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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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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采蘋 大夫妻能循法度也 能循法度 則可以承先祖共祭祀矣
채빈采蘋〉은 대부大夫법도法度를 잘 따른 것을 읊은 시이다. 법도法度를 잘 따르면 선조先祖를 이어 섬겨서 제사祭祀를 모실 수 있다.
【箋】女子十年이면 不出하고 姆敎婉娩聽從하고 執麻枲하며 治絲繭하며 織紝組紃하며
여자가 10세가 되면 규문 밖을 나가지 아니하고, 여스승이 상냥한 말씨와 태도 및 순종하고 따르는 것을 가르치고, 삼베와 모시 길쌈 하게 하고, 누에 치고 생사 뽑게 하고, 비단 짜고 끈을 꼬게 하며,
學女事하여 以共衣服하고 觀於祭祀하여 納酒漿籩豆葅醢하여 禮相助奠하고 十有五而笄하고 二十而嫁니라
여인의 일을 배워 의복을 공급하도록 하고, 제사祭祀를 살펴 술과 장, 및 절인 나물과 젓갈을 올려서 로 어른을 도와서 제수 올리는 것을 돕게 하고, 15세가 되면 계례笄禮를 치르고, 20세가 되면 시집을 간다.
此言能循法度者 今旣嫁爲大夫妻하여 能循其爲女之時所學所觀之事하여 以爲法度
여기서 말한 ‘능순법도能循法度’는 지금 시집가서 대부大夫가 되어 시집오기 전에 배우고 본 일을 잘 따라서 법도法度로 삼은 것이다.
○蘋 韓詩云 沈者曰蘋이요 浮者曰藻라하고 本或作供하니 注同이라
은 ≪한시韓詩≫에 “물에 잠겨 있는 것은 ‘’이고 떠 있는 것은 ‘’이다.”라고 하였다.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도 같다.
字林云女師也라하고 鄭云 婦人五十 無子하면 出不復嫁하고 以婦道敎人하니 若今時乳母也라하니라
는 ≪자림字林≫에 “여사女師이다.”라고 하고, 정현鄭玄은 “부인婦人으로서 50세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여 쫓겨났으나 다시 시집가지 않아 사람들에게 부인의 도리를 가르칠 수 있으니, 지금의 유모乳母와 같다.”라고 하였다.
本亦作繭이라 繒帛之屬이요 線也 絛也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은 비단 종류이고, 는 실이며, 은 끈이다.
【疏】‘采蘋(三章章四句)’至‘祭祀矣’
의 [채빈采蘋]에서 [제사의祭祀矣]까지
○正義曰:作采蘋詩者, 言大夫妻能循法度也, 謂爲女之時所學所觀之法度, 今旣嫁爲大夫妻, 能循之以爲法度也.
정의왈正義曰:〈채빈采蘋〉의 를 지은 것은 대부大夫법도法度를 잘 따름을 말한 것이니, 시집오기 전에 배우고 본 법도를 지금 시집가서 대부大夫가 되어 법도法度로 삼아서 잘 따름을 말한 것이다.
言旣能循法度, 卽可以承事夫之先祖, 供奉夫家祭祀矣, 此謂已嫁爲大夫妻, 能循其爲女時事也.
법도法度를 잘 따른다고 했으니, 남편의 선조先祖를 이어 섬겨서 남편 집의 제사祭祀를 받들어 모실 수 있으니, 이것이 시집가서 대부大夫가 되어 시집오기 전에 배운 것을 잘 따른다는 것이다.
經所陳在父母之家作敎成之祭, 經序轉互相明也.
에서 부모父母의 집에 있을 때 교성敎成의 제사(여자의 가르침이 이루어졌을 때 지내는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으니, 에 서로 번갈아 밝힌 것이다.
【疏】箋云‘子’至‘法度’
의 [여자女子]에서 [법도法度]까지
○正義曰:從‘二十而嫁’以上, 皆內則文也. 言‘女子十年不出’者, 對男子十年出就外傅也.
정의왈正義曰:‘이십이가二十而嫁’ 이상은 모두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글이다.‘여자십년불출女子十年不出’은 ‘남자男子가 10세가 되면 바깥 스승에게로 나간다.’는 것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內則注云 “婉謂言語也, 娩之言媚也, 媚謂容貌也.” 則婉謂婦言, 娩謂婦容, 聽從者, 聽受順從於人, 所謂婦德也.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에 “은 말투이고, 은 곱다는 것이니, 곱다는 것은 용모를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부언婦言이고, 부용婦容을 말한 것이며, 청종聽從은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니, 이른바 부덕婦德이다.
‘執麻枲’者, 執治緝績之事. 枲, 麻也, 釋草云 “枲, 麻.” 孫炎曰 “麻 一名枲.”是也.
집마시執麻枲’는 실을 잣고 길쌈하는 일이다. 이니,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일명 시一名 枲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治絲繭’者, 繭則繅之, 絲則絡之. ‘織紝組紃’者, 紝也․組也․紃也三者, 皆織之, 服虔注左傳曰 “織紝, 治繒帛.”者, 則紝謂繒帛也.
치사견治絲繭’은 은 고치를 켜는 것이고, 는 고치실을 다듬는 것이다. ‘직임조순織紝組紃’은 세 가지는 모두 베를 짜는 것인데, 복건服虔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직임織紝은 비단을 짜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은 짠 비단을 말한다.
內則注云 “紃, 絛也.” 組亦絛之類, 大同小異耳.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에서 “은 꼰 끈이다.”라고 하였는데 도 끈의 종류이니, 서로 대동소이하다.
‘學女事’者, 謂治葛縫線之事, 皆學之所以供衣服, 是謂婦功也. 此已上謂女所學四德之事.
학여사學女事’는 칡을 손질하거나 바느질하는 일을 말하니, 모두 배워서 의복을 공급하는 것으로 이것이 부공婦功이다. 이 이상은 여인이 배우는 사덕四德의 일을 말한 것이다.
【疏】又觀於父母之家祭祀之事, 納酒漿․籩豆․葅醢之禮, 酒漿及籩豆, 皆連上納文, 謂當薦獻之節, 納以進尸.
부모父母의 집에서 제사祭祀의 일에 술과 장, , 절인 채소와 젓갈을 드리는 를 살펴보는데, 술과 장, 는 모두 앞의 ‘’자와 이어져 있으니, 천헌薦獻하는 절차에서 신주神主에게 받들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虞夏傳曰 “納以敎成.” 鄭云 “謂薦獻時.” 引此納酒漿以下證之.
상서대전尙書大傳≫ 〈우하전虞夏傳〉에서 “교성敎成의 제사에 드린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은 “천헌薦獻할 때를 이른다.”라고 하고, 이 ‘납주장納酒漿’ 이하의 글을 인용하여 증명하였다.
