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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2)

모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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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二子乘舟 思伋壽也 衛宣公之二子 爭相爲死하니 國人傷而思之하여 作是詩也
이자승주二子乘舟〉는 를 그리워하는 것을 읊은 시이다. 위 선공衛 宣公의 두 아들이 서로 앞 다투어 죽으니, 국인國人들이 슬퍼하고 그리워하여 이 시를 지었다.
【疏】‘二子乘舟(二章 章四句)’至‘是詩’
의 [이자승주二子乘舟]에서 [시시是詩]까지
○正義曰:作二子乘舟詩者, 思伋․壽也. 衛宣公之二子伋與壽, 爭相爲死, 故國人哀傷而思念之, 而作是二子乘舟之詩也.
정의왈正義曰:〈이자승주二子乘舟를 지은 것은 를 그리워한 것이다. 위 선공衛 宣公의 두 아들인 가 앞 다투어 죽었다. 그리하여 국인國人들이 슬퍼하고 그리워하여 이 〈이자승주二子乘舟〉 시를 지은 것이다.
二子爭相爲死, 卽首章二句是也, 國人傷而思之, 下二句是也.
두 사람이 서로 죽기를 다툰 것은 수장首章 두 구가 이것이고, 국인國人들이 슬퍼하여 그리워한 것은 아래 두 구가 이것이다.
二子乘舟 汎汎其景이로다
두 사람 탄 배 둥둥 그림자 사라졌네
【傳】二子 伋壽也 宣公 爲伋取於齊女而美하니 公奪之하여 生壽及朔이라
이자二子’는 이다. 선공宣公을 위해 나라의 여인에게 장가를 들게 하였다가 나라의 여인이 아름다우므로 선공宣公이 빼앗아 을 낳았다.
朔與其母 愬伋於公하니 公令伋之齊하고 使賊先待於隘而殺之러니
과 그 어미가 에게 을 참소하자 에게 나라로 가게 하고는 자객을 시켜 먼저 가서 험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죽이게 하였다.
壽知之以告伋하여 使去之하니 伋曰 君命也 不可以逃라하다 壽竊其節而先往이어늘 賊殺之
가 그 사실을 알고 에게 알려 달아나게 하였는데, 이 “군주의 명령이니 도망갈 수 없다.”라고 하였다. 가 그의 정절旌節을 훔쳐 먼저 가자 자객이 그를 죽였다.
伋至曰 君命殺我어늘 壽有何罪오하니 賊又殺之 國人 傷其涉危遂往 如乘舟而無所薄하여 汎汎然迅疾而不礙也
이 당도하여 “임금은 나를 죽이고자 했는데 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라고 하자, 자객이 또 그를 죽였다. 국인國人이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떠난 것이 마치 배를 타고 정박할 곳이 없어 물에 떠서 막힘없이 빨리 가는 것과 같음을 슬퍼한 것이다.
願言思子하니 中心養養이로다
매양 그대 생각에 깊은 근심 안절부절 못하네
【傳】願 每也 養養然憂하여 不知所定이라
은 ‘매양’이다. 안절부절못하고 근심하여 진정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箋】箋云 願 念也 念我思此二子하여 心爲之憂養養然이라
전운箋云은 ‘생각함’이니 내가 그리운 두 사람을 생각함에 마음이 이 때문에 근심하여 울렁거리는 것이다.
【疏】經‘二子’至‘養養’
의 [이자二子]에서 [양양養養]까지
○毛以爲 “二子伋․壽, 爭相爲死, 赴死似歸, 不顧其生, 如乘舟之無所薄, 觀之汎汎然, 見其影之去, 往而不礙.
모형毛亨은 “두 사람인 가 서로 죽기를 다투어 사지死地로 달려가는 것이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살기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마치 타고 있는 배가 정박할 곳이 없어 보기에 둥둥 떠가는 것이 그 그림자가 막힘없이 빠르게 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다.
猶二子爭死, 遂往而亦不礙也, 故我國人傷之, 每有所言, 思此二子, 則中心爲之憂養養然, 不知所定.
이것이 두 사람이 다투어 죽어서 마침내 가고 또한 개의치 않은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국인國人들이 슬퍼하여 말할 때마다 이 두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이 때문에 근심하여 울렁거려 진정시킬 바를 알지 못하였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唯以‘願言思子’爲‘念我思此二子’爲異.
정현鄭玄은 다만 ‘원언사자願言思子’만을 ‘염아사차이자念我思此二子’로 하여 다르게 여겼다.
【疏】傳‘二子’至‘不礙’
의 [이자二子]에서 [불애不礙]까지
○正義曰:以序云‘思伋壽’, 故知二子伋․壽也. 傳因言二子爭死之由, 其言與桓十六年左傳小異大同也.
정의왈正義曰에서 ‘사급수思伋壽’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임을 안 것이다. 에서 두 사람이 다투어 죽은 이유를 말하였는데, 그 말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환공桓公 16년의 글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此言‘愬伋於公’, 傳言“構伋子” 服虔云 “構, 會其過惡.” 亦是愬之也.
