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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2)

모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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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擊鼓 怨州吁也 衛州吁用兵暴亂하여 使公孫文仲으로 將而平陳與宋하니 國人怨其勇而無禮也
격고擊鼓〉는 주우州吁를 원망함을 읊은 시이다. 나라 주우州吁가 군대를 동원해서 포악스럽게 난을 일으켜 공손문중公孫文仲을 장수로 삼아 나라, 나라와 연합하게 하니, 국인國人이 그가 용맹하되 무례無禮함을 원망한 것이다.
【箋】將者 將兵以伐鄭也 成也 將伐鄭 先告陳與宋하여 以成其伐事
’은 병사를 거느리고 나라를 친 것이다. ‘’은 ‘이룸’이다. 나라를 치려 할 때에 먼저 나라와 나라에 고하여 그 정벌하는 일을 성사시킨 것이다.
春秋傳曰 宋殤公之卽位也 公子馮出奔鄭하니 鄭人欲納之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송 상공宋 殤公이 즉위하자 공자 빙公子 馮나라로 도망가니 정나라 군주가 그를 귀국시켜 군주가 되게 하려 하였다.
及衛州吁立하여 將修先君之怨於鄭하여 而求寵於諸侯하여 以和其民하여
나라 주우州吁가 즉위하고는 정나라에 대한 선군先君의 원한을 갚아서 제후들의 지지[]를 구하여 자기 나라의 민심을 화합하고자 하여
使告於宋曰 君若伐鄭하여 以除君害 君爲主하여 敝邑以하여 與陳蔡從 則衛國之願也라하니 宋人許之
사신을 보내 나라에 고하기를 ‘께서 만약 나라를 쳐서 의 걱정거리를 제거하려 하신다면 맹주盟主로 모시고 우리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나라 나라와 함께 종군하는 것이 우리 나라의 소원입니다.’라고 하니, 송인宋人이 허락하였다.
於是 陳蔡方睦於衛 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이라하니 是也 伐鄭 在魯隱四年이라
이에 나라와 나라가 비로소 나라와 우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송공宋公진후陳侯채인蔡人위인衛人나라를 쳤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나라를 친 것은 노 은공魯 隱公 4년의 일이다.
○將 子亮反이니 注將者同이라 本亦作憑이라
반절음反切音(쟝)이니, ()의 ‘장자將者’〈의 반절음反切音〉도 같다.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疏】‘擊鼓(五章章四句)’至‘無禮’
의 [격고擊鼓]에서 [무례無禮]까지
○正義曰:作擊鼓詩者, 怨州吁也. 由衛州吁用兵暴亂, 乃使其大夫公孫文仲爲將, 而興兵伐鄭.
정의왈正義曰:〈격고擊鼓를 지은 것은 주우州吁를 원망한 것이다. 나라 주우州吁가 군대를 동원해서 포악스럽게 난을 일으켜 그 대부 공손문중公孫文仲을 장수로 삼아 군대를 출동시켜 나라를 치게 하였다.
又欲成其伐事, 先告陳及宋, 與之俱行, 故國人怨其勇而無禮.
또 그 정벌하는 일을 이루고자 하여 먼저 나라와 나라에 고하여 그들과 함께 갔다. 그리하여 국인國人들이 그의 용맹하되 무례함을 원망하였다.
怨與刺, 皆自下怨上之辭, 怨者, 情所恚恨, 刺者, 責其愆咎, 大同小異耳, 故論語注云 “怨謂刺上政”, 譜云 “刺怨相尋”, 是也.
는 모두 아래 사람이 위를 원망한다는 말인데, 은 감정상의 원한이고, 는 그 잘못을 나무라는 것이니, 대동소이한 것이다. 그리하여 ≪논어論語≫의 에 “은 윗사람의 정사를 풍자하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고, 〈시보詩譜〉에 “풍자와 원망이 서로 이어졌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言用兵暴亂者, 阻兵而安忍, 暴虐而禍亂也. 古者謂戰器爲兵, 左傳曰 “鄭伯朝於楚, 楚子賜之金, 曰‘無以鑄兵’.”
용병폭란用兵暴亂’은 군대를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여겨 포악스럽게 난을 일으킨 것이다. 옛날에는 무기를 ‘’이라 하였으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정백鄭伯나라에 조현朝見하니 초자楚子을 주고는 ‘〈이 으로〉 병기를 만들지 말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兵者, 人所執, 因號人亦曰兵, 左傳曰 “敗鄭徒兵”, 此箋云 ‘將者 將兵’, 是也.
’은 사람이 잡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병기를 잡는〉 사람도 ‘’이라고 지칭하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라의 보병을 패퇴시켰다.”라고 한 것과, 이 에서 ‘장자 장병將者 將兵’이라 한 것이 이것이다.
然則此序云 ‘用兵’者, 謂用人兵也, 經云 ‘踊躍用兵’, 謂兵器也. 國人怨其勇而無禮, 經五章, 皆陳兵役之怨辭.
