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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2)

모시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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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정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序】匏有苦葉 刺衛宣公也 公與夫人 竝爲淫亂이라
포유고엽匏有苦葉〉은 위 선공衛 宣公을 풍자한 시이다. 선공宣公과 부인이 같이 음란淫亂하였다.
【箋】夫人 謂夷姜이라
부인夫人이강夷姜을 이른다.
【疏】‘匏有苦葉(四章章四句)’至‘淫亂’
의 [포유고엽匏有苦葉]에서 [음란淫亂]까지
○正義曰:竝爲淫亂, 亦應刺夫人, 獨言宣公者, 以詩者主爲規諫君, 故擧君言之, 其實亦刺夫人也.
정의왈正義曰:〈선공宣公부인夫人이〉 같이 음란하였으면 응당 부인도 풍자해야 하는데 선공宣公만을 말한 것은, 인군人君에게 바른 말로 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인군人君을 들어 말하였지만, 실제로는 부인도 풍자한 것이다.
故經首章․三章責公不依禮以娶, 二章․卒章責夫人犯禮求公, 是竝刺之.
그리하여 경문經文의 1과 3에서는 에 따라 장가들지 않음을 책망하고, 2과 마지막 에서는 부인夫人를 범하여 을 구한 것을 책망하였으니, 이는 아울러 풍자한 것이다.
【疏】箋‘夫人謂夷姜’
의 [부인위이강夫人謂夷姜]
○正義曰:知非宣姜者, 以宣姜本適伋子, 但爲公所要, 故有.
정의왈正義曰부인夫人선강宣姜이 아님을 안 것은 선강宣姜이 본래 급자伋子에게 시집을 갔는데 선공宣公이 맞이하는 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망에 기러기가 걸렸다는 풍자가 있게 된 것이다.
此責夫人云 “雉鳴求其牡”, 非宣姜之所爲, 明是夷姜求宣公, 故云‘竝爲淫亂’.
여기에서는 부인을 책망하여 “까투리 울며 수짐승 찾네.”라고 하였으니, 선강宣姜이 한 것이 아니고 분명 이강夷姜선공宣公을 구한 것이다. 그리하여 ‘같이 음란하였다’고 한 것이다.
匏有苦葉이어늘 濟有深涉이로다
박에 쓴 잎 있는데 건너는 곳은 물이 깊네
포匏(≪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포匏(≪모시품물도고毛詩品物圖攷≫)
【傳】興也 匏謂之瓠 瓠葉苦不可食也 渡也 由膝以上爲涉이라
이다. 는 ‘’를 말하니, 박의 잎이 써서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는 건너는 곳이다. 물의 깊이가 무릎 이상인 것이 이다.
【箋】箋云 瓠葉苦而渡處深하여 始可以爲昏禮하여 納采問名이라
전운箋云:박의 잎이 쓰고 건너는 곳이 깊다는 것은 8월을 말하니,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하여 비로소 혼례를 올려 납채納采문명問名의 예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深則厲 淺則揭니라
깊으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고 얕으면 걷고서 건너니라
【傳】이니 謂由帶以上也 褰衣也
옷을 입은 채로 건너는 것이 이니 물의 깊이가 이상인 것을 말하고, 는 옷을 걷는 것이다.
遭時制宜하여 如遇水深則厲하고 淺則揭矣 男女之際 安可以無禮義리오 將無以自濟也
만나는 때에 따라 알맞게 하여, 마치 깊은 물을 만나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고 얕은 물을 만나면 옷을 걷고 건너듯 해야 하니, 남녀가 만날 때 어찌 예의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예의가 없다면〉 스스로 일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箋】箋云 旣以深淺記時하고 因以水深淺으로 喩男女之才性賢與不肖 及長幼也 各順其人之宜하여 爲之求妃耦
전운箋云:깊고 얕음으로 때를 기록하고, 이로 인하여 물의 깊고 얕은 것으로 남녀 성품의 어짊과 어리석음 및 나이의 많고 적음을 비유하였으니, 각각 그 사람의 합당함에 따라 자기의 배필을 구하는 것이다.
○厲 韓詩云 至心曰厲라하고 說文作砅하니 云 履石渡水也
는 ≪한시韓詩≫에 “물이 가슴까지 이르는 것을 라 한다.”라고 하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로 쓰여 있는데 “돌을 밟고 물을 건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則揭 褰衣渡水也 揭衣 一本作揭褰衣 求妃 音配 本亦作配 下同이라
즉게則揭’는 옷을 걷고 물을 건너는 것이다. 는 옷을 걷는 것이니, ‘게 건의揭 褰衣’로 되어 있는 도 있다. 구배求妃의 〈는〉 음이 이니 ‘’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아래도 같다.
【疏】‘匏有’至‘則揭’
의 [포유匏有]에서 [즉게則揭]까지
○毛以爲, 匏有苦葉不可食, 濟有深涉不可渡, 以興禮有禁法不可越.
모형毛亨은 ‘박에 쓴 잎이 있어 먹을 수 없고, 건너는 곳에 깊은 곳이 있어 건널 수 없다는 것으로 에 금하는 이 있어 범할 수 없음을 하였고,
又云若過深水則厲, 淺水則褰衣, 過水隨宜, 期之必渡, 以興用禮當隨豐儉之異.
또 만약 깊은 물을 만나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고 얕은 물을 만나면 옷을 걷고 건너서, 물을 건너는 것을 상황에 알맞게 따라 하여 반드시 건널 것을 기약해야 함을 말하여, 예를 사용할 때는 풍흉의 다름을 따라야 함을 흥하였다.
若時豐則禮隆, 時儉則禮殺, 遭時制宜, 不可無禮, 若其無禮, 將無以自濟,
만약 풍년이면 예를 융성하게 하고, 흉년이면 예를 줄여서 때에 따라 알맞게 하여 예가 없을 수 없으니, 만약 예가 없다면 스스로 일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故雖貧儉, 尙不可廢禮, 君何爲不以正禮娶夫人, 而與夷姜淫亂乎.
그리하여 비록 가난하여 검소하게 할지라도 오히려 예를 폐할 수가 없는데, 인군人君은 어찌하여 바른 예로 부인을 맞아들이지 않고 이강夷姜과 음란한 짓을 하는가.’라고 여긴 것이다.
○鄭以爲, 匏葉先不苦, 今有苦葉, 濟處先不深, 今有深涉,
정현鄭玄은 ‘박의 잎이 예전에는 쓰지 않다가 지금은 쓴 잎이 있고, 건너는 곳이 예전에는 깊지 않았는데 지금은 깊어진 곳이 있으니,
此匏葉苦, 渡處深, 謂當八月之中時, 陰陽交會之月, 可爲昏禮之始, 行納采․問名之禮也.
이 박의 잎이 쓰고 건너는 곳이 깊다는 것은 8월의 때에는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하는 달이니, 혼례를 시작하여 납채納采문명問名의 예도 행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行納采之法如過水, 深則厲, 淺則揭, 各隨深淺之宜, 以興男女相配, 男賢則娶賢女, 男愚則娶愚女, 各順長幼之序以求昏,
납채納采의 법을 행하는 것이 물을 건너는 것과 같아서 깊으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서 각기 깊고 얕음의 알맞음에 따르는 것으로, 남녀가 서로 짝을 구할 때에 어진 남자는 어진 여인에게 장가들고 어리석은 남자는 어리석은 여인에게 장가들어 각기 나이의 많고 적음의 차례에 따라 짝을 구하는데,
君何不八月行納采之禮, 取列國之女, 與之相配, 而反犯禮而烝於夷姜乎.
