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周易正義(3)

주역정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주역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國子祭酒上護軍曲阜縣開國子 臣 孔穎達 奉勅撰正義
王弼 注
하니 王假之하나니
豐은 형통하니, 王이어야 여기에 이르니,
[注]大而亨者 王之所至
크고 형통한 것은 王이 이르는 바이다.
[疏]正義曰:‘豐 亨’者, 豐, 卦名也. 彖及序卦, 皆以大訓豐也, 然則豐者, 多大之名, 盈足之義,
正義曰:[豐 亨] ‘豐’은 卦의 이름이다. 〈彖傳〉과 〈序卦傳〉에 모두 ‘大’로 ‘豐’을 訓하였으니, 그렇다면 ‘豐’은 많고 큼의 이름이고 가득 차고 풍족함의 뜻이니,
財多德大, 故謂之爲豐. 德大則无所不容, 財多則无所不齊, 无所擁礙, 謂之爲亨, 故曰“豐, 亨.”
재물이 많고 德이 크므로 이것을 ‘豐’이라 한 것이다. 德이 크면 용납하지 않는 바가 없고 재물이 많으면 구제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막히는 바가 없음을 일러 ‘亨’이라 한다. 그러므로 “豐은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王假之] ‘假’은 이름[至]이다. 豐亨의 道는 王이 숭상하는 바이니, 王者의 德을 소유한 이가 아니면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왕이어야 여기에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勿憂라야 宜日中이니라
근심이 없어야 해가 中天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마땅하다.
[注]豐之爲義 闡弘微細하여 通夫隱滯者也 爲天下之主하여 而令微隱者不亨이면 憂未已也 至豐亨이라야 乃得勿憂也
豐의 뜻은 미세한 것을 넓혀서 숨고 막힌 것을 통하게 하는 자이다. 天下의 주인이 되어서 은미한 자로 하여금 형통하게 하지 못하면 근심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豐亨에 이르러야 비로소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用夫豐亨不憂之德인댄 宜處天中하여 以徧照者也 曰 宜日中也라하니라
豐亨하여 근심하지 않는 德을 사용할진댄 하늘의 중앙에 처하여 사방을 두루 비추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해가 中天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勿, 无也. 王能至於豐亨, 乃得无復憂慮, 故曰“勿憂”也.
正義曰:‘勿’은 없음이다. 왕이 능히 豐亨에 이르러야 비로소 다시 근심하고 우려함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근심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豐亨하여 근심이 없는 德을 사용한 뒤에야 萬國에 군림하여 四方을 두루 비춰서 마치 해가 中天에 있을 때에 天下를 두루 비추는 것과 같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해가 中天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豐 大也
〈彖傳〉에 말하였다. “‘豐’은 크게 넓힘이니,
[注]音闡大之大也
〈‘大’는〉 音이 闡大의 大이다.
[疏]‘彖曰豐大也’
經의 [彖曰豐大也]
○正義曰:‘豐 大也’者, 釋卦名正是弘大之義也.
○正義曰:[豐 大也] 卦 이름이 바로 弘大의 뜻임을 해석한 것이다.
[疏]○注‘音闡大之大也’
○注의 [音闡大之大也]
○正義曰:‘闡’者, 弘廣之言. 凡物之大, 其有二種, 一者自然之大, 一者由人之闡弘使大.
○正義曰:[闡] 넓힌다는 말이다. 모든 물건의 큰 것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자연스레 큼이요, 하나는 사람이 넓힘으로 말미암아 커진 것이다.
豐之爲義, 旣闡弘微細, 則豐之稱大, 乃闡大之大, 非自然之大, 故音之也.
豐의 뜻이 이미 미세한 것을 넓힌 것이고 보면, ‘豐’을 大라고 칭함은 바로 ‘闡大’의 ‘大’이고 자연스레 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음을 단 것이다.
明以動이라이니 王假之 尙大也
밝고 動하므로 豐盛한 것이니, ‘왕이어야 여기에 이름’은 큼을 숭상하는 것이요,
[注]大者 王之所尙이라 至之也
큰 것은 王이 숭상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이른 것이다.
[疏]正義曰:‘動故豐’者, 此就二體, 釋卦得名爲豐之意. 動而不明, 未能光大, 資明以動, 乃能致豐, 故曰“明以動, 故豐”也.
正義曰:[動故豐] 이는 두 體를 가지고 卦의 이름을 얻은 것이 ‘豐’이 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動하되 밝지 못하면 光大(光明正大)하지 못하니, 밝음을 依賴하여 動하여야 비로소 풍성함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밝고 動하므로 풍성하다.”라고 한 것이다.
‘王假之 尙大也’者, 豐大之道, 王所崇尙, 所以王能至之, 以能尙大故也.
[王假之 尙大也] 豐大의 道는 왕이 숭상하는 바이니, 왕이어야 능히 여기에 이르는 까닭은 능히 큼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勿憂宜日中 宜照天下也
‘근심이 없어야 해가 中天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마땅함’은 天下를 비춤이 마땅한 것이다.
[注]以勿憂之德故 宜照天下也
근심하지 않는 德이기 때문에 천하를 비춤이 마땅한 것이다.
[疏]正義曰:日中之時, 徧照天下, 王无憂慮, 德乃光被, 同於日中之盈, 故曰“勿憂宜日中, 宜照天下也.”
正義曰:해가 中天에 있을 때에 天下를 두루 비추니, 王이 우려가 없어야 德이 비로소 光大하게 입혀져서 해가 중천에 있을 때의 가득함과 같아진다. 그러므로 “‘근심이 없어야 해가 中天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마땅함’은 천하를 비춤이 마땅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日中則昃하고 月盈則食하나니 天地盈虛 與時消息이온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해가 中天에 있으면 기울고 달이 차면 먹히나니, 하늘과 땅의 가득하고 빔도 때와 더불어 사라지고 자라나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며 하물며 귀신에 있어서랴.”
