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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正義(3)

주역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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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정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未濟하니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하니라
未濟는 형통하니, 작은(어린) 여우가 물이 말라야 건너가니, 그 꼬리를 적시면 이로운 바가 없다.
[疏]正義曰:‘未濟 亨’者, 未濟者, 未能濟渡之名也. 未濟之時, 小才居位, 不能建功立德, 拔難濟險.
正義曰:[未濟 亨] ‘未濟’는 아직 물을 건너가지 못함의 이름이다. 未濟의 때에 작은 재주의 사람이 지위에 있으면 功을 세우고 德을 수립하지 못하여 어려움(患難)에서 벗어나고 험함을 건너가지 못한다.
若能執柔用中, 委任賢哲, 則未濟有可濟之理, 所以得通, 故曰“未濟, 亨.”
만약 柔를 지키고 中을 써서 賢哲한 자에게 위임하면 未濟에 건너갈 수 있는 이치가 있게 되니, 이 때문에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未濟는 형통하다.”라고 한 것이다.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者, 汔者, 將盡之名, 小才不能濟難,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汔’은 장차 다하는 이름이니, 작은 재주의 사람이 어려움을 구제하지 못하여
事同小狐雖渡水, 而无餘力, 必須水汔, 方可涉川.
그 일이 마치 작은 여우가 비록 물을 건너갈 수 있으나 남은 힘이 없어서 반드시 물이 마르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냇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다.
未及登岸, 而濡其尾, 濟不免濡, 豈有所利. 故曰“
미쳐 江岸에 오르기 전에 그 꼬리를 적셔서 건넘에 젖음을 면치 못하면 어찌 이로운 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작은 여우가 물이 말라야 건너가니, 그 꼬리를 적시면 이로운 바가 없다.”라고 한 것이다.
彖曰 未濟亨 柔得中也일새요
〈彖傳〉에 말하였다. “‘未濟가 형통함’은 柔가 中을 얻었기 때문이요,
[注]以柔處中 不違剛也 能納剛健故 得亨也
柔로서 中에 처함은 剛을 어기지 않는 것이니, 능히 剛健함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疏]正義曰:此就六五以柔居中, 下應九二, 釋未濟所以得亨.
正義曰:이는 六五가 柔로서 中에 거하고 아래로 九二에 應함을 가지고 未濟가 형통함을 얻은 이유를 해석하였다.
柔而得中, 不違剛也. 與二相應, 納剛自輔, 故於未濟之世, 終得亨通也.
柔하면서 中을 얻음은 剛을 어기지 않는 것이요, 九二와 서로 應함은 剛을 받아들여 스스로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未濟의 세상에 끝내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小狐汔濟 未出中也일새요
‘작은 여우가 물이 말라야 건너감’은 험한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요,
[注]小狐不能涉大川하여 須汔然後에야 乃能濟 處未濟之時하여 必剛健拔難然後에야 乃能濟하니 汔乃能濟 未能出險之中이라
작은 여우는 큰 냇물을 건너가지 못하여 물이 마르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건너갈 수 있다. 未濟의 때에 처하여 반드시 剛健함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건너갈 수 있으니, 물이 말라야 비로소 건너감은 험한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疏]正義曰:‘小狐汔濟 未出中也’者, 釋小狐涉川, 所以必須水汔乃濟, 以其力薄, 未能出險之中故也.
正義曰:[小狐汔濟 未出中也] 작은 여우가 물을 건널 적에 반드시 물이 마르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건너가는 이유는, 그 힘이 적어서 능히 그 험한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濡其尾 无攸利 不續終也일새라
‘그 꼬리를 적시면 이로운 바가 없음’은 계속하여 끝마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注]小狐雖能渡 而无餘力이라 將濟而濡其尾 力竭於斯하여 不能續終하니 險難 猶未足以濟也 濟未濟者 必有餘力也
작은 여우가 비록 물을 건널 수 있으나 남은 힘이 없다. 장차 건너려 하는데 꼬리를 적심은 힘이 여기에서 다해서 계속하여 끝마치지 못하는 것이니, 험난함을 아직도 건너가지 못한 것이다. 未濟를 건너는 자는 반드시 남은 힘이 있어야 한다.
[疏]正義曰:濡尾力竭, 不能相續而終, 至於登岸, 所以无攸利也.
