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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2)

모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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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旄丘 責衛伯也 狄人迫逐黎侯하여 黎侯寓于衛어늘 衛不能脩方伯連率之職하니 黎之臣子以責於衛也
모구旄丘〉는 위백衛伯을 책망한 시이다. 적인狄人여후黎侯를 쫓아내어 여후黎侯나라에 더부살이하였는데, 나라가 방백方伯연수連率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니, 나라의 신하가 나라를 책망한 것이다.
【箋】衛康叔之封爵稱侯어늘 今曰伯者 時爲州伯也 周之制 使伯佐牧하고 春秋傳曰 五侯九伯이라하니 侯爲牧也
위 강숙衛 康叔봉작封爵라고 칭해야 하는데, 여기서 ‘’이라 한 것은 당시에 ‘주백州伯’이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제도에 으로 하여금 을 보좌하게 하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4년에 “오후五侯구백九伯”이라고 하였으니, 이 된다.
○旄丘 音毛丘 前高後下曰旄丘 禮記云 十國以爲連하고 連有率 佐牧 州牧之
모구旄丘모구毛丘이다.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모구旄丘라고 한다. 는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10으로 삼고 를 둔다.”라고 하였다. 좌목佐牧주목州牧의 보좌이다.
【疏】‘旄丘(四章章四句)’至‘於衛’
의 [모구旄丘]에서 [어위於衛]까지
○正義曰:作旄丘詩者, 責衛伯也. 所以責之者, 以狄人迫逐黎侯, 故黎侯出奔來寄於衛, 以衛爲州伯, 當脩連率之職以救於己,
정의왈正義曰:〈모구旄丘〉의 를 지은 것은 위백衛伯을 책망한 것이다. 책망한 까닭은 적인狄人여후黎侯를 쫓아내었기 때문에 여후黎侯가 도망가서 나라에 와서 더부살이하면서 나라가 주백州伯이니 연수連率의 직분을 다하여 자기를 구해줄 것이라고 여기었다.
故奔之, 今衛侯不能脩方伯連率之職, 不救於己, 故黎侯之臣子, 以此言責衛, 而作此詩也. 狄者, 北夷之號, 此不斥其國.
그리하여 나라로 도망간 것인데, 지금 위후衛侯방백 연수方伯 連率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자기를 구해주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여후黎侯의 신하가 이 말로 나라를 책망하여 이 를 지은 것이다. 은 북쪽 오랑캐의 호칭이니, 이는 그 나라를 가리킨 것은 아니다.
宣十五年左傳, 伯宗數赤狄路氏之罪云 “奪黎氏地, 三也.” 服虔曰 “黎侯之國.” 此詩之作, 責衛宣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노 선공魯 宣公 15년에 백종伯宗적적 노씨赤狄 路氏의 죄를 따지면서 “여씨黎氏의 땅을 빼앗은 것이 세 번째 죄이다.”라고 하였는데, 복건服虔이 “여후黎侯의 나라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를 지은 것은 위 선공衛 宣公을 책망한 것이다.
宣公以魯桓二年卒, 至魯宣十五年, 百有餘歲, 卽此時, 雖爲狄所逐, 後更復其國, 至宣公之世, 乃赤狄奪其地耳, 與此不同.
위 선공衛 宣公노 환공魯 桓公 12년에 죽었으니, 노 선공魯 宣公 15년까지는 100여 년의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이때에 적인狄人에 의해 쫓겨났지만 뒤에 다시 나라를 회복하였고, 노 선공魯 宣公 때에 이르러서야 적적赤狄이 그 땅을 빼앗은 것이니, 여기와는 다르다.
彼奪地是赤狄, 此唯言狄人迫逐, 不必是赤狄也.
춘추春秋≫에서 땅을 뺏은 것은 적적赤狄인데 여기서는 적인狄人이 쫓아냈다고만 말했으니, 반드시 적적赤狄은 아니다.
【疏】言‘方伯連率’者, 王制云 “五國以爲屬, 屬有長. 十國以爲連, 連有帥. 三十國以爲卒, 卒有正, 二百一十國以爲州, 州有伯.”
방백연수方伯連率’는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5으로 삼으니 에는 을 두고, 10으로 삼으니 에는 를 두고, 30로 삼으니 에는 을 두고, 210로 삼으니 에는 을 둔다.”라고 하였는데,
注云 “凡長皆因賢侯爲之. 殷之州長曰伯, 虞夏及周皆曰牧.” 又曰 “千里之外設方伯.”
에서 “무릇 은 모두 어진 이기 때문에 으로 삼은 것이다. 나라는 을 ‘’이라 하고, 우하虞夏나라는 모두 ‘’이라 한다.”라고 하고, 또 “천리의 밖에 방백方伯을 둔다.”라고 하고,
公羊傳曰 “上無明天子, 下無賢方伯.” 方伯皆謂州長, 則此方伯亦州長矣.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는 “위로 밝은 천자天子가 없고, 아래로 어진 방백方伯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방백方伯은 모두 을 이르니, 그렇다면 여기의 방백方伯이다.
周謂之牧, 而云方伯者, 以一州之中爲長, 故云方伯. 若牧下二伯, 不得云方伯也.
나라에서는 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방백方伯’이라 한 것은 한 안의 이 되기 때문에 ‘방백方伯’이라 한 것이다. 만약 아래의 이백二伯이라면 방백方伯이라 할 수 없다.
【疏】‘連率’者, 卽‘十國以爲連, 連有帥.’是也. 不言‘屬’․‘卒’者, 擧其中也.
연수連率’는 ‘10으로 삼으니 에는 를 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과 ‘’을 말하지 않은 것은 중간을 들었기 때문이다.
王制雖殷法, 周諸侯之數與殷同, 明亦十國爲連, 此詩周事, 有連率之文. 左傳曰 “晉侯享公, 公請屬鄫.” 是周亦有連․屬.
