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毛詩正義(1)

모시정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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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殷其靁 勸以義也 召南之大夫遠行從政하여 不遑寧處하니 其室家能閔其勤勞로되 勸以義也
은기뢰殷其靁〉는 로 권면한 일을 읊은 것이다. 소남召南대부大夫가 멀리 〈왕성王城〉 밖으로 나가 정사政事에 종사하여 편히 쉴 겨를이 없으니, 그의 아내가 그 수고로움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로 권면한 것이다.
【箋】召南大夫 召伯之屬이라 遠行 謂使出邦畿
소남召南대부大夫소백召伯의 관속이다. 원행遠行왕성王城 밖으로 사신 나감을 이른다.
○靁 亦作雷 勸以義也 本或無以字하고 下句始有 本或作偟하니이요 暇也
는 또 ‘’로도 쓰여 있다. 권이의야勸以義也는 여기에 ‘’자가 없고 아래 에 비로소 ‘’자가 있는 도 있다. 은 ‘’으로 되어 있는 도 있으니, 음은 황이고, 〈뜻은〉 겨를이다.
【疏】‘殷其靁(三章章六句)’至‘勸以義’
의 [은기뢰殷其靁]에서 [권이의勸以義]까지
○正義曰:作殷其靁詩者, 言大夫之妻勸夫以爲臣之義.
정의왈正義曰:〈은기뢰殷其靁〉의 를 지은 것은 대부大夫의 아내가 남편을 신하의 의리로 권면함을 말한 것이다.
召南之大夫遠行從政, 施王命於天下, 不得遑暇而安處, 其室家見其如此, 能閔念其夫之勤勞, 而勸以爲臣之義.
소남召南대부大夫가 멀리 나라 밖으로 나가 정사政事에 종사하여 천하天下에 왕명을 시행하여 한가하게 편히 쉴 겨를이 없으니, 그의 아내가 이와 같음을 보고 남편의 수고로움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신하의 의리로 권면한 것이다.
言雖勞而未可得歸, 是勸以義之事也. 定本‘能閔其勤’, 無‘勞’字.
비록 수고로우나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의리로 권면한 일이다. 정본定本에는 ‘능민기근能閔其勤’으로 되어 있고, ‘’자가 없다.
‘召南之大夫遠行從政’, 經三章章首二句, 是也, ‘不遑寧處 其室家閔其勤勞’, 次二句, 是也.
소남대부원행종정召南大夫遠行從政’은 의 세 의 1, 2가 이것이고, ‘불황녕처 기실가민기근로不遑寧處 其室家閔其勤勞’는 다음의 3, 4가 이것이다.
詩本美其勸以義, 卽具陳所勸之由, 故先言從政勤勞, 室家之事爲勸以義而施, 經․序皆得其次.
는 본래 의리로 권면한 것을 찬미한 것인데 바로 권면한 이유를 갖추어 말하였다. 그리하여 정사政事에 종사하여 수고로운 것을 먼저 말하고 아내의 일은 의리로 권하여 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가 모두 차례를 얻었다.
【疏】箋‘召南’至‘之屬’
의 [소남召南]에서 [지속之屬]까지
○正義曰:此解大夫卽是王朝之臣, 而謂之召南者, 以其是召伯之屬, 故言召南之大夫也.
정의왈正義曰:이 대부大夫는 바로 왕조王朝의 신하인데 소남召南대부大夫라고 풀이한 것은 그가 소백召伯관속官屬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남召南대부大夫라고 한 것이다.
文王未稱王, 召伯爲諸侯之臣, 其下不得有大夫. 此言召南大夫, 則是文王都豐, 召伯受采之後也.
문왕文王이 아직 이라 칭하지 않았으니 소백召伯제후諸侯의 신하여서 그 아래에 대부大夫를 둘 수 없다. 여기서 말한 소남召南대부大夫는 바로 문왕이 에 도읍하고 소백召伯소남召南채읍采邑으로 받은 다음의 일이다.
言‘召伯之屬’者, 召伯爲王者之卿士, 周禮六卿, 其下皆有大夫, 各屬其卿, 故云之屬.
소백지속召伯之屬’이라 말한 것은 소백召伯경사卿士가 되어서이니, ≪주례周禮≫ 〈천관 총재天官 冢宰〉에 육경六卿은 아래에 모두 대부大夫가 있는데 각기 그 에게 소속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지속之屬’이라 한 것이다.