인군人君은 어찌하여 8월에 납채納采의 예를 행하여 열국列國의 여인을 취하여 서로 짝하지 않고 도리어 예를 범하여 위로 이강夷姜과 정을 통하는가라고 한 것을 흥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疏】傳’匏謂’至‘可食’
의 [포위匏謂]에서 [가식可食]까지
○正義曰:陸機云 “匏葉少時可爲羹, 又可淹煮, 極美, 故詩曰 ‘幡幡瓠葉 采之烹之’,
정의왈正義曰육기陸機는 “박 잎이 어릴 때는 국을 끓일 수도 있고, 또 조림도 할 수 있는데 맛이 매우 좋다. 그리하여 〈소아 호섭小雅 瓠葉〉 시에서 ‘너풀대는 박 잎 따서 삶았네.’라고 한 것이니,
今河南及揚州人恒食之. 八月中, 堅强不可食, 故云苦葉.” 瓠, 匏一也, 故云‘謂之瓠’. 言葉苦不可食, 似禮禁不可越也.
지금 하남과 양주 사람들은 항상 먹는다. 8월에는 뻣뻣하여 먹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쓴 잎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는 같은 것이므로 ‘위지호謂之瓠’라고 한 것이고, 잎이 써서 먹을 수 없는 것은 하는 를 범할 수 없는 것과 같다.
傳以二事爲一興, 詩有此例多矣. 涉言深不可渡, 似葉之苦不可食.
에서 두 가지 일을 한 가지로 하였으니, ≪시경詩經≫에는 이런 예가 많다. ‘’은 깊어서 건널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니, 잎이 써서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
曰 “諸侯伐秦, 及涇不濟. 叔向見叔孫穆子,
국어國語≫ 〈노어魯語〉에 “제후諸侯나라를 정벌하려 할 때 경수涇水에 이르러 건너지 못하였다. 숙향叔向숙손목자叔孫穆子(숙손표叔孫豹)를 만났는데 숙손목자叔孫穆子가 ‘나의 일은 〈포유고엽匏有苦葉〉에 있다.’고 하니,
叔向曰 ‘苦葉不材於人, 供濟而已.’” 韋昭注云 “‘不材於人’, 言不可食, ‘供濟而已’, 佩匏可以渡水也.”
숙향叔向이 ‘박의 쓴 잎은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고, 물을 건너는 데 이바지할 따름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위소韋昭에 “‘부재어인不材於人’은 먹을 수 없는 것을 말한 것이고, ‘공제이이供濟而已’는 박을 차면 물을 건널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彼云取匏供濟, 與此傳不同者, 賦詩斷章也.
국어國語≫에서 박을 가지고 ‘공제供濟’라고 하였으니, 여기의 과 다른 것은 시를 읊을 때 필요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疏】傳‘由膝以上爲涉’, 後傳‘以衣涉水爲厲 謂由帶以上 揭 褰衣’
앞의 [유슬이상위섭由膝以上爲涉]과 뒤의 [이의섭수위려 위유대이상以衣涉水爲厲 謂由帶以上 게 건의揭 褰衣]
○正義曰:今定本如此. 釋水云 “濟有深涉, 深則厲, 淺則揭. 揭者, 褰衣也, 以衣涉水爲厲.
정의왈正義曰:지금의 정본定本이 이와 같다. ≪이아爾雅≫ 〈석수釋水〉에서 “물을 건너는 곳에 깊은 곳 있으니, 물이 깊으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넌다. 는 옷을 걷는 것이고, 옷을 입은 채로 건너는 것이 이다.
由膝以上爲涉, 由帶以上爲厲.” 孫炎曰 “揭衣, 褰裳也. 衣涉, 濡褌也.”
물이 무릎 이상인 것이 이고, 이상인 것이 이다.”라고 하였는데, 손염孫炎은 “게의揭衣하의下衣를 걷는 것이다. 의섭衣涉은 잠방이가 젖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爾雅旣引此詩, 因揭在下, 自人體以上釋之, 故先揭, 次涉, 次厲也. 傳依此經先後, 故引爾雅不次耳.
이아爾雅≫에서 이 를 인용하면서 가 아래에 있음으로 인하여 인체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를, 그 다음에 을, 그 다음에 를 말한 것이다. 에서는 이 의 순서를 따랐으므로 ≪이아爾雅≫를 인용하면서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然傳不引爾雅由膝以下爲揭者, 略耳. 涉者, 渡水之名, 非深淺之限,
그러나 에서 ≪이아爾雅≫의 ‘유슬이하위게由膝以下爲揭’를 인용하지 않은 것은 생략한 것이다. 은 물을 건너는 것을 이르는 명칭이지 깊이를 구분하는 말은 아니다.
故易曰 “利涉大川”, 謂乘舟也, ‘褰裳涉洧’, 謂膝下也.
그리하여 ≪주역周易≫에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라고 한 것은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을 이르고, 〈정풍 건상鄭風 褰裳〉의 ‘하의를 걷어 올리고 유수를 건넌다.’는 것은 물이 무릎 아래인 것을 이른다.
【疏】深淺者, 各有所對, 谷風云 “就其淺矣 泳之游之”, 言泳, 則深於厲矣, 但對‘方之舟之’, 則爲淺耳.
은 각기 상대되는 바가 있으니, 〈패풍 곡풍邶風 谷風〉에 “얕은 곳을 건널 때는 헤엄치거나 자맥질 했네.”라고 하여 헤엄치는 것을 말하였으니 보다 깊지만, 다만 “뗏목을 타거나 배를 탄다.”는 것과 상대하면 얕은 것이 된다.
此深涉不可渡, 則深於厲矣, 厲言深者, 對揭之淺耳.
여기의 ‘깊어 건널 수 없다’는 것은 보다 깊은 것인데, 를 깊다고 말한 것은 얕은 와 상대한 것이다.
爾雅以深淺無限, 故引詩以由帶以上․由膝以下釋之, 明過此不可厲深淺, 異於餘文也.
이아爾雅≫에서는 깊고 얕음의 한계가 없기 때문에 이 를 인용하여 이상과 무릎 이하로 풀이하였으니, 분명 이보다 깊으면 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나머지 글과 다르게 된다.
揭者, 褰衣, 止得由膝以下, 若以上, 則褰衣不得渡, 當須以衣涉爲厲也.
는 옷을 걷는 것이니 무릎 아래인 경우이고, 만약 무릎 이상이면 옷을 걷고 건널 수 없고 옷을 입은 채로 건너야 하니 이다.
見水不沒人, 可以衣渡, 故言由帶以上. 其實以由膝以上亦爲厲, 因文有三等,
물에 사람이 빠지지 않을 줄 알면 옷을 입은 채로 건널 수 있기 때문에 이상이라고 한 것이나, 실제로는 무릎 이상도 가 되기 때문에 글에 세 등급을 둔 것이다.
故曰由膝以上爲涉, 傳因爾雅成文而言之耳, 非解此經之深涉也.
그리하여 무릎 이상을 이라 한 것이니, 에서는 ≪이아爾雅≫의 글을 따라 말하였을 따름이고, 이 경문經文의 ‘심섭深涉’을 풀이한 것이 아니다.
