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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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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關雎 后妃之德也
관저關雎후비后妃을 말한 것이다.
○‘관저關雎’는 구해舊解에 “311편의 시는 모두 작자作者가 직접 이름을 붙였다.” 하였다.
后妃 爾雅云 妃 姬也 對也라하고 左傳云 嘉耦曰妃라하며 禮記云 天子之妃曰后라하다
후비后妃’는 ≪이아爾雅≫에 “이니 배우자이다.” 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훌륭한 배우자를 라 한다.” 하고, ≪예기禮記≫에 “천자天子라 한다.” 하였다.
之德也 舊說云 起此 至用之邦國焉 名關雎序 謂之小序 自風風也 訖末 名爲大序
지덕야之德也’는 구설舊說에 “여기부터 ‘용지방국언用之邦國焉’까지가 〈관저關雎〉의 이니 이를 ‘소서小序’라 하고, ‘풍 풍야風 風也’에서 끝까지를 ‘대서大序’라 한다.” 하였다.
云 案鄭詩譜意하니 大序是子夏作이요 小序是子夏․毛公合作이라 卜商意有不盡하여 毛更足成之라한대
침중沈重이 “정현鄭玄의 ≪시보詩譜≫를 살펴보니, 대서大序자하子夏가 지었고, 소서小序자하子夏모공毛公의 합작으로 자하子夏의 뜻에 미진함이 있는 것을 모공毛公이 다시 보충하여 이룬 것이다.” 하였다.
或云 小序是東海所作이라하다 今謂此序止是關雎之序 總論詩之綱領하니 無大小之異
혹자는 “소서小序동해 위경중東海 衛敬仲이 지은 것이다.” 하였다. 이제 살펴보면 이 는 〈관저關雎〉만의 인데 ≪≫의 강령綱領을 총론하였으니, 대서大序소서小序의 차이가 없다.
解見詩義序 竝是鄭注로대 所以無箋云者 以無所疑亂故也
해설은 〈침중沈重의〉 ≪모시의毛詩義≫의 에 보인다. 모두 정현鄭玄주석注釋이면서 ‘전운箋云’이 없는 까닭은 의심하고 논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疏】‘關雎 后妃之德也’
의 [관저 후비지덕야關雎 后妃之德也]
○正義曰:諸序, 皆一篇之義, 但詩理深廣, 此爲篇端, 故以詩之大綱, 竝擧於此.
정의왈正義曰:모든 편의 는 모두 한 의 뜻을 말하였지만, 다만 ≪시경詩經≫의 뜻이 매우 깊고 넓으며 이 편의 ‘’는 전편全篇의 시작이다. 그리하여 ≪시경詩經≫의 대강大綱을 모두 여기에 거론하였다.
今分爲十五節, 當節自解次第, 於此不復煩文. 作關雎詩者, 言后妃之德也.
이를 나누어 15로 만들어 해당 에서 따로 차례를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다시 중복하지 않는다. 〈관저關雎〉를 지은 것은 후비后妃의 덕을 말한 것이다.
曲禮曰 “天子之妃曰后.” 注云 “后之言後也.” 執理內事, 在夫之後也. 釋詁云 “妃, 媲也.” 言媲匹於夫也.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천자天子라 한다.” 하였는데, 에 “는 ‘뒤’이다.” 하였으니, 내전의 일을 책임지고 다스리면서 천자의 뒤에 있는 것이다.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는 짝이다.” 하였는데 남편에게 짝이 됨을 말한 것이다.
天子之妻, 唯稱后耳. 妃則上下通名, 故以妃配后而言之. 德者, 得也, 自得於身, 人行之總名.
천자天子의 아내만을 ‘’라고 칭하고 ‘’는 상하上下에 통용하는 호칭이기 때문에 ‘’를 ‘’에 짝하여 말하였다. ‘’은 ‘얻는다’로, 본디 몸에 체득한 것이니, 사람의 행실을 총괄하는 명칭이다.
此篇, 言后妃性行和諧, 貞專化下, 寤寐求賢, 供奉職事, 是后妃之德也.
이 편은 후비后妃가 성품과 행실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올곧고 전일한 덕으로 아랫사람을 감화시키며, 오매불망 어진 이를 구하고 직분을 다함을 말하였으니, 이것이 후비后妃의 덕이다.
【疏】二南之風, 實文王之化, 而美后妃之德者, 以夫婦之性, 人倫之重, 故夫婦正, 則父子親, 父子親, 則君臣敬,
주남周南소남召南은 실제로 문왕文王교화敎化인데 후비后妃의 덕을 찬미한 것은, 부부夫婦인륜人倫의 핵심이기 때문에 부부夫婦가 바르면 부자父子가 친하고, 부자父子가 친하면 군신君臣이 공경한다.
是以詩者, 歌其性情. 陰陽爲重, 所以詩之爲體, 多序男女之事.
이 때문에 를 지은 자가 성정性情을 노래하였고, 음양陰陽이 중하기 때문에 시의 바탕으로 삼아 남녀의 일을 노래한 것이 많다.
不言美后妃者, 此詩之作, 直是感其德澤, 歌其性行, 欲以發揚聖化, 示語未知, 非是褒賞后妃能爲此行也.
후비后妃를 찬미하는 내용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 시를 지은 이유가 후비의 덕택에 감화되어 후비의 성품과 행실을 노래함으로써 성군聖君교화敎化를 드러내고자 하여,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어 말한 것이지 후비가 이러한 행실을 한 것을 포상褒賞하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正經, 例不言美, 皆此意也. 其變詩, 則政敎已失, 爲惡者多, 苟能爲善, 則賞其善事.
그리하여 정풍正風에서 으레 찬미하는 내용을 말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이 뜻이다. 변풍變風에서는 정교政敎가 이미 실추되어 악을 행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만일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선한 일을 포상하였다.
, 始見憂國之心, , 方知求雨之切, 意與正經有異, 故序每篇言美也.
그리하여 험윤玁狁을 정벌함에 비로소 우국憂國의 마음을 알 수 있고, 호천昊天을 우러름에 비로소 비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을 알 수 있었으니, 뜻이 정풍正風과 다르다. 그리하여 에서 편마다 찬미하는 내용을 말한 것이다.
【序】風之始也 所以風天下而正夫婦也 故用之鄕人焉하고 用之邦國焉이라
국풍國風의 시작이니 천하를 교화하여 부부의 도를 바르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를 향인鄕人들에게 사용하고 방국邦國에도 사용하였다.
○風之始 此風 謂十五國風이니 風是諸侯政敎也 下云所以風天下 論語云君子之德風으로 竝是此義
○‘풍지시風之始’의 이 ‘’은 15국풍國風을 말한 것이니 ‘’은 제후의 정치와 교화이다. 다음의 ‘소이풍천하所以風天下’는 ≪논어論語≫의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군자의 덕은 이다.)”과 함께 모두 이러한 뜻이다.
所以風 徐福風反이나 今不用이라
소이풍所以風〈의 〉’은 본래의 음으로 읽는다. 서막徐邈반절反切로 보았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疏】‘風之’至‘國焉’
의 [풍지風之]에서 [국언國焉]까지
○正義曰:序以后妃樂得淑女, 不淫其色, 家人之細事耳, 而編於詩首, 用爲歌樂,
정의왈正義曰에서 후비后妃가 〈군자를 위하여〉 숙녀淑女를 얻음을 기뻐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집안사람의 작은 일일 뿐인데도 ≪시경詩經≫의 첫 편으로 삼고 그것으로 가악歌樂을 만들었다.
故於后妃德下, 卽申明此意, 言后妃之有美德, 文王風化之始也.
그러므로 후비后妃 아래에 곧바로 이 뜻을 거듭 밝혀 후비后妃가 아름다운 덕을 소유한 것이 문왕文王풍화風化의 시작임을 말한 것이다.
言文王行化, 始於其妻, 故用此爲風敎之始, 所以風化天下之民, 而使之皆正夫婦焉.
문왕이 교화를 행한 것이 그 아내에서 시작되었으니, 이것을 풍교風敎의 시작으로 삼아 천하의 백성을 풍화風化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부부의 도를 바르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周公製禮作樂, 用之鄕人焉, 令鄕大夫, 以之敎其民也. 又用之邦國焉, 令天下諸侯, 以之敎其臣也.
주공周公예악禮樂을 제정하여 향인鄕人에게 사용하되 향대부鄕大夫로 하여금 그 백성들을 교화하게 하고, 또 방국에 사용하되 천하의 제후로 하여금 예악을 가지고 그 신하들을 교화하게 하였다.
欲使天子至於庶民, 悉知此詩皆正夫婦也. 故鄭譜云‘天子諸侯, 燕其群臣, 皆歌, 合鄕樂’是也.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 이 시를 알아 모두 부부의 도를 바르게 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정현鄭玄의 ≪시보詩譜≫에 “천자와 제후가 그 신하들에게 잔치를 열 때에 모두 〈녹명鹿鳴〉을 노래하고 향악을 합주하였다.”는 것이 이것이다.
【疏】儀禮鄕飮酒禮者, 鄕大夫三年賓賢能之禮, 其經云 “乃合樂周南關雎” 是用之鄕人也.
의례儀禮≫ 〈향음주례鄕飮酒禮〉는 향대부鄕大夫가 3년마다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빈객의 예로 천거하는 일인데, 그 에 “〈주남 관저周南 關雎〉를 함께 연주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관저關雎〉를 향인鄕人에게 쓴 것이다.
者, 諸侯飮燕其臣子, 及賓客之禮, 其經云 “遂歌鄕樂周南關雎” 是用之邦國也.
연례燕禮제후諸侯가 그 신하나 빈객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잔치를 베푸는 인데, 그 에 “마침내 향악과 〈주남 관저周南 關雎〉를 노래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관저關雎〉를 방국에 쓴 것이다.
施化之法, 自上而下, 當天子敎諸侯, 敎大夫, 大夫敎其民.
교화를 펴는 법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니, 당연히 천자가 제후를 교화하고 〈제후가〉 대부를 교화하며, 대부가 그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今此先言風天下而正夫婦焉, 旣言化及於民, 遂從民而廣之, 故先鄕人而後邦國也.
이제 여기에서 천하를 교화하고 부부의 도를 바르게 하는 것을 먼저 말하였으니, 이미 교화가 백성들에게 미쳐서 마침내 백성에게까지 넓혀진 것이므로 향인을 먼저 말하고 방국을 뒤에 말하였다.
“脩之家, 其德乃餘. 脩之邦, 其德乃豐. 脩之天下, 其德乃普.” 亦自狹至廣, 與此同意也.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도를 집에서 닦으면 덕이 여유 있게 되고, 나라에 닦으면 그 덕이 풍성해지며, 천하에 닦으면 그 덕이 널리 퍼진다.” 한 것도 좁은 곳에서부터 넓은 곳으로 미친 것이니, 이와 같은 뜻이다.
【序】風 風也 敎也 風以動之하고 敎以化之
’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이니, 바람을 일으켜 움직이게 하고 가르쳐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風風也 竝如字 徐上如字하고 下福鳳反이라 集注本 下卽作諷字
○‘풍 풍야風 風也〈위의 자와 아래의 자는〉 모두 본음대로 읽는다. 서씨徐氏(서막徐邈)는 위의 은 본음대로 읽고 아래의 은 ‘반절反切’로 보았다. 최영은崔靈恩모시주본毛詩注本에는 아래의 자가 자로 되어 있다.
云 動物曰風이요 託音曰諷이라하고 崔云 用風感物 則謂之諷이라하고
유씨劉氏(유환劉瓛)는 “물건을 흔드는 것을 이라 하고 뜻을 음성에 가탁하는 것을 이라 한다.” 하고, 최영은崔靈恩은 “풍자하여 물건을 감화시키는 것을 이라 한다.” 하고,
沈云 上風是國風이니 卽詩之六義也 下風卽是鼓動之風이니 君上風敎하여 能鼓動萬物 如風之偃草也라하니 今從沈說이라
침중沈重은 “위의 은 ‘국풍國風’이니 ≪시경詩經≫의 육의六義이고, 아래의 은 ‘풍백風伯고동鼓動한다’는 이다. 임금이 위에서 교화하여 만물을 변화하게 하는 것이 ‘바람이 지나가면 풀이 눕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이제 침중沈重을 따른다.
風以動之 如字 沈云 謂自下剌上하여 感動之名이니 變風也라하되 今不用이라
풍이동지風以動之’의 은 본음대로 읽으니, 침중沈重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풍자하여 감동시키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니 ‘변풍變風’이다.” 하였으나, 지금은 적용하지 않는다.
【疏】‘風 風’至‘化之’
의 [풍 풍風 風]에서 [화지化之]까지
○正義曰:上言風之始, 謂敎天下之始也. 序又解名, 敎爲風之意, 風訓諷也敎也.
정의왈正義曰:위에서 말한 ‘풍지시風之始’는 천하를 교화시키는 처음을 말한 것이다. 에서 또 명칭을 풀어 의 뜻으로 삼아 ‘’을 ‘풍자하다’와 ‘교화하다’로 풀었으니,
諷謂微加曉告, 敎謂殷勤誨示. 諷之與敎, 始末之異名耳.
’은 넌지시 알리는 것이고 ‘’는 은근히 가르쳐서 보여주는 것이므로 ‘’은 ‘’와 처음과 끝의 다른 명칭일 뿐이다.
言王者施化, 先依違諷諭以動之, 民漸開悟, 乃後明敎命以化之. 風之所吹, 無物不扇, 化之所被, 無往不沾, 故取名焉.
왕이 교화를 펼 때에 먼저 풍유諷諭에 의지하여 교화하여 백성들이 점차 깨우치면 그런 뒤에야 교명敎命을 밝혀 교화한다. 바람이 부는 곳에는 어떤 사물이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교화가 미치는 곳에는 이르는 곳마다 젖어들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명칭을 취한 것이다.
【序】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는 뜻이 옮겨가는 것이니, 마음에 있으면 뜻이고 말로 드러내면 시가 된다.
【疏】‘詩者’至‘爲詩’
의 [시자詩者]에서 [위시爲詩]까지
○正義曰:上言用詩以敎, 此又解作詩所由. 詩者, 人志意之所之適也.
정의왈正義曰:위에서는 시로 교화함을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또 시가 지어진 연유를 말하였다. 는 사람의 뜻이 옮겨가는 것이니,
雖有所適, 猶未發口, 蘊藏在心, 謂之爲志. 發見於言, 乃名爲詩.
비록 옮겨가는 바가 있더라도 입으로 표현되지 않고 마음속에 보존되어 있으면 ‘’라 하고 말로 표현되어야만 ‘’라 한다.
言作詩者, 所以舒心志憤懣, 而卒成於歌詠, 故虞書謂之‘詩言志’也.
‘시를 짓는다’는 것은 마음속의 울분을 펼쳐내어 마침내 노래하고 읊조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서尙書≫ 〈우서 순전虞書 舜典〉에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包管萬慮, 其名曰心, 感物而動, 乃呼爲志.
온갖 생각을 간직한 것을 마음이라 하고, 사물에 감촉되어 움직이는 것을 뜻이라 한다.
志之所適, 外物感焉, 言悅豫之志, 則和樂興而頌聲作, 憂愁之志, 則哀傷起而怨刺生.
뜻이 옮겨감에 외물이 이에 감촉되어 응하니, 기쁜 뜻을 가지면 화락한 마음이 일어나 칭송하는 소리가 일어나고, 근심하는 뜻을 가지면 서글픈 마음이 일어나 원망과 풍자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藝文志云 “哀樂之情感, 歌詠之聲發” 此之謂也. 正經與變, 同名曰詩, 以其俱是志之所之故也.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슬프고 즐거운 정서를 느끼면 가영歌詠의 소리가 일어난다.” 한 것이 이것이다. 정풍正風변풍變風을 함께 시라고 하는 것은 모두 뜻이 옮겨간 것이기 때문이다.
【序】情動於中而形於言하되 言之不足이라 故嗟歎之하고 嗟歎之不足이라 故永歌之하고 永歌之不足이라 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也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직이면 말에 드러나는데, 말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감탄하고 탄식하며, 감탄하고 탄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길게 노래하고, 길게 노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구른다.
○嗟 咨嗟也 本亦作嘆하니 歎息也 動足履地也
○‘’는 감탄이다.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으니 탄식이다. ‘’는 발을 움직여 땅을 밟는 것이다.
【疏】序‘情動’至‘蹈之’
의 [정동情動]에서 [도지蹈之]까지
○正義曰:上云 ‘發言爲詩’, 辨詩志之異, 而直言者非詩, 故更序詩必長歌之意.
정의왈正義曰:위에서 ‘〈마음에 있으면 뜻이고〉 말로 드러내면 시가 된다.’라 하여 시와 뜻의 차이를 구별하였으나, 말만 하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다시 시는 길게 노래한다는 뜻을 서술하였다.
情謂哀樂之情, 中謂中心, 言哀樂之情, 動於心志之中, 出口而形見於言.
’은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을 말하고 ‘’은 속마음을 말하니,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속마음에서 움직여 입으로 나와 말로 드러냄을 말한 것이다.
初言之時, 直平言之耳. 平言之而意不足, 嫌其言未申志, 故咨嗟歎息, 以和續之.