鄭知納謂薦獻者, 內則云‘納酒漿’, 與‘納以敎成’文同, 葅醢以薦,
정현鄭玄이 ‘’이 ‘천헌薦獻’임을 안 것은 ≪예기禮記≫ 〈내칙內則〉에서 말한 ‘납주장納酒漿’이 ‘납이교성納以敎成’의 글과 같고, 절인 채소와 젓갈을 올리는 것이 이고,
酒漿以獻, 納者進名, 故知薦獻之時也. 獻無漿而言之者, 所以協句也.
술과 장을 올리는 것이 이고, 은 올린다는 명칭이기 때문에 천헌薦獻하는 때임을 안 것이다. 그런데 하는 것에 漿이 없는데도 ‘’이라고 한 것은 운을 맞춘 것이다.
‘籩豆葅醢’, 葅醢在豆, 籩盛脯羞, 皆薦所用也, 籩不言所盛, 文不備耳.
변두저해籩豆菹醢’에서 절인 채소와 젓갈은 에 담고, 에는 서직黍稷과 말린 포를 담는데, 모두 할 때 쓰는 것이다. 그런데 에 담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
少牢․特牲, 皆先薦後獻, 故鄭亦云‘薦獻時’, 此先酒後葅醢者, 便文言之.
의례儀禮≫의 〈소뢰궤식례少牢饋食禮〉와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에서 모두 을 먼저 쓰고 을 뒤에 썼으므로 정현鄭玄도 ‘천헌시薦獻時’라 한 것이니, 여기서 술을 앞에 쓰고 절인 채소와 젓갈을 뒤에 쓴 것은 편한 대로 써서 말한 것이다.
‘禮相助奠’者, 言非直觀薦獻, 又觀祭祀之相佐助奠設器物也. 觀之, 皆爲婦當知之, 此上謂所觀之事也.
예상조전禮相助奠’은 천헌薦獻하는 것만 살펴보는 것이 아니고, 또 제사祭祀에서 잔을 올리고 기물을 진설하는 것을 돕는 것을 살펴봄을 말한 것이다. 살피는 것은 모두 부인이 알아야 하니, 이것이 위에서 말한 살펴보는 일이다.
【疏】十五許嫁, 故笄, 未許嫁, 二十而笄, 二十而嫁, 歸於夫家也. 鄭引此者, 序言‘能循法度’, 明先有法度, 今更循之, 故引此.
15세에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므로 계례笄禮를 치르고,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면 20세에 계례笄禮를 치르니, 20세에 시집을 가면 남편 집으로 간다. 정현鄭玄이 이것을 인용한 것은 에서 ‘능순법도能循法度’를 말하였으니, 분명 〈시집오기 전에〉 먼저 법도法度가 있었는데 지금 다시 따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인용한 것이다.
是先有法度之事, 乃言所循之時, 故疊. 序云‘能循法度’者, 爲今嫁爲大夫妻, 能循其爲女之時所學所觀之事, 以爲法度也.
이는 먼저 법도法度의 일이 있었는데 이에 따르는 때를 말하였으니, 그리하여 중첩된 것이다. 에서 말한 ‘능순법도能循法度’는 지금 시집가서 대부大夫가 되어 시집오기 전에 배우고 본 일을 잘 따라 법도法度를 삼은 것을 말한 것이다.
此女之四德, 十年以後, 傅姆當敎, 至於先嫁三月, 又重敎之.
여자女子사덕四德은 10세 이후에 여스승이 당연히 가르치고 시집가기 3개월 전에 또 거듭 가르친다.
此引內則論十年之後, 下箋引昏義論三月之前, 皆是爲女之時法度, 二注乃具也.
여기서는 ≪예기禮記≫ 〈내칙內則〉에서 여자女子가 10세 이후에 배우는 일을 논한 글을 인용하였고, 아래 에서는 ≪예기禮記≫ 〈혼의昏義〉에서 시집가기 3개월 전에 배우는 일에 대한 글을 인용하였는데, 모두 시집가기 전의 법도法度이니 두 에서 비로소 갖추어졌다.
鄭知經非正祭者, 以昏義敎成之祭, 言“芼之以蘋藻.” 此亦言蘋藻, 故知爲敎成祭也.
정현鄭玄경문經文〈에서 말한 것이〉 정제正祭가 아님을 안 것은 ≪예기禮記≫ 〈혼의昏義〉에서 교성敎成의 제사에 “나물국은 빈조蘋藻를 사용한다.”라고 하고, 여기서도 빈조蘋藻를 말하였다. 그리하여 교성敎成의 제사임을 안 것이다.
定本云 “姆敎婉娩.” 勘禮本亦然, 今俗云 “傅姆敎之.” 誤也. 又‘十有五而笄’上無‘女子’二字, 有者亦非.
정본定本에 “여스승이 상냥한 말씨와 태도를 가리킨다.”라고 하였는데, 예문禮文을 살펴보면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지금 세속世俗에서 “부모傅姆가 가리킨다.”고 하였으니, 잘못된 것이다. 또 ‘십유오이계十有五而笄’의 위에 ‘여자女子’ 두 글자가 없는데, 있는 것 또한 옳지 않다.
于以采 南澗之濱이로다
네가래를 뜯네 남쪽 시냇가에서
于以采藻 于彼行潦로다
마름을 뜯네 저 길가 도랑에서
蘋(≪毛詩名物圖說≫)                    藻(≪毛詩名物圖說≫) 蘋(≪毛詩名物圖說≫) 藻(≪毛詩名物圖說≫)
【傳】蘋 大蓱也 涯也 聚藻也 行潦 流潦也
은 큰 부평이고, 은 물가이다. 취조聚藻(붕어마름)이고, 행료行潦는 길가의 도랑이다.
【箋】箋云 古者婦人先嫁三月 어든 敎于公宮하고 祖廟旣毁어든 敎于宗室하니 敎以婦德婦言婦容婦功이라
전운箋云:≪예기禮記≫ 〈혼의昏義〉에 “옛날에 부인婦人이 시집가기 3개월 전에 선조先祖의 신주가 사당에 아직 모셔져 있으면 공궁公宮에서 가르치고, 선조先祖의 신주가 남아 있지 않으면 종실宗室에서 가르쳤는데, 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을 가르쳤다.
敎成之祭 牲用魚하고 芼用蘋藻하니 所以成婦順也라하니 此祭 女所出祖也
교성敎成에 희생은 를 사용하고 〈국에 넣는〉 나물은 빈조蘋藻를 사용하니 부순婦順의 가르침을 마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는 여인의 선조先祖에게 제사하는 것이다.