예기禮記≫ 〈왕제王制〉는 나라의 이지만 나라 제후諸侯의 수는 나라와 같으니, 또한 10으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이 나라의 일이어서 ‘연수連率’의 글이 있는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4년에 “진후晉侯양공襄公을 접대할 때에 증국鄫國으로 삼기를 청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나라에도 이 있는 것이다.
此宣公爲二伯, 非方伯, 又非連率, 而責不能脩之者, 以連帥屬方伯, 若諸侯有被侵伐者, 使其連․屬救之.
선공宣公이백二伯이니 방백方伯이 아니고 연수連率도 아닌데 〈방백方伯연수連率의〉 직분을 다하지 못했다고 책망한 것은 연수連帥방백方伯속관屬官이고, 만약 침벌侵伐을 당한 제후諸侯가 있으면 으로 하여금 구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宣公爲州伯, 佐方伯, 今黎侯來奔之, 不使連率救己, 是‘不能脩方伯․連率之職’也. 此敍其責衛伯之由, 經皆責衛之辭也.
선공宣公주백州伯이 되어 방백方伯을 보좌하면서 지금 여후黎侯가 도망왔는데 연수連率를 시켜 자기를 구해주지 못했으니, 이것이 ‘방백方伯연수連率의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는 위백衛伯을 책망한 이유를 서술하였고, 은 모두 나라를 책망한 말이다.
經言叔․伯, 則責衛臣矣, 言責衛伯者, 以衛爲方伯, 故責其諸臣之廢事, 由君之不使, 亦是責衛伯也.
에서 말한 나라의 신하를 책망한 것인데, 위백衛伯을 책망한 것이라 한 것은 나라가 방백方伯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하들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군주가 시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책망한 것이니, 또한 위백衛伯을 책망한 것이다.
【疏】箋‘衛康’至‘爲牧’
의 [위강衛康]에서 [위목爲牧]까지
○正義曰:此解言衛伯之意, 故云‘衛康叔之封爵稱侯, 今曰伯者, 時爲州伯也. 周之制, 使伯佐牧’,
정의왈正義曰:여기서 위백衛伯이라 말한 뜻을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위 강숙衛 康叔봉작封爵라고 칭해야 하는데, 여기서 이라 한 것은 당시에 주백州伯이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제도에 으로 하여금 을 보좌하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牧是州牧, 伯佐之, 是州伯也. 知者, 以春秋傳曰 “五侯九伯”, 是侯爲牧, 伯佐之也.
주목州牧이고, 이 보좌한 것은 주백州伯이다. 이를 안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오후五侯구백九伯”이라 하였기 때문이니, 이는 이고, 이 보좌하는 것이다.
宣公爲侯爵, 見於春秋, 明矣. 今而本之康叔者, 以諸侯之爵, 皆因始封之君, 故本康叔也.
선공宣公작위爵位인 것은 ≪춘추春秋≫에 보이니 〈이 사실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강숙康叔을 근거로 하여 말한 것은, 제후諸侯작위爵位는 모두 처음 봉해진 군주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숙康叔을 근거로 하여 말한 것이다.
顧命云 “乃同召太保奭, 畢公, 衛侯.” 是爵稱侯也.
상서尙書≫ 〈고명顧命〉에 “이에 태보太保소공 석召公 奭필공畢公위후衛侯를 함께 불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를 작위로 칭한 것이다.
【疏】案世家自康叔至貞伯不稱侯, 頃侯賂夷王始爲侯. 又平王命武公爲公,
사기史記≫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를 살펴보면 강숙康叔으로부터 정백貞伯 때까지는 라고 칭하지 않았고, 경후頃侯이왕夷王에게 뇌물을 주어 처음으로 가 되었다고 하였고, 또 평왕平王무공武公을 명하여 으로 삼았다고 하였으니,
不恒以康叔言康叔之封者, 以康叔之後, 自爲時王所黜, 頃侯因康叔本侯, 故賂夷王而復之.
항상 강숙康叔봉작封爵을 가지고 강숙康叔을 말하지 않는 것은 강숙康叔의 뒤에 당시의 왕에 의해 쫓겨났다가 경후頃侯 때에 강숙康叔이 본래 였던 것을 따랐다. 그리하여 주 이왕周 夷王에게 뇌물을 주어 다시 를 회복한 것이다.
命武公爲公, 謂爲三公, 爵仍侯也. 此云‘責衛伯’, 何以知宣公非州牧爲方伯, 而以爲牧下二伯者,
무공武公을 명하여 을 삼은 것은 삼공三公이 됨을 이르나 작위는 그대로 이다. 에서 ‘위백衛伯을 책망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선공宣公주목州牧방백方伯이 아니고 아래의 이백二伯임을 안 것인가.
以周之州長曰牧, 以長一方言之, 得謂之方伯, 未有謂之州伯者.
나라에서 이라 한 것은 한 지방의 으로 말한 것이니, 그렇다면 방백方伯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주백州伯이라고 할 수는 없다.
此若是牧, 當言責衛牧, 今言責衛伯, 明非牧也, 故知爲二伯.
이것이 만약 이라면 마땅히 위목衛牧을 책망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데, 위백衛伯을 책망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분명 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백二伯임을 안 것이다.
【疏】言‘周之制 使伯佐牧’者, 以左傳所論周世之事, 前代必不然, 知指言周也.
주지제 사백좌목周之制 使伯佐牧’이라고 말한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논한 것은 나라 때의 일이고 전대前代에는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았으니 나라만 가리켜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此方伯連率皆是諸侯之身相爲長耳, 王制云 “使大夫監於方伯之國, 國三人.” 注云 “使佐方伯, 領諸侯者.”
