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毛詩正義(2)

모시정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모시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毛詩國風 鄭氏箋 孔穎達疏
【序】摽有梅 男女及時也 召南之國 被文王之化하여 男女得以及時也
표유매摽有梅〉는 남녀男女가 제때에 혼인한 것을 읊은 시이다. 소남召南의 나라들이 문왕文王의 교화를 받아 남녀男女가 제때에 혼인할 수 있었다.
○梅 木名也 作楳하고 說文 楳亦梅字 男女及時也 本或作得以及時者하니 從下而誤
는 나무 이름인데, ≪한시韓詩≫에는 자로 되어 있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자 또한 자이다.”라고 하였다. ‘남녀급시야男女及時也’가 ‘〈남녀男女득이급시得以及時’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뒤의 글을 따라 잘못 쓴 것이다.
【疏】‘摽有梅(三章章四句)’至‘及時’
의 [표유매摽有梅]에서 [급시及時]까지
○正義曰:作摽有梅詩者, 言男女及時也.
정의왈正義曰:〈표유매摽有梅를 지은 것은 남자와 여인이 제때에 혼인한 것을 말한 것이다.
召南之國, 被文王之化, 故男女皆得以及時, 謂紂時俗衰政亂, 男女喪其配耦, 嫁娶多不以時, 今被文王之化, 故男女皆得以及時.
소남召南의 나라들이 문왕文王의 교화를 받았기 때문에 남녀가 모두 제때에 혼인할 수 있었으니, 이는 의 때에는 풍속이 쇠미하고 정사가 문란하여, 남녀가 자기의 짝을 얻을 시기를 잃어 혼인을 대부분 제때에 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문왕文王의 교화를 입었기 때문에 남녀가 모두 제때에 혼인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俗本‘男女’下, 有‘得以’二字者, 誤也.
남녀男女’ 아래에 ‘득이得以’ 두 글자가 있는 속본은 잘못이다.
【疏】毛以卒章云三十之男二十之女, 爲蕃育法, 二章爲男年二十八九女年十八九, 首章謂男年二十六七女年十六七.
모형毛亨은 마지막 에서 말한 30세의 남자와 20세의 여인은 백성을 늘리는 (번육법蕃育法)이고, 둘째 은 남자의 나이 28, 9세와 여인의 나이 18, 9세이고, 첫째 은 남자의 나이 26, 7세와 여인의 나이 16, 7세임을 말한 것으로 여겼다.
以梅落, 喩男女年衰, 則未落, 宜據男年二十五, 女年十五矣,
매실梅實이 떨어진 것으로 남녀의 나이가 들어감을 비유해보면, 아직 떨어지지 않는 것은 남자의 나이 25세와 여인의 나이 15세에 해당된다.
則毛以上二章, 陳年盛之時, 卒章, 蕃育法, 雖在期盡, 亦是及時.
그렇다면 모형毛亨은 위의 두 은 나이가 차서 정혼正昏할 시한임을 말하고, 마지막 번육법蕃育法에 해당되어 비록 혼기가 다 지나가지만 역시 제때에 미친 것으로 여긴 것이다.
東門之楊傳云 “不逮秋冬.” 則毛意以秋冬皆得成昏. 曰 “霜降逆女, 冰泮殺止.” 霜降, 九月也, 冰泮, 正月也.
진풍 동문지양陳風 東門之楊〉의 에 “혼인이 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불체추동不逮秋冬]”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모형毛亨의 뜻은 모두에 성혼成昏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손경孫卿이 “상강霜降 때에 여인을 맞이하고 빙반冰泮 때에 그친다.”라고 하였으니,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구월九月이고 얼음이 풀리는 빙반冰泮정월正月이다.
孫卿, 毛氏之師, 明毛亦然, 以九月至正月, 皆可爲昏也.
손경孫卿모형毛亨의 스승이니, 분명 모형毛亨도 그렇게 여겨 구월九月에서 정월正月까지 모두 혼인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又家語曰 “霜降而婦功成, 而嫁娶者行焉, 冰泮農業起, 昏禮殺於此.”
또 ≪공자가어孔子家語≫ 〈본명해本命解〉에 “서리가 내리면 부인의 일이 다 끝나게 되어 혼인을 할 수 있고, 얼음이 녹으면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어 혼례를 이때에 그친다.”라고 하고,
又云 “冬合男女, 春班爵位.” 邶詩曰 “士如歸妻, 迨冰未泮.” 是其事也.
