慨然歎曰 백기起以武夫로 無所屈信이라가 而困於游談之士하니 使백기起勉彊一行이면 兵未必敗而免於死矣라하노라
하고 이요 而
백기起非特以怨不行
이니 蓋爲之流涕也
니라
조충국趙充國征서강西羌에 守便宜不肯奉詔出兵이니라
신무현辛武賢雖兵出有功이나 조충국充國竟爲한漢선제宣明其非하니 是신무현武賢怨之至骨이니라
내가 일찍이 태사공太史公(司馬遷)의 〈백기열전白起列傳〉(《史記》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에서 ‘진秦나라가 재차 한단邯鄲을 칠 때에 백기白起가 범수范睢와 원한관계가 있어 병을 핑계로 싸우러 가지 않았다가 자기 몸을 죽게 한 것’을 읽고,
“백기白起는 무부武夫로서 융통성이 없다가 유담사游談士에게 곤욕을 당하였으니, 가사 백기白起가 억지로라도 한 번 출병을 하였더라면 군사는 반드시 패하지 않을 것이고 죽음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개연慨然히 탄식하노라.
《전국책戰國策》을 읽을 때에 백기白起가 스스로 성패의 사적을 진술한 것을 보고서야 한단邯鄲은 결코 재차 칠 수 없었던 양심 때문이었지, 백기白起가 〈범수范睢와〉 원한관계 때문에 출병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았으니,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노라.
조충국趙充國은 서강西羌을 칠 때에 편의便宜한 방법을 지키고 왕명을 받들어 출병하려 하지 않았다.
신무현辛武賢은 비록 출병하여 공을 세웠으나 조충국趙充國은 결국 한漢 선제宣帝를 위하여 그 잘못을 밝혔으니, 이는 신무현辛武賢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원망한 일이었다.
비록 조충국趙充國을 해치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그 아들 조앙趙卬을 모함하였다.
정도正道를 따르고 아부하지 않는 것은 예부터 어려운 일이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