여기의 방백方伯, 연수連率는 모두 제후諸侯의 신분으로 서로 이 된 것일 뿐이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서 “대부大夫로 하여금 방백方伯의 나라를 감찰하게 하되 한 나라에 3명을 둔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방백方伯을 보좌하여 제후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謂天子命人爲方伯, 國內大夫監之, 非此牧伯之類. 王制雖是殷法, 於周亦當然,
천자天子가 명한 사람을 방백方伯으로 삼고 나라 안의 대부로 감찰하게 한 것을 말하지, 여기서 말하는 목백牧伯의 부류가 아니다. 〈왕제王制〉는 비록 나라의 이지만 나라 때에도 당연히 그 법을 사용하였다.
故燕禮注云 “言諸公者, 容牧有三監.” 是鄭言周之牧國, 亦有三監也.
그리하여 ≪의례儀禮≫ 〈연례燕禮〉의 에 “여러 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삼감三監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정현鄭玄이 말한 나라 가운데 의 나라에도 삼감三監이 있는 것이다.
【疏】一解云 “蓋牧國在先王之墟有舊法者, 聖王因而不改, 周之牧國則無三監矣.”
다른 풀이에서 “아마도 의 나라가 선왕先王의 옛터에 있고, 그 옛 법도가 잘 보존되어서 성왕聖王이 이를 따르고 고치지 않은 것이니, 나라 가운데 의 나라에는 삼감三監이 없다.”라고 하였고,
太宰職云 “建其牧, 立其監.” 注云 “監謂公․侯․伯․子․男各監一國.” 又非牧下三監也.
주례周禮≫ 〈천관 태재직天官 太宰職〉에 “을 세우고 을 세운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이 각각 한 나라를 감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아래의 삼감三監이 아니다.
所引‘春秋傳曰’, 僖四年管仲對楚辭也. 曰 “昔召康公命我先君太公, ‘五侯九伯, 汝實征之, 以夾輔周室.’”
에서 인용한 ‘춘추전왈春秋傳曰’은 희공僖公 4년에 관중管仲나라의 사신에게 대답한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옛날 소강공召康公이 우리 선군 태공先君 太公에게 명하기를 ‘오후五侯구백九伯을 그대가 실로 정벌하여 주나라 왕실을 호위하고 보좌하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服虔云 “五侯, 公․侯․伯․子․男, 九伯, 九州之長.” 太公爲王官之伯, 掌司馬職, 以九伐之法征討邦國, 故得征之.
복건服虔이 “오후五侯이고, 구백九伯구주九州이다.”라고 하였으니, 태공太公왕관王官이 되어 사마司馬의 직무를 관장하여 구벌九伐으로 나라를 정벌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벌할 수 있었던 것이다.
鄭不然者, 以司馬征伐, 由王命乃行, 不得云‘汝實征之’. 且‘夾輔’者, 左右之辭也, 故因漢張逸受春秋異讀.
그러나 정현鄭玄이 다르게 여긴 것은 사마司馬의 정벌은 왕의 명령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대가 실로 정벌하라.’고 할 수 없고, 또 ‘협보夾輔’는 좌우左右에서 보좌한다는 말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나라의 장일張逸이 〈정현鄭玄에게서〉 ≪춘추春秋≫를 전수받을 때 달리 읽은 것이다.
【疏】鄭云 “五侯, 侯爲州牧也, 九伯, 伯爲州伯也. 一州一牧, 二伯佐之.” 太公爲王官之伯, 二人共分陝而治.
정현鄭玄이 “오후五侯주목州牧이고, 구백九伯주백州伯이다. 한 에 한 명의 이 있고, 두 명의 이 그를 보좌한다.”라고 하였으니, 태공太公왕관王官이 되어 두 사람이 함께 을 나누어 다스린 것이다.
自陝以東, 當四侯半, 一侯不可分, 故言五侯. 九伯則九人, 若主五等諸侯, 九州之伯, 是天子何異, 云夾輔之有也.
의 동쪽은 〈구후九侯인〉 네 명 반의 가 다스려야 하는데, 한 명의 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오후五侯’라고 한 것이다. 구백九伯은 아홉 사람인데, 만약 오등제후五等諸侯구주九州을 주관하는 것이라면, 이는 천자天子와 무슨 차이가 있으며, 어찌 호위하고 보좌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知侯爲牧伯者, 周禮上公九命作伯, 則東西, 上公爲之.
목백牧伯이 됨을 안 것은 ≪주례周禮≫ 〈춘관 대종백春官 大宗伯〉에 구명九命상공上公이 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동서 대백東西 大伯상공上公이 하는 것이다.
八命作牧, 非上公也, 公下唯侯耳. 且傳當言五牧, 而云五侯, 明牧於外曰侯.
팔명八命이 되니, 상공上公이 아니고 아래의 일 뿐이다. 또 에서 오목五牧이라고 해야 하는데 오후五侯라고 하였으니, 분명 을 나라 밖에서 칭할 때에는 라 한 것이다.
是牧本侯爵, 故曲禮下云 “九州之長, 入天子之國曰牧, 於外曰侯.” 是牧本侯爵也. 侯旣爲牧, 其佐自然伯矣.
은 본래 의 작위이므로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 下〉에서 “구주九州천자天子의 나라에 들어갈 때에는 ‘’이라 하고, 한 나라 밖에서는 ‘’라고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이 본래 의 작위인 것이다. 이고 보면 그 보좌는 자연 이다.
【疏】此衛侯爵而爲伯者, 鄭志答張逸云 “實當用伯, 而侯德適任之, 何嫌不可,
여기서 나라는 의 작위인데 이라고 한 것은 ≪정지鄭志≫에서 장일張逸에게 답하기를 “실제로 이어야 하고, 가 덕을 갖추어 적임자이니, 무엇을 혐의하여 하지 못하겠는가.