처음 말을 할 때에는 다만 평이平易하게 말할 뿐이니, 평이하게 말하여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하면 말로 뜻을 다 펴지 못할까 염려하여 감탄하고 탄식함이 어울려 이어지고,
嗟歎之, 猶嫌不足, 故長引聲而歌之. 長歌之, 猶嫌不足, 忽然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
감탄하고 탄식함으로도 부족할까 염려하여 길게 소리를 내어 노래하고, 길게 노래를 하는 것으로도 부족할까 염려하여 문득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춤추고 발로 구르게 된다는 것이다.
言身爲心使, 不自覺知擧手而舞身, 動足而蹈地, 如是而後, 得舒心腹之憤, 故爲詩必長歌也.
말하자면 몸이 마음의 지배를 받아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춤추고 발로 구르는 것이니, 이와 같은 뒤에라야 마음속의 울분을 펼 수 있으므로 시는 반드시 길게 노래하는 것임을 말하였다.
聖王以人情之如是, 故用詩於樂, 使人歌詠其聲, 象其吟詠之辭也. 舞動其容, 象其舞蹈之形也. 具象哀樂之形, 然後得盡其心術焉.
성왕聖王이 사람의 감정이 이와 같음을 알아 시를 음악에 사용하였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소리를 내어 노래하고 읊조리게 한 것은 그 음영吟詠하는 말을 표현한 것이고, 동작하고 춤추는 것은 그 춤추고 구르는 것을 표현한 것이니, 슬프고 즐거운 형상을 갖추어 표현한 뒤에야 그 마음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情動於中’, 還是‘在心爲志’, 而‘形於言’, 還是‘發言爲詩’, 上辨詩從志出, 此言爲詩必歌, 故重其文也.
정동어중情動於中’은 곧 ‘재심위지在心爲志’이고, ‘형어언形於言’은 곧 ‘발언위시發言爲詩’이니, 위에서는 에서 나오는 것을 분별하여 밝혔고, 여기에서는 시는 반드시 노래해야 하는 것을 말했으므로 글을 중복시킨 것이다.
【疏】定本 ‘言之不足故嗟歎之’, 俗本 ‘言之’下, 有‘者’字, 誤也. 定本 ‘永歌之不足’下, 無‘故’字, 有‘故’字者, 亦誤也.
정본定本에는 ‘언지부족고차탄지言之不足故嗟歎之’라 하였는데 속본俗本에는 ‘언지言之’ 아래에 ‘’자가 있으니 잘못이고, 정본定本에는 ‘영가지부족永歌之不足’ 아래에 ‘’자가 없는데 〈속본俗本에는〉 ‘’자가 있는 것도 잘못이다.
樂記云 “歌之爲言也, 長言之也. 說之, 故言之, 言之不足, 故長言之,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라는 것은 길게 말하는 것이다. 기뻐하므로 말을 하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므로 길게 말하며,
長言之不足, 故嗟歎之, 嗟歎之不足, 故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 其文與此經略同.
길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므로 감탄하고 탄식하며, 감탄하고 탄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므로 손을 들어 춤추고 발로 구른다.” 하였으니, 〈악기樂記〉의 글이 ≪시경詩經≫과 거의 같다.
‘說之故言之’, 謂說前事, 言出於口, 與此‘情動形言’一也.
설지고언지說之故言之’는 ‘말하기 전의 감정이 입으로 나옴’을 말한 것이니 이 경의 ‘정동어중이형어언情動於中而形於言’과 같다.
虞書曰 “歌永言.” 注云 “歌所以長言詩之意.” 是永歌․長言爲一事也.
상서尙書≫ 〈우서虞書〉 “가영언歌永言”의 에 “노래는 시의 뜻을 길게 말한 것이다.” 하였으니 ‘영가永歌’와 ‘장언長言’은 한 가지 일이다.
樂記注云 “嗟歎, 和續之也.” 謂發言之後, 咨嗟歎息爲聲, 以和其言而繼續之也.
악기樂記〉의 에 “차탄嗟歎이 어울려 이어진 것이다.” 하였으니, 말을 한 뒤에 감탄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그 말과 어울려 이어짐을 말한 것이다.
樂記先言長言之, 乃云嗟歎之, 此先云嗟歎之, 乃云永歌之. 直言旣已嗟歎, 長歌又復嗟歎, 彼此各言其一, 故不同也.
악기樂記〉는 먼저 ‘장언지長言之’를 말하고 이어서 ‘차탄지嗟歎之’를 말했는데, 여기서는 먼저 ‘차탄지嗟歎之’를 말하고 ‘영가지永歌之’를 말한 것은 다만 차탄하고 나서 길게 노래하고 또 다시 차탄함을 말한 것이니, 피차 각각 그 한 가지를 말하였으므로 같지 않은 것이다.
藝文志云 “誦其言, 謂之詩, 詠其聲, 謂之歌.” 然則在心爲志, 出口爲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말을 외우는 것을 시라 하고 그 소리를 읊조리는 것을 노래라 한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마음에 있는 것이 ‘’가 되고, 입으로 나온 것이 ‘’이 되며,
誦言爲詩, 詠聲爲歌, 播於, 謂之爲樂, 皆始末之異名耳.
말을 외우는 것이 ‘’가 되고, 소리를 읊조리는 것이 ‘’가 되며, 팔음八音으로 연주하는 것을 ‘’이라 하니,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序】情發於聲하여 聲成文 謂之音이라
감정이 소리로 표현되어 소리가 문양文樣을 이룬 것을 이라 한다.
【箋】發 猶見也 謂宮商角徵羽也 聲成文者 宮商上下相應이라
’은 ‘드러남’과 같다. ‘’은 를 말하니 ‘성성문聲成文’은 가 상하로 서로 응하는 것이다.
○應 應對之應이니 下注同이라
○‘’은 ‘응대한다’의 이니 아래의 도 같다.
【疏】序‘情發於’至‘之音’
의 [정발어情發於]에서 [지음之音]까지
○正義曰:情發於聲, 謂人哀樂之情, 發見於言語之聲, 於時雖言哀樂之事, 未有宮商之調, 唯是聲耳.
정의왈正義曰:‘정발어성情發於聲’은 사람의 슬프고 즐거운 감정이 말하는 소리에 드러나는 것이니, 이때는 비록 슬프고 즐거운 일을 말하지만 궁상宮商의 음조가 없어 단지 소리일 뿐이다.
至於作詩之時, 則次序淸濁, 節奏高下, 使五聲爲曲, 似五色成文, 一人之身, 則能如此.
시를 짓게 되면 음의 청탁을 차서에 맞게 하고 높낮이를 박자에 맞게 하여 오성五聲으로 곡이 되게 하는 것이 오색으로 문양을 이루는 것과 같으니, 혼자서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다.
據其成文之響, 卽是爲音. 此音被諸弦管, 乃名爲樂, 雖在人在器, 皆得爲音.
그 문양을 이룬 소리에 의지하는 것이 바로 ‘’이고, 이 음을 악기에 올린 뒤에야 ‘’이라 명명하니 비록 사람에게 있고 악기에 있더라도 모두 ‘’이라 할 수 있다.
下云‘治世之音’謂樂音, 則此‘聲成文謂之音’ 亦謂樂之音也.
아래 글에서 ‘치세治世’이라고 한 것은 악음이니, 여기의 ‘성성문 위지음聲成文 謂之音’도 음악의 ‘’을 말한 것이다.
原夫作樂之始, 樂寫人音, 人音有小大高下之殊, 樂器有宮徵商羽之異, 依人音而製樂, 託樂器以寫人,
음악의 처음을 따져보면 음악은 사람의 음성을 모방하니, 사람의 음성은 크고 작으며 높고 낮음의 차이가 있고, 악기는 의 차이가 있는데 사람의 음성에 따라 악기를 만들고 악기에 의탁하여 사람의 음성을 묘사한다.
是樂本效人, 非人效樂. 但樂曲旣定, 規矩先成, 後人作詩, 謨摩舊法, 此聲成文謂之音.
이는 음악이 사람을 본받은 것이지 사람이 음악을 본받은 것이 아니다. 다만 악곡樂曲이 정해져서 법이 먼저 이루어지면 후인後人이 시를 지을 때 옛 법에 따라 맞추니, 이것이 ‘성성문 위지음聲成文 謂之音’이다.
【疏】若據樂初之時, 則人能成文, 始入於樂. 若據制樂之後, 則人之作詩, 先須成樂之文, 乃成爲音.
만약 음악이 만들어진 초기를 근거해보면 사람이 문양을 이룰 수 있어야만 음악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고, 만약 악곡樂曲이 만들어진 뒤를 근거해보면 사람이 시를 지을 때에 먼저 이루어진 악곡의 곡조를 따라야만 음악이 될 수 있다.
聲能寫情, 情皆可見. 聽音而知治亂, 觀樂而曉盛衰, 故.
소리는 감정을 묘사하기 때문에 〈소리를 들으면〉 감정을 모두 알 수 있다. 음악을 듣고서 치란治亂을 알고, 음악을 관찰하여 성쇠盛衰를 안다. 그리하여 신고神瞽취향趣向을 알 수 있었다.
設有言而非志, 謂之矯情, 情見於聲, 矯亦可識.
가령 말을 한다 해도 진정한 뜻이 아니면 실정을 속이는 것이니, 감정이 소리에 나타나므로 거짓임을 알 수 있다.
若夫取彼素絲, 織爲綺縠, 或色美而材薄, 或文惡而質良, 唯善賈者別之.
저 흰 실을 가지고 비단을 만들 때 어떤 것은 빛깔은 고운데 재질이 엉성하거나 어떤 것은 무늬는 조악한데 재질이 좋은 것은 오직 훌륭한 상인만이 분별한다.
取彼歌謠, 播爲音樂, 或辭是而意非, 或言邪而志正, 唯達樂者曉之.
가요歌謠를 가져다가 음악에 맞추어 연주할 때 어떤 것은 말은 옳지만 뜻이 그르거나, 어떤 것은 말은 그르지만 뜻이 옳은 것은 오직 음악을 잘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疏】樂記曰 “其哀心感者, 其聲噍以殺, 其樂心感者, 其聲發以散.” 是情之所感, 入於樂也.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슬픈 마음이 감촉된 경우는 그 소리가 애절하면서 급하고, 즐거운 마음이 감촉된 경우는 소리가 밖으로 펴져 흩어진다.” 하였으니 이는 감정의 감촉된 것이 음악에 이입된 것이다.
季札見歌唐曰 “思深哉, 其有陶唐氏之遺民乎.” 是樂之聲音, 得其情也.
계찰季札이 ‘당풍唐風’을 노래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깊도다. 아마 임금 유민들의 노래일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음악의 성음이 그 실정을 얻은 것이다.
若徒取辭賦, 不達音聲, 則身爲桀紂之行, 口出堯舜之辭, 不可得而知也.
만약 사부辭賦에서만 취하고 음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몸은 걸주桀紂의 행실을 하면서 입으로 요순堯舜의 말을 한다 해도 알 수가 없다.
是以楚茨․大田之徒, 竝陳成王之善, 行露․汝墳之篇, 皆述紂時之惡.
이 때문에 〈초자楚茨〉와 〈대전大田〉 등은 모두 성왕成王을 진술하고 〈행로行露〉와 〈여분汝墳〉은 모두 주왕紂王 때의 을 진술하였으나,
爲王者之風, 爲剌過之雅, 大師曉其作意, 知其本情故也.
여분汝墳〉을 왕자王者의 ‘국풍國風’으로 삼고 〈초자楚茨〉를 허물을 풍자한 ‘’로 삼았으니, 태사가 지어진 뜻을 알고 본래의 실정을 알았기 때문이다.
【疏】箋‘發猶’至‘相應’
의 [발유發猶]에서 [상응相應]까지
○正義曰:春官大師職云 “文之以五聲, 宮商角徵羽.” 是聲必有五, 故引五聲之名以解之.
정의왈正義曰:≪주례周禮≫ 〈춘관 대사직春官 大師職〉에 “오성五聲으로 문양을 냈으니 이다.” 하였으니 소리가 반드시 다섯 가지가 있으므로 오성五聲의 이름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이다.
五聲之配五方也, 於月令, “角東․商西․徵南․羽北․宮在中央.” 立名還以其方爲義.
오성五聲오방五方에 배치되니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이고 西이며 이고 이며 중앙中央이다.” 하여 명칭을 정하고 다시 방위의 뜻으로 삼은 것이다.
漢書律歷志云 “商之爲言, 章也, 物成熟可章度也. 角, 觸也, 物觸地而出, 戴芒角也.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의 뜻은 이니 사물이 성숙하여 헤아릴 수 있는 것이고, 이니 사물이 땅을 뚫고 나와 까끄라기를 이고 있는 것이며,
宮, 中也, 居中央, 暢四方, 唱始施生, 爲四聲之綱也. 徵, 祉也, 物盛大而蕃祉也. 羽, 宇也, 物聚藏, 宇覆之也.”
이니 중앙에 위치하여 사방으로 통하여 만물을 태어나게 하니 사성四聲의 벼리가 되는 것이고, 이니 만물이 성대하여 다복多福한 것이며, 이니 만물을 거두어 모아 집에 보관하는 것이다.” 하였다.
又云 “宮爲君.” 君是陽, 陽數極於九, 故宮數八十一. 三分去一以生徵, 徵數五十四.
또 “은 군주이다.” 하였으니, 군주는 이고 의 수는 9에서 끝이 되므로 의 수는 81이다. 이를 3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제하면 가 나오니 의 수는 54이고,
三分益一以生商, 商數七十二. 三分去一以生羽, 羽數四十八. 三分益一以生角, 角數六十四.
이를 3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더하면 이 나오니 의 수는 72이며, 이를 3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제하면 가 나오니 의 수는 48이고, 이를 3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더하면 이 나오니 의 수는 64이다.
【疏】樂記云 “聲相應, 故生變, 變成方, 謂之音.” 注云 “方, 猶文章也.” “樂之器, 彈其宮, 則衆宮應, 然不足樂, 是以變之使雜也.”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소리가 서로 응하므로 변화가 생기고, 변화한 것이 문양(노래의 곡조)을 이룬 것을 ‘’이라 한다.” 하였는데, 그 에 “문장文章과 같다.” 하고, “악기가 을 연주할 때에 많은 악기가 으로만 응한다면 음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이 때문에 그것에 변화를 주어 뒤섞이게 한다.” 하고,
引昭二十年左傳曰 “若以水濟水, 誰能食之, 若琴瑟之專壹, 誰能聽之.” 是解聲必須雜之意也. 此言‘聲成文謂之音’, 則聲與音別.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20년에 “만약 물에 물을 탄다면 누가 먹을 수 있겠는가. 만약 금슬琴瑟로 오로지 한 음만을 연주한다면 누가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으니, 이는 소리가 반드시 뒤섞여야 하는 뜻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성성문 위지음聲成文 謂之音’이라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과 ‘’을 구분한 것이다.
樂記注 “雜比曰音, 單出曰聲.” 記又云 “審聲以知音, 審音以知樂.” 則聲․音․樂三者, 不同矣.
그런데 〈악기樂記〉의 에 “여러 가지가 조화를 이룬 것을 ‘’이라 하고 한 가지 소리만 나는 것을 ‘’이라 한다.” 하고, 〈악기樂記〉에 또 “‘’을 살펴 ‘’을 알고 ‘’을 살펴 ‘’을 안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세 가지는 다른 것이다.
以聲變乃成音, 音和乃成樂, 故別爲三名. .
’이 변화되어야 ‘’을 이루고, ‘’이 조화된 뒤에야 ‘’을 이루므로 구별하여 세 가지로 부른 것이니, 대문對文인 경우에는 구별하고 산문散文인 경우에는 통용할 수 있다.
季札見歌秦曰 “此之謂夏聲.” 公羊傳云 “, 頌聲作.” 聲卽音也.
계찰季札이 〈진풍秦風〉을 노래하는 것을 보고 “이는 하성夏聲이다.” 하고,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10분의 1을 수세收稅하니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했다.” 했으니, ‘’이 곧 ‘’이고,
下云‘治世之音’, 音卽樂也. 是聲與音, 樂名得相通也.
아래에서 말한 ‘치세지음治世之音’의 ‘’은 곧 ‘’이니, ‘’과 ‘’과 ‘’이라는 명칭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疏】樂記, 子夏對魏文侯云 “君之所問者樂也. 所好者音也. 夫樂者, 與音相近而不同.” 又以音樂爲異者.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자하子夏위 문후魏 文侯에게 “임금께서 묻는 것은 ‘’이고 좋아하는 것은 ‘’입니다. ‘’은 ‘’과 비슷하나 같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또 ‘’과 ‘’이 다른 것이라고 했다.
以文侯幷問古樂新樂, 二者同呼爲樂, 謂其樂音同也.
이는 문후文侯가 ‘고악古樂’과 ‘신악新樂’을 아울러 물을 적에 두 가지를 ‘’이라 불렀으니, ‘’과 ‘’을 같다고 여긴 것이다.
子夏以古樂, 順於民而當於神, 與天下同樂, 故定爲樂, 名新樂, 淫於色而害於德, 直申說其音而已.
자하는 고악古樂은 민심을 따르고 신명에 합하여 천하의 백성들과 함께 즐길 수 있으므로 명칭을 정하여 ‘’이라고 하고, ‘신악新樂’이라고 한 것은 여색에 빠져 덕을 해치므로 다만 ‘’일 뿐이라고 거듭 말한 것일 뿐이다.