正義曰:꼬리가 젖어 힘이 다해서 서로 계속하여 끝마쳐서 江岸에 오름에 이르지 못하니, 이 때문에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雖不當位 剛柔應也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剛과 柔가 應한다.”
[注]位不當故 未濟 剛柔應故 可濟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건너가지 못한 것이요, 剛과 柔가 應하기 때문에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
[疏]正義曰:‘雖不當位 剛柔應’者, 重釋未濟之義, 凡言未者, 今日雖未濟, 復有可濟之理.
正義曰:[雖不當位 剛柔應] ‘未濟’의 뜻을 거듭 해석한 것이니, 무릇 ‘未’라고 말한 것은 금일에는 비록 건너지 못하였으나 다시 건널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以其不當其位, 故卽時未濟, 剛柔皆應, 是得相拯, 是有可濟之理. 故稱未濟, 不言不濟也.
자기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즉시 건너가지는 못하나, 剛과 柔가 모두 應하니 이는 서로 구원해줌을 얻는 것이니 이는 건너갈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未濟’라고 일컫고 ‘不濟’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象曰 火在水上 未濟 君子以愼辨物居方하나니라
〈象傳〉에 말하였다.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이 未濟卦이니, 君子가 보고서 삼가 물건을 분별하여 方所(제자리)에 있게 한다.”
[注]辨物居方하여 令物各當其所也
물건을 분별하여 方所에 있게 하여 물건으로 하여금 각각 제자리에 마땅하게 하는 것이다.
[疏]正義曰:‘火在水上 未濟’者, 火在水上, 不成烹飪, 未能濟物. 故曰“火在水上, 未濟.”
正義曰:[火在水上 未濟] 불이 물 위에 있으면 음식을 삶음을 이루지 못하여 물건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이 未濟卦이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以愼辨物居方] 君子가 未濟의 때에 剛과 柔가 正位를 잃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삼감을 德으로 삼아서 여러 가지 물건을 변별해서 각각 方所에 거하게 하여 모두 方所에 편안히 있게 하니, 이 때문에 건너가는 것이다.
初六 濡其尾하니라
初六은 여우가 꼬리를 적시니, 부끄럽다.
[注]處未濟之初하여 最居險下하여 不可以濟者也어늘 而欲之其應하여 進則溺身이라
未濟의 처음(시초)에 처해서 가장 험한 아래에 거하여 건너갈 수 없는 자인데, 자기 應에게 가고자 하여 나아가면 몸을 빠뜨린다.
未濟之始 始於旣濟之上六也 濡其首로되 猶不反하여 至於濡其尾하면 不知紀極者也
未濟卦의 시초는 旣濟卦의 上六에서 시작되니, 〈旣濟卦의 上六에서〉 머리를 적시었으나 오히려 돌이키지 아니하여 그 꼬리를 적심에 이르면 그칠 줄[紀極]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이나 以陰處下하여 非爲進亢하여 遂其志者也 困則能反이라 不曰凶이라
그러나 陰으로서 아래에 처해서 나아가기를 亢極하게 하여 그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니, 곤궁하면 능히 돌아온다. 그러므로 “흉하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事在已量이어늘 而必困乃反하니 頑亦甚矣 曰 吝也라하니라
일은 잘 헤아림에 달려 있는데 반드시 곤궁하여야 비로소 돌아오니, 頑惡함이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疏]‘初六’至‘吝’
經의 [初六]에서 [吝]까지
○正義曰:初六處未濟之初, 最居險下, 而欲上之其應, 進則溺身, 如小狐之渡川, 濡其尾也.
○正義曰:初六이 未濟의 처음에 처해서 가장 험한 아래에 거하여 위로 應에게 가고자 해서 나아가면 몸을 빠뜨리니, 이는 작은 여우가 냇물을 건널 적에 그 꼬리를 적시는 것과 같다.
未濟之始, 始於旣濟之上六也, 旣濟上六, 但云“濡其首”, 言始入於難, 未沒其身,
未濟卦의 시초는 旣濟卦의 上六에서 시작되니, 旣濟卦의 上六에 다만 “머리를 적신다.”라고 말한 것은 처음 患難으로 들어가서 아직 그 몸을 빠뜨리지 않음을 말한 것이요,
此言“濡其尾”者, 進不知極, 已沒其身也. 然以陰處下, 非爲進亢, 遂其志者也, 困則能反, 故不曰“凶.”