命人位以德, 古亦然也.” 以此言, 則宣公德適任伯, 故爲伯.
에 따라 관직을 명하는 것은 옛날에도 그러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을 살펴보면 선공宣公을 맡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에 이 된 것이다.
下泉序云 “思明王賢伯.” 經云 “四國有王, 郇伯勞之.” 傳曰 “郇伯, 郇侯.” 箋云 “文王之子爲州伯.”
조풍 하천曹風 下泉〉의 에서 “현명한 왕과 어진 을 생각한다.”라고 하고, 그 경문經文에서 “사방의 나라에 왕의 일 있거늘 순백郇伯이 수고하였네.”라고 하였는데, 전문傳文에서 “순백郇伯순후郇侯이다.”라고 하고, 에서 “문왕文王의 아들로 주백州伯이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則郇侯侯爵而有賢德, 亦爲伯者, 蓋其時多賢, 故郇侯亦爲伯.
그렇다면 순후郇侯의 작위로 어진 이 있어 역시 이 된 자이니, 이는 그 당시에 어진 인재가 많았으므로 순후郇侯이 된 것이다.
爲伯, 言其正法耳, 亦有侯爲伯, 伯爲牧者, 故周禮“八命作牧.” 注云 “謂侯伯有功德者, 加命得專征伐.” 謂侯與伯皆得爲牧也.
이 된 것은 그 정법正法만을 말하였을 따름이니, 또한 로서 이 된 자도 있고, 으로서 이 된 자도 있었다. 그리하여 ≪주례周禮≫ 〈춘관 대종백春官 大宗伯〉에서 “팔명八命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에서 “공덕功德이 있는 에게 명수命數를 올려주어 정벌을 전담할 수 있게 한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모두 이 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是以雜問志云 “五侯九伯, 選州中諸侯以爲牧, 以二伯爲之佐.” 此正法也. 若一州之中無賢侯, 選伯之賢者以爲牧, 是也.
이 때문에 ≪잡문지雜問志≫에서 “오후구백五侯九伯 안의 제후諸侯를 뽑아 으로 삼고, 이백二伯을 보좌로 삼는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정법正法이다. 만약 한 안에 어진 가 없으면 어진 을 뽑아 으로 삼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모구旄丘의 칡넝쿨 어찌 저리 멀리 뻗었는가
【傳】興也 前高後下曰旄丘 諸侯以國相連屬하여 憂患相及 如葛之蔓延相連及也 闊也
이다.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곳을 모구旄丘라고 한다. 제후諸侯의 나라가 서로 이어져 우환이 서로 미치는 것이 칡이 멀리 뻗어 서로 이어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은 ‘넓음’이다.
【箋】箋云 土氣緩이면 則葛生闊節이라 興者 喩此時衛伯 不恤其職이라 故其臣於君事亦疏廢也
전운箋云:토질이 부드러우면 칡이 잘 자라 마디가 넓게 뻗는다. 한 것은 이때에 위백衛伯이 그의 직분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신하가 군주의 일을 소홀히 하고 버려둔 것을 비유한 것이다.
叔兮伯兮 何多日也
이여 이여 어이 이리 오래 걸리나
【傳】日月以逝而不我憂
세월이 지나가는데도 우리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箋】箋云 叔 字也 呼衛之諸臣하여 叔與伯與 女期迎我君而復之어늘
전운箋云이다. 나라의 신하들을 불러 ‘이여, 이여, 너희가 우리 임금을 맞이하여 돌아가게 할 것을 기약하고는,
可來而不來하니 女日數何其多也 先叔後伯 臣之命不以齒
와야 하는데도 오지 않으니 너희는 어찌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라고 한 것이다. 을 먼저 말하고 을 뒤에 말한 것은 신하의 작명爵命은 나이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疏】‘旄丘’至‘多日也’
의 [모구旄丘]에서 [다일야多日也]까지
○毛以爲, 言旄丘之葛兮, 何爲闊之節兮, 以當相及, 以興方伯之國兮, 何爲使之連․屬兮, 亦當憂患相及.
모형毛亨은 ‘「모구旄丘의 칡이여, 어찌 그리 마디가 넓게 자랐는가.」라고 한 것이 칡이 멀리 뻗어 서로 미치는 것에 해당됨을 말하여, 「방백方伯의 나라여, 어찌 으로 구하게 하였는가.」라고 한 것 역시 우환이 서로 미치는 것임을 흥하였다.
今衛伯何爲不使連․屬救己而同其憂患乎, 又責其諸臣久不憂己, 言叔兮伯兮, 我處衛邑已久, 汝當早迎我而復之, 何故多日而不憂我哉.
지금 위백衛伯이 「어찌하여 으로 하여금 자기를 구하여 그 근심을 함께하지 않는가.」라고 하고, 또 여러 신하들이 오래도록 자기를 걱정해주지 않음을 책망하여, 「이여, 이여, 우리 임금이 위읍衛邑에 머문 지 오래되었으니, 너희는 일찍 우리 임금을 맞이하여 돌아와야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오래되어도 우리를 걱정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以爲, 言旄丘之葛兮, 何由誕之節兮, 由旄丘之土, 其氣和緩, 故其葛之生長皆闊節,
정현鄭玄은 ‘「모구旄丘의 칡이여 무슨 까닭으로 마디 넓게 자랐는가.」라고 한 것이 모구旄丘의 토양은 그 기운이 부드럽기 때문에 칡이 잘 자라서 모든 마디가 넓게 자란 것임을 말하여,
以興衛伯之臣兮, 何由廢其事兮, 由衛伯不恤其職, 故其臣於君事亦疏廢.
위백衛伯의 신하여 무슨 이유로 그 일을 폐기하는가.」라고 한 것이 위백衛伯이 그의 직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신하도 군주의 일을 소홀히 하고 버려둔 것임을 하였다.
