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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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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序】卷耳 后妃之志也 又當輔佐君子하니 求賢審官하고 知臣下之勤勞
권이卷耳〉는 후비后妃의 뜻을 읊은 시이다. 후비后妃는 또 당연히 군자(남편)를 보좌해야 하니 〈군자가〉 어진 이를 찾아 합당한 관직에 배치하고 신하의 노고를 알게 해야 한다.
內有進賢之志하고 而無險詖私謁之心하여 朝夕思念하여 至於憂勤也
마음에 어진 이를 천거하려는 뜻이 있고, 거짓으로 속여 사사로이 청탁하려는 마음이 없어, 아침저녁으로 늘 생각하여 근심하는 데 이른 것이다.
【箋】謁 請也
’은 함이다.
○卷耳 苓耳也 云 枲耳也라하고 郭云亦曰 胡枲 江南呼常枲라하고 草木疏云 幽州人謂之爵耳라하니라
○‘권이卷耳’는 영이苓耳인데, ≪광아廣雅≫에는 “시이枲耳이다.”라고 하고, 곽박郭璞은 “호시胡枲인데 강남에서는 상시常枲라 부른다.”라고 하고,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는 “유주인幽州人들은 작이爵耳라 한다.”라고 하였다.
妄加人以罪也 崔云 險詖 不正也
’는 함부로 남에게 죄를 씌우는 것이다. 최씨崔氏(최영은崔靈恩)는 “험피險詖는 바르지 않음이다.”라고 하였다.
【疏】‘卷耳(四章章四句)’至‘憂勤’
의 [권이卷耳]에서 [우근憂勤]까지
○正義曰:作卷耳詩者, 言后妃之志也. 后妃, 非直憂在進賢, 躬率婦道, 又當輔佐君子,
정의왈正義曰:〈권이卷耳를 지은 것은 후비后妃의 뜻을 말한 것이다. 후비는 걱정이 어진 이를 천거함에 있을 뿐만이 아니고, 부도婦道를 솔선수범하고 또 마땅히 군자를 보좌해야 되니,
其志欲令君子求賢德之人, 審置於官位, 復知臣下出使之勤勞, 欲令君子賞勞之.
그 뜻이 군자君子로 하여금 현명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관직에 잘 배치하게 하고, 또 신하가 사신갈 때의 수고로움을 알아 군자로 하여금 상 주어 위로하게 하고자 함이었다.
內有進賢人之志, 唯有德是用, 而無險詖不正, 私請用其親戚之心,
마음에 현인을 등용시키려는 뜻이 있어 덕이 있는 사람만을 등용하고, 음험하고 사특하여 부정하게 사적으로 자기 친척의 등용을 청탁하려는 마음이 없었고,
又朝夕思此, 欲此君子官賢人, 乃至於憂思而成勤, 此是后妃之志也.
또 아침저녁으로 이것을 생각하여 이 군자가 현인을 관직에 등용할 것을 바라, 마침내 걱정하고 생각하여 수고로움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후비의 뜻이다.
【疏】言‘又’者, 繫前之辭, 雖則異篇, 而同是一人之事, 故言又, 爲亞次也.
’라 한 것은 앞 문장과 연계시키는 글이니 비록 다른 이라도 모두 같은 사람의 일이다. 그리하여 를 말하여 다음 차례로 만든 것이다.
‘輔佐君子’, 摠辭也. ‘求賢審官’, 至於‘憂勤’, 皆是輔佐君子之事, 君子所專, 后妃志意如然, 故云‘后妃之志’也.
보좌군자輔佐君子’는 총괄하는 말이다. ‘구현심관求賢審官’으로부터 ‘우근憂勤’까지는 모두 군자를 보좌하는 일로, 군자가 전적으로 하는 것인데 후비의 생각도 이와 같았다. 그리하여 ‘후비지지后妃之志’라고 한 것이다.
‘險詖’者, 情實不正, 譽惡爲善之辭也, ‘私謁’者, 婦人有寵, 多私薦親戚,
험피險詖’는 실정實情이 바르지 못하여 악을 미화하여 좋은 것으로 만드는 말이고, ‘사알私謁’은 부인이 총애를 받아 사적으로 친척을 많이 추천하는 것이다.
故厲王, 以艷妻方煽, , .
그리하여 여왕厲王이 요염한 처(포사褒姒)의 선동에 넘어가 〈포사의 친당親黨〉 7인을 조정에 있게 하였고 〈가뭄이 들자〉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면서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였다.
婦謁盛與險詖私謁, 是婦人之常態, 聖人猶恐不免, 后妃能無此心, 故美之也.
부인의 청탁이 성행함과 음험하고 사특하여 사적으로 자기 친척을 청탁하는 것은 부인의 일반적인 일이어서 성인조차도 면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인데, 후비가 이런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찬미한 것이다.
【疏】‘至於憂勤’, 勤爲勞心, 憂深不已, 至於勞勤, 后妃之篤志也.
지어우근至於憂勤’은 부지런히 하여 마음이 수고롭게 되고, 걱정이 깊고 끊이지 않아 ‘노근勞勤’에 이른 것이니, 후비의 독실한 의지이다.
‘至於憂勤’, 卽首章上二句是也, ‘求賢審官’, 卽首章下二句是也.
지어우근至於憂勤’은 바로 첫 장의 위 두 구가 이것이고, ‘구현심관求賢審官’은 바로 첫 장의 아래 두 구가 이것이다.
經敍倒者, 敍見后妃求賢而憂勤, 故先言‘求賢’, 經主美后妃之志, 能爲此憂勤, 故先言其‘憂’也.
에서 〈우근憂勤구현求賢의 순서를〉 뒤바꾸어 말한 것은 에서는 후비가 현인을 구함에 걱정하고 수고로움을 나타냈기 때문에 ‘구현求賢’을 앞에 말한 것이고, 에서는 후비의 뜻이 이렇게 걱정하고 수고로움을 위주로 하여 찬미하였기 때문에 ‘’를 먼저 말한 것이다.