여기에서 “꼬리를 적신다.”라고 말한 것은 나아감에 그칠 줄을 알지 못하여 이미 그 몸을 빠뜨린 것이다. 그러나 陰으로서 아래에 처해서 나아가기를 亢極하게 하여 그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니, 곤궁하면 능히 돌아온다. 그러므로 “흉하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不能豫昭事之幾萌, 困而後反, 頑亦甚矣, 故曰“吝”也.
일의 기미와 싹을 미리 밝게 알지 못하여 곤궁한 뒤에 돌아오니, 頑惡함이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不知紀極’
○注의 [不知紀極]
○正義曰:‘不知紀極’者, 言无休已也.
○正義曰:[不知紀極] ≪春秋左氏傳≫에 “聚斂하고 재물을 축적하여 그 紀極을 알지 못하는 것을 ‘饕餮’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不知紀極’은〉 쉬고 그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象曰 濡其尾 亦不知極也
〈象傳〉에 말하였다. “‘여우가 꼬리를 적심’은 또한 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正義曰:[亦不知極] 未濟卦의 처음은 旣濟卦의 上六에서 시작되니, 머리를 적시는데도 알지 못하고 마침내 그 꼬리를 적셨다. 그러므로 “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九二 曳其輪이나하여하니라
九二는 수레바퀴를 끄나 貞하여 吉하다.
[注]體剛履中하여 而應於五하고 五體陰柔하여 應與而不自任者也
〈九二는〉 體가 剛하고 中을 밟고 있으면서 六五에 應하고, 六五는 體가 陰柔여서 應에게 맡겨주고 스스로 맡지 않는 자이다.
居未濟之時하고 處險難之中하여 體剛中之質 而見任與하여 拯救危難하고 經綸屯蹇者也
〈九二는〉 未濟의 때에 거하고 險難한 가운데에 처하여 體가 剛中의 자질로서 위임을 받아서 危難을 구원하고 患亂을 經綸하는 자이다.
用健拯難하여 靖難在正하여 而不違中이라 曳其輪이나하여 吉也
강건함을 사용하여 환난을 구제해서 환난을 안정시킴이 바름에 있어서 中을 어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끄나 貞하여 吉한 것이다.
[疏]正義曰:‘曳其輪 貞吉’者, 九二居未濟之時, 處險難之內, 體剛中之質, 以應於五, 五體陰柔, 委任於二, 令其濟難者也.
正義曰:[曳其輪 貞吉] 九二가 未濟의 때에 거하고 험난한 안에 처하여 體가 剛中의 자질로서 六五에 應하며, 六五는 體가 陰柔여서 九二에게 委任하여 〈九二로〉 하여금 患難을 구제하게 하는 자이다.
靖難在正, 然後得吉, 故曰“曳其輪, 貞吉”也.
〈九二는〉 환난을 經綸하여 임무가 무겁고 근심이 깊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끈다.”라고 한 것이니, ‘수레바퀴를 끎’은 그 수고로움을 말한 것이다. 어려움을 안정시킴이 바름에 있은 뒤에야 吉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수레바퀴를 끄나 貞하여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九二貞吉 中以行正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九二의 貞吉은 中으로써 바름을 행하기 때문이다.”
[注]位雖不正이나 中以行正也
자리가 비록 바르지 않으나 中으로써 바름을 행하는 것이다.
[疏]正義曰:‘中以行正’者, 釋九二失位而稱貞吉者, 位雖不正, 以其居中, 故能行正也.
正義曰:[中以行正] ‘九二가 正位를 잃었는데도 貞吉이라고 칭한 이유는 자리가 비록 바르지 않으나 中에 거했기 때문에 바름을 행할 수 있는 것임’을 해석한 것이다.
六三 未濟 征凶하나 利涉大川하니라
六三은 未濟에 가면 흉하나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
[注]以陰之質 失位居險하여 不能自濟者也 以不正之身으로 力不能自濟어늘 而求進焉이면 喪其身也 曰 征凶也라하니라
陰의 자질로서 正位를 잃고 험함에 거하여 스스로 건너가지 못하는 자이다. 바르지 못한 몸으로 힘이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는데 나아가기를 구하면 그 몸을 망친다. 그러므로 “가면 흉하다.”라고 한 것이다.
