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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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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毛詩國風 鄭氏箋 孔穎達疏
【序】葛覃 后妃之本也 后妃在父母家 則志在於女功之事하고
갈담葛覃〉은 후비后妃의 근본을 읊은 시이다. 후비가 부모의 집에 있을 때에 여공女功의 일에 뜻을 두고
躬儉節用하여 服澣濯之衣하고 尊敬師傅하니 則可以歸安父母하여 化天下以婦道也
몸소 검소하고 절약하여 깨끗이 빨래한 옷을 입고 사부를 존경하였으니, 그렇다면 친정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여 부인의 도리로 천하를 교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箋】躬儉節用 由於師傅之敎어늘 而後言尊敬師傅者 欲見其性亦自然이요
궁검절용躬儉節用’이 사부師傅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는데도 ‘존경사부尊敬師傅’를 뒤에 말한 것은 부인의 성품이 자연스러웠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고,
可以歸安父母 言嫁而得意로되 猶不忘孝
가이귀안부모可以歸安父母’는 시집가서 뜻을 얻었는데도 효도할 것을 잊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覃 本亦作蕈하니 延也 本又作浣이라
○‘’이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뻗어감’이다. ‘’이 또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疏】‘葛覃(三章章六句)’至‘以婦道’
의 [갈담葛覃]에서 [이부도以婦道]까지
○正義曰:作葛覃詩者, 言后妃之本性也, 謂貞專節儉自有性也.
정의왈正義曰:〈갈담葛覃〉시를 지은 것은 후비后妃의 본성을 말한 것이니, 한결같이 곧고 절약하고 검소함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임을 말한 것이다.
敍又申說之, ‘后妃先在父母之家, 則已專志於女功之事, 復能身自儉約謹節財用, 服此澣濯之衣, 而尊敬師傅.
본성을 서술하고 또 거듭 말하기를 ‘후비가 예전 부모의 집에 있을 때에 이미 여공女功의 일에 오로지 뜻을 두었고, 다시 몸소 재용財用을 근검절약하여 깨끗이 빨래한 옷을 입고 사부를 존경하였다.
在家本有此性, 出嫁脩而不改, 婦禮無愆, 當於夫氏, 則可以歸問安否於父母, 化天下以爲婦之道’也.
집에 있을 때 본래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집가서도 이를 실천하고 바꾸지 아니하여 부인의 예에 허물이 없어 남편에게 합당하였으니, 그렇다면 부모에게 돌아가 안부를 물어 부인의 도리로 천하를 교화시킬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疏】先言‘后妃在父母家’者, 欲明‘尊敬師傅’, 皆‘后妃在家’時事, 說其爲本之意.
후비재부모가后妃在父母家’를 먼저 말한 것은 ‘존경사부尊敬師傅’가 모두 후비后妃가 친정집에 있을 때의 일임을 밝히고자 함이니, 근본이 되는 뜻을 설명한 것이다.
言‘在父母之家’者, 首章是也, ‘志在女功之事’者, 二章‘治葛以爲絺綌’是也, ‘躬儉節用服澣濯之衣’者, 卒章汙私澣衣是也.
재부모지가在父母之家’는 1이 이것이고, ‘지재녀공지사志在女功之事’는 2의 ‘치갈이위치격治葛以爲絺綌’이 이것이고, ‘궁검절용 복한탁지의躬儉節用 服澣濯之衣’는 3의 ‘오사汙私’와 ‘한의澣衣’가 이것이다.
澣濯卽是節儉, 分爲二者, 見由躬儉節用, 故能服此澣濯之衣也.
’과 ‘’이 곧 절검인데 둘로 나눈 것은 몸소 검소하고 절약하기 때문에 이 깨끗이 빨래한 옷을 능히 입음을 나타낸 것이다.
‘尊敬師傅’, 卒章上二句‘言告師氏’是也, ‘可以歸安父母’者, 卽卒章下一句‘歸寧父母’是也.
존경사부尊敬師傅’는 3의 위 둘째구의 ‘언고사씨言告師氏’가 이것이고, ‘가이귀안부모可以歸安父母’는 곧 3의 아래 첫 구의 ‘귀녕부모歸寧父母’가 이것이다.
‘化天下以婦道’者, 因事生義, 於經無所當也. 經言汙私澣衣, 在‘言歸’之下, 則是在夫家之事也.
화천하이부도化天下以婦道’는 일로 인하여 생긴 의미로 에는 해당된 곳이 없다. 에서 ‘오사汙私’와 ‘한의澣衣’를 말하면서 ‘언귀言歸’의 뒤에 둔 것은 이것이 남편 집에 있을 때의 일이기 때문이다.
敍言‘躬儉節用’謂‘在父母之家’者, 見其在家已然, 出嫁不改也.
에서 ‘궁검절용躬儉節用’을 말하면서 ‘재부모지가在父母之家’라고 이른 것은 부인이 집에 있을 때 그러하였고 시집가서도 고치지 않았음을 나타낸 것이다.
【疏】箋‘躬儉’至‘忘孝’
의 [궁검躬儉]에서 [망효忘孝]까지
○正義曰:箋知‘躬儉節用’, 由於師傅之敎者, 以經汙私澣衣在‘言告師氏’之下故也.
정의왈正義曰에서 ‘궁검절용躬儉節用’이 사부의 교육에 의해서인 것임을 안 것은 에 ‘오사汙私’와 ‘한의澣衣’가 ‘언고사씨言告師氏’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歸寧父母, 乃是實事, 而言可以者, 能如此, 乃可以耳.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함은 바로 실제의 일인데, ‘가이可以’라고 말한 것은 능히 이와 같이 하여야 비로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若不當夫氏, 雖歸安父母, 而父母尙憂, 今旣當夫氏, 仍得歸安父母, 言其嫁而得夫之意, 猶不忘孝故也.
만약 남편에게 합당하지 못하면 비록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더라도 부모가 도리어 걱정할 것인데, 지금 남편에게 합당하게 하고 이어서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할 수 있었으니, 이는 시집가서 남편의 뜻을 얻었는데도 도리어 효도를 잊지 않았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葛之覃兮 施于中谷이로다 維葉萋萋어늘
뻗어가는 칡덩굴 골짜기까지 뻗었네 그 잎 무성한데
葛(≪毛詩品物圖攷≫)葛(≪毛詩品物圖攷≫)
【傳】興也 延也 所以爲絺綌이니 女功之事煩辱者
이다. ‘’은 ‘뻗어감’이다. ‘’은 치격絺綌을 만드는 것이니 여공女功의 일 중에 번거롭고 힘든 것이다.
移也 中谷 谷中也 萋萋 茂盛貌
’는 ‘옮겨감’이다. ‘중곡中谷’은 ‘골짜기’이다. ‘처처萋萋’는 ‘무성한 모양’이다.
【箋】箋云 葛者 婦人之所有事也 此因葛之性하여 以興焉이라
전운箋云:‘’은 부인婦人이 일삼음이 있는 것이니, 이는 칡의 성질을 가지고 시정詩情한 것이다.
興者 葛延蔓於谷中으로 喩女在父母之家 形體浸浸日長大也 葉萋萋然으로 喩其容色美盛이라
흥한 것은 골짜기까지 뻗은 칡을 가지고 여인이 부모의 집에 있을 때에 모습이 점점 날로 장성해 감을 비유하고, 잎이 무성한 것으로 용모가 매우 아름다움을 비유한 것이다.
○施 以豉反하고 如字하니 下同이라
○‘’의 모형毛亨반절反切이라 하고, 정현鄭玄은 본래의 음대로 읽었으니 아래도 같다.
黃鳥于飛 集于灌木하니 其鳴喈喈로라
꾀꼬리 날아서 관목灌木에 모여드니 울음소리 어울려 멀리 퍼지네
黃鳥(≪毛詩品物圖攷≫)黃鳥(≪毛詩品物圖攷≫)
【傳】黃鳥 摶黍也 灌木 藂木也 喈喈 和聲之遠聞也
황조黃鳥’는 ‘단서摶黍(꾀꼬리)’이다. ‘관목灌木’은 ‘총목叢木’이다. ‘개개喈喈’는 소리가 어울려 멀리까지 들림이다.
【箋】箋云 葛延蔓之時 則摶黍飛鳴하니 亦因以興焉이라
전운箋云:칡이 무성하게 뻗어갈 때에는 꾀꼬리가 날면서 우니, 역시 이를 통하여 시정을 한 것이다.
