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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2)

모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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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序】式微 黎侯寓于衛하니 其臣勸以歸也
식미式微〉는 여후黎侯나라에서 더부살이하니 그의 신하가 〈로〉 돌아갈 것을 권한 것이다.
【箋】寓 寄也 黎侯爲狄人所逐하여 棄其國而寄於衛어늘 衛處之以二邑하니 因安之하여 可以歸而不歸 故其臣勸之
는 더부살이이다. 여후黎侯적인狄人에게 쫓겨나 그 나라를 버리고 나라에 더부살이하였는데 나라가 두 읍을 주어 지내게 하니, 그가 편안히 여겨 돌아갈 수 있는데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신하들이 나라로 돌아가기를 권한 것이다.
○黎 國名이니 杜預云 在上黨壺關縣이라하니라 寓于 又作乎
는 나라 이름이니, 두예杜預는 “상당군 호관현上黨郡 壺關縣에 있다.”라고 하였다. ‘우우寓于’의 는 음이 이다. ‘’로도 되어 있다.
【疏】‘式微(二章章四句)’至‘勸以歸’
의 [식미式微]에서 [권이귀勸以歸]까지
○正義曰:此經二章, 皆臣勸以歸之辭. 此及旄丘, 皆陳黎臣之辭, 而在邶風者, 蓋邶人述其意而作, 亦所以刺衛君也.
정의왈正義曰:이 의 두 장은 모두 신하가 군주에게 돌아갈 것을 권한 말이다. 이 시와 〈모구旄丘〉는 모두 나라 신하의 말을 적은 것인데 패풍邶風에 들어있는 것은 아마도 의 사람이 그 뜻을 서술하여 지은 것이고, 나라의 군주를 풍자한 것이기도 하다.
【疏】箋‘黎侯’至‘勸之’
의 [여후黎侯]에서 [권지勸之]까지
○正義曰:以旄丘之敍, 故知爲狄人所逐. 以經云‘中露’․‘泥中’, 知處之以二邑, 勸之云‘胡不歸’, 知可以歸而不歸.
정의왈正義曰:〈모구旄丘〉의 에서 서술하였기 때문에 적인狄人에게 쫓겨난 것을 안 것이다. 에서 ‘중로中露’와 ‘니중泥中’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두 읍에 거처함을 안 것이고, ‘어찌 돌아가지 않는가.’라고 권하였기에 돌아갈 수 있는데도 돌아가지 않음을 안 것이다.
此被狄所逐, 而云‘寄’者, 若春秋出奔之君, 所在亦曰‘寄’, 故左傳曰 “齊寄衛侯.”是也.
여기서 적인狄人에게 내쫓긴 것인데 ‘(더부살이)’라고 한 것은 ≪춘추春秋≫에서 쫓겨 도망간 군주가 있는 곳을 또한 ‘’라고 한 것과 같다. 그리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14년에 “제인齊人위후衛侯에게 주어 더부살이하게 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喪服傳曰 “寄公者何, 失地之君也.” 謂削地盡者, 與此別.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기공寄公은 무엇인가? 영지領地를 잃은 군주이다.”라고 한 것은 영지領地를 다 빼앗긴 것을 이르니 여기와는 구별된다.
式微式微어늘 胡不歸
쇠약하고 쇠약해졌는데 어이 돌아가지 않나요
【傳】式 用也
이다.
【箋】箋云 式微式微者 微乎微者也 君何不歸乎 禁君留止於此之辭 發聲也
전운箋云식미식미式微式微는 쇠약하고 쇠약한 것이다. ‘군주는 어찌 돌아가지 않는가.’는 군주가 이곳에 머물러 있음을 금하는 말이다. 은 발어사이다.
微君之故 胡爲乎中露리오
군주의 일만 없다면 어이 중로中露에 머물리오
【傳】微 無也 中露 衛邑也
는 ‘없음’이다. 중로中露나라의 이다.
【箋】箋云 我若無君이면 何爲處此乎아하니 臣又極諫之辭
전운箋云:‘만약 군주께서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일만 없다면 우리가 어찌 이곳에 머물겠는가?’라고 한 것이니, 신하가 또 극간極諫한 말이다.
【疏】‘式微’至‘中露’
의 [식미式微]에서 [중로中露]까지
○毛以爲, 黎之臣子責君久居於衛, 言君用在此而益微, 用此而益微, 君何不歸乎, 我等若無君在此之故, 何爲久處於此中露.