또 ≪공자가어孔子家語≫ 〈예운禮運〉에 “겨울에는 남녀를 만나게 하고 봄에는 작위爵位를 주되 〈반드시 나이와 덕에 맞게 한다.[필당연덕必當年德]〉”라고 하고, 〈패풍 포유고엽邶風 匏有苦葉〉에 “남자가 장가가려면 얼음이 녹기 전에 하여야 한다.[사여귀처 태빙미반士如歸妻 迨冰未泮]”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일이다.
【疏】其, 夏小正言二月者, 皆爲期盡蕃育之法. 禮記云 “二十曰弱冠.” 又曰 “冠, 成人之道.” 成人, 乃可爲人父矣.
주례周禮≫ 〈지관 매씨地官 媒氏〉에서 말한 ‘중춘仲春’과 ≪대대례기大戴禮記≫ 〈하소정夏小正〉에서 말한 ‘이월二月’은 모두 혼인의 철이 다 지나가 번육법蕃育法에 해당된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20세를 약관弱冠이라 한다.”라고 하고, 또 ≪예기禮記≫ 〈관의冠義〉에 “관례冠禮성인成人이 되는 이다.”라고 하였으니, 성인이라야 비로소 아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喪服傳曰 “.” 禮子不殤父, 明男二十爲初娶之端.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19세에서 16세까지가 장상長殤이다.”라고 하였으니, 에 자식이 있으면 아비는 이 되지 않지만, 분명 남자는 20세가 처음 장가가는 시점이 된다.
又禮記曰 “女子十五許嫁而笄.” 以十五爲成人, 許嫁不爲殤, 明女十五爲初昏之端矣.
또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여자女子는 15세에 시집감을 허여하고 계례笄禮를 한다.”라고 하였으니 15세이면 성인이 된다. 시집감을 허여하였으면 이 되지는 않지만, 분명 여인은 15세가 처음 혼인하는 시점이 된다.
【疏】王肅述毛曰 “前賢有言, 丈夫二十不敢不有室, 女子十五不敢不事人.”
왕숙王肅모형毛亨의 뜻을 서술하여 “전현前賢이 ‘장부丈夫는 20세가 되면 부인을 두지 않아서는 안 되고, 여자女子는 15세가 되면 남편을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라고 하고,
譙周亦云 “是故, 男自二十以及三十, 女自十五以至二十, 皆得以嫁娶, 先是則速, 後是則晩矣.
초주譙周도 “이런 까닭에 남자는 20세에서 30세까지, 여인은 15세에서 20세까지 모두 혼인을 할 수 있으니, 이 나이보다 앞서면 빠른 것이고 이 나이보다 뒤이면 늦은 것이다.
凡人嫁娶, 或以賢淑, 或以方類, 豈但年數而已.” 此皆取說於毛氏矣.
대체로 사람들은 혼인함에 있어 혹 어짊을 따지기도 하고, 혹 부류에 맞추기도 하니 어찌 나이만 따지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두 사람은 모형毛亨에게서 말을 취한 것이다.
然則男自二十九, 女自十五以至十九, 皆爲盛年, 其昏, 自季秋至於孟春, 惟其所用, 不限其月.
그렇다면 남자는 20세에서 29세까지, 여자는 15세에서 19세까지가 모두 알맞은 나이가 되고, 혼인은 계추季秋에서 맹춘孟春에 이르기까지 하되, 시행함에는 그 달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疏】若男三十女二十爲期盡蕃育, 雖仲春, 猶可行, 卽此卒章, 是也.
만약 남자는 30세이고 여인은 20세로 기한이 다 지나가 번육蕃育을 위한 경우이면, 비록 중춘仲春이라도 오히려 혼인을 행할 수 있으니, 곧 이 편의 마지막 장이 이것이다.
又男女之昏, 爲賢淑與方類, 但男年二十以後, 女年十五以後, 隨任所當, 嘉好則成, 不必要以十五六女, 配二十一二男也,
또 남녀의 혼인은 현숙賢淑과 같은 부류를 따져 하지만, 남자 나이 20 이후와 여인 나이 15 이후에는 합당한 바에 따라서 좋으면 성혼하는 것이니, 반드시 15세나 16세의 여인으로서 21세나 22세의 남자를 배필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雖二十女, 配二十之男, 三十之男, 配十五之女, 亦可也.
그러니 비록 20세의 여인이 20세의 남자와 짝하고 30세의 남자가 15세의 여인과 짝하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傳言‘三十之男, 二十之女’, 據其竝期盡者, 依爲正, 鄭據周禮, 仲春爲昏, 是其正.
에서 말한 ‘30세의 남자와 20세의 여인’은 모두 기한이 다 되었음을 근거한 것이니, ≪주례周禮≫ 〈지관 매씨地官 媒氏〉의 글을 따라 바름으로 삼은 것이고, 정현鄭玄은 ≪주례周禮≫ 〈지관 매씨地官 媒氏〉에 의거하여 중춘仲春에 혼인하는 것이 바르다고 한 것이다.