故變言溺音, 以曉文侯耳, 音樂非爲異也.
그리하여 ‘익음溺音’이라고 달리 말하여 문후를 깨우쳤을 뿐이고 ‘’과 ‘’이 다른 것은 아니다.
樂記云 “淫樂慝禮”, 子夏亦云 ‘古樂之發’․‘新樂之發’, 是鄭衛之音, 亦爲樂也.
악기樂記〉에 “음악淫樂특례慝禮”라 하고 자하도 ‘고악古樂을 연주한 결과’, ‘신악新樂을 연주한 결과’라 하였으니, 의 ‘’도 ‘’이다.
【序】治世之音 安以樂하니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하니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하니 其民困이라
치세治世의 음은 편안하고 즐거우니 그 정사가 조화롭고, 난세亂世의 음은 원망하고 노여우니 그 정사가 괴리되며, 망해가는 나라의 음은 애절하고 〈치세를〉 그리워하니 그 백성이 곤궁하다.
【疏】‘治世’至‘民困’
의 [치세治世]에서 [민곤民困]까지
○正義曰:序旣云 ‘情見於聲’, 又言‘聲隨世變’, 治世之音, 旣安又以懽樂者, 由其政敎和睦故也.
정의왈正義曰에서 ‘정견어성情見於聲’이라 하고 또 ‘성수세변聲隨世變’이라 하였으니, 치세治世의 음이 편안하면서 기쁘고 즐거운 것은 정교政敎가 화목하기 때문이고,
亂世之音, 旣怨又以恚怒者, 由其政敎乖戾故也. 亡國之音, 旣哀又以愁思者, 由其民之困苦故也.
난세亂世의 음이 원망하면서도 성내고 노여워하는 것은 정교가 어긋나기 때문이며, 망해가는 나라의 음이 슬프고 근심스런 것은 백성들이 곤궁하고 괴롭기 때문이다.
樂記云 “其哀心感者, 其聲噍以殺, 其樂心感者, 其聲嘽以緩.” 彼說樂音之中, 兼有二事, 此安以樂怨以怒, 亦與彼同.
악기樂記〉에 “슬픈 마음이 감촉된 경우는 그 소리가 애절하면서 급하고, 즐거운 마음이 감촉된 경우는 그 소리가 여유로우면서 느리다.” 하였으니, 〈악기樂記〉는 음악 속에 두 가지 일이 겸하여 있음을 말하였으니, 의 ‘안이락安以樂’과 ‘원이노怨以怒’도 〈악기樂記〉의 글과 같다.
治世之政敎, 和順民心, 民安其化, 所以喜樂. 述其安樂之心而作歌, 故治世之音, 亦安以樂也.
치세治世의 정교는 민심民心화순和順케 하니 백성이 교화를 편안히 여겨 기쁘고 즐거워한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따라 노래를 만들므로 치세의 음도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다.
云 “百室盈止, 婦子寧止.” 安之極也. 云 “厭厭夜飮, 不醉無歸.” 樂之至也.
주송 양사周頌 良耜〉에 “집집마다 곡식이 그득하니, 처자들이 편하게 먹고 사네.” 하였으니 지극히 편안한 것이고, 〈소아 잠로小雅 湛露〉에 “질탕하게 밤에 술 마시니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라.” 하였으니 지극히 즐거운 것이며,
云 “民之質矣, 日用飮食.” 是其政和也.
소아 천보小雅 天保〉에 “백성들이 질박하여 날로 마시고 먹네.” 하였으니 이는 그 정사가 화평한 것이다.
【疏】亂世之政敎, 與民心乖戾, 民怨其政敎, 所以忿怒. 述其怨怒之心而作歌, 故亂世之音, 亦怨以怒也.
난세의 정교는 민심과 어긋나므로 백성들이 그 정교를 원망하여 분노한다. 원망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따라 노래를 만들므로 난세의 음도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云 “民莫不穀, 我獨何害” 怨之至也. 云 “取彼譖人, 投畀豺虎” 怒之甚也.
소아 육아小雅 蓼莪〉에 “남들은 다 잘 사는데 왜 나만 해를 입는가.” 하였으니 지극히 원망한 것이고, 〈항백巷伯〉에 “남을 참소하는 사람 잡아다가 승냥이나 호랑이에게 던져주리.” 하였으니 매우 분노한 것이며,
云 “徹我墻屋, 田卒汙萊” 是其政乖也. 國將滅亡, 民遭困厄, 哀傷己身, 思慕明世.
시월지교十月之交〉에 “우리 담장과 지붕을 걷어내고 밭은 웅덩이와 쑥대밭이 되었네.” 하였으니 정사가 어긋난 것이다. 나라가 망하려 하면 백성들이 곤액을 당해 자신의 신세를 슬프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치세治世를 그리워한다.
述其哀思之心而作歌, 故亡國之音, 亦哀以思也.
그 슬프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따라 노래를 만들므로 망해가는 나라의 음도 슬프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云 “知我如此, 不如無生” 哀之甚也. 云 “睠言顧之, 潸焉出涕” 思之篤也.
초지화苕之華〉에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나 말걸.” 하였으니 매우 슬퍼한 것이고, 〈대동大東〉에 “고개를 돌려 그 길을 돌아보며 줄줄 눈물을 흘리노라.” 하였으니 그리움이 간절한 것이며,
云 “民今之無祿, 天夭是椓” 是其民困也.
정월正月〉에 “지금 백성들이 복이 없어 하늘이 해를 내려 해치도다.” 하였으니 백성들이 곤궁한 것이다.
詩述民志, 樂歌民詩, 故時政善惡見於音也.
시는 백성들의 뜻을 기술하고, 음악은 백성들의 시를 노래하므로 시정時政의 선과 악이 음에 드러난 것이다.
【疏】治世, 謂天下和平, 亂世, 謂兵革不息, 亡國, 謂國之將亡也.
치세治世는 천하가 화평함을 이르고 난세亂世는 전쟁이 계속됨을 말하며 망국亡國은 망하려 하는 나라를 말한다.
亂世, 謂世亂而國存, 故以世言之, 亡國, 則國亡而世絶, 故不言世也.
난세는 세상은 어지럽지만 나라가 보존됨을 말하므로 ‘’로 말하였고, 망국은 나라가 망하여 세대가 끊어질 것이므로 ‘’로 말하지 않았다.
亂世言政, 亡國不言政者, 民困必政暴, 擧其民困爲甚辭, 故不言政也.
난세는 ‘’을 말하고 망국은 ‘’을 말하지 않은 것은, 백성이 곤궁한 것은 반드시 정치가 포악해서이니 백성들의 곤궁함을 들어서 엄중하게 말하였으므로 ‘’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亡國者, 國實未亡, 觀其歌詠, 知其必亡, 故謂之亡國耳, 非已亡也. 若其已亡, 則無復作詩, 不得有亡國之音.
망국은 실제는 나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으나 그 나라의 노래를 관찰하여 반드시 망할 것을 알았으므로 망국이라고 했을 뿐이니 이미 망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미 망한 나라라면 다시는 지어진 시가 없어 망국의 음이 있을 수 없다.
此云亂世亡國者, 謂賢人君子, 聽其樂音, 知其亡亂, 故謂之亂世之音亡國之音.
에서 말한 난세와 망국은, 현인賢人군자君子가 그 나라의 음악을 듣고 망할 나라와 난세임을 알았으므로 ‘난세지음亂世之音’․‘망국지음亡國之音’이라 한 것이다.
樂記所云 “鄭衛之音, 亂世之音. 之音, 亡國之音” 與此異也.
예기禮記≫ 〈악기樂記〉에서 말한 “의 음은 난세亂世의 음이고, 상간복상桑間濮上의 음은 망국亡國의 음이다.” 한 것은 이와는 다르다.
淫恣之人, 肆於民上, 滿志縱欲, 甘酒嗜音, 作爲新聲, 以自娛樂, 其音皆樂而爲之, 無哀怨也.
음란하고 방탕한 사람이 백성의 위에 군림하여 뜻을 채우고 마음대로 욕심을 부려 술과 음악에 탐닉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스스로 즐겨서, 그 음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애절하고 원망함이 없다.
【疏】樂記云 “樂者, 樂也, 君子樂得其道, 小人樂得其欲” 彼樂得其欲, 所以謂之淫樂,
악기樂記〉에 “은 즐거운 것이니 군자君子는 도를 얻음을 즐거워하고, 소인小人은 욕심을 이룬 것을 즐거워한다.” 하였으니, 〈악기樂記〉의 ‘악득기욕樂得其欲’은 ‘음악淫樂(음란한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爲此樂者, 必亂必亡, 故亦謂之亂世之音亡國之音耳, 與此不得同也.
이러한 음악을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난세가 되고 나라를 망하게 하므로 역시 ‘난세지음亂世之音’․‘망국지음亡國之音’이라 했을 뿐이니 와는 다르다.
若然, 此二者, 言哀樂出于民情, 樂音從民而變, 乃是人能變樂, 非樂能變人.
만일 그렇다면 〈악기樂記〉와 는 슬퍼함과 즐거워함이 백성들의 감정에서 나오고 음악이 백성들의 감정을 따라 변함을 말한 것이니, 이는 사람이 음악을 변하게 한 것이고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案樂記稱 “人心感於物而後動, 先王愼所以感之者, 故作樂以和其聲. 樂之感人深, 其移風易俗”
악기樂記〉에 “사람의 마음이 외물에 감촉된 뒤에 움직이므로 선왕이 감촉시키는 것을 삼갔다. 그리하여 음악을 만들어 그 소리를 조화롭게 하였으니,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킴이 깊어 그것으로 풍속을 바꾸었다.” 하였고,
又云 “志微噍殺之音作, 而民思憂, 廉直莊誠之音作, 而民肅敬, 寬裕順成之音作, 而民慈愛, 流僻邪散之音作, 而民淫亂.”
또 “뜻이 은미하며 애절하고 초조한 음악이 유행하면 백성들이 근심하고 걱정하며, 청렴하고 곧으며 장엄하고 성실한 음악이 유행하면 백성들이 엄숙하고 공경하며, 넉넉하고 순조롭게 이루어짐을 노래한 음악이 유행하면 백성들이 자애롭고, 방탕하며 악하고 산란한 음악이 유행하면 백성들이 음란하다.” 하였으니,
如彼文, 又是樂能變人, 樂由王者所制, 民逐樂音而變.
악기樂記〉의 글대로라면 또 이는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음악은 왕자王者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음악을 따라 변한 것이다.
此言民能變樂, 彼言樂能變人者, 但兆民旣衆, 賢愚不等, 以賢哲歌謠采詩定樂,
는 백성들이 음악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악기樂記〉는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한 것은, 다만 백성들이 많고 현우賢愚가 같지 않으므로 현철賢哲들의 노래와 채취한 시로 음악을 만들어서,
以賢者所樂, 敎愚者爲樂. 取智者之心, 變不智者之心, 制禮之事, 亦猶是也.
현자賢者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가지고 우자愚者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삼게 하고, 지자智者의 마음을 취하여 부지자不智者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니, 를 제정하는 일도 이와 같다.
【疏】禮者, 稱人之情而爲之節文, 賢者俯而就之, 不肖者企而及之, 是下民之所行, 非聖人之所行也.
는 사람의 감정에 맞추어 법도를 조절하여 현자賢者는 낮추어서 나아가게 하고 불초자不肖者는 발돋움하여 미치게 한 것이니, 하민下民이 행할 것이지 성인이 행할 것은 아니다.
聖王亦取賢行以敎不賢, 擧得中以裁不中.
성왕聖王이 또한 현자의 행실을 취하여 어질지 않은 사람을 교화하고, 중도를 얻은 사람의 행실을 들어 중도를 얻지 못한 사람을 제재한 것이다.
禮記問喪稱 “禮者, 非從天降, 非從地出, 人情而已矣.” 是禮之本意, 出於民也.
예기禮記≫ 〈문상問喪〉에 “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인정일 뿐이다.” 하였으니, 이는 예의 본의가 백성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樂記又曰 “凡音之起, 由人心生也. 樂者, 樂其所自生.” 是樂之本意, 出於民也.
악기樂記〉에 또 “음의 시작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고, 악은 그 마음에 생겨난 것을 즐거워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음악의 본의가 백성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樂記又曰 “夫物之感人無窮, 而人之好惡無節, 則是物至而人化物也. 人化物也者, 則滅天理而窮人欲者也.
악기樂記〉에 또 “외물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궁한데 사람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에 절도가 없으면 이는 외물이 이름에 사람이 외물에 동화되니, 사람이 외물에 동화된다는 것은 천리를 멸하고 인욕人慾을 다 채우는 것이다.
於是, 有悖逆詐僞之心, 有淫佚作亂之事, 故先王制禮作樂爲之節.” 是王者采民情, 制禮樂之意.
여기에서 패역과 거짓의 마음이 생기며 음란함과 난을 일으키는 일이 있게 되므로 선왕이 예를 제정하고 음악을 만들어 절제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왕이 백성들의 실정을 채집하여 예악을 제정한 뜻이다.
禮樂本出於民, 還以敎民, 與夫雲出於山, 復雨其山, 火生於木, 反焚其木, 復何異哉.
예악은 본디 백성에게서 나와 다시 백성을 교화하니, 구름이 산에서 나와 다시 그 산에 비를 내리는 것과 불이 나무에서 나서 도리어 그 나무를 태우는 것과 다시 무엇이 다르겠는가.
【序】故 正得失하고 動天地하며 感鬼神 莫近於詩
그리하여 잘못을 바로잡고 천지를 움직이며 귀신을 감동시키는 것은 시보다 나은 것이 없다.
【箋】○正得失 云 正齊人之得失也라하고 本又作政하여 謂政敎也라하니 兩通이라
○‘정득실正得失’을 초주는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하였고,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어서 ‘정교를 말한다.’라고도 하니, 둘 다 통한다.
【疏】‘故正’至‘於詩’
의 [고정故正]에서 [어시於詩]까지
○正義曰:上言播詩於音, 音從政變, 政之善惡, 皆在於詩, 故又言詩之功德也.
정의왈正義曰:위에서 시를 음에 맞추어 연주하고, 음악은 정사를 따라 변한다고 말하였으니, 정사의 선악이 모두 시에 있다. 그러므로 또 시의 공덕을 말한 것이다.
由詩爲樂章之故, 正人得失之行, 變動天地之靈, 感致鬼神之意, 無有近於詩者. 言詩最近之, 餘事莫之先也.
시를 가지고 악장樂章을 만드는 까닭에 사람의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고, 천지의 신령을 변동시키며, 귀신의 뜻을 감동시키는 것이 시보다 나은 것이 없다. 시가 가장 낫다고 말했으니 다른 일은 이보다 우선할 것이 없는 것이다.
公羊傳, 說春秋功德云 “撥亂世, 反諸正, 莫近諸春秋.” 云 “莫近, 猶莫過之也.”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 ≪춘추春秋≫의 공덕을 말하여 “난세를 다스려 정도로 돌아가게 한 것은 ≪춘추春秋≫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였는데, 하휴何休가 “‘막근莫近’은 그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과 같다.” 하였다.
詩之道, 所以能有此三事者, 詩者志之所歌, 歌者人之精誠, 精誠之至, 以類相感.
의 도가 이 세 가지 일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는 뜻을 노래한 것이고 노래는 사람의 정성精誠을 노래한 것이니, 정성이 지극하면 사람끼리 서로 감응하기 때문이다.
詩人陳得失之事, 以爲勸戒, 令人行善不行惡, 使失者皆得是詩, 能正得失也.
시인詩人이 잘잘못을 진술하여 권면하고 경계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니, 잘못을 한 사람에게 모두 이 시를 얻어 노래하여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普正人之得失, 非獨正人君也, 下云 “上以風化下, 下以風刺上.” 是上下俱正人也.
널리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니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만이 아니다. 아래에서 “윗사람은 교화로써 아랫사람을 변화시키고 아랫사람은 노래로써 윗사람을 풍자한다.” 하였으니, 상하가 모두 사람을 바로잡는 것이다.
【疏】人君誠能用詩人之美道, 聽之正音, 使賞善伐惡之道, 擧無不當, 則可使天地效靈, 鬼神降福也.
인군人君이 진실로 시인詩人의 아름다운 말을 쓰고 가악嘉樂의 바른 음악을 들어, 가령 선한 이에게 상 주고 악한 이에게 벌주는 도를 모두 합당하게 한다면 천지로 하여금 영험을 보이게 하고 귀신으로 하여금 복을 내리게 할 수 있다.
故樂記云 “姦聲感人而逆氣應之, 逆氣成象而淫樂興焉. 正聲感人而順氣應之, 順氣成象而和樂興焉.”
그리하여 〈악기樂記〉에 “간성姦聲이 사람을 감촉하면 역기逆氣가 응하고 역기가 형상을 이루면 음란한 음악이 일어나며, 정성正聲이 사람을 감촉하면 순기順氣가 응하고 순기가 형상을 이루면 화락한 음악이 일어난다.” 하고,
又曰 “歌者, 直己而陳德也, 動己而天地應焉, 四時和焉, 星辰理焉, 萬物育焉.” 此說聲能感物, 能致順氣逆氣者也.