采采卷耳로되 不盈頃筐이라
도꼬마리를 캐고 캐는데도 소쿠리를 채우지 못하였네
卷耳(≪毛詩名物圖說≫)卷耳(≪毛詩名物圖說≫)
【傳】憂者之興也 采采 事采之也 卷耳 苓耳也 頃筐 畚屬이니 易盈之器也
근심하는 것을 함이다. ‘채채采采’는 일삼아 캐는 것이다. ‘권이卷耳’는 영이苓耳이다. ‘경광頃筐’은 삼태기의 종류인데 쉽게 채울 수 있는 용기이다.
【箋】箋云 器之易盈而不盈者 志在輔佐君子하여 憂思深也
전운箋云:쉽게 채울 수 있는 그릇인데도 채우지 못한 것은 군자를 보좌하는 데 뜻이 있어 걱정이 깊기 때문이다.
○韓詩云 頃筐 欹筐也 何休云 草器也라하니 說文同이라
○≪한시韓詩≫에 “경광頃筐은 앞이 낮고 뒤가 높은 소쿠리이다.”라고 하였다. 하휴何休가 “풀로 엮어 만든 용기이다.”라고 하였는데 ≪설문해자說文解字≫도 같다.
嗟我懷人이여 寘彼周行이로다
아! 내 그리워하는 사람 조정 반열에 서기를 바라네
【傳】懷 列也 思君子官賢人하여 置周之列位
’는 ‘생각함’이고 ‘’는 ‘배치함’이고 ‘’은 열위列位이다. 군자가 현인에게 관직을 주어 의 조정 반열에 배치해줄 것을 생각한 것이다.
【箋】箋云 周之列位 謂朝廷臣也
전운箋云:‘주지열위周之列位’는 조정의 을 말한다.
【疏】‘采采’至‘周行’
의 [채채采采]에서 [주항周行]까지
○正義曰:言有人事采此卷耳之菜, 不能滿此頃筐. 頃筐, 易盈之器而不能滿者, 由此人志有所念, 憂思不在於此故也.
정의왈正義曰:도꼬마리를 일삼아 캐는데도 소쿠리를 채울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경광頃筐이 쉽게 채울 수 있는 용기인데도 가득 채울 수 없는 것은 이 사람이 마음에 생각한 바가 있어서 우려가 나물 캐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此采菜之人, 憂念之深矣, 以興后妃志在輔佐君子, 欲其官賢賞勞,
나물 캐는 사람의 걱정이 깊은 것으로써, 후비의 마음이 군자를 보좌하여 군자가 현인에게 관직을 주고 수고로운 자에게 상을 주기를 바라는 데 있어,
朝夕思念, 至於憂勤, 其憂思深遠, 亦如采菜之人也.
밤낮으로 그것만을 생각하여 걱정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음을 한 것이니, 그녀가 걱정함이 깊은 것이 나물 캐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此后妃之憂爲何事, 言后妃嗟而歎, 我思君子官賢人,
후비가 근심하는 것이 어떤 일인가. 후비가 깊이 탄식하면서 나는 군자가 현인을 등용할 것을 생각한다.’라고 말하였으니,
欲令君子, 置此賢人於彼周之列位, 以爲朝廷臣也. 我者, 后妃自我也.
군자가 이 현인을 우리 의 반열에 배치하여 조정의 신하로 삼기를 바란 것이다. ‘’는 후비가 스스로 라고 한 것이다.
下箋云 “我, 我使臣, 我, 我君.” 此不解者, 以詩主美后妃, 故不特言也.
아래 절의 에 “는 나의 사신使臣이고, 는 나의 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의 에서 풀이하지 않은 것은 시가 후비를 찬미함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말하지 않은 것이다.
言彼者, 后妃主求賢人爲‘此’, 故以周行爲‘彼’也.
’라고 말한 것은 후비가 현인을 찾는 것을 위주로 하여 ‘’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항周行’을 ‘’라고 한 것이다.
【疏】傳‘憂者’至‘之器’
의 [우자憂者]에서 [지기之器]까지
○正義曰:不云興也, 而云‘憂者之興’, 明有異於餘興也.
정의왈正義曰이라고 하지 않고 ‘우자지흥憂者之興(근심하는 것을 함)’이라고 한 것은 여타의 과 다름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餘興, 言采菜, 卽取采菜喩, 言生長, 卽以生長喩, 此言采菜而取憂爲興,
여타의 흥은 ‘채채采菜’를 말하면 곧 채채采菜를 취하여 비유하고, ‘생장生長’을 말하면 곧 생장生長으로 비유하는데, 여기에서는 ‘채채采菜’를 말하면서 ‘’를 취하여 흥하였다.
故特言‘憂者之興’, 言興取其憂而已, 不取其采菜也. 言‘事采之’者, 言勤事采此菜也.
그리하여 특별히 ‘우자지흥憂者之興’이라고 한 것이니, 흥이 를 취한 것이지 ‘채채采菜’를 취한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사채지事采之’라고 한 것은 이 나물을 부지런히 일삼아 캐는 것을 말한다.
【疏】此與芣苢俱言采采, 彼傳云 非一辭, 與此不同者,
여기와 〈주남 부이周南 芣苢〉에서 모두 ‘채채采采’를 말하였는데, 〈부이芣苢〉의 에서는 ‘비일사非一辭(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라고 하여 여기와 같지 않은 것은,
此取憂爲興, 言勤事采菜, 尙不盈筐, 言其憂之極, 故云‘事采之’, 彼以婦人樂有子, 明其采者衆,
여기에서는 ‘’를 취하여 하여 부지런히 일삼아 나물을 캤는데도 오히려 광주리를 채우지 못함을 말하였으니, 근심이 지극함을 말하기 때문에 ‘사채지事采之’라고 한 것이고, 〈부이芣苢〉에서는 부인이 자식 둠을 즐거워함으로써 나물 캐는 사람이 많음을 밝힌 것이다.