此序云‘男女得以及時’, 言及者, 汲汲之辭, 故三章, 皆爲蕃育之法, 非仲春也.
에서 ‘남녀득이급시男女得以及時’의 은 ‘급급汲汲’이란 말이다. 그리하여 세 장이 모두 번육법蕃育法이지 중춘에 혼인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上二章, 陳及夏行嫁, 卒章, 言夏晩大衰, 不復得嫁, 待明年仲春, 亦是及時也.
위의 두 장은 여름이 되어 혼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마지막 장은 늦여름이면 때가 너무 지나 더 이상 혼인하지 못하고 다음해의 중춘을 기다리는 것이 또한 제때에 미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疏】以梅實, 喩時之盛衰, 不以喩年. 若梅實未落, 十分皆在, 喩時未有衰, 卽仲春之月, 是也.
매실梅實로 혼사할 시기가 알맞은지를 비유한 것이지 혼인할 나이를 비유한 것은 아니다. 만약 매실梅實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면 모두 다 달려 있어 철이 아직 지나지 않았음을 비유한 것이니, 바로 중춘仲春의 달이 이것이다.
此經所不陳, 旣以仲春之月爲正, 去之彌遠則時益衰, 近則衰少, 衰少則梅落少, 衰多則似梅落多, 時不可爲昏則似梅落盡.
이는 에 기술된 것은 아니지만, 중춘의 달을 올바른 시기로 여긴다면 중춘과 멀수록 철이 더욱 지난 것이고 가까울수록 많이 지나지 않은 것이니, 많이 지나지 않음은 떨어진 매실이 적은 것과 비슷하고, 많이 지남은 떨어진 매실이 많은 것과 비슷하고, 계절이 결혼할 수 없게 됨은 매실이 전부 떨어진 것과 비슷하다.
首章‘其實七兮’, 謂在樹者七, 梅落仍少, 以喩衰猶少, 謂孟夏也, 以去春近, 仍爲善時, 故下句言 ‘迨其吉兮.’ 欲及其善時也.
첫 장의 ‘남은 열매 일곱이네.[기실칠혜其實七兮]’는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이 일곱 개여서, 떨어진 매실이 아직은 적음을 말하여, 이것으로 얼마 지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니 맹하孟夏를 의미한다. 맹하는 봄과 가까워 아직도 좋은 시기가 되기 때문에 아래 구에서 ‘좋은 때에 와야 하리[태기길혜迨其吉兮]’라고 하였으니, 좋은 계절에 혼인하고자 한 것이다.
二章言‘其實三兮’ 謂在者唯三, 梅落益多, 謂仲夏也, 過此則不復可嫁, 故云 “迨其今兮.” 今, 急辭, 恐其過此, 故急也.
둘째 장에서 말한 ‘그 열매 셋이네.[기실삼혜其實三兮]’는 달려 있는 것이 세 개뿐이어서 떨어진 매실이 더욱 많음을 말한 것이니 중하仲夏를 의미한다. 중하를 지나면 다시 혼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와야 하리[태기금혜迨其今兮]”라고 하였으니, 은 급하다는 말이니 이때를 지날까 걱정하기 때문에 급하게 여긴 것이다.
又卒章‘頃筐墍之’, 謂梅十分皆落, 梅實旣盡, 喩去春遠, 善亦盡矣, 謂季夏也, 不可復昏, 待至明年仲春, 故下句云‘迨其謂之’.
또 마지막 장의 ‘광주리 기울여 담도다.[경광기지頃筐墍之]’는 매실이 전부 떨어져 하나도 없음을 말하니, 봄과 더욱 멀어서 좋은 철이 다 지나갔음을 비유한 것이니 계하季夏를 의미한다. 늦여름에는 더 이상 혼인할 수 없어 명년의 중춘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아래 에서 ‘말만 하면 되리[태기위지迨其謂之]’라고 말한 것이다.
【疏】箋云 “女年二十而無嫁端, 則有勤望之憂, 明年仲春, 不待以禮會之, 時禮雖不備, 相奔不禁.” 由季夏時盡, 故至明年也.
〈마지막 장의〉 에 “여인이 나이 20세가 되었는데도 혼인할 실마리가 없으면 애써 바라는 걱정이 있어서, 다음해의 중춘에는 합당한 로 만남을 기다리지 않으니, 비록 제철에 맞는 예가 갖추어지지 않더라도 서로 몰래 만남을 금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계하季夏는 혼인할 계절이 다 지났기 때문에 다음해에 이르는 것이다.
