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니 하고 至於今
엔 而養兵興役之事 皆不得其當
하여 而可爲之深憂
니이다
蓋古者엔 兵出於農하고 而役出於民하니 有農則不憂無兵하고 而有民則不憂無役이니이다
五口之家엔 常有一人之兵하고 而二十歲之男子엔 歲有三日之役이니이다
故로 其兵强而費不增하고 役起而人素具하니 雖有大兵大役이나 而不憂事之不集하고 至於兵罷役休엔 而無日夜不息之費니이다
하고 陵夷至於末世
엔 天下無復天子之田
이요 皆民之所自有
니 天下之民
이 不食天子之田
이니이다
是故
로 獨賦其稅
하고 而不任之以死傷戰鬪之患
하니 니이다
租者는 地之所當出이요 調者는 兵之所當費요 庸者는 歲之所當役也니이다
故로 使之納粟於官하여 以爲田之租하고 人入布帛하여 以爲兵之調하고 歲役其力하되 不役則出其力之所直하여 以爲役之庸이니이다
此三者
는 農夫皆兼爲之
하니 而游惰
之民
도 亦不免於庸調
니이다
民歲役二旬이요 而不役者는 當帛六十尺이니 民亦不至於太苦니이다
故로 수隋당唐之間엔 有養兵之困이나 而無興役之患이니 此其爲法은 雖不若三代之兵이 不待天子之養이나 然이나 天下之役은 猶有可賴者하니 皆民爲之也니이다
以至於今
엔 天下非有田者
면 不可得而使
요 而
하니 天下有大興築
하고 有大漕運
이면 則常患無以爲使
니이다
故
로 廣募冗兵
하여 以供
之急
하니 不知擊刺戰陳之法
하고 而坐食天子之俸
이니이다
는 其所以奉養之具 皆出於農也
하고 而四海之游民
은 無尺寸之庸調
니이다
爲農者는 常使陰出古者游民之所入하고 而天子亦常兼任養兵興役之大患이니이다
臣愚以爲 天子平日無事
에 而養兵不息
은 此其事出於不得已
요 惟其
而後
에 可使任其責
이니이다
至於力役之際
에 挽車船
하고 築宮室
하고 造城郭
은 此非有死亡陷敗之危
니 天下之民
이 誠所當任而不辭
하여 不至以累
으로 以重費天子之
이니이다
而農已甚困이어늘 蓋常使盡出天下之費矣언만 而工商技巧之民과 與夫游閑無職之徒는 常徧天下하여 優游終日而無所役屬이니이다
今可使盡爲近世之法하여 皆出庸調之賦하여 庸以養力役之兵하고 而調以助農夫養武備之士니이다
而力役之兵은 可因其老疾死亡하면 遂勿復補하고 而使游民之丁으로 代任其役을 如期而止하여 以除其庸之所當入하며 而其不役者는 則亦收其庸을 不使一日而闕이니이다
蓋聖人之於天下에 不唯重乎茍廉而無所求라 唯其能緩天下之所不給하고 而節其太幸하니 則雖有取나 而不害於爲義니이다
今者에 雖能使游民無勞苦嗟嘆之聲이나 而常使農夫獨任其困이니이다
天下之人이 皆知爲農之不便이면 則相率而事於末이니이다
末衆而農衰면 則天子之所獨任者 愈少而不足於用이니이다
故로 臣欲收游民之庸調하여 使天下無僥倖苟免之人하고 而且以紓農夫之困이니이다
茍天下之游民이 自知不免於庸調之勞인댄 其勢不耕이면 則無以供億其上이니 此又可驅而歸之於南畝니이다
要之十歲之後엔 必將使農夫衆多하고 而工商之類 漸以衰息이리니
如此而後에 使天下擧皆從租庸調之制하고 而去夫所謂兩稅者하여
당형천唐荊川曰 此篇之妙는 全在說國病與農病이니 二者夾雜渾融이니라
01. 백성을 위하는 정치에 대한 책문策文 6
지금 이미 정전丁錢을 받고 있거늘, 다시 유민游民의 용庸‧조調를 거두려고 하니, 또한 실행하기 어려울 듯싶다.
다만 일에 대한 서술이 세밀하고 문장이 구절구절 그림과 같다.