左傳曰 “伯輿之大夫瑕禽”, 亦此之類也. 知非六州諸侯之大夫者, 以序云‘遠行從政’, 遠行, 出境之辭.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10년에 “백여伯輿에게 속한 대부 하금大夫 瑕禽”이라 하였으니, 또한 이런 부류이다. 6주 제후州 諸侯대부大夫가 아님을 안 것은 에서 ‘원행종정遠行從政’이라 했기 때문이니, 원행遠行은 국경을 나간다는 말이다.
經云‘殷其靁’, 靁以喩號令, 則此遠出封畿, 行號令者也, 若六州大夫, 不得有出境行令之事.
에서 말한 ‘은기뢰殷其靁’는 우레를 호령號令에 비유한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멀리 국경 밖을 나가 호령號令을 행하는 자이니, 6주 대부州 大夫의 경우라면 국경 밖을 나가 명령을 행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知非聘問者, 聘問結好, 非殷靁之取喩, 有時而歸, 非室家所當閔念. 言遠行從政, 無期以反室家, 閔之.
빙문聘問이 아님을 안 것은 빙문聘問은 우호를 맺는 것이므로 큰 우레 소리로 비유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고, 돌아올 때가 있으니 아내가 걱정해야 할 바가 아니다. 멀리 국경 밖으로 나가 정사政事에 종사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올 기약이 없는 것이므로 걱정하는 것이다.
明是召伯之屬, 從行化於南國也, 時未爲伯, 從後言之耳.
분명 소백召伯관속官屬이 〈소백召伯을〉 따라가서 남국南國에 나아가 교화를 행한 것이니 이때 〈소백召伯이〉 아직 이 되지 않았을 때이지만, 에서 〈행로行露〉의 로 인해 뒤따른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殷其靁 在南山之陽이어늘
우르릉 우레 소리 남산南山의 남쪽에서 들리는데
【傳】殷 靁聲也 山南曰陽이라 靁出地奮하고 震驚百里 山出雲雨하여 以潤天下
은 우레 소리이다. 의 남쪽을 이라 한다. 우레가 치면 땅이 울리고, 천둥소리가 백리를 놀라게 한다. 산에서 구름이 일면 비를 내려 천하天下를 윤택하게 한다.
【箋】箋云 靁以喩號令於南山之陽하고 又喩其在外也
전운箋云:우레로 남산南山의 남쪽에서 호령號令함을 비유하였고, 또 그가 멀리 밖에 있음을 비유하였다.
召南大夫以王命施號令於四方 猶靁殷殷然發聲於山之陽이라
소남召南대부大夫왕명王命으로 사방四方호령號令을 시행하는 것이 우르릉거리는 우레 소리가 산의 남쪽에서 나는 것과 같다.
何斯違斯하여 莫敢或遑
어이 이 군자君子 이곳을 떠나 감히 잠시도 쉴 겨를이 없는가
【傳】何此君子也이다
’는 ‘어찌 이 군자君子’이다. 는 ‘이 곳’이고, 는 ‘떠남’이다. 은 ‘겨를’이다.
【箋】箋云 何乎此君子 適居此라가 復去此하여 轉行遠하며 從事於王所命之方하여 無敢或閒暇時하니 閔其勤勞
전운箋云:어찌하여 이 군자君子는 마침 이곳에 머물다가 다시 이곳을 떠나 멀리 옮겨 다니며 이 명한 지방에 종사하여 감히 잠시도 한가하게 쉴 겨를도 없는가 하였으니, 그 수고로움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振振君子 歸哉歸哉
미덥고 후덕한 군자君子는 돌아올 수 있겠는가 돌아올 수 있겠는가
【傳】振振 信厚也
진진振振은 ‘미덥고 후덕하다’는 것이다.
【箋】箋云 大夫 信厚之君子 爲君使하여 功未成이면 歸哉歸哉아하니 勸以爲臣之義 未得歸也
전운箋云대부大夫는 미덥고 후덕한 군자君子이니 인군人君의 사신이 되어 을 이루지 못하면 돌아올 수 있겠는가. 돌아올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신하된 의리상 〈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올 수 없음을 권면한 것이다.
【疏】‘殷其’至‘歸哉’
의 [은기殷其]에서 [귀재歸哉]까지
○正義曰:言殷殷然靁聲在南山之陽, 以喩君子行號令在彼遠方之國.