法度莫大於四敎 是又祭以成之 故擧以言焉
법도法度사교四敎보다 큰 것이 없고 이에 또 제사하여 가르침을 마친다. 그리하여 거론하여 말한 것이다.
蘋之言賓也 藻之言澡也 婦人之行 尙柔順하고 自絜淸이라 故取名以爲戒
의 뜻은 복종함이고, 의 뜻은 씻음이니, 부인婦人의 행실은 유순함과 스스로 청결히 함을 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이 이름을 취하여 경계로 삼은 것이다.
○濱 涯也 水菜也 本又作萍하고 一本作苹이라 本亦作厓
은 물가이고, 는 물에서 나는 나물이다.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고,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는 ‘’로 되어 있는 도 있다.
于以盛之 維筐及筥로다
이를 담았네 모난 바구니 둥근 광주리에
于以湘之 維錡及釜로다
이를 삶았네 세발솥과 가마솥에
錡(≪毛詩品物圖攷 附錄≫)錡(≪毛詩品物圖攷 附錄≫)
釜(≪毛詩品物圖攷 附錄≫)釜(≪毛詩品物圖攷 附錄≫)
【傳】方曰筐이요 圓曰筥 亨也 釜屬이니 有足曰錡 無足曰釜
네모난 것이 이고, 둥근 것이 이다. 은 삶는 것이다. 는 가마솥의 종류이니, 발이 있는 것이 이고, 없는 것이 이다.
【箋】箋云 亨蘋藻者於魚湆之中이니 是鉶羹之芼
전운箋云빈조蘋藻를 생선 국물에 넣어 끓인 것이니, 이것이 고기 넣은 나물국이다.
○錡 三足釜也 本又作烹하니 煮也 汁也 鄭云 三足兩耳有蓋 和羹之器라하니라
는 세 발 가마솥이다.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으니, 끓이는 것이다. 은 국물이다. 정현鄭玄은 “세 발에 두 귀가 달리고 뚜껑이 있는데, 국을 끓이는 기구器具(솥)이다.”라고 하였다.
于以奠之 宗室牖下로다
이를 올리었네 종실宗室의 들창 아래에
【傳】奠 置也 宗室 大宗之廟也 大夫士祭於宗廟 奠於牖下
은 ‘차림’이다. 종실宗室대종大宗의 사당이니, 대부大夫종묘宗廟에서 제사 지낼 때 들창 아래에 제물을 차린다.
【箋】箋云 牖下 戶牖閒之前이라 祭不於室中者 凡昏事 於女禮設几筵於戶外하니 此其義也與인저
전운箋云유하牖下는 지게문과 들창 사이의 앞이다. 제사를 안에서 지내지 않은 것은 혼사昏事에서 딸에게 예를 행할 때에 지게문 밖에 궤연几筵을 설치하니, 이것이 그 뜻일 것이다.
宗子主此祭로되 維君使有司爲之
종자宗子가 이 제사를 주관하는데, 군주君主만은 유사有司가 담당하게 한다.
誰其尸之 有齊季女로다
주관하는 이 누구인가 공경스런 어린 아씨라네
【傳】尸이요 少也 蘋藻 薄物也 澗潦 至質也 筐筥錡釜 陋器也 少女 微主也
는 ‘주관함’이고, 는 ‘공경함’이고, 는 ‘어림’이다. 빈조蘋藻는 흔한 물건이고, 는 지극히 질박한 것이고, 는 흔한 기물器物이고, 소녀少女는 어린 주관자이다.
古之將嫁女者 必先禮之於宗室하니 牲用魚하고 芼之以蘋藻
옛날에 시집가려는 여인은 반드시 먼저 종실宗室를 행하니, 희생은 생선을 쓰고 국은 빈조蘋藻로 끓였다.
【箋】箋云 主設羹者季女이니 則非禮也 女將行 父禮之而俟迎者하니 蓋母薦之 無祭事也
전운箋云:국의 진설을 주관한 것이 계녀季女이니, 가 아니다. 여인이 시집갈 때, 아버지가 예를 행하고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오기를 기다리니, 어머니는 제수를 올리기만 하고 제사祭事 지냄이 없기 때문이다.
主婦設羹이어늘 敎成之祭 更使季女者 成其婦禮也
제례祭禮에는 주부主婦가 국을 진설하는데, 교성敎成의 제사에서 바꾸어 계녀季女에게 주관하게 한 것은 부례婦禮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季女不主魚하니 魚俎實男子設之 其粢盛 蓋以黍稷이라
계녀季女는 생선 올리는 것을 주관하지 않으니, 생선을 담은 남자男子가 진설하는 것이다. 자성粢盛은 아마도 서직黍稷일 것이다.
【疏】‘于以采蘋’至‘季女’
의 [우이채빈于以采蘋]에서 [계녀季女]까지
○正義曰:三章勢連, 須通解之也. 大夫之妻, 將行嫁, 欲爲敎成之祭.
정의왈正義曰:세 문세文勢가 이어져 있으니, 연결지어 이해해야 한다. 대부大夫가 시집가려 할 때 교성敎成를 지내려는 것이다.
言往何處采此蘋菜, 於彼南澗之厓采之, 往何處采此藻菜, 於彼流潦之中采之. ‘南澗’言‘濱’, ‘行潦’言‘彼’, 也.
어디에서 이 네가래를 뜯었는가. 저 남쪽 산골 시냇가에서 뜯었으며, 어디에서 이 마름나물 뜯었는가. 저 길가 도랑에서 뜯었다. ‘남간南澗’에서 ‘’이라고 하고 ‘행료行潦’에서 ‘’라 한 것은 〈를〉 호언互言한 것이다.
旣得此菜, 往何器盛之, 維筐及筥盛之. 旣盛此菜而還, 往何器烹煮之, 維錡及釜之中煮之也.
이 나물 뜯었으니, 어느 그릇에 담았는가. 모난 광주리와 둥근 광주리에 담았다. 이 나물 담아 왔으니, 어느 솥에 삶았는가. 세 발 솥과 가마솥에 삶았다.
旣煮之爲羹, 往何處置設之, 於宗子之室戶外牖下設之. 當設置之時, 使誰主之, 有齊莊之德少女主設之.
삶아 국을 끓였으니, 어디에 진설했는가. 종자 실宗子 室의 지게문 밖 들창 아래에 진설하였다. 진설할 때에 누구에게 주관하게 하였는가. 엄숙하고 공경스런 을 지닌 어린 아씨가 주관하여 진설하였음 말한 것이다.