故云‘非一辭’, 其實‘采采’之義同, 故鄭志答張逸云 “事, 謂事事一一用意之事, 芣苢亦然, 雖說異, 義則同.” 是也.
그리하여 ‘비일사非一辭’라고 한 것이니, 실제 ‘채채采采’의 뜻은 같다. 그리하여 ≪정지鄭志≫에서 장일張逸에게 “는 일마다 하나하나 마음을 둔다는 를 말하는데, 〈부이芣苢〉도 그러하니 비록 설명은 다르나 뜻은 같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然則此謂一人之身念采非一, 彼芣苢, 謂采人衆多非一, 故鄭云‘義則同’也.
그렇다면 여기는 한 사람이 나물 캘 것을 생각함이 한 번만이 아님을 말하고, 저 〈부이芣苢〉는 나물 캐는 사람이 많아 한 사람만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현鄭玄이 ‘뜻이 같다.’라고 한 것이다.
【疏】‘卷耳 苓耳’, 釋草文, 郭璞曰 “廣雅云‘枲耳’, 亦云 ‘胡枲’, 江東呼‘常枲’.
권이 영이卷耳 苓耳’는 ≪이아爾雅≫ 〈석초釋草〉의 글인데, 곽박郭璞은 “≪광아廣雅≫에는 ‘시이枲耳’라고 하고 ‘호시胡枲’라고 하기도 하며, 강동에서는 ‘상시常枲’라고 부른다.
或曰 ‘苓耳’, 形似鼠耳, 叢生似盤.” 陸機疏云 “葉靑白色, 似胡荽, 白華細莖蔓生, 可煮爲茹, 滑而少味.
혹자는 ‘영이苓耳’라고 부르는데, 모양은 서이鼠耳와 같고 쟁반처럼 둥글게 떨기로 자란다.”라고 하였다. 또 육기陸機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는 “잎은 청백靑白색으로 호유胡荽와 비슷하고 흰 꽃에 줄기가 가늘고 덩굴로 자라는데, 삶아서 먹을 수 있으나 미끄럽고 맛이 없다.
四月中生子, 如婦人耳中璫, 今或謂之耳璫, 幽州人謂之爵耳, 是也.”
4월에 씨가 생기는데 마치 부인의 귀 장식과 같아 지금 혹 이당耳璫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유주幽州 사람들은 작이爵耳라고 부르니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言‘頃筐 畚屬’者, 說文云 “畚, 草器, 所以盛種.” 此頃筐可盛菜, 故言畚屬以曉人也.
경광 분속頃筐 畚屬’이라고 한 것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초기草器이니 씨앗을 담는데 쓴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니, 이 경광頃筐은 나물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본속畚屬이라고 말하여 사람들이 알게 한 것이다.
言‘易盈之器’者, 明此器易盈, 自有所憂, 不能盈耳, 解以不盈爲喩之意也.
이영지기易盈之器’라고 한 것은 이 그릇이 쉽게 채울 수 있는데도 스스로 걱정함이 있어 가득 채울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니, ‘불영不盈’으로써 비유한 뜻을 해석한 것이다.
【疏】箋‘周之’至‘廷臣’
의 [주지周之]에서 [정신廷臣]까지
○正義曰:知者, 以其言周行, 是周之列位, 周是后妃之朝, 故知官人, 是朝廷臣也.
정의왈正義曰정신廷臣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에서 ‘주항周行’을 ‘주지열위周之列位’라고 하였는데, 가 후비의 조정朝廷이므로 관인官人이 바로 조정의 신하임을 안 것이다.
襄十五年傳引 “詩曰‘嗟我懷人, 寘彼周行’, 能官人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15년에서, 이 시를 인용하여 “≪시경詩經≫에 ‘아, 나는 인재를 얻어 두루[] 관직[]에 앉힐 것[]을 생각한다.’고 하였으니, 이 는 사람에게 알맞은 관직을 주는 것이다.
王及公․侯․伯․子․男, 采․衛大夫, 各居其列, 所謂周行也.”
채복采服위복衛服대부大夫가 각각 알맞은 반열에 있는 것이 이른바 주항周行이다.”라고 하였는데,
彼非朝廷臣, 亦言‘周行’者, 傳證楚能官人, 引詩斷章, 故.
이들이 조정의 이 아닌데도 ‘주항周行’이라고 한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가 사람에게 알맞은 관직을 잘 주었음을 증명하면서 이 시를 가져다 단장취의斷章取義하였다. 그리하여 여기와 같지 않은 것이다.
陟彼崔嵬하니 我馬虺隤로다
우리 사신使臣 저 흙산 오르는데 말도 지쳐 병들었네
【傳】陟 升也 崔嵬 土山之戴石者 虺隤 病也
’은 ‘올라감’이다. ‘최외崔嵬’는 흙산의 꼭대기에 바위가 있는 것이다. ‘회퇴虺隤’는 ‘병듦’이다.
【箋】箋云 我 我使臣也 臣以兵役之事行出하여 離其列位하여 身勤勞於山險이요 而馬又病하니 君子宜知其然이라
전운箋云:‘’는 우리의 사신使臣이다. 신하가 병역兵役의 일로 출행하여 조정의 자리를 떠나 몸소 험한 산에서 근로하고 말조차 병이 들었으니 군자는 응당 그러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虺 說文作㾯 孫炎云 馬退하여 不能升之病也 說文作頹
○‘’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로 되어 있다. ‘’는 손염孫炎은 “말이 지쳐 오를 수 없는 병이다.”라고 하였는데,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로 되어 있다.
我姑酌彼金罍하면 維以不永懷리라
우리 인군 우선 황금동이 술을 내리면 내 더는 걱정하지 않으리라
罍(≪三才圖會≫)罍(≪三才圖會≫)
【傳】姑 且也 人君 黃金罍 長也
’는 ‘우선’이다. 인군人君황금黃金장식 술동이를 사용한다. ‘’은 ‘길이’이다.
