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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韜直解

육도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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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戰步者 以步兵으로 與車騎戰하여 而欲取勝也
武王 問太公曰
步兵 與車騎戰 奈何
太公曰
步兵 與車騎戰者 必依丘陵險阻하여 長兵强弩 居前하고 短兵弱弩 居後하여 發更止 敵之車騎雖衆而至 堅陣疾戰하고 材士强弩 以備我後니이다
原注
武王 問太公曰
步兵 與車騎戰 爲之奈何
太公對曰
步兵 若與車騎戰이면 必依丘陵險阻之地하여 以長兵强弩居前하고 以短兵弱弩居後하여 更迭而發하고 更迭而止 敵人車騎雖衆而至 吾堅陣疾戰하고 以材士强弩 防備其後
武王曰
吾無丘陵하고 又無險阻하며 敵人之至 旣衆且武하여 車騎翼我兩旁하고 獵我前後 吾三軍恐怖하여 亂敗而走하리니 爲之奈何
原注
武王問曰
吾無丘陵險阻而依之하고 敵人之至 旣衆하고 且多武勇하여 以車騎 翼擊我兩旁하고 獵取我前後하면 吾三軍 驚恐畏怖하여 皆亂敗而走하리니 則爲之奈何
太公曰
令我士卒 爲行馬, 木蒺藜하고 置牛馬隊伍하며 爲四武衝陣이라가
望敵車騎將來어든 均置蒺藜하고 掘地호되 廣深五尺이니 名曰命籠이라
人操行馬하고 進步闌車以爲壘하여 推而前後하여 立而爲屯하며 材士强弩 備我左右 然後 令我三軍으로 니이다
武王曰
善哉
原注
太公對曰
令我士卒 爲行馬木蒺藜하고 置牛馬隊伍 牛馬隊伍之類 是也
又令銳士 結爲四武衝陣이라가 望敵車騎將來어든 均置蒺藜하고 掘地周匝호되 廣深各五尺이니 名曰命籠이라
令人操行馬하여闌車以爲壘하여 推而前하고 推而後하여 立之以爲屯하며 材士强弩 備禦左右 然後 令我三軍으로 皆與之疾戰이면 而必得解免이라
武王曰 公言 善哉


