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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字小學

사자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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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裏求筍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한 것은
孟宗之孝
맹종의 효도이고,
剖冰得鯉
얼음을 깨고서 잉어를 잡은 것은
王祥之孝니라
왕상의 효도이다.
신습
한자
[雪]雨 총11획, 눈 설; 雪景, 暴雪.
[裏]衣 총13획, 속 리; 裏面, 表裏.
[求]水 총7획, 구할 구; 求索, 貪求.
[筍]竹 총12획, 댓순 순; 筍席, 竹筍.
[孟]子 총8획, 맏 맹; 孟春, 四孟.
[宗]宀 총8획, 마루 종; 宗家, 大宗.
겨레 종; 宗門, 祖宗.
가묘 종; 宗廟, 朝宗.
[剖]刀 총10획, 쪼갤 부; 剖破, 解剖.
[冰]冫 총6획, 어름 빙; 氷山, 解氷.
[鯉]魚 총18획, 잉어 리; 鯉魚, 赤鯉.
[王]玉 총4획, 임금 왕; 王室, 君王.
[祥]示 총11획, 상서로울 상; 祥瑞, 吉祥.
문장의
구조
한자의
구실
[之]∼의, ∼하는. 관형격 조사가 된다.
◦ 孝弟也者는 其爲仁本與인저 : 효와 공손함은 그 인(仁)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 君子道는 造端乎夫婦니라 : 군자 도(道)는 부부에게서 단서가 시작된다.
쉼터
◦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오(吳)나라의 강하현에 맹종(孟宗)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 이숙(李肅)이라는 스승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학문이 이루어지자 연못의 물고기를 감독하는 관리가 되었다. 그런데 맹종은 어려서부터 워낙 부모님께 효성이 깊었기 때문에 자신이 손수 그물을 짜서 물고기를 잡아 젓갈을 만들어 어머니께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것을 받지 않고 돌려주며 이르기를 “너는 물고기를 감독하는 관리로 있으면서 스스로 고기를 잡아 젓갈을 만들어 나에게 주니, 이것은 도둑의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받을 수가 없구나”하며 꾸짖었다. 후에 맹종은 오나라의 현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당시 봉급이 적은 사람은 가족을 모두 데리고 발령지로 갈 수 없었는데, 맹종도 살림이 가난하여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맹종은 현령으로 있으면서 그 곳에서 좋은 음식을 얻게 되어도 어머니께 보내드리지 않으면 자신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맹종의 어머니는 특히 죽순을 좋아하였는데, 어느 해인가 추위가 심한 겨울 어머니께서 죽순을 드시고 싶어하셨다. 맹종은 아직 추운 겨울이라서 죽순이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머니께 죽순을 구해 드리기 위해 대나무 숲을 헤매게 되었다. 아무리 대나무 숲을 헤매고 다녔지만 죽순을 찾을 수 없자 맹종은 그만 탄식하며 슬퍼하였다. 그러자 이상하게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 헤매도 보이지 않던 죽순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서 맹종은 그 죽순을 따서 어머니께 드릴 수 있었다. 이것을 본 세상 사람들은 모두 맹종의 지극한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라고 하며 칭찬하였다. 후에 그는 벼슬이 부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 중국(中國)의 서진(西晉)시대 낭야군 기현이란 곳에 왕상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지극히 효자였지만 그만 불행하게 어려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서 왕상은 계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계모는 그에게 항상 무자비하게 대하고 아버지께도 항상 이간질을 해서 아버지도 점점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지만 왕상은 그럴 때마다 더욱 부모님께 공손하고 몸가짐을 조심했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셨을 때에는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간호를 하였고, 탕약은 약이 제대로 달여졌는지를 반드시 자신이 먼저 맛보고 나서 올렸다. 언젠가 몹시도 추운 겨울에 계모는 왕상에게 신선한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상은 계모에게 신선한 생선을 잡아 드리려고 강에 나가 보았더니 그만 날씨가 너무 추워 강이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얼음을 깰 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왕상은 하는 수 없이 옷을 벗고 얼음 위에 누워 체온으로 얼음을 녹여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얼음이 녹으면서 물 속에서 잉어 두 마리가 얼음 위로 뛰어올라 왔다고 한다. 언젠가는 또 계모가 참새구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수십 마리의 참새가 그가 머물고 있는 천막으로 날아들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이것은 모두 하늘이 그의 효성에 감동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였다. 왕상의 집에는 붉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계모가 그에게 이 사과나무를 지키고 서 있으라고 하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언제 사과 열매가 떨어질지 모른다고 염려하면서 나무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한다. 그의 효성은 이처럼 두텁고 순수했다. 후한(後漢) 말기에 난리가 나자 그는 계모를 도와 동생을 데리고 여산이라는 곳으로 피난을 가서 30년 동안을 숨어살았다. 나이 60에 관직에 나아갔으며, 서진(西晉)의 무제(武帝) 때에는 천자(天子)의 교육을 담당하는 태보(太保)라는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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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3. 설리구순은 585

사자소학 책은 2017.12.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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