季春亦非正時, 箋不以首章當之者, 以四月五月, 與春接連, 猶可以嫁, 三月則可以嫁明矣, 六月則爲晩. 此篇三章, 宜一章興一月,
계춘季春 역시 올바른 철이 아닌데도 에서 첫 에 해당시키지 않은 것은, 4월과 5월은 봄과 이어져 그래도 혼인을 할 수 있고, 3월에는 혼인할 수 있음이 분명하지만, 6월에는 늦기 때문이다. 이 편 세 장은 의당 한 이 한 달씩을 한 것이다.
故以首章爲初夏, 二章爲向晩, 此‘得以及時’, 宜擧末以言之, 故不以爲季春也.
그리하여 첫 장을 초하初夏로 여기고, 둘째 장을 늦어가는 것으로 여긴 것이니, 이 ‘득이급시得以及時’는 마지막 장을 들어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계춘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所以於五月得爲昏, 至六月則不可者, 以四月五月去春未一時, 故可强嫁, 季夏, 去春遠矣, 故不得爲昏.
5월에는 혼인을 할 수 있지만 6월에 이르면 할 수 없는 까닭은, 4월과 5월은 봄에서 아직 한 철(3개월)이 되지 않기 때문에 힘써 혼인할 수 있지만, 계하季夏에 이르면 봄에서 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혼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知待至明年春者, 周禮媒氏 ‘仲春之月, 奔者不禁’, 故知明年得行也.
다음 해의 봄이 이르기를 기다리는 것임을 안 것은 ≪주례周禮≫ 〈지관 매씨地官 媒氏〉에서 “중춘의 달에는 서로 몰래 만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음 해에 〈혼인을〉 행할 수 있음을 안 것이다.
【疏】鄭以仲春爲昏月, 故行露․野有蔓草, 皆引周禮 ‘仲春之月, 令會男女之無夫家者’,
정현鄭玄중춘仲春을 혼인하는 달로 여겼다. 그리하여 〈소남 행로召南 行露〉와 〈정풍 야유만초鄭風 野有蔓草〉에 모두 ≪주례周禮≫ 〈지관 매씨地官 媒氏〉의 ‘중춘仲春의 달에 남편과 처가 없는 남녀를 만나게 한다.’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又夏小正 ‘二月, 綏多女士’, 下云‘有女懷春’, 故以仲春爲昏月也.
또 ≪대대례기大戴禮記≫ 〈하소정夏小正〉에 ‘2월은 많은 여인과 남자를 편안케 한다.’라고 하고, 아래 〈소남 야유사균召南 野有死麕〉에서 ‘여인이 봄을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중춘을 혼인의 달로 여긴 것이다.
此首章箋云‘女年二十’, 則依周禮․書傳․穀梁․禮記, 皆言‘男三十而娶, 女二十而嫁’, 故不從毛傳.
여기 첫 장의 에서 말한 ‘여년이십女年二十’은 곧 ≪주례周禮≫, ≪상서대전尙書大傳≫,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예기禮記≫에 모두 ‘남자는 30세에 장가가고 여인은 20세에 시집간다.’라고 한 것을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모형毛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且‘女子十五’, 正言許嫁, 不言卽嫁也. 越語曰 “女子十七不嫁, 丈夫二十不娶, 父母有罪.” 越王謂欲報吳之故, 特下此令.
또 ‘여자십오女子十五’는 바로 혼인을 허락함을 말한 것이지 바로 혼인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국어國語≫ 〈월어越語〉에 “여인이 17세에 시집가지 않고 장부가 20세에 장가가지 않으면 그의 부모는 벌을 받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월왕 구천越王 句踐나라에게 보복하고자 하는 일을 말하면서 특별히 내린 명령이다.
又若女年皆十五而嫁, 越王欲速爲昏, 何由乃下十七之期乎. 又諸經傳所以皆云‘三十二十’, 都不言正嫁娶之年, 而皆爲期盡也,
또 만약 여인 나이 15세에 모두 시집을 간다면 월왕越王이 빠른 나이에 혼인하기를 바라는데 무슨 이유로 17세의 기한을 명령하였겠는가. 또 여러 에서 모두 ‘30세’와 ‘20세’를 말하고 올바른 혼인의 나이를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30세와 20세가 모두 기한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孫卿․家語未可據信, 故據周禮 三十之男, 二十之女, 昏用仲春也.