【箋】箋云 我 我君也 臣出使하여 功成而反이어든 君且當設饗燕之禮하여 與之飮酒以勞之
전운箋云:‘’는 우리의 인군이다. 현신賢臣이 사신 가서 공을 이루고 돌아오거든, 인군은 마땅히 우선 연향燕饗의 예를 베풀어 그와 함께 술 마시고 위로해야 되니,
我則以是不復長憂思也 言且者 君賞功臣 或多於此
그렇게 하면 나는 이로써 다시는 길이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이라고 한 것은 〈본래〉 인군이 공신에게 내리는 상이 아마도 이보다 많은 것이다.
○姑 說文作夃하고 云秦以市買多得爲夃
○‘’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로 쓰고, ‘이 교역하여 많은 이득을 얻음이 이다.’ 하였다.
酒罇也 韓詩云 天子以玉飾이요 諸侯大夫皆以黃金飾이요 士以梓라하고
’는 술동이이니, ≪한시韓詩≫에는 “천자는 으로 장식하고, 제후와 대부는 모두 황금으로 장식하고, 사는 나무로 만든다.”라고 하고,
禮記云 夏曰山罍 其形似壺하고 容一斛하니 刻而畫之爲雲雷之形이라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의 에는 “나라는 ‘산뢰山罍’라고 하였는데, 모양은 병과 비슷하고 곡식 1을 담을 수 있으니, 운뢰雲雷의 모양을 새겨 넣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陟彼’至‘永懷’
의 [척피陟彼]에서 [영회永懷]까지
○正義曰:后妃言‘升彼崔嵬山巓之上者, 我使臣也.
정의왈正義曰후비后妃가 ‘위에 바위가 있는 높은 산꼭대기에 오르는 사람은 우리의 사신이다.
我使臣, 以兵役之事行出, 離其列位, 在於山險, 身已勤苦矣, 其馬又虺隤而病,
우리 사신이 병역의 일로 출행하여 열위列位를 떠나 험한 산에 있으니, 몸은 힘들어 괴롭고 말조차 지쳐 병들었다.
我之君子, 當宜知其然, 若其還也, 我君子, 且酌彼金罍之酒, 饗燕以勞之, 我則維以此之故, 不復長憂思矣.
우리 군자가 응당 그러한 사실을 알아서 그가 돌아오거든 우리 군자가 우선 잔치를 열어 금뢰金罍의 술을 권하여 위로해 준다면, 나는 이 일로 다시는 길이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我所以憂思, 恐君子不知之耳, 君子知之, 故不復憂也’.
내가 걱정한 까닭은 군자가 그러함을 모를까 염려해서인데, 군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더는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傳‘崔嵬’至‘隤病’
의 [최외崔嵬]에서 [퇴병隤病]까지
○正義曰:釋山云 “石戴土謂之崔嵬.” 孫炎曰 “石山上有土者.”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산釋山〉에 “바위 위에 흙이 있는 것이 ‘최외崔嵬’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최외崔嵬는 바위산 꼭대기에 흙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고,
又云 “土戴石爲砠.” 孫炎曰 “土山上有石者.” 此及下傳云 “石山戴土曰砠.” 與爾雅正反者, 或傳寫誤也.
또 “흙 위에 바위가 있는 것이 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는 흙산 꼭대기에 바위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와 아래장의 에서는 “바위산 위에 흙이 있는 것이 이다.”라고 하여 ≪이아爾雅≫와 정반대인 것은 혹 전사傳寫할 때의 착오錯誤일 것이다.
釋詁云 “虺隤, 玄黃, 病也.” 孫炎曰 “虺隤, 馬罷不能升高之病, 玄黃, 馬更黃色之病.”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회퇴虺隤현황玄黃은 병듦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회퇴虺隤는 말이 피로하여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는 병이고, 현황玄黃은 말의 털이 황색으로 변하는 병이다.”라고 하였으니,
然則‘虺隤’者, 病之狀, ‘玄黃’者, 病之變色, 二章互言之也.
그렇다면 ‘회퇴虺隤’는 병의 증상이고 ‘현황玄黃’은 병으로 털의 색이 변한 것이니, 이 시의 두 장은 호언互言한 것이다.
【疏】箋‘我我’至‘其然’
의 [아아我我]에서 [기연其然]까지
○正義曰:序云‘知臣下之勤勞’, 故知使臣也. 定本云‘我我臣也’, 無使字.
정의왈正義曰에서 ‘지신하지근로知臣下之勤勞’라고 하였기 때문에 ‘사신使臣’임을 안 것이다. 정본定本에는 ‘아 아신야我 我臣也’라고 하고 ‘使’자가 없다.
言‘勤勞’, 故知‘兵役之事’, 事莫勞於兵役, 故擧其尤苦而言之. 其實聘使之勞, 亦閔念之, 四牡之篇, 是其事也.
근로勤勞’를 말하였기 때문에 ‘병역兵役의 일’임을 안 것이니, 병역보다 더 수고로운 일은 없다. 그리하여 더욱 수고로운 일을 들어 말한 것이다. 실제로 빙문하러 가는 사신의 수고로움을 걱정한 것은 〈소아 사모小雅 四牡〉가 이 일이다.
言‘君子宜知其然’, 謂未還宜知之, 還則宜賞之, 故上句, 欲君子知其勞, 下句, 欲君子加其賞也.
군자의지기연君子宜知其然’이라고 한 것은 아직 돌아오기 전에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서, 돌아오면 포상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윗구는 군자가 사신의 수고를 알기 바란 것이고, 아랫구는 군자가 상을 더 주기 바란 것이다.
