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以爲天下財賦匱竭하고 河朔災傷之後에 民力未復하니 未堪此役이리이다
朝廷若以河事付臣이면 臣請不役一夫하고 不費一金하고도 十年之間에 保無河患이라하니
大臣以其
로 하고 而使王孝先兪瑾張景先三人
으로 重畫回河之計
한대
故로 於議狀之末에 復言若將來河勢變移라도 乞免修河官吏責罰이라하니 都下洶洶하여 傳笑以爲口實이라하나이다
然
이나 近日復聞
三省
에 如云若河流不復故道
면 終爲河朔之患
이라하니 하여 不知此說信否
니이다
臣職在財賦하여 憂責至深하니 不敢畏避誅戮하고 願畢陳其說이리이다
獨有
은 事係安危
하여 可以竦動上下
니 伸其
이리이다
하시니 自是以來
로 河朔不見兵革
이 幾百年矣
니이다
昔
는 黃河非不在東
이요 而
以來
론 非獨河南無虜憂
라 河北亦自無兵患
이니이다
由此觀之
컨대 夷狄
은 顧德政何如耳
요 未聞逆天地之性
하고 引趨下之河
하여 升積高之地
하며 興莫大之役
하여 冀不可成之功
하고 以爲設險之計者也
니이다
嘗建言乞導河西行하여 復禹舊迹하고 以爲河水自西山北流하여 東赴海口면 河北諸州가 盡在河南이니
今者
엔 天祚中國
하여 不因人力
하고 河自西行
하니 正合
이니이다
雖使異日河復北徙라도 則虜地日蹙하고 吾土日紓리니 其爲憂患은 正在契丹耳언마는 而大臣過計는 以爲中國之懼하고 遂欲罄竭民力하여 導河東流하니 其爲契丹謀則多요 爲朝廷慮則疏矣니이다
議者或謂河入虜境이면 彼或造舟爲梁하고 長驅南牧이리니 非國之利라하나 臣聞 契丹長技는 在鞍馬요 舟楫之利는 固非所能이라하나이다
且跨河繫橋
는 當先兩岸
이니 進築
及伐木爲船
은 其功不細
어늘 契丹物力寡弱
하니 勢必不能
이니이다
就使能之라도 今兩界修築城柵이 比舊小增이니 輒移文詰問하여 必毁而後已어늘 豈有坐視大役而不能出力止之乎잇가
假設虜中遂成此橋라도 黃河上流가 盡在吾地하니 若沿河州郡이 多作戰艦하고 養兵聚糧하여 順流而下면 則長艘巨纜을 可以一炬而盡이리이다
臣竊怪
은 하되 而力陳此說
하니 意其謀已出口
라 重於改過
하고 而假此不測之憂
하여 以取必於朝廷耳
니이다
不然
이면 豈肯於天下困弊
하고 河朔災傷之後
에 興數十萬夫
하고 費數千萬
하여 而爲萬無一成之功哉
리잇가
有少無多
라 官不獨辦
이요 必行
리니 官出其一
이면 民出數倍
니이다
苟民力窮竭하니 事變之出을 不可復知요 饑餓相逼하니 必爲盜賊이리이다
今欲回大河以設險
하니 臣恐河不可回
요 而民勞變生
이리니 니이다
今河
安流
하고 契丹無變
하니 而
以擾之
는 非計之得也
니이다
故
로 臣願陛下斷之於心
하여 罷此
하고 留神察之
하소서
事久情見이니 大臣之言과 與天下公議를 可以坐而察也니이다
臣不勝區區憂國之誠하여 干犯斧鉞은 死無所避니이다
07.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릴 일을 두 번째 논한 차자箚子
자유子由가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에 대해 논한 것들은 뒤에 낱낱이 모두 징험되었다.
신臣이 요즘 듣자옵건대 “조정朝廷에서 의논하여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은 중지하였으나 내년에 응당 역병役兵을 써서 인공으로 감수하減水河나 입해하入海河를 개척하여 물을 분산시킬 것이다.”라고 합니다.