原注
전보戰步보병步兵을 가지고 적의 전거戰車 부대와 기병騎兵 부대와 싸워서 승리를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왕武王태공太公에게 물었다.
보병步兵이 적의 전거戰車 부대와 기병騎兵 부대와 싸울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보병步兵이 적의 전거戰車 부대와 기병騎兵 부대와 싸울 경우에는, 반드시 구릉과 험한 곳에 의지해서, 긴 병기兵器와 강한 궁노弓弩를 사용하는 부대는 전면에 있고 짧은 병기와 약한 궁노를 사용하는 부대는 후면에 있어서 번갈아 출동하고 번갈아 중지해야 하니, 적의 전거戰車기병騎兵이 비록 많이 몰려오더라도 진영을 굳게 수비하고 맹렬히 싸우며, 재능이 뛰어난 병사와 강한 궁노弓弩 부대로 우리의 후미를 방비해야 합니다.”
原注
무왕武王태공太公에게 물었다.
보병步兵이 적의 전거戰車 부대와 기병騎兵 부대와 싸울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보병步兵이 만약 적의 전거戰車 부대와 기병騎兵 부대와 싸우게 되면, 반드시 구릉과 험한 지형에 의지해서, 긴 병기兵器와 강한 궁노弓弩 부대를 전면에 배치하고 짧은 병기와 약한 궁노 부대를 후면에 배치하여 번갈아 출동하고 번갈아 중지해야 하니, 적의 전거戰車기병騎兵이 비록 많이 몰려오더라도 우리가 진영을 굳게 수비하고 맹렬히 싸우며, 재능이 있는 병사와 강한 궁노弓弩 부대로 그 후미를 방비하여야 한다.
무왕武王이 말씀하였다.
“우리에게는 구릉이 없고 또 험한 곳이 없으며, 몰려오는 적군은 병력이 많고 또 용맹도 있어서 적의 전거戰車기병騎兵이 우리의 양옆을 날개처럼 펼쳐 공격하고 우리의 앞뒤를 사냥하듯이 공격하면, 우리의 삼군三軍이 공포에 질려서 어지러이 패주할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原注
무왕武王이 물었다.
우리에게는 의지할 만한 구릉과 험한 곳이 없고, 몰려오는 적군은 병력이 많고 또 용맹한 자도 많아서 전거戰車기병騎兵으로 우리의 좌우를 날개처럼 펼쳐 공격하고 우리의 앞뒤를 사냥하듯이 공격하면, 우리의 삼군三軍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모두 어지러이 패주할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우리의 병사로 하여금 행마行馬목질려木蒺藜를 만들고 소와 말의 대오를 배치하게 하며, 네 개의 무충진武衝陣을 만들었다가
적의 전거戰車기병騎兵이 몰려오는 것이 보이거든 질려蒺藜를 골고루 땅에 펼쳐놓고, 뒤에 있는 땅을 빙 둘러 파놓되 넓이와 깊이를 5으로 하여야 하니, 이것을 일러 ‘명롱命籠’이라 합니다.
병사마다 행마行馬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 전차로 가로막아 보루를 만든 다음 전차를 밀어 전진하고 후퇴하면서 전차를 세워 주둔할 진영을 만들며, 재능이 뛰어난 병사와 강한 궁노弓弩 부대로 우리의 좌우를 방비해야 하니, 이렇게 한 뒤에 우리의 삼군三軍으로 하여금 모두 맹렬히 싸우고 해이하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무왕武王이 말씀하였다.
“좋은 말씀이다.”
原注
태공太公이 대답하였다.
우리의 병사로 하여금 행마行馬목질려木蒺藜를 만들고 소와 말의 대오를 배치하게 해야 하니, 소와 말의 대오는 이주조爾朱兆나라의 신무제神武帝고릉산高陵山에서 포위했을 적에 신무제神武帝가 소와 당나귀를 연결하여 대오를 만들어서 포위가 허술한 곳을 막은 것과 같은 따위가 이것이다.
또 정예병으로 하여금 네 개의 무충진武衝陣을 만들어놓았다가 적의 전거戰車기병騎兵이 몰려오는 것이 보이면 질려蒺藜를 골고루 땅에 펼쳐놓고, 뒤에 있는 땅을 빙 둘러 파놓되 넓이와 깊이를 각각 5으로 해야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명롱命籠’이라 한다.
그리고 병사들로 하여금 행마行馬를 잡고 밀고 나아가 전차로 가로막아 보루를 만든 다음 밀어 전진하고 밀어 후퇴하면서 전차를 세워 주둔할 진영을 만들게 하며, 재능이 뛰어난 병사와 강한 궁노弓弩 부대로 좌우를 방비해야 하니, 이렇게 한 뒤에 우리의 삼군三軍으로 하여금 모두 적과 맹렬히 싸우게 하면 반드시 위기에서 면하게 될 것이다.
무왕武王은 “의 말씀이 좋다.” 하였다.


역주
역주1 : 경
역주2 : 잡
역주3 皆疾戰而不解 : 《直解》에는 ‘必得解免’으로 되어있어 ‘위기를 탈출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는바, 本文과 서로 맞지 않는다. 誤字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明本과 漢文大系本이 모두 이렇게 되어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本文은 ‘해이하지 않은 것’으로, 《直解》는 ‘위기를 면하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역주4 爾朱兆圍齊神武於高陵山……而塞其闕 : 爾朱兆(?〜533)는 南北朝時代 北魏의 權臣이고, 神武는 高歡(496〜547)으로 뒤에 아들 高洋이 北齊를 창건하여 神武帝로 추존되었다.
爾朱兆가 後魏(北魏)의 孝莊帝(拓跋子攸)를 시해하자 神武帝가 河北에서 義兵을 일으켰다. 爾朱兆가 이를 토벌하고자 爾朱天光 등과 함께 鄴 땅 남쪽에 집결하였는데, 병력이 모두 20만으로 병사와 戰馬가 정예롭고 강성하였다. 이때 神武帝는 戰馬가 2천 필이 채 못 되고 步卒이 3만 명에 미치지 못하였다. 양군이 韓陵山에서 격돌하였는데, 爾朱兆의 大軍이 神武帝를 포위하고 포위망에 빈틈을 보여주어 탈출하게 하였으나, 神武帝는 오히려 圓陣을 만들고 소와 당나귀를 연결하여 스스로 탈출할 길을 막았다. 그리하여 병사들이 결사적으로 싸워 사면으로 奮擊해서 爾朱兆의 대군을 대파하였다. 《通典 권160 兵典》
《孫子》 〈九地〉의 《直解》에 “爾朱兆 등이 20만의 병력으로 北齊의 神武帝를 高陵山에서 포위했을 적에, 신무제는 말이 겨우 2천 필이었고 보병이 채 3만 명이 못 되었다.[爾朱兆等 以二十萬衆 圍齊神武於高陵山時 神武有馬二千 歩不滿三萬]”라고 보인다.
역주5 (退)[步] : 저본의 ‘退’는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步’로 바로잡았다.

육도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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