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黃帝요堯순舜은 壽皆百年이요 享國皆數十年이니라
주공周公作
言
상商중종中宗은 享國七十五年
이요 고종高宗은 五十九年
이요 조갑祖甲은 三十三年
이며 문왕文王은 受命
이 중종中身
이러니 享國五十年
이라하니라
서한西漢문제文帝는 二十三年이요 경제景帝는 十六年이요 소제昭帝는 十二年이며 동한東漢명제明帝는 十八年이요 장제章帝는 十三年이요 화제和帝는 十二年이며 당唐태종太宗은 二十三年이니라
此皆近世之明主나 然이나 與무일無逸所謂不知稼穡之艱難하고 不聞小人之勞하고
惟耽樂之從하여 或十年하고 或七八年하고 或五六年하고 或四三年者로 無以大相過也니라
至其享國長久하여는 如진秦시황始皇한漢무제武帝양梁무제武帝수隋문제文帝당唐현종玄宗은 皆以臨御久遠으로 馴致大亂이니라
幸而壽考하여 用物多而害民久하고 矜已自聖하여 輕蔑臣下하니 至於失國宜矣니라
古之賢君은 必致於學하여 達性命之本하고 而知道德之貴하며 其視子女玉帛을 與糞土無異하고 其所以自養을 乃與山林學道者比니라
學于古訓이라사 乃有獲하리니 事不師古하고 以克永世는 匪說攸聞이로소이다
惟學은 遜志니 務時敏하면 厥修乃來하리니 允懷于玆하면 道積于厥躬하리이다
惟斆는 學半이니 念終始를 典于學하면 厥德修를 罔覺하리이다
황제黃帝 및 요堯와 순舜은 수壽가 모두 100년이요, 향국享國이 모두 수십 년이었다.
주공周公이 〈무일無逸〉을 지어 말하기를 “상商 중종中宗은 향국享國이 75년이요, 고종高宗은 59년이요, 조갑祖甲은 33년이었으며, 문왕文王은 천명天命을 받은 것이 중신中身(중년)이었는데, 향국享國이 50년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한漢나라 이후로는 현군賢君의 재위在位 기간이 오랜 것이 모두 여기에 미치지 못하였다.
서한西漢 문제文帝는 23년이요 경제景帝는 16년이요 소제昭帝는 12년이었으며, 동한東漢 명제明帝는 18년이요 장제章帝는 13년이요 화제和帝는 12년이었으며, 당唐 태종太宗은 23년이었다.
이들은 모두 근세의 명철한 임금이었으나 〈무일無逸〉에서 이른바 “가색稼穡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서민들의 수고로움을 듣지 못하며,
오직 탐락耽樂을 따랐으므로 혹은 10년, 혹은 7, 8년, 혹은 5, 6년, 혹은 3, 4년이었다.”라는 것과 크게 더한 것이 없었다.
향국享國을 장구長久히 한 경우로 말하면, 진秦 시황始皇, 한漢 무제武帝, 양梁 무제武帝, 수隋 문제文帝, 당唐 현종玄宗과 같은 이는 모두 오랜 기간 임어臨御했기 때문에 차례로 대란大亂을 불러일으켰다.
혹은 나라를 잃기도 하고 혹은 겨우 몸이 화를 면하기도 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풍부한 음식이나 의복과 아름다운 성악이나 여색에는 몸을 해치게 하는 것이 많다.
그런데 조석朝夕으로 그 속에서 지내며 자제하지 못하니, 요사夭死에 이르는 것은 형편상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요행히 수고壽考하여 물자를 많이 쓰고 백성을 오래 해치며, 자신이 성인인 양 뽐내어 신하들을 경멸하니, 나라를 잃기에 이른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옛적의 현군賢君은 반드시 학문에 치중하여 성명性命의 근본을 달통하고 도덕道德의 귀함을 알았으며, 자녀子女와 옥백玉帛을 보기를 분토糞土와 다를 것이 없이 하고, 자신의 수양을 산림山林에서 도道를 배우는 자와 비교하였다.
이 때문에 그 지위에 오래 있어도 해가 없었다.
부열傅說이 고종高宗에게 아뢰기를 “왕王이시여!
사람을 견문見聞이 많은 자를 구하는 것은 이 일을 건립하기 위해서입니다.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음이 있을 것이니, 일을 옛것을 본받지 않고서 능히 장구하게 한다는 것은 제가 들을 바가 아닙니다.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니, 힘써서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닦여짐이 올 것이니, 독실하게 믿어 이것을 생각하면 도道가 그 몸에 쌓일 것입니다.
가르침은 배움의 반을 차지하니, 생각의 종終과 시始를 학문에 주장하면 그 덕德이 닦여짐을 자신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선왕先王이 이루어놓은 법法을 보시어 길이 잘못이 없게 하소서.”라고 하였으니, 아! 부열傅說은 이것을 알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