[注]豐之爲用 困於昃食者也 施於未足則尙豐하고 施於已盈則方溢하여 不可以爲常이라 具陳消息之道者也
豐의 쓰임은 기울고 먹히는 바에 곤궁한 것이다. 부족한 자에게 베풀면 풍부함을 숭상하고, 이미 가득 찬 자에게 베풀면 막 넘쳐서 떳떳함으로 삼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라지고 자라나는 道를 갖추어 말한 것이다.
[疏]正義曰:此孔子因豐設戒, 以上言王者以豐大之德, 照臨天下, 同於日中.
正義曰:이는 孔子가 豐卦를 인하여 경계를 베푸신 것이니, 이상은 王者가 豐大한 德을 가지고 天下에 밝게 임하여 해가 中天에 있는 것과 같음을 말씀한 것이다.
然盛必有衰, 自然常理. 日中至盛, 過中則昃, 月滿則盈, 過盈則食.
그러나 盛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음은 자연의 떳떳한 이치이다. 해가 중천에 있으면 지극히 盛하니 中을 지나면 기울고, 달이 圓滿(둥긂)해지면 가득 차니 가득 참이 지나면 먹힌다.
天之寒暑往來, 地之陵谷遷貿, 盈則與時而息, 虛則與時而消.
하늘의 추위와 더위가 오고감과 땅의 구릉과 골짜기가 변천함은, 가득하면 때와 더불어 불어나고 비면 때와 더불어 사라지는 이치이다.
天地日月尙不能久, 況於人與鬼神, 而能長保其盈盛乎. 勉令及時修德, 仍戒居存慮亡也.
하늘과 땅, 해와 달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과 귀신에 있어서 가득 차고 盛함을 길이 보존할 수 있겠는가. 제때에 미쳐서 德을 닦음을 힘쓰게 하고, 이어서 생존함에 있으면서 망함을 염려해야 한다고 경계한 것이다.
此辭先陳天地, 後言人鬼神者, 欲以輕譬重, 亦先尊後卑也.
이 글은 먼저 하늘과 땅을 말하고 뒤에 사람과 귀신을 말하였으니, 이는 가벼운 것을 가지고 무거운 것을 비유하고자 한 것이요, 또한 높음을 먼저하고 낮음을 뒤에 한 것이다.
而日月先天地者, 承上宜日中之下, 遂言其昃食, 因擧日月以對之, 然後幷陳天地, 作文之體也.
그런데 해와 달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는 것은 위의 ‘宜日中’의 아래를 이어받아서 마침내 ‘해가 기울고 달이 먹힘’을 말하고, 인하여 해와 달을 들어 상대한 뒤에 아울러 하늘과 땅을 말한 것이니, 문장을 짓는 체제이다.
象曰 雷電皆至 豐이니 君子以折獄致刑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름이 豐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獄訟을 결단하고 형벌을 加한다.”
[注]文明以動하여 不失情理也
文明으로써 動하여 情理를 잃지 않는 것이다.
正義曰:[雷電皆至 豐] ‘雷’는 하늘의 위엄이 動하는 것이요, ‘電’은 하늘의 빛남이다. 우레와 번개가 함께 이르면 위엄과 밝음이 갖추어져서 풍성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君子以折獄致刑’者, 君子法象天威而用刑罰, 亦當文明以動, 折獄斷決也.
[君子以折獄致刑] 군자가 하늘의 위엄을 본받고 형상하여 형벌을 사용하고 또한 마땅히 文明으로써 動하여 獄訟을 決斷해야 하는 것이다.
斷決獄訟, 須得虛實之情, 致用刑罰, 必得輕重之中. 若動而不明, 則淫濫斯及, 故君子象於此卦而折獄致刑.
獄訟을 결단함은 모름지기 虛實의 실정을 얻어야 하고, 형벌을 가하여 사용함은 반드시 輕重의 알맞음을 얻어야 한다. 만약 動하되 밝지 못하면 지나친 형벌이 이에 미친다. 그러므로 군자가 이 卦를 본받아서 獄訟을 결단하고 형벌을 加하는 것이다.
初九 遇其配主하니 雖旬이나 无咎하여하면 有尙하리라
初九는 짝 주인을 만나니, 비록 대등하나 허물이 없어서 가면 嘉尙한 일이 있으리라.
[注]處豐之初하여 其配在四하여 以陽適陽하니 以明之動으로 能相光大者也
豐의 처음에 처하여 그 짝이 九四에 있어서 陽으로서 陽에게 가니, 밝음의 動함으로써 능히 서로 光大하게 하는 자이다.
均也 雖均无咎하여 往有尙也 初四俱陽爻 曰 均也라하니라
‘旬’은 대등함이니, 비록 대등하나 허물이 없어서 가면 嘉尙함이 있는 것이다. 初九와 九四가 모두 陽爻이므로 “대등하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遇其配主’者, 豐者, 文明必動, 尙乎光大者也.
正義曰:[遇其配主] ‘豐’은 文明하면 반드시 動하여 光大함을 숭상하는 자이다.
初九의 짝이 九四에 있는데 〈初九와 九四〉 모두 陽爻여서 陽으로서 陽에게 가니, 밝음의 動함으로써 능히 서로 光大하게 해주는 자이다. 그러므로 “짝 주인을 만난다.”라고 한 것이다.
‘雖旬 无咎 往 有尙’者, 旬, 均也. 俱是陽爻, 謂之爲均.
[雖旬 无咎 往 有尙] ‘旬’은 대등함이다. 〈初九와 九四가〉 모두 陽爻이므로 이것을 일러 ‘대등함’이라 한 것이다.
非是陰陽相應, 嫌其有咎, 以其能相光大, 故雖均, 可以无咎, 而往有嘉尙也, 故曰“雖均, 无咎, 往, 有尙”也.