臣旣廢事, 故責之云, 叔兮伯兮, 汝所期來迎我君而復之, 可來而不來, 何其多日數也.
신하가 일을 버려두었다. 그리하여 책망하여 「이여 이여, 너희는 우리 군주를 와서 맞이하여 돌아가게 할 것을 기약하였는데, 와야 하는데도 오지 않으니 너희는 어찌 이리 오래 걸리나.」라고 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疏】傳‘前高’至‘誕闊’
의 [전고前高]에서 [탄활誕闊]까지
○正義曰:釋丘云 “前高旄丘.” 李巡云 “謂前高後卑下.” 以前高後必卑下, 故傳亦言‘後下’.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구釋丘〉에 “앞이 높은 곳이 모구旄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순李巡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앞이 높으면 뒤가 반드시 낮기 때문에 에서도 ‘뒤가 낮은 곳’이라고 한 것이다.
傳以序云 “責衛不脩方伯連率之職.” 故以旄丘之葛闊節, 延蔓相及, 猶諸侯之國連屬, 憂患相及, 所以爲喩也.
에서 “나라가 방백 연수方伯 連率의 직분을 다하지 못함을 책망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모구旄丘의 칡넝쿨이 길게 자라 멀리 뻗어 서로 미친 것이 제후諸侯의 나라가 연이어져서 우환이 서로 미치는 것과 같다고 여겼으니, 이 때문에 비유로 삼은 것이다.
又解言誕節者, 誕, 闊也, 謂葛節之間長闊, 故得異葛延蔓而相連也.
또 ‘탄절誕節’의 을 해석하여 ‘넓음’이라고 한 것은 칡넝쿨 마디가 길게 뻗은 것을 이른다. 그리하여 길게 뻗은 다른 칡과 서로 연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疏】箋‘土氣’至‘疏廢’
의 [토기土氣]에서 [소폐疏廢]까지
○正義曰:箋以自此而下, 皆責諸臣, 將由疏廢而責之,
정의왈正義曰은 이로부터 이하는 모두 신하들을 책망한 것으로 여기었으니, 아마도 소홀히 하고 버려두었기 때문에 책망한 것이다.
故以此土氣和緩, 生物能殖, 故葛生闊節, 以喩君政解緩, 不恤其職, 故臣亦疏廢.
그리하여 토질이 부드러워 식물이 잘 번식하였기 때문에 칡이 자라 마디가 길게 뻗었다는 것으로, 군주가 정사에 해이하여 그 직분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신하도 소홀히 하고 버려둔 것임을 비유한 것이다.
君不恤職, 臣廢其事, 是‘不能脩方伯連率之職’也. 凡興者, 取一邊相似耳, 不須以美地喩惡君爲難也.
군주가 직분을 돌보지 않은 것과 신하가 그 일을 버려둔 것이 방백方伯연수連率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모든 은 한 부분이 서로 유사한 것을 취할 따름이니, 좋은 땅으로 나쁜 군주를 비유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다.
【疏】傳‘日月’至‘我憂’
의 [일월日月]에서 [아우我憂]까지
○正義曰:傳以黎臣責衛, 稱己來之久, 言日月以往矣, 而衛之諸臣不憂我, 故責之云 ‘何多日而不憂我’.
정의왈正義曰나라의 신하가 를 책망하여 자기 군주가 와서 머문 지 오래됨을 일컬어 ‘세월이 지나가는데도 나라의 신하들은 우리를 걱정해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어찌 오래되었는데도 우리를 걱정해주지 않는가.’라고 책망한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疏】箋‘叔伯’至‘以齒’
의 [숙백叔伯]에서 [이치以齒]까지
○正義曰:鄭以呼爲叔伯, 是責諸臣之辭. 以黎侯奔衛, 必至卽求復矣.
정의왈正義曰정현鄭玄은 ‘이여, 이여.’라고 부른 것을 신하들을 책망하는 말로 여기었다. 여후黎侯나라로 달아남에 반드시 이르면 즉시 돌아가게 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衛且處之二邑, 許將迎而復之, 卒違其言, 故責衛之諸臣, 汝期來迎我君而復之, 可來而不來, 汝之日數, 何其多也.
그런데 나라가 우선 두 읍에 머물게 하고 맞이하여 돌아가게 해줄 것을 허락하고는 끝내 그 약속을 어기었다. 그리하여 나라의 신하들을 책망하여 ‘너희가 우리 군주를 맞이하여 돌아가게 할 것을 기약하고는 와야 하는데도 오지 않으니, 너희는 어찌 이리 오래 걸리는가.’라고 한 것이다.
臣之爵命, 自有高下, 不以年齒長幼定尊卑也, 故先叔後伯.
신하의 작명爵命은 본래 높고 낮음이 있으니, 나이의 장유長幼존비尊卑를 정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을 먼저 말하고, 을 뒤에 말한 것이다.
何其處也 必有與也로다
어찌 이곳에 머무는가 필시 함께할 도리 있어서지요
【傳】言與仁義也
인의仁義를 함께함을 말한 것이다.
【箋】箋云 我君何以處於此乎 必以衛有仁義之道故也라하니 責衛今不行仁義
전운箋云:‘우리 군주는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머무는가. 반드시 나라에 인의仁義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지금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음을 책망한 것이다.
何其久也 必有以也로다
어찌 그리 오래 머무나요 필시 공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로다
【傳】必以有功德이라
필시 공덕功德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箋】箋云 我君何以久留於此乎 必以衛有功德故也라하니 又責衛今不務功德也
전운箋云:‘우리 군주가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오래 머무는가. 반드시 나라가 공덕功德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또 나라가 지금 공덕功德에 힘쓰지 않음을 책망한 것이다.
