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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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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序】行露 召伯聽訟也 衰亂之俗微하고 貞信之敎興하여 彊暴之男 不能侵陵貞女也
행로行露〉는 소백召伯이 송사를 다스린 것을 읊은 시이다. 쇠란衰亂풍속風俗이 사라지고, 바르고 진실한 교화가 일어나 사나운 남자가 정숙한 여인을 침해하여 욕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箋】衰亂之俗微 貞信之敎興者 此殷之末世 周之盛德이니 當文王與紂之時
쇠란衰亂한 풍속이 사라지고 바르고 진실한 교화가 일어나는 것은 나라 말기와 나라의 이 융성할 때이니, 문왕文王의 때에 해당한다.
【疏】‘行露(三章一章三句二章章六句)’至‘貞女’
의 [행로行露]에서 [정녀貞女]까지
○正義曰:作行露詩者, 言召伯聽斷男女室家之訟也.
정의왈正義曰:〈행로行露〉의 를 지은 것은 소백召伯남녀男女간의 혼인의 송사를 판결함을 말한 것이다.
由文王之時, 被化日久, 衰亂之俗已微, 貞信之敎乃興, 是故彊暴之男不能侵陵貞女也.
문왕文王 때로부터 교화를 받은 지 오래되어 쇠란衰亂풍속風俗이 이미 사라지고, 바르고 진실한 가르침이 일어나니, 이 때문에 사나운 남자가 정숙한 여인을 침해하여 욕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男雖侵陵, 貞女不從, 是以貞女被訟, 而召伯聽斷之.
남자가 비록 침해하여 욕을 보이려 하나 정숙한 여인이 따르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정숙한 여인이 송사를 당하여 소백召伯이 판결한 것이다.
【疏】鄭志張逸問 “行露召伯聽訟, 察民之意化耳, 何訟乎.” 答曰 “實訟之辭也.” 民被化久矣, 故能有訟.
정지鄭志≫에서 장일張逸이 묻기를 “〈행로行露〉에서 소백召伯이 송사를 처리함은 백성의 뜻을 살펴 교화하는 것인데, 어찌 송사를 하게 합니까?”라고 하니, 답하기를 “실제로 송사하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니, 백성이 교화를 받은 지 오래되었으므로 송사가 있는 것이다.
問者見貞信之敎興, 怪不當有訟, 故云 “察民之意而化之, 何使至於訟乎.” 答曰 “此篇實是訟之辭也.”
묻는 자가 바르고 진실한 교화가 일어남을 보고서, 부당한 송사가 있음을 괴이하게 여기었다. 그리하여 “백성의 뜻을 살펴 교화하는데 어찌 송사에 이르게 합니까?” 하고 물으니, 답하기를 “이 편은 실제로 송사하는 말이다.”라고 한 것이다.
由時民被化日久, 貞女不從, 男女故相與訟. 如是民被化日久, 所以得有彊暴者, 紂俗難革故也.
당시 백성이 교화를 받은 지 오래되어 정숙한 여인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男女가 이런 이유로 서로 소송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백성이 교화를 받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사나운 자가 있게 된 까닭은 풍속風俗을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言‘彊暴’者, 謂彊行無禮而陵暴於人. 經三章, 下二章, 陳男女對訟之辭, 首章言所以有訟, 由女不從男, 亦是聽訟之事也.
강포彊暴’는 억지로 무례無禮한 짓을 하여 남을 침해하여 해를 입히는 것을 이른다. 의 세 중에 두 번째, 세 번째 장은 남녀男女가 송사에 대응함을 묘사하는 말이고, 첫 번째 장은 송사가 있게 된 까닭이 여인이 남자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니, 역시 송사를 처리하는 일이다.
【疏】箋‘衰亂’至‘之時’
의 [쇠란衰亂]에서 [지시之時]까지
○正義曰:殷之末世, 故有衰亂之俗, 周之盛德, 故有貞信之敎, 指其人當文王與紂之時也.
정의왈正義曰나라 말기이므로 쇠란衰亂풍속風俗이 있는 것이고, 나라의 이 융성하였으므로 바르고 진실한 가르침이 있는 것이니, 그 사람들이 문왕文王의 때에 해당됨을 가리킨 것이다.
易曰 “易之興也, 當殷之末世, 周之盛德邪.” 當文王與紂之事, 此其文也.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 下〉에서 “이 일어남은 은나라가 쇠퇴한 때와 주나라의 덕이 융성할 때일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문왕文王의 일에 해당하니, 이것이 그 글이다.
厭浥行露 豈不夙夜리오마는 謂行多露니라
이슬 촉촉이 젖은 길 새벽과 밤에 다니고 싶지만 길에 이슬이 많은 걸요
【傳】興也 厭浥 濕意也 道也 豈不 言有是也
이다. 엽읍厭浥은 젖었다는 뜻이고, 은 길이다. 기불豈不은 ‘이러함이 있다’는 말이다.
【箋】箋云 夙 早也 厭浥然濕하여 道中始有露하니 謂二月中嫁取時也
전운箋云은 이른 아침이다. 촉촉이 젖어 길에 비로소 이슬이 맺혔으니, 2월 중 시집가고 장가갈 때를 이른다.
