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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2)

모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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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谷風 刺夫婦失道也 衛人化其上하여 淫於新昏而棄其舊室하니 夫婦離絶하여 國俗傷敗焉이라
곡풍谷風〉은 부부夫婦간의 도리를 잃음을 풍자한 시이다. 나라 사람들이 윗사람에게 물들어서 새로 혼인한 여인에게 빠져 옛 아내를 버리니, 부부夫婦가 헤어져 나라의 풍속이 무너졌다.
【箋】新昏者 新所與爲昏禮
신혼新昏은 새로 같이 혼례를 치룬 것이다.
【疏】‘谷風(六章章八句)’至‘敗焉’
의 [곡풍谷風]에서 [패언敗焉]까지
○正義曰:作谷風詩者, 刺夫婦失其相與之道, 以至於離絶.
정의왈正義曰:〈곡풍谷風〉의 를 지은 것은 부부夫婦가 함께하는 도리를 잃어서 헤어짐에 이른 것을 풍자한 것이다.
言衛人由化效其上, 故淫於新昏而棄其舊室, 是夫婦離絶, 致令國俗傷敗焉.
나라 사람이 윗사람에게 물들었기 때문에 새로 혼인한 여인에게 빠져 옛 부인을 버렸으니, 이것이 부부夫婦가 헤어져서 나라의 풍속이 손상되고 무너지게 된 것임을 말한 것이다.
此指刺夫接其婦不以禮, 是‘夫婦失道’, 非謂夫婦竝刺也, 其婦旣與夫絶, 乃陳夫之棄己, 見遇非道, 淫於新昏之事, 六章皆是.
이는 남편이 부인을 로 대하지 않음을 가리켜 풍자한 것이니, 이 ‘부부夫婦간의 도리를 잃음’은 부부夫婦를 같이 풍자한 것이 아니다. 부인이 남편과 헤어져서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바른 도리로 대하지 않고 새로 혼인한 여인에게 빠진 일을 말한 것이니, 이 의 여섯 이 모두 그러하다.
習習谷風 以陰以雨나니
부드러운 동풍에 흐리고 비 내리니
【傳】興也 習習 和舒貌 東風謂之谷風이라 陰陽和而谷風至 夫婦和則室家成하고 室家成而繼嗣生이라
이다. 습습習習은 부드러운 모습이다. 동풍東風곡풍谷風이라 한다. 이 조화를 이루어 곡풍谷風이 부는 것이니, 부부夫婦가 화합하면 집안이 잘 다스려지고, 집안이 잘 다스려져야 뒤를 이을 자손이 태어난다.
黽勉同心이언정 不宜有怒니라
한 마음이기 힘쓸지언정 화를 내면 안 되지요
【傳】言黽勉者 思與君子同心也
민면黽勉이라고 말한 것은 군자君子와 마음을 같이할 것을 생각한 것이다.
【箋】箋云 所以黽勉者 以爲見譴怒者 非夫婦之宜
전운箋云:힘써 노력하는 까닭은 화를 내는 것이 부부의 합당한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黽勉 本亦作僶이니 黽勉猶勉勉也
민면黽勉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민면黽勉은 ‘부지런히 힘씀[면면勉勉]’과 같다.
采葑采菲 無以下體
순무 캐고 무 뽑는 건밑동 때문만은 아니니
【傳】葑 須也 芴也 下體 根莖也
은 순무[]이고, 는 무[]이고, 하체下體는 뿌리와 줄기이다.
【箋】箋云 此二菜者 蔓菁與葍之類也 皆上下可食이라
전운箋云:이 두 가지 채소는 순무[만청蔓菁]와 무[] 종류인데, 둘 다 잎과 뿌리를 먹을 수 있다.
然而其根有美時하고 有惡時하니 采之者 不可以根惡時 幷棄其葉으로
그러나 그 뿌리는 맛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니, 캐는 자가 뿌리가 맛이 없을 때라고 하여 잎까지 같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喩夫婦以禮義合하여 顔色相親이어늘 亦不可以顔色衰 棄其相與之禮
부부는 예의禮義로 만나서 서로 좋은 얼굴로 대하여야 하는데 얼굴색이 노쇠했다고 하여 함께하는 까지 버려서는 안 됨을 비유한 것이다.
○葑 字書作蘴이니 草木疏云 蕪菁也라하고 郭璞云 今菘菜也라한대 案江南有菘하고 江北有蔓菁이니 相似而異
은 ≪자서字書≫에 ‘’으로 되어 있는데,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 “순무[무청蕪菁]이다.”라고 하고, 곽박郭璞은 “지금의 배추[숭채菘菜]이다.”라고 하였는데, 살펴보면 강남江南이 있고 강북江北무청蕪菁이 있으니 서로 비슷하지만 다르다.
爾雅云 菲이라하고 又云 菲 息菜라하여늘 郭以菲芴爲土瓜하고 解息菜云 似蕪菁하고 華紫赤色이니 可食이라하다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이다.”라고 하고, 또 “식채息菜이다.”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을 쥐참외[토과土瓜]로 여기고, 식채息菜를 풀이하기를 “무청蕪菁과 비슷하고 꽃은 자적색紫赤色인데 먹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本又作蕪 本又作䔰 爾雅라하고 郭云 大葉白華하고 根如指 色白이니 可食이라하다
은 ‘’로 되어 있는 도 있다. 은 ‘’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은 메꽃[]이다.”라고 하고, 곽박郭璞은 “큰 잎에 흰 꽃이 피고, 뿌리는 손가락만 하고 흰색인데 먹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비菲와 풍葑(≪육씨초목조수충어소도해陸氏草木鳥獸蟲魚疏圖解≫)비菲와 풍葑(≪육씨초목조수충어소도해陸氏草木鳥獸蟲魚疏圖解≫)
德音莫違 及爾同死리라
좋은 언약 어기지 않으면 그대와 해로할 텐데
【箋】箋云 莫 與也 夫婦之言 無相違者 則可與女長相與處至死 顔色 斯須之有
전운箋云은 없음이다. 은 함께이다. 부부夫婦 사이의 약속을 서로 어김이 없으면 그대와 오래도록 함께 해로할 수 있을 것이다. 안색顔色의 아름다움은 얼마 못가는 것이다.
【疏】‘習習’至‘同死’
의 [습습習習]에서 [동사同死]까지
○正義曰:習習然和舒之谷風, 以陰以雨而潤澤行, 百物生矣, 以興夫婦和而室家成, 卽繼嗣生矣,
정의왈正義曰:살랑살랑 온화한 곡풍谷風이 불어 흐리고 비가 와서 윤택해지면 만물이 생장한다는 것으로, 부부가 화합하여 가정이 잘 다스려지면 뒤를 이을 자손이 태어남을 하였으니,
言己黽勉然勉力思與君子同心, 以爲夫婦之道, 不宜有譴怒故也.
자기가 부지런히 힘써 군자와 마음을 같이할 것을 생각한 것은, 부부간의 도리는 화를 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言采葑菲之菜者, 無以下體根莖之惡, 幷棄其葉, 以興爲室家之法, 無以其妻顔色之衰, 幷棄其德.
순무와 무를 채취할 때 밑동인 뿌리와 줄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잎까지 함께 버리지 말아야 함을 말하여, 부부의 법도는 아내의 얼굴이 늙었다고 해서 그 덕까지 함께 버리지 말아야 한다.
何者, 夫婦之法, 要道德之音, 無相違, 卽可與爾君子俱至於死, 何必顔色斯須之有乎, 我之君子, 何故以顔色衰而棄我乎.
왜인가. 부부의 법도는 도리에 맞는 말을 서로 어김이 없으면 곧 그대 군자君子와 함께 해로할 수 있는데, 하필 얼마 못가는 안색의 아름다움을 따지겠는가. 우리 군자는 무엇 때문에 안색의 아름다움이 쇠했다고 해서 나를 버리는가라는 것을 한 것이다.