또 “노래는 사람이 자기를 곧게 하여 덕을 펴는 것이니, 자기를 움직이면 천지가 감응하고 사시四時가 조화로우며, 성신星辰의 운행이 순조롭고 만물이 생육된다.” 하였으니, 이는 소리가 외물을 감동시켜 순기나 역기를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天地云動, 鬼神云感, 耳. 周禮之例, 天曰神, 地曰祇, 人曰鬼, 鬼神與天地相對, 唯謂人之鬼神耳.
천지天地에 대해서는 이라 하고 귀신鬼神에 대해서는 이라 한 것은 호언互言일 뿐이다. ≪주례周禮≫의 이라 하고 라 하며 라 하는데, 귀신은 천지와 상대하여 사람의 귀신만을 일컬은 것이다.
從人正而後能感動, 故先言正得失也. 此‘正得失’, 與‘雅者正也’․‘正始之道’, 本或作政, 皆誤耳, 今定本, 皆作正字.
사람이 바르게 된 뒤라야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킬 수 있으므로 먼저 ‘정득실正得失’을 말한 것이다. 여기의 ‘정득실正得失’은 ‘아자 정야雅者 正也’와 ‘정시지도正始之道’와 함께 ‘’이 ‘’으로 되어 있는 본이 있으니 모두 잘못된 것이다. 지금 정본定本에는 모두 ‘’으로 되어 있다.
【序】先王 以是 經夫婦하고 成孝敬하며 厚人倫하고 美敎化하며 移風俗이라
선왕이 를 이용하여 부부를 떳떳하게 하고 효도와 공경을 이루며, 인륜을 도탑게 하고 교화를 따르게 하며 풍속을 개선하였다.
【疏】‘先王’至‘俗’
의 [선왕先王]에서 []까지
○正義曰:上言詩有功德, 此言用詩之事. 經夫婦者, 經, 常也,
정의왈正義曰:위에서는 가 공덕이 있음을 말하고, 여기에서는 시를 사용하는 일을 말하였다. ‘경부부經夫婦’의 ‘’은 떳떳함이다.
夫婦之道有常, 男正位乎外, 女正位乎內, 德音莫違, 是夫婦之常. 室家離散, 夫妻反目, 是不常也.
부부夫婦의 도는 떳떳함이 있으니, 남자는 밖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고 여자는 안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여 도리에 맞는 선한 말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 부부의 떳떳함이고, 가족이 흩어지고 부부가 반목하는 것은 떳떳하지 않은 것이다.
敎民使常此夫婦, 猶商書云 ‘常厥德’也. 成孝敬者, 孝以事親, 可移於君, 敬以事長, 可移於貴.
백성들을 교화하여 부부의 도를 떳떳하게 하는 것은 ≪상서商書≫의 ‘그 덕을 떳떳하게 하다.’와 같다. ‘성효경成孝敬’은 효도로 어버이를 섬겨 임금에게 옮기고, 공경으로 어른을 섬겨 존귀한 이에게 옮기는 것이다.
若得罪於君親, 失意於長貴, 則是孝敬不成, 故敎民使成此孝敬也.
만약 임금과 어버이에게 죄를 짓고 어른과 존귀한 이에게 실망을 주었다면 이는 효도와 공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을 교화하여 공경과 효도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厚人倫者, 倫, 理也, 君臣父子之義, 朋友之交, 男女之別, 皆是人之常理.
후인륜厚人倫’의 ‘’은 도리道理이다. 군신과 부자간의 의리, 붕우朋友의 사귐, 남녀男女의 구별이 모두 사람의 떳떳한 도리이다.
父子不親, 君臣不敬, 朋友道絶, 男女多違, 是人理薄也, 故敎民使厚此人倫也.
부자가 친애하지 않고 군신이 공경하지 않으며, 붕우의 도가 끊어지고 남녀간에 덕음德音에 어긋남이 많은 것은 사람의 도리가 박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을 교화하여 인륜을 도탑게 하는 것이다.
【疏】美敎化者, 美, 謂使人服之而無厭也. 若設言而民未盡從, 是敎化未美, 故敎民使美此敎化也.
미교화美敎化’의 ‘’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복하여 싫어함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말을 했는데 백성들이 다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교화가 아직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을 교화하여 이 교화를 아름답게 여기게 하는 것이다.
移風俗者, 地理志云 “民有剛柔緩急, 音聲不同, 繫水土之風氣, 故謂之風. 好惡取舍動靜, 隨君上之情欲, 故謂之俗.”
이풍속移風俗’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백성들에게 강유剛柔완급緩急이 있고 음성音聲이 같지 않은 것은 수토水土풍기風氣에 관계되므로 ‘’이라 하는 것이고, 호오好惡취사取舍동정動靜이 임금의 정욕情欲을 따르므로 ‘’이라 한다.” 하였으니,
則風爲本, 俗爲末, 皆謂民情好惡也.
그렇다면 ‘’은 근본이고 ‘’은 지엽이니, 모두 백성들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
緩急繫水土之氣, 急則失於躁, 緩則失於慢. 王者爲政, 當移之, 使緩急調和, 剛柔得中也.
완급緩急수토水土의 기운에 관계되어 급하면 조급함에서 잘못되고 완만하면 태만함에서 잘못되니, 임금이 정사를 함에 마땅히 개선하여 완급이 조화를 이루고 강유가 중도를 얻게 해야 한다.
隨君上之情, 則君有善惡, 民竝從之. 有風俗傷敗者, 王者爲政, 當易之使善,
임금의 정욕情欲을 따른다면 임금의 선악을 백성들이 모두 따르는 것이니, 풍속에 잘못됨이 있다면 임금이 정사를 함에 마땅히 바꾸어 선하게 해야 한다.
故地理志, 又云 “孔子曰 ‘移風易俗, 莫善於樂.’ 言聖王在上, 統理人倫, 必移其本而易其末, 然後王敎成.” 是其事也.
그리하여 〈지리지地理志〉에 또 “공자孔子께서 ‘풍속을 개선하는 것은 음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 하였으니, 성왕聖王이 위에서 인륜을 다스려 반드시 근본을 옮기고 지엽을 바꾼 뒤에야 왕의 교화가 이루어진다.” 한 것이 이 일이다.
此皆用詩爲之, 故云 ‘先王以是’, 以, 用也, 言先王用詩之道, 爲此五事也.
이러한 교화는 모두 시를 사용하여 이루어지므로 ‘선왕이시先王以是’라고 하였으니, ‘’는 사용하는 것이다. 선왕이 시의 도를 이용하여 이 다섯 가지의 일을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疏】案王制云 “廣谷大川異制, 民生其閒者異俗. 脩其敎, 不易其俗.” 此云‘易俗’, 彼言‘不易’者,
예기禮記≫ 〈왕제王制〉를 살펴보면 “넓은 계곡과 큰 내를 따라 제도를 달리하니, 그 사이에 사는 백성은 풍속이 다르므로 교화는 하되 풍속은 바꾸지 않는다.” 하였는데, 에서는 ‘역속易俗’이라 하고 ≪예기禮記≫에서는 ‘불역不易’이라 한 것은,
彼謂五方之民, 戎夷殊俗, 言語不通, 器械異制, 王者就而撫之, 不復易其器械, 同其言音, 故言‘不易其俗’, 與此異也.
예기禮記≫는 오방五方의 백성들 중에 융이戎夷는 풍속이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며 기계器械의 제도가 다르므로, 왕자王者가 나아가 보살피되 그 기계를 다시 바꾸거나 그 언어를 같게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불역기속不易其俗’이라 한 것이니, 이 와는 다르다.
此序言詩能易俗, 孝經言樂能移風俗者, 詩是樂之心, 樂爲詩之聲, 故詩樂同其功也. 然則詩樂相將, 無詩則無樂.
에서 시는 풍속을 바꿀 수 있음을 말하였고 ≪효경孝經≫에서는 음악이 풍속을 개선할 수 있음을 말하였는데, 시는 음악의 핵심이고 음악은 시의 소리이므로 시와 악이 그 효과가 같다. 그렇다면 시와 음악은 서로 함께하니, 시가 없으면 음악이 없는 것이다.
【疏】周存, 豈有黃帝之詩. 有樂而無詩, 何能移風易俗,
주대周代육대六代의 음악이 보존되었으니, 어쩌면 황제시대黃帝時代도 있었단 말인가. 음악만 있고 시가 없다면 어떻게 풍속을 개선할 수 있겠는가.
斯不然矣. 原夫樂之初也, 始於人心, 出於口歌, 聖人作八音之器以文之, 然後謂之爲音, 謂之爲樂.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다. 의 시초를 따져보면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입으로 부르는 노래가 되고, 성인이 팔음八音의 악기를 만들어 문양을 낸 뒤에야 음이라고 말하고 악이라 말하였다.
樂雖逐詩爲曲, 倣詩爲音, 曲有淸濁次第之序, 音有宮商相應之節, 其法旣成, 其音可久, 是以昔日之詩雖絶, 昔日之樂常存.
이 비록 시를 따라 곡을 만들고 시를 모방하여 을 만들지만, 곡에는 청탁을 배열하는 차례를 두고 음은 궁상이 서로 응하는 가락을 두어 법대로 만들어져서 그 음이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옛날의 시는 비록 사라지더라도 옛날의 은 항상 보존되는 것이다.
樂本由詩而生, 所以樂能移俗. 歌其聲謂之樂, 誦其言謂之詩, 聲言不同, 故異時別敎.
은 본래 시로부터 발생하므로 음악이 풍속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이라 하고 말로 낭송하는 것을 라 한다. 소리와 말이 다르다. 그리하여 때가 다르면 교화를 달리 하는 것이다.
王制稱 “春敎樂, 夏敎詩” 經解稱 “溫柔敦厚, 詩敎也. 廣博易良, 樂敎也” 由其事異, 故異敎也, 此之謂詩樂.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봄에는 을 가르치고 여름에는 를 가르친다.” 하고, ≪예기禮記≫ 〈경해經解〉에 “온유하고 돈후한 것은 시의 교화이고, 도량이 넓고 선량한 것은 음악의 교화이다.” 하였다. 일이 다르므로 교화가 다른 것이니, 이를 시와 음악이라 한 것이다.
據五帝以還, 詩樂相將, 故有詩則有樂, 若上皇之世, 人性醇厚, 徒有嬉戱之樂, 未有歌詠之詩.
오제五帝로부터 이후에는 시와 음악이 서로 함께하므로 시가 있으면 음악이 있었으나, 황제시대로 말하면 인성이 순후하여 즐겁게 노는 음악만이 있고 아직 노래하고 읊조리는 시는 없었다.
【序】故詩有六義焉하니 一曰風이요 二曰賦 三曰比 四曰興이요 五曰雅 六曰頌이라
그리하여 육의六義가 있으니, 첫째 ‘’이고 둘째 ‘’이며 셋째 ‘’이고 넷째 ‘’이며 다섯째 ‘’이고 여섯째 ‘’이다.
【疏】‘故詩’至‘六曰頌’
의 [고시故詩]에서 [육왈송六曰頌]까지
○正義曰:上言詩功旣大, 明非一義能周, 故又言詩有六義.
정의왈正義曰:윗글에서 의 효과가 큼을 말하였는데 분명 ‘일의一義’로 다 포괄할 수 없으므로 또 에 ‘육의六義’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大師上文, 未有詩字, 不得徑云‘六義’, 故言六詩, 各自爲文, 其實一也.
주례周禮≫ 〈대사大師〉의 글에서는 ‘’자가 없으므로 곧바로 ‘육의六義’라고 하지 못하고 ‘육시六詩’라고 하여 각각 달리 표현하였으나 사실은 한 뜻이다.
彼注云 “風, 言賢聖治道之遺化. 賦之言鋪, 直鋪陳今之政敎善惡.
주례周禮≫의 에 “‘’은 현성賢聖한 임금들의 다스림이 남긴 교화를 말한 것이고, ‘’의 뜻은 펴는 것이니 현재 정교의 선악을 곧바로 펼쳐 말하는 것이며,
比, 見今之失, 不敢斥言, 取比類以言之. 興, 見今之美, 嫌於媚諛, 取善事以喩勸之.
’는 현재의 잘못을 보고 감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므로 비유를 들어 말하는 것이고, ‘’은 현재의 선을 보고 아첨함이 될까 염려하여 다른 좋은 일을 들어 비유하여 권면하는 것이며,
雅, 正也, 言今之正者, 以爲後世法. 頌之言, 誦也容也, 誦今之德, 廣以美之.” 是解六義之名也.
’는 바름이니 현재의 바른 정사를 말하여 후세의 법도가 되게 하는 것이고, ‘’은 칭송하고 형용함이니, 현재 임금의 덕을 칭송하여 널리 찬미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육의六義’의 명칭을 해석한 것이다.
【疏】彼雖各解其名, 以詩有正變, 故互見其意, 風云‘賢聖之遺化’, 謂變風也.
주례周禮≫의 주소注疏에서 각각 육의六義의 명칭을 풀이하였지만, 시에는 이 있으므로 그 뜻을 번갈아 말하였다. ‘’을 ‘현성한 임금들이 남긴 교화[현성지유화賢聖之遺化]’라 한 것은 변풍變風이고
雅云‘言今之正, 以爲後世法’, 謂正雅也. 其實正風, 亦言當時之風化, 變雅亦是賢聖之遺法也.
’를 ‘현재의 바른 정사를 말하여 후세의 법도가 되게 함[언금지정 이위후세법言今之正 以爲後世法]’이라 한 것은 정아正雅이지만, 사실 정풍正風도 당시의 교화를 말한 것이고 변아變雅현성賢聖의 남긴 법도를 말한 것이다.
頌訓爲容, 止云‘誦今之德廣以美之’, 不解容之義, 謂天子美有形容, 下云‘美盛德之形容’, 是其事也.
’의 훈이 ‘형용하다’인데 단지 ‘현재 임금의 덕을 칭송하여 널리 찬미함[송금지덕 광이미지誦今之德 廣以美之]’이라 하여 ‘’의 뜻을 풀이하지 않은 것은, 천자天子가 성덕의 모습을 지님을 찬미한 것이니, 아래 글의 ‘훌륭한 덕의 모습을 찬미함[미성덕지형용美盛德之形容]’이라 말한 것이 그것이다.
賦云‘鋪陳今之政敎善惡’, 其言通正變兼美刺也. 比云‘見今之失, 取比類以言之’, 謂刺詩之比也.
’를 ‘현재 정교의 선악을 펴서 말함[포진금지정교선악鋪陳今之政敎善惡]’이라 한 것은, 그것이 에 통하고 찬미와 풍자를 겸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를 ‘현재의 잘못을 보고 비유를 들어 말함[견금지실 취비류이언지見今之失 取比類以言之]’이라 한 것은 풍자하는 시인 ‘’를 말하고,
興云‘見今之美, 取善事以勸之’, 謂美詩之興也. 其實美刺, 俱有比興者也.
’을 ‘현재의 선을 보고 다른 좋은 일을 들어 비유하여 권면함[견금지미 취선사이권지見今之美 取善事以勸之]’라 한 것은 찬미하는 시인 ‘’을 말하지만, 사실상 찬미와 풍자가 모두 ‘’와 ‘’에 들어있는 것이다.
【疏】鄭必以風言‘賢聖之遺化’, 擧變風者, 以唐有堯之遺風, 故於風言‘賢聖之遺化’.
정현鄭玄이 반드시 ‘’을 ‘현성지유화賢聖之遺化’라고 말한 것을 변풍變風이라고 한 것은, 당풍唐風에 요임금이 남긴 교화가 있기 때문에 ‘’을 ‘현성지유화賢聖之遺化’라 한 것이고,
賦者, 直陳其事, 無所避諱, 故得失俱言. 比者, 比託於物, 不敢正言, 似有所畏懼, 故云‘見今之失, 取比類以言之’.
’는 곧바로 사실을 진술하여 피하고 꺼리는 것이 없으므로 잘잘못을 모두 말한 것이며, ‘’는 외물에 견주고 가탁하여 감히 바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 듯하므로 ‘견금지실 취비류이언지見今之失 取比類以言之’라 한 것이고,
興者, 興起志意, 讚揚之辭, 故云‘見今之美, 以喩勸之’. 雅, 旣以齊正爲名, 故云‘以爲後世法’.
’은 생각을 일으켜 찬양하는 말이므로 ‘견금지미 이유권지見今之美 以喩勸之’라 한 것이며, ‘’는 바르게 된 것을 일컬은 것이므로 ‘이위후세법以爲後世法’이라 한 것이다.
鄭之所注, 其意如此, 詩皆用之於樂, 言之者無罪.
정현鄭玄이 주석한 뜻이 이와 같으니, 가 음악에 사용되면 지은 사람은 죄가 없다.
賦則直陳其事, 於比興云‘不敢斥言, 嫌於媚諛’者, 據其辭不指斥, 若有嫌懼之意.
’는 사실을 곧바로 진술하는데, ‘’에는 ‘감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함[불감척언不敢斥言]’이라 하고 ‘’에는 ‘아첨함이 될까 염려함[혐어미유嫌於媚諛]’이라 하였으니, 그 내용을 거론하면서 드러내어 말하지 않은 것이 마치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뜻이 있는 듯하다.