者, 以揭衣․褰衣止由膝以下, 明膝以上至由帶以上摠名厲也.
정현鄭玄의 ≪논어論語복건服虔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모두 ‘무릎 이상인 것이 이다.’ 한 것은 ‘게의揭衣’와 ‘건의褰衣’가 다만 무릎 이하이기 때문이니, 분명 무릎 이상에서 이상에 이르기까지를 총괄하여 라고 한 것이다.
鄭以此‘深涉’謂深於先時, 則隨先時深淺, 至八月水長深於本, 故云‘深涉’.
정현鄭玄이 여기에서 ‘심섭深涉’을 예전보다 수심이 깊어진 것이라고 여긴 것은, 예전에는 깊기도 하고 얕기도 하다가 8월에 이르러서 수심이 본래보다 더욱 깊어진 것을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심섭深涉’이라고 한 것이다.
涉亦非深淺之名. 旣以深淺記時, 故又假水深淺, 以喩下‘深’字亦不與‘深涉’同也.
’ 또한 깊이를 이르는 명칭이 아니고, 깊고 얕은 것으로 때를 기록하였다. 그리하여 또 물의 깊고 얕은 것에 가탁하여 아래의 ‘ 또한 ‘심섭深涉과 같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疏】箋‘瓠葉’至‘問名’
의 [호엽瓠葉]에서 [문명問名]까지
○正義曰:二至寒暑極, 二分溫涼中, 春分則陰往陽來, 秋分則陰來陽往, 故言‘八月之時 陰陽交會’也.
정의왈正義曰동지冬至하지夏至에는 추위와 더위가 가장 심하고, 춘분春分추분秋分에는 따뜻하고 서늘한 기운이 고르며, 춘분春分이면 이 가고 이 오고, 추분秋分이면 이 오고 이 간다. 그리하여 ‘8월에 이 교차한다.’고 한 것이다.
以昏禮者, 命其事必順其時, 故昏禮目錄云 “必以昏時者, 取陽往陰來之義.”
혼례昏禮는 남녀를 서로 만나게 하여 혼인의 일을 반드시 제때에 따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사혼례목록士昏禮目錄≫에 “반드시 혼례를 어두울 때 하는 것은 양이 가고 음이 오는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然則二月陰陽交會, 禮云 “令會男女”, 則八月亦陰陽交會, 可以納采․問名明矣. 以此月則匏葉苦, 渡處深, 爲記八月之時也,
그렇다면 2월에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하여 에서 “남녀를 서로 만나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8월에도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하여 납채納采문명問名을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이 달은 박의 잎이 쓰고 건너는 곳이 깊어서 8월의 때라고 기록한 것이다.
故下章 “雝雝鳴鴈, 旭日始旦”, 陳納采之禮. 此記其時, 下言其用, 義相接也.
그리하여 아래 장에 “정답게 우는 기러기 해 뜨는 아침에 우네.”라고 한 것이니 납채納采를 말한 것이다. 여기서는 때를 기록하고 아래에서는 쓰임을 말하였으니, 뜻이 서로 이어져 있다.
【疏】納采者, 昏禮之始, 親迎者, 昏禮之終, 故皆用陰陽交會之月.
납채納采혼례昏禮의 처음이고, 친영親迎혼례昏禮의 끝이다. 그리하여 모두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하는 달에 행하는 것이다.
昏禮 “納采用鴈”. 賓旣致命, 降, 出. “者, 出請, 賓執雁, 請問名.” 則納采․問名同日行事矣,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납채納采에는 기러기를 사용한다.”라고 하고, 이 〈사당 위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명을 전하고 내려온다. 〈이 문 밖으로〉 나간 후에 “〈신부측의〉 이 문밖으로 나와 ‘무슨 일로 왔는가?’ 하고 물으면, 이 기러기를 들고 서서 여인의 성과 이름을 청하여 묻는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납채納采문명問名을 같은 날 거행한 것이다.
故此納采․問名連言之也. 其納吉․納徵, 無常時月, 問名以後, 請期以前, 皆可也.
그리하여 여기서 납채納采문명問名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납길納吉납징納徵은 일정한 때가 없으니 문명問名 이후나 청기請期 이전에 모두 행할 수 있다.
請期在親迎之前, 亦無常月, 當近親迎乃行, 故下箋云 “歸妻謂請期. ‘冰未散’, 正月中以前也, 二月可以爲昏.”
청기請期친영親迎의 앞에 있는데, 또 일정한 달이 없고 친영親迎할 때가 가까워지면 행한다. 그리하여 아래 에서 “귀처歸妻청기請期를 이른다. ‘빙미산冰未散’은 정월正月 중순 이전이니, 2월에는 혼례昏禮를 올릴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禮以二月當成昏, 則正月中當請期, 故云‘迨冰未泮’, 則冰之未散, 皆可爲之.
주례周禮≫에서 2월에 혼례昏禮를 올린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정월 중에 마땅히 청기請期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얼음 녹기 전에 가라.[태빙미반迨冰未泮]’라고 한 것이니, 얼음이 녹기 전이면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다.
以言及, 故云正月中, 非謂唯正月可行此禮. 女年十五已得受納采, 至二十始親迎,
(미치다)’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정월이라고 한 것이지, 오직 정월에만 이 예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인의 나이 15세에 이미 납채納采를 허락 받고, 20세에 이르러서 비로소 친영親迎을 한다.
然則女未二十, 納采之禮, 雖仲春亦得行之, 不必要八月也. 何者, 仲春亦陰陽交會之月, 尙得親迎, 何爲不可納采乎.
그렇다면 여인이 20세 이전에는 납채納采를 비록 중춘仲春이라도 행할 수 있으니, 반드시 8월일 필요는 없다. 왜인가. 중춘仲春도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하는 달이니 오히려 친영親迎을 할 수 있는데, 어찌 납채納采는 행할 수 없겠는가.
此云八月之時, 得行納采, 非謂納采之禮必用八月也.
이는 8월에 납채納采를 행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지, 납채納采를 반드시 8월에 행한다는 말은 아니다.
【疏】傳‘遭時’至‘自濟’
의 [조시遭時]에서 [자제自濟]까지
○正義曰:此以貧賤責尊貴之辭, 言遭所遇之時, 而制其所宜, 隨時而用禮, 如遇水之必渡也.
정의왈正義曰:이는 빈천貧賤의 예를 가지고 존귀尊貴한 자가 〈예를 지키지 않음을〉 책망한 말이니, 만나는 때에 따라 알맞게 하여 때에 따라 를 행함이 마치 물을 만나면 〈깊으면 옷을 입은 채로,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 반드시 건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男女之際’, 謂昏姻之始, 故禮記大傳曰 “異姓主名治際會”, 注云 “名, 謂母與婦之名, 際會, 謂昏禮交接之會.” 是也.
남녀지제男女之際’는 혼인昏姻의 처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이성異姓을 밝혀 제회際會를 바르게 한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름을 이르고, 제회際會혼례昏禮할 때에 이성異姓이 만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言遭時制宜, 不可無禮, 況昏姻人道之始, 安可以無禮義乎.
때에 따라 알맞게 하여 가 없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혼인昏姻인도人道의 시작이니, 어찌 예의禮義가 없을 수 있겠는가.