飛集藂木으로 興女有嫁于君子之道 和聲之遠聞으로 興女有才美之稱 達於遠方이라
꾀꼬리가 날아서 총목叢木에 앉는 것으로 여인이 군자에게 시집갈 도리가 있음을 흥하고, 소리가 어울려 멀리까지 들리는 것으로 여인이 재주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칭찬이 먼 곳까지 알려짐을 한 것이다.
○摶黍 鳥名也
○‘단서摶黍’는 새의 이름이다.
【疏】‘葛之’至‘喈喈’
의 [갈지葛之]에서 [개개喈喈]까지
○正義曰:言葛之漸長, 稍稍延蔓兮而移於谷中, 非直枝幹漸長, 維葉則萋萋然茂盛,
정의왈正義曰:칡이 점차 자라 조금씩 뻗어 골짜기까지 뻗어갔는데, 가지와 줄기만 점차 자란 것이 아니라 잎도 활짝 피어 무성함을 말하여,
以興后妃之生, 浸浸日大, 而長於父母之家, 非直形體日大, 其容色又美盛.
후비后妃가 태어나 조금씩 날마다 커서 부모의 집에서 성장하였는데, 몸만 날로 큰 것이 아니라 용모도 매우 아름다워졌음을 한 것이다.
當此葛延蔓之時, 有黃鳥往飛, 集於叢木之上, 其鳴之聲, 喈喈然遠聞,
칡이 뻗어갈 때가 되면 뻐꾸기가 날아 총목叢木의 위에 모이는데, 우는 소리가 꾀꼴꾀꼴 먼 곳까지 들리는 것을 가지고
以興后妃形體旣大, 宜往歸嫁於君子之家, 其才美之稱, 亦達於遠方也.
후비의 몸이 자라서 군자의 집에 시집갈 만하였는데, 재주 있고 아름답다는 칭찬이 먼 곳까지 알려졌음을 흥한 것이다
【疏】傳‘葛所’至‘盛貌’
의 [갈소葛所]에서 [성모盛貌]까지
○正義曰:傳旣云興也, 復言‘葛所以爲絺綌’者, 以下章說后妃治葛不爲興, 欲見此章因事爲興,
정의왈正義曰에서 ‘’이라고 말하고 다시 ‘갈소이위치격葛所以爲絺綌’이라고 말한 것은 아래 에서 후비后妃가 갈포를 손질한 것을 가지고 흥하지 않고 이 에서 한 것을 가지고 흥하였음을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故箋申之云‘葛者婦人之所有事, 此因葛之性以興焉’是也.
그리하여 에서 거듭 ‘갈자부인지소유사 차인갈지성이흥언葛者婦人之所有事 此因葛之性以興焉’이라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采葛傳亦云‘葛所以爲絺綌’, 彼不爲因興亦言之者, 彼對蕭爲祭祀, 艾爲療疾故也.
왕풍 채갈王風 采葛〉의 에서도 ‘갈소이위치격葛所以爲絺綌’이라고 말하였는데, 그곳에서 ‘하여 흥한 것이다.’라고 하지 않은 것은 거기에서 ‘’는 제사를 위한 것이고 ‘’는 질병 치료를 위한 것임을 대비對比하였기 때문이다.
施, 移也, 言引蔓移去其根也. 中谷, 谷中, 倒其言者, 古人之語皆然, 詩文多此類也.
’는 옮겨감이니, 줄기가 뻗어 뿌리에서 옮겨 감을 말한다. ‘중곡中谷’은 곡중谷中인데, 바꾸어 말한 것은 옛사람들의 말이 모두 그러하니 시문에 이런 부류가 많다.
此言萋萋, 取未成之時, 喩女之少壯, 故云‘茂盛貌’, 下章, 指采用之時, 故以‘莫莫’爲成就貌也.
여기에서는 ‘처처萋萋’를 말하여 아직 다 자라지 않았을 때라는 의미를 취하여 여인의 나이가 젊고 건강함을 비유하였기 때문에 ‘무성모茂盛貌’라고 한 것이고, 아래 은 채취하여 사용하는 때를 말하였기 때문에 ‘막막莫莫’을 다 자란 모습으로 여긴 것이다.
【疏】箋‘葛延’至‘美盛’
의 [갈연葛延]에서 [미성美盛]까지
○正義曰:以谷中是葛生之處, 故以谷中, 喩父母之家, 枝莖猶形體, 故以葉比容色也.
정의왈正義曰:골짜기는 칡이 자라는 곳이기 때문에 ‘곡중谷中’을 부모의 집에 비유하고, 가지와 줄기는 여인의 몸과 같기 때문에 ‘’을 여인의 용모에 비유한 것이다.
王肅云 “葛生於此, 延蔓於彼, 猶女之當外成也.” 案下句黃鳥于飛, 喩女當嫁, 若此句亦喩外成, 於文爲重, 毛意必不然.
왕숙王肅은 “칡이 여기에서 자라나 골짜기까지 뻗어감이 마치 여인이 출가出嫁할 때를 당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아래 구를 살펴보면 ‘황조우비黃鳥于飛’는 여인이 출가할 때를 당한 것을 비유한 것이니, 만약 이 구도 여자가 출가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면 글이 중첩되니 모형毛亨의 생각은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疏】傳‘黃鳥’至‘遠聞’
의 [황조黃鳥]에서 [원문遠聞]까지
○正義曰:釋鳥云 “皇, 黃鳥.” 曰 “皇名黃鳥.” 郭璞曰 “俗呼黃離留, 亦名摶黍.”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조釋鳥〉에 “황조黃鳥이다.”라고 하였는데, 사인舍人은 “황조黃鳥이라고도 이름한다.”라고 하고, 곽박郭璞은 “세속에서 ‘황리류黃離留’라고 부르는데, 단서摶黍라고도 이름한다.” 하였다.
陸機疏云 “黃鳥, 黃鸝留也, 或謂之黃栗留, 幽州人謂之黃鸎, 一名倉庚, 一名商庚, 一名鵹黃, 一名楚雀, 齊人謂之摶黍,
육기陸機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 “황조黃鳥는 ‘황리류黃鸝留’이다. 혹은 ‘황률류黃栗留’라고 하고, 유주幽州 사람들은 ‘황앵黃鸎’이라고 한다. 일명一名창경倉庚’이고 일명一名상경商庚’이며 일명一名여황鵹黃’이고 일명一名초작楚雀’인데, 제인齊人들은 ‘단서摶黍’라고 하였다.
當葚熟時, 來在桑間, 故里語曰 ‘黃栗留, 看我麥黃葚熟.’” 是應節趍時之鳥也. 自此以下, 諸言黃鳥倉庚, 皆是也.
오디가 익을 때에 뽕밭에 오기 때문에 민간의 말에 ‘황률류黃栗留가 우리 보리가 누런지와 오디가 익었는지를 본다.’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계절에 따라 오는 새이다. 이후로 나오는 모든 황조黃鳥창경倉庚은 이 새이다.
釋木云 “灌木, 叢木.” 又云 “木族生爲灌.” 孫炎曰 “族, 叢也.” 是灌爲叢木也.
이아爾雅≫ 〈석목釋木〉에 “관목灌木총목叢木이다.”라고 하고, 또 “나무가 모여서 나는 것이 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이다.”라고 하였으니 ‘’은 총목이다.
【疏】箋‘葛延’至‘遠方’
의 [갈연葛延]에서 [원방遠方]까지
○正義曰:知葛當延蔓之時, 摶黍飛鳴, 亦因以興者, 以前葛之生長是爲因興, 則此亦宜然也.
정의왈正義曰:칡이 뻗어갈 때가 되어 꾀꼬리가 날면서 운 것 역시 한 것임을 안 것은 앞에서 칡이 자람을 가지고 흥으로 삼았으니 그렇다면 이 역시 당연히 그러하기 때문이다.
言搏黍往飛, 集於灌木之時, 其鳴恒喈喈然, ‘其鳴喈喈然’, 在‘集于灌木’之下,
꾀꼬리가 날아 관목灌木 위에 모일 때에는 울음소리가 항상 어울려 멀리까지 들리는데, ‘기명개개연其鳴喈喈然’이 ‘집우관목集于灌木’의 뒤에 있는 것은
欲明摠上于飛至集, 終始恒鳴, 以喩后妃在家與出嫁, 常有聲稱, 達於遠方也.
위의 날 때부터 나무에 모일 때까지를 통틀어 계속해서 항상 우는 것임을 밝혀, 후비后妃가 집에 있을 때나 시집갔을 때나 항상 명성이 있어서 먼 곳까지 알려짐을 비유하고자 한 것이다.