其實作文之體, 理自當然, 非有所嫌懼也.
그러나 실제로는 글을 짓는 문체로서 본래 당연한 이치이니,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疏】六義次第如此者, 以詩之, 以風爲先, 故曰風.
육의六義의 차례가 이와 같은 것은 시의 사시四始에 ‘’을 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라 한 것이다.
風之所用, 以賦․比․興爲之辭, 故於風之下卽次賦․比․興, 然後次以雅․頌.
’에서 쓰이는 수사修辭방식이 으로 말을 수사하므로 ‘’의 다음에 을 두고 다음에 을 둔 것이다.
雅頌亦以賦․比․興爲之, 旣見賦․比․興於風之下, 明雅․頌亦同之.
으로 말을 수사하는데, 을 ‘’의 다음에 두었으니 분명 도 수사방식이 이와 같은 것이다.
鄭以賦之言鋪也, 鋪陳善惡, 則詩文直陳其事, 不譬喩者, 皆賦辭也.
정현鄭玄이 “의 뜻은 펼쳐놓는 것이니, 선악을 펼쳐놓는 것이다.” 하였으니, 시문詩文에서 사실을 곧바로 말하고 비유를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의 수사이다.
云 “比者, 比方於物, 諸言如者, 皆比辭也.”
정사농鄭司農이 “‘’는 외물에 비유하는 것이니, ‘같다[]’를 말한 모든 경우는 모두 ‘’의 수사이다.” 하고,
司農又云 “興者, 託事於物, 則興者起也. 取譬引類, 起發己心, 詩文時擧草木鳥獸, 以見意者, 皆興辭也.”
정사농鄭司農이 또 “‘’은 외물에 일을 가탁하는 것이니, ‘’은 일으킴이다. 비유를 쓰고 동류를 인용하여 자기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 시문에서 때로 초목이나 조수를 들어 뜻을 나타내는 것은 모두 ‘’의 수사이다.” 하였다.
賦比興如此次者, 言事之道, 直陳爲正, 故詩經多賦在比興之先.
의 순서를 이와 같이 한 것은, 일을 말하는 방법에 있어서 직접 진술하는 것이 바른 방법이므로 ≪시경詩經≫에 대부분 ‘’가 ‘’와 ‘’의 앞에 있는 것이다.
比之與興, 雖同是附託外物, 比顯而興隱, 當先顯後隱, 故比居興先也. 毛傳特言興也, 爲其理隱故也.
’는 ‘’과 더불어 비록 외물에 가탁하지만 ‘’는 드러내고 ‘’은 숨기니, 마땅히 드러내는 것을 앞에 두고 숨기는 것을 뒤에 두어야 하므로 ‘’가 ‘’의 앞에 있는 것이다. 모전毛傳에서 특별히 ‘’을 언급한 것은 그 이치가 은미하기 때문이다.
【疏】風․雅․頌者, 皆是施政之名也. 上云‘風, 風也 敎也, 風以動之, 敎以化之’, 是風爲政名也.
은 모두 시정施政의 명칭이다. 위에서 ‘풍 풍야風 風也 교야 풍이동지敎也 風以動之 교이화지敎以化之’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이 시정施政의 명칭이 되는 것이고,
下云‘雅者, 正也. 政有小大, 故有小雅焉, 有大雅焉’, 是雅爲政名也.
다음에 ‘아자 정야雅者 正也 정유소대 고유소아언政有小大 故有小雅焉 유대아언有大雅焉’이라 하였으니, 이는 ‘’가 시정의 명칭이 되는 것이다.
周頌譜云 “頌之言容, 天子之德, 光被四表, 格于上下, 此之謂容.” 是頌爲政名也.
주송보周頌譜에 “‘’의 뜻은 형용함이니, 천자의 덕이 광채가 사방에 미치고 하늘과 땅에 이르렀으니, 이것을 ‘’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는 ‘’이 시정의 명칭인 것이다.
人君以政化下, 臣下感政作詩, 故還取政敎之名, 以爲作詩之目.
임금이 정사를 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신하가 정사에 감화되어 시를 지었으므로 다시 정교의 명칭을 취하여 시를 짓는 제목(사시四始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風․雅․頌, 同爲政稱, 而事有積漸, 敎化之道, 必先諷動之, 物情旣悟, 然後敎化, 使之齊正.
이 똑같이 정사의 명칭이지만, 일에는 점차 쌓임이 있는 법이니, 교화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풍자하고 움직여 사람들의 감정을 깨우쳐준 뒤에라야 교화하여 바르게 할 수 있다.
言其風動之初, 則名之曰風, 指其齊正之後, 則名之曰雅, 風俗旣齊然後, 德能容物,
그리하여 풍자하고 움직이는 시초를 말한 것을 ‘’이라 하고, 바르게 된 뒤를 가리킨 것을 ‘’라 하며, 풍속이 바르게 된 뒤에라야 덕이 백성을 포용할 수 있다.
故功成乃謂之頌. 先風後雅頌, 爲此次故也.
그리하여 공이 이루어진 것을 마침내 ‘’이라 한 것이다. ‘’을 앞에 두고 ’와 ‘’을 나중에 둔 것은 이러한 순서 때문이다.
【疏】一國之事爲風, 天下之事爲雅者, 以諸侯列土樹疆, 風俗各異,
한 나라의 일을 노래한 것을 ‘’이라 하고 천하의 일을 노래한 것을 ‘’라고 하는 것은, 제후諸侯는 봉토를 나누어 받아 영토가 정해졌기 때문에 풍속이 각기 달랐다.
故唐有堯之遺風, 魏有儉約之化, 由隨風設敎, 故名之爲風.
그리하여 에는 요임금의 유풍이 남아 있고 에는 검약한 교화가 남아 있어, 풍속을 따라 교화를 베풀었으므로 ‘’이라 한 것이다.
天子則威加四海, 齊正萬方, 政敎所施, 皆能齊正, 故名之爲雅.
천자는 위엄이 온 천하에 가해져서 만방을 바르게 하니 정교가 시행되는 곳마다 모두 바르게 할 수 있으므로 그 시를 ‘’라 한 것이다.
風雅之詩, 緣政而作, 政旣不同, 詩亦異體. 故七月之篇, 備有風雅頌.
’과 ‘’의 시가 정사로 인해 지어졌는데 정사가 같지 않으므로 시도 체가 다르다. 그리하여 〈빈풍 칠월豳風 七月〉에는 이 갖추어져 있다.
駉頌序云 “作是頌.” 明作者本意, 自定爲風體, 非采得之後, 始定體也.
노송 경魯頌 駉〉의 에 “사극史克이 이 을 지었다.” 하였으니, 작자의 본의가 본디 정해져서 ‘’의 체가 되는 것이지, 채록한 뒤에 비로소 체가 정해지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詩體旣異, 其聲亦殊, 公羊傳曰 “十一而稅, 頌聲作.” 史記稱 “微子過殷墟而作.”
시의 체가 이미 다르면 그 소리도 다르니,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10분의 1의 세법으로 세를 거두니 칭송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하고, ≪사기史記≫에 “미자微子가 은허를 지나며 아성雅聲을 지었다.” 하고,
譜云 “師摯之始, 關雎之亂, 早失風聲矣.” 樂記云 “人不能無亂, 先王恥其亂, 故制雅頌之聲以道之.” 是其各自別聲也.
시보詩譜≫에 “악사 가 처음 벼슬할 적에는 〈주남 관저周南 關雎〉의 끝장이 이미 국풍의 소리를 잃었다.” 하고,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사람이 어지러움이 없을 수 없으므로, 선왕이 어지러워짐을 부끄러워하여 의 소리를 지어 계도하였다.” 하니, 이는 이 본디 각각 소리가 다른 것이다.
【疏】詩各有體, 體各有聲, 大師聽聲得情, 知其本意.
에는 각각의 가 있고 체에는 각각의 소리가 있으므로, 태사가 소리를 듣고 뜻을 이해하여 본의를 안 것이다.
周南爲王者之風, 召南爲諸侯之風, 是聽聲而知之也.
주남周南왕자王者의 풍이고 소남召南은 제후의 풍이니, 이는 소리를 듣고 안 것이다.
然則風․雅․頌者, 詩篇之異體, 賦比興者, 詩文之異辭耳, 大小不同, 而得竝爲六義者, 賦比興, 是詩之所用, 風雅頌, 是詩之成形,
그렇다면 시편詩篇의 다른 문체이고, 시문詩文의 다른 수사법이니, 형태가 다른데도 모두 육의六義가 되는 것은 은 시에 사용되는 수사법이고, 은 시가의 이루어진 모습이다.
用彼三事, 成此三事, 是故同稱爲義, 非別有篇卷也.
을 이용하여 을 이룬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육의六義라고 일컬은 것이지 따로 이 있는 것은 아니다.
鄭志, “張逸問 ‘何詩近於比賦興’,
정지鄭志≫에 “장일張逸이 ‘어떤 종류의 시가 에 가깝습니까?’ 하니,
答曰 ‘比賦興, 吳札觀詩, 已不歌也. 孔子錄詩, 已合風雅頌中, 難復摘別, 篇中義多興.’”
정현鄭玄이 ‘은 오나라 계찰이 시를 들을 때에도 구분하여 부르지 않았고, 공자께서 ≪시경詩經≫을 채록할 적에도 이미 에 포함시키셨으니 다시 지적하여 구분하기 어렵고, 시편 중에 의미상 이 많다.’ 했다.” 하였다.
逸見風雅頌有分段, 以爲比賦興, 亦有分段, 謂有全篇爲比, 全篇爲興, 欲鄭指摘言之.
장일은 에 구분이 있음을 보고 에도 구분이 있다고 여기고서, 전편全篇이 ‘’가 되고 전편全篇이 ‘’이 되는 것이 있다고 여겨 정현이 지적하여 말해주기를 원했다.
鄭以比賦興者, 直是文辭之異, 非篇卷之別, 故遠言從本來不別之意.
그러나 정현은 은 다만 수사법의 차이일 뿐이고 편이나 권의 구별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본래 구분하지 않은 뜻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疏】言‘吳札觀詩 已不歌’, 明其先無別體, 不可歌也. ‘孔子錄詩 已合風雅頌中’, 明其先無別體, 不可分也.
나라 계찰이 시를 들을 때 구분하여 부르지 않음[오찰관시 이불가吳札觀詩 已不歌]’이라고 말한 것은 이전에 체를 구별함이 없어서 구분하여 노래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고, ‘공자가 ≪시경≫을 채록할 적에도 이미 에 포함시켰음[공자록시 이합풍아송중孔子錄詩 已合風雅頌中]’이라 말한 것은 이전에 체를 구별함이 없어서 나눌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元來合而不分, 今日難復摘別也. 言‘篇中義多興’者, 以毛傳於諸篇之中, 每言興也.
원래 합하고 구분하지 않았으니, 지금 다시 지적하여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시편 중에 의미상 흥이 많음[편중의다흥篇中義多興]’이라고 한 것은 모씨毛氏가 모든 시편에 을 지을 때에 매양 ‘’이라고만 말했기 때문이다.
以興在篇中, 明比賦亦在篇中, 故以興顯比賦也. 若然, 比賦興元來不分, 則唯有風雅頌三詩而已.
’이 시편 중에 있다는 말을 가지고 도 시편 중에 있음을 밝혔으니, ‘’을 가지고 를 드러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은 원래 구분되지 않은 것이니, 오직 세 체의 시만이 있을 뿐이다.
藝論云‘至周分爲六詩’者, 據周禮‘六詩’之文而言之耳, 非謂篇卷也.
정현鄭玄의 ≪육예론六藝論≫에 ‘주대周代에 이르러 나뉘어 육시六詩가 되었다.’는 것은 ≪주례周禮≫의 ‘육시六詩’에 대한 내용에 근거하여 말했을 뿐이고 편이나 권을 말한 것은 아니다.
或以爲鄭云‘孔子已合於風雅頌中’, 則孔子以前未合之時, 比賦興別爲篇卷,
어떤 이는 정현이 ‘공자이합어풍아송중孔子已合於風雅頌中’이라고 말했으면 공자 이전에 아직 합치지 않았을 때에는 을 따로 편이나 권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한다.
若然則離其章句, 析其文辭, 樂不可歌, 文不可誦.
만약 그렇다면 〈에 맞추어〉 장구章句가 분리되고 문장이 나누어져 온전한 음악으로 노래할 수 없고 온전한 글로 낭송할 수 없다.
且風雅頌以比賦興爲體, 若比賦興別爲篇卷, 則無風雅頌矣. 是比賦興之義, 有詩則有之.
을 체로 삼아야 하니, 만약 을 구분하여 편이나 권으로 삼는다면 이 없어지게 된다. 이는 의 뜻이 시가 있어야만 있게 되는 것이다.
【疏】唐虞之世, 治致升平, 周於太平之世, 無諸侯之風, 則唐虞之世, 必無風也.
요순堯舜의 시대에는 정치가 태평을 이루어 모두가 태평한 시대였으나 제후의 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요순의 시대에는 반드시 ‘’이 없었을 것이다.
雅雖王者之政, 乃是太平前事, 以堯舜之聖, 黎民時雍, 亦似無雅, 於六義之中, 唯應有頌耳.
’는 비록 왕자王者의 정사를 노래한 것이지만 태평성대 이전의 일이고, 요순과 같은 성군으로 백성들이 이에 화순和順하였으므로 ‘’도 없었을 듯하니, 육의六義 가운데 오직 ‘’만이 있었을 것이다.
夏在制禮之後, 不復面稱目諫, 或當有雅.
의 시대는 를 제정한 뒤이므로 면전에서 칭송하고 눈앞에서 간쟁하는 일이 다시는 없었을 것이니, 혹 ‘’가 있었을 듯하다.
夏氏之衰, 作霸, 諸侯彊盛, 或當有風, 但篇章泯滅, 無以言之.
하대夏代가 쇠미해짐에 곤오昆吾가 패자가 되고 제후諸侯가 강성해졌으니, 혹 ‘’이 있었을 듯하지만 다만 편장篇章이 사라져서 거론할 수 없다.
藝論云 “唐虞始造其初, 至周分爲六詩”, 據周禮成文而言之, 詩之六義, 非起於周也.
육예론六藝論≫에 “요순시대에 비로소 처음으로 시를 지었고 주대周代에 이르러 육시六詩로 나누어졌다.” 하여 ≪주례周禮≫의 글에 근거하여 말하였으나, 육의六義가 주대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序】上以風化下하고 下以風刺上호되 主文而譎諫하여 言之者無罪 聞之者足以戒 故曰風이라
윗사람은 교화로써 아랫사람을 변화시키고 아랫사람은 노래로써 윗사람을 풍자하되, 문장을 음악에 조화시켜 은근히 간언하므로 말하는 사람은 죄를 받지 않고 듣는 사람은 충분히 경계로 삼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라 한 것이다.
【箋】風化風刺 皆謂譬喩不斥言也 主文 主與樂之宮商相應也 譎諫 詠歌依違不直諫이라
풍화 풍자風化 風刺’는 모두 비유를 들고 지적하여 말하지 않음을 이른 것이고, ‘주문主文’은 음악의 가 서로 상응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 것이며, ‘휼간譎諫’은 읊조리고 노래하는 소리에 억양을 주어 듣기 좋게 하여 직간하지 않는 것이다.
○下以風 注諷刺同이라 刺本又作㓨 故曰風 福鳳反이요 又如字 詐也
○‘하이풍下以風’〈의 ‘풍’〉은 의 ‘풍자諷刺’와 같다. 로 되어 있는 도 있다. ‘고왈풍故曰風’〈의 ‘풍’〉은 ‘반절反切(풍자諷刺)’이고, 또 본음대로 읽는다. ‘’은 ‘꾸밈’이다.
【疏】‘上以’至‘曰風’
의 [상이上以]에서 [왈풍曰風]까지
○正義曰:臣下作詩, 所以諫君, 君又用之敎化, 故又言上下皆用此六義之意.
정의왈正義曰:신하는 시를 지어 임금에게 간언하고 임금은 또 그것을 이용하여 교화한다. 그리하여 또 상하가 모두 이 육의를 이용하는 뜻을 말한 것이다.
在上人君, 用此六義, 風動敎化, 在下人臣, 用此六義, 以風喩箴刺君上.
위에서는 임금이 이 육의를 이용하여 감화시켜 교화하고, 아래에서는 신하가 이 육의를 이용하여 풍자하고 비유하여 임금을 경계한다.
其作詩也, 本心主意, 使合於宮商相應之文, 播之於樂, 而依違譎諫, 不直言君之過失,
시를 지음에 본심의 주된 뜻은 음률에 맞는 글이 되게 하여 음악으로 연주하면서 억양을 주어 듣기 좋게 하여 임금의 과실을 직언하지 않으므로
故言之者無罪, 人君不怒其作主而罪戮之, 聞之者, 足以自戒.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임금은 시를 지은 사람에게 노하여 그를 죄주어 죽이지 않아서, 듣는 사람이 충분히 스스로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人君自知其過而悔之, 感而不切, 微動若風, 言出而過改, 猶風行而草偃, 故曰風.
임금이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알아서 뉘우치게 하되 감촉하지만 절박하지 않아 은미하게 풍자하는 것이 바람과 같고, 노래를 듣자마자 과실을 고치는 것이 바람이 지나가면 풀이 눕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이라 한 것이다.