【疏】傳‘東風’至‘嗣生’
의 [동풍東風]에서 [사생嗣生]까지
○正義曰:‘東風謂之谷風’, 釋天文也. 孫炎曰 “谷之言穀, 穀, 生也, 谷風者, 生長之風.” 陰陽不和, 卽風雨無節.
정의왈正義曰:‘동풍위지곡풍東風謂之谷風’은 ≪이아爾雅≫ 〈석천釋天〉의 글이다. 손염孫炎은 “의 뜻은 이니, 은 낳아줌이니, 곡풍谷風은 만물을 생장하게 하는 바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조화롭지 않으면 바람과 비가 알맞지 못하게 된다.
故陰陽和, 乃谷風至. 此喩夫婦, 故取於生物, 小雅谷風以喩朋友, 故直云而已.
그리하여 이 조화로워야 곡풍谷風이 부는 것이다. 여기서는 부부夫婦를 비유하였으므로 만물을 낳는 것에서 뜻을 취하였고, 〈소아 곡풍小雅 谷風〉에서는 붕우朋友를 비유하였기 때문에 〈에서〉 다만 ‘윤택해짐[윤택행潤澤行]’이 바로 ‘은애恩愛가 이루어짐’이라고 한 것이다.
【疏】傳‘葑 須 菲 芴’, 箋‘此二菜’至‘之類’
의 [봉 수葑 須 비 물菲 芴]과 의 [차이채此二菜]에서 [지류之類]까지
○正義曰:釋草云 “須, 葑蓯.” 孫炎曰 “須, 一名葑蓯.” 坊記注云 “葑, 蔓菁也, 陳․宋之間謂之葑.”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초釋草〉에 “봉총葑蓯(순무)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일명 봉총一名 葑蓯이다.” 하고, ≪예기禮記≫ 〈방기坊記〉의 에는 “만청蔓菁인데, 에서는 ‘’이라 한다.”라고 하고,
陸機云 “葑, 蕪菁, 幽州人或謂之芥.” 方言云 “蘴蕘, 蕪菁也. 陳․楚謂之蘴, 齊․魯謂之蕘, 關西謂之蕪菁, 趙․魏之謂之大芥.”
육기陸機는 “무청蕪菁인데, 유주幽州 사람들은 ‘’라고도 한다.”라고 하고, ≪방언方言≫에는 “풍요蘴蕘무청蕪菁이니, 에서는 ‘’이라 하고, 에서는 ‘’라고 하고, 관서關西에서는 ‘무청蕪菁’이라 하고, 의 교외에서는 ‘대개大芥’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蘴與葑, 字雖異, 音實同, 卽葑也․須也․蕪菁也․蔓菁也․葑蓯也․蕘也․芥也, 七者一物也.
은 글자는 비록 다르지만 음은 실제로 같으니, 무청蕪菁만청蔓菁봉총葑蓯 일곱 가지는 같은 식물이다.
釋草又云 “菲, 芴也.” 郭璞曰 “土瓜也.” 孫炎曰 “葍類也.” 釋草又云 “菲, 蒠菜.”
석초釋草〉에 “이다.”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은 “토과土瓜이다.”라고 하고, 손염孫炎은 “의 종류이다.”라고 하고, 또 〈석초釋草〉에 “식채蒠菜이다.”라고 하였는데,
郭璞曰 “菲草, 生下溼地, 似蕪菁, 華紫赤色, 可食.” 陸機云 “菲似葍, 莖麤, 葉厚而長, 有毛,
곽박郭璞은 “비초菲草는 지대가 낮고 습한 곳에서 사는데, 무청蕪菁과 같고, 꽃은 자적색紫赤色인데 먹을 수 있다.”라고 하고, 육기陸機는 “과 같은데, 줄기는 거칠고 잎은 두터웁고 길며 털이 있다.
三月中烝爲茹, 滑美可作羹. 幽州人謂之芴, 爾雅謂之蒠菜, 今河內人謂之宿菜.”
3월에 찌거나 삶으면 먹을 수 있는데, 부드럽고 맛이 좋아 국을 만들 수 있다. 유주幽州 사람들은 ‘’이라 한다. 〈석초釋草〉에는 ‘식채蒠菜’라고 하였는데, 지금 하내河內 사람들은 ‘숙채宿菜’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爾雅‘菲’, 芴與蒠菜異釋, 郭注似是別草, 如陸機之言, 又是一物. 某氏注爾雅, 二處引此詩,
이아爾雅≫에서 ‘’를 식채蒠菜로 다르게 풀이하였고, 곽박郭璞도 별개의 풀인 듯하나 육기陸機의 말대로라면 이것도 같은 식물이고, 모씨某氏가 ≪이아爾雅를 내면서 두 곳에서 이 를 인용하였으니,
卽菲也․芴也․蒠菜也․土瓜也․宿菜也, 五者一物也. 其狀似葍而非葍,
그렇다면 식채蒠菜토과土瓜숙채宿菜 다섯 가지는 같은 식물이다. 그 모습이 과 비슷하나 은 아니다.
故云‘葍類’也. 箋云‘此二菜者 蔓菁與葍之類’者, 蔓菁謂葑也, 葍類謂菲也.
그리하여 ‘의 종류’라고 한 것이고, 에서 말한 ‘이 두 가지 채소는 순무[만청蔓菁]와 무[] 종류이다.’에서의 만청蔓菁을 이르고 의 종류는 를 이른다.
【疏】箋‘皆上下’至‘之禮’
의 [개상하皆上下]에서 [지례之禮]까지
○正義曰:坊記引此詩, 證君子不盡利於人, 故注云 “無以其根美則幷取之.” 與此異也.
정의왈正義曰:≪예기禮記≫ 〈방기坊記〉에서 이 를 인용하여 군자君子는 남에게서 다 이롭기를 바라지 않음을 증명하였다. 그리하여 에서 “그 뿌리가 맛있다고 하여 모두 취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와는 다르다.
行道遲遲하여 中心有違어늘
더디고 더딘 이 발걸음 마음 내키지 않아선데
【傳】遲遲 舒行貌 離也
지지遲遲는 느리게 가는 모습이다. 는 ‘어긋남’이다.
【箋】箋云 徘徊也 行於道路之人 至將於別이면 尙舒行하고 其心徘徊然이니 喩君子於己不能如也
전운箋云는 배회함이다. 길을 가던 사람이 헤어질 때가 되면 더욱 느려지고 마음도 망설이게 되니, 군자君子가 자기에게 이와 같이 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違 如字 韓詩云 違 很也라하니라
는 본음대로 읽는다. ≪한시韓詩≫에서 “는 따르지 않음이다.”라고 하였다.
不遠伊邇하여 薄送我畿로다
멀리 아니 나와 가까이서 잠깐 문안에서 날 전송하네
【傳】畿 門內也
는 ‘문 안’이다.
【箋】箋云 邇 近也 言君子與己訣別 不能遠이요 維近耳 送我裁於門內 無恩之甚이라
전운箋云는 근처이다. 군자君子가 자기와 결별할 때 멀리까지 나오지 않고 가까이서 결별하였음을 말하였으니, 나를 겨우 문안에서 전송했다는 것은 매우 정이 없는 것이다.
○訣 本或作決이라 裁於門內 一本作裁至於門이요 又一本作裁至於門內
○‘’은 간혹 ‘’로 되어 있는 이 있다. ‘재어문내裁於門內’는 ‘재지어문裁至於門’으로 되어 있는 도 있고, ‘재지어문내裁至於門內’로 되어 있는 도 있다.