【疏】傳‘蘋大’至‘流潦’
의 [빈대蘋大]에서 [유료流潦]까지
○正義曰:釋草云 “苹, 萍, 其大者蘋.” 舍人曰 “苹, 一名萍.” 郭璞曰“今水上浮蓱也, 江東謂之薸, .”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초釋草〉에 “은 부평이니, 큰 것이 이다.”라고 하였는데, 사인舍人은 “일명 평一名 萍이다.”라고 하고, 곽박郭璞은 “지금 물 위의 부평이니, 강동江東에서는 라고 하며, 〈는〉 이다.”라고 하였다.
左傳曰 “蘋蘩蘊藻之菜”, 蘊, 聚也. 故言藻聚. 藻, 陸機云 “藻, 水草也, 生水底.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말한 “빈번온조지채蘋蘩蘊藻之菜”의 은 모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인 마름[조취藻聚]’이라고 한 것이다. 육기陸機는 “수초水草이니 물밑에서 자란다.
有二種, 其一種葉如雞蘇, 莖大如箸, 長四五尺. 其一種莖大如釵股, 葉如蓬蒿, 謂之聚藻.” 然則藻聚生, 故謂之聚藻也.
두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잎이 계소雞蘇와 같고 줄기의 굵기는 젓가락과 같으며 길이가 4, 5척이다. 다른 한 종류는 줄기의 굵기는 비녀다리 같고 잎이 쑥과 같은데 취조聚藻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는 모여 자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취조聚藻’라고 한 것이다.
行者, 道也. 說文云 “潦, 雨水也.” 然則行潦, 道路之上流行之水.
은 길이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는 빗물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행료行潦는 길가에 흐르는 물이다.
【疏】箋‘古者’至‘爲戒’
의 [고자古者]에서 [위계爲戒]까지
○正義曰:‘成婦順’於上, 皆昏義文. 引之者, 以此經陳敎成之祭, 以昏義亦爲敎成之祭, 故引之.
정의왈正義曰:‘성부순成婦順’ 이상은 모두 ≪예기禮記≫ 〈혼의昏義〉의 글이다. 이를 인용한 것은 이 에서 교성敎成를 말하였기 때문이고, ≪예기禮記≫ 〈혼의昏義〉에서도 교성敎成의 제사로 여겼기 때문에 이것을 인용한 것이다.
欲明敎之早晩及其處所, 故先言先嫁三月, 祖廟未毁, 敎於公宮, 祖廟旣毁, 敎於宗室,
가르치는 시기와 장소를 밝히고자 하였으므로, 먼저 시집가기 3개월 전에 조상의 사당이 아직 남아 있으면 공궁公宮에서 가르치고, 조상의 사당이 남아 있지 않으면 종실宗室에서 가르친다고 말한 것이며,
旣言其處, 又說所敎之事, 故言敎以婦德․婦言․婦容․婦功,
장소를 말하고 나서 가르치는 내용을 말하고자 하였으므로, 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을 가르친다고 말한 것이고,
旣敎之三月, 成則設祭, 故言敎成之祭, 牲用魚, 芼之以蘋藻, 爲此祭所以成婦順也. 事次皆爲敎成之祭, 故具引之.
3개월 동안 가르쳐 가르침이 이루어지면 를 지내므로, 교성敎成에 희생은 생선을 쓰고 국은 빈조蘋藻로 끓이니 이 를 지내는 것은 부순婦順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의 순서가 모두 교성敎成에서 완성되므로, 모두 인용한 것이다.
必先嫁三月, 更敎之以四德, 以法度之大, 就尊者之宮, 敎之三月, 一時天氣變, 女德大成也. 敎之在宮, 祭乃在廟也.
반드시 시집가기 3개월 전에 다시 사덕四德을 가르치는 것은 법도法度가 중요하기 때문이고, 존자尊者에 보내 3개월 동안 가르치는 것은 한 절기에 천기天氣가 변하고 여덕女德이 크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에서 하는 것은 를 바로 사당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疏】知‘此祭 祭女所出祖’者, 以其言‘祖廟旣毁’, 明未毁, 祭其廟也.
이 제사가 여인의 선조에게 지내는 것임을 안 것은 ‘조묘기훼祖廟旣毁’를 말했기 때문이니, 사당이 남아 있으면 사당에서 제사를 지냄이 분명하다.
與天子諸侯同高祖, 祭高祖廟, 同曾祖, 祭曾祖廟, 故昏義注云 “祖廟, 女所出之祖也.”
천자天子제후諸侯고조高祖가 같으면 고조高祖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증조曾祖가 같으면 증조曾祖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혼의昏義〉의 에서 “조묘祖廟는 여인의 선조의 사당이다.”라고 한 것이다.
宗室, 宗子之家也. 然則大宗之家, 百世皆往, 宗子尊不過卿大夫, 立三廟․二廟而已, 雖同曾高, 無廟可祭, 則五屬之外同告於壇,
종실宗室종자宗子의 집이다. 그렇다면 대종大宗의 집에는 백세百世토록 모두 가지만, 종자宗子의 지위가 이나 대부大夫에 불과하다면 3나 2를 세울 뿐이니, 비록 증조曾祖고조高祖가 같을지라도 를 지낼 사당이 없으니, 오복五服을 입는 친속 외에는 모두 에 고한다.
故昏義注云 “若其祖廟已毁, 則爲壇而告焉.” 是也.
그리하여 ≪예기禮記≫ 〈혼의昏義〉의 에서 “만약 조묘祖廟가 남아 있지 않으면 을 만들어 고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以魚爲牲者, 鄭云 “魚爲俎實, 蘋藻爲羹菜.” 祭無牲牢, 告事耳, 非正祭也.
생선을 희생으로 썼다는 것은 정현鄭玄이 “생선은 에 담고, 빈조蘋藻로 나물국을 끓인다.”라고 하였다. 제사에 생뢰牲牢가 없으니 일을 고한 것이지 정제正祭가 아니다.
又解此大夫妻能循法度, 獨言敎成之祭者, 以法度莫大於四敎, 四德旣就, 是又祭以成之, 法度之大者, 故詩人擧以言焉.
또 ‘대부처 능순법도大夫妻 能循法度’를 풀이하면서 교성敎成만을 말한 것은 법도法度사교四敎보다 큰 것이 없는데 사덕四德이 갖추어지면 를 지내 완성하니, 이것이 법도法度의 큰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詩人이 거론하여 말한 것이다.
又解祭不以餘菜, 獨以蘋藻者, 蘋之言賓, 賓, 服也, 欲使婦人柔順․服從, 藻之言澡, 澡, 浴也, 欲使婦人自絜淸,
를 풀이하면서 다른 나물로 하지 않고 빈조蘋藻로 풀이한 것은 의 뜻은 이고 은 복종하는 것이니, 부인婦人으로 하여금 유순柔順하고 복종服從하게 하려 해서이고, 의 뜻은 이고 는 몸을 씻음이니, 부인婦人으로 하여금 스스로 청결하게 하려 해서이다.
