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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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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國風 鄭氏箋 孔穎達疏
【序】兎罝 后妃之化也 關雎之化行하니 則莫不好德하여 賢人衆多也
토저兎罝〉는 후비后妃의 교화를 읊은 시이다.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지니 덕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현인이 많은 것이다.
【疏】‘兎罝(三章章四句)’至‘衆多’
의 [토저兎罝]에서 [중다衆多]까지
○正義曰:作兎罝詩者, 言后妃之化也. 言由后妃關雎之化行, 則天下之人, 莫不好德, 是故賢人衆多.
정의왈正義曰:〈토저兎罝〉를 지은 것은 후비后妃의 교화를 말한 것이다. 후비后妃로부터 〈관저關雎〉의 교화가 행해지면 천하 사람들이 덕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니, 이 때문에 현인이 매우 많음을 말한 것이다.
由賢人多, 故兎罝之人, 猶能恭敬, 是后妃之化行也. 經三章, 皆言賢人衆多之事也.
현인이 많기 때문에 토끼그물 치는 사람까지도 오히려 능히 공경스러우니, 이것이 후비后妃의 교화가 행해진 것이다. 3장은 모두 현인이 많은 일을 말하였다.
經直陳兎罝之人賢, 而云多者, 箋云 “罝兎之人, 鄙賤之事, 猶能恭敬, 則是賢人衆多.” 是擧微以見著也.
에서는 토끼그물 치는 사람이 어진 것만을 말하였는데, 에서 라고 한 것은 에서 “토끼그물을 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비천하지만 오히려 매우 공경스러우니 이는 현인이 많은 것이다.”라고 해서이니, 이는 숨은 뜻을 드러낸 것이다.
【疏】桃夭言‘后妃之所致’, 此言‘后妃之化’, 芣苢言‘后妃之美’, 此三章, 所美如一, 而設文不同者,
주남 도요周南 桃夭〉에서는 ‘후비지소치后妃之所致’라 하고, 여기서는 ‘후비지화后妃之化’라 하고, 〈주남 부이周南 芣苢〉에서는 ‘후비지미后妃之美’라 하였으니, 이 세 장에서 찬미한 바는 같은데 표현이 다른 것은,
以桃夭承螽斯之後, 螽斯以前, 皆后妃身事, 桃夭則論天下昏姻得時, 爲自近及遠之辭, 故云所致也,
도요桃夭〉가 〈주남 종사周南 螽斯〉의 뒤를 이었는데 〈종사螽斯〉 이전은 모두 후비后妃 자신의 일이고, 〈도요桃夭〉는 천하 사람들이 혼인을 제때에 하게 된 것을 말하였으니 교화가 가까운 데로부터 먼 데까지 미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치所致’라고 한 것이다.
此兎罝, 又承其後, 已在致限, 故變言之化, 明后妃化之使然也, 芣苢, 以后妃事終, 故摠言之美,
이 〈토저兎罝〉는 또 〈도요桃夭〉의 뒤를 이었으니, 이미 다 미친 뒤이므로 ‘교화’로 말을 바꾸어 후비后妃의 교화가 그렇게 한 것임을 밝힌 것이고, 〈주남 부이周南 芣苢〉는 후비后妃에 대한 일이 끝났으므로 ‘아름다움’으로 총괄하여 말한 것인데,
其實三者, 義通, 皆是化美所以致也.
실제 세 장은 뜻이 통하니, 이는 모두 후비의 교화와 아름다운 덕이 이룬 바이다.
【疏】又上言‘不妬忌’, 此言‘關雎之化行’, 不同者, 以桃夭說昏姻男女, 故言不妬忌,
또 위 〈에서는〉 ‘불투기不妬忌’라 하고 여기서는 ‘관저지화행關雎之化行’이라 하여 말이 같지 않은 것은, 〈도요桃夭〉는 혼인하는 남녀를 읊은 것이기 때문에 ‘불투기不妬忌’라 한 것이고,
此說賢人衆多, 以關雎求賢之事, 故言‘關雎之化行’. 芣苢則婦人樂有子, 故云‘和平’.
여기서는 어진 이가 많은 것을 말하였으니, 〈관저關雎〉가 어진 이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에서〉 ‘관저지화행關雎之化行’이라 한 것이다. 〈부이芣苢〉는 부인婦人이 자식을 둠을 즐거워한 것이다. 그리하여 ‘화평和平’이라 한 것이다.
序者, 隨義立文, 其實, 摠上五篇, 致此三篇.