그렇다면 이 에서 말한 ‘용병用兵’은 ‘군사를 일으킴’을 말하고, 의 ‘용약용병踊躍用兵’은 ‘병기兵器’를 말한다. 국인國人이 그가 용맹하여 무례함을 원망하였으니, 경문經文 다섯 은 모두 병역兵役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한 것이다.
【疏】箋‘將者’至‘隱四年’
의 [장자將者]에서 [은사년隱四年]까지
○正義曰:知將兵伐鄭者, 州吁以隱四年春弑君, 至九月被殺, 其中唯夏秋, 再有伐鄭之事, 此言州吁用兵暴亂, 是伐鄭可知.
정의왈正義曰:‘병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친 줄 안 것은 주우州吁은공隱公 4년 봄에 군주를 시해하고 9월에 살해 될 때까지 그 사이 여름과 가을 동안에 정나라를 두 번 정벌한 일만 있었기 때문이니, 에서 말한 ‘주우용병폭란州吁用兵暴亂’이 정나라를 친 일임을 알 수 있다.
時無伐陳․宋之事, 而經․序云 “平陳與宋”, 傳有告宋使除君害之事, 陳侯又從之伐鄭, 故訓平爲成也, 告陳與宋, 成其伐事也.
당시에 나라나 나라를 친 일이 없고 에 “평진여송平陳與宋”이라 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라에 ‘군주의 해를 제거하는 것’을 고한 일이 있고, 진후陳侯나라를 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을 하기를 ‘’으로 한 것이니, 나라와 나라에 고하여 정벌하는 일을 이룬 것이다.
‘春秋曰’以下, 皆隱四年左傳文也, 引之以證州吁有伐鄭, 先告陳之事也.
춘추왈春秋曰’ 이하는 모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隱公 4년의 글인데 이를 인용하여 주우州吁나라를 칠 때에 먼저 나라에 고한 일이 있었음을 증명한 것이다.
末言‘在魯隱四年’者, 以州吁之立, 不終此年, 唯有此伐鄭之事, 上直引傳曰, 其年不明, 故又詳之也.
끝에 ‘재노은사년在魯隱四年’을 말한 것은 주우州吁가 즉위하여 그해를 마치기도 전에 죽어 정나라를 친 일만 있었는데, 위에서는 다만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말만 인용하고 연도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시 자세히 언급한 것이다.
宋殤公之卽位, 公子馮所以出奔鄭者, 殤公, 宋穆公之兄子, 公子馮則其子也,
송 상공宋 殤公이 즉위하자 공자 빙公子 馮이 정나라로 도망한 까닭은, 상공殤公송 목공宋 穆公의 형의 아들이고,
穆公致位於殤公, 使馮避之出居於鄭也. 鄭人欲納之, 欲納於宋以爲君也.
공자 빙公子 馮목공穆公의 아들인데, 목공穆公상공殤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공자 으로 하여금 피하여 정나라에 나가 거주하게 했기 때문이다. 정인鄭人이 그를 들여보내고자 한 것은 그를 송나라에 들여보내 군주로 삼고자 한 것이다.
【疏】‘先君之怨’, 服․杜皆云 “隱二年鄭人伐衛”, 是也.
선군지원先君之怨’은 복건服虔두예杜預가 모두 “은공隱公 2년에 정인鄭人나라를 쳤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譜依世家, 以桓公爲平王三十七年卽位, 則鄭以先君爲桓公矣, 服虔云莊公, 非也.
시보詩譜〉는 ≪사기史記≫ 〈위세가衛世家〉를 따라 환공桓公평왕平王 37년에 즉위하였다고 여겼으니, 정현은 ‘선군先君’을 환공桓公으로 여긴 것이다. 복건服虔장공莊公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言‘求寵於諸侯’者, 杜預云 “諸侯雖篡弑而立, 旣列於會, 則不得復討.” 欲求此寵也.
구총어제후求寵於諸侯’라고 한 것은 두예杜預가 “제후諸侯는 비록 군주를 시해하고 즉위했더라도 일단 회맹에 참석했으면 다시 토벌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런 원조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
言‘以除君害’者, 服虔云 “公子馮, 將爲君之害.” 言‘以賦與陳․蔡從’者, 服虔云 “賦, 兵也, 以田賦出兵, 故謂之賦.” 正謂以兵從也.
이제군해以除君害’라고 한 것은 복건服虔이 “공자 빙公子 馮에게 해가 될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고, ‘이부여진채종以賦與陳蔡從’이라고 한 것은 복건服虔이 “이니, 전부田賦에 따라 징병하였으므로 ‘’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군대를 거느리고 종군하는 것을 말한다.
傳又說衛州吁欲和其民, 宋殤公欲除其害, 故二國伐鄭, 所以陳․蔡亦從者, 是時陳․蔡方親睦於衛,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또 위 주우衛 州吁는 그 민심을 화합하고자 하고, 송 상공宋 殤公은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자 하였으므로 두 나라가 정나라를 친 것을 말하였는데, 나라와 나라도 종군한 것은 이때에 나라와 나라가 비로소 나라와 우호하였기 때문이다.