大明曰 “.” 是先有才美之稱也.
대아 대명大雅 大明〉에 “문왕文王가례嘉禮할 적에 큰 나라 아름다운 딸을 두셨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이전에 재주 있고 아름답다는 칭송이 있는 것이다.
飛集灌木, 鳥實往焉, 女嫁君子, 時實未嫁, 故言之道, 言雖有出嫁之理, 猶未也.
날아서 관목에 모이는 것은 새가 실제로 그곳에 간 것이고, 여인이 군자에게 시집가는 것은 당시에는 실제 아직 시집가지 않음이다. 그리하여 ‘도리道理’라고 한 것이니, 비록 시집갈 도리는 있으나 아직 가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君子, 是夫之之大名, 故詩於婦人稱夫, 多言君子也.
군자君子’는 남편을 부르는 큰 명칭이다. 그리하여 에서 부인이 남편을 부를 때에 대부분 군자라 한다.
女子之名, 不出於閫, 才美之稱, 得達遠方者, 其名繫於父兄, 故大雅云‘大邦有子’是也.
여인의 이름은 내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법인데, 재주와 아름다움의 칭송이 먼 곳까지 알려진 것은 여인의 이름이 부형父兄에게 연계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명大明〉에 ‘대방유자大邦有子’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葛之覃兮 施于中谷하니 維葉莫莫이로다
뻗어간 칡덩굴 골짜기까지 뻗었으니 그 잎 다 자랐네
【傳】莫莫 成就之貌
막막莫莫’은 다 자란 모습이다.
【箋】箋云 成就者 其可采用之時
전운箋云성취成就는 채취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시기이다.
是刈是濩하여 爲絺爲綌호니 服之無斁이로다
베어다 삶아서 가는 갈포 굵은 갈포 만드니 그 일할 적에 싫어함이 없네
【傳】濩 煮之也 精曰絺 麤曰綌이라 厭也
’은 ‘삶음’이다. 고운 것이 이고, 거친 것이 이다. ‘’은 ‘싫음’이다.
古者 王后織玄紞하고 公侯夫人紘綖하고 卿之內子大帶하고 大夫命婦成祭服하고 士妻朝服하고 庶士以下各衣其夫
옛날에 왕후王后는 ‘현담玄紞’을 짜고, 공후公侯부인夫人은 ‘굉연紘綖’을 짜고, 내자內子는 ‘대대大帶’를 짜고, 대부의 명부命婦는 ‘제복祭服’을 만들고, 의 처는 ‘조복朝服’을 만들고, 서사庶士 이하의 부인은 각각 ‘남편의 옷’을 만들었다.
【箋】箋云 服 整也 女在父母之家 未知將所適이라
전운箋云:‘’은 ‘일함’이다. 여인이 부모의 집에 있을 때에는 아직 누구에게 시집갈지를 알지 못한다.
故習之以絺綌煩辱之事하여 乃能整治之無厭倦하니 是其性貞專이라
그리하여 번거롭고 비천한 치격絺綌의 일을 익혀 마침내 일을 함에 싫어하거나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 여인의 본성이 곧고 한결같기 때문이다.
○艾 本亦作刈하니 韓詩云 刈 取也 韓詩云 濩 瀹也
○‘’는 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한시韓詩≫에 “는 취함이다.”라고 하였다. 은 ≪한시韓詩≫에 “이다.”라고 하였다.
葛之精者曰絺 本亦作𤢕하고 本亦作厭이라 織五采如縚狀하니 用縣瑱也
𤢕으로 되어 있는 도 있고,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갈포 중에 고운 것을 라고 한다. ‘’은 오색의 실로 짠 것으로 사대絲帶의 모양과 같은데 귀막이를 매다는 데 쓰인다.
纓之無緌者 從下仰屬於冠이라 冕上覆也 庶士 謂庶人在官者 本或作庶人이라
’은 갓끈에 가 없는 것이니 아래에서 올려 에다 매다는 것이다. ‘’은 면류관冕旒冠 위의 덮개이다. ‘서사庶士’는 서인으로 벼슬에 있는 자를 이르는데, ‘서인庶人’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疏】‘葛之’至‘無斁’
의 [갈지葛之]에서 [무역無斁]까지
○正義曰:言葛之漸延蔓兮, 所移在於谷中, 生長不已, 其葉則莫莫然成就, 葛旣成就, 已可采用, 故后妃於是刈取之, 於是濩煮之,
정의왈正義曰:칡덩굴이 점차 뻗어가 골짜기에까지 가 있으니, 끊임없이 자라 그 잎이 무성하게 다 자란 것이고, 칡이 다 자라나서 채취하여 쓸 만하므로 후비后妃가 이에 채취하여 삶은 것이다.
煮治已訖, 后妃乃緝績之, 爲絺爲綌, 言后妃整治此葛, 以爲絺綌之時, 志無厭倦, 是后妃之性貞專也.
삶아 손질함이 끝남에 후비가 마침내 길쌈을 하여 을 만들었음을 말한 것이다. 후비가 이 칡을 잘 다듬어 치와 격을 만들 때에 마음에 싫어하거나 게으름이 없었으니, 이는 후비의 본성이 곧고 전일함을 말한 것이다.
【疏】傳‘濩煮’至‘其夫’
의 [확자濩煮]에서 [기부其夫]까지
○正義曰:釋訓云 “是刈是濩, 濩, 煮之也.” 舍人曰“是刈, 刈取之, 是濩, 煮治之.”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훈釋訓〉에 “시예시확是刈是濩의 ‘’은 삶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사인舍人은 “시예是刈는 베어 오는 것이고, 시확是濩은 삶아 손질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孫炎曰 “煮葛以爲絺綌, 以煮之於濩, 故曰濩煮, 非訓濩爲煮.”
손염孫炎은 “칡덩굴을 삶아 을 만들 때에 에 삶는다. 그리하여 ‘확자濩煮’라고 한 것이니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曲禮云 “爲天子削瓜巾以絺, 諸侯巾以綌.” 玉藻云 “浴用二巾, 上絺下綌.”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천자天子를 위해 참외를 깎는 경우는 가는 갈포 수건으로 덮어서 올리고, 제후를 위해 참외를 깎는 경우는 굵은 갈포 수건으로 덮어서 올린다.”라고 하고,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목욕할 때는 두 개의 수건을 사용하니, 얼굴을 닦을 때는 치를 사용하고 몸을 닦을 때는 격을 사용한다.”라고 하여,
皆貴絺而賤綌, 是絺精而綌麤, 故云‘精曰絺, 麤曰綌’.
모두 치를 귀하게 여기고 격을 천하게 여겼으니, 치는 곱고 격은 거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왈치 추왈격精曰絺 麤曰綌’이라고 한 것이다.
‘斁厭’, 釋詁文, 彼斁作射, 音義同. 自‘王后織玄紞‘以下, 皆也.
’과 ‘’은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그곳에는 으로 되어 있는데 음과 뜻이 같다. ‘왕후직현담王后織玄紞’으로부터 그 이하는 모두 ≪국어國語≫ 〈노어魯語〉의 경강敬姜이 한 말이다.
【疏】紞, 縣瑱之物, 織五采爲之, 故著箋云 “人君五色.” 則天子之紞五色, 獨言‘玄’者, 以玄爲尊, 故擧以言焉.
’은 귀막이를 매다는 것인데 오색의 실을 짜서 만든다. 그리하여 〈제풍 저齊風 著〉의 에 “인군人君오색五色을 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천자天子은 오색인데 만을 말한 것은 현을 존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을 들어 말한 것이다.
‘紘’者, 纓之無綏, 從下而上者也. 祭義曰 “天子冕而朱紘, 諸侯冕而靑紘.” 此諸侯當以靑爲組, 在冕下, 仰屬之,
’이란 늘어뜨리는 ‘’가 없는 끈이니, 아래에서 위로 올려 묶는 것이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천자는 면류관冕旒冠주굉朱紘을 하고, 제후는 면류관에 청굉靑紘을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제후는 당연히 청색 실로 짜서 면류관 아래에서 위로 붙이는 것이다.
故士冠禮註云 “有笄者, 屈組爲紘, 垂爲飾, 無笄者, 纓而結其絛.” 是也.
그리하여 ≪의례儀禮≫ 〈사관례士冠禮〉의 에 “가 있는 것은 끈을 구부려 을 만들어 늘어뜨려 꾸미고, 가 없는 것은 을 끈에 연결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綖’者, 冕上覆, 論語注云 “績麻三十升, 以爲冕.” 夏官弁師註云 “綖, 冕上覆, 玄表纁裏.” 是也.