上言‘風 風也敎也’, 向下以申風義, 此云‘故曰風’, 向上而結彼文, 使首尾相應, 解盡風義.
위에서 말한 ‘풍 풍야교야風 風也敎也’는 아래를 향한 ‘’의 뜻을 밝혔고, 여기에서 말한 ‘고왈풍故曰風’은 위를 향한 것으로 그 글을 마무리하였으니, 시작과 끝이 응하게 하여 ‘’의 뜻을 곡진하게 푼 것이다.
【疏】此六義之下而解名風之意, 則六義皆名爲風, 以風是政敎之初, 六義風居其首, 故六義摠名爲風, 六義隨事生稱耳.
여기에서 육의의 아래에 ‘’이라 명명命名한 뜻을 풀었으니, 그렇다면 육의를 모두 ‘’이라 한 것이다. ‘’은 정교政敎의 시작이고 육의 중에 ‘’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육의의 총칭總稱을 ‘’이라 하였으니, 육의는 일에 따라 생겨난 명칭이다.
若此辭摠上六義, 則有正變, 而云‘主文譎諫’, 唯說刺詩者, 以詩之作, 皆爲正邪防失,
만약 이 말처럼 위의 육의를 총괄해보면 이 있는데, ‘주문휼간主文譎諫’이라 하여 풍자한 시만을 말한 것은 시가 지어진 이유가 모두 간사함을 바로잡고 과실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니,
雖論功誦德, 莫不匡正人君, 故主說作詩之意耳.
비록 을 논하고 을 칭송한 시라도 임금을 바로잡지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시를 지은 뜻을 위주로 말한 것일 뿐이다.
詩皆人臣作之以諫君, 然後人君用之以化下, 此先云‘上以風化下’者, 以其敎從君來, 上下俱用, 故先尊後卑.
모든 시는 신하가 지어 임금에게 간한 뒤에 임금이 그것을 이용하여 아래를 교화하는데, 여기에서 ‘상이풍화하上以風化下’를 먼저 말한 것은 교화가 임금으로부터 나와서 상하에 모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임금을 먼저 말하고 백성을 나중에 말한 것이다.
襄十六年左傳稱 “齊人伐魯, 求救於晉. 晉人不許, 穆叔見中行獻子, 賦圻父. 獻子曰 ‘偃知罪矣.’”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16년에 “를 치자 에 구원을 요청했는데 이 허락하지 않았다. 목숙穆叔(노의 대부 숙손표叔孫豹)이 중항헌자中行獻子(진의 대부 순언荀偃)를 만나 〈소아 기보小雅 圻父〉를 읊자 헌자가 ‘내 죄를 알았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穆叔賦而晉人不得怨之, 是‘言之者無罪’也. 獻子服罪, 是‘聞之者足以戒’也.
목숙이 읊음에 진인晉人이 원망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언지자무죄言之者無罪’이고, 헌자獻子가 자신의 죄를 인정했으니, 이것이 ‘문지자족이계聞之者足以戒’이다.
俗本, 戒上有自字者, 誤. 定本, 直云‘足以戒’也.
속본에 ‘’ 위에 ‘’자가 있는 것은 잘못이다. 정본에서는 다만 ‘족이계足以戒’라 하였다.
【疏】箋‘風化’至‘直諫’
의 [풍화風化]에서 [직간直諫]까지
○正義曰:風者, 若風之動物, 故謂之‘譬喩 不斥言’也. 人君敎民, 自得指斥, 但用詩敎民, 播之於樂, 故亦不斥言也.
정의왈正義曰:‘’은 바람이 사물을 움직이는 것과 같으므로 ‘비유 불척언譬喩 不斥言’이라 한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교화함에 본디 드러내어 말할 수 있지만, 다만 시를 사용하여 백성을 교화함에는 음악으로 연주한다. 그리하여 또한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다.
上言‘聲成文’, 此言‘主文’, 知作詩者主意, 令詩文與樂之宮商相應也.
위에서 ‘성성문聲成文’이라 하고 여기에서는 ‘주문主文’이라 하였으니, 시를 짓는 자의 주된 뜻은 시문이 음률과 서로 맞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如上所說, 先爲詩歌, 樂逐詩爲曲, 則是宮商之辭, 學詩文而爲之.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면 먼저 노랫말을 만들고 음악이 시를 따라 곡조를 이루는 것이니, 그렇다면 음률에 맞는 말은 시문을 배워서 하는 것이다.
此言作詩之文, 主應於宮商者, 初作樂者, 準詩而爲聲, 聲旣成形, 須依聲而作詩, 故後之作詩者, 皆主應於樂文也.
이는 시를 지을 때의 글이 음률에 맞는 것을 위주로 함을 말한 것이니, 처음에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시에 맞추어 소리를 만들고, 소리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소리에 따라 시를 짓게 된다. 그리하여 훗날 시를 쓰는 사람은 모두 음악의 곡조에 맞게 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譎者, 權詐之名, 託之樂歌, 依違而諫, 亦權詐之義, 故謂之‘譎諫’.
은 교묘하게 속이는 것인데, 그것을 노래에 가탁하여 소리에 억양을 주어 듣기 좋게 해서 간하는 것도 교묘하게 속이는 의미이므로 ‘휼간譎諫’이라 한 것이다.
【序】至于王道衰하여 禮義廢하고 政敎失하며 國異政하고 家殊俗하여 而變風變雅作矣
왕도가 쇠퇴함에 이르러 예의가 무너지고 정교가 실추되었으며 나라마다 정사가 달라지고 집집마다 풍속이 달라져 변풍變風변아變雅가 지어진 것이다.
【疏】‘至于’至‘雅作矣’
의 [지어至於]에서 [아작의雅作矣]까지
○正義曰:詩之風雅, 有正有變, 故又言變之意. 至于王道衰, 禮義廢而不行, 政敎施之失所,
정의왈正義曰:≪시경詩經≫의 ‘’과 ‘’에 ‘’과 ‘’이 있으므로 또 ‘’의 뜻을 말한 것이다. 왕도가 쇠퇴함에 이르러 예의가 무너져 행해지지 못하고, 정교의 시행이 제자리를 잃었다.
遂使諸侯國國異政, 下民家家殊俗. 詩人見善則美, 見惡則刺之, 而變風變雅作矣.
그리하여 마침내 제후국마다 정사가 다르게 되고 백성들이 집집마다 풍속이 다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이 선을 보면 찬미하고 악을 보면 풍자하여 변풍變風변아變雅가 지어지게 된 것이다.
‘至于’者, 從盛而至于衰, 相承首尾之言也.
지우至于’는 ‘성세盛世로부터 쇠세衰世에 이르기까지’이니 처음과 끝을 연결한 말이다.
禮義言‘廢’者, 典法仍存, 但廢而不行耳. 政敎言‘失’者, 非無政敎, 但施之失理耳.
예의禮義에서 ‘’라 한 것은 법전은 그대로 있는데 다만 폐지하여 실행하지 않는 것이요, 정교政敎에서 ‘’이라 한 것은 정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시행함이 마땅한 이치를 잃었을 뿐이다.
由施之失理, 故使國國異政, 家家殊俗, 皆是道衰之事, 故云‘道衰’以冠之.
시행함이 마땅한 이치를 잃었기 때문에 나라마다 정사가 다르고 집집마다 풍속이 다르게 된 것이니, 이 모두가 왕도가 쇠퇴했을 때의 일이므로 ‘도쇠道衰’로 시작하였다.
禮義者, 政敎之本, 故先禮義而後政敎.
예의는 정교의 근본이므로 예의를 먼저 말하고 정교를 나중에 말한 것이다.
定本‘禮義廢’, 俗本有作儀字者, 非也. 此家, 謂天下民家. 孝經云 “非家至而日見之也.” 亦謂天下民家, 非大夫稱家也.
정본定本의 ‘예의폐禮義廢’의 ‘’자가 속본俗本에 ‘’자로 되어 있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에서 ‘’는 천하의 민가를 말한 것이다. ≪효경孝經≫에 “집집마다 찾아가서 날마다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한 것도 천하의 민가를 말한 것이니, 대부를 ‘’라 일컫는 경우가 아니다.
民隨君上之欲, 故稱俗, 若大夫之家, 不得謂之俗也.
백성은 임금의 욕심을 따르므로 ‘’이라 하는 것이니, 대부의 ‘’라면 ‘’이라 할 수 없다.
【疏】變風․變雅, 必王道衰乃作者, 夫天下有道, 則庶人不議, 治平累世, 則美刺不興, 何則.
변풍變風변아變雅가 반드시 왕도가 쇠퇴해짐에 비로소 지어진 것은 천하에 도가 지켜지고 있으면 서민이 정사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치평治平의 시대가 거듭되면 찬미하고 풍자하는 시가 지어지지 않기 때문이니, 무엇 때문인가?
未識不善, 則不知善爲善, 未見不惡, 則不知惡爲惡. 太平則無所更美, 道絶則無所復譏, 人情之常理也,
악을 알지 못하면 선이 선인 줄을 모르고, 선을 알지 못하면 악이 악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태평성대가 되면 다시 찬미할 일이 없고, 도가 끊어지면 다시 기롱할 일이 없는 것이 인정의 일반적인 도리이다.
故初變惡俗, 則民歌之, 風雅正經是也. 始得太平, 則民頌之, 周頌諸篇是也.
그리하여 처음 나쁜 풍속을 변화시키면 백성이 이를 노래하니, 정풍正風정아正雅가 이것이고, 처음 태평해지면 백성이 이를 칭송하니, 주송周頌의 모든 편이 이것이다.
若其王綱絶紐, 禮義消亡, 民皆逃死, 政盡紛亂, 易稱 “天地閉, 賢人隱.” 於此時也, 雖有智者, 無復譏剌.
만약 왕도가 끊어지고 예의가 사라져서 백성이 모두 흩어지고 죽어 정사가 온통 어지럽게 되면 ≪주역周易곤괘坤卦문언文言〉의 “천지가 닫히면 현인이 은둔한다.”는 것이니, 이러한 때에는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다시 기롱하고 풍자함이 없게 된다.
成王太平之後, 其美不異於前, 故頌聲止也. 陳靈公淫亂之後, 其惡不復可言, 故變風息也.
성왕成王의 태평성대 이후는 그 아름다움이 전과 다를 것이 없으므로 칭송하는 소리가 그쳤고, 진 영공陳 靈公의 음란함 이후는 그 악을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으므로 변풍變風이 그친 것이다.
班固云 “沒而頌聲寢, 王澤竭而詩不作.” 此之謂也.
반고班固가 “성왕成王강왕康王이 죽은 뒤에는 칭송하는 소리가 그쳤고, 왕의 은택이 다 없어지자 시가 지어지지 않았다.” 한 것은 이를 말한다.
【疏】然則變風․變雅之作, 皆王道始衰, 政敎初失, 尙可匡而革之, 追而復之,
그렇다면 변풍變風변아變雅가 지어진 것은 모두 왕도가 처음 쇠퇴해지고 정교가 처음 실추되었지만 그래도 바로잡아 개혁하고 미루어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故執彼舊章, 繩此新失, 覬望自悔其心, 更遵正道, 所以變詩作也, 以其變改正法, 故謂之變焉.
그리하여 옛 법도를 행하고 새로운 잘못을 바로잡아 군주가 스스로 뉘우쳐 다시 정도를 따르기를 바라서 변시變詩를 지은 것이니, 정법을 고쳐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이라 한 것이다.
계찰季札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29년에 소아小雅를 노래하는 것을 보고 “아름답도다! 걱정하면서도 두 마음을 먹지 않고 원망하면서도 말하지 않으니, 의 덕이 쇠해졌을 때의 시일 것이다.
猶有先王之遺民.” 是由王澤未竭, 民尙知禮, 以禮救世, 作此變詩, 故變詩, 王道衰乃作也.
그래도 선왕의 유민이 노래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왕의 은택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아 백성이 아직 예를 알아 예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변시變詩를 지은 것이다. 그리하여 변시는 왕도가 쇠미해지자 비로소 지어진 것이다.
譜云 “, .” 則周道之衰, 自夷懿始矣.
시보詩譜≫에 “이왕夷王은 자신이 예를 잃었고, 의왕懿王이 처음으로 참소를 받아들였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주의 왕도가 쇠미해진 것은 이왕과 의왕 때에 시작된 것이다.
變雅始於厲王, 無夷懿之雅者, 蓋孔子錄而不得, 或有而不足錄也.
그런데 변아變雅여왕厲王 때에 시작되어 이왕과 의왕에 대한 가 없으니, 아마도 공자가 채록하지 못했거나 존재는 했지만 기록할 만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昭十二年左傳稱 “.” 衛頃․齊哀之時而有變風, 明時作變雅, 但不錄之耳.
그러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12년에 “채공 모보蔡公 謀父가 〈기초祈招〉를 지어 목왕穆王을 간하였다.” 하였고, 경공頃公애공哀公 때에 변풍이 있었으니, 당시에 변아變雅를 지었지만 다만 채록되지 않았을 뿐임이 분명하다.
【疏】王道衰, 諸侯有變風, 王道盛, 諸侯無正風者, 王道明盛, 政出一人, 太平非諸侯之力, 不得有正風,
왕도가 쇠미해질 때에는 제후의 변풍이 있는데 왕도가 성해질 때에는 제후의 정풍이 없는 것은, 왕도가 흥성하면 정사가 천자 한 사람에게서 나와 태평성세가 제후의 힘이 아니기 때문에 정풍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王道旣衰, 政出諸侯, 善惡在於己身, 不由天子之命, 惡則民怨, 善則民喜, 故各從其國, 有美剌之變風也.
왕도가 쇠미해지고 나면 정사가 제후로부터 나와 선악이 제후 자신의 몸에 달려 있고 천자의 명에 말미암지 않는다. 그리하여 악을 하면 백성이 원망하고 선을 하면 백성이 기뻐하므로 각자 그 나라의 실정에 따라 찬미하고 풍자하는 변풍이 있는 것이다.
【序】國史明乎得失之迹하여 傷人倫之廢하고 哀刑政之苛하여 吟詠情性以風其上이라
사관史官이 정사에 대한 잘잘못의 자취를 밝게 알아 인륜의 무너짐을 마음 아파하고 형벌의 가혹함을 슬퍼하여 뜻을 읊조려 군상君上을 풍자하였다.
○苛 苛虐也 動聲曰吟이라
○‘’는 가혹하게 학대함이다. 소리를 내서 읊조리는 것을 ‘’이라 한다.
【疏】‘國史’至‘上’
의 [국사國史]에서 []까지
○正義曰:上旣言變詩之作, 此又說作變之由, 言國之史官, 皆博聞强識之士, 明曉於人君得失善惡之迹,
정의왈正義曰:위에서는 변시變詩가 지어짐을 말하였고 여기에서는 또 변시變詩를 지은 이유를 말하였으니, ‘나라의 사관은 모두가 학식이 풍부하고 기억이 뛰어난 자로 임금의 잘잘못과 선악의 자취를 환하게 알았다.
禮義廢則人倫亂, 政敎失則法令酷, 國史傷此人倫之廢棄, 哀此刑政之苛虐.
예의가 무너지면 인륜이 문란해지고 정교가 실추되면 법령이 가혹해지니, 사관이 인륜이 무너지고 사라짐을 마음 아파하고 형벌의 가혹함을 슬퍼하였다.
哀傷之志, 鬱積於內, 乃吟詠己之情性, 以風刺其上, 覬其改惡爲善, 所以作變詩也.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는 뜻이 마음에 쌓여 마침내 자신의 성정性情을 읊조려 군상君上을 풍자하여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기를 바란 것이 변시變詩를 지은 이유’임을 말한 것이다.
國史者, 周官, 大史․小史․外史․御史之等, 皆是也. 此承變風․變雅之下, 則兼據天子諸侯之史矣.
국사國史주관周官이니 대사大史소사小史외사外史어사御史 등이 이들인데, 이를 변풍變風변아變雅의 아래에 이어서 말했으니, 천자와 제후의 사관이 모두 해당된다.
‘得失之迹’者, 人君旣往之所行也. 明曉得失之迹, 哀傷而詠情性者, 詩人也, 非史官也.
득실지적得失之迹’은 임금의 지난 행적이니, ‘득실지적得失之迹’을 분명하게 알아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여 뜻을 읊조린 사람은 시인이지 사관이 아니다.
民勞․常武, 公卿之作也. 黃鳥․碩人, 國人之風, 然則凡是臣民, 皆得風剌, 不必要其國史所爲.
대아 민로大雅 民勞〉와 〈상무常武〉는 공경公卿이 지은 것이고 〈소아 황조小雅 黃鳥〉와 〈위풍 석인衛風 碩人〉은 백성의 시이다. 그렇다면 신하와 백성이 다 풍자할 수 있는 것이니, 반드시 사관이 지은 것이라 여길 필요는 없다.
【疏】此文特言國史者, 鄭答張逸云 “國史采衆詩時, 明其好惡, 令歌之, 其無作主, 皆國史主之, 令可歌.”
