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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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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麟之趾 關雎之應也 關雎之化行이면 則天下無犯非禮하여 雖衰世之公子라도 皆信厚如麟趾之時也
인지지麟之趾〉는 〈관저關雎〉의 공효功效를 읊은 시이다.〈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지면 천하에 무례를 범하는 이가 없어 비록 쇠미한 세상의 공자公子라도 모두 성실하고 후덕함이 〈인지지麟之趾〉의 때와 같은 것이다.
【箋】關雎之時 以麟爲應이라 後世雖衰 猶存關雎之化者 君之宗族猶尙振振然하여 有似麟應之時 無以過也일새라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졌던 때에는 기린을 교화의 효험으로 여겼다. 후세에 비록 쇠미해졌으나 아직도 〈관저關雎〉의 교화가 보존된 것은 군주의 종족이 오히려 아직 인후하여 기린이 응하던 때와 비슷하였지만 〈기린을 나오게 하던 때보다는〉 더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麟 瑞獸也 草木疏云 麕身牛尾馬足이요 黃色이며 員蹄一角이로되 角端有肉이라
은 상서로운 짐승이다. 육기陸璣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 “고라니 몸에 소의 꼬리며 말의 발이고 황색이며 발굽이 둥글고 뿔은 하나인데, 뿔끝에 살이 있다.
音中鍾呂 行中規矩하니 王者至仁이면 則出이라하니라 服虔注左傳云 則麒麟至라하니라
소리는 종려鍾呂에 맞고 걸음걸이는 법도에 맞는 짐승인데, 왕이 지극히 어질면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복건服虔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보는 것이 밝고 가 행해지면 기린이 나온다.”라고 하였다.
序本或直云麟趾하고 無之字 止本亦作趾 兩通之 應對之應 序注及下傳應禮同이라
에 혹 ‘인지麟趾’라고만 하고 ‘’자가 없는 본이 있다. 로 쓴 도 있는데, 둘은 통용한다. 은 ‘응대應對’의 이니, 및 아래 의 ‘응례應禮’도 같다.
【疏】‘麟之趾(三章章三句)’至‘之時’
의 [인지지麟之趾]에서 [지시之時]까지
○正義曰:此麟趾處末者, 有關雎之應也. 由后妃關雎之化行, 則令天下無犯非禮.
정의왈正義曰:이 〈인지지麟之趾〉를 주남周南의 끝에 둔 것은 〈관저關雎〉의 공효功效가 있어서이다. 후비后妃로 말미암아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지면 천하에 무례를 범하는 이가 없게 된다.
天下旣不犯禮, 故今雖衰世之公子, 皆能信厚, 如古致麟之時, 信厚無以過也.
천하에 예를 범하는 이가 없으므로 지금 비록 쇠미한 세상의 공자라도 모두 그 미덥고 후덕함이, 옛날 기린을 나오게 하던 때와 비슷하였으나 미덥고 후덕함이 〈기린을 나오게 하던 때보다는〉 더하지 못하였다.
‘關雎之化’, 謂螽斯以前, ‘天下無犯非禮’, 桃夭以後也. 雖衰世之公子, 皆信厚如麟趾之時, 此篇三章, 是也.
관저지화關雎之化’는 〈주남 종사周南 螽斯〉 이전을 말하고, ‘천하무범비례天下無犯非禮’는 〈주남 도요周南 桃夭〉 이후이다. 비록 쇠미한 세상의 공자라도 모두 미덥고 후덕함이 〈인지지麟之趾〉의 때와 같으니, 이 편 세 의 시가 이것이다.
此篇處末, 見相終始, 故歷序前篇, 以爲此次. 旣因有麟名, 見若致然, 編之處末, 以法成功也.
이 편을 주남의 끝에 둔 것은 〈주남 관저周南 關雎〉와 서로 종시終始가 됨을 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전의 시편을 하나하나 차례 짓고서 이 편을 여기에 둔 것이다. 이미 있던 기린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기린을 나오게 한 때와 〈덕이 같음을 보이되〉 의 끝에 둔 것은 교화의 효과를 본받게 하려 해서이다.