誰謂荼苦 其甘如薺로다
도荼(≪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도荼(≪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
누가 씀바귀 쓰다 했나 내게는 냉이같이 달다네
제薺(≪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제薺(≪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
【傳】荼 苦菜也
는 쓴 나물이다.
【箋】箋云 荼誠苦矣로되 而君子於己之苦毒 又甚於荼하니 比方之 荼則甘如薺
전운箋云:씀바귀는 참으로 쓴 것인데, 군자君子가 자기에게 모질게 하는 것이 씀바귀보다 더 심하니, 〈자기와〉 견주어보면 씀바귀는 달기가 냉이 같다는 것이다.
宴爾新昏하여 如兄如弟로다
그이는 새 여인에 빠져 형제처럼 다정하게 지내네
【傳】宴 安也
은 편안함이다.
○宴 本又作燕이라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疏】‘行道’至‘如弟’
의 [행도行道]에서 [여제如弟]까지
○毛以爲, 婦人旣已被棄, 追怨見薄, 言相與行於道路之人, 至將離別, 尙遲遲舒行, 心中猶有乖離之志, 不忍卽別,
모형毛亨은 ‘부인婦人이 버림을 받고 난 뒤에 업신여김을 당한 것을 미루어 원망한 것이니, 함께 길을 가던 사람도 헤어질 때가 되면 더욱 천천히 가고 마음은 헤어지기 싫어 차마 곧바로 이별하지 못하는데,
況己與君子猶是夫婦, 今棄己訣別之時, 送我不遠, 維近耳, 薄送我於門內而已, 是恩意不如行路之人也.
하물며 자기와 군자君子부부夫婦간인데도 지금 자기를 버리고 결별함에 멀리 나와 나를 전송하지 않고 가까이서 전송하여 박절하게 문안에서 나를 전송했을 뿐이니, 이는 은혜로운 정이 길가는 사람만도 못함을 말한 것이다.
又說遇己之苦, 言人誰謂荼苦乎, 以君子遇我之苦毒比之, 荼卽其甘如薺.
또 자기가 당한 고통을 말하여, 누가 씀바귀가 쓰다고 하는가. 군자君子가 나에게 준 고통에 비하면 씀바귀는 달기가 냉이 같다고 한 것이다.
君子苦己猶得新昏, 故又言安愛汝之新昏, 其恩如兄弟也, 以, 故以兄弟言之.
군자君子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면서도 오히려 새 여인을 얻었다. 그리하여 또 어찌 그대는 새로 혼인한 여인을 사랑하여 그 은혜로운 정이 형제와 같은가 하였으니, 부부는 함께 가부可否를 도모하여 형제兄弟의 도리가 있다. 그리하여 형제兄弟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唯‘有違’爲異, 以傳訓爲離, 無眷戀之狀, 於文不足, 故以違爲徘徊也.
정현鄭玄은 ‘유위有違’만을 다르게 보아 에서 ‘’라고 풀이한 것은,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모습이 없어 문세상 부족하다고 여기었다. 그리하여 를 ‘배회徘徊’라고 한 것이다.
【疏】傳‘畿 門內’
의 [기 문내畿 門內]
○正義曰:以言‘畿’者, 期限之名, 故周禮, 皆期限之義, 故楚茨傳曰 “畿, 期也.”
정의왈正義曰:‘’는 경계를 한정하는 명칭이다. 그리하여 ≪주례周禮≫ 〈하관 대사마夏官 大司馬〉의 ‘구기九畿’와 ‘왕기천리王畿千里’는 모두 경계를 한정짓는 뜻이다. 그리하여 〈소아 초자小雅 楚茨〉의 에서 “는 한정이다.”라고 한 것이다.
經云不遠, 言至有限之處, 故知是門內.
경문經文에서 말한 ‘불원不遠’은 경계를 한정한 곳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문 안임을 안 것이다.
涇以渭濁이나 湜湜其沚니라
위수渭水 때문에 경수涇水 흐려보여도 모래톱엔 맑은 곳도 있다네
【傳】涇渭相入하여 而淸濁異
경수涇水위수渭水가 서로 합쳐져서 이 구분된 것이다.
【箋】箋云 小渚曰沚 涇水以有渭 故見渭濁이라 湜湜 持正貌이니
전운箋云:작은 모래톱을 ‘’라고 한다. 경수涇水는 〈맑은〉 위수渭水가 있기 때문에 위수渭水를 보고 〈경수涇水가〉 탁하다고 하는 것이다. 식식湜湜은 바른 도리를 지키는 모습이니
喩君子得新昏이라 故謂己惡也 己之持正守初如沚然하여 不動搖 此絶去所經見하여 因取以自喩焉이라
군자君子가 새로 혼인한 여인을 얻었기 때문에 자기를 못났다고 하나 자기는 올바른 도리를 지키고 처음에 품은 뜻을 이룸이 모래톱과 같아서 동요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는 버림당하여 떠나가면서 지나가는 길에 본 것을 취하여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涇 濁水也 淸水也 說文云 水淸見底 故見渭濁 舊本如此 一本渭作謂 後人改耳
경수涇水는 탁한 물이고, 위수渭水는 맑은 물이다. ‘’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물이 맑아 바닥이 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견위탁故見渭濁’은 구본舊本도 이와 같은데, ‘’가 ‘’로 되어 있는 도 있으니, 후인後人이 고친 것이다.
宴爾新昏하여 不我屑以로다
그이는 새 여인에게 빠져 나를 곱게 대하지 않네
【傳】屑 絜也
은 정결함이다.
【箋】箋云 以 用也 言君子不復絜用我當室家
전운箋云는 ‘사용함’이니, 군자君子가 다시는 나를 곱게 아내로 인정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毋逝我梁하여 毋發我笱언마는
어량魚梁에 가지 말아 내 통발 들추지 말라 하고 싶지만
【傳】逝 之也 魚梁이라 所以捕魚也
는 감이다. 어량魚梁이다. 는 물고기 잡는 도구이다.
【箋】箋云 毋者 禁新昏也 女毋之我家하여 取我爲室家之道
전운箋云는 새로 혼인한 여인에게 금지한 것을 비유한 것이니, 너는 내 집에 가서 내가 하던 아내의 도리를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笱 捕魚器 韓詩云 發 亂也라하니라
는 물고기를 잡는 기구이다. ≪한시韓詩≫에 “은 어지럽힘이다.”라고 하였다.
我躬不閱이온 遑恤
내 한 몸도 용납 받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내 떠난 뒤를 걱정하랴
【傳】閱 容也
은 ‘용납함’이다.
【箋】箋云 躬이라 憂也 我身尙不能自容이온 何暇憂我後所生子孫也
전운箋云은 자신이다. 은 겨를이고, 은 걱정이다. 나 자신도 오히려 용납 받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내 뒤에 태어난 자손을 걱정하겠는가.
【疏】‘涇以’至‘我後’
의 [경이涇以]에서 [아후我後]까지
○正義曰:婦人旣言君子苦己, 又本己見薄之由, 言涇水以有渭水淸, 故見涇水濁, 以興舊室以有新昏美, 故見舊室惡.
정의왈正義曰부인婦人군자君子가 자기를 괴롭게 한 것을 말하고 또 본래 자기가 업신여김을 당한 이유를 따져서, 경수涇水는 맑은 위수渭水가 있기 때문에 경수涇水를 보고 탁하다고 함을 말하여 옛 부인은 예쁜 새 여인이 있기 때문에 옛 부인을 보고 못났다고 함을 한 것이다.
本涇水雖濁, 未有彰見, 由涇渭水相入而淸濁異, 言己顔色雖衰, 未至醜惡, 由新舊竝而善惡別.