言我豈不知當早夜成昏禮與아하니 謂道中之露大多 故不行耳
내가 어찌 새벽과 밤에 혼례昏禮를 치르는 것을 모르겠는가 하였으니, 길에 이슬이 매우 많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今暴彊之男 以此多露之時 禮不足而彊來하여 不度時之可否
지금 사나운 남자가 이렇게 이슬이 많은 때에 예가 부족한데 억지로 와서 알맞은 때인지도 헤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故云然이라 周禮 仲春之月 令會男女之無夫家者라하고 行事必以昏昕이라하니라
주례周禮≫ 〈매씨媒氏〉에 중춘仲春에 남편과 아내가 없는 남녀男女를 만나게 한다고 하였고, ≪의례儀禮≫ 〈사혼례士婚禮〉에는 반드시 새벽과 밤에 일을 거행한다고 하였다.
○浥 本又作挹이라 昏昕 禮用昕하고 親迎用昏이라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혼흔昏昕은 다섯 번의 예는 아침에 거행하고, 친영親迎는 밤에 거행하는 것이다.
【疏】‘厭浥’至‘多露’
의 [엽읍厭浥]에서 [다로多露]까지
○毛以爲 厭浥然而濕, 道中有露之時, 行人豈不欲早夜而行也,
모형毛亨은 ‘촉촉이 젖어 길에 이슬이 맺힌 때이니, 행인이 어찌 새벽과 밤에 다니고 싶지 않겠는가.
有是可以早夜而行之道, 所以不行者, 以爲道中之露多, 懼早夜之濡己,
새벽과 밤에 다닐 수 있는 가 있는데도 다니지 않는 것은 길에 이슬이 많아 새벽과 밤에 자기를 젖게 할까 두려워해서이다.
故不行耳, 以興彊暴之男, 今來求己, 我豈不欲與汝爲室家乎,
그리하여 다니지 않는다.’는 것으로써, ‘사나운 남자가 지금 와서 자기에게 요구하니, 내가 어찌 너와 혼인하고 싶지 않겠는가.
有是欲與汝爲室家之道, 所以不爲者, 室家之禮不足, 懼違禮之汙身, 故不爲耳. 似行人之懼露, 喩貞女之畏禮.
너와 혼인하고자 하는 도리가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혼인의 예가 부족하여 예를 어겨 나를 더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 그리하여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행인이 이슬을 두려워하는 것은 정숙한 여인이 예를 두려워하는 것에 비유한 것과 같다.
○鄭以爲 昏用仲春之月, 多露之時而來, 謂三月․四月之中, 旣失時而禮不足, 故貞女不從.
정현鄭玄은 ‘혼례는 중춘仲春에 행하는데 이슬이 많은 때에 왔으므로 3월이나 4월을 이르니, 때를 놓친데다 예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숙한 여인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고 여긴 것이다.
【疏】傳‘豈不 言有是’
의 [기불 언유시豈不 言有是]
○正義曰:傳解詩人之言豈不欲夙夜, 卽是有夙夜之意. 故云 ‘豈不 言有是’也.
정의왈正義曰에서 시인詩人의 말에 ‘어찌 새벽과 밤에 다니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한 것을 바로 새벽과 밤에 다닐 뜻이 있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기불 언유시豈不 言有是’라고 한 것이다.
【疏】箋‘道中’至‘昏昕’
의 [도중道中]에서 [혼흔昏昕]까지
○正義曰:知‘始有露’ 二月中者, 以二月․八月, 春․秋分, 陰陽中也. 禮九月霜始降, 八月仍有露也, 則二月始有露矣.
정의왈正義曰:‘시유로始有露’가 2월임을 안 것은 2월과 8월은 춘분春分추분秋分으로 음과 양이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9월에 서리가 비로소 내린다고 하였으니, 8월에는 여전히 이슬이 내린다. 그러고 보면 2월에 비로소 이슬이 내릴 것이다.
詩云 “兼葭蒼蒼 白露爲霜.” 是草旣成, 露爲霜, 則二月草始生, 霜爲露可知. 野有蔓草箋云 “仲春草始生, 霜爲露.” 是也.
진풍 겸가秦風 兼葭〉에 “갈대 푸르니 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라고 하였으니, 이는 풀이 다 자라날 때 이슬이 서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2월에 풀이 비로소 돋아날 때 서리가 이슬이 됨을 알 수 있다. 〈정풍 야유만초鄭風 野有蔓草〉의 에 “중춘仲春에 풀이 비로소 돋아나니 서리가 이슬이 되었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此述女之辭, 言汝以二月道中始有露之時, 以禮而來, 我豈不知早夜而與汝成昏禮與, 今我謂道中之露大多, 故不行從汝耳.
이는 여인의 말을 묘사한 것이니, ‘네가 2월에 길 가운데 비로소 이슬이 내릴 때에 예로써 왔으면 내가 어찌 새벽과 밤에 너와 혼례昏禮를 치르는 것을 모르겠는가마는 지금 나는 길 가운데 이슬이 매우 많다고 여기기 때문에 너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言‘多露’者, 謂三月․四月也. 汝彊暴之男, 不以禮來, 雖二月來, 亦不可矣.
다로多露’는 3월과 4월을 말한다. 너는 사나운 남자라 예로써 오지 않았으니, 비록 2월에 왔더라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女因過時, 假多露以拒耳. 知‘禮不足而彊來’者, 下云室家不足, 明禮亦不足, 以女不從, 故以彊來也.
여인은 때가 지났기 때문에 이슬이 많은 것에 가탁하여 거부한 것이다. 가 부족한데 억지로 온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래에서 ‘혼인의 예가 부족하다.’고 했으니, 분명 예 또한 부족하여 여인이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억지로 온 것’이라 한 것이다.
【疏】引周禮者, 地官媒氏職云 “仲春之月令會男女.” 又曰 “司男女之無夫家者而會之.”