此篇本意, 直美公子信厚似古致麟之時, 不爲有關雎而應之.
이 편의 본의는 다만 공자公子의 미덥고 후덕함이 옛날 기린을 나오게 한 때와 같음을 찬미한 것이지, 〈관저關雎〉의 덕이 있어서 기린의 응험이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大師編之以象應, 敘者述以示法耳. 不然, 此豈一人作詩, 而得相顧以爲終始也.
태사가 교화의 응험으로 여겨 편집한 것(끝에 둔 것)에 대해, 를 지은 이가 기술하여 법을 보인 것일 뿐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 어찌 한 사람이 시를 지으면서 편들을 살펴가며 종시終始가 되도록 할 수 있었겠는가.
又使天下無犯非禮, 乃致公子信厚, 是公子難化於天下, 豈其然乎. 明是編之以爲示法耳.
또 가령 천하에 무례를 범하는 이가 없게 된 뒤에야 마침내 공자公子들이 미덥고 후덕하게 된 것이라면 이 공자公子는 천하에 교화시키기 어려운 자가 되니 어찌 그렇겠는가. 이는 분명 법을 보이도록 편집한 것일 뿐이다.
【疏】箋‘關雎’至‘以過’
의 [관저關雎]에서 [이과以過]까지
○正義曰:箋欲明時不致麟, 信厚似之, 故云‘關雎之時 以麟爲應’, 謂古者太平, 行關雎之化, 至極之時, 以麟爲瑞.
정의왈正義曰은 이때에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미덥고 후덕함이 기린의 응험이 있던 때와 같았음을 밝히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관저지시 이린위응關雎之時 以麟爲應’이라 하였으니, 옛날 태평하여 〈관저關雎〉의 교화가 지극히 행해지던 때에는 기린을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음을 말한 것이다.
‘後世雖衰’, 謂紂時有文王之敎, 猶存關雎之化, 能使君之宗族振振然, 信厚如麟應之時, 無以過也.
후세수쇠後世雖衰’는 주왕紂王 때에 문왕의 교화가 있어 그래도 〈관저關雎〉의 교화가 보존되어 군주의 종족으로 하여금 미덥고 후덕하게 할 수 있었으니, 공자公子들의 미덥고 후덕함이 기린의 응험이 있던 때와 같았으나 〈기린을 나오게 하던 때보다는〉 더하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信厚如麟時, 實不致麟, 故張逸問麟趾義云 “關雎之化, 則天下無犯非禮, 雖衰世之公子, 皆信厚, 其信厚如麟趾之時.
그들의 미덥고 후덕함이 기린의 응험이 있던 때와 같았던 것이지, 실제로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장일張逸이 〈인지지麟之趾〉의 뜻에 대하여 묻기를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지면 천하에 무례를 범하는 이가 없게 되니, 비록 쇠미한 세상의 공자公子라도 모두 미덥고 후덕하여, 그 미덥고 후덕함이 〈인지지麟之趾〉의 때와 같습니다.
箋云‘喩今公子亦信厚, 與禮相應, 有似於麟’, 唯於此二者時, 關雎之化致信厚, 未致麟.”
에서 ‘지금의 공자公子들도 미덥고 후덕하여 와 상응하여 기린과 같은 점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관저關雎〉와 〈인지지麟之趾〉의 두 때에 〈관저關雎〉의 교화가 공자公子들을 미덥고 후덕하게 한 것이지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은 아니겠습니다.”라고 하자,
答曰 “衰世者, 謂當文王與紂之時, 而周之盛德, 關雎化行之時, 公子化之, 皆信厚與禮合,
답하기를 “쇠미한 세상이란 문왕文王주왕紂王 때를 말하는데, 나라의 성대한 덕으로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진 때에 공자公子가 그에 교화되어 모두 미덥고 후덕함이 와 부합하였으나,
古太平致麟之時, 不能過也. 由此言之, 不致明矣.”