삼대三代(夏‧은殷‧주周)의 시대에는 병정兵丁과 요역徭役에 대한 걱정이 없었는데, 근세近世에 내려와서는 병정兵丁을 양성하는 데 대한 곤란은 있었으나 요역徭役을 일으키는 데 대한 걱정은 없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병정兵丁을 양성하고 요역徭役을 일으키는 일이 모두 온당하지 못하여 깊은 걱정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병정兵丁은 농민農民에게서 나오고, 요역徭役은 백성에게서 나왔으니, 농민이 있으면 병정兵丁이 없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백성이 있으면 요역徭役이 없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5명의 식구가 사는 집에는 항상 1명의 병정兵丁이 배당되어 있고, 20세의 남자에게는 해마다 3일의 요역徭役을 할 의무가 부과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병정兵丁은 강하면서 비용은 증가되지 않고, 요역徭役이 일어나도 인력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으니, 비록 큰 병정兵丁을 동원하고 큰 요역徭役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일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 없었고, 병정兵丁이 파하고 요역徭役이 끝나게 되면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 비용이 들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주周나라가 쇠망衰亡함에 정전井田이 파괴되었고 점점 무너져 내려 말세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다시 천자天子의 전지田地는 없어지고 모두 백성의 소유가 되었으니, 천하의 백성들이 천자天子의 전지田地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백성들에게는 단지 조세租稅만 부과하고 전투에서 살상될 우환의 일은 맡기지 않았으니, 천자天子에게는 병정을 양성할 걱정이 있고, 천하에는 공수攻守에 노고할 백성이 없어 큰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재산에 정세征稅하여 병정을 양성하는 비용을 마련하였고, 천하의 요역徭役은 바로 전수轉輸, 조운漕運, 영건營建, 흥축興築 등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요역徭役이〉 또한 모두 백성에게서 나왔습니다.
이때에 백성이 상부의 명령에 이바지하는 명목이 세 가지가 있었으니, ‘조租’‧‘조調’‧‘용庸’이란 것이었습니다.
‘조租’라는 것은 전지田地를 경작하는 사람이 당연히 내야 하는 조세租稅이고, ‘조調’라는 것은 병정兵丁의 비용으로 써야 할 〈집에 과課하는 현물세이고〉, ‘용庸’이란 것은 해마다 당연히 해야 할 노역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쌀[粟]을 관官에 납입하게 하여 전지田地에 부과하는 조租로 삼고, 사람들이 포백布帛을 납입해서 병정兵丁을 양성하는 조調로 삼고, 해마다 노동력을 제공하되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는 그 노동력의 대가를 내어 노역의무의 용庸으로 삼았습니다.
이 세 가지는 농부가 모두 겸해서 하였고, 유한游閒하고 타태惰怠한 무리와 상공업商工業을 하는 백성 또한 용庸과 조調의 납입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무거운 짐을 운수하고 먼 거리를 조운하는 것도 천자天子는 그 비용을 모르고 있지만, 모두 백성에게서 나왔습니다.
백성은 해마다 20일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력을 직접 제공하지 못할 경우는 백帛 60척尺을 내야 했으니, 백성들이 또한 너무 괴로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수隋나라, 당唐나라의 사이에는 병정을 양성하는 데 대한 곤란은 있었으나 요역徭役을 일으키는 데 대한 걱정은 없었으니, 그 법은 비록 삼대三代의 병정이 천자天子의 양성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못하였지만, 천하의 요역은 오히려 힘입을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모두 백성들이 해냈던 것입니다.
그 후세에 와서는 또 그 제도를 잘 지킬 수 없어 이에 비로소 법을 변경하여 양세법兩稅法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전지田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부리지를 못하고, 전지를 가진 사람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또한 〈주군州郡에서〉 분주하는 정도에 불과할 뿐, 천자天子의 큰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으니, 천하에 크게 건축을 할 일이 있거나 크게 조운漕運을 할 일이 있으면 항상 부릴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쓸데없는 병정兵丁을 널리 모집하여 역역力役의 급한 곳에 제공하니, 그 병정兵丁들은 치고 찌르고 싸우고 진 치는 법을 모른 채 가만히 앉아서 천자天子의 봉록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나라에는 무비武備하는 병정兵丁이 있고, 또 역역力役하는 병정兵丁이 있습니다.