이 글에서 특별히 사관을 말한 것은, 정현鄭玄장일張逸에게 답하기를 “사관이 여러 시를 채록할 때에 좋고 나쁜 것을 밝혀 악관에게 노래하게 하되, 지은 사람이 없는 것은 모두 사관이 주관하여 노래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如此言, 是由國史掌書, 故託文史也. 苟能制作文章, 亦可謂之爲史, 不必要作史官.
이 말대로라면 이는 사관이 글을 관장하므로 사관의 글이라고 가탁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글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을 또한 ‘’라고 할 수 있으니, 반드시 사관이 지은 것이라 여길 필요는 없다.
駉云 “史克作是頌” 史官自有作詩者矣, 不盡是史官爲之也.
노송 경魯頌 駉〉에 “이 이 을 지었다.” 하였으니, 사관史官이 본디 시를 지은 경우가 있지만 모두 사관이 지은 것은 아니다.
言‘明其好惡 令瞽矇歌之’, 是國史選取善者, 始付樂官也.
명기호악 영고몽가지明其好惡 令瞽矇歌之’라 한 것은 사관이 선한 것을 가려 뽑아 비로소 악관에게 노래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言‘其無作主 國史主之’, 嫌其作者無名, 國史不主之耳, 其有作主, 亦國史主之耳.
기무작주 국사주지其無作主 國史主之’라 한 것은 작자의 이름이 없을 경우 사관이 그것을 주관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일 뿐이니, 그 작자가 있는 경우도 사관이 주관하였다.
‘人倫之廢’, 卽上禮義廢也, ‘刑政之苛’, 卽上政敎失也.
인륜지폐人倫之廢’는 윗글의 ‘예의폐禮義廢’이고, ‘형정지가刑政之苛’는 윗글의 ‘정교실政敎失’이다.
動聲曰吟, 長言曰詠, 作詩必歌, 故言吟詠情性也.
소리를 내서 읊조리는 것을 ‘’이라 하고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이라 하니, 시를 지으면 반드시 노래하므로 ‘음영정성吟詠情性’이라 한 것이다.
【序】達於事變而懷其舊俗者也 故變風發乎情하여 止乎禮義
〈시를 지은 사람이〉 사변事變을 잘 알아 옛 풍속을 그리워하였다. 그리하여 변풍變風이 백성의 뜻에서 나와 예의에 그친 것이다.
發乎情 民之性也 止乎禮義 先王之澤也
발호정發乎情’은 백성의 성정性情(뜻)이요 ‘지호예의止乎禮義’는 선왕先王유택遺澤이다.
【疏】‘達於’至‘之澤’
의 [달어達於]에서 [지택之澤]까지
○正義曰:此又言王道旣衰, 所以能作變詩之意. 作詩者, 皆曉達於世事之變易, 而私懷其舊時之風俗,
정의왈正義曰:여기에서 또 왕도가 쇠미해진 뒤에 변시變詩를 지을 수 있었던 까닭을 말하였다. 시를 지은 사람이 모두 세상이 변한 것을 잘 알아서 사사로이 옛 풍속을 그리워하였다.
見時世政事, 變易舊章, 卽作詩以舊法誡之, 欲使之合於禮義,
당시 정사의 법도가 바뀐 것을 보고 옛 법도를 가지고 시를 지어 경계하여 예의에 맞게 하고자 한 것이다.
故變風之詩, 皆發於民情, 止於禮義, 言各出民之情性, 而皆合於禮義也, 又重說發情止禮之意.
그리하여 변풍變風의 시가 모두 민정民情에서 나와 예의禮義에 그친 것이니, ‘각각의 시가 백성의 뜻에서 나와 모두 예의에 합당함’을 말하고, 또 ‘백성의 뜻에서 나와 예의에 그쳤다’는 것을 거듭 말한 것이다.
‘發乎情者 民之性’, 言其民性不同, 故各言其志也, ‘止乎禮義者 先王之澤’, 言俱被先王遺澤, 故得皆止禮義也, 展轉申明作詩之意.
발호정자 민지성發乎情者 民之性’은 백성의 뜻이 다르므로 각각 자신의 뜻을 말한 것임을 말한 것이고, ‘지호예의자 선왕지택止乎禮義者 先王之澤’은 모두 선왕의 유택을 입었으므로 모두 예의에 그쳤음을 말한 것이니, 되풀이하여 거듭 시를 지은 뜻을 밝힌 것이다.
‘達於事變’者, 若唐有帝堯殺禮救危之化, 後世習之, 失之於儉不中禮,
달어사변達於事變’은 에 요임금이 를 간소하게 하여 위험을 구제하였던 교화가 있었는데, 후세에 그것을 답습하여 검소함이 예에 맞지 않는 실수가 있게 되고,
陳有好巫歌舞之風, 後世習之, 失之於遊蕩無度. 是其風俗改變, 時人曉達之也.
태희大姬가 무당과 가무를 좋아하는 풍도가 있었는데, 후세에 그것을 답습하여 방탕하여 법도가 없는 잘못이 있게 된 것이니, 이는 그 풍속이 변한 것을 당시의 사람이 잘 안 것이다.
【疏】‘懷其舊俗’者, 若齊有太公之風, 衛有康叔之化, 其遺法仍在, 詩人懷挾之也.
회기구속懷其舊俗’은 에는 태공太公의 교화가 있고, 에는 강숙康叔의 교화가 있었는데, 그 남긴 법도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시인이 그를 간직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詩人旣見時世之事變, 改舊時之俗, 故依準舊法, 而作詩戒之.
시인詩人이 당시의 세사世事가 변화하고 옛날의 풍속이 바뀐 것을 보았기에 옛 법도를 기준으로 삼아 시를 지어 경계한 것이다.
雖俱準舊法, 而詩體不同, 或陳古政治, 或指世淫荒.
비록 모두 옛 법도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시의 체가 달라 어떤 것은 지난날의 정사를 말하고 어떤 것은 당시의 음란함을 지적하였다.
雖復屬意不同, 俱懷匡救之意, 故各發情性, 而皆止禮義也.
비록 노래한 뜻은 다르지만 모두 세상을 바로잡고 구제할 것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각각의 시가 백성의 성정性情에서 나와 모두 예의에 그친 것이다.
此亦兼論變雅, 獨言變風者, 上已變風․變雅雙擧其文, 此從省而略之也.
여기에서도 변아變雅를 겸하여 말해야 하는데 변풍變風만을 말한 것은 위에서 이미 변풍變風변아變雅를 함께 그 글에서 들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한 것이다.
‘先王之澤’, 謂先王有德澤, 而流及於後世, 詩人得其餘化, 故能懷其舊俗也.
선왕지택先王之澤’은 선왕先王의 은택이 남아 있어 영향이 후세에까지 미쳐 시인詩人이 남아 있는 교화를 입었다. 그리하여 옛 풍속을 그리워함을 말한 것이다.
鄭答張逸云 “舊俗者, 若晉有堯之遺風, 先王之澤, 衛有康叔餘烈.” 如此言,
정현鄭玄장일張逸에게 답하기를 “구속舊俗의 남긴 교화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고, 선왕先王의 은택은 강숙康叔의 남긴 공로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으니,
則康叔當云先公, 而云先王者, 以變雅有先王之澤, 變風有先公之澤.
이 말대로라면 강숙을 마땅히 선공先公이라고 해야 하는데도 선왕先王이라 한 것은, 변아變雅선왕先王의 은택이 남아 있는 것이고 변풍變風선공先公의 은택이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故季札見歌齊曰 “表東海者, 其太公乎.” 見歌小雅曰 “猶有先王之遺民.” 是其風稟先公, 雅稟先王也.
그리하여 계찰이 제풍齊風을 노래하는 것을 보고 “동해에 표상이 된 자는 아마도 태공일 것이다.” 하였고, 소아小雅를 노래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선왕先王의 유민이 노래한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은 선공先公에게서 받은 교화이고 ‘’는 선왕先王으로부터 받은 교화라는 것이다.
【疏】上擧變風, 下言先王, 風․雅互相見也.
위에서 변풍變風을 들어 말하고 아래에 선왕先王을 말한 것은 ‘’과 ‘’를 번갈아 보인 것이다.
上言國史作詩, 此言民之性, 明作詩皆在民意, 非獨國史能爲, 亦是互見也.
위에서 사관이 시를 지음을 말하고 여기에서 백성의 뜻을 말한 것은 시를 지음이 모두 백성의 뜻에 있고 사관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니, 또한 번갈아 보인 것이다.
作詩止於禮義, 則應言皆合禮, 而變風所陳, 多說姦淫之狀者, 男淫女奔, 傷化敗俗,
시를 지음이 예의에 그쳤다면 응당 말이 모두 예의에 합당해야 하는데도 변풍變風시어詩語가 대부분 간음의 상황을 말한 것은 남녀가 음행을 하고 풍속이 무너진 것이니,
詩人所陳者, 皆亂狀淫形, 時政之疾病也, 所言者, 皆忠規切諫, 救世之針藥也.
시인의 시어가 모두 음란함을 형상하였으면 당시 정사가 병든 것이고, 말하는 것이 모두 충성스럽고 절실한 간언이면 세상을 구제하는 침과 약이다.
尙書之, 疾病也, 詩人之四始六義, 救藥也.
상서尙書≫의 ‘삼풍십건三風十愆’은 질병이고 시인詩人의 ‘사시육의四始六義’는 치료하는 것이다.
若夫疾病尙輕, 有可生之道, 則毉之治也用心銳, , 知其必可生也.
만약 질병이 아직은 가벼워 살아날 방도가 있으면 의원이 치료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 편작扁鵲이 태자를 치료한 것은 반드시 살아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고,
疾病已重, 有將死之勢, 則醫之治也用心緩, , 知其不可爲也. 詩人救世, 亦猶是矣.
질병이 매우 중해 장차 죽을 형세이면 의원이 치료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니, 진화秦和평공平公을 보기만 한 것은 치료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세상을 구제하는 것도 이와 같다.
【疏】典刑未亡, 覬可追改, 則箴規之意切, , 殷勤而責王也.
법도가 아직 없어지지 않아 추후에 고칠 수 있기를 바라면 경계하고 간하는 뜻이 간절하니, 〈학명鶴鳴〉과 〈면수沔水〉는 은근히 왕에게 요구한 것이다.
淫風大行, 莫之能救, 則匡諫之志微, , 所以咨嗟歎息而閔世.
음란한 풍속이 크게 유행하여 구제할 수 없게 되면 잘못된 것을 간하여 바로잡으려는 뜻이 미미하니, 〈진유溱洧〉와 〈상중桑中〉은 애석해하고 탄식하여 세상을 안타깝게만 여긴 것이다.
陳․鄭之俗, 亡形已成, 詩人度己箴規, 必不變改, 且復賦己之志, 哀歎而已, 不敢望其存, 是謂匡諫之志微.
의 풍속은 이미 망해가는 형세가 이루어졌으므로 시인詩人이 자신이 경계하고 옳은 도리로 간언해도 필시 고치지 못할 것을 헤아리고, 우선 다시 자신의 뜻을 서술하여 슬퍼하고 탄식하였을 뿐 감히 보존되기를 바라지 않은 것이니, 이는 잘못된 것을 간하여 바로잡으려는 뜻이 미미함을 말한 것이다.
故季札見歌陳曰 “國無主, 其能久乎.” 見歌鄭曰 “美哉, 其細已甚, 民弗堪也, 是其先亡乎.”
그리하여 계찰이 진풍陳風을 노래하는 것을 보고 “나라에 군주가 없으니 어찌 오래 보존되겠는가.” 하고, 정풍鄭風을 노래하는 것을 보고 “훌륭하도다! 묘사의 세밀함이 너무 지나치니 백성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먼저 망할 것이다.” 하였다.
美者, 美詩人之情, 言不有先王之訓, 孰能若此. 先亡者, 見其匡諫意微, 知其國將亡滅也.
’는 시인의 뜻을 찬미한 것이니, 선왕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선망先亡’은 시인이 잘못된 것을 간하여 바로잡으려는 뜻이 미미한 것을 보고 나라가 장차 멸망할 것임을 안 것이다.
【序】是以 一國之事 繫一人之本 謂之風이요 言天下之事하고 形四方之風 謂之雅
이 때문에 한 나라의 일이 시인 한 사람의 뜻에 관계된 것을 ‘’이라 하고, 천하의 일을 말하고 사방의 풍속을 묘사한 것을 ‘’라 한다.
【疏】序‘是以’至‘之雅’
의 [시이是以]에서 [지아之雅]까지
○正義曰:序說正變之道, 以風․雅與頌區域不同, 故又辨三者體異之意.
정의왈正義曰에서 의 도를 말하면서 의 영역과 다르기 때문에 또 세 가지 문체의 다른 점을 분별한 것이다.
是以者, 承上生下之辭, 言詩人作詩, 其用心如此.
시이是以’는 앞을 이어 다음을 시작하는 말이니, 시인이 시를 지음에 의도함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一國之政事善惡, 皆繫屬於一人之本意, 如此而作詩者, 謂之風.
한 나라 정사의 잘잘못이 모두 한 사람의 뜻에 연결되어 있으니, 이와 같이 지어진 시를 ‘’이라 하고,
言道天下之政事, 發見四方之風俗, 如是而作詩者, 謂之雅. 言風․雅之別, 其大意如此也.
천하의 정사를 말하고 사방의 풍속을 드러내니, 이와 같이 지어진 시를 ‘’라 한다. 이는 ‘’과 ‘’의 구분을 말한 것이니, 그 큰 뜻이 이와 같은 것이다.
一人者, 作詩之人, 其作詩者, 道己一人之心耳, 要所言一人心, 乃是一國之心.
일인一人’은 시인이니, 시인이 자기 한 사람의 뜻을 말한 것일 뿐이지만, 요컨대 한 사람의 뜻을 말한 것이 바로 온 나라 사람의 뜻인 것이다.
詩人覽一國之意, 以爲己心, 故一國之事, 繫此一人, 使言之也.
시인이 온 나라의 뜻을 살펴 자신의 마음으로 삼은 것이므로 온 나라의 일을 시인 한 사람과 연결시켜 말하게 한 것이다.
但所言者, 直是諸侯之政, 行風化於一國, 故謂之風, 以其狹故也.
다만 말한 것이 오직 제후국의 정사이어서 한 나라에 교화가 행해진 것이므로 ‘’이라 한 것이니, 범위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疏】言天下之事, 亦謂一人言之, 詩人摠天下之心, 四方風俗, 以爲己意, 而詠歌王政,
천하의 일을 말하면서 한 사람이 말한 것이라 한 것은, 시인이 천하 사람의 마음과 사방의 풍속을 총괄하여 자신의 뜻으로 삼아 왕자王者의 정사를 읊조리고 노래하였기 때문이다.
故作詩道說天下之事, 發見四方之風. 所言者, 乃是天子之政, 施齊正於天下, 故謂之雅, 以其廣故也.
그리하여 시를 지음에 천하의 일을 말하고 사방의 풍속을 드러낸 것이다. 말한 것은 바로 천자의 정사인데 시행하여 천하를 바르게 하는 것이므로 ‘’라 한 것이니,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風之與雅, 各是一人所爲, 風言一國之事繫一人, 雅亦天下之事繫一人.
’은 ‘’와 함께 각각 한 사람이 지은 것이니, ‘’은 ‘일국지사계일인一國之事繫一人’이라 하였으니, ‘’도 천하의 일이 한 사람의 뜻에 관계되는 것이다.
雅言天下之事, 謂一人言天下之事, 風亦一人言一國之事.
’는 ‘언천하지사言天下之事’라 하여 한 사람이 천하의 일을 말함을 이르니, ‘’도 한 사람이 한 나라의 일을 말한 것이다.
序者, 逆順立文, 互言之耳. 故志張逸問 “嘗聞一人作詩, 何謂.”
에서 역순으로 글을 서술한 것은 번갈아 말한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정지鄭志≫에 장일張逸이 “일찍이 들으니 ‘한 사람이 시를 지었다.’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하니,
答曰 “作詩者, 一人而已, 其取義者, 一國之事. 變雅則譏王政得失, 閔風俗之衰, 所憂者廣, 發於一人之本身.”
정현鄭玄이 “시를 지은 사람은 한 사람일 뿐이지만 취한 뜻은 한 나라의 일이다. ‘변아變雅’는 왕정王政의 잘잘못을 풍자하고 풍속의 쇠미함을 안타까이 여겨 근심한 것은 넓지만 한 사람의 뜻에서 발현된 것이다.” 하였다.
如此言, 風雅之作, 皆是一人之言耳, 一人美, 則一國皆美之, 一人刺, 則天下皆刺之.
이 말과 같다면 ‘’과 ‘’가 지어짐이 모두 시인 한 사람의 말일 뿐이지만, 한 사람이 찬미하면 한 나라가 모두 찬미하고 한 사람이 풍자하면 천하가 모두 풍자하는 것이다.
【疏】, 妻怨其夫, 未必一國之妻, 皆怨夫耳. , 下怨其上, 未必一朝之臣, 皆怨上也.
곡풍谷風〉과 〈황조黃鳥〉는 아내가 지아비를 원망한 것이지만 반드시 온 나라의 아내가 모두 지아비를 원망한 것은 아니고, 〈북문北門〉과 〈북산北山〉은 아랫사람이 임금을 원망한 것이지만 반드시 온 조정의 신하가 모두 임금을 원망한 것은 아니다.
