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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2)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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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行文佳 所議未當이니라
昔者三代之法 使天下 立學校而敎民하고 行鄕射飮酒之禮니라
於歲之終 田事旣畢이면 而會其鄕黨之耆老하여 設其籩豆酒食之薦하고 而天子之대부大夫 親爲之行禮하니 蓋以爲田野之民 裸裎其股肱하여 而勞苦其筋力하고 長幼雜作하여 以趨一時之利하고 習於鄙野之俗하여 而不知孝悌之節하고 頑嚚無恥하여 不可告語 而易與爲亂이니라
是以 因其休息而敎之以禮하여 使之有所不忘於其心이니라
三代之民 雖耕田荷任之賤이라도 其所爲者甚鄙 而其中必有所守하여 其心甚朴하니 而亦不至於無知以犯非義니라
何者
其上之人 不以爲鄙而不足敎하고 而其民 亦喜於爲善也니라
至於後世之衰하여는 天下之民 愚者不知君臣父子之義하여 而天下之風俗 日已敗亂이니라
今夫輕揚而剽悍하고 好利而多變者 之俗也 勁勇而沈靜하고 椎鈍而少文者 之俗也니라
以輕揚剽悍之人으로 而有好利多變之心이어늘 無三代王者之化하니 宜其起而爲亂矣니라
若夫北方之國 其勁勇沈靜者 可以義動이요 而椎魯少文者 可以信結也니라
然而之間 其民常至於自負其勇하고 以爲盜賊 無以異於 何也
其勁勇 近於好亂이요 而其椎魯 近於無知니라
上失其道하니之良民 不復見於當世 而其暴戾之夫 每每亂天子之治니라
古之聖人 止亂以義하고 止盜以義하여 使天下之人으로 皆知父子君臣之義하니 而誰與爲亂哉
昔者室之衰 之人 八十年之間 百戰以奉賊臣하고 竭力致死하며 不顧敗亡하고 以抗之兵하되 而以爲忠臣義士之所當然이니라
當此之時 之士 唯無義也
擧其忠誠專一之心하여 而用之天下之至逆하여 以拒天下之至順하되 而不知其非也니라
맹자孟子曰 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이니
이면 放僻邪侈 無不爲已니라하니라
之地 恒苦夫士大夫之寡也니라
자유子由此論 殆亦未嘗深知之俗耳니라
予嘗宦遊하니 之士 多忠信感慨니라
自古其地 多節俠死義者 亦以此 特存夫上之以詩書禮樂으로 相爲摩切者何如耳니라
자유子由中葉時擁叛將者八十餘年이니 抑不知罪在將이요 非在吏民也니라
하간河間위박魏博하간 多明經獨行이니 而卽如田野閭里하간 雖有鬪鷄走馬 蹋踘弓矢之習이나 而有賢수령守令 以爲之長이면 且勝 而況


04. 지방과 지방에 대한
문장은 아름답지만 의논한 바는 타당하지 못하다.
옛날에 삼대三代천하天下로 하여금 학교學校를 세워서 백성을 가르치고 향사례鄕射禮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게 하였다.
연말에 농사가 이미 끝났으면 향당鄕黨기로耆老를 모아 변두籩豆주식酒食을 차려놓고 천자天子대부大夫가 몸소 를 행하였으니, 그것은 대개 농민들은 〈일을 하기 위해〉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 근력筋力을 다하고, 어른과 어린이가 노동에 참가하여 일시적인 이익을 모색하고 시골 구석의 풍속을 익혀 효제孝悌의 예절을 알지 못하며, 우매하고 수다스럽고 수치심이 없어서 〈더불어 도리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없고 쉽게 난동에 참가할 것이라 여겨서이다.
이 때문에 휴식기간을 이용하여 예절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잊지 못할 바가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삼대三代의 백성들은 비록 밭을 갈고 짐을 지는 천민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은 매우 비천하였지만, 마음속에는 반드시 〈도덕이나 법칙을〉 지키는 바가 있어 그 마음이 매우 소박하므로 또한 무지하게 비도의적인 일을 범하는 데에 이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윗자리에 있는 군주君主는 〈백성이〉 비천하여 족히 가르칠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 백성들 또한 착한 일을 하기를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후세後世의 쇠퇴기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백성들이 어리석은 자가 군신君臣부자父子의 도의를 알지 못하여 천하의 풍속이 날로 이미 패란敗亂해졌다.
이제 경망輕妄하고 강한强悍하며 이익을 좋아하고 사변을 많이 일으키는 것은 지방과 지방의 풍속이고, 경용勁勇하고 침정沈靜하며 노둔魯鈍하고 문식이 적은 것은 지방과 지방의 풍속이다.