【疏】‘何其’至‘有以也’
의 [하기何其]에서 [유이야有以也]까지
○正義曰:黎之臣子, 旣責衛之諸臣, 故又本己之情而責之, 言我何其久處於此也, 必以衛有仁義之道與,
정의왈正義曰나라의 신하가 나라의 신하들을 책망하였다. 그리하여 또 자기의 마음에 근거하여 책망하기를 ‘우리 군주가 어찌 이곳에 오래 머무는가. 필시 나라에 인의仁義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我何其久留於此也, 必以衛有功德與我故也. 汝今何爲不行仁義, 不務功德, 而迎我復之乎.
우리 군주가 어찌 이곳에 오래 머무는가. 필시 나라가 공덕功德을 우리와 함께함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어찌하여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고, 공덕功德을 닦아 우리 군주를 맞이하여 돌아가게 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이다.
【疏】傳‘言與仁義’ 又曰‘必以有功德’
의 [언여인의言與仁義]와 또 [필이유공덕必以有功德]
○正義曰:此言‘必有’與下言‘必有’, 以二者別設其文, 故分爲仁義與功德.
정의왈正義曰:여기서 말한 ‘필유必有’와 아래에서 말한 ‘필유必有’ 이 두 가지는 글을 별도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인의仁義공덕功德으로 나누어 말한 것이다.
言‘仁義’者, 謂迎己復國, 是有仁恩, 且爲義事. 己得復國, 由衛之功, 是衛之德, 則仁義․功德一也.
인의仁義를 말한 것은 자기의 군주를 맞이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게 함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어진 은혜가 있는 것이고 또 의로운 일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군주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라의 공에 달려 있으니, 이것이 나라의 이다. 그렇다면 인의仁義공덕功德은 한가지이다.
據其心爲仁義, 據其事爲功德, 心先發而事後見, 故先言仁義, 後言功德也.
마음을 근거로 하면 인의仁義가 되고, 일을 근거로 하면 공덕功德이 되니, 마음에서 먼저 시작하여 일에서 뒤에 드러난다. 그리하여 먼저 ‘인의仁義’를 말하고, 뒤에 ‘공덕功德’을 말한 것이다.
言‘與’, 言‘以’者, 互文, ‘以’者, 自己於彼之辭, ‘與’者, 從彼於我之稱, 己望彼以事與己, 唯仁義功德耳,
’라고 하고 ‘’라고 한 것은 호문互文이니, ‘’는 자기쪽에서 상대를 대한 말이고, ‘’는 상대쪽에서 나를 대한 말이니, 자기가 상대에게 일로써 자기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의仁義공덕功德인 것이다.
故傳此‘言與仁義’, 不云‘必’, 由與自彼來. 下云‘必以有功德’, 是自己情, 故云‘必’也.
그리하여 에서 이것을 ‘인의仁義를 함께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고, ‘’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니, 는 상대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필시 공덕功德이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자기의 감정이다. 그리하여 ‘’이라고 한 것이다.
狐裘蒙戎이여 匪車 不東
흐트러진 여우 갖옷 입은 이 융거가 없나 왜 동으로 오지 않나
【傳】大夫 狐蒼裘 蒙戎 以言亂也 不東 言不來東也
대부大夫는 푸른 여우 갖옷을 입는다. 몽융蒙戎은 ‘흐트러짐’을 말한 것이다. 부동不東은 동쪽으로 오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箋】箋云 刺衛諸臣形貌蒙戎然하여 但爲昏亂之行하여 女非有戎車乎 何不來東迎我君而復之아하다
전운箋云나라의 신하들이 모습이 흐트러져 혼란스러운 행동만 함을 풍자하여 ‘너희는 융거戎車가 있지 않는가. 어찌 동쪽으로 와서 우리 군주를 맞이하여 돌아가게 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이다.
黎國在衛西로대 今所寓在衛東이라
나라는 나라의 서쪽에 있지만, 지금 더부살이하는 곳이 나라의 동쪽에 있는 것이다.
○蒙如字 戎如字이니 蒙戎 亂貌
은 본음대로 읽고, 도 본음대로 읽으니, 몽융蒙戎은 흐트러진 모습이다.
叔兮伯兮 靡所與同이로다
이여 이여 어려움 함께하지 않네
【傳】無救患恤同也
재난을 구제해주고 어려움을 함께함이 없는 것이다.
【箋】箋云 衛之諸臣行如是하여 不與諸伯之臣同하니 言其非之特甚이라
전운箋云나라의 신하들은 행동이 이와 같아서 여러 의 신하와는 다르니, 그들의 잘못이 매우 심함을 말한 것이다.
【疏】‘狐裘’至‘與同’
의 [호구狐裘]에서 [여동與同]까지
○毛以爲, 黎之臣子, 責衛諸臣服此狐裘, 其形貌蒙戎然, 但爲昏亂之行, 而不務行仁義也,
모형毛亨은 ‘나라의 신하가 나라의 신하들이 이렇게 여우 갖옷을 입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어지러운 행동만 하고 인의仁義를 행할 것을 힘쓰지 않음을 책망하여
豈非有戎車乎, 何爲不來東迎我君而復之乎, 言實有戎車, 不肯迎己,
어찌 융거戎車가 없겠는가. 어찌하여 동쪽으로 와서 우리 군주를 맞이하여 돌아가게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실제로 융거戎車가 있는데도 우리 군주를 맞이하려 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故又責之, 言叔兮伯兮, 爾無救患恤同之心迎我也.
그리하여 또 책망하기를 「이여, 이여. 너는 재난을 구제해주고 어려움을 같이하는 마음으로 우리 군주를 맞이하지 않는구나.」라고 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唯下二句爲異.
정현鄭玄은 아래 두 구절만 다르게 보았다.