인용한 ≪주례周禮≫의 글은 〈지관 매씨직地官 媒氏職〉의 “중춘仲春남녀男女를 모이게 한다.”와 또 “남편과 아내가 없는 남녀男女들을 살펴 모이게 한다.”이다.
彼‘無夫家’與‘令會男女’文不相連, 此幷引之者, 周禮云‘令會男女’, 謂初昏者也, ‘司男女之無夫家者而會之’, 謂矜寡者也, 以二者不同,
저 ‘남편과 아내가 없는 자’와 ‘남녀男女를 모이게 한다.’는 글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데도 여기서 같이 인용한 것은 ≪주례周禮≫의 ‘남녀男女를 모이게 한다.’는 초혼자를 말하고, ‘남편과 아내가 없는 남녀男女들을 살펴 모이게 한다.’는 과부와 홀아비를 말하니, 두 가지가 다르다.
故別其文, 其實初昏及矜寡, 皆是男女之無夫家者. 此及野有蔓草箋云周禮者, 引其事, 不全用其文,
그리하여 글을 달리하였으나 실제로는 초혼자와 과부와 홀아비는 모두 남편과 아내가 없는 남녀이다. 여기와 〈야유만초野有蔓草〉의 에서 ≪주례周禮≫를 언급한 것은 그 일을 인용한 것이지 그 글을 전부 인용한 것은 아니다.
故幷‘無夫家者’引之, 是男無家, 女無夫, 男女相對, 男得夫, 女得家, 以男女所以成家, 周禮云‘’ 是也.
그리하여 남편과 아내가 없는 자까지 같이 인용하였으니, 이는 남자는 아내가 없고 여인은 남편이 없는 경우인데, 남녀男女가 서로 만나 남자는 아내를 얻고 여인은 남편을 얻어 남녀가 가정을 이루니, ≪주례周禮≫ 〈지관 사도地官 司徒〉에 ‘남녀의 많고 적음’이라 한 것이 이것이다.
此引周禮者, 辨女令男以始有露之時來之意, 由此始有露會無夫家者故也.
여기서 ≪주례周禮≫를 인용한 것은 여인이 남자로 하여금 이슬이 비로소 내릴 때 오라는 뜻을 분별한 것이니, 이는 이슬이 비로소 내릴 때 남편과 아내가 없는 자를 모이게 하였기 때문이다.
【疏】‘行事必以昏昕’, 儀禮文也, 彼注云 “用昕, 女也, 用昏, 壻也.”
행사필이혼흔行事必以昏昕’은 ≪의례儀禮≫ 〈사혼례士婚禮〉의 글인데, 그 에 “새벽에 예를 행하는 것은 딸이고, 밤에 예를 행하는 것은 사위이다.”라고 하였고,
匏有苦葉箋云 “納采至請期用昕.” 明其女也, “親迎用昏.” 明是壻也, 經言夙卽昕也, 夜卽昏也.
패풍 포유고엽邶風 匏有苦葉〉의 에 “납채納采로부터 청기請期까지는 새벽에 예를 거행한다.”라고 하였으니 딸임이 분명하고, “친영親迎은 밤에 거행한다.”라고 하였으니 사위임이 분명하다. 에서 말한 ‘’은 바로 ‘’이고, ‘’는 바로 ‘’이다.
經所以夙夜兼言者, 此彊暴之男, 以多露之時, 禮不足而彊來, 則是先未行禮.
에서 ‘숙야夙夜’를 아울러 말한 것은 이 사나운 남자가 이슬이 많을 때에 예가 부족한데도 억지로 왔기 때문이니, 이는 먼저 예를 행하지 않은 것이다.
今以俱來, 雖則一時, 當使女致其禮以昕, 壻親迎以昏.
지금 〈예를〉 갖추어 왔다면 비록 같은 절기이나 응당 여인은 새벽에 예를 거행하게 하고, 사위는 밤에 친영親迎하게 해야 한다.
今行多露, 失時也, 禮不足而來彊暴, 故貞女拒之, 云“汝若仲春以禮而來, 我豈不旦受爾禮, 夕受爾迎,
그런데 지금 이슬이 많은 때에 왔으니 때를 놓친 것이고, 예가 부족한데도 와서 사납게 하였으므로 정숙한 여인이 거부하여 “네가 만약 중춘仲春에 예로써 왔다면 내가 어찌 아침에 너의 예를 받지 않겠으며, 저녁에 너의 맞이함을 받지 않겠는가?
何故不度時之可否, 今始來乎, 旣不受其禮, 亦不受其迎.” 故夙夜兼言之.
무슨 까닭으로 때가 맞는지 헤아리지도 않고 지금에야 왔는가? 그 예를 받지 않고, 그 맞이함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니, 그리하여 ‘숙야夙夜’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誰謂雀無角이리오 何以穿我屋고하며
누가 참새에 뿔이 없다 하는가 어떻게 내 지붕 뚫었겠는가 하며
誰謂女無家리오 何以速我獄고하니
누가 네게 혼인의 예 없다고 하는가 어떻게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는가 하니
【傳】不思物變而推其類하여 雀之穿屋 似有角者 埆也
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유추類推하여 참새가 지붕을 뚫은 것은 뿔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다. 은 ‘부름’이고, 은 ‘다툼’이다.
【箋】箋云 女 彊暴之男
전운箋云는 ‘너’이니, 사나운 남자가 변이變異한 것이다.