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 春秋之例, 首兵者爲主, 今伐鄭之謀, 吁爲首, 所以衛人敍於陳․蔡之下者,
그리하여 송공宋公진후陳侯채인蔡人위인衛人나라를 치게 된 것이다. ≪춘추春秋≫의 에 먼저 군대를 일으킨 자가 맹주盟主가 되는데, 지금 정나라를 치려고 모의할 때에 주우州吁가 앞장섰는데도 위인衛人나라․나라 다음에 둔 것에 대하여는,
服虔云 “衛使宋爲主, 使大夫將, 故敍衛於陳․蔡下.” 傳唯云告宋使爲主, 此箋先言告陳與宋者, 以陳亦從之衛告可知.
복건服虔은 “나라가 나라를 맹주盟主가 되게 하고 대부大夫로 하여금 장수가 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라․나라의 다음에 둔 것이다.”라고 하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는 나라에 고하여 맹주가 되게 하였다고만 말했는데 여기의 에서 먼저 ‘고진여송告陳與宋’을 말한 것은 나라가 따른 것도 나라가 고한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但傳見使宋爲主, 故不言告陳之事, 此言平陳與宋, 故箋兼言告陳也.
다만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는 나라를 맹주로 삼은 일만을 나타냈기 때문에 나라에 고한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이고, 여기서는 나라와 나라가 동맹하게 한 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에서 나라에 고한 일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擊鼓其鏜하여 踊躍用兵이라
둥둥 북소리에 맞추어 무기 들고 훈련 하네
【傳】鏜然 擊鼓聲也 使衆皆踊躍用兵也
당연鏜然은 북을 치는 소리이니 병사들로 하여금 모두 무기를 들고 훈련하게 하는 것이다.
【箋】箋云 此用兵 謂治兵時
전운箋云:이 ‘용병用兵’은 훈련하는 때를 말한다.
土國城漕어늘 我獨南行이라
도성에선 공사하고 조읍에선 성 쌓는데 나만이 싸우러 남쪽으로 떠났네
【傳】漕 衛邑也
나라의 이다.
【箋】箋云 此言衆民皆勞苦也 或役土功於國하고 或修理漕城이어늘 而我獨見使從軍南行伐鄭하니 是尤勞苦之甚이라
전운箋云:이는 많은 백성들이 다 수고롭고 괴로움을 말한 것이니, 누구는 도성에서 토목공사에 종사하고, 누구는 조읍漕邑의 성을 수리하는데, 나만이 남쪽으로 가서 정나라를 정벌하는 일에 종군하게 되었으니, 이는 수고롭고 괴로움이 더 심한 것이다.
【疏】‘擊鼓’至‘南行’
의 [격고擊鼓]에서 [남행南行]까지
○正義曰:言州吁初治兵出國, 命士衆將行, 則擊此鼓, 其聲鏜然, 使士衆皆踊躍用兵也.
정의왈正義曰주우州吁가 처음 군대를 동원하여 도성을 나설 때에 병사들에게 명하여 행군하려 하면 이 북을 쳐 그 소리가 둥둥 울려서 병사들로 하여금 모두 무기를 들고 훈련하게 한 것이다.
軍士將行, 以征伐爲苦, 言今國人或役土功於國, 或修理漕城, 而我獨見使南行, 不得在國也.
군사가 떠나려 할 적에 정벌하는 일을 괴롭게 여겨서, 지금 나라 사람들 중에 누구는 도성에서 토목공사를 하고 누구는 조읍의 성을 수리하는 일을 하는데, 자신만 홀로 남쪽으로 가서 나라 안에 있지 못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疏】傳‘鏜然’至‘用兵’
의 [당연鏜然]에서 [용병用兵]까지
○正義曰 云 “”, 字雖異, 音實同也.
정의왈正義曰:≪사마법司馬法≫에 “북의 소리는 ‘당’보다 높지 않다.”라고 하니, 〈이〉 글자는 다르지만 음은 실제로 같다.
左傳曰 “.” 又曰 “”, 故先擊其鼓, 而衆皆踊躍用兵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전쟁의 〈관건은〉 용기입니다. 북을 한 번 울리면 용기가 진작됩니다.” 하고, 또 “금고金鼓는 소리로 사기를 북돋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북을 치면 병사들이 모두 무기를 들고 훈련하는 것이다.
【疏】箋‘此用兵 謂治兵時’
의 [차용병 위치병시此用兵 謂治兵時]
○正義曰:以下始云從孫子仲在路之事, 故知此謂治兵時, 穀梁傳曰 “出曰治兵, 入曰振旅.” 是也.
정의왈正義曰:이 아래 경문經文에 비로소 손자중孫子仲을 따라 정벌하러 나선 일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여기는 출병할 때를 말한 것임을 안 것이니,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출병을 ‘치병治兵’이라 하고, 회군을 ‘진려振旅’라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傳‘漕 衛邑’
의 [조 위읍漕 衛邑]
○正義曰:定之方中序云 “野處漕邑”, 載馳序云 “露於漕邑”, 是也.