【疏】傳‘大夫’至‘來東’
의 [대부大夫]에서 [내동來東]까지
○正義曰:以責衛諸臣, 不當及士, 故傳云‘大夫’也.
정의왈正義曰나라의 신하들을 책망함에 까지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에서 ‘대부大夫’라고 한 것이다.
玉藻云 “君子狐靑裘豹褎, 玄綃衣以裼之.” 靑․蒼色同, 與此一也.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군자君子는 표피 소매를 단 푸른색 여우 갖옷[청구靑裘]에 검은 비단 옷을 덧입는다.”라고 하였다. 은 같은 색이니 여기와 같다.
大夫之服, 有黃衣狐裘, 又狐貉之厚以居, 在家之服. 傳以此刺其徒服其服, 明非蜡祭與在家之服, 知爲狐蒼裘也.
대부大夫식민息民의 제사에 입는 복장은 황의黃衣에 여우 갖옷이 있고, 또 여우와 담비의 두터운 가죽옷을 입고 거처한다는 것은 집에 있을 때의 복장이다. 은 여기서 푸른색 여우 갖옷만을 입은 것으로 풍자하였으니 분명 사제蜡祭와 집에 있을 때의 복장이 아니므로 ‘푸른색 여우 갖옷’임을 안 것이다.
蒼裘所施, 禮無明文, 唯玉藻注云 “蓋玄衣之裘.” 禮無玄衣之名, 鄭見‘玄綃衣以裼之’, 因言蓋‘玄衣之裘’, 兼無明說, 蓋大夫士玄端之裘也.
푸른색 갖옷을 입는 경우는 에 분명한 글이 없고 ≪예기禮記≫ 〈옥조玉藻〉의 에서만 “아마도 현의玄衣의 갖옷일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현의玄衣라는 명칭이 없고, 정현鄭玄이 〈〈옥조玉藻〉에〉 ‘검은색 비단 옷을 덧입는다.’라고 한 것을 보고서 ‘아마도 현의玄衣의 갖옷일 것이다.’라고 하고 아울러 분명한 해설이 없으니, 아마도 대부大夫현단복玄端服의 갖옷일 것이다.
大夫士玄端裳雖異也, 皆玄裘象衣色, 故皆用狐靑, 是以玉藻注云 “君子大夫士衣.” 此傳亦云大夫, 當是大夫玄端之裘也.
대부大夫현단복玄端服은 비록 다르지만, 모두 검은 갖옷을 입는 것은 옷의 색을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여우의 푸른색을 사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옥조玉藻〉의 에서 “군자君子대부大夫의 옷이다.”라고 하고, 여기의 에서도 ‘대부大夫’라고 한 것이니, 당연히 이는 대부大夫현단복玄端服의 갖옷이다.
以蒙戎者, 亂之貌, 故云‘蒙戎以言亂也’, 左傳曰 “士蔿賦詩云 ‘狐裘蒙戎.’” 杜預云 “蒙戎, 亂貌.” 以此傳爲說.
몽융蒙戎’은 흐트러진 모습이다. 그리하여 ‘몽융蒙戎은 흐트러짐을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사위士蔿가 읊은 에 ‘흐트러진 여우 갖옷 입은 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가 “몽융蒙戎은 흐트러진 모습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不東’者, 言不來東迎我也, 故箋申之云‘黎國在衛西 今所寓在衛東’者.
부동不東’은 동쪽으로 와서 우리 군주를 맞이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에서 이를 설명하여 ‘나라는 나라의 서쪽에 있지만, 지금 더부살이하는 곳이 나라의 동쪽에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杜預云 “黎, 侯國. 上黨關縣有黎亭.” 是在衛之西也.
두예杜預가 “나라는 의 작위인 나라인데, 상당군 호관현上黨郡 壺關縣여정黎亭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나라의 서쪽에 있는 것이다.
瑣兮尾兮 流離之子로다
어려서만 어여쁜 올빼미 새끼로다
유리지자流離之子(≪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유리지자流離之子(≪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
【傳】瑣尾 少好之貌 流離 鳥也 少好長醜하니 始而愉樂이나 終以微弱이라
쇄미瑣尾는 어리고 예쁜 모습이다. 유리流離는 새인데, 어려서는 예쁘지만 자라서는 추해지니 처음에는 즐거워하지만, 끝내는 〈나라가〉 미약해질 것이다.
【箋】箋云 衛之諸臣 初有小善이나 終無成功하니 似流離也
전운箋云나라의 신하들이 처음에는 작은 선행이 있었으나 끝내는 공을 이룸이 없으니, 올빼미와 같은 것이다.
○流 本又作鶹 如字이니 爾雅云 鳥少美而長醜爲鶹鷅이라하고
는 ‘’로 되어 있는 도 있다. 는 본음대로 읽는데, ≪이아爾雅≫ 〈석조釋鳥〉에 “어려서는 예쁘지만 자라서는 추해지는 새가 유율鶹鷅이다.”라고 하고,
草木疏云 梟也 關西謂之流離하니 大則食其母라하니라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서 “인데, 관서關西에서는 유리流離라고 하니, 자라면 제 어미를 잡아먹는다.”라고 하였다.
叔兮伯兮 褎如充耳로다
이여 이여 복식服飾은 잘 갖추었구나
【傳】褎 盛服也 充耳 盛飾也 大夫褎然有尊盛之服이나 而不能稱也
는 화려한 복장이고, 충이充耳는 화려한 장식이다. 대부大夫가 화려하게 존귀한 복장은 갖추었으나 덕이 걸맞지 않은 것이다.
【箋】箋云 充耳 塞耳也 言衛之諸臣 顔色褎然하여 如見塞耳無聞知也하니 人之耳聾 恒多笑而已
전운箋云충이充耳는 귀막이이니, 나라의 신하들이 웃는 얼굴을 지어 마치 귀를 막아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함을 말하였으니, 귀먹은 사람은 항상 많이 웃기만 할 따름이다.