禮者, 人所以立身, 行禮乃可度世難, 無禮將無以自濟, 言公之無禮, 必遇禍患也.
는 사람답게 하는 방도이니 예를 행하여야 어지러운 세상을 바르게 살 수 있는데, 가 없다면 장차 바르게 살 수 없다. 선공宣公이 무례하여 반드시 화환禍患을 만날 것임을 말한 것이다.
【疏】箋‘旣以’至‘妃耦’
의 [기이旣以]에서 [비우妃耦]까지
○正義曰:箋解上爲記時, 此爲喩意. 上旣以深涉記時, 此因以深淺爲喩, 則上非喩, 此非記時也.
정의왈正義曰은 위에서는 시기를 기록한 것으로 풀이하고 여기서는 비유한 뜻으로 풀이하였다. 위에서는 심천深淺을 시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기서는 심천深淺을 비유로 여겼으니, 그렇다면 위의 심천深淺은 비유한 것이 아니고 여기의 심천深淺은 시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男女才性賢與不肖’者, 若大明云 “天作之合”, 曰 “賢女妃, 聖人得禮之宜.”
남녀재성현여불초男女才性賢與不肖’는 마치 〈대아 대명大雅 大明〉의 “하늘이 배필을 내리셨네.”의 에서 “어진 여인이 가 된 것은 성인聖人를 마땅하게 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言‘長幼’者, 禮 ‘女年十五得許嫁’, 男年長於女十年, 則女十五, 男二十五, 女二十, 男三十, 各以長幼相敵,
장유長幼’라고 한 것은, ≪예기禮記≫ 〈내측內側〉에서 여인은 나이 15세에 혼인을 허락한다고 하였는데, 〈혼인하는 나이는〉 남자가 여인보다 10세가 많다. 여인 15세와 남자 25세, 여인 20세와 남자 30세가 각기 나이에 서로 걸맞으니,
以才性長幼而相求, 是各順其人之宜, 爲之求妃耦.
성품과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서로 짝을 구하는 것이 각기 사람의 마땅함에 따라 배필을 구하는 것이다.
有瀰濟盈이어늘 有鷕雉鳴이로다
나루엔 물 넘실거리는데 꿩꿩 까투리가 우네
【傳】瀰 深水也 滿也 深水 人之所難也 雌雉聲也
는 ‘깊은 물’이고, 은 ‘가득 참’이다. 깊은 물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이다. 는 까투리 우는 소리이다.
衛夫人有淫佚之志하여 授人以色하고 假人以辭하니 不顧禮義之難하여 至使宣公有淫昏之行이라
나라 부인夫人이 음란한 뜻이 있어 사람에게 요염한 모습으로 기쁘게 하고 아양 떠는 말로 유혹하니, 삼가야 할 예의禮義는 돌아보지 아니하여 선공宣公으로 하여금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한 것이다.
【箋】箋云 有瀰濟盈 謂過於厲이니 喩犯禮深也
전운箋云유미제영有瀰濟盈보다 깊은 곳을 이르니, 예를 범함이 심함을 비유한 것이다.
○鷕 雌雉聲이라
는 까투리 우는 소리이다.
濟盈不濡(범)하며 雉鳴求其牡로다
깊은 나루 물 바퀴축도 못 적시며 까투리는 울어 수짐승을 찾네
【傳】濡 漬也 由輈以上爲이다 違禮義하고 不由其道 猶雉鳴而求其牡矣 飛曰雌雄이요 走曰牝牡
는 젖는 것이다. 끌채 위가 이다. 예의禮義를 어기고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은 것이, 꿩이 울며 수짐승을 찾는 것과 같다. 날짐승을 ‘자웅雌雄’이라 하고, 길짐승을 ‘빈모牝牡’라고 한다.
【箋】箋云 渡深水者 必濡其이어늘 言不濡者 喩夫人犯禮而不自知 雉鳴反求其牡 喩夫人所求非所求
전운箋云:깊은 물을 건널 때는 반드시 수레굴대가 젖는데 젖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부인이 예를 범하고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까투리가 울며 도리어 수짐승 찾는 것은 부인이 찾아서는 안 될 것을 찾음을 비유한 것이다.
謂車轊頭也 依傳意直音犯이라 案說文云 車轍也 從車九聲이라하고 車軾前也 從車凡聲이라하니 音犯이라
은 수레굴대의 끝을 이르니, 의 뜻에 따라 만 ‘’이라고 한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살펴보면 “은 수레바퀴 자국인데, 형부形部이고, 성부聲部이다.”라고 하고, “은 수레의 앞이니, 형부形部이고, 성부聲部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다.
車轊頭 所謂軓也라하니 相亂이라 故具論之 車轅也
수레굴대의 끝머리를 ‘’이라 하니 서로 혼란스럽다. 그리하여 함께 논한 것이다. 는 수레 끌채이다.
【疏】‘有瀰’至‘其牡’
의 [유미有瀰]에서 [기모其牡]까지
○正義曰:言有瀰然深水者, 人所畏難, 今有人濟此盈滿之水, 不避其難, 以興有儼然禮義者, 人所防閑, 今夫人犯防閑之禮, 不顧其難.
정의왈正義曰:가득 찬 깊은 물은 사람이 꺼리고 삼가는 곳인데, 지금 어떤 사람이 넘실대는 깊은 물을 건너면서 삼갈 곳을 피하지 않음을 말하여, 엄격한 예의는 사람의 잘못을 방비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 부인이 방비하는 예를 범하고도 삼갈 것(예의禮義)을 돌아보지 않음을 한 것이다.
又言夫人犯禮, 猶有鷕雉鳴也, 有鷕然求其妃耦之聲者, 雌雉之鳴, 以興有求爲淫亂之辭者, 是夫人之聲.
또 부인이 예를 범하는 것이 까투리 우는 소리와 같으니, 꿩꿩 울며 짝을 구하는 소리가 까투리 우는 소리임을 말하여, 상대를 구할 때 음란한 말을 하는 것이 부인의 소리임을 한 것이다.
此以辭色媚悅於公, 是不顧禮義之難, 又言夫人犯禮旣深, 而不自知.
이는 유혹하는 말과 미색美色으로 에게 아첨하고 기쁘게 한 것이니, 바로 삼가야 할 예의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고, 또 부인이 예를 범함이 심한데도 스스로 알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言濟盈者, 必濡其, 今言不濡(軌)[軓], 是濟者, 不自知, 以興淫亂者, 必違禮義.
깊은 곳을 건너면 반드시 수레 바닥의 나무가 젖는데 지금 수레 바닥이 젖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니, 이는 건너는 자가 스스로 알지 못함을 말하여, 음란한 자가 반드시 예의를 어김을 한 것이다.
今云不違禮, 是夫人不自知, 夫人違禮淫亂, 不由其道, 猶雉鳴求其牡也. 今雌雉也, 乃鳴求其走獸之牡, 非其道,
지금 예를 어기지 않았다고 하면 이는 부인이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이니, 부인이 예를 어기고 음란하여 올바른 도를 따르지 않는 것은 까투리가 울며 수짐승을 찾는 것과 같다. 지금 까투리가 곧 걸어 다니는 수짐승을 찾으며 우는 것이니, 올바른 도가 아니다.
以興夷姜, 母也, 乃媚悅爲子之公, 非所求也. 夫人非所當求而求之, 是犯禮不自知也.