앞의 손경孫卿과 ≪공자가어孔子家語≫의 말은 근거해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그리하여 ≪주례周禮≫ 〈지관 매씨地官 媒氏〉 30세의 남자와 20세의 여인은 혼인을 중춘에 하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오경이의五經異義≫를 살펴보면 “인군은 몇 살에 장가를 가는가? 지금 ≪대대례기大戴禮記≫에는 ‘남자는 30세에 장가가고 여인은 20세에 시집가는데,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같은 이다.’라고 하고,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인군이 15세에 아들을 낳는 것은 예에 맞는 것이니, 30세에 장가간다는 것은 서인庶人이다.’라고 하였다.
謹案舜生三十不娶, 謂之鰥, 禮文王世子曰 ‘文王十五生武王, 武王有兄伯邑考’, 故知人君早昏, 所以重繼嗣.”
삼가 살펴보니 임금이 나이 30세에 장가가지 못하여 ‘’이라 불렸고,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문왕文王이 15세에 무왕武王을 낳았는데, 무왕武王에게는 형인 백읍고伯邑考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인군이 일찍 혼인함은 후사後嗣를 잇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임을 알았다.”라고 하였다.
鄭玄不駮, 明知天子諸侯十二而冠, 冠而生子, 大夫以下, 明從庶人法也.
그런데 정현鄭玄이 이를 논박하지 않았으니, 이는 천자天子제후諸侯는 12세에 관례를 하고 관례를 치르고 나면 자식을 낳는 것을 분명 안 것이니, 대부大夫 이하는 서인庶人의 법을 따르는 것이 분명하다.
【疏】行露之篇, 女以多露拒男, 此四月五月而云猶可嫁者. 鄭志答張逸云 “行露, 以正言也, 摽有梅, 以蕃育人民.”
소남 행로召南 行露〉의 편에서는 여인이 이슬이 많다는 핑계로 남자를 거절하였는데, 여기에서는 4, 5월인데도 오히려 시집갈 수 있다고 하였다. ≪정지鄭志≫에서 장일張逸에게 “〈행로行露〉는 바른 법으로 말한 것이고, 〈표유매摽有梅〉는 백성을 늘리는 것으로 말한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然則行露, 爲不從男, 故以禮拒之, 此爲有故, 不及正時許之, 所以蕃育人民故也.
그렇다면 〈행로行露〉는 남자를 따르지 않기 위하여 로 거절한 것이고, 여기는 연고가 있어서 제때에 할 수 없어 혼인을 허락한 것이니 백성을 늘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綢繆首章‘三星在天’, 箋云 “三月之末四月之中.” 二章‘三星在隅’, 箋云 “四月之末五月之中.”
당풍 주무唐風 綢繆〉 첫 장의 ‘심성心星이 동방에 있네.[삼성재천三星在天]’의 에서 “3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이다.”라고 하고, 둘째 장의 ‘심성이 동남쪽의 귀퉁이에 있네.[삼성재우三星在隅]’의 에서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이다.”라고 하고,
卒章‘三星在戶’, 箋云 “五月之末六月之中.” 與此三章之喩大同.
마지막 장의 ‘심성이 창문에 있네.[삼성재호三星在戶]’의 에서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이다.”라고 하였으니, 여기 〈표유매摽有梅〉 세 장의 비유와 크게는 같다.
彼云‘不得其時’, 此云‘及時’者, 此文王之化, 有故, 不得以仲春者, 許之, 所以蕃育人民, 彼正時不行,
저기에서는 ‘제때를 얻지 못하였다.[부득기시不得其時]’라고 하고 여기에서는 ‘제때에 미쳤다.[급시及時]’라고 한 것은, 여기는 문왕의 교화를 받았지만 연고가 있어 중춘에 할 수 없어 혼인을 허락한 것이니 백성을 늘리고자 함이고, 저기는 제때에 혼인을 행하지 못한 것이다.
故爲違禮, 事同意異, 故美刺有殊.
그리하여 를 어김이 되니, 일은 같으나 뜻은 다르다. 그리하여 찬미와 풍자의 다름이 있는 것이다.
摽有梅 其實七兮로다
매실 떨어져 남은 열매 일곱이네
매梅(≪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매梅(≪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
【傳】興也 落也 盛極則隋落者梅也 尙在樹者七이라
이다. 는 ‘떨어짐’이다. 매실이 다 익으면 떨어지는데, 아직은 7개가 달려 있는 것이다.
【箋】箋云 興者 梅實尙餘七未落으로 喩始衰也 謂女二十 春盛而不嫁하여 至夏則衰
전운箋云한 것은 매실梅實이 아직 7개가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으로 철이 지나가기 시작함을 비유한 것이니, 여인이 20세로 봄이 한창인 때에 시집가지 못하여 여름에 이르게 되면 철이 지나감을 말한 것이다.