옛날 태평하여 기린을 나오게 하던 때보다는 더하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말해보면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라고 하였다.
【疏】鄭言古太平致麟之時者, 案中候握河紀云 “帝軒題象, 麒麟在囿.” 又唐傳云 “堯時, 麒麟在郊藪.”
정현鄭玄이 말한 ‘옛날 태평하여 기린을 나오게 하던 때’란 살펴보면, ≪상서중후尙書中候≫ 〈악하기握河紀〉에는 “황제 헌원씨黃帝 軒轅氏제위帝位에 있을 때에 기린이 원림園林에 있었다.” 하고, 또 ≪상서대전尙書大傳≫ 〈당전唐傳〉에는 “임금 때에 기린이 교외 초원에 있었다.” 하고,
又孔叢云 “唐․虞之世, 麟․鳳遊於田.” 由此言之, 黃帝․堯․舜致麟矣.
또 ≪공총자孔叢子≫에는 “우시대虞時代에 기린과 봉황이 들에서 노닐었다.”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말해본다면 황제黃帝임금 때에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이다.
然感應宜同, 所以俱行關雎之化, 而致否異者, 亦時勢之運殊.
그러나 감응함이 의당 같은 것은 모두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졌기 때문인데, 영물의 출현 여부에 차이가 있는 것은 시세時勢운수運數가 달랐기 때문이다.
古太平時, 行關雎之化至極, 能盡人之情, 能盡物之性, 太平化洽, 故以致麟.
옛 태평 시대에는 〈관저關雎〉의 교화가 지극히 행해져 인정人情을 다 실현하고 물성物性을 온전히 할 수 있어서 태평하고 흡족하였다. 그리하여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이다.
文王之時, 殷紂尙存, 道未盡行, 之瑞不能悉至. 序云‘衰世之公子’, 明由衰, 故不致也.
그러나 문왕 때에는 나라의 주왕紂王이 아직 제위帝位에 있어서 가 다 실현되지 못하여 상서로운 네 영물이 모두 이를 수가 없었다. 에서 ‘쇠세지공자衰世之公子’를 말한 것은 쇠미하기 때문에 영물을 나오게 하지 못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成․康之時, 天下太平, 亦應致麟, 但無文證, 無以言之.
성왕成王강왕시대康王時代에는 천하가 태평하여 또한 응당 기린을 나오게 하였을 것인데, 다만 증거할 기록이 없어 말할 수 없다.
孔子之時, 所以致麟者, 自爲, 非化洽所致, 不可以難此也.
공자孔子의 시대에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은 응당 제작制作공효功效인 것이지 교화가 흡족하여 나오게 된 것이 아니니, 이 점(시세時勢운수運數가 다른 점)을 논란해서는 안 된다.
三章皆以麟爲喩, 先言麟之趾, 次定․次角者, 麟是走獸, 以足而至, 故先言趾, 因從下而上, 次見其額, 次見其角也.
세 장이 모두 기린으로 비유한 것인데, 먼저 기린의 발을 말하고 그 다음에 이마를, 그 다음에는 뿔을 말한 것은 기린이 길짐승이라 발로 오기 때문에 먼저 발을 말하고 나서, 아래로부터 올라가 차례로 그 이마를 나타내고, 그 뿔을 나타낸 것이다.
同姓疎於同祖, 而先言姓者, 取其與定爲韻, 故先言之.
동성同姓동조同祖보다 먼데도 에서 먼저 을 말한 것은 과 운자가 됨을 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을 말한 것이다.
麟之趾 振振公子로다
기린의 발이여 미덥고 후덕한 공자로다
麟(≪毛詩品物圖攷≫)麟(≪毛詩品物圖攷≫)
【傳】興也 足也 以足至者也 振振 信厚也
이다. 는 발이다. 기린은 〈오덕五德의〉 으로 효응效應이니, 발로 오는 짐승이다. 진진振振은 미덥고 후덕함이다.
