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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轍(3)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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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兵이니라
此則於將兵中 又拈出一護軍者하여 以調攝恩威之用이니 而文章疾徐頓挫 可以呼盪胸臆이니라
天下之勇士 可使用兵이나 而不可使이요 天下之智士 可使主兵이나 而不可使養兵이니이다
養兵者 君子之事也니이다
用兵之難이나 而養兵爲尤難이니이다
何者잇가 士氣之難니이다
擧兵而征行이면 三軍之士 其心在號令하고 而其氣在戰하며 息兵而爲營이면 三軍之士 其心在壘壁하고 而其氣在禦하며 陣兵而遇敵이면 三軍之士 其心在白刃하고 而其氣在勝이니 니이다
兵在外 이니이다
是故 撫之而易悅하고 予之而易足하고 誅之而易定하고 動之而易使니이다
其上之人 御之以勇而驅之以智 則百萬之衆 可以無足憂者니이다
及夫天下旣安 三軍之士 各反其家하면 美衣甘食하고 優游無爲하니 投石超距 不足以洩其怒하여 而各求其上之所短이니이다
當此之時 軍中之士 環視四顧하여 而始不可忍矣니이다
是故 久於不用이면 則其意不欲復戰이요 久於不使 則其意不欲復役이니이다
夫惟不欲而强使之하여 與之出戰則不樂하고 而與之從役則爲亂이니 此必然之勢也니이다
夫古者 兵出於農하니 其欲動之尤難이니이다
이나之季 諸侯之强하여 天下之民 日起而操兵이니이다
以其兵車 徜徉天下萬里而後反이나 而天下之民 不敢言病이니이다
至於後世 平居無事 常竭天下以養士卒이니 一旦有急이면 當得其力이나 乃反傲睨邀賞하고 不肯卽去니이다
夫其平時衣食其上하며 有難而起하고 起而鬪死하고 有事而役하고 役而盡力하니 此其勢宜若愈於三代之農夫矣 而當今方病其不然하니 此豈非其養之之過歟잇가
臣觀天下之兵 其數莫如경사京師之多 而士卒之趑趄難制 亦莫如경사京師之甚이니이다
何者잇가 天子在位하여 以仁御兵이언만 士不知戰而狃於賞하고 令之稍急이면 則瞋目攘臂而言不遜하니 此甚可惡也니이다
경사京師 종묘宗廟禁闈之所在어늘 而使不義之徒 周環布列於其左右하니 而尙何以爲安이리잇가
臣聞兵而兵驕戾 其責在將이라하나이다
方今경사京師之將 所任者誰乎잇가
匹夫小人 以次當遷하여 而爲之이라도 此其爲名 尙未離乎니이다
而其上之所統 獨有三 推而上之 則至於 如此 非在什伍之間하여 以日夕訓練之者也니이다
且夫卒未親附而罰之 則不服이니 不服則難用也니이다
今使大臣獨制其上하니 恩意不交而德澤不洽하여 上下不相信이니이다
特以勢相從이요 而無以義附者 則是未可以法治也니이다
使朝廷大臣으로 而曲躬傴僂하여 親問疾苦 如異時出兵行陣之間이면 此則其勢有所不給矣니이다
古者감군어사監軍御史하고하여 各有감군어사정승정승正丞이니이다 是以 之徒 忠信守節之士 得以出入감군어사하여 獲其歡心하고 而後 訓之以禮하고 繩之以法하며 有以誅滅이나 而士卒皆服하니 如此而後 兵可用也니이다
今奈何獨使狼戾之人으로 하고 而天子獨以貪暴無知之匹夫 爲左右之衛哉리잇가
臣愚以爲 略如漢制設爲諸校하여 使常處軍中하고 旣以撫之하고 且漸誅戮其豪橫하며 而訓之知禮라하나이다
軍中之吏 非其近之 則不能得其歡心이니이다
不得其心이면 則雖有法이나 而不能用이니이다
有法不能用이면 則士不可以勞苦 而兵不可以應卒이니이다
有兵不可以應卒하고 而有將不能以使衆이면 此最天下之大患也니이다
中葉 익주益州兵驕하고경성軍尤甚이라
자유子由論得情事曲鬯이니라
而今國家 西北養兵 患在財賦不充하여 無以豢嫖姚之士而死於戰하고 東南養兵 患在號令不肅하여 無以習向背之實而抗其賊이니라


05. 신하의 할 일에 대한 책문策文 5
양병養兵에 대한 논술이다.