陰과 陽이 서로 應하는 것이 아니어서 허물이 있을까 혐의하나 능히 서로 光大하게 해주기 때문에 비록 대등하나 허물이 없을 수 있어서 가면 嘉尙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대등하나 허물이 없어서 가면 嘉尙한 일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雖旬无咎하니 過旬이면 災也리라
〈象傳〉에 말하였다. “비록 대등하나 허물이 없으니, 대등함을 지나면 재앙이 있을 것이다.”
[注]過均則爭하여 交斯叛也
대등함을 지나면 다투어서 사귀는 것이 이에 위배된다.
[疏]‘象曰’至‘災也’
經의 [象曰]에서 [災也]까지
○正義曰:‘過旬災’者, 言勢若不均, 則相傾奪.
○正義曰:[過旬災也] 형세가 만약 대등하지 않으면 서로 기울게 하고 빼앗음을 말한 것이다.
旣相傾奪, 則爭競乃興, 而相違背, 災咎至焉, 故曰“過旬災也.”
이미 서로 기울게 하고 빼앗으면 경쟁이 마침내 일어나서 서로 위배되어 재앙과 허물이 이른다. 그러므로 “대등함을 지나면 재앙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過均’至‘叛也’
○注의 [過均]에서 [叛也]까지
○正義曰:初ㆍ四應配, 謂之爲交, 勢若不均, 則初ㆍ四之相交, 於斯乖叛矣.
○正義曰:初九와 九四가 應하여 짝이 되는 것을 ‘交’라 하였으니, 세력이 만약 대등하지 않으면 初九와 九四가 서로 사귐이 이에 괴리되고 위배되는 것이다.
六二 豐其蔀 日中見斗하면 得疑疾이나 有孚發若하면하리라
六二는 떼적을 풍부하게 하였다. 해가 中天에 있는데도 斗星을 보니, 가면 의심받는 병을 얻으나 孚信이 있어 〈뜻을〉 발하면 吉하리라.
[注]蔀 覆曖 鄣光明之物也 處明動之時하여 不能自豐以光大之德하니
‘蔀’는 햇빛을 가리는 것이니, 光明을 막는 물건이다. 밝게 動하는 때에 처하여 스스로 光大한 德으로써 풍부하게 하지 못하니,
旣處乎內하고 而又以陰居陰하여 所豐在蔀하여 幽而无覩者也 曰 豐其蔀 日中見斗也라하니라
이미 안에 處하고 또 陰으로서 陰의 자리에 거하여 풍부한 바가 떼적에 있어서 그윽하여 보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떼적을 풍부하게 하였다.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斗星을 본다.”라고 한 것이다.
日中者 明之盛也 斗見者 闇之極也 處盛明而豐其蔀 曰 日中見斗라하니라
‘해가 중천에 있음’은 밝음이 盛한 것이고, ‘斗星이 보임’은 어둠이 지극한 것이니, 盛하게 밝을 때에 처하여 떼적이 풍부하다. 그러므로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斗星을 본다.”라고 한 것이다.
不能自發故 往得疑疾이나 然履中當位하여 處闇不邪하니 有孚者也
능히 스스로 발하지 못하므로 가면 의심받는 병을 얻는다. 그러나 中을 밟고 자리에 마땅하여 어둠에 처해서도 간사하지 않으니, 孚信이 있는 자이다.
辭也 有孚 可以發其志하여 不困於闇이라 獲吉也
‘若’은 어조사이다. 孚信이 있으면 그 뜻을 발하여 어둠에 곤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吉함을 얻는 것이다.
[疏]‘六二豐其蔀’至‘有孚發若吉’
經의 [六二豐其蔀]에서 [有孚發若吉]까지
○正義曰:‘豐其蔀’者, 二以陰居陰, 又處於內, 幽闇无所覩見, 所豐在於覆蔽,
○正義曰:[豐其蔀] 六二가 陰으로서 陰의 자리에 거하고 또 안에 처하여 그윽하고 어두워서 보이는 바가 없어 풍부한 바가 덮고 가림에 있다.
蔀者, 覆曖, 障光明之物也.
그러므로 “떼적을 풍부하게 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蔀’는 햇빛을 가리는 것이니, 光明을 막는 물건이다.
‘日中見斗’者, 二居離卦之中, 如日正中, 則至極盛者也. 處日中盛明之時, 而斗星顯見, 是二之至闇, 使斗星見明者也.
[日中見斗] 六二가 離卦의 가운데에 있어서 마치 해가 바로 中天에 있는 것과 같으니, 지극히 盛한 자이다. 해가 중천에 있어서 盛하게 밝은 때에 처하였는데도 斗星이 나타나 보이니, 이는 六二가 지극히 어두워서 斗星으로 하여금 밝음을 보이게 한 것이다.
光大한 세상에 처하여 지극히 어두운 행실을 함은, 비유하건대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斗星이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斗星을 본다.”라고 한 것이다.
六二와 六五가 모두 陰이니, 六二가 이미 斗星의 어둠을 보고 스스로 발하지 못하고서 스스로 六五을 구하여 가면 의심받는 병을 얻는다. 그러므로 “가면 의심받는 병을 얻는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六二가 中에 거하고 正位를 밟고 있어서 어둠에 처하여도 간사하지 않으니, 이는 孚信이 있는 자이다. 孚信이 있어서 스스로 자기의 뜻을 발하면 어둠에 곤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吉함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孚信이 있어 뜻을 발하면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象曰 有孚發若 信以發志也
〈象傳〉에 말하였다. “‘孚信이 있어 발함’은 孚信으로써 자신의 뜻을 발하는 것이다.”
[疏]正義曰:‘信以發志’者, 雖處幽闇, 而不爲邪, 是有信以發其豐大之志, 故得吉也.
正義曰:[信以發志] 비록 그윽하고 어둠에 처하였으나 간사함을 하지 않으니, 이는 孚信이 있어 그 豐大한 뜻을 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吉함을 얻는 것이다.
九三 豐其 日中見沬 折其右肱이면 无咎리라
九三은 휘장을 풍부하게 하였다. 해가 中天에 있는데 희미한 빛을 보니, 그 오른팔을 부러뜨리면 허물이 없으리라.