는 시의 의미에 따라 글을 쓴 것이지만, 실제 위의 다섯 편을 총괄하여 이 세 편에 이른 것이다.
肅肅兎罝 椓之丁丁이로다
공경스러운 토끼그물 치는 이 탕탕 말뚝을 박네
【傳】肅肅 敬也 兎罝 兎罟也 丁丁 椓杙聲也
숙숙肅肅은 공경스러움이다. 토저兎罝는 토끼그물이다. 정정丁丁은 말뚝을 박는 소리이다.
【箋】箋云 罝兎之人 鄙賤之事어늘 猶能恭敬하니 則是賢者 衆多也
전운箋云:토끼그물 치는 사람은 비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매우 공경스러우니, 이는 어진 이가 많은 것이다.
○罟이라 又作弋이라 爾雅云 樴 謂之杙이라
는 그물이다.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다. ≪이아爾雅≫에는 “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赳赳武夫 公侯干城이로다
씩씩한 무부武夫공후公侯간성干城이네
【傳】赳赳 武貌 扞也
규규赳赳는 씩씩한 모습이다. 은 ‘막음’이다.
【箋】箋云 干也 城也 皆以禦難也
전운箋云은 모두 을 막는 것이다.
此罝兎之人 賢者也 有武力하여 可任爲將帥之德하니 諸侯可任以國守하여 扞城其民하고 折衝禦難於未然이라
여기의 토끼그물 치는 사람은 어진 자로서 용기와 힘이 있어 장수가 될 만한 덕을 지녔으니, 제후가 나라의 수비를 맡길 만하므로 백성을 보호하고 미연에 적을 차단하여 난을 막게 한 것이다.
○赳 爾雅云 勇也라하고 如字 孫炎注云 干이니 所以自蔽扞也
는 ≪이아爾雅≫에 “이다.”라고 하고, 은 본래의 음대로 읽으니, 손염孫炎에 “이니, 스스로를 가려 막는 도구이다.”라고 하였다.
【疏】‘肅肅兎罝 椓之丁丁 赳赳’至‘干城’
의 [숙숙토저 탁지정정肅肅兎罝 椓之丁丁 규규赳赳]에서 [간성干城]까지
○毛以爲 “肅肅然恭敬之人, 乃爲兎作罝, 身自椓杙. 其椓杙之聲丁丁然, 雖爲鄙賤之事, 甚能恭敬.
모형毛亨은 “엄숙하고 공경스러운 사람이 토끼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면서 자신이 직접 말뚝을 박는 것이다. 말뚝 박는 소리가 탕탕 울리니 비록 비천한 일을 하지만 매우 공경스럽다.
此人, 非直能自肅敬, 又是赳赳然威武之夫, 可以爲公侯之扞城.” 言可以蕃屛公侯, 爲之防固也.
이 사람은 다만 엄숙하고 공경스러울 뿐만 아니라, 또 씩씩한 무부로 공후公侯한성扞城이 될 만하다.”라고 여겼으니, 공후公侯를 호위하여 견고한 방패로 삼을 만함을 말한 것이다.
【疏】○鄭唯干城爲異, 言此兎罝之人, 有赳赳然威武之德,
정현鄭玄간성干城만은 모씨毛氏와 다르게 보아 ‘이 토끼그물 치는 이가 씩씩하여 위엄과 용맹한 덕이 있어서
公侯可任以國守, 令扞城其民, 使之折衝禦難於未然也, 謂公侯使之與民作扞城也.
공후가 나라의 수비를 맡길 만하므로 백성을 보호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미연에 적을 차단하여 난을 막게 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공후가 그로 하여금 백성과 더불어 한성扞城이 되게 함을 말한 것이다.
【疏】傳‘肅肅’至‘杙聲’
의 [숙숙肅肅]에서 [익성杙聲]까지
○正義曰:‘肅肅 敬也’, 釋訓文. 此美其賢人衆多, 故爲敬.
정의왈正義曰:[숙숙 경야肅肅 敬也] ≪이아爾雅≫ 〈석훈釋訓〉의 글이다. 이는 어진 이가 많음을 찬미한 글이므로 숙숙肅肅을 공경스럽다고 한 것이다.