【箋】箋云 興者 喩今公子亦信厚 與禮相應하여 有似於麟이라
전운箋云한 것은 지금의 공자公子도 미덥고 후덕함이 와 상응하여 기린과 같은 점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相應 當也
상응相應은 ‘마땅함’이다.
于嗟麟兮
아, 기린이여
【傳】于嗟 歎辭
우차于嗟’는 감탄하는 말이다.
【疏】‘麟之’至‘麟兮’
의 [인지麟之]에서 [인혜麟兮]까지
○正義曰:言古者麟之趾, 猶今之振振公子也. 麟之爲獸, 屬信而應禮, 以喩今公子亦振振然, 信厚與禮相應.
정의왈正義曰:옛날의 ‘인지지麟之趾’가 지금의 인후한 공자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기린이라는 짐승은 오덕五德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가 시행된 효응이니, 지금의 공자가 또한 진실하여 미덥고 후덕한 모습이 예와 상응함을 비유한 것이다.
言公子信厚, 似於麟獸也, 卽歎而美之, 故于嗟乎歎今公子信厚如麟兮, 言似古致麟之時兮.
공자가 미덥고 후덕함이 기린과 같음을 말하고, 바로 감탄하고 찬미한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공자가 미덥고 후덕한 모습이 기린과 같음을 ‘우차于嗟’라 하며 감탄하였으니, 옛날 기린을 나오게 한 때와 덕이 같음을 말한 것이다.
雖時不致麟, 而信與之等, 反覆嗟歎, 所以深美之也.
비록 이때에 기린을 나오게 한 것은 아니지만 미더움은 그때와 같았기 때문에 반복하여 감탄하였으니, 매우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疏】傳‘麟信’至‘信厚’
의 [인신麟信]에서 [신후信厚]까지
○正義曰:傳解四靈多矣, 獨以麟爲興, 意以麟於五常屬信, 爲瑞則應禮, 故以喩公子信厚而與禮相應也.
정의왈正義曰에서 네 가지 영물의 출현을 해석한 것이 많은데, 여기서 유독 기린으로 한 것은 기린이 오상五常 중에 에 속하고 상서는 가 시행된 효응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자公子의 미덥고 후덕함이 예와 상응相應함을 비유한 것이다.
此直以麟比公子耳, 而必言趾者, 以麟是行獸, 以足而至, 故言麟之趾也.
여기에서는 다만 기린으로 공자公子에 비유한 것일 뿐인데, 굳이 발을 언급한 것은 기린이 걸어 다니는 짐승으로서 발로 이르기 때문에 기린의 발을 말한 것이다.
言信而應禮, 則與左氏說同, 以爲. 哀十四年左傳服虔注云 “視明禮脩而麟至,
신이응례信而應禮’를 말한 것은 좌씨左氏해설解說과 같으니, 어미()를 다스려 자식()을 이르게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애공哀公 14년 복건服虔에 “봄이 밝고 예가 행해지면 기린이 이르고,
思睿信立, 白虎擾, 言從成, 則神龜在沼, 聽聰知正, 而名山出龍, 貌恭體仁, 則鳳皇來儀.”
생각이 지혜롭고 믿음이 확고하면 백호가 길들여지고, 말[]이 순하고 가 이루어지면 신령한 거북이 못에 있고, 들음이 밝고 앎이 바르면 명산에 용이 나오고, 용모가 공손하고 행실이 하면 봉황이 나와 춤을 춘다.”라고 하고,
是與左傳說同也. 說者又云 “則脩母致子應”,
추우騶虞〉의 에 “지극히 미더운 덕이 있으면 추우騶虞가 응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해설解說과 같다. 해설解說한 자가 또 “신하가 직분을 잘 수행하는 것은 어미[]를 다스려 자식[]을 이르게 하는 효응이다.”라고 하였으니,
以昭二十九年左傳云 “水官不脩, 則龍不至.”故也. 人君則當方來應,
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29년에 “수관水官이 직분을 잘 수행하지 않으면 용이 이르지 않는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임금이 해당 방위의 일을 잘 다스리면 해당 방위의 영물이 이르는 것이다.