故云 “婦人之行 尙柔順自絜淸 故取名以爲戒” 左傳曰 “女贄不過榛․栗․棗․脩, 以告虔.”
그리하여 “부인지행 상유순자결청婦人之行 尙柔順自絜淸 고취명이위계故取名以爲戒”라고 한 것이다.≪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여인의 폐백은 개암나무, 밤, 대추, 육포에 불과하니, 이로써 공경함을 고한다.”라고 하였는데,
言‘以告虔’, 取早起․戰栗․脩治法度․虔敬之義也, 則此亦取名爲戒, 明矣. 昏義注云 “魚蘋藻皆水物, 陰類.”者, 義得兩通.
‘공경함을 고한다.’라고 한 것은 일찍 일어남, 두려워함, 법도法度를 잘 지킴, 공경함의 뜻을 취한 것이니, 이 또한 이름을 취하여 경계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예기禮記≫ 〈혼의昏義〉의 에 “생선과 빈조蘋藻는 모두 수산물水産物이니 음류陰類이다.”라고 한 것은 두 가지 다 뜻이 통한다.
【疏】傳‘方曰筐’至‘曰釜’
의 [방왈광方曰筐]에서 [왈부曰釜]까지
○正義曰:此皆爾雅無文. 傳以當時驗之, 以錡與釜連文, 故知釜屬.
정의왈正義曰:이는 모두 ≪이아爾雅≫에는 없는 글이다. 에서 당시로써 징험하였고, 를 이어서 썼기 때문에 ‘부속釜屬’임을 안 것이다.
說文曰 “江淮之間, 謂釜曰錡.” 定本‘有足曰錡’, 下更無傳, 俗本‘錡’下, 又云‘無足曰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의 사이에서는 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정본定本에는 ‘유족왈기有足曰錡’라 하고 뒤에는 다시 이 없으며, 속본俗本에는 ‘’아래에 또 ‘무족왈부無足曰釜’라고 하였다.
【疏】箋‘亨蘋’至‘之芼’
의 [팽빈亨蘋]에서 [지모之芼]까지
○正義曰:少牢禮用羊豕也. 經云 “執羊俎, 下利執豕俎.”
정의왈正義曰:≪의례儀禮≫ 〈소뢰궤식례少牢饋食禮〉에는 양과 돼지를 사용한다. 이 경문經文에서는 “좌식佐食상리上利양조羊俎를 잡고, 하리下利시조豕俎를 잡는다.”라고 하였고,
下乃云 “上佐食羞兩鉶, 取一羊鉶於房中, 下佐食又取一豕鉶於房中, 皆芼.”
아래에 이어서 “상좌식上佐食이 두 (고기 나물국)을 올리는데, 양형羊鉶 하나는 방에서 가지고 오고, 하좌식下佐食이 또 시형豕鉶 하나를 방에서 가지고 오니, 모두 이다.”라고 하였는데,
注云 “芼, 菜也, 羊用苦, 豕用薇, 皆有滑.” 牲體在俎, 下乃設羊鉶․豕鉶.
에 “는 나물이니, 양고기에는 씀바귀를 사용하고, 돼지고기에는 고비를 사용하는데 모두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희생을 에 담아 올리고, 이어 양형羊鉶시형豕鉶을 진설하는 것이다.
云皆芼, 煮於所亨之湆, 始盛之鉶器也. 故特牲注云 “鉶, 肉味之有菜和者.”
모두 라고 한 것은 나물을 국물에 끓여서 형기鉶器에 담은 것이다. 그리하여 ≪의례儀禮≫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의 에서 “은 고기 맛에 나물을 조미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今敎成祭, 牲用魚, 芼之以蘋藻, 則魚體亦在俎, 蘋藻亨於魚湆之中矣.
지금 교성敎成에 희생은 생선을 사용하고, 국은 빈조蘋藻로 끓였으니, 그렇다면 생선의 몸통을 또한 에 담고, 빈조蘋藻를 생선 국물에 넣어 끓인 것이다.
故鄭云‘魚爲俎實 蘋藻爲羹菜’, 以準少牢之禮, 故知在鉶中爲鉶羹之芼.
그리하여 정현鄭玄이 ‘어위조실 빈조위갱채魚爲俎實 蘋藻爲羹菜’라고 한 것이고, 〈소뢰궤식례少牢饋食禮〉의 를 기준하였으므로, 형정鉶鼎 속에 있는 것이 고기나물국임을 안 것이다.
知非大羹盛在鐙者, 以大羹不和, 貴其質也. 此有菜和, 不得爲大羹矣.
에 담은 것이 대갱大羹이 아님을 안 것은 대갱大羹은 조미하지 않아 ‘질박함’을 귀하게 여기는데, 여기서는 나물로 조미함이 있으니 대갱大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魯頌曰 “毛炰胾羹.” 傳曰 “羹, 大羹․鉶羹也.” 以經單言羹, 故得兼二也.
노송 비궁魯頌 閟宮〉 “털을 그슬려 굽고 산적과 고깃국을 올린다.[모포자갱毛炰胾羹]”의 에서 “대갱大羹형갱鉶羹이다.”라고 하였으니, 에서 단순하게 이라고만 하였기 때문에 두 가지 뜻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特牲禮云 “設大羹湆於醢北.” 注云 “大羹湆, 煮肉汁.” 則湆, 汁也.
의례儀禮≫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의 “대갱읍大羹湆을 젓갈 북쪽에 진설한다.”의 에서 “대갱읍大羹湆은 고기를 끓인 국물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은 국물이다.
【疏】傳‘宗室’至‘牖下’
의 [종실宗室]에서 [유하牖下]까지
○正義曰:傳以昏義云敎於宗室, 是大宗之家, 此言牖下, 又非於壇, 故知是大宗之廟.
정의왈正義曰에서는 ≪예기禮記≫ 〈혼의昏義〉에 종실宗室에서 가르친다는 것을 대종大宗의 집이라고 하였고, 여기서는 들창 아래라고 하였으니, 더욱 에서 지낸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대종大宗의 사당임을 안 것이다.
宗子有廟, 則亦爲大夫士矣. 言‘大夫士祭於宗室’, 謂祖廟已毁, 或非君同姓, 故祭大宗之家也.
종자宗子가 사당이 있으면 또한 대부大夫이다. ‘대부사 제어종실大夫士 祭於宗室’은 조묘祖廟가 남아 있지 않거나, 혹 동성同姓이 아니다. 그리하여 대종大宗의 집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 것이다.
知非宗子之女自祭家廟者, 經言‘于以奠之 宗室牖下’, 若宗子之女自祭家廟, 何須言於宗室乎, 定本․集注 皆云‘大夫士祭於宗廟’, 不作室字.