小星云 “肅肅宵征”, 故傳曰 “肅肅, 疾貌.” 鴇羽․鴻鴈, 說鳥飛, 文連其羽,
소남 소성召南 小星〉에 “바삐 밤길을 감이여[숙숙소정肅肅宵征]”라 하였으므로, 에 “숙숙肅肅은 빠른 모양이다.”라고 하였고, 〈당풍 보우唐風 鴇羽〉와 〈소아 홍안小雅 鴻鴈〉은 새가 나는 것을 표현하되 글이 와 이어져 있으므로,
故傳曰 “肅肅, 羽聲也.” 黍苗說, 箋云 “肅肅, 嚴正之貌.” 各隨文勢也.
에서 “숙숙肅肅우성羽聲이다.”라고 하였고, 〈소아 서묘小雅 黍苗〉에서는 궁실宮室을 경영하는 것을 말한 것인데, 에서 “숙숙肅肅엄정嚴正한 모습이다.”라고 하였으니, 각각 문세文勢를 따른 것이다.
釋器云 “兎罟謂之罝”, 李巡曰 “兎自作徑路, 張罝捕之也.” 釋宮云 “樴謂之杙”, 李巡云 “杙謂橜也”.
이아爾雅≫ 〈석기釋器〉에 “토끼그물을 라 한다.” 하였는데, 이순李巡은 “토끼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쳐서 잡는다.”라고 하였다. ≪이아爾雅≫ 〈석궁釋宮〉에 “이라 한다.” 하였는데, 이순李巡은 “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此丁丁連椓之, 故知椓杙聲, 故伐木傳亦云 “丁丁, 伐木聲.”
여기서는 ‘정정丁丁’이 ‘탁지椓之’에 이어졌다. 그리하여 말뚝을 치는 소리임을 안 것이다. 그리하여 〈소아 벌목小雅 伐木〉의 에서도 “정정丁丁벌목伐木하는 소리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傳‘干 扞也’
의 [간 한야干 扞也]
○正義曰:釋言文, 孫炎曰 “干, 盾, 自蔽扞也.” 下傳曰 “可以制斷, 公侯之腹心.” 是公侯以爲腹心.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인데 손염孫炎은 “은 방패이니, 스스로를 막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아래의 에서 “시비를 결단할 수 있으니, 공후의 심복이다.’라 하였으니, 이는 공후公侯심복心服으로 여기는 것이다.
則好仇者, 公侯自以爲好匹, 干城者, 公侯自以爲扞城, 言以武夫自固, 爲扞蔽如盾, 爲防守如城然.
그렇다면 〈아래 의〉 호구好仇공후公侯가 스스로 좋은 짝으로 여긴 것이고, 간성干城공후公侯가 스스로 한성扞城으로 여긴 것이니, 무부武夫가 본래 굳건하여 막음이 방패와 같으며 방어하고 지킴이 성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疏】箋‘干也’至‘未然’
의 [간야干也]에서 [미연未然]까지
○正義曰:箋以此武夫爲扞城其民, 易傳者, 以其赳赳武夫, 論有武任, 明爲民扞城, 可以禦難也.
정의왈正義曰에서 이 무부武夫를 ‘한성기민扞城其民’이라 하여 의 말을 바꾼 것은, 씩씩한 무부武夫는 무사로서의 자질을 말해보면 분명 백성의 한성扞城이 되어 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言未然者, 謂未有來侵者, 來則折其衝, 禦其難也, 若使和好, 則此武夫亦能和好之, 故二章云‘公侯好仇’.
미연未然’이라 한 것은 아직 침입하지 않았을 때를 말하니, 만일 침입해온다면 그들의 공격을 차단하여 그 난을 막을 것이고, 만일 강화하여 우호한다면 이 무부武夫가 또한 우호를 잘 할 것이다. 그리하여 2장의 에서 ‘공후호구公侯好仇’라 한 것이다.
肅肅兎罝 施于中逵로다
공경스러운 이의 토끼그물 큰 길목에 치네
【傳】逵 九達之道
는 아홉 군데로 통하는 길이다.
○施 如字 杜預注春秋云 塗方九軌
는 본래의 음으로 읽는다. 두예杜預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에 “아홉 대의 수레가 나란히 갈 수 있는 길이다.”라고 하였다.