본래 경수涇水는 탁했지만 드러나게 탁하지 않았는데, 위수渭水경수涇水가 서로 합류하고부터 맑음과 탁함이 구분되었으니, 이는 자기의 얼굴이 비록 노쇠했으나 추악한 데 이르지는 않았는데, 새 여인과 나란히 있고부터 예쁨과 못남이 구분되어짐을 말한 것이다.
【疏】新昏旣駮己爲惡, 君子益憎惡於己. 己雖爲君子所惡, 尙湜湜然持正守初, 其狀如沚然, 不動搖, 可用爲室家矣,
새 여인으로 인해 자신을 못났다고 공박하고 군자君子는 더욱 자기를 미워하였다. 자기가 비록 군자君子에게 미움을 받았으나, 오히려 깨끗하게 바른 도리를 지키고 처음에 품은 뜻을 이루어 그 모습이 마치 모래톱 같이 흔들림 없어 아내가 될 만한데,
君子何爲安樂汝之新昏, 則不復絜飾用我. 己不被絜用事, 由新昏,
군자君子는 어찌하여 새로 혼인한 여인과 즐겁게 지내면서 다시는 나를 곱게 아내로 인정하지 않는가. 자기가 곱게 인정받지 못한 것은 새로 혼인한 여인 때문이다.
故本而禁之, 言人無之我魚梁, 無發我魚笱, 以之人梁, 發人笱, 當有盜魚之罪,
그리하여 근본을 따져 금지시킨 것이니, 너는 나의 어량魚梁에 가지 말고, 나의 통발을 들추지 말라고 한 것은 남의 어량魚梁에 가는 것과 남의 통발을 들추는 것이 물고기를 훔치는 죄에 해당되기 때문임을 말하여,
以興禁新昏, 汝無之我夫家, 無取我婦事, 以之我夫家, 取我婦事, 必有盜寵之過.
새 여인에게 너는 내 남편의 집에 가지 말고 내가 하는 부녀자의 일을 빼앗지 말라고 금지한 것은 내 남편의 집에 가는 것과 내가 하는 부녀자의 일을 뺏는 것이 반드시 총애를 훔치는 잘못이 있기 때문임을 한 것이다.
然雖禁新昏, 夫卒惡己, 至於見出, 心念所生, 己去必困, 又追傷遇己之薄,
그러나 새 여인에게 금지시켰으나 남편은 끝내 자기를 미워하여 내쫓았으니, 마음속으로 자기가 낳은 자식이 자기가 떠나면 반드시 곤궁해질까 근심하고, 또 자기가 업신여김을 당한 것을 미루어 가슴 아파하고,
卽自訣, 言我身尙不能自容, 何暇憂我後所生之子孫乎, 母子至親, 當相憂念, 言己無暇, 所以自怨, 痛之極也.
바로 결단하여 ‘나 자신도 오히려 용납 받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내 뒤에 태어난 자손을 걱정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모자간은 지극히 친애하여 응당 서로를 걱정해야 하는데도 자기가 걱정할 겨를이 없다고 한 것은 스스로 원통해함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疏】傳‘涇渭’至‘濁異’
의 [경위涇渭]에서 [탁이濁異]까지
○正義曰:禹貢云 “涇屬渭汭.” 注云 “涇水․渭水, 發源皆幾二千里. 然而涇小渭大, 屬於渭而入於河.”
정의왈正義曰:≪상서尙書≫ 〈우공禹貢〉에서 “경수涇水위수渭水 북쪽으로 이어진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경수涇水위수渭水는 발원하여 모두 거의 2,000리를 흐른다. 그러나 경수涇水는 작고 위수渭水는 커서 위수渭水로 합류되어 황하로 흘러 들어간다.”라고 하였고,
又引地理志云 “涇水出今安定涇陽西開頭山, 東南至京兆, 行千六百里入渭.” 卽涇水入渭也.
또 ≪지리지地理志≫에서 말한 “경수涇水는 지금 안정군 경양현安定郡 涇陽縣의 서쪽 개두산開頭山에서 발원하여 동남東南쪽으로 경조군 양릉현京兆郡 陽陵縣에 이르고, 1,600리를 더 가서 위수渭水로 들어간다.”고 한 것을 인용하였으니, 바로 경수涇水위수渭水로 들어가는 것이다.
此以涇濁喩舊, 以渭淸喩新昏, 取相入而淸濁異, 似新舊相竝而善惡別, 故云‘涇渭相入’, 不言渭水入涇也.
여기서는 탁한 경수涇水로써 옛 부인을 비유하고, 맑은 위수渭水로써 새로 혼인한 여인을 비유하여, 〈경수涇水위수渭水가〉 서로 합류하여 맑음과 탁함이 구분되는 것이 새로 혼인한 여인과 옛 부인이 서로 나란히 있어 예쁨과 못남이 구분되는 것과 같음을 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경수涇水위수渭水가 서로 합류한다.’고 한 것이고, 위수渭水경수涇水로 들어간다고 하지 않은 것이다.
【疏】箋‘涇水’至‘喩焉’
의 [경수涇水]에서 [유언喩焉]까지
○正義曰:此婦人以涇比己, 箋將述婦人之心, 故先述涇水之意.
정의왈正義曰:이는 부인婦人경수涇水를 자신에 비유한 것이다. 에서 부인婦人의 마음을 말하려고 하였으므로 먼저 경수涇水의 뜻을 말한 것이다.
涇水言以有渭, 故人見謂己濁, 猶婦人言以有新昏, 故君子見謂己惡也.
경수涇水위수渭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서 경수涇水가 탁하다고 한 것이 부인婦人에게 새로 혼인한 여인이 있기 때문에 군자君子가 보고서 부인을 못났다고 한 것과 같다.
‘見濁’, 言人見(渭)[謂]己涇之濁, 由與淸濁相入故也. 定本‘涇水以有渭 故見其濁’.
견위탁見謂濁’은 사람들이 〈위수渭水를〉 보고서 저 경수涇水가 탁하다고 이르는 것을 말하니 맑은 물과 탁한 물이 서로 합쳐졌기 때문이다. 정본定本에는 ‘경수이유위 고견기탁涇水以有渭 故見其濁’으로 되어 있다.
漢書溝洫志云 “涇水, 其泥數斗.” 潘岳西征賦云 “淸渭濁涇”, 是也. 此己絶去, 所經見涇渭之水, 因取以自喩也.
한서漢書≫ 〈구혁지溝洫志〉에 “경수涇水 1섬[]에 진흙이 여러 말이다.”라고 하였고,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 “맑은 위수渭水, 탁한 경수涇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는 부인 자신이 떠나면서 지나가는 길에 경수涇水위수渭水를 보고서 취하여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鄭志張逸問“何言絶去.” 答曰 “衛在東河, 涇在西河, 故知絶去, 不復還意.” 以涇不在衛境, 作詩宜歌土風, 故信絶去.
정지鄭志≫에서 장일張逸이 “어찌 ‘버림받아 떠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까?”라고 하니, 답하기를 “나라는 동하東河에 있고, 경수涇水서하西河에 있다. 그리하여 떠나서 다시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안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경수涇水나라의 경내에 있지 않지만, 시를 지을 때는 마땅히 그 지역의 풍토를 노래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此婦人旣絶, 至涇而自比己志, 邶人爲詩得言者, 蓋從送者言其事, 故詩人得述其意也.
이는 부인婦人이 이미 떠나 경수涇水에 이르러 스스로 자신의 뜻을 비유한 것이니, 의 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게 된 것은 아마도 전송하는 자가 그 일을 말한 것을 따른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詩人이 그 뜻을 말하게 된 것이다.