是以駁異義云 “玄之聞也, 洪範五事, 於五行屬金, 孔子時, 周道衰,
이 때문에 정현의 ≪박오경이의駁五經異義≫에 “내가 들으니 ‘≪상서尙書≫ 〈홍범洪範〉의 오사五事 중에 「일왈언一曰言오행五行에서 에 속한다고 하니, 공자孔子시대에 나라의 가 쇠미해져서
於是作春秋以見志, 其言可從, 故天應以金獸之瑞.” 是其義也.
이에 ≪춘추春秋≫를 지어 뜻을 보이니, 그 말이 따를 만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이 금수金獸의 상서로 응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이 그 뜻이다.
箋‘公子信厚 與禮相應 有似於麟’, 申述傳文, 亦以麟爲信獸, 駁異義以爲, 更爲別說.
의 ‘공자신후 여예상응公子信厚 與禮相應 유사어린有似於麟’은 의 글을 거듭 기술한 것이고, 또한 기린을 신수信獸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박오경이의駁五經異義≫에서는 기린을 서방西方모충毛蟲이라 한 견해를 따라 여기와는 다른 해설을 하였다.
【疏】傳‘于嗟 歎辭’
의 [우차 탄사于嗟 歎辭]
○正義曰:此承上‘信厚’, 歎信厚也, 故射義注云 “, 歎仁人也.” 明此歎信厚, 可知.
정의왈正義曰:이는 앞의 ‘〈진진振振은〉 미덥고 후덕함이다.’라고 한 것을 이어 미덥고 후덕함을 찬탄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사의射義〉의 에 “〈소남 추우召南 騶虞〉의 ‘아 추우騶虞여[우차호 추우于嗟乎 騶虞]’는 어진 이를 찬탄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분명 이 시가 미덥고 후덕함을 찬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麟之定이여 振振公姓이라
기린의 이마여 미더운 공성公姓이네
【傳】定 題也 公姓 公同姓이라
은 이마이다. 공성公姓이 같은 이들이다.
○定 字書作顁이라 郭璞注爾雅 本作顚
자서字書에는 으로 되어 있다. 곽박郭璞의 ≪이아爾雅에는 “이다.”라고 하였으니, 으로 되어 있는 본은 잘못이다.
于嗟麟兮
아, 기린이여
【疏】傳‘定題’
의 [정제定題]
○正義曰:釋言文, 郭璞曰 “謂額也”. 傳或作顚, 釋畜云 “的顙, 白顚,” 顚亦額也, 故因此而誤.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인데, 곽박郭璞은 “이마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혹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이아爾雅≫ 〈석축釋畜〉에 “적상的顙백전白顚이다.”라고 하였으니, 도 이마이므로, 이 말을 따라 으로 잘못 쓴 것이다.
【疏】傳‘公姓 公同姓’
의 [공성 공동성公姓 公同姓]
○正義曰:言同姓疎於同祖. 上云公子, 爲最親, 下云公族, 傳云 “公族, 公同祖.” 則謂與公同高祖, 有廟屬之親.
정의왈正義曰동성同姓동조同祖보다 먼 것을 말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공자公子는 가장 가까운 자이고, 뒤에서 말한 공족公族에 “공족公族고조高祖가 같은 자들이다.”라 하니, 과 고조가 같아 겨레붙이의 친족간임을 말한 것이다.
此‘同姓’, 則五服以外, 故大傳云 “, 殺同姓.” 是也.
여기의 ‘동성同姓’은 오복五服의 친족 밖이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오세五世에는 단문袒免을 하니, 동성同姓으로 강등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大傳注又云 “”, 是同高祖爲一節也. 此有公子․公族․公姓, 對例爲然.