人皆謂雀之穿屋 似有角이요 彊暴之男 召我而獄 似有室家之道於我也
사람들은 모두 참새가 지붕을 뚫은 것은 뿔이 있는 것과 같고, 사나운 남자가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는 것은 나에게 혼례의 도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物有似而不同하니 雀之穿屋 不以角이요 乃以咮
그러나 은 유사해보이나 다른 것이 있으니, 참새가 지붕을 뚫는 것은 뿔이 아니라 부리이며,
今彊暴之男 召我而獄 不以室家之道於我 乃以侵陵이니 物與事有似而非者 士師所當審也
지금 사나운 남자가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는 것은 나에게 혼례의 도리로 한 것이 아니라 침해한 것이니, 물건과 일이 유사해보이나 다른 것을 사사士師가 마땅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穿 本亦作䆤이라 盧植云 相質觳爭訟者也라하고
穿은 ‘’으로 쓰여 있는 도 있다. 노식盧植은 “서로 대질하여 쟁송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云埆者埆正之義라하고 一云 獄名이라하니라 本亦作噣하니 鳥口也
최영은崔靈恩은 “은 다투어 바로잡는다는 뜻이다.”라고 하고, 혹은 의 이름이라 하였다. 는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새의 부리이다.
雖速我獄이나 室家不足이니라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지만 혼례의 예는 부족하였네
【傳】昏禮 純帛 不過五兩이라
혼례昏禮치백純帛은 5을 넘지 못한다.
【箋】箋云 幣可備也 室家不足 謂媒妁之言不和하여 六禮之來彊委之
전운箋云폐백幣帛은 갖추었다. 실가부족室家不足은 〈중매인이 중매하였으나〉 중매인의 말에 화답하지 않아서 억지로 육례六禮로 떠맡긴 것을 말한다.
○䊷帛이니 後人遂以才爲屯하여 因作純字 謀也 云 妁 酌也라하니라
○〈치백純帛은〉 䊷帛이니, 후인後人들이 ‘’를 ‘’으로 여겨서 ‘’자로 쓴 것이다. 는 도모함이고, 은 ≪광아廣雅≫에 “은 짐작함이다.”라고 하였다.
【疏】‘誰謂’至‘不足’
의 [수위誰謂]에서 [부족不足]까지
○正義曰:此彊暴之男, 侵陵貞女, 女不肯從, 爲男所訟. 故貞女與對, 此陳其辭也,
정의왈正義曰:이는 사나운 남자가 정숙한 여인을 침해하여 욕을 보이려 하였으므로 여인이 따르지 않아서 남자에게 송사를 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숙한 여인이 남자를 상대하여 이 말을 한 것이다.
言人誰謂雀無角乎, 以其雀若無角, 何以得穿我屋乎, 以雀之穿屋似有角.
누가 참새에게 뿔이 없다고 하는가. 참새가 뿔이 없다면 어떻게 내 지붕을 뚫었겠는가. 참새가 지붕을 뚫은 것은 뿔이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故謂雀之有角, 以言人誰謂汝於我無室家乎, 以其汝若於我無室家, 何以故召我而獄也,
그리하여 참새에게 뿔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써, 누가 네가 나에게 혼례의 도리가 없었다고 하는가. 네가 나에게 혼례의 도리가 없었다면 무슨 까닭으로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겠는가.
見召我而獄, 似有室家之道於我. 故謂之有室家之道. 然事有相似而不同, 雀之穿屋, 不以角, 乃以咮,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는 것을 보면 나에게 혼례의 도리가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혼례의 도리가 있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일에는 서로 유사해보이나 다른 것이 있어 참새가 지붕을 뚫는 것은 뿔이 아니라 부리로 했으며,
召我而獄, 不以室家之道於我, 乃以侵陵,〮 穿屋之物․速獄之事二者, 皆有似而實非, 士師今日當審察之,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는 것은 나에게 혼례의 도리가 아니라 침해하려 했으니, 지붕을 뚫는 물건과 불러 옥송獄訟하는 일, 이 두 가지는 모두 유사해보이나 실제로는 다르므로 사사士師는 오늘 마땅히 살펴야 하는 것이다.
何者, 此彊暴之男, 雖召我來至, 與我埆實其情, 而室家之道不足, 己終不從之.
어째서인가. 이 사나운 남자가 비록 나를 불러내 나와 그 실정을 다투지만, 혼례의 도리가 부족하였으므로 내가 끝내 따르지 않는 것이다.
【疏】傳‘不思’至‘獄埆’
의 [불사不思]에서 [옥각獄埆]까지
○正義曰:不思物有變, 彊暴之人見屋之穿, 而推其類, 謂雀有角, 所以謂雀有角者, 見雀之穿屋似有角故也.
정의왈正義曰에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나운 남자가 지붕이 뚫린 것을 보고 유추類推하여 참새에게 뿔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참새에게 뿔이 있다고 여긴 까닭은 참새가 지붕을 뚫은 것이 뿔이 있는 것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下傳曰 “視牆之穿, 而推其類, 可謂鼠有牙.” 明此亦見穿屋室, 而推其類, 可謂雀有角, 此是不思物變之人.
아래의 에서 “담장이 뚫린 것을 보고 유추類推하여 쥐에게 어금니가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분명 여기서도 집의 지붕이 뚫린 것을 보고 유추類推하여 참새에게 뿔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것이니, 이는 이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다.
‘獄 埆’者, 云 “獄者, 埆也. 囚證於埆核之處, 周禮之.” 然則獄者, 核實道理之名, 皐陶造獄, 謂此也.