禮, 臣無境外之交, 此詩所述, 似是庶人得越國而昏者. 曰 “大夫越境逆女, 非禮.” 卽士以下不禁,
에 ‘신하는 국경 밖의 사람과 교제하는 의리가 없다.’고 하였으니, 이 시에서 말한 것은 서인庶人이 다른 나라 사람과 혼인한 것인 듯하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대부大夫가 국경을 넘어가서 여자를 맞이하는 것은 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곧 이하는 금하지 않은 것이다.
故士昏禮云 “若異邦, 則贈丈夫送者以束錦.” 是士得外娶, 卽庶人得越國娶明矣.
그리하여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다른 나라일 경우에는 부인을 호송해온 장부丈夫에게 비단 묶음을 보낸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가 다른 나라에 장가든 경우이니, 서인庶人은 다른 나라에 장가들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疏】傳‘屑 絜’
의 [설 결屑 絜]
○正義曰:絜者, 飾也, 謂不絜飾而用己也.
정의왈正義曰이니, 곱게 여겨 나를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말한다.
【疏】傳‘梁魚’至‘捕魚’
의 [양어梁魚]에서 [포어捕魚]까지
○正義曰:此與小弁及“敝笱在梁”, 皆云‘笱’, 笱者捕魚之器, 卽梁爲魚梁明矣,
정의왈正義曰:여기와 〈소아 소반小雅 小弁〉 및 〈제풍 폐구齊風 敝笱〉의 “해진 통발이 어량魚梁에 있으니[폐구재량敝笱在梁]”에서 모두 ‘’라고 하였는데, 는 물고기 잡는 기구이니 곧 어량魚梁임이 분명하고,
何人斯云 “胡逝我梁”, 我者, 己所自專之辭, 卽亦爲魚梁也.
소아 하인사小雅 何人斯〉에서 “어찌하여 내 어량魚梁에는 가면서[호서아량胡逝我梁]”라고 하였는데, 는 자기 혼자 소유함을 말하니 또한 어량魚梁이다.
有狐云 “在彼淇梁”, 傳曰 “石絶水曰梁.” 候人云 “維鵜在梁”, 傳曰 “梁, 水中之梁.” 鴛鴦云 “鴛鴦在梁”,
위풍 유호衛風 有狐〉에서 “저 기수가의 어량魚梁에 있네[재피기량在彼淇梁]”라고 하였는데, 에서 “돌로 물길을 막은 것을 ‘’이라 한다.”라고 하고, 〈조풍 후인曹風 候人〉에서 “도요새가 어량魚梁에 있네[유제재량維鵜在梁]”라고 하였는데, 에서 “은 물속의 이다.”라고 하고, 〈소아 원앙小雅 鴛鴦〉에서 “원앙새가 어량魚梁에 있네[원앙재량鴛鴦在梁]”라고 하였는데,
箋云 “石絶水之梁.” 白華亦云 “有鶖在梁”, 又云 “鴛鴦在梁”, 皆鳥獸所在, 非人所往還之處, 卽皆非橋梁矣, 故以‘石絶水’解之.
에서 “돌로 물길을 막은 것이 이다.”라고 하고, 〈소아 백화小雅 白華〉에서도 “무수리 어량魚梁에 있네[유추재량有鶖在梁]”라고 하고, 또 “원앙새 어량魚梁에 있네[원앙재량鴛鴦在梁]”라고 하였으니, 모두 조수鳥獸가 머무는 곳이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 아니니, 모두 교량橋梁이 아니다. 그리하여 ‘석절수石絶水’라고 풀이한 것이다.
此石絶水之梁, 亦是魚梁, 故王制云 “獺祭魚然後, 虞人入澤梁.” 注云 “梁, 絶水取魚者.”
여기의 돌로 물길을 막은 어량魚梁인 것이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제사 지낸 뒤에 우인虞人택량澤梁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은 물길을 막아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白華箋云 “鶖也, 鶴也, 皆以魚爲美食者也. 鶖之性貪惡, 而今在梁.”
소아 백화小雅 白華〉의 에서 “무수리와 학은 모두 물고기를 맛있는 먹이로 여긴다. 무수리의 본성은 욕심이 많고 사나운데 지금 어량魚梁에 있다.”라고 하였고,
表記注云 “鵜, 洿澤, 善居泥水之中, 在魚梁.” 是梁皆魚梁明矣.
예기禮記≫ 〈표기表記〉의 에서 “오택洿澤(별칭別稱)이니 진흙물 속에 살기를 좋아하여 어량魚梁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은 모두 어량魚梁임이 분명하다.
【疏】其制, 䱷人 “掌以時䱷爲梁.” 鄭司農云 “梁, 水堰, 堰水而爲關空, 以笱承其空.”
그 제도는 ≪주례周禮≫ 〈천관 어인天官 䱷人〉에 “어인䱷人은 때에 맞춰 〈물고기를〉 바치기 위해 을 만드는 것을 관장한다.”라고 하였는데, 정사농鄭司農이 “은 물막이 제방이니, 물에 제방을 쌓아 빈 공간을 만들어 통발을 그 곳에 설치한다.”라고 하였으니,
然則梁者爲堰, 以鄣水, 空中央承之以笱, 故云‘笱 所以捕魚’也.
그렇다면 은 제방이고 물길을 막아 가운데를 비게 하여 통발을 설치하기 때문에 ‘는 물고기 잡는 도구이다.’라고 한 것이다.
然則水不絶, 云絶水者, 謂兩邊之堰是絶水, 堰則以土, 皆云石者, 蓋因山石之處, 亦爲梁以取魚也.
그렇다면 물이 끊긴 것이 아닌데 물길을 끊었다고 한 것은 양 쪽에 쌓은 제방이 물길을 끊은 것이고, 제방은 흙으로 만드는데 모두 돌이라고 한 것은 산골짜기 돌이 많이 있는 곳에서도 어량魚梁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기 때문이다.
月令 “孟冬謹關梁.” 大明云 “造舟爲梁”之類, 皆謂橋梁, 非絶水, 故月令注云 “梁, 橫橋.”是也.
예기禮記≫ 〈월령月令〉에서 “맹동孟冬관량關梁(관문과 교량)을 살핀다.”라고 한 것과 〈대아 대명大雅 大明〉에서 “배를 만들어 배다리를 놓는다.”라고 한 것은 모두 교량橋梁을 이른 것이니 물길을 끊은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월령月令에서 “은 가로 놓은 다리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箋‘毋者 喩禁新昏’
의 [무자 유금신혼毋者 喩禁新昏]
○正義曰:以毋, 禁辭, 禁人無逝我梁, 是喩禁新昏無乃之我家也,
정의왈正義曰는 금지하는 말이니, 상대에게 내 어량魚梁에 가지 말라고 금지한 것은 새로 혼인한 여인에게 내 집에 가지 말라고 금지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故角弓箋云 “毋, 禁辭.” 說文云 “毋, 從女, 象有姦之者.” 禁令勿姦, 故毋爲禁辭.
그리하여 〈소아 각궁小雅 角弓〉의 에서 “는 금지하는 말이다.”라고 하였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 부수를 따르니 간음하는 자가 있음을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간음하는 자가 있으면〉 금지하여 간음하지 말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를 금지하는 말이라고 한 것이다.
【疏】箋‘我身’至‘子孫’
의 [아신我身]에서 [자손子孫]까지
○正義曰:以此婦人去夫, 故知憂所生之子孫也. 時未必有孫, 言之協句耳.
정의왈正義曰:여기서 부인婦人이 남편을 떠났기 때문에 자기가 낳은 자손을 걱정함을 안 것이다. 이때에 반드시 손자가 있지는 않을 텐데, 손자라고 말한 것은 운을 맞춘 것일 뿐이다.
小弁云大子身被放逐, 明恐身死之後, 憂其父更受讒, 故文同而義異.