여기에서 말한 ‘소급어공愬伋於公’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는 ‘구급자構伋子’라고 하였는데, 복건服虔이 “는 그의 잘못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그를 참소한 것이다.
此言‘先待於隘’, 傳言“使盜待諸莘” 服虔云 “莘, 衛東地.” 則莘與隘一處也.
여기에서 말한 ‘선대어애先待於隘’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는 “사도대제신使盜待諸莘”이라고 하였는데, 복건服虔이 “나라의 동쪽 지역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과 ‘’는 같은 곳이다.
此言‘君命不可逃也 壽竊其節而先往’, 傳言 “壽子告之, 使行, 不可, 曰 ‘棄父之命, 惡用子矣. 有無父之國, 則可也.’
여기에서 말한 ‘군명불가도야 수절기절이선왕君命不可逃也 壽竊其節而先往’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는 “가 그것을 알려 달아나게 하였는데 듣지 않고 ‘아버지의 명을 거역한다면 어떻게 자식이라 하겠는가. 아버지가 없는 나라가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及行, 飮以酒, 壽子載其旌以先.” 此文不足, 亦當如傳飮以酒也.
출발에 임하여 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는 가 그 정절旌節을 싣고 먼저 떠났다.”라고 하였으니, 이 글에서 부족한 부분은 또한 응당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음이주飮以酒’와 같이 보아야 한다.
【疏】旌․節不同, 蓋載旌旗以爲節信也. 衛世家所說與左傳略同, 云 “壽盜其白旄而先” 言者, 或以白旄爲旌節也.
은 같지 않으니, 아마도 깃발을 실어 신표信標로 삼은 듯하다. ≪사기史記≫ 〈위세가衛世家〉에서 말한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대략 같은데, “가 그 백모白旄를 훔쳐 먼저 떠났다.”라고 하였으니, 백모白旄라 한 것은 혹 백모白旄정절旌節로 삼은 듯하다.
言‘國人傷其涉危遂往’者, 解經以‘乘舟’爲喩之意, 以二子遂往, 不愛其死, 如乘舟無所薄, 汎汎然迅疾而不礙.
국인상기섭위수왕國人傷其涉危遂往’이란 것은 의 ‘승주乘舟’를 비유로 삼은 뜻을 풀이한 것이니, 두 아들이 마침내 가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것이 마치 타고 있는 배가 정박할 곳이 없이 물에 떠서 막힘없이 빨리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無所薄, 猶涉危也, 謂涉渡危難而取死. 下言‘其影’, 以其影謂舟影, 觀其去而見其影, 義取其遂往不還, 故卒章云‘其逝’.
무소박無所薄’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같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가다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을 말한다. 아래에서 말한 ‘기영其影’은 ‘기영其影’을 배의 그림자로 여긴 것이니, 그 떠나는 것을 볼 적에 그 그림자만을 본 것이니, 마침내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졸장卒章에 ‘기서其逝’라 한 것이다.
傳曰‘逝 往’, 謂舟汎汎然, 其形往, 影形可見, 故言往也.
에 ‘서 왕逝 往’이라 한 것은 배가 둥둥 떠감을 말하니, 그 배가 갈 때에 배와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라 한 것이다.
二子乘舟 汎汎其逝로다
두 사람 탄 배 둥둥 떠 가버렸네
【傳】逝 往也
는 ‘감’이다.
願言思子호니 不瑕有害로다
매양 그대 생각하니 해로움 피하지 않았네
【傳】言二子之不遠害
두 사람이 해를 멀리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箋】箋云 瑕 猶過也 我思念此二子之事호니 於行無過差어늘 有何不可而不去也
전운箋云는 ‘잘못’과 같다. ‘내가 이 두 사람의 일을 생각해보니, 행실에 잘못이 없는데 무슨 불가함이 있어 피하지 않았는가.’라고 한 것이다.
○害 毛如字하고 鄭音曷하니 何也
모형毛亨은 본음대로 보았고, 정현鄭玄은 ‘’로 읽었으니 ‘어찌’이다.
【疏】經‘二子’至‘有害’
의 [이자二子]에서 [유해有害]까지
○正義曰:下二句毛․鄭別.
정의왈正義曰:아래 두 구절은 모형毛亨정현鄭玄이 다르게 여겼다.
【疏】箋‘我念’至‘不去’
의 [아념我念]에서 [불거不去]까지
○正義曰:此國人思念之至, 故追言其本, 何爲不去而取死, 深閔之之辭也.
정의왈正義曰:이는 국인國人이 지극히 그리워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근본을 돌아보고 ‘어찌하여 피하지 않고 죽음을 자초하였는가.’라고 한 것이니, 매우 애처롭게 여긴 말이다.
二子乘舟 二章이니 章四句
이자승주二子乘舟〉는 2이니 마다 4이다.
邶國十九篇이니 七十一章이요 三百六十三句
패국邶國(패풍邶風)은 19이니 71이고 363이다.
역주
역주1 白旄 : 깃대 끝에다가 소꼬리의 털을 장식한 軍旗의 일종으로, 全軍을 지휘하는 데 쓰는 깃발이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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