대전大傳〉의 에 또 “고조高祖를 달리하면 서성庶姓이 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동고조同高祖’를 한 단위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 공자公子공족公族공성公姓을 둠은 대비對比하는 가 그러한 것이다.
案杕杜云 “不如我同父”, 又曰 “不如我同姓”, 傳曰 “同姓, 同祖.” 此同姓․同祖爲異,
살펴보건대, 〈당풍 체두唐風 杕杜〉에 “내 형제만 못하네.”라고 하고, 또 “내 동성同姓만 못하네.”라고 하였는데, 에 “동성同姓동조同祖이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동성同姓동조同祖는 서로 다른데,
彼爲一者, 以彼上云同父, 卽云同姓, 同父之外, 次同祖, 更無異稱, 故爲一也.
당풍 체두唐風 杕杜〉에서 같은 것으로 여긴 것은 앞에서 동부同父를 말하고 나서 바로 동성同姓을 말하였으니, 동부同父 외에 그 다음이 동조同祖이고 다시 이칭이 없어서이다. 그리하여 하나로 여긴 것이다.
且皆對他人異姓, 不限遠近, 直擧祖父之同爲親耳.
또 모두 이 다른 타인에 대비하여 멀고 가까움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만 조부祖父가 같은 경우이면 친척으로 여긴 것일 뿐이다.
襄十二年左傳曰 “同姓於宗廟, 同宗於祖廟, 同族於禰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12년에 “동성同姓에는 종묘宗廟에서 곡하고, 동종同宗에는 조묘祖廟에서 곡하고, 동족同族에는 예묘禰廟에서 곡한다.”라고 하였다.
又曰 “魯爲諸姬, 臨於周廟.” 謂同姓於文王爲宗廟也. “邢․凡․蔣․茅․胙․祭, 臨於周公之廟.” 是同宗於祖廟也.
또 “의 군주가 여러 희성姬姓의 제후를 위해서는 주묘周廟(문왕文王의 사당)에서 곡하였다.”라고 하니, 문왕과 동성同姓이므로 종묘에서 곡함을 말한 것이고, “ 등의 나라를 위해서는 주공周公의 사당에서 곡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동종同宗조묘祖廟에서 곡한 것이다.
同族謂五服之內, 彼自以五服之外遠近爲宗姓, 與此又異. 此皆君, 非異國也.
동족同族오복五服 내의 친족을 말하는 것인데, 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절로 오복五服을 입는 친지 외의 가깝거나 먼 관계도 모두 종성宗姓으로 여겼으니, 여기와 또 다르다.
要皆同姓以對異姓, 異姓最爲疎也.
여기는 모두 임금의 친족이지 다른 나라가 아니다. 요컨대 모든 동성同姓이성異姓과 대비해보면 이성異姓이 가장 먼 것이다.
麟之角이여 振振公族이라
기린의 뿔이여 미더운 공족公族이네
【傳】麟角 所以表其德也 公族 公同祖也
기린의 뿔은 그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공족公族고조高祖가 같은 자이다.
【箋】箋云 麟角之末有肉하니 示有武而不用이라
전운箋云:기린의 뿔끝에 살이 있으니, 힘이 있는데도 쓰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示有武 一本示作象이라
○‘시유무示有武’는 으로 되어 있는 이 있다.
于嗟麟兮
아 기린이여
【疏】傳‘麟角’箋至‘不用’
의 [인각麟角]에서 의 [불용不用]까지
○正義曰:有角示有武, 有肉示不用, 有武而不用, 是其德也. 箋申說傳文也.
정의왈正義曰유각有角은 힘이 있음을 보인 것이고 유육有肉은 힘을 쓰지 않음을 보인 것이니, 힘이 있는데 쓰지 않음은 기린의 이다. 의 글을 거듭 해설하였다.
釋獸云 “麟, 麕身牛尾, 一角.” 曰 “麟, 麕身牛尾, 馬蹄有五彩, 腹下黃, 高丈二.”