종자宗子의 딸이 직접 가묘家廟에 제사 지낸 것이 아님을 안 것은 에서 ‘우이전지 종실유하于以奠之 宗室牖下’라고 해서이니, 만약 종자宗子의 딸이 직접 가묘家廟를 지냈다면 어찌 종실宗室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정본定本집주集注에는 모두 ‘대부사제어종묘大夫士祭於宗廟’라고 하고, ‘’자로 되어 있지 않다.
【疏】箋‘牖下’至‘爲之’
[유하牖下]에서 [위지爲之]까지
○正義曰:箋知‘牖下 戶牖閒之前’者, 以其正祭在奧西南隅, 不直繼牖言之.
정의왈正義曰에서 ‘유하牖下가 지게문과 들창 사이의 앞’임을 안 것은 정제正祭서남西南쪽 모퉁이에서 지내므로 곧장 이어서 들창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今此云‘牖下’, 故爲戶牖間之前, 戶西牖東, 去牖近, 故云牖下.
지금 여기서 ‘들창 아래’라고 하였으므로 지게문과 들창 사이의 앞이 되고, 지게문은 서쪽이고 들창은 동쪽인데 들창이 좀 더 가깝기 때문에 ‘들창 아래’라고 한 것이다.
又解正祭在室, 此所以不於室中者, 以其凡昏事, 皆爲於女行禮, 設几筵於戶外, 取外成之義.
정제正祭에서 지내는데 이는 가운데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고 풀이한 것은 혼사昏事에서 모두 딸에게 를 행할 때 지게문 밖에 궤연几筵을 설치하기 때문이니, 출가出嫁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今敎成之祭於戶外設奠, 此外成之義. ‘與’, 是語助也.
지금 교성敎成의 제사는 지게문 밖에 을 진설하니, 이것이 출가出嫁하는 뜻이다. ‘’는 어조사이다.
昏禮云 “納采, 主人筵於戶西, 西上, 右几.” ,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납채納采에 딸의 아버지가 지게문 서쪽에 을 설치하고, 서쪽을 윗자리로 하여 오른쪽에 를 설치한다.”라고 하였으니, 문명問名납길納吉납징納徵청기請期도 모두 처음의 절차와 같이 하며,
昏禮又云 “主人筵於戶西, 西上, 右几.” 是其禮, 皆戶外設几筵也.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또 “딸의 아버지가 지게문 서쪽에 을 설치하고, 서쪽을 윗자리로 하여 오른쪽에 를 설치한다.”라고 하였으니, 그 에는 모두 지게문 밖에 궤연几筵을 설치한 것이다.
知‘宗子主此祭’者, 以其就宗子家, 明告神, 宗子所主. 引昏義, 兼言天子諸侯, 故又解其言 ‘唯君使有司爲之.’
종자宗子가 이 제사를 주관하였음을 안 것은 종자宗子의 집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니 에게 고하는 것을 종자宗子가 주관함이 분명하다. ≪예기禮記≫ 〈혼의昏義〉를 인용하여 천자天子제후諸侯를 아울러 말했으므로, 또 그 말을 풀이하여 ‘군주君主만은 유사有司가 담당하게 한다.’라고 한 것이다.
知者, 以敎成之祭, 告事而已, 無牲牢. 君尊, 明使有司爲之.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교성敎成의 제사는 일을 고할 뿐 생뢰牲牢가 없기 때문이다. 존귀尊貴하니 유사有司가 담당하게 한 것이 분명하다.
【疏】傳‘少女’至‘蘋藻’
의 [소녀少女]에서 [빈조蘋藻]까지
○正義曰:季者, 少也. 以將嫁, 故以少言之, 未必伯仲處小也.
정의왈正義曰는 어림이다. 시집갈 것이기 때문에 어리다고 말한 것이지 반드시 맏이와 둘째라고 할 때의 막내라는 뜻은 아니다.
襄二十八年左傳 “濟澤之阿, 行潦之蘋藻, 寘諸宗室, 季蘭尸之, 敬也.” 隱三年左傳曰“苟有明信,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28년에 “못가나 길가에 흐르는 물에 자란 빈조蘋藻를 뜯어다가 종실宗室에 진설하여 계란季蘭이 주관하니 〈그런데도 이 제사를 흠향하는 것은〉 공경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隱公 3년에 “만일 진실함이 있다면
澗谿沼沚之毛, 蘋蘩蘊藻之菜, 筐筥錡釜之器, 潢汙行潦之水, 可薦於鬼神, 可羞於王公,
시냇가나 못가의 수초水草와 부평이나 마름 같은 나물과 광주리나 솥 같은 용기와 웅덩이나 길가에 흐르는 물일지라도 귀신에게 올릴 수가 있고, 왕공王公에게도 대접할 수 있다.
風有采蘩․采蘋, 雅有行葦․泂酌, 昭忠信也.” 二者皆取此篇之義以爲說, 故傳歷言之.
에는 〈채번采蘩〉과 〈채빈采蘋〉이 있고, 에는 〈행위行葦〉와 〈형작泂酌〉이 있으니 충신忠信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두 글이 모두 이편의 뜻을 취하여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에서 낱낱이 말한 것이다.
又言‘古之將嫁女者 必先禮之於宗室’者, 毛意以禮女與敎成之祭爲一事也.
또 ‘고지장가녀자 필선예지어종실古之將嫁女者 必先禮之於宗室’은 모형毛亨은 딸에게 를 행하는 것과 교성敎成의 제사를 한 가지 일로 여겼다.
言‘古之將嫁女者 必先禮之於大宗之室以俟迎者, 其牲用魚, 芼之以蘋藻.’ 卽所設敎成之祭也. 以此篇說敎成之祭事終, 故於此摠之.
그래서 ‘옛날에 시집가려는 여인女人이 반드시 먼저 대종大宗에서 를 행하고 신랑이 맞이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경우, 희생은 생선을 사용하고 국은 빈조蘋藻로 끓인다.’고 하였으니, 바로 교성敎成의 제사를 차린 것이다. 이편이 교성敎成제사祭事를 말하는 것으로 마쳤으므로 여기에서 총괄한 것이다.
毛意以敎成之祭與禮女爲一者, 蓋見昏禮記將嫁女之日, “父醴女而俟迎”者, 更不見有敎成之祭. 故謂與禮女爲一也.
모형毛亨교성敎成의 제사와 딸에게 를 행하게 하는 것을 한 가지 일이라고 여긴 것은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의 에 시집보내는 날에 “아버지가 딸에게 예례醴禮를 행하고 신랑이 맞이하러 오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은 있는데, 다시 교성敎成의 제사에 대한 글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딸에게 를 행하는 것과 한 가지라고 여긴 것이다.
父醴女, 以醴酒禮之, 今毛傳作禮儀之禮者, 司儀注云 “上於下曰禮.”