소아 소반小雅 小弁〉은 태자가 자신이 쫓겨난 것을 말한 것이니, 아마도 자신이 죽은 뒤에 그 아버지가 다시 참소를 받을까 걱정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글은 같으나 뜻이 다른 것이다.
就其深矣 方之舟之 就其淺矣 泳之游之호라
깊은 물 건널 때는 뗏목이나 배를 탔고 얕은 물 건널 때는 자맥질도 헤엄도 쳤네
【傳】舟 船也
는 ‘배’이다.
【箋】箋云 方 泭也 潛行爲泳이라 言深淺者 喩君子之家事無難易하고 吾皆爲之
전운箋云은 뗏목이다. 물속으로 가는 것이 이다. 을 말한 것은, 남편의 집안일은 어렵고 쉬움을 가리지 않고 내가 모두 하였음을 비유한 것이다.
何有何亡오하여 黽勉求之하고
있고 없음 살펴서 애써 살림 늘렸고
【傳】有 謂富也 謂貧也
는 부유함을 이르고, 는 가난함을 이른다.
【箋】箋云 君子何所有乎 何所亡乎 吾其黽勉勤力爲求之하여 有求多하고 亡求有
전운箋云:남편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며 없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부지런히 힘써 구하여 있는 것은 더 많게 하고 없는 것은 있게 한 것이다.
凡民有喪 匍匐救之호라
이웃의 어려운 일엔 힘을 다해 돌봐주었네
【箋】箋云 匍匐 言盡力也 凡於民有凶禍之事 隣里尙盡力往救之
전운箋云포복匍匐은 힘을 다한다는 말이다. 남에게 흉한 일이 있으면 이웃인데도 오히려 온힘을 다해 도와주었는데,
況我於君子事難易乎 固當黽勉이니 以疏喩親也
하물며 내 남편의 집안일은 어찌 어렵고 쉬움을 가리겠는가. 진실로 마땅히 힘을 써야 하니, 소원함으로 친근함을 비유한 것이다.
【疏】‘就其’至‘救之’
의 [취기就其]에서 [구지救之]까지
○毛以爲, 婦人旣怨君子棄己, 反追說己本勤勞之事, 如人之渡水, 若就其深矣, 則方之舟之, 若就其淺矣, 則泳之游之, 隨水深淺, 期於必渡,
모형毛亨은 ‘부인이 남편이 자기를 버린 것을 원망하고 자기가 본래 부지런히 노력한 일을 돌이켜 말하였으니, 사람이 물을 건널 때에 깊은 곳을 건너려면 뗏목을 타거나 배를 타고, 얕은 물을 건너려면 자맥질 하거나 헤엄쳐서 물의 깊고 얕음에 따라 반드시 건널 것을 기약하는 것과 같다.
以興己於君子之家事, 若値其難也, 則勤之勞之, 若値其易也, 卽優之游之, 隨事難易, 期於必成.
이로써 자기가 남편의 집안일 중에 어려운 일을 만나면 부지런히 노력하고, 쉬운 일을 만나면 느긋하고 여유롭게 하여 일의 어렵고 쉬움에 따라 반드시 이룰 것을 기약하였음을 한 것이다.
匪直於君子之家事無難易, 又於君子之家財業, 何所富有乎, 何所貧乎, 不問貧富, 吾皆勉力求之.
남편의 집안일은 어렵고 쉬움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남편 집의 살림에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떤 것이 없는지를 살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고 내가 모두 힘써 구하였다.
所以君子家事己皆勉力者, 以其凡民於有喪禍之事, 其隣里尙盡力以救之, 隣里之疏猶能如是,
남편의 집안일을 자신이 모두 힘써 노력한 까닭은 이웃 사람에게 흉한 일이 있으면 이웃인데도 오히려 온 힘을 다해 도와주었기 때문이니 소원한 이웃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는데,
況我於君子家事難易, 何得避之, 故己所以盡力也, 而君子棄己, 故怨之.
하물며 내 남편 집안의 어려운 일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자신이 노력을 다하였는데도 남편이 자기를 버렸다. 그리하여 원망한 것이다.’고 여긴 것이다.
○鄭唯‘何有何亡’爲小異.
정현鄭玄은 ‘하유하무何有何亡’만을 조금 다르게 여기었다.
【疏】傳‘舟 船’
의 [주 선舟 船]
○正義曰:舟者, 古名也, 今名船. 易曰 “利涉大川, 乘木舟虛.” 注云 “舟謂集板, 如今. 空大木爲之, 曰虛.” 卽古又名曰虛, 摠名皆曰舟.
정의왈正義曰는 옛 명칭이고, 지금은 ‘’이라 한다. ≪주역周易중부괘中孚卦에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나무배로 건너되 배가 비어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는 판자를 모은 것을 말하는데, 지금의 과 같다. 큰 나무〈의 속을 파내어〉 비게 만든 것을 ‘’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곧 옛날에는 라고도 불렀는데, 총칭하여 모두 ‘’라고 한 것이다.
【疏】傳‘有謂富 亡謂貧’
의 [유위부 무위빈有謂富 亡謂貧]
○正義曰:以有謂有財, 故云富, 亡謂無財, 故曰貧. 言不問貧富, 皆勉力求之.
정의왈正義曰는 재물이 있는 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고, 는 재물이 없는 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이라 한 것이다. 빈부貧富를 따지지 않고 모두 힘써 구함을 말한 것이다.
【疏】箋‘有求多 亡求有’
의 [유구다 무구유有求多 亡求有]
○正義曰:以有無, 謂於一物之上, 有此物無此物, 故言‘有求多 亡求有’也. 以求財業, 宜於一事爲有亡, 故易傳.
정의왈正義曰는 한 가지 물건에 있어, 이 물건이 있거나 없는 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있는 것은 더 많게 하고 없는 것은 있게 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재산을 구하는 것은 하나의 일에서 있고 없음이 되기 때문에 의 내용을 바꾸어 말한 것이다.
【疏】箋‘匍匐 言盡力’
의 [포복 언진력匍匐 言盡力]
○正義曰:以其救恤凶禍, 故知宜爲盡力. 生民云 “誕實匍匐”, 謂后稷之生爲小兒匍匐, 與此不同也.
정의왈正義曰:흉한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온힘을 다한 것을 안 것이다. 〈대아 생민大雅 生民〉에 “실로 엉금엉금 기어 다닐 때”라고 한 것은 후직后稷이 태어나 어린아이 때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을 말하니 여기와는 다르다.
問喪注云 “匍匐猶顚蹷.” 然則匍匐者, 以本小兒未行之狀, 其盡力顚蹷似之, 故取名焉.
예기禮記≫ 〈문상問喪〉의 주에서 “포복匍匐은 넘어지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포복匍匐은 본래 어린아이가 아직 걷기 전의 모습이니 안간힘을 써도 넘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름을 취한 것이다.
凡民有凶禍之事, 隣里尙盡力往救之, 謂營護凶事, 若有賵贈也.
남에게 흉한 일이 있으면 이웃도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가서 도와준다는 것은 흉한 일을 구휼함을 이르니, 부의 같은 것이다.
不我能慉이요 反以我爲讎로다
날 보살펴주지 않고서 도리어 원수로 여기네
【傳】慉 養也
은 ‘기름’이다.
【箋】箋云 慉 驕也 君子不能以恩驕樂我하고 反憎惡我
전운箋云은 ‘총애’이니, 남편이 은애로써 나를 즐겁게 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慉 興也라하고 說文 起也라하니라
모형毛亨은 “이다.”라고 하였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일으키다)이다.”라고 하였다.
旣阻我德하니 賈用不售로다
내 은덕 꺼리니 안 팔리는 물건 신세로다
【傳】阻
는 ‘꺼림’이다.