정의왈正義曰:우르릉거리는 우레 소리가 남산南山의 남쪽에 있음을 말하여, 군자君子가 저 먼 지방의 나라에서 호령號令을 시행함을 비유하였다.
旣言君子行王政於遠方, 故因而閔之云 “何乎我此君子, 旣行王命於彼遠方, 謂適居此一處,
군자君子가 먼 지방의 나라에서 정사政事를 시행함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이 때문에 안타까워하여 “어찌하여 우리 이 군자君子왕명王命을 저 먼 지방에 시행하고 나서 마침 이곳에 머문다고 하였는데,
今復乃去此, 更轉遠於餘方, 而無敢或閒暇之時, 何爲勤勞如此.”
이제 다시 이곳을 떠나 다시 다른 지방으로 멀리 옮겨 다녀 감히 잠시도 한가하게 쉴 겨를이 없으니, 어찌하여 이와 같이 수고로운가.”라고 말한 것이다.
旣閔念之, 又因勸之, 言“振振然信厚之君子, 今爲君出使, 功未成, 可得歸哉.” 勸以爲臣之義, 未得歸也.
안타깝게 생각하고 또 권면하여 “성실하고 미더운 군자君子가 지금 인군人君을 위해 사신으로 나갔으니 공을 이루지 못하면 돌아올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신하된 도리상 〈공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올 수 없음을 권면한 것이다.
【疏】傳‘殷靁’至‘天下’
의 [은뢰殷靁]에서 [천하天下]까지
○正義曰:此靁比號令, 則雨靁之聲, 故云‘山出雲雨 以潤天下’.
정의왈正義曰:여기서 호령號令에 비유하였으니, 우레의 소리이다. 그리하여 ‘산출운우 이륜천하山出雲雨 以潤天下’라고 한 것이니,
雲漢傳曰 “隆隆而雷”, “, 雨靁之聲尙殷殷然.” 是也.
대아 운한大雅 雲漢〉의 에서 “우르릉거리는 우레 같은 소리[융륭이뢰隆隆而雷]”라고 하였는데, 에서 “〈융륭이뢰隆隆而雷는〉 우레가 아니고, 우레의 소리는 항상 우르릉거린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靁出地奮’, 豫卦象辭也, 彼注云 “奮, 動也, 靁動於地上, 而萬物豫也.” ‘震驚百里’, 震卦彖辭也,
뇌출지분靁出地奮’은 예괘豫卦상사象辭이니, 그 에서 “은 울리는 것이다. 우레가 땅위를 울리면 만물萬物이 기뻐한다.”라고 하였고, ‘진경백리震驚百里’는 진괘震卦단사彖辭이니,
注云 “震爲靁, 靁, 動物之氣也. 靁之發聲, 猶人君出政敎以動國中之人, 故謂之震.
에서 “천둥이 우레가 되니, 우레는 을 진동시키는 이다. 우레가 소리를 내는 것이 인군人君정교政敎를 내어 온 나라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천둥이라 한 것이다.
驚之言, 警戒也, 靁發聲百里, 古者諸侯之象, 諸侯之出敎令, 警戒其國疆之內.” 是其義也.
의 뜻은 경계이니, 우레 소리가 백리에 울리는 것이 옛날 제후諸侯의 상징이고, 제후諸侯교령敎令을 내어 나라 안의 사람을 경계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 뜻이다.
此二卦皆有靁, 事義相接, 故幷引之, 以證靁喩號令之義也.
이 두 에 모두 우레가 있고, 사리事理가 서로 이어지므로 아울러 인용하여 우레를 호령號令에 비유한 뜻을 증명한 것이다.
靁之發聲, 止聞百里, 文王之化, 非唯一國, 直取喩號令耳.
우레가 내는 소리는 백리에만 들리지만, 문왕의 교화는 한 나라만이 아니어서, 다만 호령號令을 비유로 취한 것이다.
‘山出雲雨’者, 公羊傳曰 “, 不崇朝而雨天下者, 其唯泰山乎.” 是山出雲雨之事.
산출운우山出雲雨’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희공僖公 31년에 “바위에 부딪쳐 구름이 생겨나 아주 조금씩 모여서 아침나절이 끝나기 전에 천하에 두루 비를 내리는 것은 오직 태산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산에서 구름이 일어 비를 내리는 일이다.