이는 장병將兵 중에서 또 군사를 보호할 대책을 추출하여 은혜와 위엄을 조절하는 용도로 삼았으니, 문장의 속도조절과 굽이치는 기상은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천하의 용사勇士용병用兵은 하게 할 수는 있으나 주병主兵은 하게 할 수는 없고, 천하의 지사智士주병主兵은 하게 할 수는 있으나 양병養兵은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양병養兵을 하는 것은 군자君子가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용병用兵하는 일이 어렵지만 양병養兵하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기士氣를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출정을 하면 삼군三軍의 병졸은 벌써부터 그 마음은 호령에 가 있고 그 기세는 전쟁에 가 있으며, 병졸을 휴식시켜 군영軍營을 만들면 삼군三軍의 병졸은 벌써부터 그 마음은 누벽壘壁에 가 있고 그 기세는 방어防禦에 가 있으며, 군사를 치게 해서 을 만나면 삼군三軍의 병졸은 벌써부터 그 마음은 시퍼런 칼날에 가 있고 그 기세는 승전에 가 있으니, 기세가 존재하는 곳은 바로 이 향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병졸이 밖에 있을 때에는 군사의 기세가 에게 있고 그 장수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을 어루만지면 쉽게 기뻐하게 할 수 있고, 그들에게 물품 등을 지급하면 쉽게 만족시킬 수 있고, 그들을 주벌하면 쉽게 안정시킬 수 있고, 그들을 움직이면 쉽게 부릴 수 있습니다.
사병을 통솔하는 장수가 용맹으로 어거하고 지혜로 몰아가면 백만 대군은 족히 걱정 않아도 될 자들입니다.
그런데 천하가 이미 안정됨에 미쳐 삼군三軍의 병사가 각각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면 아름다운 옷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는 일 없이 한가하게 놀게 되니, 돌을 던지고 뛰어오르기를 하는 등의 훈련이 그들의 노여움을 풀기에는 부족해서 각각 그 장수의 단점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때쯤 되면 군중軍中의 사병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비로소 참을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오래도록 병사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들은 다시는 싸움을 하려 하지 아니하며, 오래도록 부리지 않으면 그들은 다시는 사역을 하려 하지 아니합니다.
하고 싶지 않는데 강제로 부려서 출전하게 하면 좋아하지 않고, 종사하게 하면 난을 일으키니, 이는 필연의 형세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병졸이 농부에게서 나왔으니, 그들을 동원하려면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 말기에 제후諸侯들이 하여 천하의 백성들이 매일 일어나서 무기를 가지고 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나라, 나라, 나라, 나라가 〈전쟁을 하기 위하여〉 병거兵車를 가지고 천하 만 리를 누비고 돌아왔으나 천하의 백성들은 감히 고달픔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후세에 와서는 평소 무사할 때에 항상 천하의 〈재력을〉 다 기울여서 군사를 양성하였으니, 하루아침에 급한 일이 발생하면 당연히 그들의 힘을 얻어야 했지만, 그들은 도리어 노려보며 상사賞賜를 요구하고 즉시 가려 하지 않습니다.
평시에 윗사람을 위하여 의복과 음식을 제공하면서 난이 발생하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싸우다가 죽고, 일이 있으면 사역을 하고 사역하면 힘을 다하였으니, 이는 그 형세가 의당 삼대三代의 농부보다 초과해야 할 것 같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것이 병통이니, 이는 어찌 그 양성을 과도하게 한 탓이 아니겠습니까?
이 살펴보건대, 천하의 병사는 그 숫자가 경사京師보다 많은 데가 없고, 사졸士卒이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태도를 제어하기 어려움도 경사京師보다 심한 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자天子께서 재위在位하여 으로 병사들을 어거하시건만, 병사들은 전투는 모르고 만 탐하며, 명령이 조금 급하면 눈을 부릅뜨고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을 불손하게 하니, 이는 매우 밉살스런 태도입니다.
또한 경사京師종묘宗廟금위禁闈(궁궐)가 있는 곳이거늘, 불의不義한 무리들로 하여금 그 좌우에 빙 둘러 포진해 있게 하니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은 듣건대 “병졸을 교양하였는데도 병졸이 여전히 교만하고 사나운 것은 그 책임이 장수에게 있다.”고 합니다.