[注]沛 幡幔이니 所以禦盛光也 微昧之明也 應在上六하여 志在乎陰하니 雖愈乎以陰處陰이나 亦未足以免於闇也
‘沛’는 휘장[幡幔]이니, 盛한 빛을 막는 것이요, ‘沬’는 희미한 밝음이다. 應이 上六에 있어서 뜻이 陰에 있으니, 비록 陰爻로서 陰의 자리에 처한 〈六二보다는〉 나으나 또한 어둠을 면치 못한다.
所豐在沛하니 日中見沬之謂也 施明則見沬而已 施用則折其右肱이라 可以自守而已 未足用也
풍부한 바가 휘장에 있으니, 해가 中天에 있는데 희미한 빛을 봄을 말한 것이다. 밝음을 베풀면 희미한 빛을 볼 뿐이요, 씀에 베풀면 그 오른팔을 부러뜨린다. 그러므로 스스로 지킬 뿐이요 쓸 수가 없는 것이다.
[疏]正義曰:‘豐其沛 日中見沬’者, 沛, 幡幔, 所以禦盛光也. 沬, 微昧之明也.
正義曰:[豐其沛 日中見沬] ‘沛’는 휘장[幡幔]이니, 盛한 빛을 막는 것이다. ‘沬’는 희미한 밝음이다.
九三의 應이 上六에 있어서 뜻이 陰에게 있으니, 비록 陰爻로서 陰의 자리에 처한 六二보다는 나으나 또한 어둠을 면치 못한다. 이 때문에 풍부함이 휘장에 있어 해가 中天에 있는데 희미한 빛을 보는 것이다.
夫處光大之時, 而豐沛見沬, 雖愈於豐蔀見斗, 然施於大事, 終不可用.
光大한 때에 처하여 휘장을 풍부하게 해서 희미한 빛을 보니, 비록 떼적을 풍부하게 하여 斗星을 보는 것보다는 나으나 큰일에 베풀면 끝내 사용할 수가 없다.
가령 오른팔을 부러뜨려서 스스로 지킬 뿐이라면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오른팔을 부러뜨리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豐其沛 不可大事也
〈象傳〉에 말하였다. “‘휘장을 풍부하게 함’은 큰일을 할 수 없는 것이요,
[注]明不足也
밝음이 부족한 것이다.
[疏]正義曰:‘不可大事’者, 當光大之時, 可爲大事, 明不足, 故不可爲大事也.
正義曰:[不可大事] 光大한 때를 당하여 큰일을 할 수 있으나 밝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折其右肱 終不可用也
‘그 오른팔을 부러뜨림’은 끝내 쓸 수 없는 것이다.”
[注]雖有左在 不足用也
비록 왼팔이 남아 있으나 쓰지 못하는 것이다.
[疏]正義曰:‘終不可用’者, 凡用事在右肱, 右肱旣折, 雖有左在, 終不可用也.
正義曰:[終不可用] 무릇 일에 사용함은 오른팔에 달려 있으니, 오른팔이 이미 부러졌으면 비록 왼팔이 남아 있더라도 끝내 쓸 수 없는 것이다.
九四 豐其蔀 日中見斗 遇其夷主하면하리라
九四는 떼적을 풍부하게 하였다. 해가 中天에 있는데도 斗星을 보니, 그 평등(동등)한 주인을 만나면 吉하리라.
[注]以陽居陰 豐其蔀也 得初以發 夷主吉也
陽爻로서 陰의 자리에 거함은 떼적을 풍부하게 한 것이요, 初九를 얻어 發함은 평등한 주인을 만나 吉한 것이다.
[疏]正義曰:‘豐其蔀’者, 九四以陽居陰, 闇同於六二, 故曰“豐其蔀”也.
正義曰:[豐其蔀] 九四가 陽爻로서 陰의 자리에 처하여 어둠이 六二와 같다. 그러므로 “떼적을 풍부하게 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日中見斗 遇其夷主 吉’者, 夷, 平也, 四應在初, 而同是陽爻, 能相顯發, 而得其吉, 故曰“遇其夷主 吉”也.
[日中見斗 遇其夷主 吉] ‘夷’는 평등함이니, 九四의 應이 初九에 있는데 〈九四와 初九가〉 똑같이 陽爻이니, 능히 서로 드러내고 발하여 그 吉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평등한 주인을 만나면 吉하리라.”라고 한 것이다.
言四之與初, 交相爲主者, 若賓主之義也. 若據初適四, 則以四爲主, 故曰“遇其配主.”
‘九四와 初九가 서로 주인이 됨은 賓主의 뜻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初九가 九四에 가는 것에 근거하면 九四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짝 주인을 만난다.”라고 한 것이고,
自四之初, 則以初爲主, 故曰“遇其夷主”也. 二陽體敵, 兩主均平, 故初謂四爲旬, 而四謂初爲夷也.
九四가 初九에 가는 것으로 보면 初九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평등한 주인을 만난다.”라고 한 것이다. 두 陽의 體가 동등하여 두 주인이 세력이 동등[均平]하므로 初九가 九四를 일러 ‘旬(대등함)’이라 하고 九四가 初九를 일러 ‘夷(평등함)’라 한 것이다.
象曰 豐其蔀 位不當也 日中見斗 幽不明也 遇其夷主 吉行也
〈象傳〉에 말하였다. “‘떼적을 풍부하게 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요,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斗星을 봄’은 어두워 밝지 못한 것이요, ‘평등한 주인을 만남’은 나아감이 길한 것이다.”
[疏]正義曰:‘位不當’者, 止謂以陽居陰, 而位不當, 所以豐蔀而闇者也.
正義曰:[位不當] 다만 陽爻로서 陰의 자리에 거하여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이 때문에 떼적을 풍부하게 하여 어두운 것이다.
‘幽不明也’者, 日中盛則反而見斗, 以譬當光大而居陰, 是應明而幽闇不明也.
