓋剛不中而體躁 所不足者 中與順也 當以中順自固而无妄動 則可也 鞏 局束也 革 所以包束 黃 中色 牛 順物 鞏用黃牛之革 謂以中順之道自固 不妄動也]”
역주12 不可以有爲者……不可以有爲也 : 王弼과 孔穎達은 初九에 대하여 ‘다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뿐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자’로 보아, 여기에서의 ‘有爲’도 ‘훌륭한 일을 함’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初九가 스스로를 견고하게 지키는 것이 當爲가 된다고 보았는바, 初九는 변혁(개혁)의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有爲’도 단순히 ‘일을 함’의 의미가 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初九의 때와 지위와 재주가 모두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마땅히 中順으로써 스스로 견고히 하여야 하는 것이다.[以初九時位才 皆不可以有爲 故當以中順自固也]”
역주13 征吉无咎者……故曰无咎 : 程伊川은 ‘征吉 无咎’라고 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六二는 體가 柔하고 처함이 자리에 마땅하니, 體가 柔하면 나아감이 느리고 자리에 마땅하면 처함이 堅固하니, 變革은 큰 일이므로 이러한 경계가 있는 것이다. 六二가 中을 얻고 剛과 應하여 柔에 의해 잘못됨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나 聖人이 경계할 만한 의심이 있음을 인하여 그 뜻을 밝히신 것이니, 賢才로 하여금 할 수 있는 시기를 잃지 않게 하신 것이다.[以二體柔而處當位 體柔則其進緩 當位則其處固 變革者 事之大 故有此戒 二得中而應剛 未至失於柔也 聖人因其有可戒之疑 而明其義耳 使賢才不失可爲之時也]” 즉 ‘征吉 无咎’를 머물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경계의 말로 본 것이다.
역주14 九三陽爻剛壯……貞厲 : 王弼과 孔穎達은 ‘征凶 貞厲’를 ‘上卦의 세 爻가 모두 개혁의 명을 따르므로 정벌하지 않는 것이 正道인데 이들을 정벌하면 흉하고 正道가 위태로워짐’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九三은 剛陽으로 下卦의 위가 되었고 또 離의 위에 처하여 中을 얻지 못했으니, 變革에 조급히 동하는 자이다. 아래에 있으면서 變革을 조급히 하니, 이로써 가면 흉함이 있다. 그러나 下體의 위에 거하여 진실로 마땅히 改革하여야 할 일이라면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貞正을 지키고 위태로운 마음을 품으며 公論을 순히 따르면 행할 수 있음을 의심할 것이 없다.[九三以剛陽爲下之上 又居離之上 而不得中 躁動於革者也 在下而躁於變革 以是而行 則有凶也 然居下之上 事苟當革 豈可不爲也 在乎守貞正而懷危懼 順從公論 則可行之不疑]”라고 하였는바, 이 해석을 따르면 經文은 “가면 흉하니 正道를 지키고 위태로운 마음을 품어야 한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한편 朱子는 ‘征凶’과 ‘貞厲’를 두 가지의 경계로 보았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過剛으로 中하지 못하고 離의 極에 거하였으니, 變革에 조급히 동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占이 가면 흉하고 貞固함을 지키면 위태롭다는 경계가 있는 것이다.[過剛不中 居離之極 躁動於革者也 故其占有征凶貞厲之戒]”
역주15 (下)[上] : 저본에는 ‘下’로 되어 있으나, 注의 ‘自四至上’에 의거하여 ‘上’으로 바로잡았다.(北京大 整理本 참조)
역주16 所以征凶致危者……故曰有孚也 : ‘革言三就 有孚’를 王弼과 孔穎達은 ‘九三이 말한 개혁해야 한다는 말을 九四ㆍ九五ㆍ上六 세 爻가 모두 따라서 성취하였으므로 그 말이 공허하지 않게 되었음’의 의미로 보았는바, ‘三’을 上卦의 세 爻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有孚’를 ‘말이 공허하지 않고 實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三’을 ‘여러 번’의 뜻으로 보고 ‘革言三就 有孚’를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 세 번 모두 합하면 사람들이 믿음’의 의미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革言’은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의론을 이른다. 就는 이룸이며 합함이니,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말을 살펴보아 세 번 모두 합함에 이른다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신중함의 지극함이 이와 같으면 반드시 至當함을 얻어 이에 믿음이 있음을 말한 것이니, 자기가 자신할 수 있고 사람들이 믿는 바가 이와 같다면 개혁할 수 있는 것이다.[革言 謂當革之論 就 成也合也 審察當革之言 至於三而皆合 則可信也 言重愼之至能如是 則必得至當 乃有孚也 己可信而衆所信也如此 則可以革矣]”