이것으로 이강夷姜이 어머니인데도 도리어 아들뻘인 에게 아첨하였으니, 찾을 바가 아님을 한 것이다. 부인이 마땅히 찾지 말아야 할 바를 찾은 것이니, 이것이 예를 범하고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疏】傳‘瀰深’至‘之行’
의 [미심瀰深]에서 [지행之行]까지
○正義曰:下言雉求其牡, 則非雄雉, 故知‘鷕, 雌雉聲也’. 又小弁云 “雉之朝雊, 尙求其雌”, 則雄雉之鳴曰‘雊’也.
정의왈正義曰:아래에서 꿩이 수짐승을 구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장끼가 아니다. 그리하여 ‘는 까투리 우는 소리’임을 안 것이다. 또 〈소아 소반小雅 小弁〉에 “꿩이 아침에 울며 오히려 까투리 찾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장끼의 울음소리를 ‘’라고 한 것이다.
言‘衛夫人有淫佚之志, 授人以色, 假人以辭’, 解‘有鷕雉鳴’也, ‘不顧禮義之難’, 解‘有瀰濟盈’也, ‘致使公有淫昏之行’, 解所以責夫人之意也.
나라 부인夫人이 음란한 뜻이 있어 사람에게 요염한 모습으로 기쁘게 하고 아양 떠는 말로 유혹함’을 말하여 ‘꿩꿩 까투리가 우네.’를 풀이하고, ‘삼가야 할 예의禮義는 돌아보지 아니함’을 말하여 ‘나루엔 물 넘실거리는데.’를 풀이하고, ‘선공宣公으로 하여금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한 것’은 부인의 뜻을 책망하는 까닭을 풀이한 것이다.
以經上句, 喩夫人不顧禮義之難, 卽下句言其事. 故傳反而覆之也.
의 윗는 부인이 삼가야 할 예의를 돌아보지 않은 것을 비유한 것이고, 바로 아랫는 그 일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에서 반복하여 말한 것이다.
言‘授人以色假人以辭’, 謂以顔色言辭怡悅於人, 令人啓發其心, 使有淫佚之志.
‘요염한 모습으로 기쁘게 하고, 아양 떠는 말로 유혹함’은 안색顔色언사言辭로 남을 기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한 마음을 생기게 하여 방탕한 뜻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雌雉之鳴‘假人以辭’, 幷言‘授人以色’者, 以爲辭必怡悅顔色, 故連言之.
까투리의 울음소리는 ‘아양 떠는 말로 유혹함’과 유사한데, ‘요염한 모습으로 기쁘게 함’을 아울러 말한 것은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기뻐하는 안색을 짓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어서 말한 것이다.
【疏】箋‘有瀰’至‘禮深’
의 [유미有瀰]에서 [예심禮深]까지
○正義曰:前厲衣可渡, 非人所難, 以深不可渡而人濟之. 故知過於厲, 以喩犯禮深.
정의왈正義曰:앞의 는 옷을 입은 채로 건널 수 있으니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바가 아니지만, 깊은 곳은 건널 수 없는데도 사람들이 건너기 때문에, 보다 깊은 것으로 예를 범함이 심함을 비유한 것임을 안 것이다.
【疏】傳‘由輈’至‘牝牡’
의 [유주由輈]에서 [빈모牝牡]까지
○正義曰:說文云 “, 車轍也.”, “(, 車軾前也.” 然則軾前謂之軓也, 非軌也. 但軌聲九, 軓聲凡, 於文易爲誤, 寫者亂之也.
정의왈正義曰:≪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은 수레바퀴 자국이다.” 하고 “은 수레 의 앞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의 앞을 이라 하니 가 아니다. 다만 성부聲部이고, 성부聲部인데 글을 바꾸어 써서 잘못된 것이니 베껴 쓴 자가 헷갈린 것이다.
少儀云 “祭左右范, 乃飮.” 注云 “周禮大馭‘祭兩軹, 祭, 乃飮.’ 與軹於車同謂轊頭也, 與范聲同, 謂軾前也.”
예기禮記≫ 〈소의少儀〉에 “좌우의 를 지내고 술을 마신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주례周禮≫ 〈하관 대어夏官 大馭〉에 ‘양쪽 굴대 끝에[] 를 지내고, 에도 를 지내고 나서 술을 마신다.’라고 하였으니, 는 수레에서 모두 차축 끝을 이른다. 은 음이 같은데 의 앞을 이른다.”라고 하고,
輈人云 “前十尺而策半之.” 鄭司農云 “謂軾前也, 書或作軌.” 玄謂“法也, 謂下三面之材, 輢軾之所樹, 持車正.”者.
주례周禮≫ 〈주인輈人〉에 “의 앞의 길이는 10이고, 채찍은 5이다.”라고 하였는데, 정사농鄭司農이 “의 앞을 이르는데, 간혹 ‘’로도 쓰여 있는 책도 있다.”라고 하고, 정현鄭玄은 “이다 하였는데, 수레바탕 아래 삼 면의 목재로 을 붙여 세워서 수레를 바르게 지탱해주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大馭云 “祭兩軹, 祭軓, 乃飮.” 注云 “古書‘軹’爲‘𨊻’, ‘’爲‘範’, 杜子春云‘文當如此.’ 又云‘𨊻當作軹, 軹謂兩轊, 範當爲, 車軾前.’”
주례周禮≫ 〈하관 대어夏官 大馭〉에 “양쪽 를 지내고 에도 를 지내고 나서 술을 마신다.”라고 하였는데 에서 “고서古書에는 ‘’가 ‘𨊻’로 되어 있고, ‘’이 ‘’으로 되어 있는데, 두자춘杜子春은 ‘글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라고 하고, 또 ‘𨊻는 마땅히 가 되어야 하니, 는 두 차축 끝을 이르고, 은 마땅히 이 되어야 하니, 은 수레 의 앞이다.’”라고 하였다.
鄭不易之, 是依杜子春爲正也. 然則諸言軾前, 皆謂‘’也.
정현鄭玄이 이를 바꾸지 않는 것은 두자춘杜子春이 말한 의 의견을 옳게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식전軾前’이라고 말한 것들은 모두 ‘’을 이른다.
【疏】小戎傳曰 “陰, 揜也.” 箋 “揜在軾前垂輈上.” 文亦作, 非軌也, 軌自車轍耳.
진풍 소융秦風 小戎〉의 에 “을 가린 것이다.”라고 하고, 에서 “을 가린 것은 의 앞 끌채 위에 드리운 곳이다.”라고 하고, 글자도 으로 되어 있으니 가 아니다. 는 본래 수레바퀴 자국일 따름이다.
中庸云 “車同軌”, 匠人云 “經途九軌”, 注云 “軌, 謂轍廣.” 是也.
중용中庸≫에 “수레의 바퀴자국 간격이 같다.”라고 하고, ≪주례周禮≫ 〈장인匠人〉에 “경도經途는 아홉 가 나란히 지나가는 길이다.”고 하였는데, 에 “는 수레바퀴 자국의 너비이다.” 한 것이 이것이다.