[幽不明也] 해가 中天에 있어 밝음이 盛한데도 도리어 斗星을 보니, 이는 ‘光大할 때를 당하여 陰의 자리에 거함은 바로 응당 밝아야 하는데 어두워서 밝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吉行也’者, 處於陰位, 爲闇已甚, 更應於陰, 无由獲吉, 猶與陽相遇, 故得吉行也.
[吉行也] 陰의 자리에 처하여 어둠이 이미 심하니, 다시 陰에 應하면 吉함을 얻을 길이 없으나 오히려 陽과 더불어 서로 만나기 때문에 ‘나아감이 吉함’을 얻는 것이다.
六五 來章有慶譽하니하니라
六五는 와서 德을 밝혀 福慶과 名譽(칭찬)가 있으니, 吉하다.
[注]以陰之質 來適尊陽之位하여 能自光大하여 章顯其德하여 獲慶譽也
陰의 자질로 높은 陽의 자리에 와서 능히 스스로 光大하여 그 德을 밝히고 드러내어 福慶과 名譽를 얻는 것이다.
正義曰:六五가 豐大한 세상에 처하여 陰柔의 자질로서 높은 陽의 자리에 와서 능히 스스로 光大하여 그 德을 밝히고 드러내어 福慶과 좋은 명예를 얻었다. 그러므로 “와서 德을 밝혀 福慶과 명예가 있으니, 길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六五之吉 有慶也
〈象傳〉에 말하였다. “六五의 吉함은 福慶이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有慶也’者, 言六五以柔處尊, 履得其中, 故致慶譽也.
正義曰:[有慶也] 六五가 柔로서 높은 자리에 처하고 밟음이 中을 얻었기 때문에 福慶과 명예를 이룬 것임을 말한 것이다.
上六 豐其屋하고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하여 三歲不覿하니하니라
上六은 지붕을 풍부하게 하고 그 집을 떼적으로 가렸다. 그 문을 엿봄에 조용하여 사람이 없어서 3년이 되어도 보지 못하니, 凶하다.
[注]屋 藏蔭之物이라 以陰處極而最在外하여 不履於位하여 深自幽隱하니 絶跡深藏者也
‘屋’은 감추고 그늘지게 하는 물건이다. 陰으로서 極에 처하여 가장 밖에 있어서 지위를 밟지 못하여 스스로 깊이 감추고 숨으니, 자취를 끊고 깊이 감춘 자이다.
旣豐其屋하고 又蔀其家하니 屋厚家覆 闇之甚也 雖闚其戶 闃其无人하여 棄其所處하여 而自深藏也
이미 그 지붕을 풍부히 하고 또 그 집을 떼적으로 가리니, 지붕이 두텁고 집이 가려짐은 어둠이 심한 것이다. 비록 그 문을 엿보나 조용하여 사람이 없어서 그 거처하는 바를 버리고 스스로 깊이 감추었다.
處於明動尙大之時하여 而深自幽隱하여 以高其行하니 大道旣濟어늘 而猶不見이면 隱不爲賢하여 更爲反道하니 凶其宜也
밝게 動하고 큼을 숭상하는 때에 처하여 스스로 깊이 감추고 숨어서 그 행실을 높히니, 大道가 이미 이루어졌는데 오히려 나타나지 않으면 숨음이 어짊이 되지 못하여 다시 道를 위반함이 되니, 흉함이 마땅한 것이다.
三年 豐道之成이라 治道未濟 隱猶可也어니와 旣濟而隱하니 以治爲亂者也
‘3년’은 豐의 道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스리는 道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숨는 것이 그래도 괜찮지만 이미 이루어졌는데 숨으니, 이는 다스려짐을 혼란함으로 삼는 자이다.
[疏]‘上六豐其屋’至‘不覿’
經의 [上六豐其屋]에서 [不覿]까지
○正義曰:[屋] 감추고 그늘지게 하여 은폐하는 물건이다. 上六이 陰爻로서 陰의 자리에 처하고 궁극하여 밖에 처해서 지위를 밟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깊이 감추고 숨어서 자취를 끊고 깊이 감추는 것이니, 일이 ‘지붕을 豐厚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旣豐厚其屋, 而又覆鄣其家, 屋厚家闇, 蔽鄣之甚也. 雖闚視其戶, 而闃寂无人, 棄其所處, 而自深藏也.
이미 그 지붕을 豐厚하게 하고 또 그 집을 덮고 가리니, 지붕이 두텁고 집이 어두움은 은폐함이 심한 것이다. 비록 그 문을 엿보나 조용하여 사람이 없어서 그 거처하는 바를 버리고 스스로 깊이 감춘다.
處於豐大之世, 隱不爲賢. 治道未濟, 隱猶可也, 三年豐道已成, 而猶不見, 所以爲凶,
豐大한 세상에 처하여 숨음은 어짊이 되지 못한다. 다스리는 道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숨는 것이 그래도 괜찮지만, 3년이 되면 豐의 道가 이미 이루어지는데 오히려 나타나지 않으니, 이 때문에 흉함이 되는 것이다.
故曰“豐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 三歲不覿, 凶.”
그러므로 “지붕을 풍부하게 하고 그 집을 떼적으로 가렸다. 그 문을 엿봄에 조용하여 사람이 없어서 3년이 되어도 보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豐其屋 天際翔也
〈象傳〉에 말하였다. “‘그 지붕을 풍부하게 함’은 하늘가에서 나는 것이요,
[注]翳光最甚者也
빛을 가림이 가장 심한 자이다.
正義曰:[天際翔也] 새가 하늘가에서 나는 것과 같으니, 숨고 가림이 심함을 말한 것이다.
闚其戶 闃其无人 自藏也
‘그 문을 엿봄에 조용하여 사람이 없음’은 스스로 감추는 것이다.”