현재 경사京師의 장수는 맡은 이는 과연 누구입니까?
필부匹夫소인小人은 서열에 따라 승진하여 십장什長백장百長이 된다 하더라도 그 명분은 오히려 졸오卒伍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위의 통솔체계에는 오직 3명의 태위太尉가 있을 뿐이고, 더 올라가면 추밀사樞密使에 이르는데, 이와 같은 4명의 대신大臣십오什伍부곡部曲의 사이에 있어서 조석朝夕으로 훈련을 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게다가 병졸이 직접 소속되어 있지 않는 관계에서 그 병졸에게 벌을 주면 복종하지 않기 마련이니, 복종하지 않으면 그 병졸은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현재 대신大臣이 단독으로 그 위에서 통제하도록 하니, 은의恩意가 교류되지 못하고 덕택德澤이 흡족하지 못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믿지 않습니다.
특히 형세상으로만 서로 따르고 의리로써 소속된 관계가 아니면 이런 상황하에서는 군법으로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사 조정朝廷 대신大臣의 신분으로 몸을 굽혀 병졸의 질고疾苦를 친히 묻기를 마치 비상시 출군出軍하고 행진行陣(行軍)하는 사이에서 요식행위를 하듯이 한다면, 이 경우는 그 형세에 미비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남군南軍북군北軍감군어사監軍御史를 두고, 호군제교護軍諸校를 두고, 각각 군정軍正정승正丞을 두었으니, 이러므로 임안任安호건胡建의 무리와 충신忠信하고 수절守節한 선비가 군중軍中을 드나들며 군중의 환심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그 뒤에 예절을 가지고 가르치고 법을 가지고 다스리며 주멸誅滅하는 일도 있었으나 사졸士卒들은 모두 복종하였으니, 이와 같은 뒤에야 병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유독 이리처럼 사나운 사람으로 하여금 임어臨御하는 곳을 살피게 하고, 천자天子는 유독 탐포貪暴하고 무지無知필부匹夫좌우左右수위守衛로 삼으시는 것입니까?
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대략 한대漢代의 제도처럼 제교諸校를 설치하여 항상 군중軍中에 처하게 한 다음 잘 어루만지고 또 점차로 그중에서 횡포한 자를 주륙誅戮하며 예절을 알 수 있도록 가르쳐야 된다고 여깁니다.
》에 이르기를 “ 도공悼公난규欒糾가 말을 잘 몰아서 군정軍政에 조화를 이룰 것을 알고 〈자기가 타는〉 융거戎車어자御者로 삼아 여러 어자御者들에게 절의節義를 숭상하는 것을 가르치게 하였고, 순빈荀賓은 힘이 세면서 포악하지 않음을 알고 융거戎車의 오른쪽을 맡게 하여 용력勇力 있는 군사들을 때에 맞추어 쓸 수 있도록 가르치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군중軍中의 사졸은 친근히 대하지 않으면 그들의 환심을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환심을 사지 못하면 비록 법이 있더라도 쓸 수 없습니다.
법이 있어도 쓸 수 없으면 사졸들이 노력하도록 하게 할 수 없고, 병졸들이 돌발사변에 응하게 할 수 없습니다.
병졸이 있어도 돌발사변에 응할 수 없고, 장수가 있어도 군중을 부릴 수 없으면, 이는 천하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인 것입니다.
나라 중엽中葉에는 익주益州의 군사가 교만 방자하였는데, 경성京城의 군사가 더욱 심하였다.
그러므로 자유子由가 그 사정을 곡진하고 통창하게 논술하였다.
현재 국가의 서북西北 양병養兵은 걱정거리가 재부財賦가 부족하여 날랜 군사들을 먹여서 전쟁에 목숨을 바치게 할 수 없는 데에 있고, 동남東南 양병養兵은 걱정거리가 호령號令이 엄숙하지 못하여 향배向背의 실제를 익혀서 그 을 항거할 수 없는 데에 있다.


역주
역주1 臣事策 五 : 〈臣事策 五〉의 요지는 국가의 군대는 官兵一體가 되고 상하가 서로 신임하고 사병은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장수는 군대를 마음대로 통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을 논술함에 있다.
《欒城應詔集》에는 篇首에 ‘臣聞’ 2字가 있다.
역주2 主兵 : 사병을 통솔하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3 : 《欒城應詔集》에는 ‘服’으로 되어 있다.