정의왈正義曰:〈용풍 정지방중鄘風 定之方中〉의 에 “조읍漕邑의 들에서 살았다.”라고 하고, 〈용풍 재치鄘風 載馳〉의 에서 “조읍漕邑에서 노숙露宿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箋‘此言’至‘之甚’
의 [차언此言]에서 [지심之甚]까지
○正義曰:州吁虐用其民, 此言衆民雖勞苦, 猶得在國, 己從征役, 故爲尤苦也.
정의왈正義曰주우州吁가 그 백성을 가혹하게 부렸는데 여기에서는 ‘많은 백성이 비록 수고롭고 괴롭지만 그래도 나라 안에 있을 수 있는데, 자신은 정벌하는 일에 종군하기 때문에 더욱 괴롭게 여김’을 말한 것이다.
禮記曰 “五十不從力政, 六十不與服戎.” 注云 “力政, 城郭道渠之役”,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50세에는 부역에 종사하지 않고 60세에는 병역을 부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에 “역정力政성곽城郭도거道渠의 요역이다.”라고 하였으니,
則戎事六十始免, 輕於土功, 而言尤苦者, 以州吁用兵暴亂, 從軍出國, 恐有死傷, 故爲尤苦.
군역을 60세에 비로소 면한다면 융사戎事가 토목공사보다 가벼운 일인데도 더욱 괴롭다고 말한 것은 주우州吁가 군대를 동원하여 포악스럽게 난을 일으켜 종군從軍하는 일로 출국出國하게 되자 죽거나 다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더욱 괴롭게 여긴 것이다.
土國城漕, 雖用力勞苦, 無死傷之患, 故優於兵事也. 若力政之役, 則二十受之, 五十免之,
도성에서 토목공사 일을 하고 조읍漕邑에서 성을 쌓는 일은 비록 힘들고 수고로운 일이지만 죽거나 다칠까 하는 근심은 없다. 그리하여 군역보다는 나은 것이다. 부역하는 일은 20세에 부여 받아 50세에 면제된다.
故韓詩說 “二十從役”, 王制云 “五十不從力政”, 是也.
그리하여 ≪한시韓詩≫에 “20세에 부역에 종사한다.”라고 말하고,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50세가 되면 부역에 종사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戎事, 則韓詩說曰 “三十受兵, 六十還兵.” 王制云 “六十不與服戎”, 是也.
융사戎事는 ≪한시韓詩≫에 “30세에 병역의 임무를 받고 60세에는 병역의 의무에서 벗어난다.”라고 하고,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60세가 되면 병역을 부여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蓋力政用力, 故取丁壯之時, 五十年力始衰, 故早役之, 早捨之.
부역은 힘을 쓰기 때문에 나이가 건장한 이를 취하는 것이고, 50세가 되면 힘이 비로소 쇠약해지므로 〈군역보다〉 일찍 부리고 일찍 면제해주는 것이다.
戎事, 當須閑習, 三十乃始從役, 未六十年, 力雖衰, 戎事希簡, 猶可以從軍,
그런데 융사戎事는 응당 숙련됨을 필요로 하니 30세가 되어야 비로소 종군하는 것이고, 60세가 되기 전까지는 나이와 힘이 비록 쇠하더라도 전쟁은 드물게 일어나니 오히려 종군할 수 있다.
故受之旣晩, 捨之亦晩, 戎事非輕於力役.
그리하여 군역의 임무를 〈부역보다〉 늦게 부여 받고 늦게 면제하는 것이니, 군역이 부역보다 가벼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從孫子仲하여 平陳與宋이라
손자중孫子仲을 따라 나라 나라와 연합을 하였네
【傳】孫子仲 謂公孫文仲也 平陳於宋이라
손자중孫子仲공손문중公孫文仲을 말한다. 나라,나라와 동맹한 것이다.
【箋】箋云 子仲 字也 平陳於宋 謂使告宋曰 君爲主하고 敝邑以賦 與陳蔡從이라
전운箋云자중子仲이다. ‘평진어송平陳於宋’은 나라에 사신을 보내 “을 맹주로 모시고 우리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나라,나라와 종군하겠습니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不我以歸 憂心有忡이로다
나와 돌아갈 기약 없으니 가슴에 시름만 깊어라
【傳】憂心忡忡然이라
마음속 근심이 깊은 것이다.
【箋】箋云 以 猶與也 與我南行이어늘 不與我歸期 凶事 懼不得歸하여 豫憂之
전운箋云와 같으니, 나와 남쪽으로 갔지만 나와 돌아갈 날을 기약하지 않음이다. 흉사凶事니 돌아갈 수 없을까 두려워 미리 근심하는 것이다.
【疏】‘從孫’至‘有忡’
의 [종손從孫]에서 [유충有忡]까지
○正義曰:國人從軍之士云 ‘我獨南行, 從孫子仲, 成伐事於陳與宋.’ 成伐事者, 先告陳, 使從於宋, 與之俱行也.
정의왈正義曰국인國人 중에 종군從軍하는 병사가 ‘나만이 남쪽으로 가서 손자중孫子仲을 따라 정벌하는 일을 나라․나라와 함께 이루었네.’라고 한 것이다. 정벌하는 일을 이루었다는 것은 나라에 먼저 고하여 나라를 따르게 하고 함께 〈정벌하러〉 간 것이다.