二能拯難이어늘 而己比之하니 棄己委二하여 載二而行이면 溺可得乎 何憂未濟리오 曰 利涉大川이라하니라
九二가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데 자기가 九二와 가까이 있으니, 자기를 버리고 九二에게 맡겨서 九二를 싣고 가면 물에 빠질 수 있겠는가. 어찌 건너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未濟 征凶’者, 六三以陰柔之質, 失位居險, 不能自濟者也.
正義曰:[未濟 征凶] 六三이 陰柔의 자질로서 正位를 잃고 험함에 거하여 스스로 건너가지 못하는 자이다.
身旣不能自濟, 而欲自進求濟, 必喪其身. 故曰“未濟, 征凶”也.
몸이 이미 스스로 건너가지 못하는데 스스로 나아가 건너기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 몸을 망친다. 그러므로 “未濟에 가면 凶하다.”라고 한 것이다.
[利涉大川] 九二가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데 자기가 九二와 가까이 있으니, 만약 능히 자기를 버리고 九二에게 맡기면 물에 빠짐을 면할 수 있다.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未濟征凶 位不當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未濟에 가면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位不當’者, 以不當其位, 故有征則凶.
正義曰:[位不當] 그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가면 흉한 것이다.
九四하면하여 悔亡하리니 震用伐鬼方하여 三年 有賞于大國이로다
九四는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니, 진동하여 鬼方을 정벌해서 3년 만에 큰 나라로 賞을 주도다.
[注]處未濟之時하여 而出險難之上하고 居文明之初하여 體乎剛質하여 以近至尊하니 雖履非其位 志在乎正이면 則吉而悔亡矣
未濟의 때에 처하여 험난함(坎)의 위로 나오고 文明(離)의 처음에 거하여 體가 剛한 자질이면서 至尊과 가까우니, 비록 밟고 있는 것이 正位가 아니나 뜻이 바름에 있으면 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其志得行하여 靡禁其威 曰 震用伐鬼方也라하니라 伐鬼方者 興衰之征也 每至興衰而取義焉이라
그 뜻이 행해져 그 위엄을 禁하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진동하여 鬼方을 정벌한다.”라고 한 것이다. ‘伐鬼方’은 쇠약함을 일으키는 정벌이다. 그러므로 매번 쇠약함을 일으킴에 이르면 여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處文明之初하여 始出於難하여 其德未盛이라 曰 三年也라하니라
文明의 초기에 처하여 처음으로 험난함에서 나와 그 德이 아직 盛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3년”이라고 한 것이다.
五居尊以柔하여 體乎文明之盛하여 不奪物功者也 以大國賞之也
六五가 柔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여 文明의 盛함을 體行해서 남의 功을 빼앗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큰 나라로써 상을 주는 것이다.
[疏]正義曰:居未濟之時, 履失其位, 所以爲悔. 但出險難之外, 居文明之初, 以剛健之質, 接近至尊, 志行其正,
正義曰:未濟의 때에 거하여 밟은 것이 正位를 잃었으니, 이 때문에 뉘우침이 되는 것이다. 다만 험난함의 밖으로 나오고 文明한 처음에 거하여 剛健한 자질로 至尊에 접근해서 뜻이 바름을 행하려 하니,
正則貞吉而悔亡, 故曰“貞吉, 悔亡.” 正志旣行, 靡禁其威, 故震發威怒, 用伐鬼方也.
바르면 貞吉하여 후회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바른 뜻이 이미 행해졌으면 그 위엄을 禁하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위엄과 노여움을 진동하여 발해서 鬼方을 정벌한 것이다.
然處文明之初, 始出於險, 其德未盛, 不能卽勝, 故曰“三年”也.
그러나 文明의 초기에 처하여 처음으로 험난함에서 나와 그 德이 아직 盛하지 못하여 즉시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3年”이라 한 것이다.
五以順柔文明而居尊位, 不奪物功, 九四旣克而還, 必得百里大國之賞, 故曰“有賞於大國”也.
六五가 順柔하고 文明함으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여 남의 功을 빼앗지 않으니, 九四가 이미 승리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百里가 되는 큰 나라를 賞으로 얻는다. 그러므로 “큰 나라로 賞을 준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貞吉悔亡 志行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짐’은 뜻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疏]正義曰:‘志行’者, 釋九四失位而得貞吉悔亡者也, 以其正志得行, 而終吉故也.