【疏】傳‘人君黃金罍’
의 [인군황금뢰人君黃金罍]
○正義曰:此無文也, 故罍制 “韓詩說‘金罍, 大夫器也, 天子以玉, 諸侯大夫皆以金, 士以梓’,
정의왈正義曰:이는 에 없는 글이다. 그리하여 ≪오경이의五經異義≫ 〈뇌제罍制〉에 “≪한시韓詩≫에서는 ‘금뢰金罍는 대부의 그릇이다. 천자天子을 사용하고 제후諸侯대부大夫는 모두 을 사용하고 를 사용한다.’라고 하였고,
毛詩說‘金罍, 酒器也, 諸臣之所酢, 人君以黃金飾尊, 大一碩, 金飾龜目, 蓋刻爲雲雷之象.’”
모시毛詩≫에서는 ‘금뢰金罍주기酒器로, 여러 신하들이 수작酬酢하는 것인데, 인군은 황금으로 술동이를 장식하니, 크기는 1을 담을 수 있고, 술[구목龜目]을 으로 꾸미니, 이는 운뢰雲雷의 모양을 새긴 것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謹案韓詩說‘天子以玉’ 經無明文. 謂之罍者, 取象雲雷博施, 如人君下及諸臣.
삼가 살펴보건대 ≪한시韓詩≫의 ‘천자이옥天子以玉’은 에는 분명한 글이 없다.‘’라는 것은 운뢰가 널리 미치는 것이 마치 인군의 하사下賜가 여러 신하에게 미치는 것과 같음을 취하여 형상한 것이다.
又司尊彝云 “皆有罍, 諸侯之所酢.” 注云 “罍亦刻而畫之, 爲山雲之形.” 言刻畫則用木矣,
또 ≪주례周禮≫ 〈춘관 사준이春官 司尊彝〉에 “〈궤헌饋獻할 때에는 두개의 술동이를 쓰는데〉 모두 가 있으니 제후가 수작酬酢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에 “도 새기고 그려 산과 의 모양을 만든다.”라고 하였으니, 이라고 말했으면 나무를 쓰는 것이다.
依制度云 “刻木爲之.” 韓詩說言‘士以梓’, 士無飾, 言其木體, 則以上同用梓而加飾耳.
그리하여 ≪삼례도三禮圖≫에서 제도에 의거하여 “나무에 새겨서 만든다.”라고 한 것이다. ≪한시韓詩≫에서 ‘사이재士以梓’라고 하였으니 는 꾸밈이 없고, 의 ‘’를 말했으니 이상은 모두 를 사용하되 장식만 더하는 것이다.
毛說言‘大一碩’, 禮圖亦云‘大一斛’, 則大小之制, 尊卑同也, 雖尊卑飾異, 皆得畫雲雷之形, 以其名罍, 取於雲雷故也.
모형毛亨은 ‘대일석大一碩’이라고 하고 ≪삼례도三禮圖≫에도 ‘대일곡大一斛’이라고 하였으니, 곧 크기의 제도에 있어서는 높은 자와 낮은 자가 똑같다. 비록 존비에 따라 꾸밈은 다르나, 모두 운뢰의 모양을 그리니, 이는 ‘’라는 이름을 운뢰에서 취하였기 때문이다.
毛詩說‘諸臣之所酢’, 與周禮文同, 則‘人君 黃金罍’, 謂天子也, 周南王者之風, 故皆以天子之事言焉.
모시毛詩≫에서 말한 ‘신하들이 수작하는 것[제신지소작諸臣之所酢]’은 ≪주례周禮≫ 〈춘관 사준이春官 司尊彝〉의 글과 같다. 그렇다면 ‘인군은 황금 장식 술동이를 사용함[인군 황금뢰人君 黃金罍]’은 천자를 말하니 주남周南왕자王者이기 때문에 모두 천자의 일로써 말한 것이다.
【疏】箋‘我我’至‘於此’
의 [아아我我]에서 [어차於此]까지
○正義曰:以后妃有其志耳, 事不敢專, 故知所勞臣者君也.
정의왈正義曰:후비는 위로해 줄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그 일을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사신을 위로한 자가 인군임을 안 것이다.
言‘臣出使 功成而反’者, 聘義云 “使者聘而誤, 主君不親饗.” 明功不成不勞之也,
신출사 공성이반臣出使 功成而反’은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사신이 빙문하여 공을 이루지 못하면 주군이 친히 연향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공을 이루지 못하면 위로하지 않고,
將率之敗, 非徒無賞, 亦自有罪, 故知功成而反也.
장수가 패하면 상이 없을 뿐 아니라 자연히 벌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공을 이루고 돌아왔음을 안 것이다.
設饗燕之禮者, 以經云金罍兕觥, 皆陳酒事, 與臣飮酒, 唯饗燕耳.
향연饗燕를 베푼 것은 의 ‘금뢰金罍’와 ‘시굉兕觥’이 모두 술을 진설하는 일이고, 신하와 술을 마시는 것은 향연饗燕뿐이기 때문이다.
‘言且者 君賞功臣 或多於此’, 言或當更有賞賜, 非徒饗燕而已,
언차자 군상공신言且者 君賞功臣 혹다어차或多於此’는 어쩌면 다시 상사賞賜가 있을 것이고 향연뿐만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僖三十三年, 郤鈌獲白狄子, 受一命之服, 宣十五年, 荀林父滅潞, 晉侯賜以千室之邑, 是其多也.
춘추春秋희공僖公 33년에 극결郤鈌이 ‘백적자白狄子’를 사로잡아 ‘일명一命’을 받은 것과 선공宣公 15년에 순임보荀林父가 ‘노씨潞氏’를 멸망시키자 진후晉侯가 ‘천실千室’을 하사한 것이 여기의 ‘많음’이다.
陟彼高岡 我馬玄黃이로다
저 높은 산등성이 오르느라 검은 말 누렇게 변하였네
我姑酌彼兕觥이면 維以不永傷하리라
우리 군자 우선 저 시굉兕觥에 술 부어 준다면 더는 걱정하지 않으리
觥(≪宋板六經圖≫)觥(≪宋板六經圖≫)
【傳】山脊曰岡이라 玄馬病則黃이라 兕觥 角爵也 思也
산등성이를 ‘’이라고 한다. 검은 말이 병들면 털이 황색으로 변한다. ‘시굉兕觥’은 ‘뿔 술잔’이다. ‘’은 ‘생각함’이다.