역주17 (不)[革] : 저본에는 ‘不’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 의거하여 ‘革’으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8 又何之矣者……更又何往征伐矣 : 程伊川은 ‘又何之矣’를 ‘지극히 마땅함’의 의미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여러 사람의 의논을 상고해보아 세 번 합함에 이르렀다면 일이 지극히 마땅한 것이다. ‘又何之矣’는 바로 속담에 ‘다시 어디로 가겠느냐’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여 행한다면 바로 이치를 순히 하여 때로 행함이요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으로 하고자 함이 아니니, 반드시 그 마땅함을 얻으리라.[稽之衆論 至於三就 事至當也 又何之矣 乃俗語更何往也 如是而行 乃順理時行 非己之私意所欲爲也 必得其宜矣]”
역주19 處水火之際……吉也 : 王弼과 孔穎達은 九四가 九三의 개혁을 따르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經文의 ‘改命’도 ‘九三의 改命’으로 보았으며 ‘有孚改命’을 ‘九四가 九三의 改命을 믿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九四가 개혁의 형세와 개혁의 재주에 해당한다고 보아 ‘有孚改命’을 ‘九四가 上下의 신임을 받아서 변혁(개혁)함’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다만 程伊川은 ‘有孚’를 ‘九四에게 성실함이 있음’과 ‘다른 이들이 九四에 대한 믿음이 있음’의 두 가지 의미로 본 듯하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九四는 개혁의 성함이요, 陽剛은 개혁할 수 있는 재주요, 下體를 떠나 上體로 나아감은 개혁할 시기요, 水火의 즈음에 거함은 개혁할 형세요, 군주와 가까운 지위에 거함은 개혁할 임무를 맡은 것이요, 아래에 係應이 없음은 개혁할 意志요, 九로서 四에 거하여 剛柔가 서로 교제함은 개혁의 材用이다. 九四가 이미 이것을 갖추고 있으니, 개혁할 때를 당했다고 이를 만하다. 일이 뉘우칠 만한 뒤에 개혁하니, 개혁하여 마땅하면 그 뉘우침이 이에 없어지는 것이다. 개혁함이 이미 마땅하면 오직 至誠으로 처함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으면 命을 고쳐 길한 것이다. ‘改命’은 고쳐 만드는 것이니, 개혁함을 이른다. 일이 이미 마땅하고 弊害가 개혁되었으니, 정성으로써 행하여 윗사람이 믿어주고 아랫사람이 순종하면 길함을 알 수 있다.[九四 革之盛也 陽剛 革之才也 離下體而進上體 革之時也 居水火之際 革之勢也 得近君之位 革之任也 下无係應 革之志也 以九居四 剛柔相際 革之用也 四旣具此 可謂當革之時也 事之可悔而後革之 革之而當 其悔乃亡也 革之旣當 唯在處之以至誠 故有孚則改命吉 改命 改爲也 謂革之也 旣事當而弊革 行之以誠 上信而下順 其吉可知]”
역주20 信志者 信下之志而行其命也 : 經文에서의 해석이 달랐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王弼과 孔穎達은 ‘信志’를 ‘九四가 九三의 뜻을 믿는 것’으로 해석한 반면, 程伊川은 ‘上下가 九四의 뜻을 믿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주21 有似虎變 其文彪炳 : ‘虎變’을 王弼ㆍ孔穎達, 程伊川은 ‘범이 움직일 때 무늬가 화려하게 변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 듯하다. 반면 朱子는 “變은 가죽에 털이 드물어져 털갈이함을 이른다.[變 謂希革而毛毨也]”라고 하였다.
역주22 : 저본에는 ‘炳’으로 되어 있으나, 毛本에는 ‘細’로 되어 있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九五는 ‘虎變’인데 〈象傳〉에 ‘其文炳也’라 하였고, 上六은 ‘豹變’인데 〈象傳〉에 ‘其文蔚也’라고 하였으며, 上六 爻辭의 疏에 “雖不能同九五革命創制 如虎文之彪炳 然亦潤色鴻業 如豹文之蔚縟”이라 하여 虎文에는 ‘炳’자를 쓰고 豹文에는 ‘蔚’자를 썼는바, 이에 근거하여 볼 때 毛本을 따라 ‘細’로 고치는 것이 옳을 듯하다. 毛本에 의거하여 ‘細’로 교감하면, ‘文細而相暎蔚’은 ‘文章이 작으나 서로 비춰 아름다움’으로 번역된다.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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