正義曰:[志行] 九四가 正位를 잃었으나 ‘貞하면 吉해서 뉘우침이 없어짐’을 얻은 이유를 해석한 것이니, 바른 뜻이 행해져서 끝내 吉하기 때문이다.
六五 貞吉이라야 无悔 君子之光 有孚하니라
六五는 貞하여 吉하여야 뉘우침이 없으니, 君子의 광채가 믿음이 있어 吉하다.
[注]以柔居尊하고 處文明之盛하여 爲未濟之主 必正然後乃吉이요 吉乃得无悔也
柔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고 文明의 盛함에 처하여 未濟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바른 뒤에야 비로소 吉하고, 吉하여야 비로소 뉘우침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夫以柔順文明之質 居於尊位하여 付與於能하고 而不自役하여 使武以文하고 御剛以柔하면 斯誠君子之光也
柔順하고 文明한 자질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능한 자에게 맡겨주고 스스로 일하지 아니하여 武를 부리기를 文으로써 하고 剛을 어거하기를 柔로써 하면 이는 진실로 군자의 광채이다.
하여 而不疑也하면 物則竭力하여 功斯克矣 曰 有孚이라하니라
남에게 맡기기를 능함으로써 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남이 힘을 다하여 功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吉하다.”라 한 것이다.
[疏]正義曰:‘貞吉 无悔’者, 六五以柔居尊, 處文明之盛, 爲未濟之主,
正義曰:[貞吉 无悔] 六五가 柔로서 높은 지위에 거하고 文明의 盛함에 처하여 未濟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바른 뒤에야 비로소 吉하고, 吉하여야 비로소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貞하여 吉하여야 뉘우침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君子之光’者, 以柔順文明之質, 居於尊位, 有應於二, 是能付物以能, 而不自役, 有君子之光華矣, 故曰“君子之光”也.
[君子之光] 柔順하고 文明한 자질로 높은 지위에 있고 二에 應이 있으니, 이는 남에게 맡기기를 능함으로써 하고 스스로 일하지 아니하여 君子의 光華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의 광채”라고 한 것이다.
[有孚 吉] 남에게 맡기기를 능함으로써 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남이 그 정성을 다하여 功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吉하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君子之光 其暉吉也
〈象傳〉에 말하였다. “‘君子의 광채’는 그 빛이 吉한 것이다.”
[疏]正義曰:‘其暉吉’者, 言君子之德, , 然後乃得吉也.
正義曰:[其暉吉] 君子의 德이 그 광채가 밝게 드러난 뒤에 비로소 吉함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上九 有孚于飮酒 无咎어니와 濡其首하니 有孚하여 失是로다
上九는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으나, 머리를 적시니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
[注]未濟之極이면 則反於旣濟하나니 旣濟之道 所任者當也
未濟가 지극하면 旣濟로 돌아오니, 旣濟의 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所任者當이면 則可信之无疑하여 而己逸焉이라 曰 有孚于飮酒하면 无咎也라하니라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아서 자기가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以其能信於物故 得逸豫而不憂於事之廢하니 苟不憂於事之廢하고 而耽於樂之甚이면 則至于失節矣
능히 남을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얻어서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일이 폐해짐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탐하기를 심하게 하면 절제함을 잃는 데에 이른다.
由於有孚하여 失於是矣 曰 濡其首하니 有孚하여 失是也라하니라
이는 믿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시니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正義曰:‘有孚于飮酒 无咎’者, 上九居未濟之極, 則反於旣濟. 旣濟之道, 則所任者當也.
正義曰:[有孚于飮酒 无咎] 上九가 未濟의 極에 거하였으니 旣濟로 돌아간다. 旣濟의 道는 맡긴 자가 합당한 것이다.
맡긴 자가 합당하면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실 뿐이다. 이 때문에 “믿음이 있어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濡其首] 이미 ‘스스로 편안하여 술을 마심’을 얻었으나 절제할 줄을 알지 못하면 머리를 적시는 患難이 또다시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머리를 적신다.”라고 한 것이다.
[有孚 失是] 머리를 적시는 환난이 미치게 된 이유는 진실로 사람을 얻음에 신임하여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서 이것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象曰 飮酒濡首 亦不知節也일새라
〈象傳〉에 말하였다. “술을 마셔서 머리를 적심은 또한 절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疏]正義曰:‘亦不知節’者, 釋飮酒所以致濡首之難, 以其不知止節故也.