역주4 氣之所在者 毒之所向也 : 병졸이 머무르는 곳은 바로 禍患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라는 말이다.
역주5 士氣在敵 而不在其上 : 저본에는 ‘士氣在敵 而不在其上 不在其上’으로 되어 있는데, 《欒城應詔集》에 의하여 ‘士氣在敵 而不在其上’으로 바꾸었다.
역주6 : 저본에는 ‘發’로 되어 있으나, 문의상 四庫全書의 《唐宋八大家文鈔》‧《文編》‧《文章辨體彙選》 등에 의하여 ‘養’으로 바꾸었다.
역주7 什百之長 : 곧 什長과 百長이다. 古代 軍制는 5人이 伍가 되고, 2伍가 什이 되었다. 什長은 곧 10인의 長이고, 百長은 곧 100인의 長이다.
역주8 卒伍 : 군대의 하급조직을 가리킨다.
역주9 太尉 : 秦代에 설치한 벼슬인데, 전국의 軍政을 담당하였다.
역주10 樞密使 : 樞密院의 長官이다. 宋代에는 樞密使와 宰相이 軍國要政을 맡아, 宰相은 政事를 주관하고, 樞密使는 軍事를 주관하였다.
역주11 四大臣 : 1명의 樞密使와 3명의 太尉를 가리킨다.
역주12 部曲 : 군대의 편제로, 곧 行伍의 뜻이다.
역주13 南北軍 : 漢代에는 京師에 주둔한 군사를 南軍과 北軍으로 나누어, 南軍은 未央宮을 守衛하고 北軍은 長樂宮을 수위하였다.
역주14 護軍諸校 : 秦代에는 護軍都尉가, 漢代에는 護軍中尉와 護軍將軍 등의 명목이 있었다.
역주15 任安胡建 : 任安은 漢 武帝 때의 사람으로 일찍이 益州刺史와 北軍使者護軍을 역임하고, 戾太子의 巫蠱 사건으로 下獄‧誅殺되었다. 胡建 역시 漢 武帝 때 사람인데, 守軍正丞으로 있을 때에 監軍御史가 北軍의 담을 뚫어 가게를 만들어 商利를 취하려고 하자, 그를 베어 죽임으로써 이름을 드러냈고, 뒤에 渭城令이 되어 치적을 남겼다.
역주16 自相臨御 : 皇帝가 임어하는 곳을 살피는 일을 가리킨다.
역주17 晉悼公……使訓勇力之士時使 : 이 말은 《春秋左氏傳》 成公 18년과 《國語》 〈晉語〉에 보인다.
역주18 <주석명/> : 孫琮은 《山曉閣選宋大家蘇潁濱全集》에서 “子由는 京師의 군대가 驕悍하여 제어하기 어려운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그 제어하기 어려운 이유를 구명함에 있어서, 하나는 什長과 伍長은 지위가 워낙 낮아서 군중을 제압할 수 없음을 들고, 다른 하나는 두세 大臣은 지위가 워낙 높아서 서로 친근할 수 없음을 들었다. 그래서 什長‧伍長과 大臣의 중간에 일종의 군사를 옹호할 諸校를 설립하면 곧 什長‧伍長의 지위가 낮아서 군중을 복종시킬 수 없는 것과 같지 않고, 또한 大臣의 지위가 높아서 서로 친근할 수 없는 것과 같지도 않으니, 그 사이에서 조정하여 알맞게 절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主兵, 養兵, 伏兵氣를 제기해서 말하였으니, 主兵은 바로 客이고, 養兵은 바로 主이며, 伏兵氣는 또 主 中의 主이다. ‘氣’字를 3段으로 이어받아 兵陣을 행하였으니, 兵은 바로 主 中의 客이고, 息兵은 또 主 中의 主이다. 段에 따라 모름지기 자세하게 읽어야 할 것이다.[子由目擊京師之兵 驕悍難制 故發此論 至究其難制之由 一在什伍之長 卑而不足以壓衆 一在二三大臣 尊而不能以相親 于是 于二者中間 設立一種擁軍諸校出來 卽非如什伍之長 卑而不能服衆 亦不若大臣之尊而不能相親 調停其間 可爲折衷允當 一起說主兵養兵伏兵氣 主兵是客 養兵是主 伏兵氣又是主中之主 承寫氣字三段 行兵陣 兵是主中之客 息兵又是主中之主 逐段須細細讀之]”라고 비평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철(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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