【疏】傳‘逵 九達之道’
의 [규 구달지도逵 九達之道]
○正義曰:釋宮云 “一達 謂之道路, 二達 謂之歧旁.” 云 “歧道旁出”,
정의왈正義曰:≪이아爾雅≫ 〈석궁釋宮〉에 “일달一達도로道路라 하고, 이달二達기방歧旁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곽씨郭氏는 “갈라진 길이 옆으로 뻗어 나감이다.”라고 하고,
“三達謂之劇旁.” 孫炎云 “旁出歧多, 故曰劇”, “四達謂之衢.” 郭氏云 “交道四出”,
삼달三達극방劇旁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옆으로 뻗어간 길이 많다. 그리하여 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고, “사달四達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곽씨郭氏는 “길이 교차하여 네 방향으로 뻗어나간 것이다.”라고 하고,
“五達謂之康.” 孫炎云“康, 樂也, 交會樂道也.” “六達謂之莊.” 孫氏云 “莊, 盛也, 道煩盛”,
오달五達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은 즐거움이니 길에 모여 즐거워함이다.”라고 하고, “육달六達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손씨孫氏는 “은 성대함이니, 길이 번화한 것이다.”라고 하고,
“七達謂之劇驂.” 孫氏云 “三道交, 復有一歧出者.” “八達謂之崇期.” 郭氏云 “四道交出”,
칠달七達극참劇驂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손씨孫氏는 “세 길이 교차하고 하나의 길이 더 뻗어 있는 것이다.”라고 하고, “팔달八達숭기崇期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곽씨郭氏는 “네 길이 교차하여 뻗어나간 것이다.”라고 하고,
“九達謂之逵.” 郭璞云 “四道交出, 復有旁通者.” 莊二十八年左傳, 楚伐鄭, “入自純門, 及逵市.” 杜預云 “”,
구달九達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은 “네 길이 교차하여 뻗어나간 데다 또 옆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장공莊公 28년에 을 칠 때에 “순문純門으로 들어가 규시逵市(길가의 시장)에 미쳤다.”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는 “는 아홉 대의 수레가 나란히 갈 수 있는 길이다.”라고 하였는데,
案周禮 “”, 不名曰逵, 杜意, 蓋以鄭之城內, 不應有九出之道, 故以爲竝九軌, 於爾雅則不合也.
주례周禮≫를 살펴보면 “경도經塗구궤九軌이다.”라 하고 라 이름하지 않았으니, 두예杜預의 뜻은 나라 도성 안에 응당 아홉 곳으로 난 길이 없었으므로 ‘병구궤竝九軌’라 하였을 것인데, 이는 ≪이아爾雅≫와는 합치하지 않는다.
赳赳武夫 公侯好仇로다
씩씩한 무부武夫 공후의 좋은 짝이네
【箋】箋云 怨耦曰仇之人 敵國有來侵伐者 可使和好之하니 亦言賢也
전운箋云:원망하는 상대를 라 한다. 이 토끼그물 치는 이는 침범해오는 적국이 있으면 그들과 우호하게 할 수 있으니, 또한 그의 현명함을 말한 것이다.
【疏】‘赳赳’至‘好仇’
의 [규규赳赳]에서 [호구好仇]까지
○毛以爲 “赳赳然有威武之夫, 有文有武, 能匹耦於公侯之志, 爲公侯之好匹.” 此雖無傳, 以毛仇皆爲匹, 鄭唯好仇爲異.
모형毛亨은 “위엄과 무용을 지닌 씩씩한 사람이 문무를 겸비하여 능히 공후의 뜻에 합당하니 공후의 좋은 짝이 된다.”라고 여긴 것이다. 비록 〈이 에 대한〉 은 없지만 모형毛亨이 ‘’를 모두 ‘’로 여긴 것은 정현鄭玄이 ‘적국과 우호하다’로 여긴 것과는 다르다.
肅肅兎罝 施于中林이로다
공경스러운 이의 토끼그물 숲 속에 치네
【傳】中林 林中이라
중림中林은 숲 속이다.
○施 如字
는 본래의 음으로 읽는다.
赳赳武夫 公侯腹心이로다
씩씩한 무부 공후의 심복이네
【傳】可以制斷하니 公侯之腹心이라
시비를 결단할 수 있으니, 공후의 심복이다.
【箋】箋云 此罝兎之人 於行攻伐 可用爲策謀之臣하여 使之慮하니 亦言賢也
전운箋云:이 토끼그물 치는 이가 공벌攻伐을 행할 때에 책신策臣으로 삼을 만하여 그로 하여금 뜻밖의 일에 도모하게 한 것이니, 또한 그의 현명함을 말한 것이다.
【疏】‘公侯腹心’
의 [공후복심公侯腹心]
○毛以爲 “兎罝之人, 有文有武, 可以爲腹心之臣.” 言公侯有腹心之謀事, 能制斷其是非.