求我庶士 迨其吉兮리라
나를 찾는 남자들은 알맞은 때에 와야 하리
【傳】吉 善也
은 ‘알맞음’이다.
【箋】箋云 我 我當嫁者이라 及也 求女之當嫁者之衆士 宜及其善時 善時 謂年二十이니 雖夏라도 未大衰
전운箋云는 시집가야 할 ‘나’이다. 는 ‘무리’이다. 는 ‘미침’이다. 시집가야 할 여인을 찾는 남자들은 알맞은 때에 미쳐야 한다. ‘선시善時’란 나이 20세를 이르니, 비록 여름이라도 아직 많이 늦지 않은 것이다.
○迨 音待 韓詩云 顧也
이니, ≪한시韓詩≫에는 ‘돌아봄이다.’라고 하였다.
【疏】‘摽有’至‘吉兮’
의 [표유摽有]에서 [길혜吉兮]까지
○毛以爲 “隋落者是有梅, 此梅雖落, 其實十分之中, 尙在樹者七, 其三始落, 是梅始衰,
모형毛亨은 “매실이 다 익으면 떨어지는데, 이 매실이 비록 떨어지고는 있지만, 10개 중에 7개는 아직 나무에 달려 있고 3개만이 처음 떨어졌을 뿐이니, 이는 매실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興女年十六七, 亦女年始衰, 求女之當嫁者之衆士, 宜及其此善時以爲昏.”
이것으로 여인 나이 16, 7세가 되면 여인의 적령기 또한 지나기 시작하니, 시집가야 할 여인을 찾는 남자들은 응당 이 알맞은 나이에 혼인해야 함을 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比十五爲衰, 對十八九, 故爲善. 此同興男女年, 擧女年則男年可知矣.
15세에 비하면 〈적령기가〉 지난 것이 되지만 18, 9세와 대비하기 때문에 알맞음이 되는 것이다. 이는 남자와 여인의 나이를 같이 한 것이니, 여인의 나이를 거론하였으면 남자의 나이를 알 수 있다.
【疏】鄭以梅落興時衰爲異, 言隋落者是有梅, 此梅雖落, 其實十分之中, 尙七未落. 已三分落矣, 而在者衆,
정현鄭玄은 매실이 떨어진 것을 철이 지남을 한 것으로 보아 〈모형毛亨과〉 다르게 여겼다. 매실은 다 익으면 떨어지는데, 이 매실이 비록 떨어지고는 있지만 10개 중에 아직 7개가 떨어지지 않고 3개만 떨어져 달려 있는 것이 많음을 말하여,
以興漸衰者善時, 此時雖衰, 其十分之中, 尙七分未衰, 唯三分衰耳, 而善者猶多,
좋은 철이 차츰 지나가는데, 이 철이 비록 지나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10에 7할은 지나지 않고 3할만이 지나가 좋은 철이 그래도 많음을 한 것으로 여겼으니,
謂孟夏之月, 初承春後, 仍爲善時. 求我當嫁者之衆士, 宜及孟夏善時, 以承昏事.
맹하孟夏는 봄의 뒤를 바로 이어 그래도 좋은 철이 되니, 시집가야 할 나를 찾는 남자들은 마땅히 맹하의 좋은 철에 미쳐서 혼사를 받들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疏】箋‘梅實’至‘始衰’
의 [매실梅實]에서 [시쇠始衰]까지
○正義曰:箋知不以梅記時者, 以序云‘男女得以及時’, 而經有三章, 宜一章喩一月,
정의왈正義曰에서 매실로 철을 기록한 것이 아님을 안 것은, 에서 ‘남녀男女가 제때에 혼인할 수 있었다.[남녀득이급시男女得以及時]’라고 하였고, 의 세 이 의당 장마다 한 달씩을 비유하기 때문이다.
若爲記時則梅已有落, 不久則盡, ‘其實七兮’, 與‘頃筐墍之’, 正同一月, 非本歷陳及時之意, 故爲喩也.
만약 철을 기록한 것이라면 매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전부 떨어져서, 〈첫 장의〉 ‘남은 열매 일곱이네.[기실칠혜其實七兮]’와 〈마지막 장의〉 ‘광주리 기울여 담도다.[경광기지頃筐墍之]’가 바로 같은 달이니, 본래 때에 미치는 뜻을 하나하나 표시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비유가 되는 것이다.
【疏】箋‘我 我當嫁者’
의 [아 아당가자我 我當嫁者]
○正義曰:言此者, 以女被文王之化, 貞信之敎興, 必不自呼其夫, 令及時之取己, 鄭恐有女自我之嫌,
정의왈正義曰:〈정현鄭玄이〉 이를 말한 것은, 여인이 문왕文王의 교화를 받아 곧고 신실한 가르침이 일어나 반드시 스스로 남자를 불러 알맞은 철에 자기를 데려가게 하지 않을 것인데, 정현鄭玄를 ‘자아自我’라고 의심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故辨之, 言我者, 詩人我此女之當嫁者, 亦非女自我.