[注]可以出而不出하니 自藏之謂也 非有爲而藏이라 不出戶庭이라도 失時致凶이어든 況自藏乎 凶其宜也
나올 수 있는데 나오지 않으니, 스스로 감춤을 말한 것인바, 훌륭한 일을 하려고 감추는 것이 아니다. 戶庭을 나오지 않더라도 때를 놓쳐 흉함을 이루는데 하물며 스스로 감춤에랴. 흉함이 당연한 것이다.
[疏]正義曰:自藏也者, 言非有爲而當自藏, 可以出而不出, 无事自爲隱藏也.
正義曰:[自藏也] 훌륭한 일을 하려고 스스로 감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나올 수 있는데도 나오지 않는 것이니, 일이 없이 스스로 숨고 감춤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豐亨之道……故曰王假之也 : ‘王假之’에 대하여 王弼은 ‘王之所至’라 하였는데, 孔穎達은 “王者의 德을 소유한 이가 아니면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하여 이를 ‘王者라야 豐亨의 道에 이를 수 있음’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程伊川 역시 이를 ‘王者라야 이를 수 있음’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天下의 光大함을 지극히 하는 자는 오직 王者만이 이를 수 있으니, 假은 이름[至]이다. 天位가 높고 四海가 부유하고 群生이 많고 王道가 커서 豐盛한 道를 지극히 함은 오직 王者일 것이다.[極天下之光大者 唯王者能至之 假 至也 天位之尊 四海之富 群生之衆 王道之大 極豐之道 其唯王者乎]”
역주2 勿无也……故曰宜日中也. : 王弼은 ‘勿’에 대해 분명하게 해석하지 않았으나 ‘用夫豐亨不憂之德’이라고 한 것에 근거하면 ‘勿’을 ‘不’로 해석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孔穎達은 ‘勿’을 ‘无’로 訓하였는바, 王이 豐亨에 이르면 우려가 없어진다고 본 것이다. 經文의 번역은 孔穎達의 訓을 따랐음을 밝혀둔다.
반면 程伊川은 ‘勿憂’를 아래의 ‘宜日中’과 연결하여 ‘근심하지 않으려면 해가 중천에서 비추듯이 해야 한다.’의 의미로 經文을 해석하였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豐盛의 때에는 人民이 많고 事物이 번성하니, 다스림에 어찌 두루하기가 쉽겠는가. 우려할 만하다. 마땅히 해가 中天에 있어 盛하게 밝고 널리 비추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듯이 한 뒤에야 근심이 없을 것이다.[豐之時 人民之繁庶 事物之殷盛 治之豈易周 爲可憂慮 宜如日中之盛明廣照 无所不及 然後无憂也]”
한편 朱子는 ‘勿憂’를 ‘근심하지 말아야 함’으로 보았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王者가 이에 이르면 성함이 지극하여 마땅히 쇠할 것이니, 또다시 근심할 道가 있다. 聖人이 ‘한갓 근심함은 유익함이 없으니, 다만 常道를 지켜 지나치게 성함에 이르지 않으면 可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말고 해가 中天에 있어 비추는 것과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王者至此 盛極當衰 則又有憂道焉 聖人以爲徒憂无益 但能守常 不至於過盛則可矣 故戒以勿憂 宜日中也]”
程伊川은 ‘日中’을 ‘성하게 밝고 널리 비춤’의 의미로 본 반면, 朱子는 ‘日中’을 ‘기울지 않은 常道’의 의미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하여 沙溪(金長生)는 “≪程傳≫의 뜻은 ‘해가 중천에 있어서 성하게 밝고 널리 비추듯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本義≫의 뜻은 ‘해가 중천에 있어서 기울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니, ≪程傳≫의 뜻이 옳은 듯하다.[傳意宜如日中之盛明廣照 義意宜日中勿使昃昳 傳意似長]”라고 평가하였다. ≪沙溪全書 經書辨疑 권15 周易≫
역주3 雷電皆至……足以爲豐也 : ‘雷電皆至’를 程伊川은 밝음과 진동함이 竝行하는 것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름은 밝음과 진동함이 병행하는 것이니, 두 體가 서로 합했으므로 ‘皆至’라고 말한 것이다. 明과 動이 서로 資賴하여 豐의 象을 이루었다. 離는 밝음이니 비추어 살피는 象이요, 震은 동함이니 위엄으로 決斷하는 象이다.[雷電皆至 明震竝行也 二體相合 故云皆至 明動相資 成豐之象 離 明也 照察之象 震 動也 威斷之象]”
역주4 遇其配主者……故曰遇其配主也 : ‘配主’에 대해서 王弼과 孔穎達은 특별히 해석하지 않았다. 다만 아래 九四 爻辭의 疏에서 “만약 初九가 九四에 가는 것에 근거하면 九四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짝 주인을 만난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바, 配主는 ‘자기와 짝[配]이 되는 주인’의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程伊川은 ‘配主’를 ‘자기가 나아가 찾아가서 짝하는 주인’ 즉 ‘높은 주인’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初九는 밝음의 처음이고 九四는 動함의 처음이니, 마땅히 서로 필요로 하여 그 쓰임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대등하나 서로 應하는 것이다. 자리가 서로 應하고 쓰임이 서로 依賴한다. 그러므로 初九가 九四를 일러 配主라 하였으니, 자기가 짝하는 것이다. 配는 비록 짝을 칭하나 찾아가는 자이니, 하늘에 짝하고 군자를 짝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初九는 九四에 대하여 配라 이르고, 九四는 初九에 대하여 夷(대등)라 이른 것이다.[初九 明之初 九四 動之初 宜相須以成其用 故雖旬而相應 位則相應 用則相資 故初謂四爲配主 己所配也 配雖匹稱 然就之者也 如配天以配君子 故初於四云配 四於初云夷也]”