說文又云 “軹, 輪小穿也, 轊, 車軸端也.” 考功記注鄭司農云 “軹, 轊也.” 又云 “軹, 小穿也.”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또 “는 수레바퀴의 작은 구멍이고, 는 수레 차축 끝이다.”라고 하고, ≪주례周禮≫ 〈고공기考功記〉의 에서 정사농鄭司農은 “이다.”라고 하고, 또 “는 작은 구멍이다.”라고 하고,
玄謂 “軹, 轂末也.” 然則轂末․軸端共在一處而有軹․轊二名, 亦非軌也.
정현鄭玄은 “는 바퀴통의 끝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바퀴통의 끝과 차축 끝은 모두 같은 곳에 있는데, 의 두 가지 이름이 있는 것이니, 역시 가 아니다.
少儀注云 “與軹, 於車同謂轊頭”者, 以少儀與大馭之文事同而字異, 以‘范’當大馭之‘’, ‘’當大馭之‘軹’.
예기禮記≫ 〈소의少儀〉의 에서 “는 수레에서 모두 차축 끝을 이른다.”고 한 것은 ≪예기禮記≫ 〈소의少儀〉와 ≪주례周禮≫ 〈하관 대어夏官 大馭〉의 글이 사실은 같으나 글자가 다르기 때문에, ‘’은 〈하관 대어夏官 大馭〉의 ‘’에 해당되고, ‘’은 〈하관 대어夏官 大馭〉의 ‘’에 해당되는 것이다.
故竝其文而解其義, 不復言其字誤耳. 其實少儀‘’字誤, 當爲‘軹’也.
그리하여 글을 아울러 써서 뜻을 풀이하고, 글자의 잘못 쓴 것은 다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예기禮記≫ 〈소의少儀〉의 은 잘못 쓴 것이니, 마땅히 ‘’자가 되어야 한다.
【疏】此經皆上句責夫人之犯禮, 下句言犯禮之事,
경문經文은 모두 앞의 에서는 부인夫人이 예를 범한 것을 책망하였고, 뒤의 에서는 예를 범한 일을 말하였다.
故傳釋之, 言‘違禮義不由其道 猶雌雉鳴求牡’也, ‘違禮義’者, 卽‘濟盈’也, ‘不由其道’者, 猶‘雉鳴求其牡’也.
그리하여 에서 풀이하여 ‘예의禮義를 어기고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은 것이, 꿩이 울며 수짐승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니, ‘예의禮義를 어기는 것’은 바로 ‘깊은 나루’와 같고, ‘올바른 도리를 따르지 않은 것’은 ‘꿩이 울며 수짐승을 찾는 것’과 같다.
釋鳥云 “鳥之雌雄不可別者, 以翼右掩左雄, 左掩右雌.” 是‘飛曰雌雄’也, 釋獸云 “麋, 牡麔, 牝麎.” 是‘走曰牝牡’也.
이아爾雅≫ 〈석조釋鳥〉에 “새의 자웅雌雄을 구별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새가 나란히 앉았을 때〉 오른쪽 날개로 왼쪽을 감싸는 것이 이고, 왼쪽 날개로 오른쪽을 감싸는 것이 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비왈자웅飛曰雌雄’이고, ≪이아爾雅≫ 〈석수釋獸〉에 “(수컷)가 이고, (암컷)이 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주왈빈모走曰牝牡’이다.
此其定例耳, 若散則通, 故是也.
이것이 정례定例인데, 만약 산문散文이면 의미가 통한다. 그리하여 ≪상서尙書≫ 〈목서牧誓〉에 “빈계牝雞(암탉)가 새벽에 운다.”라고 하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15년에 “그 웅호雄狐(수여우)를 잡는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鄭志答張逸云 “雌雉求牡, 非其耦. 故喩宣公與夫人, 言夫人與公非其耦, 故以飛雌求走牡爲喩, 傳所以幷解之也.”
정지鄭志≫에서 장일張逸에게 답하기를 “까투리가 수짐승 찾으니 제 짝이 아니다. 그리하여 선공宣公부인夫人을 비유하여 부인夫人이 제 짝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까투리가 달리는 수짐승을 찾는 것으로 비유하였으니, 에서 이 때문에 아울러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雝雝鳴鴈 旭日始旦이니라
다정한 기러기 소리 동트는 첫 아침에 우네
【傳】雝雝 鴈聲和也 納采 用鴈이라 旭日始出 謂大昕之時
옹옹雝雝은 기러기 소리가 다정한 것이다. 납채納采에 기러기를 사용한다. 욱일시출旭日始出은 동틀 무렵을 이른다.
【箋】箋云 鴈者 隨陽而處하니 似婦人從夫 故昏禮用焉이라 自納采至請期 用昕하고 親迎 用昏이라
전운箋云:기러기는 에서 을 따라서 머무니 아내가 남편을 따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혼례昏禮에 사용하는 것이다. 납채納采로부터 청기請期까지는 새벽에 예를 행하고, 친영親迎은 저녁에 예를 행한다.
士如歸妻인댄 迨冰未泮이로다
남정네 장가가려거든 얼음 녹기 전에 맞이해야 하네
【傳】迨이라 散也
는 미침이다. 은 풀림이다.
【箋】箋云 歸妻 使之來歸於己 謂請期也 冰未散 正月中以前也 二月可以昏矣
전운箋云귀처歸妻는 자기에게 시집오게 하는 것이니 청기請期를 이른다. 얼음이 풀리지 않는 것은 정월正月 이전이니, 이월二月에는 혼례昏禮를 올릴 수 있다.
【疏】‘雝雝’至‘未泮’
의 [옹옹雝雝]에서 [미반未泮]까지
○毛以爲, 宣公淫亂, 不娶夫人, 故陳正禮以責之, 言此雝雝然聲和之鳴鴈, 當於旭然日始旦之時, 以行納采之禮,
모형毛亨은 ‘선공宣公음란淫亂하여 부인夫人에게 장가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례正禮를 말하여 책망한 것이니, 여기서 다정한 소리로 화답하여 우는 기러기가 동트는 첫 아침에 우는 것으로, 납채納采를 행함을 말하였고,
旣行納采之等禮成, 又須及時迎之. 言士如使妻來歸於己, 當及冰之未散, 正月以前迎之, 君何故不用正禮, 及時而娶, 乃烝父妾乎.
납채納采 등의 예를 행한 뒤에는 또 제때에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가 만일 아내가 자기에게 시집오게 하려면 마땅히 얼음이 녹기 전에 서둘러 정월正月 이전에 맞이해야 하는데, 인군人君은 무슨 까닭으로 정례正禮를 사용하여 제때 장가들지 않고 도리어 아버지의 과 위로 사통하느냐고 말한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鄭唯下二句及冰未散․請期爲異.
정현鄭玄은 아래 두 번째 의 얼음이 녹기 전에 미치는 것과 청기請期만을 다르게 여기었다.
【疏】傳‘雝雝’至‘之時’
의 [옹옹雝雝]에서 [지시之時]까지
○正義曰:鴈生執之以行禮, 故言‘鴈聲’, 舜典云 “二生”, 注云 “謂羔․鴈也.”
정의왈正義曰:기러기는 산채로 가지고 가서 를 행하기 때문에 ‘기러기 소리’라고 한 것이니, ≪상서尙書≫ 〈순전舜典〉에 “〈폐백은〉 두 가지 살아 있는 것이다.”의 에서 “염소와 기러기를 이른다.”고 하였다.