옥 각獄 埆’은 정현鄭玄의 ≪박오경이의駁五經異義≫에서 “이다. 증인을 조사하는 곳에 수감하는 것이니, ≪주례周禮≫ 〈추관 사구秋官 司寇〉에서 말한 원토圓土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은 사실을 조사하여 다스리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니, 고요皐陶을 만든 것은 이것을 이른다.
旣囚證未定, 獄事未決, 繫之於圓土, 因謂圓土亦爲獄, 此章言獄, 下章言訟.
증인을 수감하는 것이 정해지지 않았고 옥사獄事도 결정나지 아니하여, 원토圓土에다 붙들어 둔 것이기 때문에 원토圓土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라고 하고, 아래 장에서는 ‘’이라고 하였다.
司寇職云 , 則獄․訟異也,
주례周禮≫ 〈사구직司寇職〉의 “소송하는 양쪽을 불러 소송訴訟을 엄하게 한다.[양조초민송兩造楚民訟]”와 “양쪽이 권서券書(증서)를 제출하여 옥사獄事를 엄하게 한다.[양자초민옥兩劑楚民獄]”는 대문對文이니, 그렇다면 은 뜻이 다르다.
故彼注云 ‘訟謂以財貨相告者’․‘獄謂相告以罪名’, 是其對例也, 散則通也.
그리하여 그 에서 “재화財貨로 인하여 서로 고발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고, “죄명罪名으로 서로를 고발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대문對文의 사례이니, 같이 쓰면 의미가 서로 통한다.
此詩亦無財罪之異, 重章變其文耳, 故序云‘聽訟’以摠之.
재화財貨죄명罪名의 다름이 없어 을 거듭하여 글을 바꾸어 쓴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에서 ‘청송聽訟’이라 하여 총괄한 것이다.
【疏】箋‘物與’至‘當審’
[물여物與]에서 [당심當審]까지
○正義曰:‘物’謂雀穿屋, ‘事’謂速我獄, 二者皆有似也.
정의왈正義曰:‘’은 참새가 지붕을 뚫은 것을 말하고, ‘’는 나를 불러 옥송獄訟하는 것을 말하니, 두 가지는 모두 유사하다.
穿屋似用角, 速獄似有室家也, 而非者, 穿乃用咮, 獄乃侵陵, 士師當審察之. 此召伯謂之士師者, 以其聽訟, 故以獄官言之.
지붕을 뚫은 것이 뿔을 사용한 것 같고, 불러 옥송獄訟하는 것이 혼인의 예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것은 뚫을 때는 부리를 사용하고, 옥송獄訟한 것은 침해하려 하였기 때문이니, 사사士師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여기서 소백召伯사사士師라고 한 것은 그가 청송聽訟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옥관獄官으로 말한 것이다.
士師注云 “士, 察也, 主審察獄訟之事者.” 其職曰 “察獄訟之辭以詔司寇.”
주례周禮≫ 〈추관 사사秋官 士師〉의 에서 “는 살핌이니, 옥송獄訟을 자세히 살피는 일을 주관하는 자이다.”라고 하였고, 그 직무는 “옥송獄訟의 말을 살펴 사구司寇에게 고한다.”라고 하였으니,
鄭以士師有察獄之事, 因言‘士師所當察’, 非召伯卽爲士師也.
정현鄭玄사사士師에게 옥송獄訟을 살피는 일이 있다고 여겨서 ‘사사士師가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한 것이지, 소백召伯을 곧 사사士師라 한 것은 아니다.
大車云‘古者大夫出聽男女之訟’, 則王朝之官皆得出外聽訟, 不必要爲士師矣.
왕풍 대거王風 大車〉에서 ‘옛날에 대부大夫가 나가 남녀男女의 송사를 판결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조정의 관리가 모두 밖으로 나가 송사를 판결한 것이니, 〈송사를 판결하는 자가〉 반드시 사사士師일 필요는 없다.
且士師, 司寇之屬, 佐成司寇者也, 寧召伯公卿所當爲乎.
사사士師사구司寇의 소속으로 사구司寇를 돕는 자인데, 어찌 공경公卿소백召伯이 할 바이겠는가.
【疏】傳‘昏禮’至‘五兩’
의 [혼례昏禮]에서 [오량五兩]까지
○正義曰:此媒氏文也, 引之者, 解經言不足之意.
정의왈正義曰:이는 ≪주례周禮≫ 〈매씨媒氏〉의 글인데, 이것을 인용한 것은 에서 말한 ‘부족不足’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以禮言‘純帛不過五兩’, 多不過之, 則少有所降耳. 明雖少, 而不爲不足.
주례周禮≫에서 말한 ‘치백불과오량純帛不過五兩’은 많아도 5을 넘지 않는 것이니, 그렇다면 작게는 줄일 수 있다. 비록 적으나 부족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不足’者, 謂事不和, 同彊暴之謂. 故箋申傳意, 乘其文而爲之說云‘幣可備也’,
부족不足’은 일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것이니, 사납다는 말과 같다. 그리하여 에서 거듭 의 뜻을 말하여 그 글을 이어서 말하기를 ‘폐백은 갖추었다.’고 한 것이니,
‘室家不足 謂媒妁之言不和 六禮之來彊委之’, 是非謂幣不足也.
실가부족 위매작지언불화室家不足 謂媒妁之言不和 육례지래강위지六禮之來彊委之’는 폐백이 부족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疏】媒氏注云 “純, 實緇字, 古緇以才爲聲. 納幣用緇, 婦人, 陰也, 凡於娶禮, 必用其類.