역주5 (光)[也] : 저본에는 ‘光’으로 되어 있으나, 위의 經文과 毛本에 의거하여 ‘也’로 바로잡았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6 豐其蔀者……故曰豐其蔀也 : 六二는 밝음을 상징하는 離卦(☲)의 주체이며 또 中正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爻辭가 ‘밝음을 가리는 떼적을 풍부하게 함’이 된 이유에 대하여, 王弼과 孔穎達은 ‘六二가 陰爻로서 陰位에 거하고, 또 內卦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그 이유를 ‘六二가 柔暗한 六五와 응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는바, 다른 卦에서는 陰爻와 陰爻, 陽爻와 陽爻가 서로 응하지 않지만, 豐卦는 內卦(離卦)의 明과 外卦(震卦)의 動이 서로 자뢰하여야 豐을 이루므로, 初九와 九四가 응하는 것처럼, 六二와 六五도 응한다고 본 것이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明과 動이 서로 資賴하여야 豐을 이룰 수 있다. 六二는 밝음의 주체이고 또 中正을 얻었으니, 밝은 자라고 이를 만하나 六五가 正應의 자리에 있어 陰柔로 바르지 못하니, 動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二爻와 五爻가 비록 모두 陰이나 明과 動이 서로 자뢰하는 때에 있고 서로 應하는 처지에 있는데 五의 재주가 부족하니, 이미 應의 재주가 의뢰할 수 없다면 六二가 홀로 밝음은 豐을 이루지 못하고, 이미 豐을 이루지 못하면 밝은 功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떼적을 풍부하게 함이 되는 것이다.[明動相資 乃能成豐 二爲明之主 又得中正 可謂明者也 而五在正應之地 陰柔不正 非能動者 二五雖皆陰 而在明動相資之時 居相應之地 五才不足 旣其應之才不足資 則獨明不能成豐 旣不能成豐 則喪其明功 故爲豐其蔀]”
역주7 日中見斗者……故曰日中見斗也 : ‘斗’에 대하여 王弼은 특별한 해석이 없고, 孔穎達은 斗星이라고 하였으나 斗星에는 北斗星과 南斗星이 있는바, 程伊川은 ‘斗’를 북두성으로 보고 이를 ‘六二의 正應 자리에 있는 六五를 가리켜 한 말’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斗는 어두울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斗는 陰에 속하고 운행하여 四時를 고르게 함을 주장하니, 六五가 陰柔로서 君主의 지위에 당함을 형상하였다.[斗 昏見者也……斗 屬陰而主運平 象五以陰柔而當君位]” 북두성은 하루에 하늘을 한 바퀴 돌고 약간 더 돌아 1년에 366번을 도는바, 이는 말[斗]로써 하늘의 기운을 담아 사방에 고루게 나누어주는 것이라 한다.
역주8 二五俱陰……故曰往得疑疾也 : ‘疑疾’에 대하여 王弼은 분명한 해석이 없고, 孔穎達은 ‘의심받는 병’으로 풀이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의심과 미워함’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二가 비록 지극히 밝고 中正한 재질이나 만난 바가 바로 柔暗하고 바르지 못한 군주라서 이미 아래로 자기를 구하지 못하니, 만일 가서 구하면 도리어 의심과 시기와 미움을 얻으리니, 昏暗한 군주는 이와 같은 것이다.[二雖至明中正之才 所遇乃柔暗不正之君 旣不能下求於己 若往求之 則反得疑猜忌疾 暗主如是也]”
역주9 有信以自發其志……吉也 : ‘有孚發若 吉’을 王弼과 孔穎達은 ‘六二가 中正하여 孚信이 있으므로 자신의 뜻을 발하면 吉할 것임’의 의미로 해석하였는데, ‘자신의 뜻’이란 아래 〈象傳〉의 疏를 참조하면 ‘자신의 豐大한 뜻’을 말한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六二가 誠意로 六五의 의지를 感發시키면 길함’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君子가 윗사람을 섬길 적에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至誠을 다하여 윗사람의 意志를 感發시킬 뿐이다. 진실로 誠意로 감동시킨다면 비록 昏蒙하더라도 깨우칠 수 있고 비록 柔弱하더라도 보필할 수 있고 비록 바르지 않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 古人 중에 용렬한 군주와 보통의 군주를 섬기면서도 능히 그 道를 행한 자는 자신의 誠意가 위에 도달되어 군주가 신임하기를 돈독히 했기 때문이니, 管仲이 齊 桓公을 도운 것과 孔明(諸葛亮)이 後主(劉禪)를 輔弼함이 이것이다. 만일 誠信으로써 군주의 의지를 感發시킨다면 道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니, 바로 吉함이 되는 것이다.[夫君子之事上也 不得其心 則盡其至誠 以感發其志意而已 苟誠意能動 則雖昏蒙可開也 雖柔弱可輔也 雖不正可正也 古人之事庸君常主而克行其道者 己之誠意上達 而君見信之篤耳 管仲之相桓公 孔明之輔後主是也 若能以誠信 發其志意 則得行其道 乃爲吉也]”
역주10 : ‘斾(휘장)’와 같다.