【疏】傳‘何此君子’至箋‘復去此’
의 [하차군자何此君子]에서 의 [복거차復去此]까지
○正義曰:傳言‘何此君子’, 解何字, 何爲我此君子乃然, 此非經中之斯,
정의왈正義曰에서 말한 ‘하차군자何此君子’는 ‘’자를 풀이하여 ‘어찌하여 우리 이 군자君子는 여전히 그러한가.’라고 한 것이니, 의 ‘’가 아니다.
故傳先言‘何此君子’, 乃訓斯爲此. 箋‘何乎此君子’, 亦謂傳中‘何此君子’, 亦非經中之斯.
그리하여 에서 먼저 ‘하차군자何此君子’라고 하고, 바로 를 풀이하여 라고 한 것이다. 의 ‘하호차군자何乎此君子’도 의 ‘하차군자何此君子’를 말한 것이니, 또한 의 ‘’가 아니다.
言‘適居此’, 經中何斯之此, 言我君子行於遠方, 適居此處, 今乃復去離此, 轉向餘國, 去此者, 經中違斯之此也.
적거차適居此’는 의 ‘하사何斯’의 이니, 우리 군자君子가 먼 지방을 다니다가 마침 이곳에 머물렀는데 지금 다시 이곳을 떠나 다른 나라로 옮겨 갔다는 말이니, ‘거차去此’는 의 ‘위사違斯’의 이다.
集注有‘箋云’, 定本於此無‘箋云’, 誤也.
집주集注에는 ‘전운箋云’이 있는데, 정본定本은 이곳에 ‘전운箋云’이 없으니, 잘못이다.
殷其靁 在南山之側이어늘
우르릉 우레 소리 남산南山의 곁에서 들리는데
【傳】亦在其陰與左右也
〈우레 소리가〉 남산南山의 북쪽과 곁에서도 나는 것이다.
【疏】傳‘亦在’至‘左右’
의 [역재亦在]에서 [좌우左右]까지
○正義曰:上‘陽’直云‘山南’, 此云‘側’, 不復爲山南, 三方皆是. 陰謂山北, 左謂東, 右謂西也.
정의왈正義曰:위에서 ‘’을 바로 ‘산의 남쪽’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한 ‘’은 다시 산의 남쪽이 될 수 없으니, 나머지 세 방향이 모두 이다. 은 산의 북쪽을 말하고, 는 산의 동쪽을 는 산의 서쪽을 말한다.
何斯違斯하여 莫敢遑息
어이 군자君子 이곳을 떠나 감히 쉴 겨를이 없는가
【傳】息 止也
은 ‘쉬는 것’이다.
振振君子 歸哉歸哉
미덥고 후덕한 군자君子는 돌아올 수 있겠는가 돌아올 수 있겠는가
殷其靁 在南山之下어늘
우르릉 우레 소리 남산南山의 아래에서 들리는데
【傳】或在其下
〈우레 소리가〉 남산南山의 아래에서 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箋】箋云 下 謂山足이다
전운箋云는 산기슭을 이른다.
何斯違斯하여 莫或遑處
어이 군자君子 이곳을 다시 떠나 잠시도 머물지 못하는가
【傳】處 居也
는 ‘머무는 것’이다.
振振君子 歸哉歸哉
미덥고 후덕한 군자君子는 돌아올 수 있겠는가 돌아올 수 있겠는가
殷其靁三章이니 章六句
은기뢰殷其靁〉는 3이니, 마다 6이다.
역주
역주1 箋因行露之序 : 〈行露〉의 序에서 “召伯聽訟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정현은 箋에서 이 부분의 내용에 의거하여 召伯이 남국에 나아가 정사를 펴는데 대부가 따라간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주2 (非雨靁也 箋云)[箋云 非雨靁也] : 저본의 교감기에 의거하여 ‘箋云’을 ‘非雨靁也’의 앞으로 옮겨 번역하였다.
역주3 觸石……而合 : ≪春秋公羊傳注疏≫에서 “네 손가락 넓이를 膚라 하고, 한 손가락의 넓이를 寸이라 하는데, 구름이 바위 결에 부딪쳐 생겨나 조금씩 모이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側手爲膚 按指爲寸 言其觸石理而出 無有膚寸而不合]”라고 하였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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