주례周禮≫ 〈매씨媒氏〉의 에 “는 실제 ‘’자이니, 옛날에는 재성才聲으로 읽었다. 납폐納幣에는 검은 비단[]을 사용하였으니, 부인婦人이므로 아내를 맞이하는 예에는 반드시 같은 종류를 사용한 것이다.
五兩, 十端也, 必言兩者, 欲得其配合之名, 也.
5은 10이니, 반드시 ‘’이라 한 것은 짝을 맞추는 이름을 얻고자 한 것이고, 10은 오행五行이 10일로 이루어짐을 상징한 것이다.
士大夫乃以, 天子加以穀圭, 諸侯加以大璋.
사대부士大夫는 검은색과 분홍색의 속백束帛을 쓰니, 천자天子는 여기에 곡규穀圭를 더하고, 제후諸侯대장大璋을 더한다.
雜記曰 ‘納幣一束, 束五兩, 兩五尋.’” 注云 “十箇爲束, 貴成數也.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납폐納幣는 1이고, 1은 5이며, 1의 길이는 5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서 “10개가 1이니, 성수成數를 귀하게 여긴 것이다.
禮尙儉, 兩兩合其卷, 是謂五兩. 八尺曰尋, 一兩五尋, 則每卷二丈, 合爲四十尺.
는 검소함을 숭상하니 둘씩 짝을 이루어 말아놓은 비단[]을 묶어놓은 것을 5이라 한다. 8이 1이고, 1이 5이니, 매 마다 2이므로 합하면 40이 된다.
今謂之匹, 猶匹耦之云與.” 則純帛亦緇也, 傳取媒氏, 以故合其字, 定本作䊷字.
지금 이라고 하는 것은 짝지어놓는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치백純帛인데, 에서 ≪주례周禮≫ 〈매씨媒氏〉의 글을 취하여 일부러 그 글자에 맞추었으니, 정본定本에는 ‘’자로 되어 있다.
此五兩, 庶人禮也, 故士昏禮 “用玄纁束帛.” 注云 “用玄纁者, 象陰陽備也.” 然則庶人卑, 故直取陰類而已.
여기의 5서인庶人이다. 그리하여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 “검은색과 분홍색의 속백束帛을 쓴다.”의 에 “검은색과 분홍색을 쓰는 것은 이 갖추어짐을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서인庶人은 지위가 낮으므로 음류陰類만을 취한 것일 뿐이다.
大夫用幣, 無文, 準士昏而言, 玉人曰 “穀圭, 天子以娉女, 大璋, 諸侯以娉女.” 是天子諸侯加圭璋之文也.
대부大夫의 폐백 사용에 대하여는 다른 글이 없으므로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를 기준으로 하여 말한 것이다. ≪주례周禮≫ 〈옥인玉人〉에 “곡규穀圭천자天子가 신부에게 보내는 예물이고, 대장大璋제후諸侯가 신부에게 보내는 예물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천자天子제후諸侯을 더한다는 내용이다.
【疏】箋‘幣可’至‘委之’
의 [폐가幣可]에서 [위지委之]까지
○正義曰:知不爲幣不足者, 以男速女而獄, 幣若不備, 不得訟也.
정의왈正義曰:폐백이 부족하지 않음을 안 것은 남자가 여인을 불러 옥송獄訟했기 때문이니, 만약 폐백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송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以訟拒之, 明女不肯受, 男子彊委其禮, 然後訟之, 言女受己之禮而不從己, 故知‘幣可備’.
송사로써 거부하였으니, 분명 여인이 받으려 하지 않아서 남자가 억지로 그 예물을 떠맡긴 뒤에 송사한 것이다. 여인이 자기의 예물을 받고 자기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폐가비幣可備’를 안 것이라고 한 것이다.
而云不足, 明男女賢與不肖各有其耦, 女所不從, 男子彊來, 故云 ‘媒妁之言不和 六禮之來彊委之’, 是其室家不足也.
그런데 부족하다고 한 것은 남녀는 불초不肖에 따라 합당한 짝이 있는데 여인이 따르지 않자 남자가 억지로 온 것을 밝힌 것이다. 그리하여 ‘매작지언불화 육례지래강위지媒妁之言不和 六禮之來彊委之’라고 한 것이니, 이것이 혼인의 예가 부족한 것이다.
野有死麕箋云 “不由媒妁.” 知此有媒妁者, 以此相訟, 明其使媒, 但不和而致訟耳.
소남 야유사균召南 野有死麕〉의 에서는 “중매인을 통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중매인이 있음을 안 것은 서로 송사하였기 때문이니, 중매인이 중매하였으나 화답하지 아니하여 송사에 이르게 된 것이 분명하다.
野有死麕 以亂世民貧, 思麕肉爲禮, 明無媒可知, 箋云 “劫脅以成昏.” 與此不同也.
소남 야유사균召南 野有死麕〉은 난세에 백성이 가난하여 노루 고기를 예물로 삼을 것을 생각한 것이니 분명 중매인이 없음을 알 수 있고, 그 에서 “위협하여 혼례를 치룬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와는 다르다.
言‘媒妁’者, 說文云 “媒, 謀也. 謀合二姓, 妁酌也, 斟酌二姓.”
매작媒妁’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는 도모함이니 이성二姓을 합침을 도모하는 것이고, 은 헤아림이니 이성二姓이 합당한 배필인지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疏】‘六禮之來彊委之’者, 謂以, 女雖不受, 彊留委置之,
육례지래강위지六禮之來彊委之’는 안폐鴈幣의 예물을 여인이 받지 않았지만 억지로 떠맡겨둔 것임을 말한 것이다.