言納采者, 謂始相采擇, 擧其始, 其實六禮唯納徵用幣, 餘皆用鴈也. 親迎雖用鴈, 非昕時, 則此鴈不兼親迎.
납채納采를 말한 것은 처음에 서로 채택采擇하는 것을 이르니, 그 처음을 거론하였으나 실제로는 육례六禮에서 납징納徵만이 폐백幣帛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러기를 사용한다. 친영親迎에 비록 기러기를 사용하지만 동틀 무렵이 아니니, 그렇다면 이 기러기는 친영親迎에 겸하여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前經謂納采, 下經謂親迎, 摠終始, 其餘可知也. 旭者, 明著之名, 故.
앞의 경문經文납채納采를 말하고, 뒤의 경문經文친영親迎을 말하여 처음과 끝을 총괄하였으니, 그 나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昕者, 明也, 日未出已名爲昕, 至日出益明, 故言‘大昕’也.
은 밝게 드러남의 뜻이다. 그리하여 해가 처음 뜨는 것이 된다. 은 밝음인데, 해가 아직 뜨지 않은 것을 이라고 이름하고, 해가 뜨면 더욱 밝아지므로 ‘대흔大昕’이라 한 것이다.
禮記注“大昕謂朔日”者, 以言‘.’ 若非朔日, 恒日出皆可, 無爲特言大昕之朝, 故知‘朔日’與此不同.
예기禮記≫ 〈제의祭義〉의 에 “대흔大昕은 초하루를 이른다.”라고 한 것은 ‘대흔大昕의 아침에 누에 종자를 받들고 시내에 가서 씻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초하루가 아니라도 항상 해가 뜰 때면 모두 가능하니, 특별히 대흔大昕의 아침을 말할 이유는 없다. 그리하여 ‘삭일朔日’이 여기와 같지 않음을 안 것이다.
【疏】箋‘鴈者’至‘用昏’
의 [안자雁者]에서 [용혼用昏]까지
○正義曰:此皆陰陽竝言, 禹貢注云 “陽鳥, 鴻鴈之屬, 隨陽氣南北.” 不言陰者, 以其彭蠡之澤, 近南恒暖, 鴻鴈之屬避寒隨陽而往居之,
정의왈正義曰:여기서는 모두 을 아울러 말하였는데, ≪상서尙書≫ 〈우공禹貢〉의 에 “양조陽鳥는 기러기 무리인데, 따뜻한 양기陽氣를 따라 으로 옮겨 다닌다.”라고 하고 을 말하지 않은 것은 팽려彭蠡의 못이 남쪽에 가까워 항상 따뜻하여 기러기 무리가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을 따라 이곳에 가서 살기 때문이다.
故經云 “陽鳥攸居”, 注釋其名曰‘陽鳥’之意, 故不言陰耳. 定本‘鴈隨陽’, 無陰字.
그리하여 ≪상서尙書≫ 〈우공禹貢〉의 경문經文에 “양조陽鳥가 사는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서 ‘양조陽鳥’라고 이름한 뜻을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정본定本에는 ‘안수양雁隨陽’이라고 하고 ‘가 없다.
又言‘納采至請期用昕 親迎用昏’者, 因此旭日用鴈, 非徒納采而已. 唯納徵不用鴈, 亦用昕, 此摠言其禮耳.
또 ‘납채지청기용흔 친영용혼納采至請期用昕 親迎用昏’이라고 말한 것은 동틀 무렵에 기러기를 사용하니 납채納采만이 아니다. 납징納徵만은 기러기를 사용하지 않고 또한 동틀 무렵에 이 를 행한다. 이것은 그 예를 총괄하여 말한 것이다.
下‘歸妻’謂請期, 則鄭於此文不兼親迎日用昕者, 君子行禮貴其始. 親迎用昏, 鄭云取陽往陰來之義.
아래에서 ‘귀처歸妻’는 청기請期를 이른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정현鄭玄이 이 글에서 친영親迎을 동틀 무렵에 행하는 것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니, 군자君子는 예를 행함에 그 처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친영親迎을 어두울 때 한다고 한 것은, 정현鄭玄이 가고 이 오는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하였다.
然男女之家, 或有遠近, 其近者卽夜而至於夫家, 遠者則宜昏受其女, 明發而行, 其入蓋亦以昏時也.
그러나 남녀의 집은 혹 멀거나 가까울 수 있으니, 가까울 경우는 당일 밤에 신랑 집에 이르고, 멀 경우는 어두울 때 신부를 맞이해야 하니, 밝을 때 출발하여 가서 도착하면 또한 어두울 때이다.
儀禮士昏禮執燭而往婦家, 其夜卽至夫氏, 蓋同城郭者也.
의례儀禮≫ 〈사혼례士昏禮〉에 촛불을 잡고 신부 집에 가서 그날 밤에 바로 신랑의 집에 이른다고 한 것은 아마도 같은 성곽城郭 안에 사는 경우이다.
【疏】箋‘歸妻’至‘昏矣’
의 [귀처歸妻]에서 [혼의昏矣]까지
○正義曰:以冰未散, 未二月, 非親迎之時, 故爲‘使之來歸於己 謂請期’也, 以正月尙有魚上負冰, 故知‘冰未散’, 正月中以前也.
정의왈正義曰:얼음이 녹지 않았으면 아직 2월이 아니니 친영親迎의 때가 아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시집오게 하는 것이니 청기請期를 이른다.’고 한 것이고, 정월正月에는 아직 물고기 위로 얼음이 있기 때문에 ‘얼음 녹기 전’이 정월正月 이전임을 안 것이다.
所以正月以前請期者, 二月可以爲昏故也. 正月冰未散, 而月令孟春云 “東風解凍.” 出車云 “雨雪載塗”, 謂陸地也.
정월正月 이전에 청기請期하는 까닭은 〈그래야〉 2월에 혼례昏禮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월正月에 얼음이 녹지 않아서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맹춘孟春에 “동풍東風에 얼음이 녹는다.”라고 하고, 〈소아 출거小雅 出車〉에서는 “진눈깨비에 길이 질척이네.”라고 하였으니, 육지陸地에서의 일을 이른다.
其冰必二月乃散, 故溱洧箋云 “仲春之時, 冰始散, 其水渙渙然.” 是也.
얼음은 반드시 2월에야 녹는다. 그리하여 〈정풍 진유鄭風 溱洧〉의 에서 “중춘仲春에 얼음이 비로소 녹아 물이 많아진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招招舟子 人涉卬否로다
뱃사공 소리쳐 부르는데 남들 가도 나는 아니 갔네
【傳】招招 號召之貌 舟子 舟人이니 主濟渡者 我也
초초招招는 소리쳐 부르는 모습이다. 주자舟子는 뱃사공이니, 물을 건너는 것을 주관하는 사람이다. 은 나이다.
【箋】箋云 舟人之子號召當渡者 猶媒人之會男女無夫家者하여 使之爲妃匹이라 人皆從之而渡어늘 我獨否
전운箋云:뱃사공이 물을 건너야 할 자를 소리쳐 부르는 것이, 중매인이 남편과 아내가 없는 남녀를 만나게 하여 배필이 되게 하는 것과 같다. 남들은 모두 따라 건너는데 나만 건너지 않는 것이다.