아버지가 딸에게 예례醴禮를 행할 때 예주醴酒를 행하는데, 지금 모형毛亨에서 예의禮儀자를 쓴 것은 ≪주례周禮≫ 〈사의司儀〉의 에 “위에서 아래로 행하는 것을 라 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故聘禮用醴酒禮賓, 作禮儀之禮. 定本‘禮’作‘醴’.
그리하여 ≪의례儀禮≫ 〈빙례聘禮〉에 예주醴酒를 사용하여 에게 를 행할 때 예의禮儀를 쓴 것이다. 정본定本에는 ‘’가 ‘’로 되어 있다.
【疏】箋‘主設’至‘黍稷’
의 [주설主設]에서 [서직黍稷]까지
○正義曰:自‘無祭事’以上, 難毛之辭也, 言父禮女, 無祭事, 不得有羹.
정의왈正義曰:‘무제사無祭事’ 이상의 글은 모형毛亨을 논박하여 한 말이니, 아버지가 딸에게 를 행하는 것은 제사祭事함이 없으니 국이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今經陳采蘋藻爲羹, 使季女尸之, 主設羹者季女, 則非禮女也.
지금 에서 빈조蘋藻를 뜯어 국을 끓이고 계녀季女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였다고 하였으니, 국의 진설을 주관한 것은 계녀季女이니, 딸에게 를 행한 것이 아니다.
案昏禮, 女將行嫁, 父醴女而俟迎者, 其時蓋母薦之, 更無祭事, 不得有羹矣.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를 살펴보면, 여인女人이 시집가려 할 때 아버지가 딸에게 예례醴禮를 행하고 신랑이 맞이하러 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는데, 이때 아마도 어머니가 올린 것이고 다시 제사祭事함이 없으니 국이 있을 수가 없다.
今經陳季女設羹, 正得爲敎成之祭, 不得爲禮女, 傳以敎成之祭與禮女爲一, 是毛氏之誤, 故非之也.
지금 에서 계녀季女가 국을 진설함을 말한 것은 바로 교성敎成인 것이지, 딸에게 를 행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에서 교성敎成와 딸에게 를 행하는 것을 하나라고 여긴 것은 모형毛亨의 잘못이다. 그리하여 그르다고 한 것이다.
‘蓋母薦之’者, 以士昏禮云 “饗婦姑薦”, 鄭注 “舅獻爵, 姑薦脯醢.” 舅饗婦旣姑薦, 明父禮女母薦之可知.
개모천지蓋母薦之’는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며느리를 대접할 때 시어머니가 음식을 준다.[향부고천饗婦姑薦]”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서 “시아버지는 (술잔)을 주고, 시어머니는 를 준다.”라고 하였으니, 시아버지가 신부에게 접대할 때 시어머니가 음식을 주는 것이니 분명 아버지가 딸에게 예를 행할 때에도 어머니가 음식을 주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故昏禮記 “父醴女”, 注云 “父醴之於房中南面, 蓋母薦焉, 重昏禮.”是也. 以無正文, 故云.
그리하여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의 에 “아버지가 딸에게 예례醴禮를 행한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아버지가 방 안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례醴禮를 행할 때 아마도 어머니가 음식을 주는 것이니 혼례昏禮를 중히 여긴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정문正文이 없으므로, ‘’라고 한 것이다.
【疏】知醴之於房中者, 以母在房外, 故知父禮之在房中也.
방 안에서 예례醴禮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방 밖에 있기 때문이니, 그리하여 아버지가 방 안에서 를 행하였음을 안 것이다.
正祭之禮, 主婦設羹, 此敎成之祭, 更使季女設羹者, 以三月已來, 敎之以法度, 今爲此祭, 所以敎成其婦禮, 故使季女自設其羹也.
정제正祭주부主婦가 국을 진설하는데, 이 교성敎成는 바꾸어 계녀季女로 하여금 국을 진설하게 한 것은 3개월 동안 법도法度를 가르쳐 〈가르침을 마치면〉 지금 이 제사를 지내 부례婦禮의 가르침을 마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녀季女로 하여금 직접 국을 진설하게 한 것이다.
‘祭禮主婦設羹’, 謂特牲云 “及兩鉶鉶芼 設於豆南”是也. 少牢, 無主婦設羹之事, 此宗子或爲大夫, 其妻不必設羹.
제례주부설갱祭禮主婦設羹’은 ≪의례儀禮≫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에 “주부主婦가 고기나물국을 담은 두 가지 의 남쪽에 진설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런데 ≪의례儀禮≫ 〈소뢰궤식례少牢饋食禮〉에는 주부主婦가 국을 진설하는 일이 없고, 여기의 종자宗子대부大夫가 되었으면 가 국을 진설할 필요가 없다.
要非此祭不得使季女設羹, 因特牲有主婦設羹之義, 故據以言之.
요컨대 이 에서 계녀季女로 하여금 국을 진설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의례儀禮≫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에 주부主婦가 국을 진설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又解不言魚者, 季女不主魚, 魚俎實男子設之, 故經不言焉.
또 해석에서 생선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은 계녀季女가 생선을 주관하지 않고 생선을 담은 는 남자가 진설하기 때문에 에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知‘俎實男子設之’者, 以特牲․少牢, 俎皆男子主之故也.
생선을 담은 는 남자가 진설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의례儀禮≫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와 〈소뢰궤식례少牢饋食禮〉에서 는 모두 남자男子가 주관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又魚菜不可空祭, 必有其饌, 而不見, 故因約之‘其粢盛 蓋以黍稷’耳.
또 생선과 나물은 제사에 빠질 수 없으므로 반드시 이 음식이 있어야 하는데 식사食事에 보이지 않으므로, 인하여 간략하게 ‘자성粢盛은 아마도 서직黍稷일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知者, 以特牲․少牢, 止用黍稷, 此不得過也. 或不用稷, 故兼言之.
이를 안 것은 〈특생궤식례特牲饋食禮〉와 〈소뢰궤식례少牢饋食禮〉에서 서직黍稷만을 사용하니 이보다 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혹 을 사용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겸하여 말한 것이다.
【疏】王肅以爲, 此篇所陳, 皆是大夫妻助夫氏之祭, 采蘋藻以爲菹, 設之於奧, 奧卽牖下,
왕숙王肅은 “이편에서 말한 것은 모두 대부大夫가 남편의 를 돕는 것으로 빈조蘋藻를 뜯어 를 만들어 에 진설한 것이니, 는 바로 들창 아래이다.”라고 하고,
又解毛傳禮之宗室, 謂敎之以禮於宗室, 本之季女, 取微主也, 其毛傳所云‘牲用魚 芼之以蘋藻’, 亦謂敎成之祭, 非經文之蘋藻也.
