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不著意하고 而援隱者之言하여 論身與性似入解니라
有目者以視하고 有手者以執하고 有足者以履하며 至於山石草木도 亦非日不遂니라
及其入也엔 天下黯然하여 無物不廢나 然이나 日則未始有變也니라
惟性亦然하여 出生入死나 出而生者도 未嘗增也요 入而死者도 未嘗耗也니 性一而已니라
故
로 日出於
는 謂之命
이요 月之所在
는 謂之身
이니라
築室於斯하고 闢其東南爲小軒하니 之前廓然無障하여 幾與天際니라
每月之望엔 開戶以須月之至하고 月入吾軒이면 則吾坐於軒上하여 與之徘徊而不去니라
一夕擧酒延客하여 道隱者之語하니 客漫不喩曰 吾嘗治術矣나 初不聞是說也라하니라
문장에 집착하지 않고 은자隱者의 말을 원용해서 몸과 성性을 논하여 해석한 쪽으로 들어간 것 같다.
옛날 내가 여산廬山에서 노닐 때에 은자隱者를 만나보았더니, 그는 나를 위하여 ‘성명性命’의 이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性은 해와 같은 것이고, 몸[身]은 달과 같은 것이니라.”
내가 의심이 나서 힐문詰問하였더니,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에겐 처음에 성性만 있을 뿐이고, 성性이 붙은 바가 몸이 되느니라.
하늘엔 처음에 해만 있을 뿐이고, 해가 붙은 바가 달이 되느니라.
해는 동쪽에서 나오는데, 해가 나올 때에는 만물이 해의 덕을 입느니라.
눈을 가진 자는 해 때문에 사물을 보게 되고, 손을 가진 자는 해 때문에 물건을 가지게 되고, 발을 가진 자는 해 때문에 땅을 밟게 되며, 산과 돌과 풀과 나무도 해가 아니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느니라.
해가 땅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천하가 깜깜하여 폐해지지 않는 사물이 없지만, 해는 처음부터 변함이 있지 않느니라.
오직 해에 의지하는 바에만 영만盈滿과 궐결闕缺이 있으니, 한 번 영만盈滿하고 한 번 궐결闕缺하는 것은 달이니라.
성性도 그리하여 숨을 쉬면 살고 숨을 거두면 죽지만, 숨을 쉬고 사는 경우도 증가되는 것이 있지 않고, 숨을 거두고 죽는 경우도 감손되는 것이 있지 않으니, 성性은 하나일 뿐이니라.
오직 성性에 의지하는 바에만 삶과 죽음이 있으니,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것은 몸이니라.
비록 삶과 죽음이 있지만, 여기에서 죽고 저기에서 태어나니, 멈추지 않느니라.
몸과 달이 다 그러하니, 옛날 술법術法을 다스리는 자는 이것을 알았느니라.
그러므로 해가 묘시卯時에 나옴은 ‘명命’이라 이르고, 달이 있는 바는 ‘몸’이라 이르느니라.
해가 땅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비록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에서 이용하는 바가 되지는 못하느니라.
다시 동쪽에서 나온 연후에 만물이 보지 않음이 없으니, 명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달은 스스로 밝지 못하고 해로 말미암아 밝게 되느니라.
해의 원근遠近으로써 달이 영궐盈闕을 하니, 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에서 술법을 다스리는 자는 그 말은 알지만, 그 말을 하는 까닭은 알지 못하느니라.”
나는 그 말을 특이하게 여겨 기록해둔 지 오래였다.
여기에 집을 짓고 그 동남쪽을 터서 헌함軒檻을 만드니, 헌함軒檻의 앞이 막힘없이 툭 틔어서 거의 하늘과 끝을 같이하였다.
매월 보름이면 문을 열고 달이 뜨기를 기다렸고, 달이 나의 헌함軒檻에 비치면 나는 헌함軒檻 위에 앉아서 달과 함께 배회하고 떠나지 않았다.
하루 저녁에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손님을 맞이하여 은자隱者의 말을 설명하였더니, 손님은 알아듣지 못하고 “나는 일찍이 술법을 다스렸으나 당초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소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반복해서 그 이치를 설명하였더니, 손님은 서서히 깨닫고는 “맞아, 맞아.”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