이란 면류관의 덮개이니, ≪논어論語≫의 에 “30의 베를 짜서 면류관을 만든다.”라고 하고, ≪의례儀禮≫ 〈하관 변사夏官 弁師〉의 에 “은 면류관 위의 덮개이니, 겉은 현색玄色으로 하고 속은 옅은 적색赤色으로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內子, 卿之適妻, 僖二十四年左傳, “趙姬請以叔隗爲內子, 而己下之.” 是也.
내자內子’는 적처適妻이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24년에 “조희趙姬가 〈진 문공晉 文公에게 청하여〉 숙외叔隗를 내자로 삼고 자기는 그의 하위下位가 되었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大帶者’, 玉藻所云‘大夫以玄華’, 華, 黃也, 以素爲帶, 飾之外以玄, 內以黃也.
대대大帶’는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말한 ‘대부大夫로 한다.’는 것이다. ‘’는 황색이니 흰 실로 를 만들어 겉은 현색玄色으로 꾸미고 속은 황색으로 꾸민 것이다.
‘大夫命婦成祭服’者, 大夫助祭, 服玄冕, 受之於君, 故大宗伯 ‘再命受服’ 是也.
대부명부성제복大夫命婦成祭服’이란 대부가 제사를 도울 때에 검은 면류관을 쓰는데 에게서 이것을 받는다. 그리하여 ≪주례周禮≫ 〈천관 대종백天官 大宗伯〉에 “재명再命의 관리는 관복官服을 받는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妻所成’者, 自祭之服, 少牢禮 ‘朝服玄冠․緇布衣․素裳’, 韋昭云 “祭服玄衣․纁裳.” 謂作玄冕之服, 非也.
처소성妻所成’이란 몸소 제사 지낼 때에 입는 예복이다. ≪의례儀禮≫ 〈소뢰례少牢禮〉엔 ‘조복朝服현관玄冠치포의緇布衣소상素裳이다.’라고 하였는데, 위소韋昭는 “제복祭服현의玄衣훈상纁裳이다.”라고 하여 현면玄冕의 복장을 만드는 것으로 말하였으니 잘못이다.
士妻朝服者, 作朝於君, 服亦玄冠․緇衣․素裳也.
사처조복士妻朝服’이란 이 조회할 때에 입는 옷을 만드는 것이니, 이 옷 역시 현관玄冠치의緇衣소상素裳이다.
【疏】‘庶士以下各衣其夫’, 庶士謂庶人在官者,
서사이하각의기부庶士以下各衣其夫’의 서사庶士는 서인으로 관직에 있는 이다.
故祭法曰 “官師一廟, 庶士庶人無廟.” 注云 “官師, 中士下士, 庶士, 府史之屬.”
그리하여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관사官師는 1이고, 서사庶士서인庶人가 없다.”라고 하고, 에 “관사는 중사中士하사下士이고, 서사는 재무와 문서를 관리하는 부사府史 같은 등속이다.”라고 하였는데,
庶士與朝服異文, 則亦府史之屬, . 此庶士下至庶人, 其妻各衣其夫, 則夫之所服, 妻悉爲之也.
서사와 조복朝服은 다른 글이니, 그렇다면 역시 부사府史의 등속이니 위소韋昭가 ‘하사下士’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여기의 서사 이하 서인까지는 처가 각각 자기 남편의 옷을 만드니, 그렇다면 남편이 입는 옷은 모두 처가 만드는 것이다.
彼文云 “公侯之夫人, 加之以紘綖也.” 則爲紞又爲紘綖也, 則士之妻, 加之以朝服, 則爲祭服又爲朝服, 皆下兼上也.
국어國語≫ 〈노어魯語〉의 글에서 “공후公侯부인夫人을 더 만든다.”라고 하였으니, 곧 을 만들고 또 굉과 연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의 처가 조복을 더 만든다면 제복祭服을 만들고 또 조복을 만드는 것이니, 모두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하는 일을 겸하는 것이다.
貴者所爲少, 賤者所爲多, 故庶士以下, 夫衣悉爲之.
신분이 존귀한 사람은 만드는 것이 적고 낮은 사람은 만드는 것이 많다. 그리하여 서사 이하의 처는 남편의 옷을 모두 만드는 것이다.
【疏】傳引此者, 以王后庶人之妻, 皆有所作, 后妃在父母之家, 未知將所適, 雖葛之煩辱, 亦治之也.
에서 이것을 인용한 것은, 왕후로부터 서인의 처까지 모두 할 일이 있는데, 후비后妃가 부모의 집에 있을 때에는 아직 누구에게 시집갈지 알지 못하여 칡덩굴을 다루는 번거롭고 힘든 일까지도 하였기 때문이다.
定本云‘王后織玄紞, 公侯夫人紘綖, 卿之內子大帶.’ 俗本, 王后下, 有‘親’字, 紘綖大帶上, 有‘織’字, 皆衍也.
정본定本엔 ‘왕후직현담 공후부인굉연王后織玄紞 公侯夫人紘綖 경지내자대대卿之內子大帶’라고 하였는데, 속본俗本엔 ‘왕후王后’의 아래에 ‘’자가 있고, ‘굉연紘綖’과 ‘대대大帶’ 위에 ‘’자가 있으니 모두 연자衍字이다.
【疏】箋‘服整’至‘貞專’
의 [복정服整]에서 [정전貞專]까지
○正義曰:‘服 整’, 釋言文也. 以女在父母之家, 未知將何所適, 不知爲作王后, 爲作士妻,
정의왈正義曰:‘복 정服 整’은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여인女人이 부모의 집에 있을 때에는 아직 누구에게 시집갈지를 알지 못하여 왕후가 될지, 사의 처가 될지를 모른다.
故習之以絺綌勞辱之事, 尙能整治之無厭倦, 是其性貞專.
그리하여 수고롭고 힘든 치격絺綌의 일을 익혀 싫어하거나 게을리하지 않고 다스렸으니 이는 그녀의 본성이 곧고 전일하기 때문이다.
言告師氏하여 言告言歸로다
나 스승께 말하여 나 시집갈 도리 알려 달라 하였네
【傳】言 我也 女師也 古者 女師敎以婦德婦言婦容婦功이로되
’은 ‘나’이다. ‘’는 여사女師이다. 옛날에 여사가 부인으로서의 덕과 부인으로서의 말씨와 부인으로서 가져야 할 용모와 부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되,
敎于公宮三月이요 祖廟旣毁 敎于宗室이라 婦人謂嫁曰歸
〈시집가기 3개월 전에〉 고조高祖의 사당이 아직 체천되지 않았으면 공궁公宮에서 3개월 동안 가르치고, 고조의 사당이 체천되었으면 종실에서 가르친다. 부인이 시집가는 것을 ‘’라 한다.
【箋】箋云 我告師氏者 我見敎告于女師也 敎告我以適人之道
전운箋云:‘아곡사씨我告師氏’는 내가 여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니, 〈여사가〉 나에게 시집가는 도리를 가르쳐 줌이다.
重言我者 尊重師敎也 公宮宗室 於族人皆爲貴
거듭 ‘’를 말한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함이다. ‘공궁公宮’과 ‘종실宗室’은 족인族人에게는 모두 소중한 곳이다.
○謂嫁曰歸 本亦無曰字하니 此依公羊傳文이라
○‘위가왈귀謂嫁曰歸’는 ‘’자가 없는 도 있는데, 이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글을 따른 것이다.
薄汙我私 薄澣我衣
서둘러 내 사복도 빨고 예복禮服도 빨았으니
【傳】汙 煩也 燕服也
’는 ‘여러 번’이고 ‘’는 평상복이다.
婦人 有副褘盛飾하니 以朝事舅姑하고 接見于宗廟하고 進見于君子하니 其餘則私也
부인은 위의褘衣의 성대한 복식服飾이 있는데, 이것을 입고 아침에 시부모에게 인사올리고, 종묘에 나아가 뵙고, 남편에 나아가 뵈니, 이 외에는 사복이다.
【箋】箋云 煩 煩撋之하여 用功深이라 謂濯之耳 謂褘衣以下至褖衣
전운箋云:‘’은 〈빨래를〉 여러 번 비벼 공력이 많이 드는 것이다. ‘’은 세탁洗濯함을 말한다. ‘’는 위의褘衣로부터 아래로 단의褖衣까지를 말한다.