경망輕妄하고 강한强悍한 사람으로서 이익을 좋아하고 사변을 많이 일으키려는 마음을 가졌거늘 삼대三代와 같은 왕자王者의 교화가 없으니, 그들이 일어나서 난동을 부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북방北方 지방과 지방 같은 경우는, 경용勁勇하고 침정沈靜한 사람은 의리로써 남을 감동시킬 수 있고, 노둔魯鈍하고 문식이 적은 사람은 신의로써 남과 교의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지방과 지방 사이에서 그 백성들이 항상 용맹을 자부하고 도적이 되는 것이 지방 사람이나 지방 사람과 다름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경용勁勇한 사람은 난동 부리기를 좋아하기 십상이고, 노둔魯鈍한 사람은 무지無知에 가깝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잃으니, 지방과 지방의 선량한 백성은 다시 당세에 나타나지 않고, 잔포殘暴하고 흉악凶惡한 사람은 항상 천자天子치세治世를 어지럽힌다.
중니仲尼(孔子)가 말씀하기를 “군자가 용기만 있고 가 없으면 난동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기만 있고 가 없으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옛날 성인聖人은 난동을 의리로 지식止息시키고 도적을 의리로 지식止息시켜 천하의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부자父子군신君臣의 의리를 알게 하였으니, 누구와 더불어 난동을 부리겠는가?
옛날 나라 왕실王室이 쇠퇴했을 때에 지방과 지방 사람들이 80년간을 수없이 싸워가며 적신賊臣을 받들고 온 힘을 다하고 목숨을 바쳤으며, 패망敗亡을 고려하지 않고 천하의 군대에 대항하면서 충신忠臣의사義士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때에 지방과 지방의 인사들은 정의감이 없었다.
그러므로 충성忠誠전일專一한 마음을 들어 천하의 가장 나쁜 역신逆臣에게 써서 천하의 가장 양순한 신민臣民을 항거하되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일정한 산업産業이 없어도 일정한 마음을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일반 백성은 일정한 산업이 없으면 따라서 일정한 마음이 없게 된다.
진실로 일정한 마음이 없으면 방벽放辟사치邪侈를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방과 지방에 사대부士大夫의 수효가 적은 것을 항상 고민하였다.
자유子由(蘇轍)의 이 지방과 지방의 풍속을 깊이 알지 못하고 한 말이다.
내가 일찍이 지방과 지방에서 벼슬살이를 해보았는데, 지방과 지방 선비 중에 충신忠信하고 감개感慨한 사람이 많았다.
예부터 그 지방에 절조節操를 지키고 정의를 위해 죽은 자가 많은 것 역시 이 때문이었으니, 다만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시서詩書예악禮樂으로써 어떻게 강마講磨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자유子由 지방과 지방을 나쁘게 평가한 것은 나라 중엽 반장叛將을 80여 년 동안 옹립擁立한 일 때문인데, 그 죄과가 장수에게 있고 이민吏民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하간河間위박魏博의 사이에 경문에 밝고 남다른 행동을 하는 선비가 많으니, 곧 전야田野여리閭里 사이와 같은 데에 비록 닭을 싸움 붙이고 말을 경주시키고 공차기를 하고 활쏘기를 하는 풍습이 있더라도 어진 수령守令이 잘 지도하면 지방과 지방보다 나을 수 있거늘, 하물며 지방과 지방만 못하겠는가?


역주
역주1 燕趙論 : 〈燕趙論〉은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 권5에 실린 〈進論 五首〉의 하나이다.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은 고친 글자나 수정된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宋代 이후의 학자에 의해 편집된 것 같다.
蘇轍의 문집 내용이 宋代 말엽의 학자에 의해서는 宋 欽宗의 이름인 桓을 피하기 위하여 ‘齊 桓公’이 ‘齊 威公’으로 바뀌었고, 송대 이후의 학자(淸나라 학자인 듯)에 의해서는 ‘戎狄’이 ‘西北’이나 ‘隣國’으로, ‘四夷’가 ‘西北’으로, ‘北狄’이 ‘北方’으로, ‘狄人’이 ‘北人’으로, ‘夷狄’이 ‘契丹’으로 바뀌었다.
역주2 君子有勇而無義……爲盜 : 《論語》 〈陽貨〉에 보인다.
역주3 天下 : 四庫全書의 《欒城應詔集》에는 ‘天子’로 되어 있다.
역주4 無恒産而有恒心者……無不爲已 : 《孟子》 〈梁惠王 上〉에 보인다.
역주5 苟無恒心 : 저본에 없는 것을 《孟子》에 의하여 보충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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