모형毛亨은 ‘나라의 신하가 그의 군주가 오래도록 나라에 머물고 있음을 책망하여 군주가 이곳에 있어서 더욱 쇠약해졌고, 이 때문에 더욱 쇠약해졌는데 군주는 어찌하여 돌아가지 않는가. 군주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일만 없다면 우리들이 어찌하여 오래도록 이 중로中露에 머물겠는가.’라고 여긴 것이다.
鄭以式爲發聲, 言微乎微者, 言君今在此, 皆甚至微, 君何不歸乎, 餘同.
정현鄭玄은 ‘을 발어사로 여기었으니, 쇠약하고 쇠약한 것이라고 한 것은 군주가 지금 이곳에 있어 모두 매우 쇠약해졌는데 군주는 어찌하여 돌아가지 않느냐고 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나머지는 같다.
【疏】傳‘式 用’
의 [식 용式 用]
○正義曰:釋言文. 左傳曰 “.” 服虔云 “言君用中國之道微.” 亦以式爲用.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29년에 “영성백榮成伯이 〈식미式微〉의 를 읊었다.”라고 하였는데, 복건服虔이 “군주가 나라의 가 쇠미해졌다고 여긴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을 ‘’으로 여긴 것이다.
此勸君歸國, 以爲君用中國之道微, 未若君用在此微爲密也.
여기서 군주에게 귀국歸國을 권한 것은 군주가 나라의 도가 쇠미해졌다고 여긴 것이니, 군주가 이곳에 머물면서 쇠약해졌다고 긴밀히 간한 것과는 다르다.
【疏】箋‘式微’至‘發聲’
의 [식미式微]에서 [발성發聲]까지
○正義曰:‘式微式微者 微乎微者也’, 釋訓文, 郭璞曰 “言至微也. 以君被逐旣微, 又見卑賤, 是至微也.” 不取式爲義, 故云發聲也.
정의왈正義曰:‘식미식미자 미호미자야式微式微者 微乎微者也’는 ≪이아爾雅≫ 〈석훈釋訓〉의 글인데, 곽박郭璞은 “지극히 쇠미함을 말한다. 군주가 쫓겨나 쇠약해지고 또 천대를 당하였으니, 이것이 지극히 쇠미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으로는 뜻을 삼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발어사’라고 한 것이다.
【疏】傳‘中露 衛邑’
의 [중로 위읍中露 衛邑]
○正義曰:以寄於衛所處之, , 明非衛都, 故知中露․泥中, 皆衛邑也.
정의왈正義曰나라에서 제공한 더부살이하는 곳이고, 아래에 또 우리 군주를 와서 맞이하지 않음을 책망하였으니 나라의 도성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중로中露니중泥中이 모두 나라의 임을 안 것이다.
【疏】箋‘我若’至‘之辭’
의 [아약我若]에서 [지사之辭]까지
○正義曰:主憂臣勞, 主辱臣死, 固當不憚淹恤. 今言我若無君, 何爲處此, 自言己勞, 以勸君歸, 是極諫之辭.
정의왈正義曰:군주가 걱정하면 신하는 〈그 근심을 풀기 위해〉 힘써 노력하고, 군주가 욕됨을 당하면 신하는 〈그 욕됨을 씻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니, 진실로 오랫동안 우환을 당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이 군주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일만 없다면 어찌 이곳에 머물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스스로 자신의 수고로움을 말하여 군주에게 돌아갈 것을 권한 것이니, 이것이 극간極諫한 말이다.
式微式微어늘 胡不歸 微君之躬이면 胡爲乎泥中
쇠약하고 쇠약해졌는데 어이 돌아가지 않나요 군주 몸 아니면 어이 니중泥中에 머물리오
【傳】泥中 衛邑也
니중泥中나라의 이다.
式微 二章이니 章四句
식미式微〉는 2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人] : 저본에는 ‘人’字가 없으나, ≪春秋左氏傳≫의 내용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 (邾)[郲] : ≪春秋左氏傳≫의 내용에 의거하여 ‘郲’로 번역하였다.
역주3 榮成伯賦式微 : 군주가 귀국하기를 머뭇거리자 귀국할 것을 권하면서 이 시를 읊었다는 故事이다. 魯 襄公이 楚 康王의 장례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季孫宿이 卞縣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려 하지 않자 榮成伯이 〈式微〉를 읊어 권하니 양공이 귀국하였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襄公 29년≫
역주4 下又責其不來迎我君 : 다음 편인 〈旄丘〉의 詩에 ‘不來迎我君’의 내용이 있다. 그래서 ‘下’라고 한 것이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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