○王逸云 以手曰招 以言曰召라하고 韓詩云 招招 聲也 我也 本或作仰이니 音同
왕일王逸은 “손짓으로 부르는 것을 ‘’라고 하고, 말로 부르는 것을 ‘’라고 한다.”라고 하고, ≪한시韓詩≫에는 “초초招招는 소리이다.”라고 하였다. 은 나이니, 간혹 ‘’으로 되어 있는 도 있는데 은 같다.
人涉卬否 卬須我友니라
남들 가도 나 아니 감은 바른 내 짝 기다려서라네
【傳】人皆涉이어늘 我友未至하여 我獨待之而不涉으로 以言室家之道 非得所適이면 貞女不行하고 非得禮義 昏姻不成이라
남들은 모두 건넜는데 내 짝이 이르지 않아 나만 기다리며 건너지 않은 것으로, 혼인하는 도리에서 합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하면 정숙한 여인은 가지 않고, 합당한 예의를 얻지 못하면 혼인昏姻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疏】‘招招’至‘我友’
의 [초초招招]에서 [아우我友]까지
○正義曰:言招招然號召當渡者, 是舟人之子, 人見號召, 皆從渡而我獨否, 所以人皆涉, 我獨否者, 由我待我友, 我友未至,
정의왈正義曰:물을 건너야 할 자들을 소리쳐 부르는 것은 뱃사공인데, 남들은 뱃사공이 소리쳐 부르는 것을 보고 모두 따라 건너는데 나만 건너지 않았으니, 남들은 모두 건넜는데 나만 건너지 않은 것은 나의 짝을 기다려서인데 나의 짝이 이르지 않았다.
故不渡耳, 以興招招然欲會合當嫁者, 是爲媒之人, 女見會合, 餘皆從嫁, 而我貞女獨否者, 由我待我匹, 我匹未得, 故不嫁耳.
그리하여 건너지 않았음을 말하여, 시집가야 할 이들을 불러서 만나게 하는 자는 중매인인데 여인들이 상대를 만나보고 다른 여인은 모두 따라 시집가는데, 정숙한 여인인 나만 따라가지 않은 것은 내가 나의 짝을 기다려서이니 나의 짝을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시집가지 않은 것이다.
此則非得所適, 貞女不行, 非得禮義, 昏姻不成耳, 夫人何以不由禮而與公淫乎.
이는 바로 합당한 짝을 만나지 못하면 정숙한 여인이 따라가지 않고, 합당한 예의禮義를 얻지 못하면 혼인昏姻이 이루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부인夫人은 무엇 때문에 를 따르지 않고 음란淫亂한 행동을 하는가라고 한 것을 한 것이다.
【疏】傳‘招招 號召之貌’
의 [초초 호소지모招招 號召之貌]
○正義曰:號召必手招之, 故云‘之貌’. 是以王逸云 “以手曰招, 以口曰召.” 是也.
정의왈正義曰:소리쳐 부를 때 반드시 손으로 부른다. 그리하여 ‘지모之貌’라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왕일王逸이 “손으로 부르는 것을 ‘’라고 하고, 입으로 부르는 것을 ‘’라고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匏有苦葉 四章이니 章四句
포유고엽匏有苦葉〉은 4이니 마다 4이다.
역주
역주1 魚網離鴻之刺 : 〈邶風 新臺〉에 “고기 잡는 그물에 기러기가 걸렸다.[魚網之設 鴻則離之]”고 하였는데, 세자 伋에게 시집온 宣姜을 宣公이 妾으로 맞아들인 것을 풍자한 시이다.
역주2 八月之時 陰陽交會 :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하는 때는 2월 春分과 8월 秋分인데, 여기서는 8월 秋分을 가리킨다. ≪周易≫에 四陽 二陰인 大壯卦(䷡)는 2월에 해당되며 四陰 二陽인 觀卦(䷓)는 8월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역주3 以衣涉水爲厲 : 옷을 입은 채로 물을 건너는 것을 말한다. ≪爾雅注疏≫의 注에 ‘衣’는 ‘褌’이라 하고, ≪春秋左傳注疏≫ 襄公 14년조의 疏에서는 ‘옷을 벗지 않고 물을 건너는 것을 厲라고 한다.[不解衣而渡水曰厲]’라고 하였다.
역주4 外傳魯語 : ≪春秋左氏傳≫을 春秋內傳이라 하는 데 대하여, ≪國語≫를 春秋外傳이라 한다. 周나라 左丘明이 지은 ≪國語≫는 周 穆王 20년(B.C.990)에서 晉나라의 智伯이 被殺될 때(B.C.453)까지 각국의 역사를 모아 편찬한 것으로, 〈周語〉 3권, 〈魯語〉 2권, 〈齊語〉 1권, 〈晉語〉 9권, 〈鄭語〉 1권, 〈楚語〉 2권, 〈吳語〉 1권, 〈越語〉 2권으로 되어 있다.
역주5 穆子曰……供濟而已 : 〈匏有苦葉〉의 시를 인용하면서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사용한 예를 말한 것이다. 襄公 14년에 제후들이 秦나라를 치러갈 때 涇水에 이르러 건너지 못하였는데, 叔孫穆子가 이 詩를 읊었다는 말을 듣고, ‘叔向이 〈匏有苦葉〉을 노래하였으니 반드시 건널 것이다.’ 하고 배를 준비하게 하여 涇水를 건넜다는 내용이다. ≪國語 魯語 卷5≫ ≪春秋左傳 襄公 14년≫
역주6 鄭注論語及服注左傳皆云由膝以上爲厲 : 위의 주석 내용은 ≪論語注疏≫ 〈憲問〉과 ≪春秋左傳正義≫ 권32 襄公 14년에 나온다.
역주7 令會男女 : 媒氏가 仲春에 남녀를 만나게 하는데, 만약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어기고 따르지 않으면 벌을 내린다고 하였다. ≪周禮 地官 媒氏≫
역주8 (賓)[擯]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擯’으로 번역하였다.
역주9 (傳)[箋] : 저본의 교감기에 의거하여 ‘箋’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역주10 (軌)[軓]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軓’으로 번역하였다. 아래도 같다.
역주11 (鳴)[鳥]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鳥’로 번역하였다.
역주12 (以)[似]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似’로 번역하였다.
역주13 (軌)[軓]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軓’으로 번역하였다. 아래도 같다.
역주14 (與)[輿]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輿’로 번역하였다.
역주15 書曰……獲其雄狐 : 날짐승인 닭에게 길짐승의 ‘牝’자를 사용하고, 길짐승인 여우에게 날짐승의 ‘雄’자를 사용한 예를 말한 내용이다. ‘獲其雄狐’는 ≪周易≫ 蠱卦의 爻辭이다.
역주16 [陰]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陰’을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역주17 (爲爲日出)[爲日始出]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爲日始出’로 번역하였다.
역주18 (生)[矣]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矣’로 번역하였다.
역주19 大昕之朝 奉種浴於川 : ‘大昕之朝’는 季春 초하루를 말한다. 이때 3宮의 夫人과 世婦 중에 길한 사람을 점쳐서 골라 잠실로 들여보내 누에를 치게 하였는데, 잠실로 들어간 사람은 누에 종자를 받들고 시내로 가서 씻은 다음 公桑에서 뽕을 따 바람에 말려 누에에게 먹였다고 한다. ≪禮記≫ 〈祭義〉
역주20 (木)[云] : 저본의 교감기에 따라 ‘云’으로 번역하였다.

모시정의(2)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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