○副 婦人首飾之上이라 王后六服 一曰褘衣 接見 下見於君子同이라
○‘’는 부인婦人의 머리장식 중에 으뜸이다. ‘’는 왕후의 6 중에서 첫 번째인 ‘위의褘衣’이다. ‘접견接見’은 아래의 ‘견어군자見於君子’와 같다.
阮孝緖字略云煩撋 猶捼莏也 六服之最下者
원효서阮孝緖의 ≪문자집략文字集略≫에는 “번연煩撋나사捼莏(양손으로 문지름)와 같다.”라고 하였다. ‘단의褖衣’는 6복 가운데 가장 낮은 옷이다.
害澣害否리오 歸寧父母하리라
어느 옷은 빨고 어느 옷은 빨지 않으리오 친정에 가 부모께 문안하리라
【傳】害 何也 安也 父母在則有時歸寧耳
’은 ‘어찌’이다. 사복私服을 빨아야 하니 공복公服을 빨지 않겠는가. ‘’은 ‘문안함’이니, 부모가 살아 계시면 때로 친정에 가 문안을 한다.
【箋】箋云 我之衣服 今者何所當見澣乎 何所當否乎 言常自潔淸하여 以事君子
전운箋云:나의 의복 가운데 지금 어떤 것은 빨아야 하고, 어떤 것은 빨지 않아야 하는가. 항상 스스로 청결하게 하여 군자를 섬김을 말한 것이다.
【疏】‘言告’至‘父母’
의 [언고言告]에서 [부모父母]까지
○毛以爲, 我其身, , 我其師.
모형毛亨은 위와 아래의 두 ‘’는 자기 자신이고 가운데의 ‘’는 나의 스승이라 여긴 것이다.
后妃言我身本見敎告於師氏, 我師氏告我以歸嫁人之道, 欲令我躬儉節用, 不務鮮華,
후비가 말하기를 나 자신이 본래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나의 스승이 나에게 남에게 시집가는 도리를 가르친 것은 내가 궁검절약躬儉節約하여 화려함에 힘쓰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故今曰 ‘薄欲煩撋我之私服, 薄欲澣濯我之褻衣.’
그리하여 지금 ‘서둘러 나의 사복을 여러 번 비벼 빨고자 하며, 나의 더러워진 옷을 빨고자 한다.’라고 한 것이다.
然我之衣服有公有私, 議量而言, 我之衣服, 何者當見澣乎, 私服宜澣之, 何者當不澣乎, 公服宜否.
그러나 나의 의복에는 공복도 있고 사복도 있으니, 경중을 따져 말하자면 나의 의복 중에 어떤 것을 빨아야 하는가. 사복私服은 빨아야 한다. 어떤 것을 빨지 않아야 하는가. 공복公服은 빨지 않아야 한다.
旣以受師敎誨, 澣衣節儉, 復以時歸寧父母.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옷을 빨아 절약하고 검소하며, 다시 때에 맞추어 부모에게 돌아가 문안하겠다.’고 한 것이다.
【疏】鄭下三句爲異, 言師氏告我, 欲令節儉, 故已今薄欲煩撋其私服, 薄欲澣濯其公衣.
정현鄭玄은 아래 3모형毛亨과 달리 ‘스승이 나에게 알려줌은 절약하고 검소하도록 하고자 해서이다. 그리하여 지금 서둘러 내 사복을 여러 번 비벼 빨고, 서둘러 내 공복을 빨고자 한다.’고 한 것으로 여겼다.
所以公服私服 竝澣之者, 卽云‘同是我之衣服’, 知何所當見澣乎, 何所當見否乎,
공복公服사복私服을 함께 빨고자 하는 이유가 곧 ‘동시아지의복同是我之衣服’이라고 했으니, 어떤 것은 빨며 어떤 것은 빨지 않음을 따지겠는가.
私服公衣皆悉澣之, 由己常自潔淸, 以事君子故也.
사복과 공의公衣를 모두 다 빨아서 항상 자기 스스로 청결하게 하여 남편을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衣裳旣澣, 身復潔淸, 故當以時歸寧父母耳.
을 빨았고 몸을 다시 청결하게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때에 맞추어 부모에게 돌아가 안부할 수 있는 것이다.
【疏】傳‘言我’至‘曰歸’
의 [언아言我]에서 [왈귀曰歸]까지
○正義曰:‘言 我’, 釋詁文. 女師者, 敎女之師, 以婦人爲之.
정의왈正義曰:‘언 아言 我’는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여사女師’는 여인을 가르치는 스승인데, 부인婦人이 맡는다.
昏禮云 “姆, 纚笄綃衣, 在其右.” 注云 “姆, 婦人五十無子, 出而不復嫁, 能以婦道敎人者, 若今時乳母矣.”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는 머리싸개를 하고 비녀를 꽂고 수놓은 옷을 입고서 신부의 오른쪽에 있는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는 부인으로 50세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여 쫓겨났으나 다시 시집가지 않아 부인의 도리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이니, 지금의 유모乳母와 같다.”라고 하였다.
鄭知女師之母必是無子而出者, 以女已出嫁, 母尙隨之.
정현鄭玄이 여스승인 가 필시 자식이 없어 쫓겨난 자임을 안 것은 여인이 시집을 가면 가 항상 그 여인을 따르기 때문이다.
又襄三十年公羊傳曰 “.” 若非出而不嫁, 何以得隨女在夫家,
또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양공襄公 30년에 “나라에 화재가 났었는데 백희伯姬가 그 안에 있었다. 는 이르렀으나 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때에 불길이 번져 죽었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쫓겨났으나 시집가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여인을 따라 그 남편의 집에 있을 수 있겠는가.
若非無子而出, 犯其餘, 則身自無禮, 何能敎人, 故知然也. 母旣如此, 傅亦宜然.
만약 가 자식이 없어 쫓겨난 경우가 아니라면 이 밖의 여섯 가지의 쫓겨날 도리를 범한 것이니,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예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러함을 안 것이다. 가 이와 같으니 도 의당 그러할 것이다.
【疏】南山箋云 “姜與姪娣及傅姆同處, .” 則傅亦婦人也.
제풍 남산齊風 南山〉의 에 “문강文姜, , 와 함께 생활하는데, 양공襄公이 가서 짝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도 부인이다.
何休云“選老大夫爲傅, 大夫妻爲母.” 禮重男女之別, 大夫不宜敎女子,
하휴何休는 “노대부老大夫를 가려서 로 삼고 대부의 처를 로 삼는다.”라고 하였는데, 예는 남녀의 유별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대부는 여인을 가르쳐서는 안 되며,
大夫之妻當從夫氏, 不當隨女而適人, 事無所出, 其言非也.
대부의 처는 남편을 따라야 하고 여인을 따라 남에게 가서는 안 된다. 출처가 없는 일이니 이 말은 잘못이다.
此師, 敎女之人, 內則云 “大夫以上, 立師慈保三母者.” 謂子之初生, 保養敎視, 男女竝有三母.
여기의 ‘’는 여자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대부 이상은 삼모三母를 둔다.”라고 한 것은 자식이 처음 태어났을 때 보호하여 기르고 가르쳐 보여주기 위함이니, 남녀 모두 3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疏】此女師敎以婦德․婦言․婦容․婦功 皆昏義文也,
여기의 여사女師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을 가르쳤다는 것은 모두 ≪예기禮記≫ 〈혼의昏義〉의 글인데,
彼注云 “婦德 貞順, 婦言 辭令, 婦容 婉娩, 婦功 絲枲.” 天官九嬪職注, 亦然.
에 “부덕婦德정순貞順함이고, 부언婦言사령辭令이고, 부용婦容완만婉娩하게 함이고, 부공婦功사시絲枲를 손질함이다.”라고 하였고, ≪주례周禮≫ 〈천관 구빈직天官 九嬪職〉의 도 그러하다.
二注皆以婉娩爲婦容, 內則注云 “婉謂言語也, 娩之言媚也, 媚謂容貌也.” 分婉娩爲二者, 欲以內則之文, 充四德,
모두 완만을 부용婦容으로 여기는데,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에서는 “언어言語를 이르고, 의 뜻은 이니 용모容貌를 이른다.”라고 하여 완과 만을 나누어 둘로 만들었으니, 이는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글로 〈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의〉 사덕을 충족시키고자 한 것이다.
若不分婉爲言語, 則無辭令之事, 且婉謂婉順, 得爲言語之婉順, 亦爲容貌之婉媚, 故分之也.
만약 을 나누어 ‘언어言語’라고 하지 않으면 사령辭令의 일이 없게 되고, 또 을 ‘완순婉順’이라고 하면 언어의 완순婉順이 되기도 하고 용모의 완미婉媚가 되기도 하므로 나눈 것이다.