이아爾雅≫ 〈석수釋獸〉에는 “기린은 고라니 몸에 소의 꼬리며, 뿔은 하나이다.”라고 하고, 경방京房의 ≪경씨역전京氏易傳≫에는 “기린은 고라니 몸에 소의 꼬리이고, 말의 발굽에 오색 광채를 띠며, 배 아래가 황색이고 키는 2이다.”라고 하고,
陸機疏 “麟, 麕身牛尾, 馬足黃色員蹄, 一角角端有肉. 音中鍾呂, 行中規矩, 遊必擇地, 詳而後處,
육기陸機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는 “기린은 고라니 몸에 소의 꼬리이며, 말의 발에 황색이고 발굽은 둥글며, 뿔이 한 개인데 그 끝에 살이 있다. 소리는 종려鍾呂에 맞고 걸음걸이는 법도에 맞으며, 노닐 때에 반드시 땅을 가려 자세히 살핀 후에 머물며,
不履生蟲, 不踐生草, 不群居, 不侶行, 不入陷穽, 不罹羅網, 王者至仁則出.”
살아 있는 벌레를 밟지 않고 살아 있는 풀을 밟지 않으며, 무리지어 살지 않고 짝을 지어 다니지 않으며,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짐승으로 왕이 지극히 하면 나온다.”라고 하였다.
今幷州界有麟, 大小如鹿, 非瑞應麟也, 故司馬相如賦曰 “”, 謂此麟也.
지금의 병주幷州 경계에 기린이 있는데, 크기는 사슴과 같으나 상서로운 조짐으로 나오는 기린은 아니다. 그리하여 사마상여司馬相如에는 “고라니를 쏘고 기린의 다리를 잡아 쓰러뜨리니.”라고 하였으니, 이 기린을 말한 것이다.
麟之趾三章이니 章三句
인지지麟之趾〉는 3이니, 마다 3이다.
周南之國十一篇이니 三十六章이요 百五十九句
주남周南국풍國風 11이니, 36이고 159이다.
역주
역주1 視明禮脩 : 視明은 ≪尙書≫ 〈周書 洪範〉의 글이다. 箕子가 武王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大法을 아뢰었는데, 그중 五事에 들어 있는 항목으로, 모습은 공손하게, 말은 순하게, 봄은 밝게, 들음은 귀 밝게, 생각은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다섯 가지 중의 하나이다. 服虔은 ≪春秋左氏傳≫의 注에서, 五事에 각각 白虎, 龍, 神龜, 鳳皇, 麒麟을 대응시켰는데, 기린은 방위에서는 中央이요, 오행에서는 土에 해당하고, 土는 五德에서는 信인데, 信은 남방의 火인 禮의 ‘子(결과)’이니, 禮가 행해지면 信獸인 기린이 이른다고 한 것이다.
역주2 四靈 : ≪禮記≫ 〈禮運〉에서 봉황․기린․거북․용을 四靈이라 하였는데, 許愼은 용은 東方, 호랑이는 西方, 봉황은 南方, 거북은 北方, 기린은 中央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정현은 ≪駁五經異義≫에서 四靈에 호랑이가 들어가지 않는데, 호랑이를 西方으로 설정하고 기린을 중앙이라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禮記正義≫
역주3 制作之應 : 정현은 ≪駁五經異義≫에서 공자가 ≪春秋≫를 지은 일은, ≪尙書≫ 〈洪範〉의 五事 가운데 ‘말은 순히 하고[言曰從]’에 해당되니, 그렇다면 기린은 土에 해당하는 信獸가 아닌 金에 해당하는 義獸가 된다고 하였다. ≪駁五經異義≫의 이 견해는 기린이 나온 것이 〈關雎〉의 교화가 행해졌기 때문이라고 한 毛氏의 說과는 차이가 있다.
역주4 信而應禮 : 기린은 방위로는 중앙인 土이고, 五德에서는 信인데, 이 信은 五行으로는 火生土로 火인 禮에서 나온 土이므로 禮의 결과라고 여긴 것이다.