正義曰:[亦不知節] 술을 마심이 머리를 적시는 患難을 불러온 이유는 그치고 절제할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임을 해석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難)[能] : 저본에는 ‘難’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에 의거하여 ‘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小狐汔濟……无攸利也 : 程伊川은 ‘汔’을 ‘仡(용감함)’로 보았는바, ‘汔濟’를 ‘삼가지 못하고서 과감히 물을 건넘’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未濟의 때에는 亨通할 이치가 있고 卦의 재질이 다시 亨通함을 이룰 道가 있으니, 오직 신중히 대처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여우는 물을 건너갈 수 있으나 꼬리를 적시면 건너가지 못하니, 늙은 여우는 의심과 두려움이 많기 때문에 얼음을 밟으면서 물소리를 들으니 빠질까 두려워해서요, 어린 여우는 두려워하고 삼가지 못하기 때문에 건넘에 용감한 것이다. 汔은 마땅히 仡이 되어야 하니, 壯勇한 모양이다. ≪書經≫에 ‘仡仡勇夫’라 하였다. 어린 여우가 건넘에 과감하면 꼬리를 적시어 건너지 못한다. 未濟의 때에 이루기를 구하는 방도를 마땅히 지극히 신중히 하면 亨通할 것이요, 만일 어린 여우처럼 과감히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니, 이미 이루지 못하면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未濟之時 有亨之理 而卦才復有致亨之道 唯在愼處 狐能渡水 濡尾則不能濟 其老者多疑畏 故履冰而聽 懼其陷也 小者則未能畏愼 故勇於濟 汔當爲仡 壯勇之狀 書曰 仡仡勇夫 小狐果於濟 則濡其尾而不能濟也 未濟之時 求濟之道 當至愼 則能亨 若如小狐之果 則不能濟也 旣不能濟 无所利矣]”
한편 朱子는 ‘汔’을 ‘거의’로 보았는바, 井卦의 卦辭인 ‘汔至亦未繘井’에서는 程伊川도 ‘汔’을 ‘幾’로 해석한 바 있다. ≪本義≫는 다음과 같다. “汔은 거의이니, 거의 건너가서 꼬리를 적심은 건너가지 않음과 같다.[汔 幾也 幾濟而濡尾 猶未濟也]”
역주3 君子以愼辨物居方者……所以濟也 : 朱子는 불이 위에 있고 물이 아래에 있는 것이 불과 물이 각각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라고 보아, “물과 불의 다른 물건이 각기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君子가 象을 관찰하여 살펴 분별하는 것이다.[水火異物 各居其所 故君子觀象而審辨之]”라고 하였다.
역주4 春秋傳曰……謂之饕餮(도철) : ≪春秋左氏傳≫ 文公 18년조에, “음식을 탐하고 재물을 탐하여 침탈하려는 욕심이 많아서 만족할 줄을 몰라 聚斂하고 재물을 축적하여 그 紀極을 알지 못해서 孤兒나 寡婦에게 나눠주지 않고 궁핍한 사람을 구휼하지도 않으니, 천하의 백성이 이를 三凶에 비교하여 ‘饕餮’이라고 한다.[貪于飮食 冒于貨賄 侵欲崇侈 不可盈厭 聚斂積實 不知紀極 不分孤寡 不恤窮匱 天下之民以比三凶 謂之饕餮]”라고 보인다.
역주5 亦不知極者……故曰不知極也 : 程伊川은 ‘不知極’을 ‘不知가 지극함’으로 보아, “자신의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서 꼬리를 적심에 이름은 이는 알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다.[不度其才力而進 至於濡尾 是不知之極也]”라고 하였다. 반면 朱子는 “極字는 未詳이다. 上下의 韻을 상고해도 맞지 않으니, 혹 敬字일 듯하니, 이제 우선 빼놓는다.[極字未詳 考上下韻 亦不叶 或恐是敬字 今且闕之]”라고 하였다.