【箋】箋云 旣難却我하여 隱蔽我之善이로대 我脩婦道而事之하여 覬其察己 猶見疏外하니 如賣物之不售
전운箋云:나를 꺼리고 멀리하여 나의 잘한 것을 숨기려고 하나 나는 아녀자의 도리를 다하여 섬겨서 나를 보살펴주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외면당하니 마치 팔리지 않는 물건과 같다는 것이다.
○賈 市也
는 파는 것이다.
昔育恐育鞫하여 及爾顚覆이러니
어려선 나이 들어 곤궁할까 두려워 그대와 함께 온 힘을 다했더니
【傳】育이요 窮也
은 ‘나이 듦’이고, 은 ‘곤궁함’이다.
【箋】箋云 昔育 稚也 與也 昔幼稚之時 恐至長老窮匱 故與女顚覆盡力於衆事하여 難易無所辟
전운箋云석육昔育은 어림이다. 은 함께이다. 옛날 어릴 적에는 나이 들어 곤궁할까 걱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대와 함께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하여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피함이 없었던 것이다.
○鞫 本亦作諊이라 本亦作穉 乏也 音避 本亦作避
은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는 ‘’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는 궁핍함이다. 는 음이 ‘피’이고, ‘’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旣生旣育하얀 比予于毒
살림 늘고 나이 들자 날 독충처럼 여기는가
【箋】箋云 生 謂財業也 謂長老也 於也
전운箋云은 재산을 이르고, 은 나이 들어 늙음을 이른다. 이다.
旣有財業矣 又旣長老矣하여는 其視我如毒螫하니 言惡己甚也
재산도 있고, 또 나이가 들어서는 나를 독충 같이 보니 자기를 싫어함이 심함을 말한 것이다.
【疏】‘不我’至‘于毒’
의 [불아不我]에서 [우독于毒]까지
○毛以爲, 婦人云, 君子假不能以善道養我, 何故反以我爲讎乎, 旣不被恩遇, 又爲善不報,
모형毛亨은 ‘부인이 「남편은 좋은 도리로 나를 돌봐주지는 못할지언정 어찌하여 도리어 나를 원수같이 여기는가.」라고 하였으니, 은혜로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또 잘한 일에 보답을 받지 못한 것이다.
故言旣難却我, 而隱蔽我之善德, 謂先有善德, 已被隱蔽矣. 今我更修婦道以事之, 覬其察己, 而猶見疏外, 似賣物之不售.
그리하여 「나를 꺼리고 멀리하여 나의 좋은 덕을 은폐한다.」고 한 것이니, 이전의 좋은 덕이 은폐 당함을 말한 것이다. 이제 내가 다시 부인의 도리를 다하여 섬겨서 나를 보살펴주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외면당하니 팔리지 않은 물건과 같다.
又追說己本勤勞以責之, 言我昔日幼稚之時, 恐至長而困窮, 故我與汝顚覆盡力於家事, 難易無所避,
또 자기가 본래 부지런히 노력한 것을 돌이켜 말하여 책망하여, 「내가 옛날에 어렸을 적에 나이 들어 곤궁할까 걱정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그대와 집안일에 온힘을 다하고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피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고,
今日旣生有財業矣, 又旣長老矣, 汝何爲視我如蟲之毒螫乎. 言惡己至甚.
「지금 사는데 재산도 늘고 나이도 들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독충 같이 보는가.」 하였으니, 자기를 매우 싫어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不我能慉’, 當倒之云‘不能慉我’. 鄭唯‘不我能慉’爲異.
불아능휵不我能慉’은 도치하여 ‘불능휵아不能慉我’라고 해야 한다. 정현鄭玄은 ‘불아능휵不我能慉’만을 다르게 여기었다.
【疏】傳‘慉 養’, 箋‘慉 驕’至‘惡我’
의 [휵 양慉 養]과 의 [휵 교慉 驕]에서 [오아惡我]까지
○正義曰:徧檢諸本, 皆云‘慉, 養’, 孫毓引傳云 “慉, 興.”非也. 爾雅不訓慉爲驕, 由養之以至於驕, 故箋訓爲驕.
정의왈正義曰:여러 을 두루 살펴보면 모두 ‘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육孫毓을 인용하여 “이다.”라고 하였으니, 잘못이다. ≪이아爾雅≫에서 라고 풀이하지 않았으나, 돌봐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에서 ‘’라고 풀이한 것이다.
驕者, 至恩之辭, 讎者, 至怨之稱. 君子遇己至薄, 怨切至痛. 故擧至愛以駮至惡.
는 지극히 은애하는 말이고, 는 지극히 원망하는 명칭이다. 남편이 자기를 대우함이 매우 각박하여 비통하고 지극히 고통스러웠다. 그리하여 지극히 사랑함을 들어서 지극히 미워함을 공박한 것이다.
【疏】箋‘昔育’至‘所辟’
의 [석육昔育]에서 [소벽所辟]까지
○正義曰:以育得兩說, 故釋言爲稚, 釋詁爲長. 以經有二育, 故辨之云 ‘昔育’者, ‘育, 稚也’.
정의왈正義曰:‘’에 두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이아爾雅≫ 〈석언釋言〉에서 ‘’라 하고, ≪이아爾雅≫ 〈석고釋詁〉에서 ‘’이라 한 것이다. 에 두 개의 자가 있다. 그리하여 구분하여 ‘석육昔育’의 ‘’은 ‘’라고 한 것이다.
以下云‘旣生’謂‘財業’, 又以黽勉․匍匐類之, 故‘顚覆’爲盡力.
아래에서 ‘기생旣生’을 ‘재업財業’이라 하였고, 또 ‘민면黽勉’과 ‘포복匍匐’도 같은 이다. 그리하여 ‘전복顚覆’을 ‘힘을 다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若黍離云 “閔周室之顚覆”, 抑云 “顚覆厥德”, 各隨其義, 不與此同.
왕풍 서리王風 黍離〉의 에서 “나라 왕실이 전복됨을 슬퍼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대아 억大雅 抑〉에서 “그 덕마저 전복되면[전복궐덕顚覆厥德]”이라고 한 것 같은 경우는 각기 그 뜻을 따른 것이니, 여기와는 다르다.
【疏】箋‘生謂財業’
의 [생위재업生謂財業]
○正義曰:以上云昔年稚恐窮, 以生對窮. 故爲財業. 以財由人而生之, 故大學曰 “生財有大道, 生之者衆, 食之者寡.”是也.
정의왈正義曰:위에서 예전 어릴 때에 곤궁할까 걱정하였다고 하여 대구對句가 되기 때문에 을 ‘재업財業’이라 한 것이다. 재물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늘어난다. 그리하여 ≪대학大學≫에 “재물을 늘리는 데 큰 가 있으니, 생산하는 자는 많고 소비하는 자는 적어야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我有旨蓄 亦以御冬이러니
내 맛있는 채소 저장함은 겨울을 나기 위함이었더니
【傳】旨 禦也
는 ‘맛있음’이고, 는 ‘대비함’이다.
【箋】箋云 蓄聚美菜者 以禦冬月乏無時也
전운箋云:맛있는 채소를 저장하는 것은 겨울에 음식이 부족할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蓄 本亦作畜이라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宴爾新昏하니 以我御窮이로다
그대는 새 여인만 좋아하니 난 궁할 때만 대비한 사람이었네
【箋】箋云 君子亦但以我御窮苦之時하여 至於富貴則棄我如旨蓄이라
전운箋云:남편 또한 나를 곤궁하고 힘들 때만 대비하는 사람으로만 여겨서, 부귀해지자 〈겨울에는 저장했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버리는〉 저장해놓은 맛있는 채소처럼 나를 버린 것이다.