역주11 (則) : 저본에는 ‘則’이 있으나, 岳本ㆍ宋本ㆍ古本ㆍ足利本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阮元의 〈校勘記〉 참조)
역주12 以九三應在上六……亦未見免於闇也 : 王弼과 孔穎達은 六二의 어두움이 九三보다 더 심하다고 보았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九三의 어두움이 六二보다 심하다고 하였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沛字는 古本에 旆字로 쓴 것이 있으며, 王弼은 幡幔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旆인 것이다. 幡幔은 안을 에워싸 가리는 것이니, 휘장을 풍부하게 한다면 그 어두움이 떼적보다도 더 심한 것이다. 九三은 밝은 體인데 도리어 九四보다 어두운 것은 應한 바가 陰暗이기 때문이다. 九三은 明體의 위에 거하고 陽剛으로 正을 얻었으니, 본래는 밝은 자이나 豐의 道는 반드시 明과 動이 서로 자뢰하여야 이루어지는데, 九三이 上六과 應하니, 上六은 陰柔이고 또 지위가 없으면서 震의 終에 처했으니, 이미 終이 되면 멈추니 動할 수 없는 자이다. 다른 卦는 終에 이르면 極이 되나 震은 終에 이르면 멈춘다. 九三은 上六의 應이 없으면 豐을 이루지 못한다. 沬는 별이 작아 이름이 없고 數에 들지 않는 것이니, 沬를 봄은 어둠이 심한 것이다. 豐의 때에 上六을 만남은 대낮에 작은 별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沛字 古本有作旆字者 王弼以爲幡幔 則是旆也 幡幔 圍蔽於內者 豐其沛 其暗更甚於蔀也 三 明體而反暗於四者 所應陰暗故也 三居明體之上 陽剛得正 本能明者也 豐之道必明動相資而成 三應於上 上 陰柔 又无位而處震之終 旣終則止矣 不能動者也 他卦 至終則極 震 至終則止矣 三 无上之應 則不能成豐 沬 星之微小无名數者 見沬 暗之甚也 豐之時而遇上六 日中而見沬者也]”
역주13 假如折其右肱……无咎 : 无咎에 대하여 王弼은 분명한 해석이 없고, 孔穎達은 ‘허물이 없음’으로 해석하였다.
반면 程伊川은 ‘허물을 돌릴 데가 없음’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행위가 잘못이 있으면 허물을 돌릴 곳이 있어 말하기를 ‘이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만일 動하고자 하나 오른팔이 없고 하고자 하나 위에 依賴할 바가 없다면 능하지 못할 뿐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허물을 돌릴 곳이 없는 것이다.[人之爲 有所失 則有所歸咎 曰 由是故致是 若欲動而無右肱 欲爲而上无所賴 則不能而已 更復何言 无所歸咎也]”
역주14 六五處豐大之世……吉也 : ‘來章有慶譽’를 王弼과 孔穎達은 ‘六五가 높은 陽位로 와서 스스로 德을 밝혔으므로 福慶과 칭찬이 있음’의 뜻으로 해석하였는바, ‘來章’을 ‘六五가 스스로 와서 자신의 德을 밝힘’의 의미로 본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이를 ‘밝은 이[章]를 오게 함’으로 해석하였으며, 이 占辭를 六五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고 경계와 가르침의 말로 보았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五가 陰柔의 재주로 豐의 주체가 되었으니, 진실로 豐大함을 이루지 못하나 만일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재주를 오게 하여 등용하면 福慶이 있고 또 아름다운 名譽를 얻을 것이니, 이른바 吉하다는 것이다. 六二는 文明하고 中正하니, 아름다운 재주이다. 五가 된 자가 진실로 어진 이를 데려다가 지위에 있게 하고 위임하면 豐大한 복경과 명예의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吉한 것이다. 章美의 재주는 六二를 주장하여 말한 것이지만, 初九와 九三ㆍ九四가 모두 陽剛의 재주이니, 六五가 어진 이를 등용하면 떼 지어 나올 것이다. 六二는 비록 陰이나 文明中正의 德이 있으니, 大賢으로 아래에 있는 자이다. 六五와 六二는 비록 陰陽의 正應이 아니나 明과 動이 서로 자뢰하는 때에 있어 서로 쓰임이 되는 뜻이 있으니, 六五가 만약 아름다움을 오게 하면 복경과 명예가 있어 吉할 것이다. 그러나 六五가 자신을 겸허하게 하여 어진 이에게 낮추는 뜻이 없으니, 聖人이 이 뜻을 가설하여 가르침을 삼으셨을 뿐이다.[五以陰柔之才 爲豐之主 固不能成其豐大 若能來致在下章美之才而用之 則有福慶 復得美譽 所謂吉也 六二文明中正 章美之才也 爲五者誠能致之在位而委任之 可以致豐大之慶名譽之美 故吉也 章美之才 主二而言 然初與三四皆陽剛之才 五能用賢則彙征矣 二雖陰 有文明中正之德 大賢之在下者也 五與二 雖非陰陽正應 在明動相資之時 有相爲用之義 五若能來章 則有慶譽而吉也 然六五无虛己下賢之義 聖人設此義以爲敎耳]”
역주15 上六……事同豐厚於屋者也 : 程伊川은 上六이 스스로 숨고 감추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上六이 陰柔의 재질로 豐의 極에 거하고 動의 終에 처했으니, 자만하고 큰 체하며 조급히 動함이 심하다. 豐大한 때에 처해서는 마땅히 겸손하고 굽혀야 하는데 처함이 지극히 높고, 豐大한 功을 이룸은 剛健함에 달려 있는데 體가 陰柔이며, 豐大한 임무를 감당함은 때를 얻음에 달려 있는데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니, 上六과 같은 자는 처지가 하나도 마땅함이 없는 것이니, 흉함을 알 수 있다. 집을 豐大하게 한 것은 너무 높음에 처한 것이요, 집에 떼적을 쳤다는 것은 밝지 못함에 거한 것이다. 陰柔로서 豐大에 거하고 지위가 없는 자리에 있으니, 이는 바로 高亢하고 昏暗하여 스스로 남과 끊는 것이니, 사람이 누가 그와 친하겠는가.[六以陰柔之質 而居豐之極 處動之終 其滿假躁動甚矣 處豐大之時 宜乎謙屈 而處極高 致豐大之功 在乎剛健 而體陰柔 當豐大之任 在乎得時 而不當位 如上六者 處无一當 其凶可知 豐其屋 處太高也 蔀其家 居不明也 以陰柔居豐大而在无位之地 乃高亢昏暗 自絶於人 人誰與之]”
역주16 天際翔也者……言隱翳之深也 : ‘天際翔也’에 대하여 王弼과 孔穎達은 분명한 해석이 없으나, 程伊川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上六이 豐大의 極에 처하여 위에 있으면서 스스로 높은 체하여 하늘가에서 飛翔하는 듯하니, 高大함이 심함을 이른 것이다.[六處豐大之極 在上而自高 若飛翔於天際 謂其高大之甚]”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