역주6 曳其輪貞吉者……言其勞也 : ‘曳其輪’을 孔穎達은 수고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朱子는 旣濟卦의 初九 爻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를 ‘멈추고 나아가지 않음의 象’으로 보았다. 한편 程伊川은 이를 ‘천천히 나아가는 象’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다른 卦에 있어서는 九가 二에 거함이 柔에 거하고 中을 얻음이 되어 지나치게 剛한 뜻이 없으나 未濟에 있어서는 聖人이 卦象을 깊이 취하여 경계해서 윗사람을 섬김에 恭順히 하는 도리를 밝히셨다. 未濟는 君主의 道가 艱難한 때이다. 六五가 柔로서 君位에 처하였고, 九二가 剛陽의 재질로 서로 應하는 위치에 처하였으니, 마땅히 쓰여질 자이다. 剛은 柔를 능멸하는 뜻이 있고 물은 불을 이기는 象이 있다. 군주가 艱難한 때를 당하여 군주가 의뢰할 것은 재주 있는 신하이니, 신하는 더욱 마땅히 恭順한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수레를 뒤로 끌 듯하여 급속히 하지 않으면 正을 얻어 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수레바퀴를 뒤로 끌어 그 氣勢를 줄이고 그 나아감을 늦춰야 하니, 剛을 쓰기를 지나치게 함을 경계한 것이니, 剛함이 지나치면 윗사람을 범하기 좋아하여 순함이 부족하다.[在他卦 九居二 爲居柔得中 无過剛之義也 於未濟 聖人深取卦象以爲戒 明事上恭順之道 未濟者 君道艱難之時也 五以柔處君位 而二乃剛陽之才 而居相應之地 當用者也 剛有陵柔之義 水有勝火之象 方艱難之時 所賴者 才臣耳 尤當盡恭順之道 故戒曳其輪則得正而吉也 倒曳其輪 殺其勢 緩其進 戒用剛之過也 剛過則好犯上而順不足]
역주7 利涉大川者……故曰利涉大川 : ‘利涉大川’을 王弼과 孔穎達은 ‘六三이 자기를 버리고 九二에게 맡기면 大川을 건널 수 있음’의 의미로 보았다.
그러나 程伊川은 이를 ‘上九를 따름’으로 보았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위에 剛陽의 應이 있으니, 만약 험함을 건너고 가서 따른다면 구제할 것이다.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六三의 陰柔가 어찌 험함을 벗어나서 갈 수 있겠는가. 때가 不可한 것이 아니요, 재주가 능하지 못한 것이다.[上有剛陽之應 若能涉險而往從之 則濟矣 故利涉大川也 然三之陰柔 豈能出險而往 非時不可 才不能也]”
朱子의 ≪本義≫는 다음과 같다. “陰柔이고 中正하지 못함으로 未濟의 때에 거하였으니, 그대로 가면 흉하다. 그러나 柔로서 剛을 타고 장차 坎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利涉大川의 象이 있다. 그러므로 그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길을 가는 자는 水上으로 떠갈 것이요 陸地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혹자는 ‘利’자 위에 마땅히 ‘不’자가 있어야 한다고 의심한다.[陰柔不中正 居未濟之時 以征則凶 然以柔乘剛 將出乎坎 有利涉之象 故其占如此 蓋行者可以水浮 而不可以陸走也 或疑利字上 當有不字]”
朱子가 말한 혹자의 說대로라면 ‘不利涉大川’이 되어 ‘大川을 건넘에 이롭지 못함’이 되는바, 程伊川 역시 “때가 불가한 것이 아니요, 재주가 능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征凶’과 ‘利涉大川’은 뜻이 서로 맞지 않고 중간에 역접사가 없으며, 〈象傳〉에서 ‘利涉大川’을 따로 해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혹자의 설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역주8 付物以能 :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에 맞는 일을 맡긴다는 뜻이다.
역주9 貞吉无悔者……无悔也 : 王弼과 孔穎達은 无悔의 조건을 吉로 보고, 또 吉의 조건을 貞으로 보았는바, 이는 “貞吉 无悔”를 경계의 말로 본 것이다.