이 두 병정兵丁을 공양하기 위한 물자는 모두 농부에게서 나오게 되고, 사해四海의 유민游民들은 척촌尺寸만큼의 용庸‧조調도 내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항상 아무런 명목 없이 옛날에 유민游民이 납입하던 용庸‧조調까지 내게 되고, 천자天子 또한 항상 군사를 양성하고 역사를 일으키는 큰 걱정거리를 겸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병정兵丁과 요역徭役의 폐단이 지금 세상에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臣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천자天子께서 평일 무사할 때에 양병養兵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 일이 부득이해서일 뿐더러, 전쟁이 일어난 뒤에 그 〈공벌攻伐의〉 책임을 맡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그리고 역역力役을 제공하는 일로 말하면, 거선車船을 끌고 궁실宮室을 짓고 성곽城郭을 축조하는 것에는 사망死亡이나 함패陷敗의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니니, 천하의 백성들은 응당 사피하지 않고 그 일을 맡음으로써 거듭 뽑힌 전사戰士가 이중으로 천자天子의 늠식廩食을 축내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른바 ‘요역徭役을 할 수 있는 자’는 농민에 불과할 뿐입니다.
농민은 이미 너무도 지쳐 있거늘, 그런데도 항상 그들로 하여금 천하의 모든 비용을 다 내게 하건만, 공업工業‧상업商業‧기교技巧로 생계를 도모하는 백성과 일정한 직업 없이 한유閑游하게 지내는 무리들은 항상 천하에 널려서 종일 느긋하게 놀아대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바가 없습니다.
주관周官의 법法은 〈농사를 짓지 않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유민游民은 부가夫家의 정세征稅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모두 근세近世의 법法으로 삼아서 모두 용庸‧조調의 부세賦稅를 내게 하여 용庸으로는 역역力役의 병정兵丁을 양성하고, 조調로는 농부農夫가 무비武備의 군사를 공양하는 것을 돕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역역力役의 병정兵丁은 노질老疾로 사망死亡하면 다시 보충하지 말고 유민游民의 남정男丁으로 그 역役을 대신 맡기를 기약한 날짜만큼 하도록 하여 〈역役을 맡는 동안〉 응당 납입해야 할 용세庸稅를 면제해주며, 역役을 하지 않는 유민游民에게는 또한 그 용세庸稅의 징수를 하루치도 빠뜨리지 않게 해야 되겠습니다.
대개 성인聖人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오직 청렴결백만을 중시하여 구하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부족한 것은 느슨하게 처리하고 너무 과다한 것은 절제하는 일을 잘하였으니, 비록 취하는 바가 있더라도 〈어진 정치를 하는 바른〉 도의道義에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유민游民들에겐 노고勞苦에 대한 차탄嗟嘆의 소리가 없게 할 수 있지만, 항상 농부農夫들에겐 그 곤로困勞를 단독으로 떠맡게 합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농사짓는 일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면 서로 이끌어 〈농경農耕 이외의〉 말업末業에 종사할 것입니다.
말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농경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천자天子의 〈백성 중에 곤로困勞를〉 단독으로 떠맡는 농부가 갈수록 적어져서 국용國用에 부족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臣은 유민游民에게 용庸‧조調를 징수함으로써 천하에 요행히 모면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따라서 농부의 노고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천하의 유민游民들이 용庸‧조調의 노고를 면하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안다면, 형세상 농경을 하지 않으면 위에 이바지할 수 없으니, 이것은 또한 〈유민游民들을〉 몰아다가 남묘南畝(농촌)로 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10년 후에는 반드시 농부는 많아지고 공인工人‧상인商人의 유類는 점점 줄어들 것이니,
이와 같이 된 뒤에 온 천하가 모두 조租‧용庸‧조調의 제도를 따르고 이른바 ‘양세兩稅’라는 것을 없애게 되어,
병정兵丁과 요역徭役에 대한 걱정이 조금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형천唐荊川은 말하기를 “이 편篇의 묘미妙味는 모두 국병國病과 농병農病을 말한 데 있으니, 두 가지가 섞여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