【箋】箋云 此章 爲意不盡일새 申殷勤也
전운箋云:이 은 앞에서 뜻을 다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속마음을 다시 말한 것이다.
罰爵也 饗燕所以有之者 禮自立司正之後 旅酬必有醉而失禮者 罰之亦所以爲樂이라
’은 벌주를 마시는 술잔이니, 향연에 벌주 잔을 둔 까닭은 예에 사정司正을 세우고 난 뒤에 주인과 손님이 술잔을 주고받다가 반드시 취하여 예를 잃은 자가 있게 되면 벌주를 마시게 하니 이 역시 즐거움으로 삼기 때문이다.
○殷勤 竝如字 俗本 竝加心하니 非也
○‘’과 ‘’은 모두 본음대로 읽는다. 속본俗本에는 아래에 모두 ‘’을 더하여 〈으로 썼는데〉 잘못이다.
【疏】傳‘山脊’至‘角爵’
의 [산척山脊]에서 [각작角爵]까지
○正義曰:釋山云 “山脊, 岡.” 孫炎曰 “長山之脊也.”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산釋山〉에 “산척山脊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은 긴 산의 등성이이다.”라고 하였다.
釋獸云 “兕, 似牛.” 郭璞曰 “一角, 靑色, 重千斤者.” 以其言兕, 必以兕角爲之觥者. 爵, 稱也, 爵摠名, 故云‘角爵’也.
이아爾雅≫ 〈석수釋獸〉에 “는 소와 비슷하다.”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은 “뿔이 하나이고 털이 청색이며 무게가 천근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라고 한 것은 반드시 물소 뿔로 을 만들기 때문이다. ‘’은 호칭인데, 작이 잔의 총칭이므로 ‘각작角爵’이라고 한 것이다.
【疏】箋‘此章’至‘爲樂’
의 [차장此章]에서 [위락爲樂]까지
○正義曰:詩本畜志發憤, 情寄於辭, 故有意不盡, 重章以申殷勤, 詩之初始有此, 故解之.
정의왈正義曰는 본디 쌓인 생각과 불만을 드러내 감정을 말에 의탁한 것이므로 생각한 바를 다 밝히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을 거듭하여 속마음을 펴는 것이니, 시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이러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풀이한 것이다.
傳云‘兕觥 角爵’, 言其體, 此言‘觥 罰爵’, 解其用. 言兕表用角, 言觥顯其罰, 二者相接也異義.
의 ‘시굉 각작兕觥 角爵’은 시굉兕觥의 재료를 말한 것이고, 여기의 ‘굉 벌작觥 罰爵’은 용도를 풀이한 것이다. 를 말하여 을 사용하는 것을 나타냈고 을 말하여 을 드러냈으니, 둘은 서로 글은 이어졌지만 뜻은 다르다.
【疏】韓詩說 “一升曰爵, 爵, 盡也, 足也. 二升曰觚, 觚, 寡也, 飮當寡少,
한시韓詩≫에 “한 되들이를 이라 하니, 작은 다함이고 충분함이다. 두 되들이를 라고 하니, 고는 적음이니 적게 마셔야 하는 것이다.
三升曰觶, 觶, 適也, 飮當自適也. 四升曰角, 角, 觸也, 不能自適, 觸罪過也,
서 되들이를 라고 하니, 치는 적당함이니 스스로 적당하게 마셔야 하는 것이다. 너 되들이를 이라고 하니, 각은 저촉됨이니 스스로 적당하게 마시지 않으면 죄과罪過에 저촉되는 것이다.
五升曰散, 散, 訕也, 飮不自節, 爲人謗訕. 摠名曰爵, 其實曰觴, 觴者, 餉也. 觥亦五升, 所以罰不敬.
닷 되들이를 이라고 하니, 산은 비난이니 스스로 절제하여 마시지 않으면 남에게 비방을 받는 것이다. 술잔에 대한 총칭은 이나 실제는 이니, 상은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도 닷 되들이이니, 불경不敬함을 벌하기 위한 것이다.
觥, 廓也, 所以著明之貌, 君子有過, 廓然著明, 非所以餉, 不得名觴.”
굉은 분명함이니 환하게 드러난 모습이니, 군자는 과실이 있으면 환하게 드러나므로 벌주를 굳이 먹여야 할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詩毛說 “觥大七升.” 許愼謹案 “觥罰有過, 一飮而盡, 七升爲過多.” 由此言之, 則觥, 是觚․觶․角․散之外, 別有此器,
시경詩經≫ 〈모시毛詩〉에는 “의 크기는 7이다.”라고 하였는데, ≪오경이의五經異義≫의 허신근안許愼謹案에 “허물이 있어 내리는 벌주는 한 번에 다 마셔야 되니 7승은 지나치게 많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통해 말해보면 굉은 이외에 따로 이 그릇이 있는 것이다.
故禮器曰 “宗廟之祭, 貴者獻以爵, 賤者獻以散, 尊者擧觶, 卑者擧角.”
그리하여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종묘宗廟에 귀한 자에게는 작으로 올리고, 천한 자에게는 산으로 올리며, 높은 자는 치를 들고, 낮은 자는 각을 든다.”라고 하였고,
特牲二爵․二觚․四觶․一角․一散, 不言觥之所用, 是正禮無觥, 不在五爵之例.
의례儀禮≫ 〈특생식귀식례特牲食貴食禮〉의 이작二爵이고二觚사치四觶일각一角일산一散에서 굉이 쓰인 곳을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정례正禮에 굉이 없어 5의 례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疏】禮圖云 “觥大七升, 以兕角爲之.” 先師說云 “刻木爲之形, 似兕角.” 蓋無兕者用木也.