旣有其德, 順辭以出之, 容貌以事人, 女功而就業, 故如此次也.
덕을 지니고 말을 순하게 하고, 용모를 완미하게 하여 사람을 섬기고, 여공女功을 일삼아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차례한 것이다.
【疏】‘祖廟未毁 敎於公宮三月 祖廟旣毁 敎於宗室’, 昏禮文也, 彼注云 “祖廟, 女高祖爲君者之廟, 以有緦麻之親, 就尊者之宮敎之.”
조묘미훼 교어공궁삼월祖廟未毁 敎於公宮三月 조묘기훼 교어종실祖廟旣毁 敎於宗室’은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의 글인데, 그 에 “조묘祖廟는 여인의 고조高祖로서 군주가 된 사람의 사당이니, 시마복緦麻服을 입어야 하는 이 있으므로 존자의 에 가서 가르친다.”라고 하였으니,
則祖廟未毁, 與天子諸侯共高祖者, 則在天子諸侯女宮中敎之三月.
곧 조묘가 아직 체천되지 않아 천자․제후와 고조高祖를 함께 받드는 자는 천자와 제후의 여궁女宮에서 3개월 동안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知在女宮者, 以莊元年公羊傳曰 “之舍, 則以卑矣.” 是諸侯之女有別宮矣, 明五屬之內女就敎可知.
여궁에서 가르침을 안 것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장공 원년莊公 元年에 “여러 공자公子의 집은 지위가 낮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후의 딸이 별궁別宮을 소유한 것이니, 분명 오복五服의 친속 이내의 여인들이 나아가 배웠음을 알 수 있다.
【疏】彼注又云 “宗室, 大宗子之家.” 則大宗者,
에 또 “종실宗室대종자大宗子이다.”라고 하였는데, 곧 ‘대종大宗’이란 별자別子를 이어 대종이 되어 영원토록 체천遞遷하지 않는 자이니,
其族雖五屬外, 與之同承別子者, 皆臨嫁三月, 就宗子女宮, 敎成之.
오복지친五服之親의 범위를 벗어났더라도 함께 별자別子를 받드는 족인은 모두 시집가기 3개월 전에 종자宗子여궁女宮에 나아가 가르침을 마친다.
知宗子亦有女宮者, 內則云“命士以上, 父子皆異宮.” 則女子亦別宮,
종자도 여궁을 소유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명사命士 이상은 부자父子가 궁을 달리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여자도 궁을 달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故曲禮曰 “非有大故, 不入其門”, 是也. 若宗子未爲命士, 敎在宗子之家耳.
그리하여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대고大故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그 문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만약 종자가 아직 명사命士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종자의 집에서 가르친다.
傳引此者, 以言女師敎歸嫁之道, 故引此以證所敎之處.
에서 이를 인용한 것은 ‘여사女師가 시집가는 도리를 가르친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인용하여 가르치는 장소를 증명한 것이다.
【疏】此后妃, 莘國之長女, 而引族人之事者, 取彼成文, 且明諸侯之女嫁前三月, 亦敎之也.
여기의 후비后妃신국莘國의 장녀인데, 족인族人의 일을 인용한 것은 저것을 취하여 글을 완성하고, 또 제후의 딸 역시 시집가기 3개월 전에 가르치는 것을 밝힌 것이다.
女子自少及長, 常皆敎習, 故內則云 “女子十年, 不出.” 傅姆敎之, 但嫁前三月, 特就尊者之宮, 敎成之耳.
여인은 어려서부터 성장할 때까지 항상 모든 것을 가르쳐 익히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여자女子가 10세가 되면 문밖을 나가지 않는다.” 하였으니, 가 가르치되 다만 시집가기 3개월 전에는 특별히 존자尊者에 나아가 가르침을 마치는 것이다.
‘婦人謂嫁曰歸’, 隱二年公羊傳文.
부인위가왈귀婦人謂嫁曰歸’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은공隱公 2년의 글이다.
【疏】傳‘汙煩’至‘則私’
의 [오번汙煩]에서 [즉사則私]까지
○正義曰:汙澣相對, 則汙亦澣名, 以衣汙垢者, 澣而用功深, 故因以汙爲澣私服之名耳.
정의왈正義曰:‘’와 ‘’을 서로 대로 보면 의 명칭이다. 옷이 때가 타서 더러워진 것은 빨래하는 데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사복私服을 빨래한다는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言‘汙煩’者, 謂澣垢衣者, 用功煩多, 亦以煩爲澣名, 故箋云 “煩 煩撋之 用功深” 是也.
오번汙煩’이라 한 것은 때 묻은 옷을 빨래하는 것이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역시 ‘’을 빨래의 명칭으로 삼은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에서 ‘번 번연지煩 煩撋之 용공심用功深’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但毛, 以公服不澣, 唯澣私衣, 故一事分爲二句, 上句言汙, 見用功深也, 下句言澣, 見其摠名亦爲澣.
다만 모형毛亨은 ‘공복公服’은 빨지 않고 ‘사의私衣’만 빠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의 일을 나누어 양구兩句로 만들어, 윗구에서는 를 말하여 힘이 많이 드는 것을 나타내고, 아랫구에서는 을 말하여 총칭이 임을 나타낸 것이다.
又上句言私, 見其燕褻, 下句言衣, 見其摠名亦爲衣, 故王肅述毛, 之云 “煩撋, 澣濯其私衣.” 是也.
또 윗구에서는 ‘’를 말하여 그것이 ‘평상시에 입는 옷’임을 나타내고, 아랫구에서는 ‘’를 말하여 총칭이 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하여 왕숙王肅모형毛亨의 설을 서술하면서 를 합하여 “번연煩撋사의私衣한탁澣濯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言‘私燕服’, 謂六服之外, 常著之服, 則有汙垢, 故須澣, 公服則無垢汙矣, 故下傳云 ‘私服宜澣, 公服宜否’也.
사 연복私 燕服’이라 한 것은 6 이외에 평상시에 입는 옷을 이르니, 곧 더러운 때가 있기 때문에 빨아야 하지만, 공복公服은 더러운 때가 없기 때문에 아래 에서 ‘사복의한 공복의부私服宜澣 公服宜否’라고 한 것이다.
【疏】副者, 首服之尊, 褘衣, 六服之首, 王后之上服, 故言‘婦人有副褘盛飾’.
’는 수복首服 중에 존귀한 것이고 ‘위의褘衣’는 6 중에 으뜸이니, 왕후의 상복上服이다. 그리하여 ‘부인유부위성식婦人有副褘盛飾’이라고 한 것이다.
旣擧服之尊者, 然後歷陳其事, 言此皆是公衣, 不謂諸事皆服褘衣也. 毛之六服, 所施不明.
복식 중에 존귀한 것을 거론한 뒤에 그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공의公衣’임을 말한 것이지, 모든 일에 다 ‘위의褘衣를 입는다.’고 이른 것은 아니다. 모형毛亨은 6을 입는 것에 대하여 명확히 하지 않았다.
內司服注, 鄭云 “褘衣, 從王祭先王, 褕翟, 祭先公, 闕翟, 祭, 鞠衣, 以告桑,
주례周禮≫ 〈내사복內司服〉의 정현鄭玄은 “위의褘衣는 왕을 따라 선왕에 제사할 때 입는 것이고, 요적褕翟선공先公에 제사할 때 입는 것이며, 궐적闕翟은 여러 소신小神에게 제사할 때 입는 것이고, 국의鞠衣고상告桑할 때 입는 것이며,
展衣, 以禮見王及賓客, 褖衣, 以御于王.” 不言朝舅姑之服,
전의展衣는 왕과 빈객을 예현禮見할 때 입는 것이고, 단의褖衣는 왕을 모실 때 입는 것이다.”라고만 하고, 시부모에게 문안할 때에 입는 옷임을 말하지 않았다.
今傳, 旣云‘婦人有副褘盛飾’, 卽云‘以朝事舅姑’, 則以褘衣朝舅姑矣.
그러나 이 에서 ‘부인유부위성식婦人有副褘盛飾’이라고 하고 곧바로 ‘이조사구고以朝事舅姑’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위의를 입고 시부모에게 문안드리는 것이다.
【疏】知者, 以特牲云 “士妻祭用纚․笄․綃衣.” 而士昏禮云 “纚․笄․綃衣, 見於舅姑.” 是朝舅姑助祭, 其服同也.