모형毛亨은 “토끼그물 치는 이가 문무를 겸비하여 심복의 신하로 삼을 만하다.”고 여겼으니, 공후에게 일을 도모하는 심복이 있어서 일의 시비를 잘 결단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鄭以爲 “此罝兎之人賢者, 若公侯行攻伐時, 可使之爲腹心之計, 謀慮前事.”
정현鄭玄은 “이 토끼그물 치는 어진 사람은 공후가 공벌攻伐을 행할 때에 그로 하여금 충심의 계책을 내어 사전에 도모하게 할 수 있는 자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疏】傳‘可以’至‘腹心’
의 [가이可以]에서 [복심腹心]까지
○正義曰:解武夫可爲腹心之意. 由能制斷, 公侯之腹心, 以能制治, 己之腹心, 臣之倚用, 如己腹心.
정의왈正義曰무부武夫가 심복이 될 수 있다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능히 결단할 수 있으므로 공후의 심복이 되고, 그가 일을 잘 다루므로 〈공후가〉 자기의 심복을 삼은 것이니, 이는 신하를 의지하고 신용하기를 자기 심복처럼 하는 것이다.
【疏】箋‘此罝’至‘言賢’
의 [차저此罝]에서 [언현言賢]까지
○正義曰:箋以首章爲禦難, 謂難未至而預禦之, 二章爲和好怨耦, 謂已被侵伐, 使和好之也, 皆是用兵之事,
정의왈正義曰은, 첫 장에서 ‘난을 막는다’라고 한 것은 난이 닥치기 전에 미리 막음을 말한 것이고, 2장에서 ‘적과 우호한다’라고 한 것은 침략 당했을 때 그로 하여금 우호하게 함을 말한 것이니, 이는 모두 군사를 쓰는 일이다.
故知此腹心者, 謂‘行攻伐’, 又‘可以爲策謀之臣, 使之慮無也.’
그리하여 여기의 ‘복심腹心’은 공벌攻伐을 행할 때에도 책신策臣으로 삼을 만하여 그로 하여금 뜻밖의 일에 도모하게 하는 것’을 말함을 안 것이다.
慮無者, 宣十二年左傳文也, 謀慮不意之事也. 今所無, 不意有此, 卽令謀之, 出其奇策也.
여무慮無’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선공宣公 12년의 글인데 뜻밖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뜻밖에 이런 일이 있게 되면 바로 그로 하여금 도모하여 뛰어난 계책을 내게 하는 것이다.
言用策謀, 明自往攻伐, 非和好兩軍, 與二章異也.
계책을 씀을 말하였으니 분명 자기가 가서 공벌攻伐하는 것이지 양 군을 화해시켜 우호하게 하는 것이 아니므로 2장과는 다르다.
兎罝三章이니 章四句
토저兎罝〉는 3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宮室 : 〈小雅 黍苗〉의 “엄정한 謝邑의 일을 召伯이 경영하며[肅肅謝功 召伯營之]”에서 ‘功’을 풀이한 말이다. 功役을 다스림이 엄정함을 표현한 구절이다.
역주2 郭氏 : 晉의 郭璞이다. ≪爾雅≫에 注를 달았으며, 宋나라 刑昺이 ≪爾雅註疏≫를 편찬하였다.
역주3 逵竝九軌 : ≪春秋左氏傳≫ 宣公 12년의 “楚軍이 鄭나라를 포위하고 공격하여 승리하고서 皇門으로 들어가 도로에 이르니[至于逵路]”에 대하여 杜預가 “아홉 대의 수레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를 逵라 한다.[塗方九軌曰逵]”라고 한 것을 말한다.
역주4 經塗九軌 : ≪周禮≫ 〈考工記 匠人〉에 의하면 도성 안에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이 經塗인데, 폭은 72척으로 12보이다. 수레 양 바퀴 사이의 거리인 6척 6촌에 옆으로 나온 위판의 너비 7촌을 더하면 수레 한 대당 차지하는 폭이 8척이고, 수레 아홉 대가 나란히 지나가려면 도로의 폭은 72척이 되어야 하니, 이것이 ‘九軌’이다.
역주5 (兎罝)[罝兎] : 경문과 毛亨의 傳에는 ‘兎罝’로 되어 있고 鄭玄의 箋과 箋에 대한 疏에는 ‘罝兎’로 되어 있는데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罝兎‘로 번역하였다.
역주6 (事)[無]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無’로 번역하였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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