삼례도三禮圖≫에는 “의 크기는 7이니, 시각兕角으로 만든다.”라고 하고, 선사先師의 설에는 “나무를 깎아 형체를 만드니, 시각兕角과 비슷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시각兕角이 없는 자가 나무를 사용한 것일 것이다.
知觥必以罰者, 地官閭胥 “掌其比․觥․撻罰之事.” 注云 “觥撻者, 失禮之罰也, 觥用酒, 其爵以兕角爲之.”
’이 반드시 벌주잔으로 쓰임을 안 것은 ≪주례周禮≫ 〈지관 여서地官 閭胥〉에 “〈사람들을 모아 를 행할 때에 참석한 자의 인원수와 귀천․존비를〉 분별하는 일과 실례失禮한 자에게 벌주를 먹이거나 실례한 자를 편달鞭撻하는 일을 관장한다.”라고 하였는데, 에 “실례失禮한 자를 벌하는 것이니, 굉벌觥罰에는 술을 사용하는데 그 술잔은 시각兕角으로 만든다.”라고 하였고,
春官小胥職亦云 “觥其不敬者.” 是以觥罰人之義也, 故桑扈․絲衣 皆云 “兕觥其觩.” 明爲罰而不犯矣.
주례周禮≫ 〈춘관 소서직春官 小胥職〉에도 “불경不敬한 자에게 굉주觥酒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람을 굉주觥酒로 벌하는 뜻이다. 그리하여 〈소아 상호小雅 桑扈〉와 〈주송 사의周頌 絲衣〉에서 모두 “물소뿔잔 비스듬히 세워두고”라고 하였으니, 〈불경한 자에게〉 벌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범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疏】饗燕之禮, 有兕觥者, 以饗燕之禮, 立司正之後, 旅酬無算, 必有醉而失禮者, 以觥罰之, 亦所以爲樂也,
향연饗燕의 예에 시굉兕觥을 두는 것은 향연의 예가 사정司正을 세운 뒤에, 제한 없이 술잔을 주고받아 반드시 취하여 실례한 자가 있게 되면 으로 벌하니, 이 역시 즐거움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然則此后妃志使君勞臣, 宜是賢者, 不應失禮而用觥者, 禮法饗燕須設之耳, 不謂卽以罰人也.
그렇다면 여기의 후비 생각은 인군으로 하여금 신하를 위로할 때에, 마땅히 이 현자가 예를 잃어 굉을 쓰지 않게 해야 되니, 예법상 향연에 반드시 굉을 설치하여야 할 뿐, 곧 이것으로 사람을 벌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知饗有觥者, 七月云 “朋酒斯饗, 稱彼兕觥.” 成十四年左傳 “衛侯饗苦成成叔.”
향례에 굉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소아 칠월小雅 七月〉에 “두 항아리의 술로 연향을 베푸네.”라고 하고, “저 시굉兕觥을 드네.”라고 하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성공成公 14년에 “위후衛侯고성苦成성숙成叔에게 연향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고성숙苦成叔이 오만하니,〉 영혜자甯惠子가 ≪시경詩經≫ 〈소아 상호小雅 桑扈〉의 ‘물소뿔잔 비스듬히 세워두고 맛있는 술에 화락을 생각하네.’를 인용하여 고성숙苦成叔을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향례에 굉이 있음을 안 것이다.
【疏】饗以訓恭儉, 不應醉而用觥者, 饗禮之初示敬, 故, 其末亦如燕法.
’은 공손하고 검소함을 법으로 하니, ‘취해서 을 쓰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은 향례의 처음에 공경함을 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술이 차가워져도 감히 마시지 못하고, 고기가 말라도 감히 먹지 못하는 것이며, 마지막에도 연향의 법대로 하는 것이다.
鄕飮酒, 大夫之饗禮, 亦有旅酬, 無算爵, 則饗末亦有旅酬, 恐其失禮, 故用觥也.
그런데 ‘향음주鄕飮酒’는 대부의 향례饗禮로 역시 주인과 손님이 번갈아가며 술잔을 주고받음이 있고 잔의 수를 헤아림이 없으니, 그렇게 되면 연향을 마칠 무렵에 또한 술잔을 주고받아서 실례할 염려가 있다. 그리하여 굉을 쓰는 것이다.
知燕亦有觥者, 昭元年左傳, 鄭人燕趙孟, 穆叔․子皮及曹大夫, , 是燕有兕觥也.
연례에도 굉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 원년昭公 元年정인鄭人조맹趙孟에게 연례를 베풀 때, 목숙穆叔자피子皮조대부曹大夫가 ‘일어나 절하고 시작兕爵을 들었다.’ 해서이니, 이것이 연례에 시굉兕觥이 있는 것이다.
鄕飮酒禮無觥者, 說行禮, 不言其有過之事故也.
향음주례鄕飮酒禮’에 굉이 없는 것은 이 예를 행함을 설명할 때에 과실이 있을 때의 일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疏】又知‘用觥’在‘立司正之後’者, 燕禮, 立射人爲司正之後,
또 ‘용굉用觥’이 ‘사정司正을 세운 뒤’에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의례儀禮≫ 〈연례燕禮〉에 사인射人을 세워 사정司正으로 삼은 뒤에
乃云 “北面, 命大夫, ‘君曰 「以我安.」’ 卿大夫皆對曰 ‘諾, 敢不安.’”
마침내 이르기를 “〈사정司正이〉 북면하여 대부들에게 〈군주의〉 명을 전하기를 ‘군주께서 「나와 즐깁시다.」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면 경대부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예. 감히 즐기지 않겠습니까.’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又曰 “賓反入, 及卿大夫, 皆脫屨, 升就席, 公以賓及卿大夫皆坐乃安.”
또 “이 반대로 〈돌아〉 들어가면 경대부들이 모두 신을 벗고 〈에〉 올라가 〈각자 자신의〉 자리로 나아간다. 〈그러면〉 및 경대부들과 모두 앉아 그제야 즐긴다.”라고 하였다.