當往之時, 不於我以告歸期, 不知早晩得還, 故我憂心忡忡然, 豫憂不得歸也.
가려 할 때에 나에게 돌아갈 기한을 고해주지 않아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마음속 근심이 깊어 돌아가지 못할까 미리 걱정한 것이다.
【疏】傳‘孫子’至‘文仲’
의 [손자孫子]에서 [문중文仲]까지
○正義曰:經敍國人之辭, 旣言從於文, 不得言公孫也.
정의왈正義曰국인國人의 말을 기술할 때에 당시에 말하던 것을 그대로 글에 썼으니, ‘공손公孫’이라 말하지 못한 것이다.
箋云 ‘子仲 字’, 仲, 長幼之稱, 故知是字, 則文是謚也. 國人所言時未死, 不言謚, 序從後言之, 故以謚配字也.
에 ‘자중子仲이다.’라 하였으니, 장유長幼를 이르는 호칭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임을 안 것이니, 은 시호이다. 국인國人들이 노래하던 때에는 그가 아직 죽지 않아서 시호를 말하지 않은 것이고, 는 뒷날에 말한 것이기 때문에 시호를 에 짝지은 것이다.
【疏】傳‘憂心忡忡然’
의 [우심충충연憂心忡忡然]
○正義曰:傳重言忡忡者, 以忡爲憂之意, 宜重言之. 出車云 “憂心忡忡”, 是也.
정의왈正義曰에서 ‘충충忡忡’이라 거듭 말한 것은 ‘’을 ‘근심하다’라는 뜻으로 여겨서이니, 중복하여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 〈소아 출거小雅 出車〉에 “근심하는 마음 깊으니”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箋‘與我’至‘豫憂之’
의 [여아與我]에서 [예우지豫憂之]까지
○正義曰:采薇云 “曰歸曰歸, 歲亦莫止.” 是與之歸期也, 故云 ‘兵 凶事 懼不得歸 豫憂之’, 解言不得歸期之意也.
정의왈正義曰:〈소아 채미小雅 采薇〉에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올해도 저무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돌아갈 기한을 정해준 것이다. 그리하여 ‘병 흉사兵 凶事 구부득귀 예우지懼不得歸 豫憂之’라고 하였으니, 돌아갈 기한을 통보받지 못한 뜻을 풀이하여 말한 것이다.
言‘兵, 凶事’者, 戰有必死之志, 故云凶也.
흉사凶事이다.’라고 말한 것은 전쟁에 〈나가는 이는〉 필사의 의지가 있다. 그리하여 ‘’을 말한 것이다.
爰居爰處하고 爰喪其馬
여기 머물고 여기 남고 여기서 말을 잃었으니
【傳】有不還者하고 有亡其馬者
돌아가지 못한 자가 있고, 말을 잃어버린 자가 있는 것이다.
【箋】箋云 爰 於也 不還 謂死也傷也病也 今於何居乎 於何處乎 於何喪其馬乎아하니라
전운箋云은 ‘에서’이다. ‘불환不還’은 죽거나 다치거나 병든 것을 말하니, 지금 어디에 머물며, 어디에 남았으며, 어디에서 말을 잃었느냐고 한 것이다.
于以求之 于林之下로다
찾아볼 곳은 숲 아래라네
【傳】山木曰林이라
산속의 나무들을 이라 한다.
【箋】箋云 于 於也 求不還者及亡其馬者 當於山林之下 軍行必依山林이라 求其故處 近得之
전운箋云는 ‘에서’이다. 돌아가지 못한 자와 말을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은 마땅히 산속 수풀 아래에서 해야 하니, 군사 행동은 반드시 산속의 숲에 의존하므로 전에 머물던 곳을 수색하면 부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近 附近之近이라
은 ‘부근附近’의 이다.
【疏】‘爰居’至‘之下’
의 [원거爰居]에서 [지하之下]까지
○正義曰:從軍之士懼不得歸, 言我等從軍, 或有死者․病者․有亡其馬者,
정의왈正義曰:종군하는 병사가 돌아가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우리들이 종군할 때에 혹시 죽거나 병들거나 말을 잃어버리는 자가 생길 터인데,
則於何居乎, 於何處乎, 於何喪其馬乎, 若我家人, 於後求我, 往於何處求之, 當於山林之下.
어디에 머물고 어디에 남으며 어디서 말을 잃을까? 만약 우리 가족이 나중에 나를 찾는다면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응당 산속 수풀 아래이리라.
以軍行必依山林, 死․傷․病․亡當在其下, 故令家人於林下求之也.
이는, 군사행동은 반드시 산속 숲에 의존하므로, 죽거나 다치거나 병들거나 말을 잃는 곳도 응당 그 아래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족들로 하여금 숲 아래에서 찾게 하려 한다.’라고 한 것이다.
【疏】傳‘有不’至‘馬者’
의 [유불有不]에서 [마자馬者]까지
○正義曰:此解從軍之人所以言‘爰居爰處’者, 由恐有不還者也, 言‘爰喪其馬’者, 恐有亡其馬者故也.