반면 程伊川과 朱子는 六五가 이미 貞吉을 얻은 것으로 보아 이를 경계의 말로 보지 않았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六五는 文明의 주체로 剛에 거하고 剛에 應하며 그 처함이 中을 얻어서 마음을 비워 陽에게 보필을 받으니, 비록 柔로서 尊位에 거하였으나 처하기를 지극히 바르게 하고 지극히 善하게 하니, 부족함이 없다. 이미 貞正함을 얻었기 때문에 吉하여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貞은 固有한 것으로 경계함이 아니니, 이와 같이 하여 구제하면 구제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五 文明之主 居剛而應剛 其處得中 虛其心而陽爲之輔 雖以柔居尊 處之至正至善 无不足也 旣得貞正 故吉而无悔 貞其固有 非戒也 以此而濟 无不濟也]”
역주10 有孚吉者……吉也 : 위에는 ‘貞吉’이 있고 아래에는 ‘有孚吉’이 있어 ‘吉’자가 중첩되는바, 이에 대하여 程伊川은 “위에서 말한 吉은 貞하기 때문이니 柔하면서 貞함은 德의 吉함이요, 아래에서 말한 吉은 功 때문이니, 이미 빛나고 진실함이 있으면 당시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上云吉 以貞也 柔而能貞 德之吉也 下云吉 以功也 旣光而有孚 時可濟也]”라고 하였다. 한편 朱子는 “吉하고 또 吉하다.[吉而又吉也]”라고 하였다.
역주11 光暉著見 : ‘暉’에 대하여 孔穎達은 ‘光暉著見’으로 해석하여 ‘暉’를 ‘輝’와 동일하게 보아 ‘광채’로 해석하였으나, 程伊川과 朱子는 모두 “暉는 빛이 발산된 것이다.[暉 光之散也]”라고 하여 앞의 ‘光’이 광채이고 ‘暉’는 광채가 더욱 발산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주12 有孚于飮酒无咎者……无咎 : ‘有孚于飮酒’를 王弼과 孔穎達은 ‘일을 남에게 맡기고서 그 사람을 믿으므로 자기는 편안함을 얻어 술을 마심’의 의미로 보았다.
반면 程伊川은 이를 ‘義와 命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함’의 의미로 보았는데, 未濟는 極이 되었다고 해서 구제할 이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程傳≫은 다음과 같다. “上九는 剛으로서 위에 있으니 剛함이 지극하고, 밝음의 위에 거하였으니 밝음이 지극하다. 剛함이 지극하면서도 밝으면 조급함이 되지 않고 결단함이 되니, 밝으면 사리를 밝힐 수 있고 剛하면 義理로 결단할 수 있다. 未濟의 極에 거하여 구제할 수 있는 지위를 얻지 않으면 구제할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마땅히 하늘을 즐거워하고 命을 순히 할 뿐이다. 否가 끝나면 기욺이 있는 것은 때가 변했기 때문이요, 未濟는 極이 되었다고 하여 스스로 구제할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未濟의 極이 될 뿐이니, 至誠으로 義와 命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九以剛在上 剛之極也 居明之上 明之極也 剛極而能明 則不爲躁而爲決 明能燭理 剛能斷義 居未濟之極 非得濟之位 无可濟之理 則當樂天順命而已 若否終則有傾 時之變也 未濟則无極而自濟之理 故止爲未濟之極 至誠安於義命而自樂 則可无咎]”
한편 朱子는, 程伊川과 다르게, 未濟의 極에 이르면 이제 곧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므로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보았는바, ≪本義≫는 다음과 같다. “剛明으로 未濟의 極에 거하여 때가 장차 일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기르면서 命을 기다리니, 无咎의 道이다.[以剛明居未濟之極 時將可以有爲 而自信自養以俟命 无咎之道也]”
역주13 濡其首者……故曰濡其首也 : 王弼과 孔穎達은 旣濟卦 上六의 ‘濡其首’와 未濟卦 初六의 ‘濡其尾’, 上九의 ‘濡其首’를 서로 연관시켜, 旣濟卦 上六의 ‘濡其首’는 ‘머리만 적신 것’이고 未濟卦의 ‘濡其尾’는 ‘꼬리까지 완전히 적신 것’이고 上九의 ‘濡其首’는 ‘머리를 적시는 患難이 또다시 이르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程伊川과 朱子는 이 셋을 서로 연관시키지 않았다.
역주14 有孚失是者……失是也 : ‘失是’를 王弼과 孔穎達은 ‘失於是’로 주석하여 ‘이것을 잃은 것’으로 보았으나, 程伊川과 朱子는 모두 ‘是’를 ‘옳음과 마땅함’으로 해석하였는바, ≪程傳≫은 다음과 같다. “有孚는 스스로 마음속에 믿는 것이요, 失是는 그 마땅함을 잃는 것이니, 이와 같으면 有孚에 잃음이 된다.[有孚 自信于中也 失是 失其宜也 如是則於有孚爲失也]”

주역정의(3) 책은 2019.10.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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