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子由謂양호祜之滅오吳는 不如범문자范文子之釋초楚하여 以爲外懼라하니라
愚竊謂범문자范文子處春秋列國之間하여 可爲深慮也라하니라
진晉與오吳爲兩大之國이니 非此亡彼면 則彼必圖此니라
오吳主호皓 方以妖童으로 淫虐其國이니 진晉不以此時下之면 是所謂圈虎而遺之患也니라
君子欲以其身沒二十餘年之後에 而議功爲罪는 不亦過乎아
善爲國者는 必度其君이 可與共患難하고 可與同安樂而後有爲라
진晉여공厲公與
초楚공왕共王에 진晉人知
초楚有可乘之隙
이니라
하고 諸
대부大夫富而凌
하니 有
이면 則君臣不相安
하여 亂之所自生也
언만 旣
이니라
문자文子雖死나 而免於大難하여 문자子孫與진晉國相終始니라
범려范蠡事월왕越王구천句踐에 反自회계산會稽하여 撫人民하고 厲甲兵하여 七年而殺오왕吳王부차夫差니라
범문자范文子至於自殺하고 범려范蠡至於逃亡而不顧하니 何則고
오吳손호孫皓以淫虐失衆하니 有亡國之釁이어늘 진晉人習於장강長江之險하여 以爲未可取也니라
양호羊祜爲양양수襄陽守하여 知其不能久하고 陳可取之計하니 무제武帝納之니라
무제武帝之爲人은 好善而不擇人하고 苟安而無遠慮니라
使오吳尙在하고 相持而不敢肆하여 雖爲賢君 可也니라
하며 疎賢臣
하고 近小人
하며 去
무제武備
하고 崇
이니라
所以兆亡國之禍者 不可勝數니 此則滅오吳之所從致也니라
맹자孟子曰 入則無法家拂士하고 出則無敵國外患者는 國常亡이니라
양호祜不慮此하고 而銳於滅오吳하니 其不若범문자范文子 遠矣니라
或曰 오吳滅而진晉亂은 此天命이요 非人事也어늘 而양호羊祜何罪焉고하니 吾應之曰 爲國當論人事니라
使양호祜不爲滅오吳之計하고 손호孫皓窮凶而死하여 오吳更立君이면 則장강長江未可越也니라
오吳旣不亡이면 則진晉之君臣이 厲精不懈리니 是오吳不滅하고 而진晉不亂也니라
양호祜之將死也에 무제武帝欲使臥護諸將하니 양호祜曰 滅오吳不須臣自行이나 但平오吳之後에 當勞聖慮耳리니이다
憂在平오吳어늘 而勇於滅오吳하니 其不若범문자范文子 遠矣니라
자유子由는 “양호羊祜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범문자范文子가 ‘초楚나라를 이대로 놓아두어 진晉나라가 경계해야 할 외환外患으로 삼자.’고 한 것만 못했다.”라고 하였다.
나는 가만히 생각하건대, 범문자范文子는 춘추春秋 열국列國의 사이에 처하여 깊이 염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진晉나라와 오吳나라는 둘 다 큰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가 저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으면 저 나라가 반드시 이 나라를 도모할 것이다.
오吳나라의 군주君主 호皓는 요동妖童으로서 그 나라를 음학淫虐하게 다스렸으니, 진晉나라가 이때에 그를 항복시키지 않으면 이는 이른바 “범을 길러 환患을 끼친다.”란 것이다.
오吳나라가 멸망한 뒤에 가서 양호羊祜는 이미 진晉 무제武帝 앞에 죽었다.
그런데 군자君子가 양호羊祜가 죽은 20여 년 뒤에 공로를 의논하여 죄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또한 너무 과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홀로 그 말이 족히 후세後世 인주人主 중에 극도로 부귀를 누리는 자의 경계가 될 만함을 사랑한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이는 반드시 그 임금이 더불어 환난患難을 함께할 수 있는지와 더불어 안락安樂을 함께할 수 있는지를 헤아린 뒤에 작위作爲함이 있다.
그러므로 공이 이루어진 이후에 후환이 없는 것이다.
진晉 여공厲公이 초楚 공왕共王과 더불어 정鄭나라를 〈자기들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교전할 때에 진晉나라 사람은 초楚나라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에 난무자欒武子가 국정國政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는 군사를 내어 〈초楚나라를〉 치고 싶어 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세대에 제후들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범문자范文子는 〈초楚나라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초楚나라를 이대로 놓아두어 진晉나라가 경계해야 할 외환外患으로 삼읍시다.”라고 청하였으나 무자武子는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대저 문자文子는 구차하게 편안함을 누리려고 하는 자가 아니었다.