정의왈正義曰:이는, 종군하는 사람이 ‘원거원처爰居爰處’라고 말한 것은 돌아가지 못하는 이가 있을까 두려웠기 때문이고 ‘원상기마爰喪其馬’라고 말한 것은 말을 잃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임을 풀이한 것이다.
【疏】箋‘不還’至‘馬乎’
의 [불환不還]에서 [마호馬乎]까지
○正義曰:古者兵車乘, 甲士三人, 步卒七十二人, 則死傷及病, 兼步卒, 亡其馬, 唯甲士耳.
정의왈正義曰:옛날에는 병거兵車 1갑사甲士는 3명이고 보졸步卒은 72명이었으니, 죽거나 다치거나 병든 이는 보졸步卒까지 아우른 것이고, 말을 잃어버리는 것은 갑사甲士뿐이다.
【疏】箋‘軍行’至‘得之’
의 [군행軍行]에서 [득지得之]까지
○正義曰:以軍行爲所取給易, 必依險阻, 故於山林也.
정의왈正義曰:군사행동은 전술상의 용이함을 위하여 반드시 험하고 막힌 곳에 의존한다. 그리하여 산속 숲에서 하는 것이다.
是以肆師云 “祭兵于山川” 注云 “蓋軍之所依止也”. 求其故處, 謂求其所依止之處, 近於得之.
이 때문에 ≪주례周禮≫ 〈춘관종백 사사春官宗伯 肆師〉에 “군대의 안위를 위해 산천에 고제告祭한다.”라고 하였는데, 에 “〈산천은〉 군대가 의존하여 머무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구기고처求其故處’는 의존하여 머물던 곳을 찾으면 그 부근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死生契闊이라도 與子成說하리라
생사를 함께하며 고생스러워도 그대와의 기약 이루리라
【傳】契闊 勤苦也 數也
결활契闊은 힘들고 괴로움이다. 은 ‘기약함’이다.
【箋】箋云 從軍之士 與其伍約하되 死也生也 相與處勤苦之中이나 我與子成相說愛之恩이라하니 志在相存救也
전운箋云종군從軍하는 병사가 자기 대오의 병사와 약속하기를 ‘죽거나 살거나 간에 서로 함께 힘들고 괴로운 전장에 있지만 내 너와 서로 전우애를 지키겠다.’라고 한 것이니, 뜻이 서로 구하여 살려줌에 있는 것이다.
○契 本亦作挈이라 韓詩云 約束也 音悅이라
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은 ≪한시韓詩≫에 “약속이다.”라고 하였다. 은 음이 이다.
執子之手하여 與子偕老하리라
그대의 손 잡고서 그대와 해로하리라
【傳】偕 俱也
는 ‘함께’이다.
【箋】箋云 執其手하고 與之約誓하여 示信也 言俱老者 庶幾俱免於難이라
전운箋云:손을 잡고 상대와 약속하고 맹세하여 신의를 보인 것이다. ‘구로俱老’라고 함은 함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疏】‘死生’至‘偕老’
의 [사생死生]에서 [해로偕老]까지
○毛以爲 “從軍之士 與其伍約云 ‘我今死也生也, 共處契闊勤苦之中, 親莫是過, 當與子危難相救, 成其軍伍之數,
모형毛亨은 “종군從軍하는 병사가 자기 대오隊伍의 병사와 약속하기를 ‘내가 지금 죽거나 살거나 간에 함께 힘들고 괴로운 전장에 있어서 친근한 정이 이보다 더할 수 없으니, 그대와 위급한 전란에서 서로 구원해 우리 대오의 약속을 이루어야 한다.
勿得相背, 使非理死亡也. 於是執子之手, 殷勤約誓, 庶幾與子俱得保命, 以至於老, 不在軍陳而死.”
그러니 서로 배반하여 의리가 아닌 것으로 사망하게는 말아야 한다. 이에 그대의 손을 잡고 간절히 서약하니, 그대와 함께 목숨을 보전하여 해로하고 전장에서 죽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王肅云 “言國人室家之志, 欲相與從生死, 契闊勤苦而不相離, 相與成男女之數, 相扶持俱老.” 此似述毛, 非毛旨也.
왕숙王肅은 “병사 아내들의 뜻이 ‘서로 죽거나 살거나 간에 함께하여 힘들고 괴롭더라도 서로 헤어지지 말아서 함께 부부간의 약속을 이루어 서로 부지하여 해로하기를 바라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씨毛氏의 생각을 기술한 듯하지만 모씨의 뜻이 아니다.
卒章傳曰 “不與我生活”, 言與是軍伍相約之辭, 則此爲軍伍相約, 非室家之謂也.
졸장卒章에 말한 “나와 함께 살아남지 못하겠네.[불여아생활不與我生活]”는 대오의 병사와 서로 약속한 내용을 말한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같은 대오의 병사와 약속한 것이지 아내와의 약속이 아니다.
○鄭唯成說爲異, 言我與汝共受勤苦之中, 皆相說愛, 故當與子成此相悅愛之恩, 志在相救. 餘同.