故左傳昭元年云 “徐吾犯之妹美. 公孫楚娉之矣, 公孫黑又使彊委禽焉.” 是也.
그리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 원년昭公 元年에 “서오범徐吾犯의 누이가 미인美人이었다. 공손초公孫楚가 혼인을 허락받고 납폐의 예물을 보냈는데, 공손흑公孫黑이 또 억지로 기러기를 맡겨 청혼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此貞女不從, 明亦以六禮委之也. 六禮者, 納采至親迎, 女旣不受, 可彊委之.
이는 정숙한 여인이 따르지 않은 것이니, 분명 이 역시 육례六禮를 빌미로 떠맡긴 것이다. 육례六禮납채納采로부터 친영親迎까지인데, 이때에 예물을 여인이 받지 않으므로 억지로 맡긴 것이다.
納采之鴈, 則女不告名, 無所卜, 無問名, 納吉之禮, 納徵之幣, 可彊委, 不和, 不得請期, 期不從, 不得親迎.
납채納采의 예에 여인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길함을 점칠 것도 없고 문명問名도 없으며, 또 납길納吉납징納徵폐백幣帛을 억지로 맡겼으면 응하지 아니하여 청기請期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청기請期를 따르지 않으면 친영親迎도 할 수 없을 것이다.
言‘六禮之來彊委’者, 以方爲昏, 必行六禮. 故以六禮言之, 其實時所委者, 無六禮也, 不過鴈以納采, 幣以納徵耳.
육례지래강위六禮之來彊委’는 혼례를 치르고자 하면 필히 육례六禮를 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육례六禮로 말한 것이나, 실제로 이때 떠맡긴 것은 육례六禮를 행함은 없고, 기러기로 납채納采를 행하고, 폐백으로 납징納徵을 행하는 데 불과하였을 뿐이다.
女爲父母所嫁, 媒妁和否, 不由於己, 而經皆陳女與男訟之辭者, 以文王之敎, 女皆貞信, 非禮不動,
여인은 부모父母에 의해 혼인하니, 중매인의 화답 여부는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닌데도 에서 모두 여인과 남자가 송사하는 것으로 말한 것은 문왕文王의 교화로 여인들이 모두 정숙하여 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故能拒彊暴之男, 與之爭訟, 詩人假其事而爲之辭耳.
그리하여 사나운 남자를 거부하여 그와 송사한 것이니, 시인詩人이 그 일을 가탁하여 말한 것이다.
誰謂鼠無牙리오 何以穿我墉고하며
누가 쥐에게 어금니 없다 하는가 어떻게 내 담을 뚫었겠는가 하며
誰謂女無家리오 何以速我訟고하니
누가 네게 혼인의 예 없었다 하는가 어떻게 나에게 옥송獄訟하는가 하니
【傳】墉 牆也 視牆之穿하고 推其類하여 可謂鼠有牙
은 담이다. 담이 뚫린 것을 보고 유추類推하여 쥐에게 어금니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疏】傳‘墉 牆’
의 [용 장墉 牆]
○正義曰:釋宮云 “牆謂之墉.” 李巡曰 “謂垣牆也.” 郊特牲曰 是也.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궁釋宮〉에서 “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순李巡은 “은 담장을 말한다.”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서 “인군人君이 북쪽 담 아래에서 남면한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사직단社稷壇 안의 북쪽 담장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亦爲城, 王制注云 “小城曰墉.” 皇矣云 “以伐崇墉”, 義得兩通也.
도 되는데, ≪예기禮記≫ 〈왕제王制〉의 에서 “작은 이라 한다.”라고 하였고, 〈대아 황의大雅 皇矣〉에서 “을 쳤네.”라고 하였으니, 두 가지 다 뜻이 통한다.
雖速我訟이나 亦不女從하리라
비록 내게 송사하나 너를 따르진 않으리라
【傳】不從 終不棄禮而隨此彊暴之男이라
부종不從은 끝내 예를 버리고 이 사나운 남자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行露三章이니 一章 三句 二章 章六句
행로行露〉는 3이니, 첫 은 3이고, 뒤의 두 마다 6이다.
역주
역주1 (至)[五] : ≪經典釋文≫에 至가 ‘五’로 되어 있는 것에 의거하여 ‘五’로 번역하였다. 納采부터 請期까지 다섯 번의 禮는 아침[昕]에 거행하고 마지막 여섯 번째의 親迎은 저녁에 거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晦庵集≫ 〈答郭子從〉
역주2 夫家之衆寡 : 歲時에 司徒가 각 호의 남녀의 수를 파악하여 大司徒에게 보고한 것을 말한다. ≪周禮≫ 〈地官 司徒〉
역주3 (女)[汝] : 저본에는 ‘女’로 되어 있으나, 북경대본과 疏의 풀이에 의거하여 ‘汝’로 번역하였다.
역주4 變異也 : 變異는 같은 종류의 사물이 다른 성질이나 현상을 나타냄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남자가 겉으로는 혼인의 예를 갖춘 것 같으나 실제로는 여인을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5 : 梁나라의 학자 崔靈恩을 가리킨다. 三禮에 정통하였으며, 國子博士, 明威將軍, 桂州刺史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저서는 ≪集注毛詩≫, ≪集注周禮≫, ≪三禮義宗≫, ≪左氏經傳義≫, ≪左氏條例≫, ≪公羊穀梁文句義≫가 있다. ≪梁書 卷48 儒林列傳≫
역주6 廣雅 : 後魏의 문자학자 張揖이 ≪廣雅≫, ≪埤蒼≫을 지었다.