又 “司正升受命, ‘君曰 無不醉.’ 賓及卿大夫皆興, 對曰 ‘諾, 敢不醉.’”
또 “사정司正이 〈당에〉 올라가 군주의 명령을 받고는 ‘군주께서 모두들 취하시랍니다.’라고 〈명을 전하면〉 및 경대부들이 모두 일어나 ‘예. 감히 취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라고 하였다.
以此言之, 立司正之後, 君命安賓, 又升堂皆坐, 命之無不醉, 於此以後, 恐其失禮, 故知宜有觥也.
이것을 가지고 말하면 사정司正을 세운 뒤에 군주가 에게 즐기라고 명하고, 또 당에 올라가 모두 앉으면 모두들 취하라고 명령한다. 이 이후에 그들이 를 잃을까 염려된다. 그리하여 을 두어야 함을 안 것이다.
陟彼砠矣 我馬瘏矣로다
저 바위산 오르다 내 말 병들었네
我僕痡矣 云何吁矣리오
내 마부도 병들었으니 그 걱정 어떠하리
【傳】石山戴土曰砠 病也 亦病也 憂也
바위산 위에 흙이 있는 것을 ‘’라 한다. ‘’는 ‘병’이고, ‘’도 ‘병’이다. ‘’는 ‘걱정함’이다.
【箋】箋云 此章 言臣旣勤勞於外 僕馬皆病하니 而今云何乎 其亦憂矣 深閔之辭
전운箋云:이 장은 이 밖에서 수고롭게 일함에 마부와 말이 모두 병들었으니, 지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걱정이 될 뿐이니 매우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瘏 本又作屠하니 本又作鋪하니이라
○‘’가 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잘못이다. ‘’가 로 되어 있는 도 있으니, 같은 글자이다.
【疏】傳‘瘏病 痡亦病也’
의 [도병 부역병야瘏病 痡亦病也]
○正義曰:釋詁云 “痡․瘏, 病也.” 孫炎曰 “痡, 人疲不能行之病, 瘏, 馬疲不能進之病也.”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고釋詁〉에 “는 병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는 사람이 지쳐서 걸을 수 없는 병이고, 는 말이 지쳐서 나아갈 수 없는 병이다.”라고 하였다.
卷耳四章이니 章四句
권이卷耳〉는 4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廣雅 : 三國時代 魏의 明帝 太和年間(227~232)에 완성된 일종의 訓詁書이다. 총 字數가 18,150자인데 ≪爾雅≫의 체제를 모방하여 编纂한 것으로 ≪爾雅≫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篇目을 19類로 만들었는데, 각 편의 명칭과 순서 등 해설방식이 모두 ≪爾雅≫와 동일하다.
역주2 七子在朝 : 厲王의 후비인 褒姒가 자기의 무리들을 조정에 있게 하여 정사를 농락한 것으로, 7子는 卿士인 皇甫와 膳夫인 仲允과 宰인 家伯과 司徒인 番과 趣馬인 蹶과 內史인 棸子와 師氏인 楀이다. ≪後漢書 左雄傳 李賢注≫
역주3 成湯謝過 : 旱害가 들자 탕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면서 자신의 잘못을 사죄한 내용인데, “정사를 잘못하여 백성들을 고통에 처하게 하였습니까. 궁실을 호화스럽게 하고, 부인이 사사로운 청탁을 많이 하게 하고, 뇌물이 유행하도록 하고, 아첨하는 소인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게 하였습니까.[湯旱而禱曰 政不節與 使民疾與 何以不雨至斯極也 宮室榮與 婦謁盛與 何以不雨至斯極也 苞苴行與 讒夫興與 何以不雨至斯極也]”라고 하였다.≪荀子 大略≫
역주4 (呼)[吁]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吁’로 번역하였다.
역주5 不與此同 : ≪詩經≫ 〈周南 卷耳〉에서는 周行을 ‘周나라 조정의 반열’로 해석하였으나, ≪春秋左氏傳≫에서는 ‘列位에 두루 배치한 것’으로 해석하여 각각 다름을 말한다.
역주6 異義 : 원명은 ≪五經異義≫이다. 後漢時代 許愼이 撰한 것으로 今文經과 古文經의 같지 않은 내용을 기술한 것인데, 原書는 없어지고 鄭玄이 논박한 ≪駁五經異義≫에 실려 있다.
역주7 禮圖 : 鄭玄의 ≪儀禮≫․≪禮記≫․≪周禮≫의 ≪三禮圖≫를 말한다.
역주8 甯惠子……旨酒思柔 : 衛侯가 饗禮를 열어 苦成叔을 接待할 때 寗惠子가 相이 되었는데, 苦成叔이 오만하니, 寗惠子가 “苦成叔의 집은 아마도 망할 것이다. 옛날에 享食의 禮를 거행할 때에는 그 사람의 威儀를 관찰하고 그 사람의 禍福을 살폈다. 그러므로 ≪詩經≫에 ‘물소뿔잔 비스듬히 세워두고[兕觥其觩] 맛있는 술에 화락을 생각하네.[旨酒思柔] 저 사람 교제하는 태도 오만하지 않으니[彼交匪傲] 온갖 복이 모이리.[萬福來求]’라고 하였는데, 지금 저 사람은 오만하니, 禍를 취하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역주9 酒凊……不敢食 : 이는 射禮를 행할 때의 일을 설명한 것으로, 활을 쏘고자 할 때에는 禮에 따른 술잔만 獻酬하고 멋대로 취하거나 배불리 먹지 못함을 말한다. 그리하여 술이 식고 목이 말라도 감히 마시지 못하고 고기가 마르고 배가 고파도 감히 먹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禮記 聘儀≫
역주10 興拜 擧兕爵 : 晉의 趙孟과 魯의 叔孫豹(穆叔)와 曹大夫가 鄭나라에 들어가 회맹을 한 뒤에 鄭侯가 연례하면서 子男에 해당하는 五献의 예를 행할 때 있었던 일이다.≪春秋左氏傳正義≫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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