정현鄭玄은 ‘성열成說’만을 달리 해석하여 ‘내가 너와 함께 고생하는 중에 모두 서로 정이 들었다. 그리하여 응당 그대와 함께 서로 전우애를 이루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뜻이 서로를 구원해줌에 있는 것으로 여겼다. 나머지는 같다.
【疏】傳‘契闊 勤苦’
의 [결활 근고契闊 勤苦]
○正義曰:此敍士衆之辭. 連云死生, 明爲從軍勤苦之義, 則‘契闊’, 勤苦之狀.
정의왈正義曰:이는 병사들의 말을 서술한 것이다. ‘사생死生’에 이어 말하여 분명 종군하며 고생하는 뜻임을 밝혔으니, 결활契闊은 고생하는 모습이다.
【疏】箋‘從軍’至‘伍約’
의 [종군從軍]에서 [오약伍約]까지
○正義曰:大司馬云 “五人爲伍”, 謂與其伍中之人約束也.
정의왈正義曰:≪주례周禮≫ 〈하관 대사마夏官 大司馬〉에 “다섯 사람이 이다.”라고 하였으니, 자기 대오 안의 사람과 약속한 것을 말한다.
軍法有, 其約亦可相及, 獨言伍者, 以執手相約, 必與親近,
군법軍法가 있으니, 약속이 또한 이들에게도 미칠 수 있는데, 만을 말한 것은, 손을 잡고서 서로 약속하는 것은 반드시 친근한 이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故昭二十一年左傳曰 “不死伍乘, 軍之大刑也.” 是同伍相救, 故擧以言之.
그리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21년에 “〈한 병거兵車에〉 동승同乘한 대오의 병사와 함께 죽지 않는 것은 군법 중에 큰 형벌에 해당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같은 대오의 병사를 서로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들어 말한 것이다.
于嗟闊兮하니 不我活兮리라
아 흩어지고 말았으니 나와 함께 살아남지 못하겠네
【傳】不與我生活也
나와 함께 살아남지 못함이다.
執子之手하고 與子偕老러니
그대의 손 잡고서 함께 해로하려 했는데
【箋】箋云 州吁阻兵安忍하니 阻兵이면 無衆이요 安忍이면 無親이라
전운箋云주우州吁병력兵力을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였으니, 병력兵力을 믿으면 따르는 무리가 없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면 친한 이가 없다.
衆叛親離하여 軍士棄其約하고 離散相遠이라 嗟歎之호대 闊兮 女不與我相救活이라하니 傷之
대중이 배반하고 친한 이가 떠나 군사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흩어져 서로 멀어졌다. 그리하여 한탄하기를 ‘흩어지고 말았구나. 그대가 나와 서로 구원하여 살아남지 못하겠구나.’라고 한 것이니, 슬퍼한 것이다.
于嗟洵兮하니 不我信兮로다
아 멀어지고 말았으니 내 목숨 다하지 못하겠네
【傳】洵이요 極也
은 ‘멀어짐’이고 은 ‘다함’이다.
【箋】箋云 歎其棄約하고 不與我相親信하니 亦傷之
전운箋云:약속을 저버리고 나와 서로 친애하고 믿어주지 않음을 한탄하였으니 역시 슬퍼한 것이다.
○洵 本或作詢하니 誤也 韓詩作敻이니 敻亦遠也 毛音申이니 案信卽古伸字也 鄭如字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은 ≪한시韓詩≫에 으로 되어 있는데 도 ‘멀다’이다. 은, 모형毛亨이라고 하였으니, 살펴보건대 신자信字는 바로 고자古字이다. 정현鄭玄본음本音대로 읽었다.
【疏】‘于嗟’至‘信兮’
의 [우차于嗟]에서 [신혜信兮]까지
○毛以爲 “旣臨伐鄭, 軍士棄約而乖散, 故其在軍之人歎而傷之云 ‘于嗟乎, 此軍伍之人, 今日與我乖闊兮, 不與我相存救而生活兮’,
모형毛亨은 “나라를 칠 때가 되었는데 군사軍士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흩어졌으므로 군중軍中에 남아 있던 이가 한탄하고 슬퍼하면서 ‘아, 우리 대오의 병사가 오늘 나와 흩어져 서로 구원하여 살아남지 못하겠네.’라고 하고,
又重言之云 ‘于嗟乎, 此軍伍之人, 與我相疏遠兮, 不與我相存救, 使性命得申極兮’.”
또 거듭 말하기를 ‘아 우리 대오의 병사가 나와 떨어져서 서로 구원하여 목숨을 다하게 해주지 않네.’라고 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乖闊’․‘疏遠’, 及‘性命不得申極’, 與‘不得生活兮’, 一也, 下句配成上句耳.
괴활乖闊’과 ‘소원疏遠’ 및 ‘성명부득신극性命不得申極’은 ‘부득생활혜不得生活兮’와 같은 뜻인데, 아래 구는 윗구에 짝한 것일 뿐이다.
○鄭唯‘信兮’爲異, 言“從軍之人, 與我疏遠, 不復與我相親信. 由不親信, 故不與己相救活.” 義相接成也.