有洸有潰하여 旣詒我肄하니
사납게 하고 화를 내어 나를 힘들게 하니
【傳】洸洸 武也 潰潰 怒也 勞也
광광洸洸은 ‘사나움’이고 궤궤潰潰는 ‘화냄’이다. 는 ‘수고로움’이다.
【箋】箋云 詒 遺也 君子洸洸然하고 潰潰然하여 無溫潤之色하여 而盡遺我以勞苦之事하니 欲窮困我
전운箋云는 ‘끼침’이다. 남편이 사납게 하고 화를 내어 온화한 기색이 없이 나에게 수고로운 일을 다 맡기니 나를 곤궁하게 하려는 것이다.
○潰 韓詩云 潰潰 不善之貌라하니라 爾雅作勩
는 ≪한시韓詩≫에 “궤궤潰潰는 좋지 않은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는 ≪이아爾雅≫에 ‘’로 되어 있다.
不念昔者 伊余來墍로다
생각지 않네 예전에 나 처음 와 편히 지내게 하던 일을
【傳】墍 息也
는 ‘편히 쉼’이다.
【箋】箋云 君子忘舊하고 不念往昔年稚我始來之時 安息我
전운箋云:남편이 옛날을 잊어버리고 예전 내가 젊었을 적 처음 왔을 때에 나를 편히 지내게 하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疏】‘我有’至‘來墍’
의 ‘아유我有’에서 ‘내기來塈’까지
○正義曰:婦人怨其惡己, 得新昏而見棄, 故稱人言我有美菜, 蓄之亦以禦冬月乏無之時,
정의왈正義曰:부인이 자기를 미워하고 새로 혼인한 여인을 얻어 자기가 버림받은 것을 원망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맛있는 채소가 있어 저장하는 것은 또한 겨울에 음식이 모자라는 때를 대비하기 위함인데,
猶君子安樂汝之新昏, 本亦但以我禦窮苦之時而已. 然窮苦取我, 至於富貴而見棄,
이는 마치 남편이 새로 혼인한 여인을 좋아하여 본래에도 나를 곤궁할 때만 대비하는 사람으로만 여기었을 따름인 것과 같다. 그러나 곤궁할 때에는 나를 취했다가 부귀해지자 나를 버린 것은,
似冬月蓄菜, 至於春夏則見遺也. 君子旣欲棄己, 故有洸洸然威武之容, 有潰潰然恚怒之色, 於我又盡我以勞苦之事,
겨울에는 채소를 저장했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버려지는 것과 같다. 남편이 자기를 버리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무서운 모습을 하고 노엽게 성난 기색을 띠어 나에게 더욱 힘든 일을 다 떠맡기니,
不復念昔者我幼稚始來之時安息我也. 由無恩如此, 所以見出, 故追而怨之.
옛날 내가 젊었을 적 처음 왔을 때 나를 편안하게 쉬게 하였던 것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은애가 없음이 이와 같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다. 그리하여 돌이켜 원망한 것이다.
‘亦以禦冬’, 言‘亦’者, 因亦己之禦窮. 伊, 辭也.
역이어동亦以禦冬’에서 ‘’을 말한 것은 자기도 곤궁함을 대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는 어조사이다.
【疏】箋‘君子’至‘旨蓄’
의 [군자君子]에서 [지축旨蓄]까지
○正義曰:上經與此互相見, 以舊比旨蓄, 新昏以比新菜,
정의왈正義曰:위의 경문經文과 이 글을 대조해보면 옛 부인을 저장한 맛있는 채소에 비유하고, 새 여인을 새 채소에 비유하였으니,
此云‘宴爾新昏’, 則上宜云得爾新菜, 上言‘我有旨蓄’, 此宜云爾有舊室. 得新菜而棄旨蓄, 猶得新昏而棄己.
여기서 ‘그대는 새로 혼인한 여인만 좋아하니’라고 했으면 앞에서는 ‘그대 새 채소를 얻었다’고 해야 하고, 앞에서 ‘내 맛있는 채소 저장함’이라고 했으면 여기서는 ‘그대에게 옛 부인이 있다.’라고 해야 한다. 새 채소를 얻고서 저장한 맛있는 채소를 버린 것은 새로 혼인한 여인을 얻고서 자기를 버린 것과 같다.
又言己爲之生有財業, 故云‘至於富貴’也. 己言爲致富耳, 言貴者, 協句也.
또 자기가 그를 위해 재산을 늘렸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귀富貴를 이루었다’고 한 것이다. 자기는 를 이룬 것만 말했을 뿐인데 ‘’까지 말한 것은 운을 맞춘 것이다.
【疏】傳‘肄 勞’
의 [이 노肄 勞]
○正義曰:釋詁文. 爾雅或作勩, 孫炎曰 “習事之勞也.”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이아爾雅≫에 간혹 ‘’로 되어 있는데, 손염孫炎은 “일을 익히는 수고로움이다.”라고 하였다.
谷風 六章이니 章八句
곡풍谷風〉은 6이니 장마다 8구이다.
역주
역주1 潤澤行 恩愛成 : 〈小雅 谷風〉의 箋에 “바람 불고 또 비가 오면 윤택해지는 것이 朋友가 뜻을 같이 하면 恩愛가 이루어짐을 비유한 것이다.[風而有雨則潤澤行 喩朋友同志則恩愛成]”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谷風’과 다름을 설명한 것이다.
역주2 (部)[郊]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郊’로 번역하였다.
역주3 (鬻)[䰞] : 王先謙의 ≪詩三家義集疏≫에 의거하여 ‘䰞’로 번역하였다.
역주4 [違]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5 夫婦坐圖可否 有兄弟之道 : 부부에게 형제의 도리가 있는 이유를 말한 것이다. 〈小雅 黃鳥〉의 疏에서 夫婦를 兄弟라고 하였는데, ≪列女傳≫에서 “혼례를 치르면 兄弟의 도리를 행한다.[執禮而行兄弟之道]”라고 하였고, 何休는 “安危와 可否를 도모하는 것이 형제의 의리이다.[圖安危可否 兄弟之義]”라고 하였다. ≪毛詩正義 11권≫, ≪春秋公羊傳注疏 8권≫
역주6 九畿及王畿千里 : 王畿는 王城의 사방 千里를 말하고, 九畿는 侯畿․甸畿․男畿․采畿․衛畿․蠻畿․夷畿․鎭畿․藩畿이다. 王畿 밖 500리마다 나무를 심어 경계를 지어 一畿로 구획하고, 모두 九畿를 두어 제후의 영지로 삼거나 외족들이 와서 살게 하였다. ≪周禮 夏官 大司馬 鄭玄注≫, ≪周禮 地官 小司徒 賈公彦疏≫
역주7 (諭)[喩]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喩’로 번역하였다. 아래도 같다.
역주8 我後 : 傳에는 풀이가 없고, 箋에서 ‘뒤의 자손’이라고 풀이하였으나, 문맥상 앞의 經의 내용과 연결해보면 ‘떠난 뒤’라는 朱子의 풀이가 합당하여 ‘떠난 뒤’로 번역하였다.
역주9 (陵陽)[陽陵]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陽陵’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0 (至)[室]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室’로 번역하였다.
역주11 (渭)[謂]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謂’로 번역하였다. 아래도 같다.
역주12 一碩 : 碩은 石과 통용된다.
역주13 左傳 : ‘大夫越境逆女 非禮’는 ≪春秋左氏傳≫의 글이 아니고, ≪春秋公羊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역주14 (家之)[之家]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之家’로 번역하였다.
역주15 (亡)[無]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無’로 번역하였다.
역주16 (自)[船]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船’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7 (云)[也] : 저본에는 ‘云’으로 되어 있으나, 武英殿本에 의거하여 ‘也’로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18 (道)[遺]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遺’로 번역하였다.
역주19 (至)[室]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室’로 번역하였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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