모형毛亨에 ‘예지종실禮之宗室’을 풀이하여 “종실宗室에서 를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계녀季女를 거론하여 어린 주관자의 뜻을 취했다고 하였으며, 모형毛亨에서 말한 ‘생용어 모지이빈조牲用魚 芼之以蘋藻’는 또 교성敎成를 말하는 것인데, 경문經文빈조蘋藻가 아니라고 하였다.
自云述毛, 非傳旨也, 何則, 傳稱‘古之將嫁女者 必先禮之於宗室’, 旣言禮之, 卽云‘牲用魚 芼之以蘋藻’, 是魚與蘋藻爲禮之物.
왕숙王肅 자신이 모형毛亨의 설을 서술했다고 말하면서 의 뜻과 다르게 본 것은 어째서인가? 에서 ‘고지장가녀자 필선예지어종실古之將嫁女者 必先禮之於宗室’이라고 하였으니 를 행함을 말한 것이고, 바로 이어서 ‘생용어 모지이빈조牲用魚 芼之以蘋藻’라고 하였으니, 이는 생선과 빈조蘋藻를 행하는 이란 것이다.
若禮之爲以禮敎之, 則‘牲用魚芼之以蘋藻’, 何所施乎, 明毛以禮女與敎成之祭爲一, 魚爲所用之牲矣.
만약 ‘예지禮之’를 ‘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생용어 모지이빈조牲用魚 芼之以蘋藻’는 어느 곳에 해당되는가? 분명 모형毛亨이 딸에게 를 행하는 것과 교성敎成의 제사를 하나의 일로 여기고 생선은 희생으로 사용된다고 한 것이다.
而云以禮敎之, 非傳意也. 又上傳云‘宗室 大宗之廟 大夫士祭於宗室’, 若非敎成之祭, 則大夫之妻自祭夫氏,
그런데 ‘를 가르친 것’이라고 한다면 의 뜻이 아니다. 또 앞의 에서 ‘종실 대종지묘宗室 大宗之廟 대부사제어종실大夫士祭於宗室’이라 하였는데, 만약 교성敎成의 제사가 아니라면 대부大夫가 직접 남편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何故云大宗之廟, 大夫豈皆爲宗子也, 且大夫之妻助大夫之祭, 則無士矣, 傳何爲兼言‘大夫士祭於宗室’乎, 又經典未有以奧爲牖下者矣.
무슨 까닭으로 대종大宗의 사당이라고 말하며, 대부大夫가 어찌 모두 종자宗子가 되겠는가? 그리고 대부大夫대부大夫의 제사를 도운 것이면 가 없는데, 에서 어떻게 ‘대부사제어종실大夫士祭於宗室’이라고 겸하여 말하겠는가? 또 경전經典에서 유하牖下라고 한 곳은 없다.
據傳‘禮之宗室’與‘大夫士祭於宗室’文同, ‘芼之以蘋藻’與經采蘋․采藻文協, 是毛實以此篇所陳爲敎成之祭矣. 孫毓以王爲長, 謬矣.
의 ‘예지종실禮之宗室’과 ‘대부사제어종실大夫士祭於宗室’의 문맥이 같고, ‘모지이빈조芼之以蘋藻’와 의 ‘채빈采蘋’과 ‘채조采藻’의 글이 서로 잘 맞는 것을 근거해보면 이는 모형毛亨이 실제로 이편에서 말한 것을 교성敎成의 제사로 여긴 것이다. 손육孫毓왕숙王肅의 주장이 더 옳다고 하였으니 잘못이다.
采蘋三章이니 章四句
채빈采蘋〉은 3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女] : 저본에는 없으나, 箋의 ‘女子十年不出’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 : ≪詩名多識≫과 국어사전에 모두 ‘네가래’로 표기하고 있어 이를 따랐다. 잎이 네 개여서 ‘田萍’이라고도 한다.
역주3 祖廟未毁 : 본서 221쪽 〈葛覃〉 주 1) 참조.
역주4 [祭] : 저본에는 없으나, 뒤의 疏에 “知此祭 祭女所出祖者”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祭’를 보충하였다.
역주5 (事)[禮] : 저본에는 ‘事’로 되어 있으나, 뒤의 疏에 “祭禮主婦設祭”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禮’로 번역하였다.
역주6 互言 : 같은 뜻을 가진 글자를 번갈아 쓰면서 글자의 중복을 피하면서 같은 의미를 서로 드러내거나 보충해주는 수사법이다. 여기서는 ‘南澗’ 다음에 ‘濱’을 사용한 것과 ‘行潦’ 앞에 ‘彼’자를 사용한 것이 서로의 의미를 보충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7 音瓢 : 郭璞의 注에 포함된다는 저본의 교감기의 설과 ≪爾雅注疏≫에 “郭璞은 苹의 音을 瓢라고 하였다.”라는 설에 근거하여 郭璞의 注에 포함시켰다.
역주8 上利 : 古代에 祭祀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上利와 下利가 있다. 연장자가 上利이고, 그 아래가 下利이다. ≪儀禮≫ 〈特牲饋食禮〉의 注에서 利는 佐食이고 봉양함인데, 음식을 제공하여 봉양하기 때문에 ‘利’라고 한다고 하였다.
역주9 問名……皆如初 : ≪儀禮≫ 〈士昏禮〉의 혼인의 六禮 절차는 納采․問名․納吉․納徵․請期․親迎인데, 疏의 내용이 納采에 해당되므로 그 이후의 절차인 問名․納吉․納徵․請期도 納采 때와 같이 지게문 밖에 几筵을 설치한다는 뜻이다. ≪儀禮≫ 〈士昏禮〉에도 納采의 절차와 같이 한다고 되어 있다.
역주10 : 蓋자를 써서 추정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이는 典據로 삼을 글이 없어 추측하여 쓴 것이므로 ‘아마도’라고 한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11 主婦……豆南 : ≪儀禮≫ 〈特牲饋食禮〉의 “主婦가 黍와 稷을 두 敦에 담아 俎의 남쪽에 진설하는데, 서쪽이 上位이고, 두 가지 고기나물국을 담은 鉶을 豆의 남쪽에 진설하는데, 남쪽을 바라보도록 진설한다.[主婦設兩敦黍稷於菹南 西上 及兩鉶鉶芼設於豆南 南陳]”에서 부분 인용한 것이다.
역주12 (人) : 저본에는 있으나, ≪儀禮≫ 〈特牲饋食禮〉에 근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13 食事 : 食는 제사에 음식을 올리는 것을 뜻한다. ≪禮記≫ 〈檀弓〉에 “장례를 치르고 나서 음식을 올려 祭를 지낸다.[旣葬而食之]”고 하였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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