여공厲公은 사치하여 총신寵臣을 많이 두고, 여러 대부大夫들은 부유富裕하여 상국上國을 능멸하니, 〈전쟁에서 승리하는〉 큰 공을 세운다면 임금과 신하가 서로 편치 못하여 난亂이 이로부터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었는데도, 〈무자武子는 ‘초楚나라를 피해 돌아가라.’는〉 모략謀略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싸우려고〉 나아가 초楚나라를 만났을 때에 〈문자文子는〉 오히려 초楚나라를 피해 돌아가려고 하였고, 이미 승전하고 국내로 돌아와서는 말하기를 “난亂이 장차 일어날 것이니 나는 기다릴 수가 없다.”라고 하고는, 그 축종祝宗으로 하여금 자기가 죽도록 빌게 하였다.
1년 후에 여공厲公은 삼극三郤을 죽이고 서동胥童을 세웠으며, 난서欒書는 서동胥童을 죽이고 여공厲公을 시해하였다.
문자文子는 비록 죽어서 대난大難을 면하였지만 자손子孫은 진晉나라와 서로 운명을 같이하였다.
범려范蠡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섬길 때에 회계산會稽山으로부터 돌아와서 백성을 어루만지고 군대를 훈련시켜 7년 만에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죽였다.
〈범려范蠡는 승전하고〉 돌아오는 데 미쳐 국내에 이르지 못했을 때에 월왕越王이 안락安樂을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임을 알고서 편주扁舟를 타고 떠남으로써 결국 문종文種처럼 죽는 것을 면하였다.
두 사람 같은 경우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범문자范文子는 자살自殺을 하였고, 범려范蠡는 도망逃亡하되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왜 그랬을까?
진晉 무제武帝가 이미 위魏나라의 선양禪讓을 받음에 중원中原은 부강富强하고 군신群臣은 〈제왕帝王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오吳나라 손호孫皓는 음란하고 포학하여 민중을 잃었으니, 나라를 멸망시킬 징조가 있었건만, 진晉나라 사람들은 장강長江의 험난함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오吳나라는〉 취할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였다.
양호羊祜는 양양수襄陽守로 있으면서 자기가 오래 살 수 없음을 알고 오吳나라를 취할 수 있는 계책을 진언하니, 무제武帝는 그 계책을 받아들였다.
양호羊祜는 또 왕준王濬과 두예杜預를 천거해서 오吳나라를 멸한 공을 이루었으니, 후세後世에서 모두 그의 어짊을 칭찬했다.
나는 일찍이 논하기를 “양호羊祜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세운 모책은 교묘하였지만, 진晉나라를 보위하기 위해 째낸 모책은 졸렬했다.”고 하였다.
무제武帝의 사람 됨됨은 선善한 일 하기를 즐기나 사람을 골라서 쓰지 않았고, 구차하게 목전의 안일만을 탐하고 앞으로 올 일을 헤아리는 사려는 없었다.
비록 어진 사람이 조정에 가득하였으나 가충賈充과 순욱荀勗 같은 무리가 복심腹心이 되었다.
가사 오吳나라를 그대로 존재시키고 서로 견지하면서 감히 방사하지 아니하여 비록 현군賢君이 되었더라도 좋았다.
그런데 무제武帝는 오吳나라가 망한 뒤에 여색女色에 황음荒淫하고 용자庸子에 눈이 가려졌으며, 현신賢臣을 소원하게 대하고 소인小人을 친근히 대하며, 무비武備를 제거하고 번국藩國을 존숭하였다.
그래서 나라를 망하게 할 화禍의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니, 이는 바로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데서 빚어진 일이었다.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들어와서는 법도 있는 집안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가서는 적국敵國과 외환外患이 없는 경우는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양호羊祜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박절하였으니, 범문자范文子만 못한 차이가 난 것이 너무도 심하였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오吳나라가 멸망하고 진晉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바로 하늘이 명한 것이고 사람이 한 일이 아니거늘, 양호羊祜가 무슨 죄인고?”라고 하기에 내가 응답하기를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마땅히 사람이 한 일을 논해야 한다.
가사 양호羊祜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킬 계책을 세우지 않고, 손호孫皓가 극단적으로 흉악한 짓을 하다가 죽어서 오吳나라가 다시 임금을 세웠다면 장강長江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吳나라가 이미 망하지 않았다면 진晉나라의 군신君臣이 정신을 가다듬어 태만하지 않았을 것이니, 이는 바로 오吳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진晉나라는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오吳나라가 멸망하고 진晉나라가 어지러운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았겠는가?”라고 하였다.
양호羊祜가 죽을 때에 무제武帝가 양호羊祜로 하여금 누워서 여러 장수들을 통솔하게 하니, 양호羊祜가 말하기를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은 신臣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행해지지만, 다만 오吳나라가 평정된 뒤에는 마땅히 성상聖上께서 근신謹愼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셔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양호羊祜의 이와 같은 말로 미루어본다면, 아마 그의 걱정 또한 오吳나라를 평정하는 데에 있었던 모양이다.
걱정이 오吳나라를 평정하는 데에 있었는데도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용감하였으니, 범문자范文子만 못한 차이가 난 것이 너무도 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