이를 안 것은 ≪예기禮記≫ 〈효특생效特牲〉에 “의 처는 할 때에 초의綃衣를 입는다.”라고 하고,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초의綃衣를 입고 시부모를 뵌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시부모를 문안할 때와 조제助祭할 때에 입는 옷이 같기 때문이다.
王后褘衣以祭先王, 明朝事舅姑亦服之矣.
그렇다면 왕후는 위의褘衣를 입고 선왕에 제사하니, 분명 시부모를 문안할 때도 이 옷을 입을 것이다.
檀弓曰 “婦人不飾, 不敢見舅姑, 將有四方之賓來, 褻衣何爲陳於斯.”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부인은 복식服飾을 하지 않고는 감히 시부모를 뵙지 못하니, 사방의 빈객이 올 때에 설의褻衣를 어떻게 입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似朝舅姑與見四方賓同服展衣者, 彼以大夫之妻, 賓客有尊於舅姑者.
시부모에게 문안할 때와 사방의 을 만날 때에 똑같이 전의展衣를 입는 듯한 것은, 대부 처의 경우에는 빈객 중에 시부모보다 존귀한 이가 있기 때문이다.
王后則賓客無與舅姑敵者, 朝事舅姑, 得申上服也. 王后而得有舅者, 因姑以協句, 且詩者設言耳.
왕후의 경우에는 빈객 중에 시부모와 대적할 자가 없으니, 시부모에게 문안할 때에 상복上服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왕후에 를 말한 것은 를 따라 을 맞춘 것이고, 또 시를 지은이가 가설하여 말한 것이다.
文王, 稱王之時, 太姒老矣, 不必有父母可歸寧, 何但無舅姑也.
문왕文王을 왕으로 칭했을 때는 태사太姒가 늙었으니 돌아가 문안할 부모가 있다고 기필할 수 없으니, 어찌 시부모만 없겠는가.
【疏】‘接見于宗廟’, 謂以助祭用褘衣也. 進見于君子, 義與鄭同,
접견우종묘接見于宗廟’는 종묘에서 조제助祭할 때에 ‘위의褘衣’를 입음을 말한 것이다. ‘진견우군자進見于君子’는 뜻이 정현鄭玄이 말한 것과 같다.
朝于王則展衣, 御于王則褖衣, 二者同名爲進見也. 云‘其餘則私’, 明自展․褖以上爲公衣矣,
왕을 조회할 때는 전의展衣를 입고 왕을 모실 때는 단의褖衣를 입으니, 두 가지가 이름이 같은 것은 모두 왕에게 나아가 뵐 때에 입기 때문이다. ‘기여즉사其餘則私’라고 한 것은 전의展衣단의褖衣로부터 이상以上공의公衣임을 밝힌 것이다.
但擧終始以言之, 明褕翟․闕翟․鞠衣亦在, 可知也.
다만 처음과 끝을 들어 말하였으니, 분명 요적褕翟궐적闕翟국의鞠衣도 있음을 알 수 있다.
【疏】或以進見君子文, 承副褘之下, 則皆以副褘也, ‘其餘則私’, 謂褕翟以下,
혹자는 의 ‘진견군자進見君子’의 글이 ‘부위副褘’의 뒤를 이었으니, 〈군자를 뵐 때는〉 모두 위의褘衣를 착용한 것이고, ‘기여즉사其餘則私’는 요적이하褕翟以下를 말한 것으로 여겼다.
知不然者, 以其臣朝君, 不過朝服, 助祭乃用冕, 后不宜用祭服, 以朝王, 若‘其餘則私’, 謂褕翟以下, 則褕翟當澣.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신하가 군주를 조회할 때에는 불과 ‘조복朝服’만을 입고, 조제助祭할 때에 비로소 을 쓰며, 는 ‘제복祭服’으로 왕을 조회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니, 만약 ‘기여즉사其餘則私’를 ‘요적褕翟’ 이하를 말한 것이라면 ‘요적褕翟’을 당연히 빨아야 한다.
君子偕老傳曰 “褕翟闕翟, 羽飾衣也.” 以羽飾衣, 何由可澣,
용풍 군자해로鄘風 君子偕老〉의 에 “요적褕翟궐적闕翟은 깃 장식 옷이다.” 하였으니, 깃으로 장식한 옷을 무슨 방법으로 빨 수 있겠는가.
又傳言 “私, 燕服.” 若褕翟闕翟, 乃助祭之衣, 不得爲燕褻之服也. 以此知毛言‘進見于君子’, 非副褘也.
또 여기의 에 “연복燕服이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요적褕翟궐적闕翟이 바로 조제할 때의 옷이라면 평상시에 입는 옷이 될 수 없다. 이것으로 모형毛亨이 말한 ‘진견우군자進見于君子’에 위의褘衣를 입는 것이 아님을 안 것이다.
上擧褘衣之名, 下言展․褖之事, 明六服皆爲公衣, 其餘則爲私也. 六服之外, 唯有纚笄綃衣耳.
위에서 위의褘衣을 들고, 아래에서 전의展衣단의褖衣에 대한 일을 말하였으니, 6은 모두 공의公衣이고 그 나머지는 사복임을 밝힌 것이다. 6 이외에는 오직 초의綃衣만 있을 뿐이다.
【疏】箋‘煩煩撋’至‘褖衣’
의 [번번연煩煩撋]에서 [단의褖衣]까지
○正義曰:鄭以私謂燕服, 衣謂公衣, 故云 “衣謂褘衣以下至褖衣.” 以明六服非私也.
정의왈正義曰정현鄭玄연복燕服을 말하고, 공의公衣를 말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의위위의이하지단의衣謂褘衣以下至褖衣’라고 하여 6이 사복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言‘煩 煩撋之 用功深’, ‘澣 謂濯之’, 言其用功淺也. 此以公對私爲深淺耳.
번 번연지煩 煩撋之 용공심用功深’이라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한 위탁지澣 謂濯之’는 힘이 적게 드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공복과 사복을 힘이 많이 들고 적게 드는 것으로 대비한 것이다.
若據澣中又有深淺, 澣深於漱, 故內則注云 “手曰漱, 足曰澣.”
빠는데 드는 힘의 정도를 따져 보면 ‘’이 ‘’보다 힘이 더 든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에 “손으로 빠는 것이 이고, 발로 빠는 것이 이다.”라고 하였다.
以內則冠帶言漱, 衣裳言澣, 故漱又淺於澣, 散而言之, 皆通.
내칙內則〉에 관대冠帶에는 ‘’라고 말하고, 의상衣裳에는 ‘’이라고 말하였다. 이 때문에 가 또 보다는 힘이 덜 드는 것이지만, 범범하게 말하면 모두 통한다.
以此經言‘汙’, 序摠之云‘澣濯之衣’, 此六服, 明手濯, 不足澣也.
여기의 에서는 ‘’를 말하고, 에서는 모두 ‘한탁지의澣濯之衣’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6은 분명 손으로 빠는 것이지 발로 빠는 것이 아니다.
曲禮曰 “諸母不漱裳.” 裳乃褻服, 宜煩撋之, 而言漱, 是皆通稱也.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제모諸母을 손으로 빨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은 바로 설복褻服이니 응당 힘들게 비벼 빨아야 하는데도 ‘’를 언급하였으니, 바로 모두 통하는 명칭인 것이다.
【疏】傳‘父母’至‘歸寧’
의 [부모父母]에서 [귀녕歸寧]까지
○正義曰:此謂諸侯夫人及王后之法. 春秋莊二十七年 “杞伯姬來.”
정의왈正義曰:이는 제후의 부인과 왕후에 관한 법을 말한 것이다. ≪춘추春秋장공莊公 27년에 “백희伯姬하였다.”라고 하였는데,
左傳曰 “凡諸侯之女, 歸寧曰來.” 是父母在, 得歸寧也. 父母旣沒則使卿寧於兄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제후의 딸이 〈본국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문안함을 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친정 부모가 살아 있어 돌아와 문안할 수 있는 경우이다. 친정 부모가 이미 죽고 없으면 을 시켜 형제를 위로하게 한다.
襄十二年左傳曰 “楚司馬子庚聘于秦, 爲夫人寧, 禮也.” 是父母沒, 不得歸寧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12년에 “사마 자경司馬 子庚(장왕庄王의 아들 )이 나라에 빙문하였는데, 공왕共王의 부인을 위해 빙문한 것이니 예에 합당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친정 부모가 죽어 돌아가 문안할 수 없는 경우이다.
泉水‘’, 載馳‘’, 皆爲此也.