그리하여 분변한 것이니, 는 시인이 시집가야 할 이 여인을 라고 한 것이지, 여인이 스스로 라고 한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摽有梅 其實三兮로다
매실 떨어져 남은 열매 세 개네
【傳】在者三也
남아 있는 것이 세 개이다.
【箋】箋云 此夏鄕晩하여 梅之隋落差多하여 在者餘三耳
전운箋云:이는 여름이 깊어지면서 떨어진 매실이 조금 많아져 남아 있는 것이 세 개뿐임을 말한다.
○鄕 本亦作嚮하고 又作向하니이라
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으로도 쓰는데 이 같다.
求我庶士 迨其今兮리라
나를 찾는 남자들은 오늘 와야 하리
【傳】今 急辭也
은 다급하여 하는 말이다.
摽有梅 頃筐墍之로다
매실 떨어져 소쿠리 기울여 담네
【傳】墍 取也
는 ‘취함’이다.
【箋】箋云 頃筐取之 謂夏已晩하여 頃筐取之於地
전운箋云:‘경광취지頃筐取之’는 여름이 다 지나 소쿠리를 기울여 매실을 땅에서 주워 담음을 말한다.
求我庶士 迨其謂之리라
나를 찾는 남자들은 말만 하면 되리
【傳】不待備禮也 三十之男 二十之女 禮未備라도 則不待禮會而行之者 所以蕃育民人也
합당한 예를 갖추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30세의 남자와 20세의 여인은 합당한 예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도 예로 만날 것을 기다리지 않고 혼인을 하는 자이니, 이는 백성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箋】箋云 謂 勤也 女年二十而無嫁端이면 則有勤望之憂
전운箋云는 ‘애씀’이다. 여인의 나이가 20세인데도 시집갈 단서가 없으면 애써 바라는 걱정이 있게 된다.
不待禮會而行之者 謂明年仲春 不待以禮會之也 時禮雖不備 相奔不禁이라
부대예회이행지자不待禮會而行之者’는 다음해 중춘에는 합당한 예로 만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음을 이르니, 제철에 맞는 가 비록 갖추어지지 않더라도 서로 몰래 만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疏】‘摽有’至‘謂之’
의 [표유摽有]에서 [위지謂之]까지
○毛以爲隋落者是有梅, 此梅落盡, 故以頃筐取之 以興女年二十, 顔色甚衰, 而用蕃育之禮以取之,
모형毛亨은 ‘매실이 다 익으면 떨어지는데, 이 매실이 모두 떨어졌다. 그리하여 소쿠리를 기울여 주워 담는 것으로, 여인의 나이가 20세이면 예쁜 모습이 많이 가시어 백성을 늘리는 예로 취하게 되니,
求我當嫁者之衆士, 宜及其此時而謂之以成昏. 謂者, 以言謂女而取之, 不待備禮.
시집가야 할 나를 찾는 남자들은 이때에 이르면 나에게 말만 하여도 혼인을 이룰 수 있음을 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는 여인에게 말만 하여 혼인을 하고, 합당한 예가 갖추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疏】鄭以隋落者是梅, 此梅落, 故頃筐取之於地, 以興漸衰者善時, 此善時已盡,
정현鄭玄은 ‘다 익으면 떨어지는 매실이 이제 모두 떨어졌다. 그리하여 소쿠리를 기울여 땅에서 주워 담는 것으로, 조금 지난 철도 괜찮은 때이지만 이제 좋은 철이 다 지나갔다.
故待至明年仲春, 以時已過, 不可復昏故也, 求我當嫁者之衆士, 宜及明年仲春, 女勤望之時,
그리하여 다음해의 중춘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이는 철이 다 지나가 더 이상 혼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집가야 할 나를 찾는 남자들은 의당 여인이 애써 바라는 다음해의 중춘에 미쳐서 해야 함을 한 것’으로 여겼으니,
謂女年二十而不嫁, 至明年仲春, 則有勤望之憂, 宜及此時取之.
여인은 나이 20세에 시집가지 못하고 다음해의 중춘이 되면 애써 바라는 걱정이 있게 되니 마땅히 이때에 미쳐 혼인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疏】傳‘不待’至‘民人’
의 [부대不待]에서 [민인民人]까지
○正義曰:傳先言‘不待備禮’者, 解‘謂之’之意, 所以得謂之而成昏者, 由不待備禮故也.