정현鄭玄은 ‘신혜信兮’만은 달리 해석하여 “‘종군하는 사람이 나와 소원해져서 다시 나와 서로 친애하고 믿지 않네. 친애하고 믿지 않으므로 나와 함께 서로 구원하여 살아남지 못하겠네.’라고 한 것”으로 여겼지만, 의미는 서로 연결된다.
【疏】箋‘州吁’至‘傷之’
의 [주우州吁]에서 [상지傷之]까지
○正義曰:四年左傳曰 “夫州吁阻兵而安忍, 阻兵無衆, 安忍無親, 衆叛親離, 難以濟矣.”
정의왈正義曰:≪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隱公 4년에 “주우州吁가 병력을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여겼으니, 병력을 믿으면 따르는 무리가 없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여기면 친한 이가 없어지게 되니, 대중이 배반하고 친한 이가 떠나면 일을 이루기가 어렵다.”라고 하였는데,
杜預云 “恃兵則民殘, 民殘則衆叛, 安忍則刑過, 刑過則親離.” 然則以州吁恃兵安忍,
두예杜預는 “병력을 믿으면 백성이 쇠잔해지고 백성이 쇠잔해지면 대중이 배반하며,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면 형벌이 지나치게 되고 형벌이 지나치면 친한 이가 떠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주우州吁가 병력을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여긴 것이다.
故衆叛親離, 由是軍士棄其約, 散而相遠. 是以在軍之人, 傷其不相救活也,
그리하여 무리가 배반하고 친한 이가 떠난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군사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흩어져 서로 멀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군중에 있는 병사가 서로 구원하여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슬퍼한 것이다.
時州吁不自行, 言州吁阻兵安忍者, 以伐鄭之謀, 州吁之由, 州吁暴虐, 民不得用, 故衆叛親離, 棄其約束, 不必要州吁自行乃致此也.
이때에 주우州吁가 직접 가지는 않았는데 ‘주우조병안인州吁阻兵安忍’을 말한 것은 나라를 치려는 모의가 주우州吁로부터 시작되었는데도 주우州吁포학暴虐하여 백성들이 따를 수 없기 때문에 무리가 배반하고 친한 이가 흩어져 약속을 저버린 것이니, 반드시 주우州吁가 직접 가야만 마침내 이런 지경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案左傳‘伐鄭, 圍其東門, 五日而還.’, 則不戰矣. 而軍士離散者, 以其民不得用, 雖未對敵, 亦有離心, 故有闊兮洵兮之歎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살펴보니, ‘나라를 칠 때에 그 동문東門을 포위했다가 5일 만에 돌아왔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싸우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군사들이 흩어진 것은 백성들이 따를 수 없어서 비록 아직 대적하기 전인데도 흩어지려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흩어지고 말았네’, ‘멀어지고 말았네’라는 탄식이 나온 것이다.
【疏】傳‘信 極’
의 [신 극信 極]
○正義曰:信, 古伸字, 故易曰 “引而信之”, 伸卽終極之義, 故云 ‘信 極也’.
정의왈正義曰고자古字이다. 그리하여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 上〉에 “끌어다 펴다.”라고 하였으니, 은 ‘다하다’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은 다함이다.’라고 한 것이다.
擊鼓五章이니 章四句
격고擊鼓〉는 5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 옛날에는 田畝에 징수하는 賦稅를 계산해서 병사를 차출했으므로 병사를 ‘賦’라 한 것이다. ≪論語注疏≫
역주2 (則)[州]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州’로 번역하였다.
역주3 司馬法 : 중국의 兵法에 관한 일곱 가지 책 중의 하나이다. ≪司馬法≫ 외에 ≪六韜≫․≪孫子≫․≪吳子≫․≪黃石公三略≫․≪尉繚子≫․≪李衛公問對≫가 있다.
역주4 鼓聲不過閶 : ≪周禮注疏≫에 ≪司馬法≫의 ‘鼓聲不過閶 鼙聲不過闒 鐸聲不過琅’을 인용하면서 ‘鼓聲不過閶’ 이하는 鼓와 鼙(馬上의 작은 북)과 방울 소리의 차이를 증명한 부분이라고 해석한 것에 근거하여 ‘閶’을 북의 소리로 번역하였다.
역주5 夫戰勇氣也 一鼓作氣 : 魯 莊公 10년에 제나라가 침략하자 장공이 應戰하였는데, 전투에 임하여 진격의 북을 치려 하자 曹劌(궤)가 때가 아니라고 만류하고, 제나라가 북을 세 차례 치자 그때서야 공격을 개시하게 하였다. 후에 노나라가 승리한 까닭을 조궤에게 묻자, 조궤가 대답한 내용이다. ≪春秋左氏傳≫
역주6 金鼓以聲氣 : ≪春秋左氏傳≫ 僖公 22년의 글이다.
역주7 (十)[一]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一’로 번역하였다.
역주8 兩卒師旅 : 軍制는, 25인이 兩이고 100인이 卒이고 500인이 旅師이고 2,500인이 師旅이다. ≪周禮 地官 小司徒≫
역주9 (吁)[于]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于’로 번역하였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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