但擧其夫婦離絶, 則知風俗敗矣, 言己獨勞從事, 則知政敎偏矣, 莫不取衆之意, 以爲己辭, 一人言之, 一國皆悅.
다만 부부가 이별한 것을 말했으니 풍속이 무너졌음을 알 수 있고, 자기만 홀로 수고롭게 일함을 말했으니 정교가 고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백성의 뜻을 취하여 자신의 말로 삼지 않은 것이 없어서 한 사람이 말함에 온 나라가 모두 기뻐한 것이다.
假使聖哲之君, 功齊區宇, 設有一人, 獨言其惡, 如之羞見殷湯, 伯夷․叔齊之恥事周武, 海內之心 不同之也.
가령 성스럽고 명철한 군주가 천하에 공을 이루면 설사 어떤 사람이 홀로 그의 악을 말하기를, 변수와 무광이 은나라 탕왕을 보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 무왕 섬기기를 부끄럽게 여겼던 것처럼 하더라도 천하의 마음이 그들과 함께하지는 않는다.
無道之主, 惡加萬民, 設有一人, 獨稱其善, 如, , 天下之意, 不與之也.
이와 반대로 가령 무도한 임금이 백성에게 악행을 하면 설사 어떤 사람이 홀로 그의 선을 칭송하기를, 장송이 왕망을 찬미하고, 채옹이 동탁을 애석해하는 것처럼 한다고 하더라도 천하의 뜻이 그와 함께하지는 않는다.
必是言當擧世之心, 動合一國之意, 然後得爲風雅, 載在樂章, 不然則國史不錄其文也.
필시 말이 온 세상 사람의 마음에 합치되고 행동이 온 나라 사람의 뜻에 부합된 뒤에라야 ‘’과 ‘’가 되어 악장에 실릴 수 있게 된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사관이 그 글을 채록하지 않았다.
【疏】此言謂之風雅, 理兼正變. 天下無道, 政出諸侯, 而變雅亦稱雅者, 當作變雅之時, 王政仍被邦國.
여기에서 말한 ‘’과 ‘’는 이치상 을 겸하고 있다. 천하에 도가 없어져서 정사가 제후에게서 나오는데도 변아變雅를 ‘’라 한 것은 변아가 지어질 때에 왕의 정사가 여전히 온 나라에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大學曰 “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而民從之.” 是善政․惡政, 皆能正人, 所以幽厲之詩, 亦名爲雅.
대학大學≫에 “이 천하를 어짊으로 거느리니 백성이 따르고, 가 천하를 포악함으로 거느리니 백성이 따랐다.” 하였다. 이는 선정善政악정惡政을 노래한 시가 모두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도 ‘’라 일컬어진 것이다.
及平王東遷, 政遂微弱, 其政纔行境內, 是以變爲風焉.
평왕平王동천東遷함에 이르러서는 정사가 마침내 미약해져 그 정사가 경내境內에서만 겨우 행해졌으므로 이 때문에 변하여 풍이 된 것이다.
【序】雅者 正也 言王政之所由廢興也 政有小大 故有小雅焉하고 有大雅焉이라
는 바르게 함이니, 정교政敎가 이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흥기됨을 말한 것이다. 작은 정사와 큰 정사가 있으므로 ‘소아小雅’가 있고 ‘대아大雅’가 있다.
【疏】‘雅者’至‘雅焉’
의 [아자雅者]에서 [아언雅焉]까지
○正義曰:上已解風名, 故又解雅名. 雅者訓爲正也, 由天子以政敎齊正天下, 故民述天子之政, 還以齊正爲名.
정의왈正義曰:위에서 이미 ‘’의 명칭을 풀었으므로 또 ‘’의 명칭을 푼 것이다. ‘’를 ‘정야正也’로 푼 것은 천자가 정교政敎로 천하를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백성이 천자의 정교를 말하여 다시 ‘바르게 함’으로 명칭을 삼은 것이다.
王之齊正天下得其道, 則述其美, 雅之正經及, 是也. 若王之齊正天下失其理, 則刺其惡, 幽厲小雅, 是也.
왕이 천하를 바르게 다스려 올바른 도를 얻으면 그 아름다움을 기술하니, ‘’의 정경正經선왕宣王을 찬미한 시가 이것이다. 만약 왕이 천하를 다스리나 그 올바른 도리를 잃으면 그 악을 풍자하니, 유왕幽王여왕厲王소아小雅가 이것이다.
詩之所陳, 皆是正天下大法, 文武用詩之道則興, 幽厲不用詩道則廢.
에 말한 것이 모두 천하를 바르게 하는 큰 법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도를 사용하여 흥하였고, 유왕幽王여왕厲王은 시의 도를 사용하지 않아 망한 것이다.
此雅詩者, 言說王政所用廢興, 以其廢興, 故有美刺也, 又解有二雅之意.
여기의 ‘아시雅詩’는 왕의 정교가 무너지고 흥기되는 까닭을 설명한 것이니, 왕의 정교政敎가 무너지고 흥기되기 때문에 찬미와 풍자가 있게 된 것이고 또 ‘이아二雅’가 있게 된 뜻을 푼 것이다.
王者政敎有小大, 詩人述之亦有小大, 故有小雅焉, 有大雅焉.
왕자王者정교政敎에 크고 작음이 있으므로 시인의 말에도 크고 작음이 있다. 그리하여 ‘소아小雅’가 있고 ‘대아大雅’가 있는 것이다.
【疏】小雅所陳, 有飮食賓客, 賞勞群臣, 燕賜以懷諸侯, 征伐以强中國, 樂得賢者, 養育人材, 於天子之政, 皆小事也.
소아小雅의 내용에 빈객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군신群臣에게 상을 주고 위로하며, 잔치를 베풀고 상을 내려 제후를 회유하고, 정벌하여 중국中國을 강성하게 하며, 현자를 얻음을 즐거워하고, 인재를 기르는 일 등은 천자의 정사에서 모두 작은 일이다.
大雅所陳, 受命作周, 代殷繼伐, 荷先王之福祿, 尊祖考以配天, ,
대아大雅의 내용에 〈문왕이〉 천명을 받아 주를 일으키고, 〈무왕이〉 을 대신하여 정벌을 이어가며, 선왕의 복록福祿을 이어받고, 선조를 높여 하늘과 짝하게 하며,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고,
能官用士, 澤被昆蟲, 仁及草木, 於天子之政, 皆大事也.
능력 있는 사람을 관직에 기용하고 선비를 등용하며, 은택이 곤충에게 이르고, 어짊이 초목에 미치는 일 등은 천자의 정사에서 모두 큰일이다.
詩人歌其大事, 制爲大體, 述其小事, 制爲小體, 體有大小, 故分爲二焉.
시인詩人이 큰일을 노래하여 대체大體를 만들고 작은 일을 말하여 소체小體를 만들어, 에 크고 작음이 있으므로 나누어 둘이 된 것이다.
風見優劣之差, 故周南先於召南, 雅見積漸之義, 故小雅先於大雅, 此其所以異也, 詩體旣異, 樂音亦殊.
’은 우열의 차이를 나타내므로 주남周南소남召南보다 앞에 있고 ‘’는 점차 나아가는 뜻을 나타내므로 소아小雅대아大雅보다 앞에 있으니 이것이 다른 까닭이고, 가 이미 다르므로 악장樂章의 음도 다르다.
國風之音, 各從水土之氣, 述其當國之歌而作之, 雅頌之音, 則王者徧覽天下之志, 摠合四方之風而制之,
국풍國風’의 음은 각기 기후와 풍토의 기운을 따라 해당되는 나라의 노래를 기술해 지어지고, ‘’와 ‘’의 음은 왕자王者가 천하의 뜻을 두루 살피고 사방의 풍토를 모두 합하여 지어지니,
樂記所謂 “先王制雅頌之聲以道之.” 是其事也.
예기禮記≫ 〈악기樂記〉의 “선왕先王이 ‘’와 ‘’의 소리를 만들어 이끌었다.” 한 것이 바로 그 일이다.
【疏】詩體旣定, 樂音旣成, 則後之作者, 各從舊俗.
가 정해지고 악장樂章의 음이 정해지면 후대의 작자들이 각각 옛 풍속을 따른다.
變風之詩, 各是其國之音, 季札觀之而各知其國, 由其音異故也, 小雅音體亦然.
변풍變風’의 시는 각기 그 나라의 음이어서 계찰季札이 음을 관찰하여 그 나라를 안 것은 그 음이 다르기 때문이니, ‘소아小雅’의 도 그러하다.
正經述大政爲大雅, 述小政爲小雅, 有小雅․大雅之聲.
정경正經에 큰 정교를 기술한 것은 ‘대아大雅’가 되고 작은 정교를 기술한 것은 ‘소아小雅’가 되어 ‘소아小雅’와 ‘대아大雅’의 소리가 있는 것이다.
王政旣衰, 變雅兼作, 取大雅之音, 歌其政事之變者, 謂之變大雅, 取其小雅之音, 歌其政事之變者, 謂之變小雅,
왕자王者의 정교가 쇠미해짐에 ‘변아變雅’가 함께 지어졌으니, ‘대아大雅’의 음을 취하여 그 정사의 변함을 노래한 것을 ‘변대아變大雅’라 하고, ‘소아小雅’의 음을 취해 그 정사의 변함을 노래한 것을 ‘변소아變小雅’라 한다.
故變雅之美刺, 皆由音體有小大, 不復由政事之大小也.
그리하여 ‘변아變雅’의 찬미와 풍자는 모두 음과 체의 소대小大에서 비롯되고 다시 정사의 대소大小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다.
風述諸侯之政, 非無小大, 但化止一國, 不足分別, 頌則功成乃作, 歸美報神, 皆是大事, 無復別體, 故不分爲二風․二頌也.
’은 제후의 정교를 말함에 소대小大가 있지만, 다만 교화가 한 나라에 그치므로 구분하기에 부족하고, ‘’은 공이 이루어진 뒤에 지어져 찬미를 〈군상君上에게〉 돌리고, 신에게 보답하는 것이 모두 큰일이므로 다시 체를 나누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풍二風’과 ‘이송二頌’으로 나누지 않은 것이다.
【序】頌者 美盛德之形容이니 以其成功으로 告於神明者也
은 훌륭한 덕의 모습을 찬미함이니, 그 이루어진 공을 신명神明에게 고한 것이다.
【疏】‘頌者’至‘神明者’
[송자頌者]에서 [신명자神明者]까지
○正義曰:上解風․雅之名, 風․雅之體, 故此又解頌名․頌體.
정의왈正義曰:위에서 ‘’과 ‘’의 명칭과 를 풀이하였으므로 여기에 또 ‘’의 명칭과 를 풀이한 것이다.
上文因變風․變雅作矣, 卽說風雅之體, 故言 ‘謂之風’, ‘謂之雅’, 以結上文,
윗글에서 ‘변풍變風’과 ‘변아變雅’가 지어진 것으로 인하여 나아가 ‘’과 ‘’의 체를 말하였다. 그리하여 ‘위지풍謂之風’이라 하고 ‘위지아謂之雅’라 하여 윗글을 맺은 것이다.
此上未有頌作之言, 文無所結, 故云 ‘頌者 美盛德之形容’, 明訓‘頌’爲‘容’, 解頌名也. ‘以其成功 告於神明’, 解頌體也.
여기에서는 위에서 ‘’이 지어진 것에 대한 말이 없고 맺는 글이 없다. 그리하여 ‘송자 미성덕지형용頌者 美盛德之形容’이라 하여 ‘’을 ‘형용한다’는 뜻으로 밝혔으니, ‘’의 명칭을 풀이한 것이고, ‘이기성공 고어신명以其成功 告於神明’은 ‘’의 를 풀이한 것이다.
上言‘雅者 正也’, 此亦當云‘頌者 容也’, 以雅已備文, 此亦從可知, 故略之也.
위에서 ‘아자 정야雅者 正也’라 하였으니, 여기에서도 마땅히 ‘송자 용야頌者 容也’라고 해야 하지만 ‘’에서 이미 글을 갖추었으니 여기에서도 따라서 알 수 있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易稱 “聖人擬諸形容, 象其物宜”, 則形容者, 謂形狀容貌也.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성인이 그 모습을 모방하고 그 물건의 중요한 특징을 형상하였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형용은 용모를 표현하는 것이다.
作頌者, 美盛德之形容, 則天子政敎有形容也. 可美之形容, 正謂道敎周備也.
’을 지은 사람이 성덕盛德의 모습을 찬미하였으니, 그렇다면 천자의 정교를 형용함이 있는 것이다. 찬미할 만한 형용은 바로 도덕과 교화가 두루 갖추어진 것을 말한다.
故頌譜云 “天子之德, 光被四表, 格于上下, 無不覆燾, 無不持載”, 此之謂容, 其意出於此也.
그리하여 〈주송보周頌譜〉에 “천자의 덕이 광채가 사방에 미치고 하늘과 땅에 이르러, 덮어주지 않음이 없고 실어주지 않음이 없다.” 하였다. 이것이 ‘’이라는 것이니, 그 뜻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疏】成功者, 營造之功畢也. 天之所營, 在於命聖, 聖之所營, 在於任賢, 賢之所營, 在於養民.
성공成功’은 계획하여 만드는 일이 완성된 것이다. 하늘이 경영하는 것은 성인에게 명령함에 있고, 성인이 경영하는 것은 현인에게 맡김에 있으며, 현인이 경영하는 것은 백성을 기름에 있다.
民安而財豐, 衆和而事節, 如是則司牧之功畢矣.
백성이 편안하고 재용이 풍족하며 백성이 화합하고 일이 절도가 있게 되면 위정자의 일이 완성되는 것이다.
干戈旣戢, 夷狄來賓, 嘉瑞悉臻, 遠邇咸服, 群生盡遂其性, 萬物各得其所, 卽是成功之驗也.
전쟁이 그치고 오랑캐가 와서 복종하며, 아름다운 상서가 모두 이르고 멀고 가까운 백성이 다 복종하며, 뭇 생명들이 그 품성을 다 이루고 만물이 각각 제자리를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성공成功’의 징험이다.
萬物本於天, 人本於祖, 天之所命者, 牧民也, 祖之所命者, 成業也.
만물은 하늘에 뿌리를 두고 사람은 조상에게 뿌리를 두니, 하늘이 명하는 것은 백성을 기르는 것이고 조상이 명하는 것은 왕업을 이루는 것이다.
民安業就, 須告神使知, 雖社稷․山川․四嶽․河海, 皆以民爲主, 欲民安樂,
백성이 편안하고 왕업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신에게 고하여 알게 하니, 비록 사직社稷산천山川사악四嶽하해河海의 신이라도 모두 백성을 주인으로 삼아 백성이 안락하기를 바란다.
故作詩歌其功, 徧告神明, 所以報恩也.
그리하여 시를 지어 그 공을 노래하는 것이니, 신명에게 두루 고하는 것은 은택에 보답하는 것이다.
王者政有興廢, 未嘗不祭群神, 但政未太平, 則神無恩力, 故太平德洽, 始報神功.
왕자王者가 정사에 흥폐興廢가 있을 때마다 여러 신에게 제사하지 않은 적이 없으나, 다만 정사가 아직 태평하게 되지 않았으면 신의 은택이 미침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태평하여 덕이 흡족하게 된 뒤에야 비로소 신의 공덕에 보답하는 것이다.
【疏】頌詩, 直述祭祀之狀, 不言得神之力, 但美其祭祀, 是報德可知.
송시頌詩제사祭祀의 상황만을 말하여 신의 공력을 얻었음을 말하지 않고 그 제사만을 찬미하지만 이것이 신의 덕에 보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此解頌者, 唯周頌耳, 其商․魯之頌則異於是矣.
여기에서 풀이한 ‘’은 주송周頌일 뿐이고 상송商頌노송魯頌은 이와는 다르다.
商頌, 雖是祭祀之歌, 祭其先王之廟, 述其生時之功, 正是死後頌德, 非以成功告神, 其體異於周頌也.
상송商頌은 비록 제사의 상황을 노래한 것이지만 선왕先王의 사당에서 제사를 하며 살아 있을 때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바로 이는 죽은 뒤에 공덕을 칭송하는 것이지 성공成功을 신에게 고하는 것은 아니니 그 체가 주송周頌과는 다르다.
魯頌, 主詠僖公功德, 纔如變風之美者耳, 又與商頌異也.
노송魯頌은 주로 희공僖公의 공덕을 노래하였으니, 기껏 변풍變風의 찬미함과 같을 뿐이어서 또 상송商頌과도 다르다.
頌者, 美詩之名, 王者不陳魯詩, 魯人不得作風, 以其得用天子之禮,
’은 찬미하는 시의 명칭인데, 왕자王者의 시를 악관樂官에 진열하지 않아 노인魯人의 시가 ‘국풍國風’이 될 수 없었으니, 천자天子의 예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故借天子美詩之名, 改稱爲頌, 非周頌之流也. 孔子以其同有頌名, 故取備三頌耳.
그리하여 천자天子를 찬미하는 시의 명칭을 빌려 이름을 ‘’으로 바꾼 것이니, 주송周頌과 같은 부류가 아니다. 그런데 공자孔子가 ‘’이라는 명칭을 공유共有하였기 때문에 삼송三頌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置之商頌前者, 以魯是周宗親同姓, 故使之先前代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