정의왈正義曰에서 ‘부대비예不待備禮’를 먼저 말한 것은 ‘위지謂之’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말만 하여 혼인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합당한 예를 갖추기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又解‘不待備禮’之意, 言三十之男二十之女, 禮雖未備, 年期旣滿, 則不待禮會而行之, 所以蕃育民人也,
또 ‘부대비예不待備禮’의 뜻을 풀이하여 ‘30세의 남자와 20세의 여인은 비록 예가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도, 혼기가 다 지나갔기 때문에 합당한 예로 만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혼인을 하니 이는 백성을 늘리는 방법이다.’라고 하였으니,
謂多得成昏, 令其有子, 所以蕃息生育人民, 使之衆多.
혼인을 많이 하여 자식을 두게 하는 것이 백성을 늘려 많아지게 하는 방법임을 말한 것이다.
【疏】箋‘不待’至‘不禁’
의 [부대不待]에서 [불금不禁]까지
○正義曰:傳意三十之男, 二十之女, 其年仲春, 卽不待禮會而行之,
정의왈正義曰의 뜻은, 30세의 남자와 20세의 여인은 그해 중춘이 되면 합당한 예로 만남을 기다리지 않고 혼인을 한다는 것이다.
故鄭易之, 言‘不待禮會而行之’, 謂明年仲春, 不待禮會之也.
그리하여 정현鄭玄이 이를 바꾸어 ‘부대예회이행지不待禮會而行之’라고 하였으니, 다음해 중춘에야 비로소 합당한 예를 기다리지 않고 만남을 말한 것이다.
又稱不待禮者, 禮雖不備, 相奔不禁, 卽周禮 ‘仲春之月, 令會男女於是時也, 相奔者不禁’, 是也.
또 합당한 예를 기다리지 않음을 말한 것은 가 비록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도 서로 몰래 만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바로 ≪주례周禮≫ 〈지관 매씨地官 媒氏〉의 ‘중춘에는 남녀를 이때에 만나게 하여 서로 몰래 만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摽有梅三章이니 章四句
표유매摽有梅〉는 3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韓詩 : ≪詩經≫에 대하여 漢나라의 韓嬰이 편찬한 책으로 10권으로 되어 있다. 한영이 시인의 뜻을 미루어 內外傳을 지었는데 내전은 오래 전에 없어졌고 현재는 외전만 남아 있다.
역주2 正昏 : 禮法에 맞는 혼인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남자 20~30세, 여자 15~20세일 때 봄 또는 가을에 장가들거나 시집가는 것을 正昏이라고 한다.
역주3 孫卿 : 荀子(B.C.약313~B.C.238)를 말한다. 戰國時代 趙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况이고 字는 卿인데, 漢 孝宣帝의 이름 詢을 諱하여 荀을 孫으로 바꾼 것이다. 著書로는 ≪荀子≫가 있다.
역주4 周禮言仲春 : ≪周禮≫ 〈地官 媒氏〉에 “仲春의 달에 남편과 처가 없는 男女를 만나게 한다.[仲春之月 令會男女無夫家者]”라고 하였다.
역주5 十九至十六爲長殤 : ≪儀禮≫ 〈喪服傳〉에는 ‘16세부터 19세까지가 長殤이고, 12세부터 15세까지가 中殤이고, 8세부터 11세까지가 下殤이니, 이 경우에는 상복을 낮추어 입고 8세 미만에 죽으면 상복을 입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晉나라 袁準의 〈喪服傳〉에는 ≪孔子家語≫와 ≪春秋左氏傳≫을 들어 ‘7세부터 9세까지가 下殤이고, 10세부터 12세까지가 中殤이고, 13세부터 15세까지가 長殤이 되어야, 16세에 성인이 되고 15세에 자식을 낳는다는 옛 뜻과 합치된다.’라고 하였다.
역주6 [二十以至]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7 周禮文 : ≪周禮≫ 〈地官 媒氏〉에 나오는 “남자는 30세에 장가가고 여인은 20세에 시집가게 한다.[令男三十而娶 女二十嫁]”를 말한다.
역주8 [似]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9 (光)[尤]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尤’로 번역하였다.
역주10 (故)[至]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至’로 번역하였다.
역주11 異義 “人君年幾而娶.....庶人禮也 : 許愼의 ≪五經異義≫ 글에 대하여 鄭玄이 ≪駁五經異義≫를 지어서 하나하나 논박하였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하여는 논박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 ≪五經異義≫는 현재 실전되고 鄭玄의 ≪駁五經異義≫에 실려 전해진다.
역주12 [盡]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13 (如)[始]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始’로 번역하였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