○褎 本亦作裒 鄭笑貌라하니라
는 ‘’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정현鄭玄은 ‘웃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疏】‘瑣兮’至‘充耳’
의 [쇄혜瑣兮]에서 [충이充耳]까지
○毛以爲, 黎之臣子責衛諸臣, 言瑣兮而少, 尾兮而好者, 乃流離之子也, 此流離之子, 少而美好, 長卽醜惡,
모형毛亨은 ‘나라의 신하가 나라의 신하들을 책망하여, 「작고 어리며 곱고 예쁜 것이 바로 올빼미 새끼인데, 이 올빼미 새끼가 어릴 때에는 예쁘지만 크면 바로 추악해진다.」고 말하여,
以興衛之諸臣, 始而愉樂, 終以微弱, 言無德自將, 不能常爲樂也,
나라의 신하들이 처음에는 즐거워하였지만 끝내는 미약해짐을 한 것이니, 이는 이 없으면서 잘난 체하여 항상 즐거울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故又責之, 言叔兮伯兮, 汝徒衣褎然之盛服, 汝有充耳之盛飾, 而無德以稱之也.
그리하여 또 책망하여 「이여, 이여, 너는 단지 훌륭하게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너는 화려한 장식인 충이充耳를 갖추었지만 그에 걸맞는 이 없다.」고 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以爲, 衛之諸臣, 初許迎黎侯而復之, 終而不能,
정현鄭玄은 ‘나라의 신하들이 처음에는 여후黎侯를 맞이하여 돌아가게 해줄 것을 허락하였는데,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故責之言流離之子, 少而美好, 長卽醜惡, 以興衛之臣子, 初有小善, 終無成功, 言初許迎我, 終不能復之,
그리하여 책망하여 「올빼미의 새끼가 어려서는 예쁘지만 크면 바로 추악해진다.」고 말하여, 나라의 신하들이 처음에는 작은 선행이 있었으나 끝내는 공을 이룸이 없음을 한 것이니, 이는 처음에는 우리 군주를 맞이할 것을 허락하였는데 끝내는 돌아가게 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故又疾而言之, 叔兮伯兮, 汝顔色褎褎然, 如似塞其耳無所聞知也. 恨其不納己, 故深責之.
그리하여 이를 미워하여 말하기를 「이여, 이여, 너의 얼굴은 웃음지어 마치 귀를 막아 알아듣지 못하는 듯이 하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자기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원망한 것이다. 그리하여 깊이 책망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疏】傳‘瑣尾’至‘微弱’
의 [쇄미瑣尾]에서 [미약微弱]까지
○正義曰:瑣者, 小貌, 尾者, 好貌, 故幷言‘小好之貌’. 釋訓云 “瑣瑣, 小也.” 釋鳥云 “鳥少美長醜爲鶹鷅.”
정의왈正義曰는 어린 모습이고, 는 예쁜 모습이다. 그리하여 아울러 ‘어리고 예쁜 모습’이라고 한 것이다. ≪이아爾雅≫ 〈석훈釋訓〉에 “쇄쇄瑣瑣는 어림이다.”라고 하고, ≪이아爾雅≫ 〈석조釋鳥〉에 “어려서는 예쁘지만 크면 추해지는 새가 유율鶹鷅이다.”라고 하였는데,
陸機云 “流離, 梟也, 自關西謂梟爲流離. 其子適長大, 還食其母.” 故張奐云 “鶹鷅食母”, 許愼云 “梟, 不孝鳥.” 是也.
육기陸機는 “유리流離(올빼미)인데, 관서關西에서는 유리流離라고 한다. 새끼가 자라 커지면 도리어 제 어미를 잡아먹는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장환張奐이 “유율鶹鷅은 어미를 잡아먹는다.”라고 한 것과 허신許愼이 “불효조不孝鳥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流與鶹, 蓋古今之字, 爾雅‘離’或作‘栗’. 傳以上三章, 皆責衛不納己之辭,
’와 ‘’는 고자古字금자今字이고, ≪이아爾雅≫에서는 ‘’가 ‘’로도 되어 있다. 은 위의 세 을 모두 나라가 자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책망한 말로 보았다.
故以此章爲黎之臣惡衛之諸臣, 言汝等今好而苟且爲樂, 不圖納我, 爾無德以治國家, 終必微弱也. 定本‘倫樂’作‘愉樂’.
그리하여 이 나라의 신하가 나라의 신하들을 미워한 것이라고 여겼으니, ‘너희들이 지금 좋아하고 구차하게 즐거워하여 우리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를 도모하지 않고, 너희는 나라를 다스리는 이 없으니 끝내는 미약해질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정본定本에는 ‘윤락倫樂’이 ‘유락愉樂’으로 되어 있다.
旄丘 四章이니 章四句
모구旄丘〉는 4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牧)[佐]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佐’로 번역하였다.
역주2 [十]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3 (乎)[何] : 교감기에 따라 ‘何’로 번역하였다.
역주4 (二伯)[大伯] : 교감기에 따라 ‘大伯’으로 번역하였다.
역주5 (蔓延)[延蔓]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延蔓’으로 번역하였다.
역주6 息民 : 수고한 농부를 쉬게 한다는 뜻이다. ≪禮記≫ 〈郊特牲〉에서 “〈蜡祭에서〉 黃衣를 입고 黃冠을 쓰고 제사 지내는 것은 농부를 쉬게 함이다.[黃衣黃冠而祭 息田夫]”라고 하였는데, 注에서 息田夫는 息民의 뜻이라고 하였다. ≪禮記正義 26卷≫
역주7 (壼)[壺]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壺’로 번역하였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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