신臣은 생각하옵건대 전국의 재부財賦가 궤갈匱竭되고, 하삭河朔이 재상災傷을 입은 뒤에 민력民力이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으니 이와 같은 역사役事를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신臣은 그 일의 온당치 못함에 대하여 주언奏言하였고, 따라서 여러 사람들의 의론도 수집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듣자옵건대, 하북전운사河北轉運使 사경재謝卿材가 대궐大闕에 이르러 조정朝廷에서 창언倡言하기를
“황하黃河는 소오소小吳埽의 결구決口로부터 높은 곳을 타고 낮은 곳으로 쏟아지니 수세水勢가 분쾌奔快하고,
상류上流에 제방隄防을 쌓았으니 다시는 하수河水가 제방隄防을 헐고 나가서 범람하는 재변이 없을 것이고,
하류下流는 빠르게 내달려 땅속으로 흘러가니 날마다 더욱 땅속으로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조정朝廷에서 만일 황하黃河를 다스리는 일을 신臣에게 부여한다면 신臣은 청컨대 인부 한 명도 부역시키지 않고 돈 한 푼도 허비하지 않고도 10년 동안 황하의 화환禍患이 발생하는 일이 없기를 보장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대신大臣은 그의 의견이 자기와 다르기 때문에 폄출貶黜하여 본래 맡았던 하북전운사河北轉運使의 위치로 돌려보내고, 왕효선王孝先‧유근兪瑾‧장경선張景先 세 사람으로 하여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릴 계획을 다시 짜게 하였습니다.
이 세 사람은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에 공功을 노릴 수 있는 이로운 점이 있는지라, 비록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것이 유리한 일이라고 주장은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을 성공시키기는 어려울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의장議狀의 끝에 다시 말하기를 “만일 장래에 하세河勢가 변이變移하더라도 황하黃河를 수치修治한 관리官吏의 책벌責罰을 면해주십시오.”라고 적어서 면책조건을 못박아두니, 경성京城의 여론이 떠들썩하여 그것을 전파시키며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단연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다시 듣자옵건대, 내비內批를 내려 삼성三省에 교부하기를 “만일 황하黃河가 옛 물길을 회복하지 못하면 끝내는 하삭河朔의 화환禍患이 된다.”고 하셨다 하온데, 외정外廷이 소원疏遠하므로 이 설說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우구憂懼하고 있는데, 뭇 신하들이 내비內批로 말미암아 사태의 진전만 관망하고 감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일의 득실에 대해서는 바른말을 하지 않을까 깊이 염려하옵니다.
신臣은 재부財賦를 관장하는 직책에 있어 책임이 중대하므로 감히 주륙誅戮을 피하지 않고 말씀을 다 드리기를 원하옵니다.
지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리는 계책에 대해서는 중외中外에서 난숙하고 주밀하게 강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대신大臣이라 하더라도 역시 마음속으로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구실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변방邊防에 대한 일설一說은 그 일이 안위安危에 관계되어 상하上下를 송동竦動시킬 수 있으므로 상리常理에 맞지 않는 그 말에 대해 해명할 것입니다.
폐하陛下께서는 깊숙이 구중궁궐九重宮闕에 계시므로 각종 의론이 모두 상달上達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이 신속하게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 진종황제眞宗皇帝께서는 직접 전연澶淵에 가셔서 거란契丹을 격파하고 그들의 패망敗亡을 틈타 그들과 화친을 맺었으니, 이후로 하삭河朔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을 보지 못한 지 거의 1백 년이 되었습니다.
폐하陛下께서 생각해보시면 이것이 어찌 유독 황하黃河 덕분이었겠습니까?
옛날 석진石晉이 패할 때에는 황하黃河가 동쪽에 흐르고 있었지만 패하였고, 상부祥符 이래以來로는 하남河南에만 노우虜憂가 없을 뿐 아니라 하북河北에도 스스로 병환兵患이 없었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이적夷狄(契丹)과 결교結交한 것은 진종황제께서 베푼 인덕仁德의 정치의 영향임을 볼 수 있을 뿐이지, 천지天地 자연의 본성을 거역하고 낮은 지대로 흐르는 하수河水를 끌어서 높은 지대로 올리며, 막대한 역사를 일으켜 이룰 수 없는 공을 바라고 험지를 조성할 계책으로 삼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옛날 이수李垂와 손민선孫民先 등은 황하黃河에 관한 일을 잘 알기로 이름이 났었는데,
그들이 일찍이 건언建言하여 “황하黃河를 서쪽으로 흐르게 유도하여 우禹의 구적舊迹을 회복함으로써 하수河水가 서산西山으로부터 북류北流하여 동쪽으로 해구海口에 치닫게 하면 하북河北의 제주諸州가 모두 하남河南에 있게 되니
평소 거란契丹에 대한 걱정은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하늘이 중국中國에 복을 내리어 인력人力을 요하지 않고도 황하黃河가 스스로 서행西行하니 옛사람의 계책에 꼭 부합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북안北岸이 터져 넘쳐서 점점 노경虜境으로 황하가 옮겨갈 것입니다.