역주5 脩母致子也 : ≪春秋左氏傳≫ 哀公 14년 ‘西狩獲麟’에 대한 服虔의 해설을 가리킨다. 즉 五行의 方位를 기준으로 母는 禮이자 南方인 火에 해당하고, 子는 信이자 中央인 土에 해당한 것으로, 火生土의 오행설에 따라 禮(母)가 수행되어 그 효응으로 信(子)에 해당하는 기린이 나온 것이라 해석한 것이다.
역주6 (乂)[義]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義’로 번역하였다.
역주7 騶虞傳云……則應之 : 〈騶虞〉는 召南의 편명으로 〈鵲巢〉의 效應을 나타낸 시이다. 동시에 騶虞는 義獸로 검은 무늬가 있는 白虎의 이름인데, 살아 있는 것을 먹지 않는 仁한 짐승이다. ≪春秋左氏傳≫의 ‘脩母致子’를 입증하는 예로, 중앙 土의 덕인 信(思睿信立)의 결과로 西方 金인 義(백호)가 나온 것이라고 한 毛亨의 傳을 든 것이다.
역주8 人臣 : ≪春秋左氏傳≫ 昭公 29년에 魏 獻子가 지금은 어째서 龍이 없는지를 묻자, 蔡墨이 답하기를 “용은 수중의 생물이니 물을 맡은 관장이 그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폐기해서 용을 산 채로 잡을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대하여 ≪禮記正義≫의 疏에서 熊氏가 “신하가 관직을 제대로 수행하면 어미[體]를 다스려 자식[信]을 이르게 한다. 左氏의 說이 이것이다. 만약 인군이 그 방위를 잘 다스리면 응당 해당 방위의 物(상서)이 와서 응한다.[若人臣官脩 則脩母致子之應 左氏之說是也 若人君脩其方 則當方來應]”라고 해설한 것을 참고하여 人臣과 아래의 人君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9 一曰言 : ≪尙書≫ 〈洪範〉에는 “五事는 첫 번째가 ‘모습’이고, 두 번째가 ‘말’이고……”라고 되어 있다.
역주10 西方毛蟲 : 정현은 ≪駁五經異義≫에서 陳欽의 “麟 西方毛蟲 孔子作春秋 有立言 西方兌 兌爲口 故麟來”를 따라 기린을 信獸가 아닌 金獸로 여겨, ≪春秋左氏傳≫에서 기린이 출현한 것을 ‘禮脩以致其子’로 해설한 견해와 다른 견해로 논박하였다.
역주11 于嗟乎騶虞 : 〈召南 騶虞〉의 시이다. 騶虞는 살아 있는 것을 먹지 않는 짐승이니, 짐승이 많이 번식했을 때 사냥하는 군주의 仁한 덕을 騶虞에 비유한 시이다.
역주12 (顁)[額]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額’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3 五世袒免 : 자기를 중심으로 高祖가 같은 8촌까지가 本宗으로서 상복을 입고, 고조의 형제 이하인 5世는 단지 왼쪽 소매를 벗어 어깨를 드러내고[袒], 관을 벗고 좁은 삼베로 머리를 묶어[免] 슬픔을 표시할 뿐이며, 6世가 되면 袒免마저 하지 않는다. ≪禮記 大傳≫
역주14 外高祖爲庶姓 : 四世까지는 高祖가 같은데, 五世는 高祖의 昆弟로 姓은 같지만 正姓이 아닌 庶姓이라는 것을 말한다.[周之禮 所建者長也 姓 正姓也 始祖爲正姓 高祖爲庶姓 系之弗別 謂若今宗室屬籍也] ≪禮記正義≫
역주15 (新)[親]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親’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6 京房易傳 : ≪京氏易傳≫이라는 저서인데, 京房은 漢나라 사람으로 ≪周易≫에 밝았다.
역주17 射麋脚麟 : 漢나라 司馬相如가 지은 〈子虛賦〉의 한 구절이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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