역주7 鄭異義駁 : 鄭玄이 지은 ≪駁五經異義≫이다. 後漢의 학자 許愼이 五經에 관한 古今의 說과 異義의 說을 수록하여 ≪五經異義≫를 편찬하였는데, 鄭玄이 이 책을 지어 ≪五經異義≫의 오류를 논박하였다.
역주8 圓土 : 둥글게 흙을 쌓고 담을 둘러 가벼운 죄인 등을 교화하는 수용시설이다. ≪周禮≫ 〈秋官 司寇〉에 “圓土에 부랑인을 모아 교화한다.[以圓土聚敎罷民]”고 하였고, ≪爾雅≫ 〈釋名〉에서 “獄은……또 圓土라고 부르는데, 흙을 쌓고 담을 둘러 그 모습이 둥근 것을 말한다.[獄……又謂之圓土 言築土表墻 其形圓也]”고 하였다.
역주9 兩造禁民訟 兩劑禁民獄 : ≪周禮≫ 〈秋官 司寇〉의 글로 “소송하는 양쪽을 오게 하여 송사를 엄하게 하여 양쪽이 화살 한단을 조정에 바치게 한 후에 판결을 내리고, 소송하는 양쪽에게 券書(증서)를 내게 하여 獄訟을 엄하게 하여 양쪽이 金 30斤을 바쳐 3일 안에 조정에 오게 한 후에 판결을 내린다.[以兩造 禁民訟 入束矢於朝 然後聽之 以兩劑 禁民獄 入鈞金 三日乃致於朝 然後聽之]”고 하였는데, 鄭玄은 注에서 “소송하는 양쪽을 오게 하여 양쪽이 와서 화살 한단을 내면 판결을 한다. 오지도 않고 화살 한단도 내지 않으면 이는 스스로 바르지 않음을 자복하는 것이니, 반드시 화살 한단을 내게 하는 것은 그 바름을 취한 것이다. 獄訟하고자 하는 자는 각각 증서를 제출하여 양쪽이 증서를 제출하고 金 30斤을 바치면 3일 안에 조정에 오게 하여 판결을 내린다. 중요한 형벌인데 증서를 내지 않고 金도 내지 않으면 이 또한 스스로 바르지 않음을 자복하는 것이니, 반드시 金을 내게 하는 것은 그 확고함을 취한 것이다.[使訟者兩至 旣兩至使入束矢 乃治之也 不至不入束矢則是自服不直者也 必入矢者 取其直也 使獄者各齎券書 旣兩券書使入鈞金 又三日乃治之 重刑也 不券書 不入金則是亦自服不直者也 必入金者 取其堅也]”고 하였다.
역주10 對文 : 수사법의 한 종류로 글자의 수가 같고 뜻이 대조되는 글자나 구절을 짝지어가며 문장을 이루는 방식이다.
역주11 十者象五行十日相成 : 五行十日은 각 五行마다 2日이 있으니, 즉 東方木은 甲․乙이고 南方火는 丙․丁이고 中央土는 戊․己이고 西方金은 庚․辛이고 北方水는 壬․癸이니 이것이 十日이다. 相成은 木八이 金九의 妻가 되고 火七이 水六의 妻가 되고 土十이 木八의 妻가 되고 金九가 火七의 妻가 되고 水六이 土五의 妻가 되니 이것이 夫妻가 相成하는 수이다.[左傳云 天有六氣 降生五行 行各有二日 東方木爲甲乙 南方火爲丙丁 中央土爲戊己 西方金爲庚辛 北方水爲壬癸 是十日 言相成者 木八爲金九妻 火七爲水六妻 土十爲木八妻 金九爲火七妻 水六爲土五妻 所克者爲妻 是夫妻相成之數] ≪周禮注疏≫
역주12 玄纁束帛 : 納徵에 신부에게 보내는 비단 예물을 말한다. ≪儀禮≫ 〈士昬禮〉에서 “納徵에는 검은색과 분홍색의 束帛과 두 장의 사슴 가죽을 사용하는데, 納吉의 예처럼 한다.[納徵 玄纁束帛 儷皮 如納吉禮]”라고 하였다. 束帛은 비단 다섯 필을 각각 양 끝에서 말아 한 묶음으로 한 것을 말한다.
역주13 鴈幣 : 六禮 중 다섯 가지 禮에서 기러기를 잡고 예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儀禮註疏≫에서 “昏禮에는 六禮가 있는데 다섯 가지 禮에서 기러기를 사용하니, 納采․問名․納吉․請期․親迎이 이것이다. 納徵에 기러기를 쓰지 않는 것은 가져갈 폐백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昏禮有六 五禮用雁 納采 問名 納吉 請期 親迎 是也 唯納徵不用雁 以其自有幣帛可執故也]”라고 하였고, ≪周禮≫ 〈大宗伯〉에서 “禽獸로 여섯 가지 예물을 삼는데, 卿은 염소를, 大夫는 기러기를, 士는 꿩을 예물로 삼는다.[以禽作六摯 卿執羔 大夫執鴈 士執雉]”라고 하였다.
역주14 君南……北牆 : ≪禮記正義≫에서 “사직단에서 土神에게 祭를 지내는 것은 陰氣를 주로 한 것이고, 그 祭에서 人君이 북쪽 담 아래에서 남면하는 것은 陰에 답하는 뜻이다. 담장을 墉이라 하니, 北墉은 社稷壇 안의 북쪽 담장이다.[社祭土而主陰氣也 君南鄕於北墉下 答陰之義也 牆謂之墉 北墉 社內北牆]”라고 하였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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