비록 후일에 황하黃河를 다시 북쪽으로 옮겨가게 한다 하더라도 노虜의 땅은 날마다 줄어들고 우리 토지는 날마다 늘어날 것이니, 그 우환憂患거리는 정작 거란契丹에 있을 뿐인데, 대신大臣의 잘못된 계책은 중국中國의 걱정거리로 삼고 드디어 민력民力을 총동원하여 황하黃河를 동쪽으로 흐르도록 유도하려고 하니, 거란契丹을 위한 모획謀劃 면에서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도 우리 조정朝廷을 위한 염려 면에서는 소홀하기 그지없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더러 “황하黃河가 노경虜境에 들어가면 저들이 혹시 배를 만들어 다리를 놓고 말을 길이 휘몰아 남침南侵할 것이니 국가의 이익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신臣은 듣건대 “거란契丹의 장기長技는 말의 안장을 얹는 일에 있고, 주즙舟楫을 만드는 것은 본디 그들의 장점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또한 하수河水를 넘어 다리를 놓는 것은 응당 먼저 양쪽 언덕에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니, 들어가서 마두馬頭를 쌓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드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거늘, 거란契丹은 물력物力이 과약寡弱하니 형편상 반드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사 그 일을 한다손 치더라도 지금 양계兩界에 수축修築한 성책城柵이 예전에 비해 조금 증가되었으니, 즉시 이문移文하여 문책問責해서 반드시 헐어버리고야 말 일이거늘,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대역大役을 지켜만 보고 힘을 내어 중지시키지 못한단 말입니까?
설령 노중虜中에서 드디어 이 다리를 놓는다 하더라도 황하黃河의 상류上流가 모두 우리 땅에 있으니, 만일 연하주군沿河州郡이 전함戰艦을 많이 제작함과 동시에 군사를 양성하고 군량을 모아서 하류河流를 따라 내려간다면 장소長艘 거람巨纜을 횃불 하나로 모조리 태워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형세상 제한을 받고 있으니, 저들은 장차 스스로 중지할 것입니다.
신臣이 괴상히 여기는 것은, 원로대신元老大臣이 오랫동안 높은 관직을 맡아 수많은 일들을 겪었으면서도 이와 같은 말을 힘써 진술하니, 아마도 그들은 자기를 위해 내놓은 말이라, 허물을 고치는 일을 어렵게 여기고, 이와 같은 불측한 우환거리를 벌여서 반드시 조정에서 승인을 받으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천하가 곤폐困弊하고 하삭河朔이 재상災傷을 입은 뒤에 수십만의 인부를 동원하고 수천만의 물료物料를 허비하여 만에 하나도 성공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큰 역사役事가 이미 일어났으니 형세상 중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리 산정된 물료物料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관官에서 단독으로 마련하지 못하고 반드시 정세正稅 외에 별도로 거두는 과배科配를 행할 것이니, 관官에서 1할을 내면 백성은 그 배수를 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사公私 간에 소비되는 수량이 반드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민력民力이 궁갈窮竭하니 사변事變의 발생을 예측할 수 없고, 기아饑餓가 절박하니 반드시 도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옛날 진秦나라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나 성이 이미 이루어지자 백성들이 이반하였습니다.
지금 황하黃河의 물길을 돌림으로써 험지險地를 조성하려고 하니, 신臣은 황하黃河의 물길은 돌리지 못하고 백성이 노고를 견디지 못하여 변이 발생할까 두려우니, 황하黃河가 동쪽으로 흐르도록 유도함으로써 험지를 조성하려는 계책은 진秦나라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려는 계책에 비하면 또한 하등을 차지할 것입니다.
후일에 비록 그것을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폐하陛下께서는 수년數年 이래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되 행여 백성들이 불편하지나 않은가 늘 걱정하고 계십니다.
현재 황하黃河는 이미 순탄하게 흐르고 있고, 거란契丹은 변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으니, 억지로 화해禍害를 일으켜 시끄럽게 하는 것은 절대로 올바른 계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臣은 원하옵건대 폐하陛下께서는 마음으로부터 결단을 내리어 이와 같은 큰 역사役事를 파하고 유의해서 살피옵소서.
황하黃河가 소오소小吳埽에서 터진 지 이제 9년이 흘렀으니 세월이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란契丹은 공순恭順하여 조종祖宗을 섬기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폐하陛下께서 참으로 대신大臣의 의견을 어기기가 곤란하시면 다시 3년 동안 지켜보시옵소서.
일은 오랜 시일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는 법이니, 대신大臣의 말과 천하天下의 공론을 가만히 앉아서 살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臣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여 부월斧鉞을 범하는 일을 죽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소신의 건의에 대한 실행 여부를 결정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