패풍 천수邶風 泉水〉의 법도가 있어 갈 수 없었던 것과 〈용풍 재치鄘風 載馳〉의 허인許人이 기꺼워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若卿大夫之妻, 父母雖沒, 猶得歸寧, 喪服傳曰 “爲昆弟之爲父後者, 何以亦期也.
경대부의 처는 부모가 비록 죽었더라도 돌아가 문안할 수 있으니,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에 “곤제昆弟로서 아버지의 후계가 된 자에 대하여, 어찌하여 역시 기년복을 입는가.
婦人雖在外, 必有歸宗.” 言父母雖沒, 有時來歸, 故不降. 爲父後者, 謂大夫以下也,
부인은 비록 타국에 시집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본종本宗에 문안하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부모가 비록 죽었더라도 때로 〈본종本宗에〉 문안함이 있기 때문에 상복을 낮추어 입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 자는 대부 이하의 경우를 말한다.
故鄭志答趙商曰 “婦人有歸宗, 謂自其家之爲宗者, 大夫稱家, 言大夫如此耳. 夫人王后則不然也.
그리하여 ≪정지鄭志≫에서 조상趙商에게 “‘부인유귀종婦人有歸宗’은 본래 그 의 종자가 된 자를 말하고, 대부에 있어 ‘’라 하는 것은 대부만이 이와 같이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제후의 부인과 왕후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天子諸侯位高, 恐其專恣淫亂, 故父母旣沒, 禁其歸寧, 大夫以下, 位卑畏威, 故許之耳.”
천자와 제후는 지위가 높아서 음란한 짓을 멋대로 할까 염려하기 때문에 부모가 죽고 없으면 부인의 귀녕歸寧을 금한 것이고, 대부 이하는 지위가 낮아 위엄을 두려워하므로 귀녕을 허락한 것이다.”라고 답한 것이다.
【疏】箋‘我之’至‘君子’
의 [아지我之]에서 [군자君子]까지
○正義曰:以言‘害澣害否’, 明其無所偏否, 故知公私皆澣, 常自潔淸也.
정의왈正義曰:‘할한할부害澣害否’를 말하여 빠는 것과 빨지 않는 것이 없음을 밝혔다. 그리하여 공복과 사복을 모두 빨아 항상 스스로 청결히 한 것을 안 것이다.
若如傳言‘私服宜否’, 則經之‘害澣害否’, 乃是問辭, 下無摠結, 殆非文勢也.
만약 의 말처럼 사복은 빨아야 하고 공복은 빨지 말아야 한다면, 의 ‘할한할부害澣害否’는 바로 묻는 말인데 다음에 총괄하여 맺는 말이 없으니 너무나 문세文勢가 아니다.
豈詩人設問, 待毛傳答, 以足之哉. 且上言‘汙私澣衣’, 衣私別文, 明其異也, 私爲私服, 明衣是公衣.
어찌 시인이 가설해 물으면서 모전毛傳을 기다려 충족시키려 했겠는가. 또 위에서 ‘오사汙私’와 ‘한의澣衣’를 말하여 별문別文으로 하여 차이를 밝혔으니, 가 사복이면 분명 공의公衣이다.
衣澣私汙, 無不澣之事, 故知公私皆澣, 所以不從傳也.
공의를 하고 사복을 하니 빨지 않은 일이 없다. 그리하여 공복과 사복을 모두 빠는 것을 안 것이니, 이 때문에 정현鄭玄모전毛傳의 해석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若然三狄之服, 刻繒爲形, 而畫以五色, 所以得澣者, 言公服有澣者耳, 不必六服皆澣也.
삼적三狄(삼적三翟)의 복으로 말하면 비단에 그림을 새겨 모양을 만들고 오색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여기에 빨 수 있는 것은 공복 중에 빨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말이지 반드시 육복을 모두 빠는 것은 아니다.
三狄不可澣, 鞠․展․褖, 純色之衣, 得澣之也.
삼적三翟’은 빨 수 없는 것이고 ‘국의鞠衣’와 ‘전의展衣’ 및 ‘단의褖衣’는 순색純色의 옷이어서 빨 수 있는 것이다.
葛覃三章이니 章六句
갈담葛覃〉은 3이니, 마다 6이다.
역주
역주1 (也)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2 舍人 : 漢 武帝 때의 犍爲郡文學卒史舍人을 역임한 학자이다. 著書에 ≪爾雅注≫ 3卷이 있다. ≪四庫全書 爾雅注解傳述人≫
역주3 (亦)[不]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不’로 번역하였다.
역주4 大邦有子 文王嘉止 : 〈大雅 文王〉에는 ‘文王嘉止’가 앞에 있어, 이에 따라 바꾸어 번역하였다.
역주5 魯語敬姜之言 : 노나라 孔父穆伯의 부인 敬姜이 아들 公父文伯(歜)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교훈의 내용으로 ≪國語≫ 〈魯語 下〉에 실려 있다.
역주6 韋昭云下士 非也 : 위소가 ≪國語≫의 ‘自庶士以下 皆衣其夫’에 대하여 ‘庶士는 下士也’라고 주석한 것을 말한다.
역주7 祖廟未毁 : 祖廟는 여인의 직계 高祖(4대조) 사당으로, 緦麻 3개월의 상을 입는 친속이다. ‘未毁’는 아직 신주가 사당에 있음을 말하며, ‘旣毁’는 영원히 신주를 옮기지 않는 不遷位 始祖와는 달리 5대조가 되면 친속이 다하여 神主를 祠堂에서 옮겨 墓前에 埋安하는데 이를 毁廟라 한다. ≪儀禮 士婚禮 注, 疏≫
역주8 私服宜澣 公服宜否 : 孔潁達은 “毛亨은 ‘私服은 빨고 公服은 빨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고 풀이하였으나, 鄭玄의 해석에 따라 모두 빠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역주9 上下二我 : 앞의 경문 “言告師氏 言告言歸”에서 言告師氏의 ‘言’과 言歸의 ‘言’을 가리킨다.
역주10 中我 : “言告言歸”에서 言告의 ‘言’을 가리킨다.
역주11 宋災伯姬存焉……逮火而死 : 魯 襄公 30년 宋나라 宮에 화재가 났을 때 有司가 밖으로 나갈 것을 거듭 요청하여도, 伯姬는 “부인은 밤에는 傅와 母가 없이는 堂을 내려가지 않는다고 들었다.”라고 하고 거절하여 節度를 지킨 것을 말한다.
역주12 六出之道 : 古代 부인이 내쫓김을 당하는 조건 중에 ‘無子’를 제외한 여섯 가지이다. ≪禮記≫ 〈喪服〉의 賈公彦 疏에 “내 쫓기는 7가지의 조목은 無子, 淫泆, 舅姑를 섬기지 못함, 口舌, 도둑질함, 투기함, 불치병이다.[七出者 無子一也 淫泆二也 不事舅姑三也 口舌四也 盜窃五也 妬忌六也 惡疾七也]” 하였다.
역주13 (○)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삭제하였다.
역주14 [文]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文’자를 추가하여 번역하였다.
역주15 襄公不宜往雙之 : 文姜과 姪, 娣, 傅, 姆 등 5인이 모두 부인이고 5는 기수인데, 문강의 오라비 양공이 가서 문강과 어울리면 6명이 되어 짝수가 됨을 말하여, 가서 어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여기서는 傅도 여인이라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齊風 南山〉
역주16 群公子 : 何休는 ‘女公子’라 하였다.[何休注 謂女公子也] ≪春秋公羊傳注疏≫
역주17 繼別爲大宗 百世不遷者 : 제후의 嫡長子 이외의 子를 ‘別子’라 하는데, 이 別子를 이어 大宗이 된 자는 5대가 되어 親이 다하면 체천하는 小宗과 달리 신주를 체천하지 않고 계속 사당에 모시는 경우이다. ≪禮記 喪服小記≫
역주18 (答)[合]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合’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9 群小祀 : 古代에 山林․川澤․土地 등의 神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周禮≫ 〈春官 司服〉에 “여러 小祀에는 玄冕을 쓴다.[祭群小祀 則玄冕]”라고 하였다.
역주20 有義不得往 : 제후에게 시집간 衛의 여인이 친정어머니가 죽었을 때 돌아가 위로하고 싶지만 歸寧을 금하는 법도가 있어 돌아가지 못해 노래한 내용이다.
역주21 許人不嘉 : 許穆公의 부인이 친정 衛가 狄人의 침입을 당하자 가서 위로하려 하였지만 許人이 법도에 어긋남을 이유로 허락하지 않아 탄식한 내용이다.
역주22 [宜澣 公服]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보충하여 해석하였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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